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과거칠불

수선님 2021. 1. 31. 13:07

깨달음의 상황 인식

누그든지 깨달으면 그를 일러 붓다라 한다면 과거와 현재는 물론 미래에도 무수한 붓다가 역사의 무대에 등장할 수 있다. 그래서 삼세제불(三世諸佛)이라 했던가. 특히 과거에 일곱 부처님이 있었다는 얘기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깨달음에 대한 확신을 갖게하는 구체적인 증거가 된다.

그런데 왜 10명이나 1천 명이 아니고 7명이라고 했을까. 너무나 많은 수를 끌어 데면 허무맹랑하기 때문에 그 역사적 실재성을 설득력있게 전달하기위한 배려일까? 아득한 옛날 7명의 부처님이 이 역사의 세계에 등장하여 중생을 교화했다고 경전에 나와 있고 『대당서역기』나 『고승법현전』에서 그들의 유적을 구체적으로 거론하고 있지만 사실 그것을 곧이 곧대로 믿기에는 우리는 너무나 합리적인 시대에 살고 있다. 아마도 과거 7명의 부처님은 『리그베다』에 등장하는 7명의 선인(仙人)에서 그 영향을 받은 듯하다. 그러나 과거칠불의 이야기가 신화적인 색채가 강하다고 하여 완전히 허구일 뿐 거기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특히 그 일곱 부처님 가운데 마지막으로 석가모니불이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가 2천 6백여전 인도 땅에서 깨달음을 몸소 보여준 산 증인이었다는 점에서, 붓다가 된다는 것이 결코 먼나라의 얘기가 아니라는 것을 웅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거기에는 유한한 한계 상황 속에서 깨달음을 촉구하는 실존적 의미가 담겨 있다. 왜 그런가?

과거칠불이 출현한 시기를 살펴보면 맨 처음 첫번째 부처님으로부터 차례대로 이어지면서 인간의 수명의 짧아지고 있다. 결국 맨 마지막의 석가모니불이 출현할 당시 인간의 평균 수명은 100세로 줄어드는데, 이는 시간을 단축해 가면서 압박해 들어오는 인간의 실존적 한계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요컨대 이 유한한 삶의 현장에서 게으르지 말고 깨달음의 길로 정진해야 한다는 절실한 상황 인식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생각된다.

과거칠불의 명칭과 의미

과거칠불의 명호와 그 삶의 궤적을 살펴보자.

첫째 비파시불(毘婆尸佛)이다. 산스크리트 명은 '보다', '분별하다'라는 뜻의 비파스(vipas)에서 파생된 비파신 붓다(Vipasyin Buddha)로 승관불(勝觀佛), 정관불(淨觀佛), 변견불(遍見佛), 종종견불(種種見佛)로 의역(意譯)된다. 모든 사태를 구석구석 잘 본다는 뜻이다. 팔정도에도 정견(正見)이라는 말이 있다. 옳게 보고 잘 볼 때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단순한 견(見)이 아니라 정견(正見) 내지 변견(遍見)이라 하고, 그런 의미에서 이치를 꿰뚫는 관(觀)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이 비파시불은 과거 91겁 전에 출현하였으며 이때의 인간의 수명은 8만 세(일설에는 8만4천 세라함)였다 한다.

둘째 시기불(尸棄佛)이다. 산스크리트 명은 시킨 붓다(Sikhin - Buddha)로 정계(頂계), 유계(有계), 지계(持계), 화수(火首), 최상(最上) 등으로 의역(意譯)된다. '시킨'이란 머리 정상에 상투를 틀고 있는 상태를 일컫는다. 부처님의 외형상의 특징을 거론하는 32상 중에 육계(肉계)라는 말이 있다. 바로 정수리의 살이 솟아나 상투 모양을 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킨다. 이는 바로 머리 중에 정상으로 최고의 경지를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 31겁에 출현하였으며 당시 인간의 평균 수명은 7만 세였다 한다.

