선지식

현대인의 정신적 위기 극복으로서의 성철(性徹)의 간화선 사상

수선님 2021. 1. 31. 12:52

현대인의 정신적 위기 극복으로서의 성철(性徹)의 간화선 사상

 

 

 

 

 

⟨국문초록⟩

 

 

필자는 이 논문에서 현대인의 정신적 위기 극복으로서의 성철(性徹 ) 간화선 사상을 考究했다. 오늘날 우리는 ‘기능적 가치관’과 ‘시장형 인간관’으로 인간 존엄성 상실과 소외, 핵전쟁의 공포, 인구증가에 따른 식량의 문제, 공업화에 따른 빈부의 격차, 자원의 고갈, 환경의 오염 등으로 인류의 미래를 예측하기 어렵게 하는 위기의 문제들에 봉착하고 있다. 이런 현상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 ‘성철 스님의 간화선 사상’ 실천이라고 필자는 생각했다. 이를테면 헤능(638-713)이나 대혜(1089-1163)의 禪은 그들의 시대에 있었던 문제의식을 그것에 대한 해결책이었다. 禪이 표방하는 ‘중생이 곧 부처’라는 명제는 시간과 공간을 일관하는 ‘초시간적이고 초공간적인 禪적 진리’이다.

 

필자는 성철의 간화선 사상을 궁극적 실재의 깨달음에 대한 인식으로서의 中道와 윤리로서의 佛供으로 그 구조를 분석했다. 먼저 깨달음에 대한 인식으로서의 중도사상을 요약 정리한다.

 

성철 스님이 주장하는 중도의 세계는 붓다의 初轉法輪의 내용이 근본이며, 결국 해탈의 세계이고, 무념의 세계, 분별심 이전의 세계이다. 성철 스님에게 중도 사상은 초기불교와 대승불교의 근본 가르침일 뿐만 아니라, 대승 사상의 불교로서의 적법성을 보여 주는 근간이다. 성철 스님은 『法華經』이나 『華嚴經』에서 諸法實相이나 圓融無碍한 一盡法界를 말한 것은 모두 중도에 입각해 있는 사상이라고 했다. 또 스님은 용수의 중관사상 역시 용수의 독창적인 사상이 아니라 부처님이 초전법륜 때 처음으로 다섯 비구에게 중도 선언하신 것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고 주장하셨다. 불교의 중도 사상은 인도 사상에서 붓다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붓다 고유의 사상이며, 서양에서도 그 유래를 볼 수 없는 사상이라고 했다.

 

성철 스님은 선종(禪宗)사상도 유무(有無)를 떠난 중도사상이 핵심이라는 것을 혜능, 마조, 백장, 대주 등 선종의 대표적인 선사들의 어록을 발췌하여 규명했다. 이와 같이 성철 스님은 불교의 모든 사상의 핵심이 중도사상임을 하나의 체계적 관점으로 다음과 같이 회통하고 있다.

 

 

불교의 근본이 다 중도에 서 있으니 만큼 혹 표현은 다르다 해도 중도를 제외하고는 불법이 따로 없습니다. 그러므로 중도를 바로 보는 것이 불교를 바로 보는 것이고, 중도를 바로 보지 못하면 절대로 불교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스님께서 주장하는 중도는 단순히 교학적 이론이 아니라 궁극적 실재를 증득한 깨달음의 경지로 인식해야 한다. 그래서 중도는 깨쳐야만 알 수 있는 ‘증지소지비여경(證知所智非餘境)’이다. 중도는 깨달아야 아는 경지이므로 성철 스님은 화두를 참구하는 간화선 수행을 철저히 강조하셨다.

 

성철 스님의 윤리인 불공은 불교 실천의 핵심 위치에 서 있다. 불공은 말 그대로 부처님께 정성을 바치는 행위이다. 성철 스님의 불공 개념의 혁신은 봉암결사(1947)를 통해서 나타났다. 당시까지 스님이 신도들에게 불공을 ‘드려 주는’ 것에서 각 개인이 불공을 ‘드리는’ 것임을 인식시키는 실천을 봉암결사에서 불공 방식의 개혁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성철 스님은 1981년 1월 20일의 방장 대중법문에서 “절은 불공을 하는 곳이 아니라 불공하는 법을 배우는 곳이라 하고, 불공은 남을 돕는 것”이라고 교시하였다. 또 한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성철 스님은 다음과 같이 불공의 의미와 방향을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우리 불교에서는 근본 생활을 불공하는 데 두어야 합니다. 모든 존재, 모든 상대가 부처인 줄 알면서 부처님으로 섬기고 존경하고 봉양한다면 극락 세계를 따로 갈 필요가 없습니다. 이대로가 극락 세계가 아닐래야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니 모든 인간이 모든 생명이 본래 부처라는 이것부터 알아야 되겠습니다.

 

내가 생각할 때는 절에 사는 우리 승려들이 목탁 치고 부처님 앞에서 신도들 명과 복을 빌어 주는 이것이 불공이 아니며남을 도와주는 것만이 참 불공이라는 것을 깊이 이해하고 실천할 때그때 비로소 우리 불교에도 새싹이 돋아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성철 스님의 불공사상은 『화엄경』의 「보현행원품」제3 광수공양 편에서 유래 되어 간화선을 통하여 체득한 정법(正法)의 안목(眼目)에서 형성된 것으로 해석할 수있다.

 

성철 스님의 중도와 불공사상은 ‘同體大悲의 윤리’ 이고, 스님의 윤리인 불공은 그의 형이상학의 개념인 ‘中道’ 로부터 나왔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연유로 논자는 성철 스님 간화선 사상의 구조를 形而上學的 倫理說이라고 칭하고자 한다. 이런 논리를 방증(傍證, circumstantial evidence)할 스님의 가르침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마음의 눈만 뜨고 보면 모든 것이 본래 광명 속에 살고 있고우리 자체가 본래 광명입니다전체가 본래 부처고 전체가 본래 극락세계인 줄 알게 됩니다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되겠느냐. ‘모든 존재를 부처님으로 섬기자’ 이것입니다. 부처님이니까 부처님으로 섬기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불교 믿는 처음 조건에 모든 존재를 부처님으로 모셔라, 모든 존재를 부모로 섬겨라, 모든 존재를 스승으로 섬겨라 하는 3대 조건이 있습니다.

 

 

스님은 ‘부처님의 가르침은 법성(法性)이나 자성(自性)을 바로 깨치는 길, 즉 깨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근본이다’라고 새삼스럽게 강조 하셨다. 이런 강조는 스님 당시의 시대적 전반적 상황이 불교의 근본이 받아들여지고 있지 않았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스님의 이런 노력은 기복중심적인 신앙풍토 속에서 부정되고 사라져 버린 자각(自覺)의 전통을 다시 일깨우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스님의 주창은 자성자도(自性自度)라는 자각(自覺)의 종교성을 회복하자라는 취지일 것이다. 스님의 이런 주장은 시대적 상황과 무관할 수 없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종단 내적으로나 국가적 차원으로나 무서운 병은 분열과 갈등이었다. 원효(元曉, 617-686)스님이 화쟁(和諍)의 원리로써 삼국의 분열과 갈등을 치유했던 것처럼, 성철 스님이 중도(中道)와 불공(佛供) 사상을 강조한 것은 전체 불교사를 재정립한 것이며 시대를 향도(嚮導)한 것이다.

 

 주제어 : 성철 스님, 간화선, 돈오돈수, 중도, 불공

 

  헤럴드경제

Ⅰ. 들어가는 말

 

 

불교사상사에서 패러다임의 급격한 변화가 두 번 일어났다고 한다. 그 첫 번째가 소위 소승불교에 대한 대승불교의 도입이고, 다른 하나의 변화는 대승불교에 기초해서 일어난 禪佛敎 내지 딴뜨라 불교이다.

첫 번째 패러다임의 변화가 존재론과 인식론, 해탈론 등의 교리상의 전면적 변화를 초래한 데 비해, 두 번째 변화는 대승의 큰 틀을 유지하면서 다만 깨달음의 교육적 측면에 있어 보다 효율적인 방법론과 관련되었다. 이들 변화가 정치적. 사회적 변화와 밀접한 연관 하에서 진행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중국불교의 선운동(禪運動)은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도 족탈불급인 경천동지의 대지진적 혁명이었다. 선불교의 불립문자 운동은 타 종교에선 그런 예를 찾아볼 수 없는 무서운 혁명이었다. 선문(禪門)의 불립문자 운동은 불교권 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체의 문화적 물줄기를 바꾸어놓은 위대한 사건이었다.

 

대승불교를 전 시대의 사상과 구별짓는 가장 중요한 특징은 중생에 대한 大悲를 특징으로 하는 이타적 존재로서의 보살의 이상이다. 보살사상은 여러 내적. 외적 요인의 결합에 의해 시작되어 발전되었다. 전개된 이후에는 대승의 전 역사를 통해 그리고 대승불교가 전법된 모든 지역에서 하나의 강력한 이념으로서 등장하게 되었다. 따라서 보살의 이상 없는 대승불교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인도의 유명한 불교시인이자 수행자인 샨띠데바(Ṥāntideva,寂天,650-750)는 그의 『입보리행론』에서,空性과 大悲의 균형을 통해 이루어진 보살의 이상에 대해 매우 감동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여기서 그는 대승보살의 보리심의 계발을 두 가지 단계로 설하고 있다. 첫째는 타인과 자신의 동일성을 인식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자타의 동일성을 통달한 후에,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기쁨과 교환하는 적극적인 보살행의 단계로 나아간다.

전자의 단계에서 이타행의 근거는 고통의 변재성과 모든 존재는 苦를 피하고 樂을 구한다고 하는 ‘황금률’에 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은 동일한 고통과 동일한 기쁨을 갖고 있고, 자신은 스스로를 보호하듯 그들을 보호해야만 한다는 보살의 실천윤리의 근거가 되는 것이다.

 

고통의 변재성을 통한 이러한 윤리적 명령은 다음 단계에서 ‘자아’의식의 허구성과 모든 존재의 비실체성에 대한 통찰에 의거 새로운 차원의 윤리로 전환된다. 만일 모든 존재가 본래적으로 空하다면, 타인과 자신을 구별할 하등 근거가 없게 된다. 모든 내적, 외적 대상의 존재성이 제로로 수렴되었을 때, 집착되어야 할 대상도 집착하는 의식도 함께 소멸되며 따라서 이 단계에서 대승보살은 기꺼이 자신의 기쁨을 타인의 고통과 바꾼다.

