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가(慧可)는 달마의 법을 이은 대선지식이다.
승가(僧可)라는 이름으로도 불리워졌던 혜가는 시경(詩經)과 역경(易經)에 깊은 조예를 가진 인물이었다.
혜가는 달마대사를 만나게 됨으로써 그의 관점을 진제제일의(眞締第一義)로 고정시킬 수 있었으며 헤맴(방황)을 극복하고 오직 진제(眞締)를 깨닫기 위해 일생을 도에 기울였다.
혜가대사가 달마대사를 만나게 된 연유는 두 가지로 설명된다. 그가 14세때 숭산 낙양 지방을 유행하던 달마대사와 해후를 했다는 일설이 있으며 다른 설은 그의 나이 40세때 달마대사를 만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매우 수상한 사람으로 고발된 혜가가 나라(秦)의 칙령을 받은 성안현(城安縣) 현감택충간의 명으로 처형을 당했을 당시의 나이가 107세라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40세 때 달마대사를 만나게 되었다는 설이 신빙성이 있다.
북제의 제2조 혜가는 속성이 희(姬)씨이며 무뢰(武牢)사람이다. '속고승전'은 호뢰(虎牢)로 적었지만 무뢰(하남성 형양군 사수현 서부)가 옳다. '남종정시비론'에 따르면 신광(神光)으로 알려져 있다.
혜가는 40세 때 달마대사를 만나 6년 동안 사사를 받고 진제(眞諦)에 눈을 떴다.
그가 달마대사를 처음으로 찾아왔을 때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면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문밖에 오래도록 서 있자 허리까지 눈이 쌓였다. 그러나 혜가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무릇 법을 탐구하려면 몸을 아껴서는 안된다."
혜가는 법을 얻을 결심에서 한 쪽 팔뚝을 자르자, 흰 젖이 흘러나왔다. 달마대사는 혜가의 법을 얻으려는 결심이 대단함을 알고 무언의 맹세를 허락했다. 달마는 혜가에게 남몰래 한 벌의 가사를 건네주었다. 달마의 곁에는 이미 도육이나 총지와 같은 제자들이 있었던 모양이다.
달마는 한 벌의 가사를 혜가에게 건네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것 때문에 독약을 먹었다. 그대도 이와 같은 일을 피하지 못하리라. 실수 없도록 조심하기 바란다."
혜가는 가사를 받고 난 다음 달마에게 물었다.
"스승의 이 법은 이제까지 누구 누구가 전승해 나왔으며 누가 스승께 법을 상속해주었는지 말씀해 주십시요."
"자세한 것은 선경(禪經)에 씌어 있다."
"서국에서 누구를 후계자로 삼으셨습니까."
"서국 사람은 성실하고 거짓이 없다. 후계자는 반야바라밀다라(般若波羅蜜多羅)지만 가사를 전승해주지 않았다. 당나라 사람은 대승 소질이 있지만 도를 잡았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거짓으로 말하기 때문에 가사를 전승함으로써 도의 증거를 삼는다."
혜가는 달마로부터 도를 이어받은 후 40년 동안 완산 낙주 상주에 몸을 감춘 뒤, 인연이 있는 많은 사람들을 교화했다. 출가자는 물론이요 재가자도 수없이 많았다.
<정신을 구성하는 다섯 가지 요소를 불태워>
능가경( 楞伽經 )에서는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성자(부처님)는 고요한 마음으로 내성함으로써 만들어져 있는 두두물물로부터 멀리 벗어난다. 그것을 집착되지 않는 도라고 부르며 현세도 내세도 항상 청정하다. 사방 팔방의 많은 부처님 가운데서 어느 한 분이라도 좌선법에 의하지 않고 깨달음을 실현할 수 있었을 것이란 생각은 있을 수 없다.
깨달음에 이르는 열 단계를 언급한 10지경(地經)에서도 말한다.
"사람의 몸 속에 다이아몬드 같은 부처님의 법체가 간직 돼있다. 부처님의 법체는 태양처럼 그 자체가 밝고 완전하여 한량 없이 크고 넓다. 그렇지만 이 부처님의 법체(본질적 요소)를 우리들의 정신을 구성하는 다섯 가지 요소(오은)가 그것을 덮어 감추고 있기 때문에 깨닫지 못한다. 겹쳐진 구름처럼 실체를 갖지 못한 다섯 가지 요소(오은)는 지혜의 폭풍이 불어 닥치면 구름같이 흩날려 자취를 감출 것이다. 그렇게 되면 부처님의 본성(과정적 실체)은 완전하게 빛날 것이며 불꽃처럼 깨끗해진다."
화엄경에서도 불성(우주의 미분화된 심미적 연속성)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한없이 광대 무변한 세계와도 같고 끝없는 허공과도 같다."
