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천하유아독존’의 참뜻
장영섭 기자 / 불교신문
- ‘본래부처’ 일깨우는 말…실존적 고독도 상징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 두루 알려졌다시피 부처님이 이 땅에 태어나자마자 외친 일성一聲이다. ‘이 세상에서 오직 나만이 홀로 존귀하다’는 뜻이다. 갓난아기가 말을 했을 리는 없으니, 후대의 각색일 확률이 매우 높다. 아울러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는 기독교의 세계관에서 보듯, 제자들은 교조敎祖인 부처님의 첫 한 마디에 불교의 핵심을 집약해 담고 싶었을 것이다.
사실 불교의 지고한 가치인 ‘본래부처’란 무엇인가를 일러주는 최상의 활구活句다. 한편으론 자못 오만한 어감 때문에 개그의 소재로 활용되기도 했다. 반면 제대로 이해하기만 하면 마음의 눈을 띄울 수 있는 말이기도 하다.
‘나’란 부처님 본인만이 아니라 개별자 전체를 아우른다. ‘일체중생一切衆生 실유불성悉有佛性’과 연결되는 맥락이다. 나아가 ‘모든 중생이 불성을 갖고 있다’는 말은, 각자의 생명은 그 자체로 부처이며 그저 존재함으로써 존귀하다는 논리라고 의역할 수 있다. 아울러 누구나 ‘천상천하유아독존’이므로, 바로 다음 구절인 ‘삼계개고아당안지三界皆苦我當安之(온 세상 모든 중생을 편안하게 해주겠다)’가 가능해진다. 지금 있는 모습 그대로 부처임을 자각하게 되면, 과거의 치욕과 현재의 절망과 미래의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세계평화의 첫걸음은 스스로에 대한 긍정이다.
덕숭총림 수덕사 방장 설정스님은 2010년 본지와의 부처님오신날 특집 인터뷰에서 “부처님의 자화자찬이라고 오해하면 곤란하다”며 천상천하유아독존의 참뜻을 설명했다. “모든 생명 각자가 스스로 존귀하다는 것을 깨우치라는 경책”이라며 “질투심과 열등감에 시달리며 스스로를 업신여기는 이들에게 전하는 격려”라고 말했다.
‘천상천하유아독존’의 당당함과 여유로움은, 훗날 중국 당나라 임제의현臨濟義玄 선사에 의해 무위진인無位眞人이란 개념으로 변주됐다. ‘자리 없는 참사람’이란 ‘자리에 집착하지 않는 사람’ 또는 ‘등급을 매길 수 없는 사람’이란 의미다. 신분과 환경에 개의치 않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으면 무위진인인 셈이다.
물론 ‘내가 존재한다’는 건 기쁨보다 슬픔일 경우가 훨씬 더 많다. ‘하늘 위 하늘 아래 나 홀로 우뚝 서 있다’라는 건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주어져 있는 조건, 곧 절대적인 고독이다.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으며 대신 죽어줄 수 없다. 혼자서 이끌어가야 하는 인생은 필연적으로 외롭고 고되며 혼란스럽다.
누군가 나의 아픔을 위로해줄 순 있어도 대속해주지는 못한다. 독존獨尊을 꿈꿀수록 독존獨存의 현실만 뚜렷해진다. 이웃과 마음을 나눈다지만 몸에 소속된 마음은 응당 각자의 몸을 위해 복무하게 마련이다.
부처님은 이러한 인간의 실존적 비극성을 뼈저리게 느끼던 분이다. “부처님이 돌아가시면 우리는 누구를 의지해 살아가야 하느냐”는 수제자 아난의 탄식에 “저마다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기를 믿으라”고 다독였다. 원래 부처님이 실제로 사용하던 언어인 빨리어 경전에는 등燈이 아니라 섬(島)으로 쓰였다고 전한다. 요컨대 이러니저러니 해도 우리는 한 개의 섬이며, 섬에 등불을 밝히고 그 불빛에 따라 자신의 길을 슬기롭고 강인하게 헤쳐가야 하는 숙명을 갖는다. 힘들고 괴롭다면, 그만큼 인생의 무게를 열심히 버텨내고 있다는 증거다. 더러워서 못 살겠다는 삶도, 그 더러움의 크기만큼 참된 것이다.
출처: 불교신문
[출처] ‘천상천하유아독존’의 참뜻|작성자 향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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