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 성립과 구성
1.머리말
2. 금강경의 성립 1) 금강경의 명칭 2) 금강경의 성립시기 3. 금강경의 구성 1)무착보살의 18住處說 2)세친보살의 27擬斷說 3)소명태자의 32分說
4.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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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머리말
《대반열반경》에 의하면 “붓다 입멸 후 교단은 누구에게 의지해야 할 것인가.” 하는 아난다의 질문에 대해 “부처는 교단의 통솔자가 아니며, 교단 또한 나에게 의지해서는 안 된다. 그대들은 오로지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기 자신을 귀의처로 삼아라. 법을 등불로 삼고, 법을 귀의처로 삼아라.”는 유언을 남기고 있다. 생사의 괴로움을 벗어나 열반에 드는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이며, 부처님 역시 법을 깨달아 여래가 되었다.
이렇듯 부처님은 입멸하시는 순간까지도 정법에 의지한 실천수행을 강조했지만, 부파불교시대에 이르러 교리의 분석과 체계화에 골몰하면서 실천수행을 등한시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실천수행을 중심으로 불교의 정체성을 회복하자는 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그들은 스스로를 대승(Mahayana, 大乘)이라고 부르며, 공사상(sunya, 空)과 육바라밀을 토대로 하는 보살사상을 강조했다. 이러한 초기 대승불교의 사상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것이 바로 금강경이다.
지금부터 이 대승경전을 대표하는 금강경의 성립과 그 구성에 대해서 개괄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2. 금강경의 성립
1) 금강경의 명칭
금강경으로 알려진 경전의 원래 이름은 《Ariya vajracchedika prajnaparamita mahayana sutra》로써 한문으로 《능단금강반야바라밀경能斷金剛般若波羅蜜經》(현장 역), 《金剛般若波羅蜜經》(구마라집 역)이고, 우리나라에서는 줄여서 《金剛經》이라고 하며, 영어로는 《Diamond sutra》라고 한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성스러운 지혜를 완성하여 금강석처럼 번뇌를 자르는 경》이다.
불교에서는 지혜를 날카로운 칼에 비유하는데, 금강반야라는 명칭은 금강석과 같은 지혜의 힘으로 번뇌를 남김없이 제거할 수 있다는 데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런데 금강경의 명칭이 부처님께서 보리수 아래서 성도하실 때, 길상초아래 깔고 앉으셨던 금강보좌(金剛寶座)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불멸이후 정체성을 상실하고 폐쇄적인 출가자집단으로 퇴색하는 승단의 흐름을 바로잡고, 자리이타의 실천수행을 강조하는 대승불교운동이 일어났는데, 이러한 사상을 금강경에서 담아내고 있다. 즉, 불교근본정신으로 돌아가자는 상징적 비유로 금강보좌에서 이 경의 이름을 따왔다는 것이다.
2) 금강경의 성립시기
천태교판에 의하면 부처님께서 21일간 화엄경을 설하셨고, 이후 12년간 아함경을, 8년간 방등경을, 그 다음 21년간을 반야경을 설하시고, 입멸하시기 전 8년간은 법화열반경을 설하셨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방대한 불교경전을 사상에 따라 분류하여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일 뿐이며, 실제 불교사적으로 금강경의 성립 시기는 다음과 같다.
① 금강경의 반야부 초기 경전설
금강경은 대승경전 최초시기에 성립된 가장 순수하고 대표적인 경전으로, 다음은 근거로 성립시기를 대략 C.E.150~200년경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첫째, 공사상을 설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공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둘째, 소승과 비교되는 대승의 모습이 명확하지 않다. 단지 ‘믿음이 열등한 뭇 삶들’ 또는 '보살이 되기로 맹세하지 않은 자' 등에 관해서 언급할 뿐 구체적으로 소승이라는 말이 보이지 않는다. 대승에 대해서도 단지 '최상승(最上乘, agayana)', '최승승(最勝乘, mahayna)' 또는 '보살승(菩薩乘, bodhisattvayana)' 이란 말을 보일 뿐 소승과 대승이란 개념이 정립되기 이전에 성립한 경전임을 알 수 있다.
셋째, 경전의 형식이 극히 간소하다. 보통 대승경전에서 부처님께서 설법하실 때에 모인 대중에 관해 상세히 묘사하는 것이 일반이지만 금강경에서는 간략하게 설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초기경전의 구조와 동일하며 이런 점에서 금강경은 대승사상이 정형화되어 고정되기 이전의 청신하고도 생명력이 넘치는 초기대승의 경전임을 알 수 있다.