일체 중생의 청정한 본질(우주의 미분화된 심미적 연속성과 자연에 내재하는 만물 조화의 창조적 율동의 작용에 의한 순수우연의 창발성)은 불래불거하고 불생불멸하는 것이다. 사물을 상대적으로 인식하고 멋대로 대상화하는 상념과 억측과 욕망이라는 겹쳐져 있는 구름에 가려져 있다는 것만으로 신성한 절대 진리가 밝혀지지 않고 있다. 만일 제멋대로의 상념이 일어나지 않는 묵연정좌(默然淨坐)의 침묵으로 깨끗하게 앉아 있게 된다면 위대한 절대 진리는 있는 그대로 밝은 빛을 떨치게 될 것이다.
얼음은 물에서 생기지만 일단 만들어진 얼음은 물의 흐름을 가로막는다. 그러나 얼음이 녹으면 물은 저절로 예전처럼 흐른다. 이와 마찬가지로 방황(헤맴)은 진실에서 일어나지만 방황은 진실을 헷갈리게 하며 헤맴(미망)이 사라지면 진실은 자연적으로 나타난다.
우리의 마음의 바다는 본래부터 맑고 아름답다.
정신을 구성하는 다섯 가지 요소만 걷어낸다면 모든 것은 있는 그대로 빛을 나타낸다.
수행자가 고전(古典)의 말(문자를 가리킴)에 의하여 진여실상(있는 그대로 참된 것)을 배우는 것은 마치 바람에 깜박이는 등불에 의지하여 넓은 바다를 향해 하는 것과 같다. 이와는 반대로 가만히 앉아 묵연정좌를 이룬 후 아무런 일이 없다면 고요한 방안의 등불처럼 어둠을 깨고 환하게 실체를 바로 비춰 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들 마음이 근원적으로 맑다는 것을 깨달으면 모든 희망은 이루어질 것이요 모든 수행은 충족되고 모든 일이 아름답게 열매 맺어서 다시는 헤맴(혼란과 방황)의 세계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 스스로 자기 마음을 반성하여 스스로 자기를 구제할 따름이며, 부처님의 사람을 구제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게 된다.
부처님이 만일 사람을 구제할 수 있다면 우리들은 과거에 이미 수없는 부처님을 만났는데 어찌하여 구제받지 못했을까. 수없는 부처님들로부터 구제를 받아 부처가 되었을 일인데 어찌하여 우리들은 부처가 돼있지 않은가. 그 까닭은 '성실한 정신이 그 사람 속에서 눈뜨지 않고 입끝으로만 부처님을 찾았기 때문이다. 마음속으로 터득하고자 하지않고 전세의 숙명대로 헤매는 육신을 이끌고 나올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진리를 구명하여 명확한 오의에 통달>
혜가는 달마대사를 만나게 됨으로써 깊은 궁극의 진리를 탐구했다. 혜가는 6년 동안 공부하는 기간, 오로지 변함없는 노력으로 일관했다. 처음 시작할 때처럼 한결같이 순수했다.
달마대사가 혜가에게 물었다.
"그대는 진리를 위하여 목숨을 아끼지 않겠는가."
혜가는 그 자리에서 왼팔을 자르고도 얼굴빛 하나 바꾸지 않았다. 오랜 충복처럼 시침을 떼고 있었다. 달마는 그가 진리를 배움에 최선을 다한다고 믿고 방편에 의한 지도를 함으로써 혜가의 마음을 진리의 세계로 들여보냈다. 그렇게 하기를 5년, 그는 깊이 진리를 구명하여 명확한 오의에 통달했다.
달마대사가 서역으로 돌아가고말자 혜가는 소림사에 머물렀다.
혜가는 행주좌와 어묵동정(行住坐臥 語默動靜)간에 언제든 마음이 진실을 지향하여 일치함과 아울러 상대의 동향에 따라 가르쳐 지도했다. 그의 지도방법은 달마의 그것과 일치했다.
울림의 소리에 응하는 것처럼, 모든 사물에 관하여 깨달음을 알려주고, 행동을 통해 이해에 이르도록 해주었다. 그러므로 제자들 중에는 남몰래 기록을 남기는 이도 있었다.
혜가는 후의(后衛)의 천평(天平) 연간(534-537)에, 업(?) 위(衛)지방을 유행했다.
그는 지방의 곳곳을 유행하며 많은 사람들을 교화했다. 승려 가운데에서 혜가를 시기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그를 시기하는 사람들이 혜가에게 독물을 먹였지만 혜가는 그것을 알면서도 독물을 먹었다. 그러나 독극물이 그를 해치지는 못했다.
혜가의 제자는 날로 증가했다. 그의 독특한 지도를 받아 깨달음을 연 사람이 날로 증가했다.
혜가는 40년 동안 완산 낙주(洛州) 상주(相州)에 몸을 감춘채 보림을 계속한 후 비로소 교화에 나섰다. 출가 재가의 귀의자가 헤아릴 수 없이 그에게 모여들었다.
그럴즈음 주(周)나라의 불교 억압 사건이 일고 또 보리유지 삼장과 광통율사의 제자들에게 살해당할 위기에 직면했다.
혜가대사는 승찬(僧璨)에게 법통을 전승하고 사공산(司空山)으로 몸을 감추었다. 위기를 넘기고난 혜가는 이름을 감추고 거리에서 미치광이 행세를 하면서 거리 설법을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거리 설법을 경청하기 위하여 모여들었다.
