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성스님의 아함경 강의·법담법화

마성스님의 아함경 강의<19>

수선님 2021. 5. 23. 12:02
한국불교신문 제 630호(2014년 11월 20일자) 아함경 강의

 

“눈[眼]이 생길 때 다른 곳에서 오지 않으며, 또한 사라질 때
어떤 다른 장소에 저장되기 위해 가지 않는다”

 

“행위가 있고 과보가 있다. 그러나 ‘법(法)을 지칭하기 위한 가명(假名)’을 제외한다면, 이 온(蘊)들을 버리고 다른 온(蘊)들을 상속(相續)하는 행위자(행동주체)는 없다. 귀[耳] 코[鼻] 혀[舌] 몸[身] 뜻[意]에 있어서도 또한 마찬가지로 말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오온(五蘊)의 무실체성(無實體性)을 간단명료하게 설한 것으로 이 경의 핵심이다


제일의공경(第一義空經)

 

[원문]
(三三五) 如是我聞: 一時, 佛住拘留搜調牛聚落. 爾時, 世尊告諸比丘: “我今當?汝等說法, 初·中·後善, 善義善味, 純一滿淨, 梵行?白, 所謂第一義空經. 諦聽, 善思, 當?汝說. 云何?第一義空經? 諸比丘! 眼生時無有來處, 滅時無有去處. 如是眼不實而生, 生已盡滅, 有業報而無作者, 此陰滅已, 異陰相續, 除俗數法. 耳·鼻·舌·身·意亦如是說, 除俗數法. 俗數法者, 謂此有故彼有, 此起故彼起, 如無明緣行, 行緣識 廣說乃至 純大苦聚集起. 又復, 此無故彼無, 此滅故彼滅, 無明滅故行滅, 行滅故識滅 如是廣說, 乃至 ‘純大苦聚滅. 比丘! 是名第一義空法經.” 佛說此經已, 諸比丘聞佛所說, 歡喜奉行.

 