필자는 현대인의 정신적 위기 극복에 대해서 「金剛經의 현대적 재해석」라는 논문을 통해 분석한 바 있는데 이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오늘날 우리는 과학문명의 발달에 따른 생활권의 확대로 세계화 정보화로 국가와 국가, 민족과 민족간의 시간적, 공간적, 심리적 거리가 좁혀지고 있는 것을 체험한다. 지구촌의 시대, 정보화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인간의 의식주의 생활방식뿐만 아니라 의식구조와 행동양식이 획일화 되어가고 있다. 과학문명의 발달로 오늘날 우리는 기술적인 지능은 가졌으되 자율적인 이성은 둔감한 인간, 인생의 목적과 의미를 생각하지 않고 감성적인 자극에 민감한 인간, 이것이 오늘날 우리 의식구조의 현상이다. 이런 현상에 대하여 뭄훠드의 분석을 요약한다면 첫째, 전통 가치관의 몰락, 둘째, 개성의 상실 및 획일화, 셋째, 卽物的 풍조 등이다.

이런 사조로 오늘날 인류는 핵전쟁의 공포, 인구증가에 따른 식량의 문제, 공업화에 따른 빈부의 격차, 자원의 고갈, 환경의 오염 등으로 인류의 미래를 예측하기 어렵게 하는 위기의 문제들에 봉착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정신과 육체, 나와 남, 나와 사회, 나와 국가, 나와 자연을 나누는 무명(無明)에 의한 이분법적 사고에 연유하는 결과라 하겠다. 이러한 현대의 위기는 어디에서 유래되었을까? 필자는 이것을 서양의 ‘공작인적 인간(homo fabar)관’에서 찾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현대사회 과학기술의 미증유의 발전은 과학기술과 경제적 생산을 인간의 본질로 간주하는 이상으로 삼기에 이름으로써 ‘공작인적 인간관’의 개가가 온 우주를 뒤덮게 되었다. 그리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답게 해주는 본성은 ‘공작’, ‘제작’, ‘생산’, ‘노동’, ‘실험’ 등과 같은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공작인적 인간관’의 현대사회는 인간의 ‘기능적 가치관’을 중시하게 되어 물질상승의 물질주의적 세계관과 결부되어 현대사회에 있어서의 육체를 중심으로 삼는 인간관이 형성되어, 기술적인 지성은 가졌으되 자율적인 이성은 마비된 인간, 정신적인 가치에 둔감하면서 감성적인 자극에 민감한 인간으로 전락되어 가고 있다.

그리하여 현대는 물질과 정신, 기술문명과 정신문화의 균형과 조화를 상실한 현상이 나타나 인류가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우리’보다는 ‘나’만을 중시하는 개인주의에 빠지고 ‘의(義)’에는 둔감하면서도 ‘이(利)’에는 민감한 ‘시장형 인간’으로 보편화되고 있다. 이것은 가치관의 전도된 현상이다. 이런 전도된 자아관의 현상은 대승불교의 ‘보살(菩薩)의 자아관’의 대중화 ․ 보편화 ․ 세계화의 부재현상으로 유래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삶의 발전과 성공이 무엇인가’를 심각하게 되물어보고 대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이런 현대인의 정신적 위기의 뿌리인 見濁(dṛṣṭi-kaṣāye, the decay of views)을 치유할 수 있는 중도의 정견(samyagdṛṣṭi)을 성철(1912-1993)의 간화선 사상에서 찾고자 한다.

 

 

 

Ⅱ. 성철의 간화선 구조

Ⅱ-1. 성철 간화선의 형성 배경

 

김성철 교수는 「간디와 성철」을 읽고 논평문에서 “성철스님이 열반(1993)에 들고 얼마 지난 후, 국내 모 기관에서 ‘해방 이후 우리사회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 누구인지’를 묻는 여론 조사를 했다. 그런데 그 결과 성철스님이 1위를 했다. 근·현대 스님들 가운데, 성철스님만큼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진 인물이 없을 것이다. 그의 몸은 철저히 은둔한 듯 보였어도, 그의 삶과 가르침은 어느 누구보다 우리 사회에 강력한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역설적 삶이다. 성철스님, 철저하게 은둔함으로써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역설의 삶을 살았던 것이다.”고 평했다. 성철스님은 계정혜(戒定慧) 삼학을 닦아 자신을 청정한 복전(福田)으로 만들고 자신이 체득한 조망을 중생들에게 회향한 출가자의 전범을 보인 현대의 선지식이었다.

 

고영섭교수는, “수행이 주목되는 전세계적 상황을 염두에 둘 때 당대 대표적 선사로서 불교의 본령인 ‘깨달음’에 대한 문제를 거듭 제기하였다는 점에서 그는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는 인물이다. 성철은 한국의 대표적 수행자이자 개혁론자였다는 점에서 수행과 개혁이 일치했던 수행자였다고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성철스님은 성불하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설하셨다.

 

 

불교에서는 성불하는 방법에는 방법이 여러 가지 있습니다. 관법을 한다, 주력을 한다, 경을 읽는다,다라니를 외운다 등등 온갖 것이 다 있습니다. 그런 여러 가지 방법 가운데서 가장 확실하고 빠른 방법이 참선입니다. 견성성불하는 데에는 참선이 가장 빼어난 방법입니다.

 

 

위의 사실은 자기 마음 거울의 때(무명)를 벗기고 마음의 눈을 뜨는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은 참선이라는 것을 敎示한 내용이다. 스님께서는 참선은 “화두를 배워 부지런히 참구하는 것이다”라고 하시면서,“화두를 바로 깨칠 것 같으면 마음의 눈을 안 뜰래야 안 뜰 수가 없습니다. 마음의 눈이 번쩍 뜨이고 마는 겁니다. 一超直入如來地, 한번 뛰어 부처님의 지위에 오른다는 뜻으로, 한번 훌쩍 뛰면 눈을 다 떠버린다는 것입니다.”라고 指南하셨다.스님께서는 어떻게 해서 간화선을 결택하게 된 연유를 알아보도록 한다.

 

퇴옹당(退翁堂) 성철대종사(惺徹大宗師)께서는 1912년 음력 2월 19일, 경남 산청군 단성면 묵곡리 합천이씨(陜川李氏) 가문에서 태어나시니, 엄부(嚴父)는 상언(商彦 )이시고 자모(慈母)는 진주강씨(晉州姜氏2)셨으며 속명을 영주(英柱))라 하였다. 이영주는 천성이 총민하시고 안광(眼光)이 남달랐으며 다섯 살에 능히 글을 짓고 시(詩 )를 쓰니 모두 천재신동(天才神童)이라 하였다. 소학교를 졸업하고 서당에서 『資治通鑑』까지 마친 뒤로는 더 이상 남에게 배우지 않고 스스로 독학하시면서, ‘영원에서 영원으로(From Eternity to Eternity)’ 라는 인생의 궁극적인 문제에 늘 관심을 갖고 철학, 의학, 문학 등 동서고금의 책을 두루 독파하셨다고 한다.

 

20세 전까지는 불교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고 관심도 없으셨다고 하는데, 다만 사람이 죽지 않고 영원토록 살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들이 어릴 때부터 마음속에 가득했을 뿐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런 책 저런 책 등을 꾀나 광범위하게 보았지만 당신이 볼 때는 영원하고 자유로운 길을 제시한 책은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다음은 성철스님의 체험담을 들어보도록 한다.

 

 

“그런데 어느 날 『菜根談』이라는 책이 있어 그것을 펼쳐보다가 한 군데 눈이 딱 멈추었습니다.

 

나에게 한 권의 책이 있으니 종이와 먹으로 만든 것이 아니다.

펼쳐 여니 글자 한 자 없으나 항상 큰 광명을 비친다.

我有一卷經 하니 不因紙墨成 이라 展開無一字 호대 常放大光明 이니라.

 

이 글귀를 읽으니 참 호기심이 많이 났습니다. ‘아마 그럴 것이다. 종이에다 먹으로 설명해 놓은 것 가지고 안 될 것이다. 종이와 먹을 떠난 참 내 마음 가운데 항상 큰 광명을 비치는 경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이 글자 한 자 없는 경을 읽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뒤로 대광명을 비치는 문자 없는 경이 있는 것 같아서 그것을 찾아본다고 참선을 익히기 시작하였습니다.“

 

 

스님은 그렇게 글자 없는 경을 찾고자 애쓰고 계시던 어느 날, 우연히 어떤 스님에게서 영가(永嘉 )대사의 『證道歌』를 얻어서 읽어 보시고는 ‘마치 캄캄한 밤중에 밝은 횃불을 만난 듯’ 하여 ‘아, 이런 공부가 있구나!’ 하는 충격과 함께 영원한 길의 실마리를 찾으셨다고 한다. 그래서 스님께서는 더욱 자신을 가지고, 마침내 지리산 대원사로 들어가 탑전에서 간화선 수행의 길잡이 대혜종고(大慧宗杲 , 1089-1163)의『書狀』을 읽고 혼자 머물며 “개에게는 佛性이 없다”는 조주(趙洲, 778-897)스님의 ‘무(無)자 화두’를 가지고 가지고 참선에 용맹정진하였다고 한다. 스님은 공부에 든 지 “사십이일 만에 마음이 다른 데로 도망가지 않고 動靜一如의 경지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체험을 고백하셨다.

 

이렇게 열심히 정진하는 청년을 감당할 수 없었던 대원사 주지스님은 본사인 해인사로 “무섭게 참선 정진하는 청년이 있으니 본사로 데려가서 잘 지도해 주시오.” 하는 편지를 띄웠다고 한다. 편지를 받아 본 당시 해인사 총무 소임을 보던 최범술스님이 대원사를 방문하여 청년 이영주(李英柱)에게 해인사로 가기를 권유하였다. 그리하여 1935년 초에 이영주는 김법린(梵山, 1899-1964), 최범술(曉堂, 1904-1979) 같은 해인사 큰스님들의 권유로 해인사로 오게 되었다고 한다. 그 무렵 해인사에는 당대의 선지식인 동산(東山 慧日, 1890-1965) 스님이 백련암에 머물고 있었다. 이영주를 본 동산 스님은 곧 큰 그릇임을 알아차리고, 퇴설당에 내려와 “참선을 잘하려면 스님이 되어야 한다”고 출가를 권하였다고 한다. 이영주는 처음에는 참선만 잘 하면 그뿐이지 승려가 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고 한다. 도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지 형식이 무슨 소용이겠느냐 하는 생각에서였다고 한다. 그런데 결제 날 동산 스님의 법문은 이영주의 마음 자리에 운명의 싹을 틔어 놓았다.

