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 반야심경

아상(我相)·인상(人相)·중생상(衆生相)·수자상(壽者相)의 의미

수선님 2021. 2. 28. 11:13

부처님의 팔만사천 법문 중 금강경(金剛經)은 많은 불제자들에게 감명을 주고 있으며 핵심사상인 아상(我相)·인상(人相)·중생상(衆生相)·수자상(壽者相)의 올바른 이해와 수행은 반드시 지켜야 할 덕목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러한 네 가지 ‘상(相)’에 대하여 큰스님들의 말씀과 경전 해석 전문가들의 수많은 해석이 있습니다. 저 또한 법문강의와 경전공부를 하면서 다양한 의견들을 수집하여 나름대로 정리를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재가불자의 입장에서 부처님 교학사상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려운 내용이지만 반드시 이해해야만 하는 내용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관련하여 각묵스님의 금강경 역해, 선재불원의 김경현님의 법문, 인터넷 자료 및 아미산(이덕호)님의 글을 참조하였으며 감사를 드립니다.

지난주에 세 가지 ‘상(相)’인 samjna(산냐), laksana(락사나), nimitta(니미타)는 상황에 따른 ‘상(相)’의 다른 모습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더욱이 부처님의 말씀을 중국어로 번역한 구마라집 스님과 현장 스님의 번역내용이 상이함을 알 수 있었습니다.

또한 세 가지 ‘상(相)’과 관련하여 아상(我相)·인상(人相)·중생상(衆生相)·수자상(壽者相)이 ‘samjna(산냐)’라는 말 속에 나타나고 부처님께서 중생들에게 잘못된 사상을 가르치던 육사외도들을 지적하시면서 말씀해 주신 것으로 이해하였습니다.

선재불원의 김경현님은 네가지 상을 아상을 자기중심적 사고, 인상을 사람 중심적 사고, 중생상을 동물 중심적 사고, 수자상을 생명 중심적 사고로 잘못된 이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는 보는 견해에 따라 다르다는 생각입니다. 네 가지 ‘상(相)’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보겠습니다.

(1) 아상(我相 atman samjna)

아상이란 고대 인도의 브라만교에서 주장한 영원불멸의 존재인 ‘아트만(atman)’에 근거한 견해로서 ‘나(我)’ 혹은 ‘자아(自我)’라는 생각을 말합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에 이르러보니 우주안의 모든 사물은 성주괴공(成住壞空)하고, 생각은 생주이멸((生住離滅)한다고 하셨으며 따라서 이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것은 결국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으며 이는 제법무아(諸法無我)라는 것입니다.

부처님 당시 인도는 브라만교가 지배하면서 자아를 브라흐만 신에게 종속시키는 범아일여(凡我一如)의 신 중심 사회(神中心社會)로서 인간이 신의 노예로 전락해 있었으나

부처님께서는 인연의 법칙에 의해 아트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무아(無我)의 진리를 말씀하시면서 아상에서 벗어나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아상이란 오온(五蘊)을 “나, 나의 것, 자아”라는 상을 가지고 집착하는 것이며, 모든 괴로움이란 한 마디로 바로 오취온고(五取蘊苦)이기 때문입니다.

중생은 내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는 아상을 가지고 있으며 내가 있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 상대방이 생겨나고 그로부터 모든 만물이 생겨나 이 현상계가 만들어지게 되므로 다른 상(相)들도 모두 이 아상으로 인해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즉, 인상, 수자상, 중생상은 아상의 다른 표현일뿐이며 4상이 각기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이며 그 하나가 바로 아상(我相)이라는 것입니다.