넷째, 대승불교 특유의 술어가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법신(法身, dharmakaya)'이란 단어는 보이지만 ‘법을 신체로 하는’ 이란 의미를 지닐 뿐 법신불을 의미하지 않는다. 또한 원(願)이란 용어도 없으며 대승불교에서 일반화된 육바라밀을 체계적으로 언급하지 않다
② 금강경의 반야부 후기 경전설
한편 금강경이 대승불교 후기에 성립되었다는 설도 있다. 무착보살이나 세친보살의 정교한 철학적인 주석을 통해, 금강경이 대승사상을 정교하게 전개하는 것으로 보아 반야사상이 어느 정도 정리되었을 때 그것을 대중이 읽기 쉬운 말로 요약해서 만들어졌다고 보고 있다.
사실 금강경에 공(空)이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초기 경전으로 보는데, 집착을 부수기 위한 공에 다시 집착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에, 일부러 공을 거론하지 않고 공사상을 전개했다고 주장한다.
③ 금강경의 반야부 중기 경전설
금강경이 최초로 한역된 것은 402년 구마라집(鳩摩羅什, Kumarajiva, 344~413)에 의해서다. 한역된 경전의 경우 그 경의 한역되기 100년 전에 성립되었다고 보는 것이 통례이다. 그리고 용수(龍樹, Nāgārjuna 150?~250?)의 저작에는 금강경의 내용이 언급되고 있지 않는 점을 미루어보아 대략 C.E. 250~302년경으로 추정할 수도 있다. 특히 ‘후 500세’라는 문구가 대승불교 중기에 성립되었다는 주장에 무게를 실어준다.
3. 금강경의 구성
천태교판에 따르면 반야부의 모든 경전을 말씀하신 기간은 21년이며, 장소는 네 곳이고, 법회를 연 횟수는 16회라고 한다. 첫째 왕사성 영취산에서 7회, 둘째 급고독원에서 7회, 셋째 타화자재천 마니보장전에서 1회, 넷째 왕사성 죽림원 백로지축에서 1회이다. 이렇게 반야부를 총망라한 600권 대반야경 가운데, 금강경은 제 2처, 제 9회, 제 577권에 해당한다.
금강경은 여섯 번에 걸쳐 한역되었는데, 그 중에 구마라집의 번역본이 가장 널리 유포되고 있다. 금강경은 상권(1분~16분), 하권(17분~32분)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승조는 전반은 중생공(重生空), 후반은 법공(法空)을 설했다고 했다. 또 천태지의(天台智顗, 538∼597)와 길장(吉藏, 549~623)은 중설중설(重說重說)이라고 하여 전반은 이근(利根) 후반은 둔근(鈍根)을 위하여 설한 것으로 보았다.
그 후 350년경 북인도의 무착(無着, Asaṅga, 300?~390)이 금강경을 해석하기 위해 일광정(日光定)에 들어 도솔천 미륵보살로부터 받은 금강경 대의(大義)에 따라 《무착론》2권을 지으면서 18주처로 분과했다. 그의 동생인 세친(世親, Vasubandhu, 320?~400?)은 《천친론》3권을 지으면 27의단으로 분과하였는데, 그 후 양무제의 장자인 소명태자(昭明太子, 561~631)는 이를 32분하여 지금에 전한다.
1) 무착의 18주처설(住處說)
무착보살은 《금강반야론金剛般若論》에서 금강경 전체를 7종 의구로 파악하고, 세 번째 행소주처의구(行所住處義句)에서는 금강경에 등장하는 화제를 18단계로 구분했다. 18주처는 근기가 성숙하여 짐에 따라서 각 단계가 점점 상승되는 보살의 수행단계를 나타낸 것이며 다음과 같다.
