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나라 때의 승찬대사는 언제 어디에서 출생하여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자세한 기록이 없다. 그가 스승인 혜가대사를 만나 법을 잇게 되었다는 기록만이 역대법보기에 남아 있다.초기선종의 제2조인 혜가가 성안현 현감인택중간에 의해 사형집행을 받고 죽기 이전에 승찬이 혜가로부터 법을 이었다는 아주 간단한 기록만이 역대법보기에 남아 있다.달마대사가 536년 경에 세상을 떴으니 6세기 말기의 인물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승찬선사가 스승인 혜가선사를 만났을 때 건강이 좋지 못했다. 중풍에 걸린 부실한 몸으로 대중 가운데 섞여 고요한 묵상을 하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본 혜가는 대뜸 그가 범상한 인물이 아니라는것을 한 눈에 알아 보았다.혜가선사는 그에게 물었다."어디에서 왔는가"그가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아 혜가는 다시 물었다."나에게 무슨 용무가 있는가."승찬은 그제서야 혜가를 향해 입을 열었다."스님께 사사하고 싶습니다."혜가가 다시 물었다."그대같은 중풍 환자가 나를 만난다고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승찬이 말했다."몸은 비록 허물어 졌을지라도 이 마음만은 스님의 마음과 다름이 없습니다."혜가선사는 승찬선사의 사람됨을 한 눈에 알아보고 그를 가르쳐 달마의 밀지를 전하기로 작정했다.혜가는 선대인 달마대사가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독약에 의해 생명을 잃게된 일을 한시도 망각할 수 없었다. 동시에 새로움이 아무리 존귀한 가치를 갖고 있다고 해도 그 새로움을 용납받게 되기까지 대단히 위태로운 처지에 놓이게 된다는 것도 잊지 않았다. 혜가는 선대의 죽음을 보고 자기자신의 운명도 결코 평탄하지 못 할 것이라는 것을 예감하고 있었다.자신의 신상에 늘 위험이 따른 것처럼 승찬에게 달마의 법을 전승한다면 승찬도 역시 위험에 직면하게 될 것임을 예측했다. 승찬에게 법을 전수한 혜가는 자신의 예감에 맞게 목숨을 잃고 말았다. 새로운 불교의 선법(禪法)을 위하여 목숨을 잃은 선대 선사들은 목숨을 잃는 순간에도 - 초조인 달마선사와 2조인 혜가선사가 모두 법을 위하여 생명을 잃게 되었다 - 자신의 신념을 꺾지 않고 백척간두에서 진일보하라는 말을 외쳤다.혜가선사는 승찬선사에게 말했다."그대는 앞으로 어디를 가더라도 몸을 조심하게. 나의 신상에 항상 위험이 따르고 있다면 앞으로 자네의 신변에도 위험이 따를 것일세.그대는 되도록 나의 일에 말려들지 말고 멀리로 피신을 하는 것이 좋을 것일세."혜가선사의 부축을 받은 승찬선사는 거리에나가 미치광이 짓을 여러 날 계속하다가 어느날 불현듯 자취를 감추었다. 서주에 있는 사공산(思空山)에 몸을 묻었다. 사공산에서도 오래 있을 수 없어서 다시 완공산으로 피신했다. 주(周)무제(武帝)의 폐불 횡포를 피해 완공산에 몸을 묻고 10년 동안 칩거했다.완공산은 워낙 산세가 험준하여 사람이 살 수 없었다. 인적이 끊긴 악산인지라 맹수들이 들끓었다. 인근에 사는 주민들이 맹수들에게 살상을 당하는 일이 잦았다. 승찬선사가 완공산에 온 이후로는 맹수들도 찬선사를 알아보고 다른 산으로 떠나갔다.찬선사는 선대인 혜가선사로부터 법을 물려 받은 후 완공산에서 선수(禪修)에 전력하여 자증성지(自證聖智)를 더욱 공고히 했다. 찬선사가 혜가선사로부터 선가의 비법을 전수받고 완공산에 묻혀 그의 자증성지를 더욱 공고히 한다는 소문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달마의 정법은 이입(理入)과 사행(四行)을 견고하게 지켜나가는 것을 말한다. 사행 중에서도 법대로 사는 삶을 가장 수승하게 여긴다.법대로 살기 위하여 정법을 사수하려는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목숨을 잃게 되는 연유는 무엇일까. 왜 법대로 살려는 사람을 헤치게 되는 것일까. 그것은 정법이 무섭기 때문이다. 법대로 살 수 없는 사람은 법대로 사는 사람을 가장 두려워한다. 자기에게 두려움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법대로 사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그를 헤치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난세에서는 법대로 살려는 신념을 가진 사람들은 깊은 산 속에 몸을 묻는 것이다. 