 

 

"여기 길이 있다. 아무도 그 비결을 말해 주지 않는다. 그대 스스로 그 문을 열고 들어가기까지는, 그러나 그 길에는 문이 없다. 그리고 마침내 길 자체도 없다.”

 

 

하루는 동산 스님께서 손수 ‘性徹’이란 법명을 적은 종이를 이영주 옆에 두고 갔다. 이영주는 그 길로 백련암에 계신 동산 스님을 찾아 뵙고 말을 나눈 후 출가를 결심하여 1936년 병자년 3월에 동산 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다고 한다. ‘이영주’라는 속인의 옷을 벗고 ‘성철’이라는 법명으로 세속의 모든 인연을 끊고 수행의 길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한다. 성철스님은 다음과 같은 출가시를 남겼다.

 

 

“하늘에 넘치는 큰 일들은 붉은 화롯불에 한 점의 눈송이요,

바다를 덮는 큰 기틀이라도 밝은 햇볕에 한 방울 이슬일세.

그 누가 잠깐의 꿈속 세상에 꿈을 꾸며 살다가 죽어가랴

만고의 진리를 향해 모든 것 다 버리고 초연히 내 홀로 걸어가노라.

 

미천대업홍로설(彌天大業紅爐雪)

과해웅기혁일로(跨海雄基赫日露)

수인감사편시몽(誰人甘死片時夢)

초연독보만고진(超然獨步萬古眞)“

 

 

 

 

스님은 이와 같은 기개로 수행자의 생을 시작한 것이다. 이 출가시를 문도들은 해인사 백련암 정념당의 기둥 주련(柱聯)에 적어두고 날마다 그 뜻을 되새기고 있다고 한다. 스님은 같은 해에 운봉(雲峰)화상으로부터 비구계를 수지할 무렵 한국 불교는 일본의 식민지 정책에 의해 승풍(僧風)이 흐트러질 대로 흐트러져 있었다. 이에 스님은 피폐해진 이 땅의 불교 속에 참선으로써 진리의 문을 열리라는 서원을 세우고서 범어사 금어선원 금강산 마하연 등 남북 諸方禪院에서 안거하셨으며 29세 때 대구 桐華寺 金堂禪院에서 마침내 칠통(漆桶)을 타파하고 오도송(悟道頌)을 다음과 같이 읊으셨다.

 

 

황하수 서쪽으로 거슬러 흘러 곤륜산 정상에 치솟아 올랐으니

해와 달은 빛을 잃고 땅은 꺼져내리도다.

문득 한번 웃고 머리를 돌려 서니

청산은 예대로 흰 구름 속에 섰네.

 

황하서류곤류정(黃河西流崑崙頂)

일월무광대지침(日月無光大地沈)

거연일소회수립(遽然一笑回首立)

청산의구백운중(靑山依舊白雲中)

 

 

이후로 10여 년 가까이 장좌불와(長坐不臥)로 고행정진하시니 언제나 안목이 투철하여 그 禪機를 당할 자가 없었다. 1945년 8월 15일, 일제로부터 나라의 해방은 스님들에게 한국 불교의 본래 면목을 되찾아야 하는 짐을 지웠다. 성철 스님, 청담 스님과 자운 스님은 이 무렵 문경 대승사에 머물면서 한국 불교의 앞날에 대해서 많은 토론을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불법을 바로 세우려는 청정한 의지가 ‘봉암사 결사’로 나타난 것이다. 1947년 경북 문경 봉암사에서 공주규약(供住規約)을 만들어 ‘부처님 법대로 살자’는 기치를 높이 드니, 靑潭. 香谷. 慈雲. 月山. 慧庵. 法傳 등 大德들이 동참하여 佛祖의 正法을 發揚함으로써 敎團淨化의 礎石을 다졌다. 1955년 교단 정화 후 초대 해인사 주지에 임명되었으나 거절하시고 팔공산 把溪寺 聖殿庵으로 옮겨 철망을 치고 10여 년을 洞口不出하며 道光을 숨기셨다. 그렇게 둘러친 철조망 안에서 일절 바깥 출입을 삼가면서 스님은 차곡차곡 한국 불교의 앞날을 준비하였다. 수많은 불경과 조사어록을 살펴봄은 물론, 과학과 수학 같은 학문도 깊이 연구하였다. 바깥에서는 불교정화라는 이름으로 대처승과 비구승의 투쟁이 한창일 때, 스님은 시류를 멀리한 채, 한국 불교의 진정한 내적 정화를 위해 든든한 징검다리를 놓고 있었다. 뒷날 ‘성철 불교’라 일컫게 된 독보적인 불교이론과 실천 논리를 확립하게 된다.

 

그후 1967년 伽倻山 海印叢林 초대 方丈에 추대되시고 百日法門을 열어 無量衆生을 化度하기 시작하셨다. ‘백일법문’을 통해 흐트러진 불교교리를 정리하여 집대성하고 조계종의 뱁맥을 바로잡아 선종의 핵심 사상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보여주었다. 곧, 불교의 근본 진리가 선과 교를 통해서 中道에 있음을 밝히고 선종의 정통한 종지는 돈오돈수에 있음을 천명하는 한편 不生不滅의 진리는 원자물리학이나 양자역학에서 또한 입증된다는 내용이었다.

 

그 독보적인 사상과 禪風으로 1981년 1월 20일 대한불교조계종 제7대 종정에 오르면서 이 땅의 불교계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1991년 8월 22일 조계종 원로회의에서 제8대 종정으로 다시 스님을 추대하였다. 스님은 종정 재임중 宗門의 이론서인 『禪門正路』를 저술하고 上堂法語集인 『本地風光』을 발간하시고는 부처님께 밥값하였다고 흔연하셨다. 이 두권의 저서는 스님이 심혈을 기울여 직접 쓴 것으로 돈오돈수를 불교의 핵심 개념으로 설명한 것이 『禪門正路』, 그리고 이 돈오돈수를 터득할 간화선 수행을 위해 백여 칙의 공안들을 모아놓은 것이 『本地風光』이다.

 

스님의 말씀 및 종문의 핵심어록에 관한 스님의 강론을 엮은 10여 종의 책과 스님께서 몸소 선정하여 번역하게 하신 선종의어록 37권을 함께 묶은 『禪林古鏡叢書』를 발간하니, 宗通과 說通을 兼全하신 스님께서 현대 한국선종에 끼치신 바는 참으로 큰 것이다.

 

스님께서는 종단행정에는 일절 간여치 않으시고 國政諮問委員에 위촉되었으나 전혀 나아가지 않으면서 ‘산승은 오로지 청산에 머물 뿐이다’라고 하셨다. 結制 때에는 산중에 비구. 비구니를 비롯한 四部大衆이 항상 500명이 넘게 운집하여 정진하였으니, 오늘날 동양 삼국에 이와 같은 수행처가 없다 할 것이다. 매철마다 대중이 함께 참여하는 七日七夜勇猛精進은 철저한 수행정신을 진작시키고 曹溪門下의 禪風을 드날리게 하는 스님의 매서운 家風을 이루었다.

 

스님께서는 선종의 바른 이념이 六祖慧能의 頓悟頓修思想에 있음을 발견하시고 800여 년 동안 한국 선종을 물들여온 普照(804-880)의 頓悟漸修說을 論破하여 宗旨를 바로 세우시니 캄캄한 밤중에 등불을 밝힘과 같았고, 修行衲僧과 宗徒들에게 바른 宗趣를 고취시켜 活潑潑한 祖師家風을 회복하신 것이다.

 

스님께서는 평생 戒律을 엄격히 하셨고, 신도들에게 직접 불공염불해주지 않았으며, 스스로 懺悔祈禱를 하도록 하셨다. 누구나 佛前에 三千拜를 하지 않으면 話頭를 주지 않고 친견을 허락지 않았다. 평생 돈만지는 일을 멀리하셨다. 젊었을 때 16년간 생식 또는 피곡으로 지내셨으며, 40여 년간 無鹽小食으로 일절 간식하지 않고, 廣木 麻布 外 에는 입지 않으셨으며, 사는 건물에는 단청을 허락지 않으셨다.

 

대한불교조계종 종정이 되신 후 1982년에 법정스님(1932-2010)과 함께 얘기 나누신 중앙일보 신년 인터뷰에서도 큰스님께서는 “불교보다도 더 나은 진리가 있다면 나는 당장이라도 그 진리를 찾아 나설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보기엔 불교가 가장 빼어난 가르침이다”고 말씀하셨다고 한다.그리하여 성철 큰스님은 환성지안(喚惺志安,1664-1729)으로부터 용성(龍城,1864-1940)에서 동산(東山, 1890-1965)으로 성철(性徹,1912-1993)로 이어지는 한국 불교계의 큰 선맥(禪脈)을 잇게 되었다.

 

1993년 11월 4일 음 9월 21일 오전 7시 30분 스님께서 처음 삭발 수계득도하셨던 해인사 퇴설당(堆雪堂)에서 상좌(上佐)들에게 ‘參禪 잘 하라’는 당부를 하시고 스스로 임종게(臨終偈)를 쓰신 다음 문득 열반에 드시니 世壽는 82세요, 법랍(法臘)은 59세로서 그 모습이 거룩하고 또 거룩하셨다.

 

 

“일생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하늘을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

산 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그 한이 만 갈래나 되는데

둥근 한 수레바퀴 붉음을 내뿜으며 푸른 산에 걸렸도다.

 

생평기광남녀군(生平欺誑女群 )

미천죄업과수미(彌天罪業過須彌)

활함아비한만단(活陷阿鼻恨萬端)

일륜토홍괘벽산(一輪吐紅掛碧山) “

 

 

 

7일 葬中에 수많은 사람들이 와서 모두 슬퍼하였고, 그 기간 동안 堆雪堂과 白蓮庵 뒷산에 걸쳐서 일곱 차례나 放光을 하시니, 그 이적에 사부대중은 모두 놀라워하고 감격했다. 다비식(茶毘式)에는 30여 만 명이 운집하여 30리 밖까지 人山人海를 이루니 그 장엄함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 다비 후 100여 과(顆)의 사리(舍利))를 얻어 칠칠재(七七齋) 동안 친견법회(親見法會)를 열자 종교를 초월하여 100여 만 명의 대중이 모여들어 찬탄하였으니, 이는 佛敎史에 드문 일이었다고 한다.