①발심주처(發心住處)
②바라밀상응행주처(波羅蜜相應行住處)
③욕득색신주처(欲得色身住處)
④욕득법신주처(欲得法身住處)
⑤어수도득승중무만주처(於修道得勝中無慢住處)
⑥불리불출시주처(不離佛出時住處)
⑦원정불토주처(願淨佛土住處)
⑧성숙중생주처(成熟衆生住處)
⑨원리수순외론산란주처(遠離隨順外論散亂住處)
⑩색급중생신박취중관파상응행주처
(色及衆生身搏取中觀破相應行住處)
⑪공양급시여래주처(供養級侍如來住處)
⑫원리이양급피핍열뇌고불기정진급퇴실등주처
(遠離利養及疲乏熱惱故不起精進及退失等住處)
⑬인고주처(忍苦住處)
⑭이적정미주처(離寂靜味住處)
⑮어증도시원리희동주처(於證道時遠離喜動住處)
⑯구교수주처(求敎授住處)
⑰증도주처(證道住處)
⑱상구불지주처(上求佛地住處)
2) 세친의 27의단설(擬斷說)
세친은 금강경에서 전체적인 문답으로 수보리의 네 가지 질문이 등장한다고 보았다. 첫째는 어떻게 발보리심을 해야 하는가[云何發心]. 둘째는 어떻게 본래의 청정심을 유지해야 하는가[應云何住]. 셋째는 어떻게 수행을 해야 하는가[云何修行]. 넷째는 어떻게 번뇌심을 다스려야 하는가[云何降伏心] 이다. 세친은 이 네 가지 질문에 대하여 구체적인 내용으로 27가지 의문을 제시하고, 그 의문을 해결해주는 것으로 분과하는데, 이것이 세친의 27단의(斷疑)이다.
몇 가지만 살펴보면 제2단 인과구심무신의(因果俱心無信疑)에서는 ‘인과가 깊은 데도 이러한 말을 믿을 사람이 있을까?’ 하는 의심에 대해 500년이 지난 후세에도 이 말을 듣는 자는 참다운 믿음을 낼 것이라고 하여 의심을 끊어준다. 제27단 입적여하설법의(入寂如何說法疑)에서는 ‘부처님께서 적멸(寂滅)에 들어 어떻게 법을 설하실까?’ 라는 의심에 대하여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의 사구게로써 그 답을 말해주고 있다.
3) 소명태자의 32분설(分說)
중국 남조시대의 양무제(梁武帝, 464~549)의 아들 소명태자는 이 경전의 내용을 32부분으로 나누고 32분 각 내용을 개관하여 다섯 글자로 응축한 제목을 덧붙였다.
예를 들어 아상(我相)·인상(人相)·중생상(衆生相)·수자상(壽者相)을 떠나 일체중생을 제도하여 중생을 제도했다는 관념조차 없어야 한다는 3분의 제목을 대승정종분(大乘正宗分)이라 이름하였다.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를 행하라는 4분의 제목은 묘행무주분(妙行無住分)이라 이름 붙였다. 이렇듯 적절한 분단(分段)과 제명(題銘)으로 소명태자의 32분과는 오늘날까지 가장 보편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4. 맺음말
지금까지 금강경의 성립과 구성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금강경은 대한불교조계종의 소의경전일 뿐만 아니라, 모든 불자들이 수지 독송하는 반야심경과 함께 가장 널리 알려진 경전이다.
금강경이 존재의 실상인 공(空)에 대한 가르침이다. 육조혜능대사는 출가하기 전 금강경의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의 구절을 듣고 발심하셨고, 항상 곁에 두고 읽으시면서 제자들에게도 이 경을 널리 의지하라고 가르치셨다. 우리나라에서는 보조국사가 대중으로 하여금 수지 독송을 권하였고, 진각국사가 《금강경찬》을 짓고, 〈야부송(冶夫頌)〉을 널리 알렸으며, 승가대학의 필수과목으로 이어져 왔다. 그만큼 귀중한 경전임에도 불구하고, 금강경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물론 금강경에 대한 이론적 접근이 금강경에 담긴 사상을 체득하는 데는 불필요한 작업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리로 먼저 이해하는 오늘날 불자들에게는 성립과 구성에 대한 이해가 금강경의 대의에 다가가기 위한 첫 단추를 여는 작업이리라 믿는다. 언젠가 금강경의 크나큰 사상이 출가수행자 뿐만 아니라 재가자들의 삶과 사상 속에 스며들기를 고대하며 짧은 소고를 마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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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서적
금강경 간정기. 성문출판사 편집부 저. 연관 역, 선우도량, 1996
금강경(번개처럼 짜르는 지혜의 완성), 한국빠알리성전협회, 2003
금강반야바라밀경 강의, 圓瑛선사 저, 박병규 역, 연지해회 서유출판사, 2009
불교사상의 이해, 불교교재 편찬위원회,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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