셋째 비사부불(毘舍浮佛)이다. 산스크리트 명은 비슈바브 붓다(Visvabhu - Buddha)로 모든 곳에 존재하고 있는 부처님을 말한다. 그래서 변일체처자재(遍一切處自在),일체승(一切勝), 종종변현(種種變現), 변승(遍勝), 광생(廣生) 등으로 의역된다. 모든 곳에 자유롭게 출현하여 여러 가지로 몸을 변현시켜 중생을 제도한다는 뜻이다. 과거 31겁 중에 출현하였으며 이때 인간의 평균 수명은 6만세였다 한다.

넷째 구류손불(拘留孫佛)이다. 산스크리트 명은 쿠라쿠찬다 붓다(Krakucchanda -Buddha)로 영지(領持), 멸루(滅累), 소응단이단(所應斷已斷), 성취미묘(成就微妙) 등으로 의역된다. 번뇌와 여러 가지 삿된 견해, 그로 말미암는 잘못된 말장난이나 언어적 유희 등을 끊어 미묘한 경지를 성취했다는 뜻이다. 현재 현겁(賢劫) 천불(千佛) 중 첫번째 부처님으로 대략 400만 년전에 출현하였으며 당시 인간의 평균 수명은 4만 혹은 5만세 였다 한다.

다섯째 구나함모니불(拘那含牟尼佛)이다. 산스크리트 명은 카나카무니 붓다(Kanakamuni - Buddha)로 금선인(金仙人), 금색선(金色仙), 금유(金儒), 금적(金寂), 금적정(金寂靜) 등으로 의역된다. 카나카는 금(金)을 뜻하고, 무니는 존귀하신 분 또은 선인(仙人)을 일컫는 데서 그렇게 의역된 것이다. 이 부처님은 피색깔이 아주 진한 금색을 띠고 있는 귀하신 존자이므로 금색선인(金色仙人)이라고도 한다. 현재 현겁 천불중 재2불에 속하는데, 인간의 평군 수명 3만세 때 출현하여 깨달음을 얻고 중생을 제도했다고 한다.

여섯째 가섭불(迦葉佛)이다. 산스크리트 명으로 카샤파 붓다(Kasyapa- Buddha)로 음광불(飮光佛)로 의역된다. 현재 현겁 일천불 중 세번째 부처님이다. 인간의 평균 수명 2만 세일 때 출현한 부처님으로 이후 백년마다 수명이 한살씩 줄어 인간의 평균 수명이 백세 일 때 석가모니불이 출현한다. 그러니까 석가모니불이 2500년 전에 태어나셨으므로 역으로 환산하면 이 부처님은 지금부터 2만2천5백여 년전에 출현한 셈이다.

이 가섭불이 가부좌를 틀고 명상했던 자리가 우리 신라 땅에 전한다. 바로 황룡사지(皇龍寺址)에 있는 가섭불 명좌석(迦葉佛宴座石)이다. 이는 불교가 신라에 들어오기 이전 일곱 군대(前佛七處)의 가람(伽藍) 터중 하나로 지칭되는 곳으로 우리나라가 예로부터 부처님이 상주하고 계셨던 인연 있는 국토라는 신라 불국토설의 강력한 상징이다.

과거칠불과 수행자의 자세

이 과거칠불과 관련하여 수행자의 생활 자세를 일깨우는 중요한 경구가 있어 소개해 보련다. 『사분율비구계본(四分律比丘戒本)』에 나오는 얘기다.