(2) 인상(人相, 개아/個我, pudgala samjna)

부처님께서는 바라문들이 윤회의 주체라고 한 아트만(atman)을 현실적으로 경험이 불가능한 가공의 망상이라고 부정했습니다. 그러나 부파불교 시대에 와서는 윤회에 있어서 중심적 주체가 없다는 점을 혼란스럽게 여겨 불멸 후 300년 경 부파불교의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에서 독립한 독자부(犢子部)에서는 생사윤회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윤회하는 개개 존재의 인격주체로 뿌드갈라(pudgala)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했으며 이는 변하지 않는 자아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뿌드갈라란 중생에게 무너지지 않고 없어지지 않는 어떤 실체가 ‘개체적으로 존재한다는 견해’로서, 나고 죽음을 영원히 반복하더라도 이 실체는 영원히 존재한다는 주장으로 이 뿌드갈라를 구마라집 스님은 인(人)으로 옮겼고 현장스님은 보특가라(補特伽羅)로 음사하였습니다.

(3) 중생상(衆生相, sattva samjna)

sattva란 넓게는 ‘존재하는 모든 것’ 혹은 ‘살아있는 모든 것’을 나타내는 말로서 불교에서는 깨달음을 성취하지 못한 모든 생명체를 의미하며 이것을 구마라집 스님은 중생(衆生)으로 현장스님은 유정(有情)으로 번역하였습니다. 이 중생상은 깨닫지 못한 중생들이 가지는 본능적 집착을 일컫는데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첫째, 괴로운 것을 싫어하고 재미있고 좋은 것만 탐내는 등 이기적인 행동이나 상념의 집착으로 나타나므로 좋은 것은 자기 것으로 하고 나쁜 것은 남에게로 돌리려 하며

둘째, 천당과 지옥이 따로 있다고 생각해서 천당에 태어나기를 바라는 욕심으로 별다른 수행도 없이 고(苦)가 없는 천계(天界)에 태어나고자 하는 욕심입니다. 기복불교(祈福佛敎)도 중생상의 모습입니다.

셋째, 약한 사람을 억누르고 강한 사람에게 빌붙는 약육강식도 중생상이고, 자기의 일에 지나친 욕심을 갖고 남을 이기기 위해 투쟁하는 것도 중생상이며

넷째, 자신의 몸이 오온(五蘊)이 화합해 이루어진 참된 실체라고 고집하는 잘못된 견해를 가지므로 살아있는 생명체와 생명이 없는 자, 유정과 무정을 나누는 이원론적 집착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다섯째, 나는 중생이니까 부처님과 같이 해탈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중생들이 가지고 있는 자기 비하적인 견해와 불도를 닦는다고 해도 부처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 없는 것 이것이 중생상입니다. 그러나 모든 중생들은 그 자체에 불성을 가지고 있어 누구라도 수행을 통해 불성을 닦으면 성불할 수 있습니다.

(4) 수자상(壽者相, jiva samjna)

수자상의 원어인 jiva는 영혼, 목숨, 생명이라는 말입니다. 부처님 당시 자이나교에서 주장한 생사를 초월한 존재 또는 영원불멸의 ‘순수영혼’이 있다는 견해로서, 구마라집스님은 수(壽)로 현장스님은 명(命)으로 번역하였습니다.

오온(五蘊)은 모두가 실체가 없어 한시도 머물지 못하는 무상한 존재인데, 이를 바로 알지 못하고 그 속에 영생불멸의 윤회하는 주체로서 순수영혼이 있어서 오온은 사라져도 이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여기는 그릇 된 착각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와 같은 자이나교의 ‘순수영혼설’을 반박하면서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인연에 따라 일시적으로 생겨났다 사라지는 허깨비에 불과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제행무상(諸行無常)으로 생사를 초월하고 시간을 초월한 순수영혼이 실체로서 존재한다는 상에서 벗어날 것을 가르쳤습니다. 종전에는 이 수자상을 ‘목숨’으로 이해해서 오래 살려고 하는 욕심이라 해석 했지만 현재는 자이나교의 ‘순수영혼’의 존재설에 대한 반대의견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나무석가모니불

德修合掌

 

 

 

 

 

 

 

 

[출처] 아상(我相)·인상(人相)·중생상(衆生相)·수자상(壽者相)의 의미|작성자 vesp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