 

 

 

Ⅱ-2. 성철 간화선의 깨달음으로서의 中道認識

 

 

대자유에 이르는 길, 곧 영겁불망인 생사해탈의 경계를 성취하는 데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빠른 것은 참선이다. 참선은 화두가 근본이며, 화두를 부지런히 참구하여 바로 깨치면 영겁불망의 경계에 이르는 것이다.

 

본래 화두란 禪을 수행하는 스승과 제자 사이에 주고 받는 문답가운데 하나를 말한다.

흔히 스승이 제자에게 참선 공부거리로 던지는 ‘문제’가 화두다. 선불교 전통에선 1000여 년간 큰스님들이 던진 대표적 질문들을 모아 公案이라고 통칭한다. 공안이 곧 화두인 셈인데, 대표적인 것이 1700가지다. ‘無’나 ‘이 뭐꼬’가 우리나라 선승들이 가장 많이 붙잡는 화두들이다.

 

스승이 던진 화두를 들고 참선하다 그 물음의 답을 얻는 것이 곧 깨달음인데, 흔히 이러한 깨달음을 얻는 것을 ‘화두를 타파한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문제는 팔만대장경을 다 뒤져도 그 안에 화두의 정답이 없다는 점이다. 오로지 의문에 또 의문을 가짐으로써 마침내 그 뜻을 깨우치게 되고, 그 뜻을 분명히 깊이 깨치면 見性成佛(본성을 바로 보아 깨달음 얻음)해 부처가 된다는 것이다.

 

중국 선불교의 문을 연 달마대사(?-528)를 첫 번째 조상으로 따졌을 때 그 법통을 이은 여섯 번째 스님인 혜능대사(638-713)가 남긴 가르침을 정리한 책이 『육조단경』이다. ‘경(經)’이란 원래 부처님의 말씀이란 뜻인데,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면서 ‘경’이라 불리는 것은 『육조단경(六祖壇經)』뿐이다. 그만큼 혜능대사의 가름침이 탁월했기 때문일 것이다. 성철큰스님은 늘 선불교의 전통을 중흥시킨 분이 혜능스님이라고 하셨다.

 

禪의 기원은 석가모니 부처님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초기 불교의 선정설로서는 四禪, 八等至 - 四禪 + 四無色定(공무변처‧식무변처‧무소유처‧비상비비상처), 九次第定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선의 완성은 중국적 토양 속에서 발양된 祖師禪에서이다.

 

중국에 불교가 전래(A.D. 67)된 이래 조사선은 아직도 義解‧名相에 걸려 보리달마(菩提達磨, ?-528)가 전한 眞禪味에 이르지 못함을 여래선이라 함에 대하여, 文字義解에 걸리지 않고 바로 以心傳心하는 달마가 본래 전한 선법을 말한다. 如來禪은 敎內의 不了한 선이고, 조사선은 교외에 별전하는 지극한 선이다.

 

조사선의 흐름은 ‘一心’을 강조하는 思潮이다. 보리달마(? - 528)는 慧可(487-593)에게 安心법문으로 시작하여 三祖僧璨(? - 606)의 ‘信心’으로, 東山 法門에서는 ‘守一不移‧守心’으로, 慧能(638-713)에서는 ‘自性淸淨’으로 각각 나타나고 있다. 조사선은 스스로를 ‘전불심인(傳佛心印)’이라 하고 중생심성의 본원(佛性)을 깨닫는 것을 주지(主旨)로 삼은 중국화한 불교의 수행법이다. 그 전법의 계보는 달마(達摩, ?∼528), 혜가(慧可, 487∼593), 승찬(僧璨, ?∼606), 도신(道信, 580∼651), 홍인(弘忍, 602∼675), 홍인의 제자 신수(神秀, 606∼706)와 혜능(慧能, 638∼713)이다.

 

신수는 점오(漸悟)를 주장하고, 혜능은 돈오(頓悟)를 주장했으며 각각 남방과 북방에서 홍법하여 ‘남돈(南頓)’, ‘북점(北漸)’의 양 파를 형성하였으므로 역사에서는 ‘남북선종(南北禪宗)’ 또는 ‘남북종(南北宗)’이라 한다. 후에 혜능의 남종이 북종을 대신하여 중국 선종의 주류를 이루었다. 그래서 혜능을 선종의 실제 창시자라고 한다.

큰스님이 심혈을 기울여 직접 쓴 것으로 돈오돈수를 불교의 핵심 개념으로 설명한 것이 『禪門正路』, 그리고 이 돈오돈수를 터득할 간화선 수행을 위해 백여 칙의 공안들을 모아놓은 것이 『本地風光』이다. 큰스님은 육조대사의 가르침을 매우 중시해서 큰스님의 돈오돈수 사상도 육조대사의 다음과 같은 가르침의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내가 忍(弘忍)하상에게 있을 때 한번 말을 듣고 大悟를 하여 단번에 진여본성을 보았다.

----이제 도를 배우는 이는 보리를 돈오하여 각자 心을 보고 자체의 본성을 깨달으라.

 

이와 같은 일체법은 모두 자신의 性 안에 있다. 自性은 항상 청정하다. 해와 달이 항상 밝으나 다만 구름이 덮여서 위는 밝고 아래는 어두워 日月星辰을 뚜렷하게 보지 못하다가 문득 지혜의 바람이 불어와서 구름과 안개를 말끔이 거두어 버리면 온갖 것이 일시에 드러나 보인다. 세상 사람들의 성품이 청정함도 마치 깨끗한 하늘과 같으며 慧는 해와 같고 智는 달과 같아 지혜가 항상 밝거늘, 밖으로 경계에 집착하여 망념의 뜬구름이 덮여서 자기의 성품이 밝을 수 없느니라. 그러므로 참다운 법을 열어 주시는 선지식을 만나 迷妄을 없애 버리면 內外明徹해진다. 자기의 성품 가운데 만법이 다 나타나 일체법에 자재하나니 淸淨法身이라고 이름한다.

 

 

이것은 사람의 본성이 본래 청정하여 선천적으로 지혜를 갖추고 있으나 단지 망념의 구름에 가리워 스스로 깨닫지 못함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선지식의 인도를 받기만 하면 망념을 없애서 內外가 明徹해질 수 있고 갑자기 진여본성을 볼 수 있어 저절로 佛道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육조 혜능은 또 말하기를,

 

 

자성을 알지 못하면 부처도 중생이요, 자성을 깨달으면 중생이 곧 부처이다. 앞 생각의 미망이 곧 범부요, 뒷 생각의 깨달음이 곧 佛이다.

 

 

라고 하였다. 미망과 깨달음은 한 생각의 차이이니, 본성은 단지 일념에 상응할 뿐이어서, 중생의 자아가 本心을 인식하면 곧 성불할 수 있다. 성불은 佛身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自性이 곧 부처이다. 이것은 心 밖에 있던 부처를 心 안의 부처로 변화시킨 것이고, 부처를 항상 눈으로 볼 수 있는 모든 평상인으로 변화시킨 것이다. 혹자는 평상인을 부처와 같은 위치에 올려놓은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見性成佛’ 또는 ‘頓悟成佛’의 학설이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성철 큰스님이 늘 인용했던 혜능대사는 중국의 당나라 스님으로서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했는데도 참선 수행 끝에 깨달음을 얻어 불교 사상의 정수를 이해하고 가르쳤다고 한다. 성철 큰스님이 주장하는 돈오돈수를 이룬 역사적 모범인 셈이다.

 

사진 출처: 원택스님(2012), 성철 스님이 들려준 이야기 p. 97 앞줄 왼쪽부터 청담, 성철, 서옹 스님이 계신다. 

이처럼 깨달음으로 지향하는 길이 쉽게 밝혀져 있지만 인간이 소유하고 있는 번뇌로 생활하려는 습벽 때문에 우리의 생활이 흔들리고 마는 것이다. 스님은 일생을 看話禪으로 일관하고 그러한 방법을 통해서 깨달음을 이룬 禪僧이다. 더구나 긴 禪宗史에 무수히 명멸하는 각종의 異論들 가운데 깨쳐 들어가는 길은 ‘간화선 수행을 통한 一超直入如來地의 頓悟頓修’를 깨달음의 최고의 지표로 제시하고 있다.

 

스님은 『禪門正路』에서 돈오돈수 사상이 어째서 선종의 正統思想인지를 語錄과 經典을 근거로 낱낱이 밝히면서 正統禪의 입장을 정리하고 있다. 스님은 이렇게 『禪門正路』의 사상적 입장을 바탕으로 하여 자기의 주장을 구체적으로 세우고 있다. 이에 『선문정로』를 통하여 스님의 頓悟思想을 살펴 본다.

 

『禪門正路』라는 책은 ‘선 수행의 바른 길은 간화선 수행을 통한 돈오돈수의 正路’를 보여주는 것이다. 다시말하면 『선문정로(禪門正路)』에서 진리를 가장 핵심적으로 나타내는 말은 ‘ 돈오돈수(頓悟頓修)’이다.『선문정로』는 88종의 전통적 경전에서 발췌된 326개의 引用文이 , 제1장 「견성성불(見性成佛)」에서 제19장 「소멸불종(銷滅佛種)」까지 열아홉 가지의 범주를 설정하여 처음에는 견성(見性), 불성(佛性), 번뇌(煩惱) 등의 의미를 해석하고, 깨달음의 상태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오매일여(寤寐一如), 「사중득활(死中得活)로 나누어 자세히 제시하고 있다, 또한 깨달음의 완성으로 한 점 의혹 없는 상태인 「대원경지(大圓鏡智)」, 「내외명철(內外明徹)」, 「상적상조(常寂常照)」 등이 불조(佛祖) 정전(正傳)임을 밝히고 있다. 「해오점수(解悟漸修)」「분파분증(分破分證)」, 「다문지해(多聞知解)」 등에서는 돈오점수(頓悟漸修)의 폐해를 적시(摘示)하고 선문의 최대장애가 이러한 이론(異論)이라고 파사현정(破邪顯正)하면서 돈오돈수(頓悟頓修)를 원상 복귀시키는 데 있다.

『禪門正路』첫머리에서 「견성하면 곧 부처(見性卽佛」라고 宣言한다. 즉 깨닫는 그 자리에서 바로 부처가 된다고 다음과 같이 교시하고 있다.