인욕(忍辱)하는 일이 첫째가는 진리라고 부처님게서 설하였다. 비록 출가는 하였지만 남을 괴롭히면 사문이라 할 수 없다. - 첫번재 비바시불 -

눈 밝은 사람은 험악한 길을 피해 갈 수 있듯이 총명한 사람은 능히 모든 악을 멀리 쫓아보낸다. - 두번째 시기불 -

비방도 질투도 하지 말고 마땅히 계율을 받들어 행하라. 음식에 족할 줄 알고 항상 고요하고 한가함을 즐겨라. 마음이 반드시 정진하기를 좋아하면 이것이 곧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 세번째 비사부불 -

꿀벌이 꽃을 취할 때 빛과 향기는 건드리지 않고 다만 그 맛만 취해가듯 비구는 마을에 들어가서도 오로지 본분만 지킬 뿐, 다른 일에 신경쓰지 않는다. 다른 일이 어찌되었든 안중에 두지않고 다만 자신의 행동이 올바른지 그렇지 않은지를 살필 뿐이다. - 네번째 구류손불 -

마음에 게음름이 없어야 한다. 성스러운 법 부지런히 행하라. 이리하여 우수(憂愁)가 없었지면, 마침내 열반에 들리라. - 다섯번째 구나함 모니불 -

모든 악이란 악은 짓지 말고 모든 선은 받들어 행하라. 그 마음을 깨끗이 하면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여섯번째 가섭불 -

입으로는 말을 조심하고 항상 그 마음을 깨끗히 하며 몸으로 모든 악을 짓지 말라. 이 세 가지는 삼업(三業)의 도(道)를 청정히 함이다. 이와 같이 행할 수 있다면 이를 위대한 선인(仙人)의 도(道)라 하리라. - 일곱번째 석가모니불 -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구절은 '모든 악인란 악은 모두 멀리하고 모든 선을 받들어 행하라. 스스로 그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 그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다'(諸惡莫作 衆善奉行 自淨其意 是諸佛敎)라는 내용이다. 이를 과거 일곱 부처님의 공통된 계율이라 하여 칠불통계게(七佛通戒偈)라한다.옛부터 이 구절은 불교의 핵심을 간명하게 제시해 주고 있어 굉장히 중요시 해왔다. 그 하나의 일화를 소개해 보련다.

중국 당나라 시절 빽빽한 나무 가지 위에 앉아서 명상한다 하여 '새둥지'라는 뜻의 조과(鳥菓)로 잘 알려진 지도림(支道林) 선사가 있었다. 이 선사가 살던 지방에 당대의 유명한 지식인 백거이(白居易)가 고을 군수로 머물면서 그를 찾았다.

'나무에 자리를 틀고 앉아 있으니 얼마나 위험하오'

선사가 되받아친다.

'태수의 자리가 제 자리보다 훨씬 안좋습니다.'

'나는 이 지방 태수요. 여기에 뭐 위험한 것이 있겠오.'

선사가 말했다.

'하오면 태수도 스스로 모르시는 군요. 감정으로 불타고 마음이 불안하니, 그보다 더 위험한 일이 어디 있겠오'

그러자 백거이가 묻는다.

'어떤 것이 불법의 큰 뜻입니까'

'모든 악을 짓지 말고 모든 선을 받들어 행하며 자신의 마음을 청정히 하는 것,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오.'

백거이는 피식 웃는다.

'그것은 세 살 먹은 어린애도 아오.'

나무 위에 있던 선사가 점쟎게 일른다.

'세 살 먹은 아이도 알지 모르나 여든 된 노인도 그것을 실천하기란 어렵습니다.'

불교의 핵심은 실천에 있다고 하는 가르침이지만, 그 중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자기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 즉 '자기 성품의 본래 청정함에 대한 깨달음'이다. 자기의 본래적인 성품, 바로 그 깨긋한 마음 자리에 눈뜨는 것이 불교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시간은 화살처럼 흐른다. 어느덧 죽음의 문턱이다. 어디 이 마음 밝히는 일을 뒤로 미루어야 하겠는가. 이렇게 찰라적으로 생멸하는 한계 상황에서 과거칠불의 의미는 깨달음이 저 세상의 얘기가 아닌 우리가 부둥켜 안고 가야 할 과제로서 제시된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부처님으로 다가온다.

 

 

 

 

 

 

[출처] 과거칠불|작성자 임기영불교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