아무리 깊은 산속에 깊이 몸을 묻어도 정법을 지키는 사람은 주머니 속에 든 송곳처럼 들어나기 마련이다.송곳같은 기개와 신념을 가진 몇몇 안되는 정법학자(正法學者)에 의해서 정법의 맥락은 끊이지 않고 면면히 이어져 내려간다. 그래서 선가의 혜맥(慧脈)은 끊이지 않고 이어져 왔다.자신의 목숨을 걸고 정법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전등(傳燈)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다. 어두운 암흑 세계를 밝힐 수 있는 빛의 씨앗을 꺼뜨리지 않고 면면히 이어 나왔다는 뜻이다.하나의 이념, 하나의 신념, 하나의 정신이 변질되거나 왜곡되지 않고 1400년 동안 면면히 이어져 내려 왔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어떻든 승찬선사의 높은 도성(道聲)은 제방에 널리 알려졌다. 여러 사람들이 찬선사를 설명했다. "달마조사가 법통을 전승해준 이래로 승찬선사처럼 신비롭고 찬란하게 빛을 일으키는 보주(寶珠)는 없다. 선정과 지혜가 평등하게 작용하는지라 그가 갖는 깊은 생각은 누구도 범접할 수 없이 높다."승찬선사는 법난이 잠잠해진 다음 여러 선사들과 함께 나부산(광동성 전백현과 박라현 경계에 있는 산인데 예로부터 도교의 영지로 이름이 높다)으로 돌아가 몸을 감추고 3년 동안 다시 칩거했다.문제(文帝)가 수(隋)를 세우고(581년)난 20년후 인수(仁壽) 초년(601년) 대회제(大會齊)가 열렸다. 문제는 13개 주에 명하여 사리친견법회를 열었다.승찬선사는 처음으로 산에서 밖으로 나왔다. 그의 눈빛은 형형했으며 기상도 역시 대단했다. 대중 앞에 우뚝 서서 처음으로 사자후를 터뜨렸다."여기 있는 것은 유일무이한 진실일 뿐 제2도 없고 제3도 없다. 따라서 깨달음의 경지는 거기에 숨겨져 있고, 언어 표현이 미치지 못한다. 진리의 주체는 망망하고 고요하여 듣고 볼 수 없음을 알게 된다. 글자와 말은 소용없는 사설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찬선사는 다시 말했다."나는 당장에 먹고 싶다."제자들이 음식을 바쳤다. 음식을 먹고난 찬선사는 목청을 가라앉혀 말했다."세상사람들은 모두 좌선에 든채로 죽는 것을 우러러 보고 훌륭하다고 말한다. 그대들은 앉은 채 죽는 것을 기이하게 여길 것이나 나만은 생사를 자유자재로 한다. 나는 이제 선채로 죽으려 한다. 나는 생사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찬선사는 말을 마친 후 한쪽 손으로 회의장 앞의 나무 가지를 잡고 조용히 선 채로 숨을 그쳤다.그는 누에고치 속에 갇혀 있던 벌레가 자기를 속박하던 두터운 껍질을 벗고 선탈(蟬脫)을 단행하여 드높은 창공을 향해 날아오르듯, 나무 가지 하나를 손으로 잡은채 조용히 자신의 빈 껍질을 떠나 멀리로 날아올랐다.찬선사의 나이는 얼마나 되었을까.찬선사의 탑묘는 완산사의 옆에 있다. 설도형이 비문을 지었다.승찬선사는 여러 제자중에서 도신에게 법을 전했다. 승찬선사는 말도 하지 않고 글도 쓰지 않았지만 그의 법을 이은 도신선사는 그렇지 않았다.북주(北周)가 망하고 수나라가 세워진 해가 581년이요, 수나라가 망하고 당나라가 선 해가 618년이다. 승찬선사는 정치적으로 가장 혼란한 시기에 태어난 인물로서 정법안장을 지키고자 극심한 고초를 겪지 않을 수 없었다.그렇지만 찬선사는 여러 가지로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정법을 굳굳하게 지켜나갔다. 초조인 달마대사와 2조인 혜가대사가 외부의 힘에 의해 목숨을 잃은 반면에 찬선사만은 자기의 임의로 두 발을 땅에 딛고 우뚝 선 채 스스로 선탈을 결행했다는 것은 후일 선종(禪宗)의 앞날을 예측 할 수 있게 한다. 도신과 홍인을 통해 달마의 선맥이 이어져 나가지만 혜능 이후로부터는 그 맥락이 사실상 단절되는 위기를 맞게 된다. 혜능을 끝으로 하여 달마의 의발이 전승되지 않는다는 것은 혜능의 다음 대에 이르러서는 초기선종의 종지가 굴절되게 되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선의 세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망언망념<忘言忘念> 무득정관<無得正觀>’ 종지 전승 (0) | 2021.03.28 |
---|---|
깨달음의 거울 (0) | 2021.03.14 |
혜가대사 (0) | 2021.02.28 |
한국불교에의 선의 유입과 구산산문 (0) | 2021.02.12 |
마른 똥막대기(乾尿厥) (0) | 2021.01.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