 

 

“견성을 하면 즉시 구경과(究竟果)의 무심경계(無心境界)가 나타나 약과 병이 전부 소멸되고 교(敎)와 관(觀)을 함께 쉰다”, 는 「종경록(宗鏡錄)」의 한 구절을 인용하면서 진여지혜(眞如智慧)의 무한한 광명은 언제나 법계를 비추지만, 중생이 번뇌망상의 어두운 구름으로 뒤덮여 이를 보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다. 구름이 걷히면 푸른 하늘이 나타나서 광명을 보게 되는 것과 같이, 미세한 극미망념(極微妄念)이 사라지면 환히 깨달아 참다운 본성을 발견한다. 그리하여 일체의 망념이 끊어졌으므로 이것을 무념(無念) 또는 무심(無心)이라고 하고, 이것을 이름하여 무여열반(無餘涅槃)이며 묘각(妙覺)이라고 정의한다.

 

 

스님은 미세 망상의 번뇌가 영원히 사라져 자성을 보는 자리는 묘각뿐이라고 단호한 결론을 내리고 있다. 스님께서는 돈오돈수와 확철대오만이 활구(活句)참선 즉, 간화선(看話禪)의 본령임을 천명했다. 제4장 「무상정각(無上正覺)」, 제5장 「무생법인(無生法忍)」, 제6장 「무념정종(無念正宗)」에서 비로서 스님의 이론적인 틀인 돈오돈수의 사상을 이끌어 내고 있다.

 

제4장 「무상정각(無上正覺」에는 “나의 본성 즉 부처 성품은 삼세여래(三世如來)의 궁극의 비밀스런 보배창고이니 만약에 무상정각을 성취하면 나의 본성을 원만히 깨쳐서 바로 알게 된다”는 『涅槃經』의 내용을 인용하고 있다. 이는 견성이란 원만히 깨침(圓證)인 돈오 , 즉 구경각임을 명시함이니 분증(分證)과 해오(解悟)로써 견성이라고 주장하는 이단사설(異端邪說)에 현혹되지 말 것을 주장한다.

 

제5장 「무생법인(無生法忍)」에서는 “성문은 부처님의 성스런 마음을 모르고 공정(空定)에 머물러 있고, 보살은 공(空)에 빠지고 적(寂)에 막혀서 불성(佛性)을 보지 못한다. 만일 근기가 뛰어난 중생이라면 홀연히 선지식의 지시를 받아서 언하(言下)에 분명히 알아차려 지위와 계급을 초월하여 찰나에 구경무심지(究竟無心地)에 돈입(頓入)하여 정각을 성취한다”고 하는 「馬祖語錄」을 인용하여 선문(禪門)의 수승한 특색인 돈오본성(頓悟本性)을 구경각(究竟覺)인 진정한 깨침(證悟)로 말한다.

 

제6장 「무념무종(無念正宗)에서는 “이 법을 요오(了悟)한 자는 즉시 무념(無念)이니 억념(憶念)과 집착이 없어서 광망(誑忘)이 일어나지 않고, 자기의 진여본성을 사용하여 지혜로써 관조하여 취하지도 버리지도 않나니, 이것이 견성이며 불도를 성취함이니라”는 『육조단경(六祖檀經)』을 선문의 제일의 지침으로 제시하며, 이 무념이 고금의 불조가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한 돈오견성법(頓悟見性法 )이며 불조의 생명이요, 정법의 골수가 됨을 스님의 사상적 근저로 설명하고 있다. 이 무념이 즉 무생이니 즉 돈오이며 견성이며 성불이다.

 

이와 같이 조사스님들은 한결같이 돈오돈수를 말씀하시고 , 본래면목을 해결한 임제가풍이 제일의(第一義)이다. "성철큰스님께서 옛 조사스님의 가풍을 역사적으로 입증하고 여실하게 살려내셨다는 데 무엇보다 큰 공로가 있다"고 조계종 제5대 종정을 지내셨던 서옹큰스님께서 증언하셨다. 이어서 서옹큰스님께서는 “돈오돈수의 돈오는 ‘진여자성을 아는 것’이고, 돈오점수의 돈오는 ‘진여자성을 지해(知解)로써 아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조사선은 본래면목 그 자리로 완전히 전환하는 것인데, 지해(知解) 차원에서 그 자리를 향해서 수행해 간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입니다”고 증언 하셨다.

 

조선시대라는 미증유의 500년 장기 법난기를 거치는 동안 승단은 자기동일성마저 포기해 버린 반유반승(半儒半僧). 반승반속(半僧半俗)에다가, 일제시대와 해방 이후 온갖 잡동사니가 뒤범벅되어 불교라는 정체성마저 의심스러울 정도의 결과를 초래했다. 이런 상황에서 돈오돈수를 주창하신 것은 선종을 표방하면서 선종 외적인 요소들을 혁파하고, 불교 속에서 불교 외적인 것을 척결하기 위하여 스님의 전 역량을 쏟아 부었던 결실이다. 그래서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성철큰스님은 수행정신의 회복과 수행체계의 확립으로 선종의 돈오법(頓悟法)을 분명히 드러내어 수행대중들에게 철저하게 주지시키기 위한 일환으로 『禪門正路』를 1981년 10월 15일 출간하였다. 앞에서 고찰한 바와 같이『禪門正路』는 성철큰스님의 사상을 전하는 대표작이다.

 

성철스님의 주장은 화두를 들고 참선에 전념하여 한꺼번에 깨달음을 얻으면 더 이상의 닦음(修)이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성철스님은 “깨달음을 얻기 위한 화두 정진에 삼문관(三門關)인 동정일여(動靜一如), 몽중일여(夢中一如, 숙면일여(熟眠一如)를 통시적(通時的)으로나 공시적(共時的)으로 화두가 역력히 계속되면 모든 잡념이 완전히 끊기고 무심(無心)의 상태에서 확연히 깨우치게 되면 그때 비로소 마음의 눈을 크게 떠 ‘산은 산 물은 물’이라고 소리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 바로 자유자재한 대해탈인이다.”라고 하셨다. 위와 같이 불교의 수행은 ‘전의(轉依,몸바꿈)’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성철스님은 화두참구를 돈오돈수적 견성인 구경각에 이르기 위한 최고의 수행법으로 삼았다. 이 ‘轉依’는 순일한 의단만으로 부단하고 간절하게 이어지는 것을 생명으로 하는 화두참구, 즉 간화의 수행을 성철스님이 견성의 첩경으로 극력 주창하셨다. 이 ‘轉依 ’가 성철스님이 강조하신 “돈오돈수”사상의 핵심이다.

 

“禪門은 見性이 근본”이라고 이라고 하시면서 성철스님은 “견성은 진여자성을 철견(徹見)함”이라고 정의하였다.우리가 본래 지니고 있는 진여 그 자체인 완전한 성품을 보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선불교전통에서‘ 견성이 곧 성불’ 이라는 교의가 보리달마 이래의 확고한 종지로 이어왔다. 중생이 원래 부처임에도 불구하고 범부로 살아가는 이유가 망념 때문이라는 것이 선불교의 진단이다. 그 망념을 남김없이 여윈다면, 즉 무심무념(無心無念)을 이룬다면 그것이 곧 성불(成佛)이다. 성철스님은 여러 경론에서 구경각, 무상정각, 증오(證悟), 무여열반, 여래지, 불지(佛地), 해탈 등으로 지칭하는 것이 모두 바로 이 견성 즉 진여자성의 철견을 가리킴이라는 것이다.

돈오견성을 하고나면, 즉 모든 망념을 여윈 무념무심의 경지에 이르면, 이후의 활동은 곧 부처의 행(佛行)이다. 돈오견성은 곧 성불이기 때문이다. 그 무념무심의 경지를 보임(保任)하는 가운데 크고 둥근 거울 같은 지혜(大圓鏡智)를 발휘하여 안팎이 환히 밝고(內外明徹) 항상 고요하면서도 항상 밝게 환히 비추는(常寂常照) 삶, 즉 부처로서의 삶을 산다. 부처로서의 삶은 중도(中道)의 삶이다. 성철스님은 중도, 이것이 불교의 근본사상이라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였다.

  

중도라는 것은 모순이 융합되는 것을 말하며,모순이 융합된 세계를 중도의 세계라 합니다. 세상의 이치는 모두 상대적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선(善)과 악(惡)의 상대, 시(是 )와 비(非)의 상대, 유(有)와 무(無)의 상대, 고(苦)와 낙(樂)의 상대 등 이렇듯 모든 것이 서로 상대적인 대립을 이루고 있읍니다. 다시 말해서 이 현실 세계는 그 전체가 상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연 이 현실 세계에서는 모순과 투쟁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이 상대의 세계 곧 양 변의 세계에서는 전체가 모순 덩어리인 동시에 투쟁인 것입니다. 그 결과 이 세계는 불행에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불행에서 벗어나고 투쟁을 피하려면 근본적으로 양 변, 상대에서 생기는 모순을 모두 버려야 합니다. 이를테면 서로 옳으니 그르니 하는 시비(是非)를 버리면 그것이 바로 극락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 세계는 이른바 사바고해(娑婆苦海)인 까닭에 그 양 변을 여의지 못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중도를 정등각하였다”고 선언하신 것은 바로 그 모든 양 변을 버렸다는 말씀입니다. 곧 나고 죽는 것도 버리고, 있고 없는 것도 버리고, 악하고 착한 것도 버리고, 옳고 그른 것도 모두 버려야 합니다. 그렇게 모두 버리면 시도 아니고 비도 아니고,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고, 유도 아니고 무도 아닌 절대의 세계가 열리는 것입니다. 이렇듯 상대의 모순을 모두 버리고 절대의 세계를 성취하는 것이 바로 해탈이며 대자유이며 성불인 것입니다.

모든 대립 가운데에서도, 철학적으로 보면, 유(有) 무(無)가 가장 큰 대립입니다. 중도는 있음(有)도 아니고 없음(無)도 아닙니다. 이것을 비유비무(非有非無)라고 하니, 곧 있음과 없음을 모두 떠난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다시 유와 무가 살아납니다(亦有亦無). 그 뜻을 새겨 보면 이러합니다. 곧 3차원의 상대적인 유와 무는 완전히 없어지고 4차원에 가서 서로 통하는 유무가 새로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유무가 서로 합해집니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유무가 합하는 까닭에 중도라 이름한다(有無合故名爲中道).”