보리유지 제자들이 혜가대사를 가리켜 '수상한 사람'으로 몰아 관가에 고발했다. 고발에 따라 나라에서 명을 내렸다. 혜가대사를 조사한 관리는 보리유지 제자들의 주장대로 그가 확실히 수상한 사람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심문을 맡은 관리는 고발자들의 질투인 줄 알면서 대사를 심문하는데 대사는 자기자신을 가리켜 '나는 틀림없이 수상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현감 택중간에게 칙령을 내려 법대로 처형하도록 했다.
혜가는 이때 여러 사람들에게 말했다.
"나의 법문은 4대 조사 때에 이르러 명복만으로 타락될 것이다."
혜가는 마침내 형을 받고 마지막을 장식했다. 그의 얼굴빛은 평소와 다름이 없었고 그의 몸에서는 흰 젖이 흘러나왔다.
택중간은 혜가의 최후의 모습을 그대로 복명했다. 황제는 택중간의 복명을 받고 크게 후회했다.
"그야말로 참다운 보살이었구나. 우리의 실수로 참된 사람을 억울하게 했구나."
조정의 신하들은 혜가의 의연한 죽음으로해서 발심을 했고 불교에 귀의했다. 주나라의 불교 억압정책은 철회되었으며 불법은 다시 흥왕하기 시작했다.
당시의 혜가대사의 나이는 1백7세였다. 그의 무덤은 상주 상안현 자맥하(子陌河) 북족 5리의 동류구(東柳溝)로 경정되었으며 무덤에서 약간 떨어진 장소에 오아조구(吳兒曹口)가 있다.
양능가업도고사(楊楞伽?都姑事)라는 사기에 자세한 기록이 있으며 뒷날 석법림(釋法琳)이 그의 비문을 지었다.
혜가는 일찌기 자기의 의발을 전한 승찬(僧璨)에게 부촉했다.
"내가 선대 스승으로부터 부촉받은 진리 그대로를 그대에게 전하고자 한다. 그대는 반드시 진리를 널리 전도하여 사람들을 이끌어 제도하라."
혜가는 또 능가경(楞伽經)을 중심으로해서 진리를 구명하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능가경 연구는 앞으로 4대를 지날 즈음이면 형식적 분석으로 타락되고 말 것이다. 참으로 슬픈일이고야."
달마대사를 초조로 하여 혜가 승산 도신 홍인 혜능으로 이어지는 능가주의 운동가들은 분명히 '능가경(楞伽經)'을 소의경전으로해서 절대 진리를 구명하고자 노력했다. 그렇지만 혜가대사가 미리 예측했던 대로 능가경은 4대(승찬 도신 홍인 혜능)가 지나고난 후에는 형식적인 분석으로 타락되고 말았다.
혜능의 뒤를 이은 회양과 행사는 물론이며 마조 백장 황벽 임제, 석두 약산 운암 동산등 모든 조사들이 능가경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혜가대사의 부촉을 어기고, 다시 말하면 능가주의와 반야주의를 어기고 색다른 조사선을 개발했다는 점에 있어서는 초기선종(初期禪宗)과는 전혀 다른 선종(禪宗)으로 변질되었다고 볼 수 있다.
달마대사는 원리적 방법과 실천적 방법을 통해서 절대 진리를 답득하고자 했으며 상키아체계를 통해서는 원리적 방법을, 파탄잘리체계를 통해서는 실천적 방법을 완성하려고 했다. 다시 말하면 상키아체계와 파탄잘리체계를 병행하고 통합하여 실천에 옮겼던 것이다. 그러나 혜능의 뒤를 이은 조사들은 하나같이 실천적 방법인 파탄잘리체계를 원용하지 않았다. 논리적 질서를 버리고 심신일체의 초현실적 실질 체험을 중요하게 여기는 능가주의와 반야주의의 실천적 방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인식되는 파탄잘리체계를 도외시했다는 것은 초기선종이 추구했던 방향과 전혀 다른 선(禪)을 지향했다고 볼수 있다.
달마대사는 모든 존재를 진여의 실상으로 보고 자기의 눈앞에 현존하는 일체를 아무 두려움 없이 맞이하기를 바랬다. 일체 존재가 있는 그대로 진여 실상이기 때문에 대상에 대한 두려운 마음을 갖지 않기를 권고했다. 혜가가 달마에게 했던 말도 역시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다는 표명이었다. 달마는 혜가의 말을 듣고 불편한 마음을 나에게 보이라고 말했지만 혜가는 자신의 불편한 마음을 내놓을 수가 없었다.
자기가 맞이한 상황이나 자기가 대면하는 대상으로부터 공포심을 갖거나 편안하지 못한 마음이 되는 까닭은 스스로의 마음의 작용에 억압을 가하고 장애를 끼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마음에 장애를 가하지 않으면 편안한 마음이 안될 까닭이 없다고 달마는 말했다.
달마대사가 혜가에게 남긴 말은 대단히 긴요한 내용이다. 요제를 지적한 그의 말은 훌륭한 담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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