불생불멸의 원리에서 보면 모든 것이 서로서로 생멸이 없고, 모든 것이 서로서로 융합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있는 것이 없는 것이고, 없는 것이 곧 있는 것이라(有卽是無, 無卽是有)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이와 같은 내용을 그 다섯 비구에게 설법하니 그들은 짧은 시일 안에 곧 깨달음을 성취하였습니다. 이것이 유명한 초전법륜입니다. 이렇듯이 초전법륜의 근본 골자는 중도에 있습니다괴로움과 즐거움을 완전히 버리고, 옳음과 그름을 버리고, 있음과 없음을 버린다고 해서 아무 것도 없는 허공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마치 구름이 완전히 걷히면 밝은 해가 나오는 것과 같아서, 거기에는 광명이 있을 뿐입니다. 유와 무를 완전히 버리면 그와 동시에 유와 무가 서로 통하는 세계, 곧, 융통한 세계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눈을 감은 세계에서는 있고 없음이 분명히 상대가 되어 존재하지만, 눈을 뜨고 보면 유와 무, 곧 있고 없음이 완전히 없어 지는 동시에 유와 무가 완전히 융합해서 통하게 됩니다. 이렇듯 중도의 세계란 유. 무의 상대를 버리는 동시에 그 상대가 융합하는 세계를 말합니다. 양 변을 버리는 동시에 양 변을 융합하는 이 중도의 세계가 바로 모든 불교의 근본 사상이며, 그리고 대승불교 사상도 여기에 입각해 있습니다.

 

하나가 곧 전체이고 전체가 곧 하나이다. 一卽一切 一切卽一

 

『華嚴經』에서 말하는 이 사상도 중도에서 나온 것입니다. 하나와 일체라는 것은 양 변입니다. 하나와 일체를 버리면 그것이 바로 중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가 곧 일체이고 일체가 곧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화엄사상이며 곧 불교 전체의 사상인 것입니다. 『法華經』이나 『華嚴經』에서 諸法實相이나 圓融無碍한 一盡法界를 말한 것은 모두 중도에 입각해 있는 사상입니다.

대승경전이 시대적으로 보아서 부처님이 돌아가신 지 몇 백년 뒤에 성문화된 것이라고 하여도 그 근본은 부처님의 사상 그대로인 것입니다. 대승경전이 부처님 사상이 아니라거나 부처님의 사상을 발전시켰다고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부처님의 근본 사상이 중도에 있는 것과 같이, 화엄과 법화 또한 중도를 그대로 전개시킨 것이니, 그것이 곧 초전법륜이 되는 것입니다.

 

 

성철스님은 여러 논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소상히 부연해서 설하셨다.

 

 초전법륜에서 중도를 말씀하시고 난 뒤에 『잡아함경』과 같은 조그마한 경전이 편집되면서 중도를 여러 가지로 설명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곧 그곳에서는 중도가 바로 진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진여라고 하는 것은 절대입니다. 변동이 없다는 것입니다. 진여는 양 변을 여윈 절대의 세계입니다. 동시에 진여는 법계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진여법계(眞如法界)는 일체연기법(一切緣起法)에 의해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중도, 진여, 법계, 연기 이 네 가지는 대승불교의 근본 골자로서, 이들을 빼버리면 대승불교의 사상은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초전법륜에서 중도를 설명할 때에는 반드시 연기가 따라오고, 법계가 따라오고, 진여가 따라갑니다. 그러므로 진여, 법계, 중도, 연기 이것을 버리고 불교를 찾으려 함은 마치 얼음 속에서 불을 찾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러면 이 중도라는 것이 과연 부처님께서 최초로 발견한 것인지 아니면 인도 사상에서 이미 있었던 것인지가 문제가 됩니다.-----결국 이 중도사상은 부처님의 새로운 발견이며 독창적인 새 출발이라고 학자들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인도 사상을 총괄하여 보면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유심(唯心)사상이고, 다른 하나는 유물(唯物)사상입니다. 유심사상은 전변설(轉變說)로 되어 있고, 유물사상은 적집설(積集說)로 되어 있습니다. 전변설은 수정주의(修定主義)로 나가고, 적집설은 고행주의로 나가는데, 유심과 유물, 전변설과 적집설, 수정주의와 고행주의 들이, 말하자면, 부처님 이전에 인도 사상을 통괄하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유심도 유물도 버리고, 전변론도 적집론도 버리고, 수정주의도 고행주의도 버렸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실지로 수행하여 유심과 유물을 버려야만 중도를 정등각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도사상은 부처님께서 최초로 깨달으신 새 발견인 동시에 불교만의 독창적인 사상인 것입니다.

 

 

 부처님의 초전법륜이 중도이므로 이후 전개되는 모든 불교사상은 중도사상이 근간을 이룬다는 것을 성철스님이 주창한 것을 앞에서 고찰했다. 따라서 용수의 중관사상역시 용수의 독창적인 사상이 아니라 부처님이 초전법륜 때 처음으로 다섯 비구에게 중도 선언하신 것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고 스님은 주장하셨다.

 

성철 스님은 선종사상도 유무(有無)를 떠난 중도사상이 핵심이라는 것을 혜능, 마조, 백장, 대주 등 선종의 대표적인 선사들의 어록을 발췌하여 규명했다. 이와 같이 성철 스님은 불교의 모든 사상의 핵심이 중도사상임을 하나의 체계적 관점으로 다음과 같이 회통하고 있다.

 

 

불교의 근본이 다 중도에 서 있으니 만큼 혹 표현은 다르다 해도 중도를 제외하고는 불법이 따로 없습니다. 그러므로 중도를 바로 보는 것이 불교를 바로 보는 것이고, 중도를 바로 보지 못하면 절대로 불교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스님께서 주장하는 중도는 단순히 교학적 이론이 아니라 궁극적 실재를 증득한 깨달음의 경지로 인식해야 한다. 그래서 중도는 깨쳐야만 알 수 있는 ‘증지소지비여경(證知所智非餘境)’이다. 깨달음은 부처님의 마음을 증득하는 것이 되고, 그것은 중도를 정등각(正等覺)하는 것이다.중도는 깨달아야 아는 경지이므로 성철 스님은 화두를 참구하는 간화선 수행을 철저히 강조하셨다. 스님께서는 “중도의 원리는 어느 종교나 어느 철학에서도 볼 수 없는 불교만의 독특한 입장이니만큼 선(禪)과 교(敎)를 통해서 또 남전(南傳) . 북전(北傳)할 것 없이 불교의 근본진리는 중도원리에 있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고 강조 하셨다. 그래서 누구나 ‘중도의 원리’를 깨치도록 화두를 참구하는 간화선 수행은 당위다.

 

 

Ⅱ-3. 성철 간화선의 윤리로서의 佛供實踐

 

 

현대의 특징은 한마디로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사는 세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바로 보지 못하면 바로 알지 못하니 행동도 바르게 하지 못한다. 눈 감은 사람이 어떻게 바로 걸을 수 있겠는가? 먼지 앉은 거을이 어떻게 사물을 바로 비출 수 있겠는가? 망상이 마음을 덮고 있는데 어떻게 바로 알 수 있으며, 어떻게 바로 볼 수 있으며 어떻게 바른 행동을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성철 스님은 자기의 마음의 눈을 뜨고 자기를 바로 보기 위하여 참선을 해서 화두를 바로 깨치자고 주창하셨다.

 

우리가 화두를 타파하면 어느 누구나 “ 그 눈을 뜨고 보면 자기가 천지개벽 전부터 이미 성불했고, 현재는 물론 미래가 다하도록 성불한 존재임을 알게 된다. 결국 견성, 즉 자기의 본성을 보게 되는 것이다. 마음의 눈을 바로 뜨고 그 실상을 바로 보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고 하셨다.

 

1981년 1월 20일 대한불교조계종 종정 수락법어를 내릴 때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를 일성하시자, 그 의미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한국인이면 누구라도 외워 노래한 법어다. 이런 법어가 책으로 엮어진 것이 『자기를 바로 봅시다』이며 3편으로 분단되어, 1. 축복의 말씀 2. 가야산의 호랑이 3. 대담이다.

그 중 불공(佛供)의 정신과 방법의 실천에 관한 가르침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1982년 부처님오신날 법어)

 

 

“자기를 바로 봅시다. 자기는 원래 구원되어 있습니다. 자기는 본래 부처입니다. 자기는항상 행복과 영광에 넘쳐 있습니다. 극락과 천당은 꿈속의 잠꼬대입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자기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영원하고 무한합니다. 설사 허공이 무너지고 땅이 없어져도 자기는 항상 변함이 없습니다. 유형, 무형 할 것 없이 우주의 삼라만상이 모두 자기입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모든 진리는 자기 속에 구비되어 있습니다. 만일 자기 밖에서 진리를 구하면 이는 바다 밖에서 물을 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자기는 본래 순금입니다. 욕심이 마음의 눈을 가려 순금을 잡철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나만을 위하는 생각을 버리고 힘을 다하여 남을 도웁시다. 욕심이 자취를 감추면 마음의 눈이 열려서, 순금인 자기를 바로 보게 됩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아무리 헐벗고 굶주린 상대라도 그것은 겉보기일뿐 본 모습은 거룩하고 숭고합니다. 겉모습만 보고 불쌍히 여기면 이는 상대를 크게 모욕하는 것입니다. 모든 상대를 존경하며 받들어 모셔야 합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현대는 물질 만능에 휘말리어 자기를 상실하고 있습니다. 자기는 큰 바다와 같고 물질은 거품과 같습니다. 바다를 봐야지 거품은 따라가지 않아야 합니다.

자기를 바로 봅시다. 부처님은 이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것이 아니요, 이 세상이 본래 구원되어 있음을 가르쳐 주려고 오셨습니다. 이렇듯 크나 큰 진리속에 살고 있는 우리는 참으로 행복합니다. 다 함께 길이길이 축복합시다.“

 

 

성철 스님은 우리가 참선을 하여 화두를 타파하면 “우리가 본래 부처이다”라는 것을 체득하게 되어 세세생생 萬古光明의 삶을 살수 있다면서 수행을 다음과 같이 강조하셨다.

 

 

“ 쉽게 말해 바른생활을 하자는 것이 불교인데, 망상 속에서는 바른 생활을 할 수 없다, 이 말입니다. 오직 무심을 터득해야만 바른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을 바로 이끌려면 자기부터 눈을 바로 떠야 하고바로 알아바로 행동해야 합니다. 불교와 같이 전체적으로 눈을 뜨고 청천백일(靑天白日) 같이 천지만물을 여실히 다 보고 말해놓은 종교는 실제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 불자들은 자부심을 가지고 노력해서 실제 무심을 터득해야 되겠습니다명경의 비유는 역시 좋은 비유입니다. 먼지가 앉은 중생의 명경이나 먼지가 다 닦인 부처님 명경이나  근본 명경은 똑같습니다. 우리가 ‘성불, 성불’하니까, 중생이 어떻게 성불하겠느냐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그게 아닙니다. 본래 부처입니다그러니 본래면목본래의 모습을 복구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사진 출처: 원택스님(2012), 성철 스님이 들려준 이야기 p. 107 앞줄은 김금태, 이진두, 전창열, 이철교, 김선근,황귀철 등의 구도부 학생과  베레모를 쓴 박성배 교수가 김용사 대중들과 함께

성철 스님은 “구원이란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구한다는 말인데, 우리 불교에는 그런 말이 없어요. 서로가 부처님이니까 부처님으로 섬기자는 것입니다. 부처가 다른 부처를 어떻게 구원한단 말입니까. 그러니 모든 존재를 부처님으로 모시고부모로 섬기고스승으로 받들자는 말이지요.”라고 설하셨다. 이 가르침은 『法華經』의「方便品」에 나타난 ‘唯佛與佛’의 警句를 聯想케 한다. 이런 깨친 안목에서 모든 생명에게 불공을 해야한다는 가르침을 다음과 같이 敎示하였다.

 

 

“보살은 자기 몸을 버림으로써 진리의 몸을 체득한다고 했고, 능히 중생을 위해 목숨을 버린 사람은 곧 하늘에 태어난다고 했습니다.---그런데 기복신앙의 불공을 해서야 되겠어? 우리가 아침저녁으로 행하는 기도는 명 빌고 복 비는 불공이 아니라 자기 환기의 작업입니다. 그래서 불공은 일체 생명을 대상으로 해서모든 중생이 행복하게 해주소서 하는 측면에서 행해져야 합니다.---예수님 말씀처럼 왼손이 하는 일을 바른손도 모르게, 남몰래 남을 도와야 합니다.”

 

 

〈남을 돕는 것이 나를 돕는 것〉(1988년 1월 1일 신년법어)

 

 

“부처님의 아들 딸 영원한 해탈의 길에서 자유합니다.

공자님의 아들 딸 대동성세(大同聖世)에 요순을 노래합니다.

예수님의 아들 딸 무구한 영광이 충만합니다.

마호메트님의 아들 딸 지극한 복락을 마음껏 누리십니다.

세계는 한 집이요, 인류는 한 몸입니다.

너와 나의 분별은 부질없는 생각이니 국토와 인종의 차별을 버리고

남의 종교를 내 종교로 받들며 남의 나라를 내 나라로 생각합시다.

남을 해치는 것은 나를 해치는 것이요,

남을 돕는 것은 나를 돕는 것입니다.

병든 사람 만나거든 내 몸같이 보살피고

고통 받는 이 찾아오면 정성 다해 살펴 줍시다.

애국애족으로 위장한 사리사욕은 참으로 무섭습니다.

저마다 사리사욕을 버리고 깨끗한 마음으로

서로 도우며 서로 믿고

서로 존경하며 서로 사랑하며

서로 화합합시다.

남과 나를 다 잊고서 한가히 앉았으니

눈 속의 매화꽃 고운 향기 진동하네.“

 

 

성철 스님께서는 “수없이 많은 이 부처님께 정성을 다하여 섬기는 것이 참 불공이다”라고 하시면서 참 불공의 실천은 우리의 행복의 문을 활짝 여는 길이라고 하셨다. 왜냐 하면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벌레 하나까지도 보살피는 것이 참불공이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를 부처님 모시듯 공경하면, 모든 불행은 자취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행복은 받거나 주는 것이 아니라 짓는 것이기 때문이다. 불공을 한다는 것은 내가 가진 물건을 아낌없이, 오히려 정성과 기쁨으로 부처님이나 그 밖의 사람에게 내어주는 것이니 이것은 자기 집착을 놓고 마음의 문을 여는 행위가 된다.

 

 

 

불공은 완전히 무심이어야 하며 무주상(無住相)이어야 최상의 불공이 된다. 『金剛經』에서는 무주상보시의 공덕은 온 우주 허공을 헤아릴 수 없듯이 공덕이 또한 무량하다 하였다. 깨달음의 눈 즉 반야의 눈으로 볼 때 불보살은 바로 우리 눈앞에 계시고, 집안에 계시며, 거리에 계시며, 무한세계에 계신다. 우리의 가족이 바로 그것이며, 형제와 이웃과 동료들과 온 겨레가 그것이다. 이와 같이 성철 스님께서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불공을 指南하셨다.

 

 

“집집마다 부처님이 계시니 부모님입니다. 내 집 안에 계시는 부모님을 잘 모시는 것이 참 불공입니다. 거리마다 부처님이 계시니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을 잘 받드는 것이 참 불공입니다. 발 밑에 기는 벌레가 부처님입니다.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벌레들을 잘 보살펴는 것이 참 불공입니다. 머리 위에 나는 새가 부처님입니다. 날라다니는 생명들을 잘 보호하는 것이 참 불공입니다. 넓고 넓은 우주, 한없는 천지에 모든 것이 다 부처님입니다. 수 없이 많은 이 부처님께 정성을 다하여 섬기는 것이 참 불공입니다. 이리 가도 부처님, 저리 가도 부처님, 부처님을 아무리 피하려고 하여도 피할 수가 없으니 불공의 대상은 무궁무진하며 미래겁(未來劫)이 다하도록 불공을 하여도 끝이 없습니다. 이렇듯 한량없는 부처님을 모시고 항상 불공을 하며 살 수 있는, 우리는 행복합니다. 법당에 계시는 부처님께 한없는 공양구를 올리고 불공하는 것보다, 곳곳에 계시는 부처님들을 잘 모시고 섬기는 것이 억 천 만배 비유할 수 없이 더 많다고 석가세존은 가르쳤습니다. 이것이 불보살(佛菩薩)의 큰 서원이며 불교의 근본입니다. 우리 모두 이렇듯 거룩한 법을 가르쳐주신 석가세존께 깊이 감사하며 항상 불공으로 생활합시다.”

 

 

〈일체를 존경합시다〉(1990년 5월 1일, 불교방송 개국 축하법어)

 

“일체를 존경합시다. 일체가 부처님 아님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일체를 부처님으로 받들고 스승으로 섬기며 부모로 모십시다.

우주의 유형, 무형이 이 법문을 항상 설하여 이 말씀이 우주에 가득 차 있습니다. 모두들 귀가 있든 없든 간에 이 법문을 항상 듣고 있습니다. 더욱이 불교방송을 통하여 이 법문을 전하게 되니 참으로 금상첨화입니다.

모든 가치는 말씀에 있지 않고 그 실천에 있으니 우리 모두 선악과 시비를 초월하여 일체를 존경하여야 합니다.

푸른 허공에서 반짝이는 별님들과 둥근 달님도 쉴 새 없이 벽력같은 소리로 항시 이 말씀을 외치고 있습니다.

일체를 존경합시다.“

 

 

불공을 행함으로써 발아래 복의 꽃밭이 열리고 지혜의 태양이 빛난다. 부처님의 은혜로운 위신력이 그의 심신에 넘쳐나며 불국토가 열려가는 것이다. 불공을 실천하자. 일체처 일체사에서 부처님을 보면서 정성 다바쳐 불공을 행하도록 하자. 이것은 우리의 본원생명의 무한창조의 평원으로 펼쳐내는 최상의 수행이다.이와 같이 성철 간화선의 윤리로서의 불공(佛供)은 어떤 경전에서 유래되었을까?

스님은 남을 위한 불공 개념의 전거로 『화엄경』의 「보현행원품(普賢行願品)」제3 광수공양(廣修供養) 편 다음을 들었다.

 

 

선남자여, 모든 공양 가운데는 법공양이 가장 으뜸이 되나니 이른바 부처님 말씀대로 수행하는 공양이며, 중생들을 이롭게 하는 공양이며, 중생을 섭수하는 공양이며, 중생의 고(苦)를 대신 받는 공양이며, 선근을 부지런히 닦는 공양이며, 보살업을 버리지 않는 공양이며, 보리심을 여의지 않는 공양이니라.---무슨 까닭인가. 모든 부처님께서는 법을 존중히 하시는 까닭이며, 말씀대로 행하면 많은 부처님이 출생하는 까닭이며, 또한 보살들이 법공양을 행하면 곧 여래께 공양하기를 성취하나니 이러한 수행이 참된 공양이 되는 까닭이니라.

 

 

스님은 『화엄경』의 「보현행원품」을 가리켜 여기에 “불교의 근본 진리가 모두 포함되어 있으며 불교인이 어떻게 행동해야 될 것인가가 모두 규정되어 있다”고 하셨다. 성철 스님은 “일곱 가지의 법공양 중에 특히 ‘중생을 이롭게 하라’는 것이 골수입니다.”고 하셨다. 또한 스님은 “길가에 병들어 거의 죽어가는 강아지가 배가 고파 울어댈 때 식은 밥 한 덩이를 그 강아지에게 주는 것이 부처님께 만반진수를 차려 놓고 무수, 수천만 번 절을 하는 것보다 휠씬 더 공이 크다”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스님께서는 불법을 수행하는 데 이타행위의 중요성을 ‘불공’의 가르침을 통해서 강조하였다. 스님의 불공에 대한 가르침은 「보현행원품」의 제3 광수공양(廣修供養) 편 이 근간이 되었다고 인식할 수 있다.

 

 

사진 출처: 원택스님(2012), 성철 스님이 들려준 이야기 p. 177.

Ⅲ. 맺음말

 

오늘날 우리는 과학문명의 발달로 기술적인 지능은 가졌으되 자율적인 이성은 둔감한 의식구조의 현상으로 卽物的 풍조가 만연되어 가고 있다. 그리하여 현대는 물질과 정신, 기술문명과 정신문화의 균형과 조화를 상실한 현상이 나타나 인류가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우리’보다는 ‘나’만을 중시하는 개인주의에 빠지고 ‘의(義)’에는 둔감하면서도 ‘이(利)’에는 민감한 ‘시장형 인간’으로 보편화되고 있다. 이것은 가치관의 전도된 현상이다. 이런 전도된 자아관의 현상은 대승불교의 ‘보살(菩薩)의 자아관’의 대중화. 보편화. 세계화의 부재현상으로 유래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삶의 발전과 성공이 무엇인가’를 심각하게 되물어 보고 대안을 ‘성철의 간화선 사상’에서 찾아야 한다.

 

 

앞에서 고찰한 바와 같이 필자는 성철의 간화선 사상을 궁극적 실재의 깨달음에 대한 인식으로서의 中道와 윤리로서의 佛供으로 그 구조를 분석했다. 먼저 깨달음에 대한 인식으로서의 중도사상을 요약 정리한다.

성철 스님이 주장하는 중도의 세계는 붓다의 初轉法輪의 내용이 근본이며, 결국 해탈의 세계이고, 무념의 세계, 분별심 이전의 세계이다. 성철 스님에게 중도 사상은 초기불교와 대승불교의 근본 가르침일 뿐만 아니라, 대승 사상의 불교로서의 적법성을 보여 주는 근간이다. 성철 스님은 『法華經』이나 『華嚴經』에서 諸法實相이나 圓融無碍한 一盡法界를 말한 것은 모두 중도에 입각해 있는 사상이라고 했다. 또 스님은 용수의 중관사상 역시 용수의 독창적인 사상이 아니라 부처님이 초전법륜 때 처음으로 다섯 비구에게 중도 선언하신 것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고 주장하셨다. 불교의 중도 사상은 인도 사상에서 붓다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붓다 고유의 사상이며, 서양에서도 그 유래를 볼 수 없는 사상이라고 했다.

 

성철 스님은 선종(禪宗)사상도 유무(有無)를 떠난 중도사상이 핵심이라는 것을 혜능, 마조, 백장, 대주 등 선종의 대표적인 선사들의 어록을 발췌하여 규명했다. 이와 같이 성철 스님은 불교의 모든 사상의 핵심이 중도사상임을 하나의 체계적 관점으로 다음과 같이 회통하고 있다.

 

 

불교의 근본이 다 중도에 서 있으니 만큼 혹 표현은 다르다 해도 중도를 제외하고는 불법이 따로 없습니다. 그러므로 중도를 바로 보는 것이 불교를 바로 보는 것이고, 중도를 바로 보지 못하면 절대로 불교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스님께서 주장하는 중도는 단순히 교학적 이론이 아니라 궁극적 실재를 증득한 깨달음의 경지로 인식해야 한다. 그래서 중도는 깨쳐야만 알 수 있는 ‘증지소지비여경(證知所智非餘境)’이다. 중도는 깨달아야 아는 경지이므로 성철 스님은 화두를 참구하는 간화선 수행을 철저히 강조하셨다.

 

성철 스님의 윤리인 불공은 불교 실천의 핵심 위치에 서 있다. 불공은 말 그대로 부처님께 정성을 바치는 행위이다. 성철 스님의 불공 개념의 혁신은 봉암결사를 통해서 나타났다. 당시까지 스님이 신도들에게 불공을 ‘드려 주는’ 것에서 각 개인이 불공을 ‘드리는’ 것임을 인식시키는 실천을 봉암결사에서 불공 방식의 개혁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성철 스님은 1981년 1월 20일의 방장 대중법문에서 “절은 불공을 하는 곳이 아니라 불공하는 법을 배우는 곳이라 하고, 불공은 남을 돕는 것”이라고 교시하였다. 또 한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성철 스님은 다음과 같이 불공의 의미와 방향을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우리 불교에서는 근본 생활을 불공하는 데 두어야 합니다. 모든 존재, 모든 상대가 부처인 줄 알면서 부처님으로 섬기고 존경하고 봉양한다면 극락 세계를 따로 갈 필요가 없습니다. 이대로가 극락 세계가 아닐래야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니 모든 인간이 모든 생명이 본래 부처라는 이것부터 알아야 되겠습니다.

 

 

내가 생각할 때는 절에 사는 우리 승려들이 목탁 치고 부처님 앞에서 신도들 명과 복을 빌어 주는 이것이 불공이 아니며남을 도와주는 것만이 참 불공이라는 것을 깊이 이해하고 실천할 때그때 비로소 우리 불교에도 새싹이 돋아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성철 스님의 불공사상은 『화엄경』의 「보현행원품」제3 광수공양 편에서 유래 되어 간화선을 통하여 체득한 정법(正法)의 안목(眼目)에서 형성된 것으로 해석할 수있다.

 

성철 스님의 중도와 불공사상은 ‘同體大悲의 윤리’ 이고, 스님의 윤리인 불공은 그의 형이상학의 개념인 ‘中道’ 로부터 나왔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연유로 논자는 성철 스님 간화선 사상의 구조를 形而上學的 倫理說이라고 칭하고자 한다. 이런 논리를 방증(傍證, circumstantial evidence)할 스님의 가르침을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마음의 눈만 뜨고 보면 모든 것이 본래 광명 속에 살고 있고우리 자체가 본래 광명입니다전체가 본래 부처고 전체가 본래 극락세계인 줄 알게 됩니다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되겠느냐. ‘모든 존재를 부처님으로 섬기자’ 이것입니다. 부처님이니까 부처님으로 섬기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불교 믿는 처음 조건에 모든 존재를 부처님으로 모셔라, 모든 존재를 부모로 섬겨라, 모든 존재를 스승으로 섬겨라 하는 3대 조건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기능적 가치관’과 ‘시장형 인간관’으로 인간 존엄성 상실과 소외, 핵전쟁의 공포, 인구증가에 따른 식량의 문제, 공업화에 따른 빈부의 격차, 자원의 고갈, 환경의 오염 등으로 인류의 미래를 예측하기 어렵게 하는 위기의 문제들에 봉착하고 있다. 이런 현상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 ‘성철 스님의 간화선 사상’ 실천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이를테면 헤능(638-713)이나 대혜(1089-1163)의 禪은 그들의 시대에 있었던 문제의식을 그것에 대한 해결책이었다. 禪이 표방하는 ‘중생이 곧 부처’라는 명제는 시간과 공간을 일관하는 ‘초시간적이고 초공간적인 禪적 진리’이다.

 

성철 스님은 깨달음의 추구, 인간에 대한 절대적 신뢰,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길로써 간화선 수행을 제시했다. 스님은 ‘모든 부처님들과 역대 모든 조사스님들이 자기 성품, 자기 마음을 깨쳐서 부처를 이루었다’고 강조 하셨다. 또 스님은 ‘부처님의 가르침은 법성(法性)이나 자성(自性)을 바로 깨치는 길, 즉 깨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근본이다’라고 새삼스럽게 강조 하셨다. 이런 강조는 스님 당시의 시대적 전반적 상황이 불교의 근본이 받아들여지고 있지 않았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스님의 이런 노력은 기복중심적인 신앙풍토 속에서 부정되고 사라져 버린 자각(自覺)의 전통을 다시 일깨우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스님의 주창은 자성자도(自性自度)라는 자각(自覺)의 종교성을 회복하자라는 취지일 것이다. 스님의 이런 주장은 시대적 상황과 무관할 수 없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종단 내적으로나 국가적 차원으로나 무서운 병은 분열과 갈등이었다. 원효(元曉, 617-686)스님이 화쟁(和諍)의 원리로써 삼국의 분열과 갈등을 치유했던 것처럼, 성철 스님이 중도(中道)와 불공(佛供) 사상을 강조한 것은 전체 불교사를 재정립한 것이며 시대를 향도(嚮導)한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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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Seong-cheol's Ganhwa Seon Thought as a Principle of reconcilation of the Mental Crisis of Modern Man

 

 

Sun-keun Kim

 

Dongguk University

 

 

This paper examines Seong- cheol's Ganhwa Seon Thought as a Principle of reconcilation of the Mental Crisis of Modern Man.

During the last few decades there have been enormous developments in science and technology which have practically changed the face of the earth. But in spite of the great achievements in science and technology, we find that there prevails a certain chaos and confusion at all levels ― individual, social, moral, religious, political, national and international. We find people going from bad to worse everyday. There is confusion and anarchy at all levels of human existence. In the face of these circumstances the need of the hour is the spiritual regeneration of human society.

Master Seong-cheol(1912-1993) was a mentor who lived with us in the same age. In the Seonmun- jeongro, he delivered the preaching of the middle path. From the viewpoint of Seong-cheol Seon, Sudden enlightenment-gradual cultivation is incomplete theory of Enlightenment. Nevertheless, it has been regarded as a guiding principle of Seon practice for last over 8 hundred years of Korean Seon.

Therefore Seong-cheol criticized the theory of Sudden enlightenment-gradual cultivation strongly, and expounded the true meaning of ultimate Enlightenment which can be attained only through Sudden enlightenment-sudden cultivation.

The meaning of Seong-cheol Seon in the history of Buddhism lies in the fact that he clarified the supreme principle of Buddhim is the Middle Path in his Dharma Teachings. The distinguishing points in His understanding of the Middle Path are as follows. First, according to him, the meaning of the Middle Path is blocking up of both sides of one's viewpoint, that is, giving up relative contradiction entirely. To get the great freedom of one's mind, one must leave from both sides of the practical world, and then one can reach a point where both the sides are illuminated totally. This world of the Middle Path is regarded as ' a realm without hindrance'.

Second, according to Master Seong-cheol, all beings of the world are empty. However, this does not mean that that they are nothingness. All beings are empty in the sense of the Middle path, that is, that are empty beyond the contradiction between affirmation and negation. It is because not only all living beings have Buddha-nature but also their own nature is empty that we can see Self-nature and realize nirvāna from saṃsāra by means of removing avidyā or fundamental ignorance.

Since Buddha resides in every home, your parents are Buddha. So serving your parents is a genuine Buddhist offering. Since Buddha lives on every str eet, the poor and the weak are Buddha. So serving them is a genuine offering.

Since Buddha is everywhere, we have an eternity of incalculable offerings to make. The joy of living can be found in serving and making offerings to all these countless Buddhas!

Serving Buddhas everywhere is the noble vow of all Buddhas and Bodhisattvas, and the very basis of Buddhism. So we should be eternally grateful to the Buddha Sākyamuni for teaching us this noble law, and we should lead a life full of genuine Buddhist offerings.

The Middle Path and Buddhist offering form the crux of his philosophy and represent the metaphysics and ethics he preached and practised. Hence I prefer to call Seong-cheol's philosophy metaphysical ethics.

 

 

 

 

Key Words : Master Seong-cheol, Ganhwa Seon, Sudden enlightenment-sudden cultivation, The Middle Path, Buddhist offering

 

 

 

 

 

 

 

 

[출처] 현대인의 정신적 위기 극복으로서의 성철(性徹)의 간화선 사상|작성자 만남 창조 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