[역문]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구류수의 조우라고 하는 마을에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제 너희들을 위하여 설법하리라. 그 법의 내용은 처음도 중간도 마지막도 모두 좋으며, 좋은 뜻과 좋은 맛이 담겨있는 것으로서 순수하고 한결같고 원만하고 깨끗하며 범행이 맑고 깨끗한 것이다.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도록 하라. 이 경은 제일의공경(第一義空經)이라고 하나니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도록 하라. 너희들을 위해 설명하리라.
어떤 것을 제일의공경이라고 하는가? 비구들이여, 눈은 생길 때 오는 곳이 없고, 소멸할 때에도 가는 곳이 없다. 이와 같이 눈은 진실이 아니건만 생겨나고, 그렇게 생겼다가는 다시 다 소멸하고 마나니, 업보(業報)는 있지만 짓는 자[作者]는 없느니라. 이 음(陰)이 소멸하고 나면 다른 음이 이어진다. 다만 속수법(俗數法)은 제외된다. 귀·코·혀·몸·뜻도 또한 이와 같다고 말하겠으나, 단 속수법은 제외된다.
속수법이란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기 때문에 저것이 일어난다’는 것을 이르는 말이니, 무명을 인연하여 행이 있고, 행을 인연하여 식이 있으며, …… 순전히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가 발생하고 일어나느니라.
또 ‘이것이 없기 때문에 저것이 없고, 이것이 소멸하기 때문에 저것이 소멸한다’는 것이니, 즉 무명이 소멸하기 때문에 행이 소멸하고, 행이 소멸하기 때문에 식이 소멸하며, …… 순전히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가 소멸하나니, 비구들이여, 이것을 제일의공법경(第一義空法經)이라고 말하는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여러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해석]
이 경은 ≪잡아함경≫ 권13 제335경 <第一義空經>(≪대정장≫ 2, p.92c)이다. 이 경의 내용과 비슷한 경은 ≪증일아함경≫ 권30 제7경(≪대정장≫ 2, pp.713c-714b); <증일아함경> 권49 제8경(≪대정장≫ 2, pp.819b-820c)이다. 이 경과 대응하는 니까야는 발견되지 않는다.
<제일의공경(第一義空經, Param?rtha??nyat?-s?tra)>은 매우 짧은 경전이다. 하지만 불교철학의 근본명제인 공성(空性)과 인과(因果)의 연속성을 다루고 있는 중요한 경전이다. 특히 바수반두(Vasubandhu, 世親)는 자신의 철학적 입장을 정립함에 있어서 이 경으로부터 중요한 힌트를 얻었던 것 같다. 그는 ≪아비달마구사론(阿毘達磨俱舍論, Abhidharmako?abh??ya≫을 저술하면서 이 경을 세 차례나 인용하였다. 그가 인용한 부분은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이하 ‘유부(有部)’로 약칭)가 주장한 삼세실유설(三世實有說)을 논파하기 위한 전거로 제시되었다.
이 경의 산스끄리뜨(Sanskrit) 원전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구사론≫과 다른 산스끄리뜨 단편들이 발견됨으로써 복원이 가능해졌다. 프랑스의 발레뿌셍(Vall?e Poussin)이 ≪구사론≫을 불어로 번역하면서 이 경의 복원을 시도했고, 그 뒤 라모트(E. Lamotte)가 이 경을 복원시켰다. 한역 ≪잡아함경≫의 <제일의공경>과 복원된 산스끄리뜨본(梵本)은 그 구성과 내용이 일치한다. 하지만 ≪증일아함경≫ 권30 제7경과는 상당한 차이점이 있다. 여기서는 한역 ≪잡아함경≫의 <제일의공경>과 복원된 산스끄리뜨본을 비교하면서 살펴본다.
이 경은 세존께서 구류수조우취락(拘留搜調牛聚落)에 머물고 계실 때 설한 것이다. 구류수(拘留搜)는 꾸루(Kuru)의 음사이다. 꾸루는 붓다 당시 십육대국(十六大國, Mah?janapad?) 가운데 하나였다. 꾸루는 붓다의 교화지역 중에서 가장 서북단에 위치한 나라였다. 이 경은 꾸루국의 조우취락(調牛聚落), 즉 ‘소를 길들이는 마을’에서 설한 것이다. 그런데 <증일아함경> 권30 제7경에서는 이 경을 사왓티(S?vatth?, 舍衛城)의 기수급고독원에서 설한 것으로 되어있다.
붓다는 이 경의 이름을 <제일의공경(第一義空經)>이라고 하였다. ≪증일아함경≫ 권30 제7경에서는 ‘제일최공법(第一最空法)’, ‘제일의최공지법(第一義最空之法)’으로 되어있다. 이 경은 붓다가 ‘제일의공경이란 무엇인가?’라고 스스로 묻고 스스로 답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한역에서는 “비구들이여, 눈은 생길 때 오는 곳이 없고, 소멸할 때에도 가는 곳이 없다.(眼生時無有來處, 滅時無有去處.)”고 설해져 있다. 범본에서는 “눈이 생길 때 다른 어떤 곳에서 오지 않았으며, 그것이 사라질 때 어떤 곳에 축적되기 위해 가지 않는다.(cak?ur bhik?ava utpadyam?na? na kuta?cid ?gacchati, nirudhyam?na? ca na kvacit sa?nicaya? gacchati.)”고 설해져 있다. 이것은 눈이 생길 때 다른 곳에서 오지 않으며, 또한 사라질 때 어떤 다른 장소에 저장되기 위해 가지 않는다는 뜻이다. 한역과 범본의 표현은 다르지만 동일한 내용을 설하고 있다.
한역에서는 “이와 같이 눈은 진실이 아니건만 생겨나고, 그렇게 생겼다가는 다시 다 소멸한다.(如是眼不實而生, 生已盡滅.)”고 설해져 있다. 이것은 눈은 실체가 아니지만 생기고 생겼다가 그것이 사라진다는 뜻이다. 범본에서는 “이렇게 실로, 눈은 없었다가 생성되고, 생성되었다가 그것이 사라진다.(iti hi cak?ur abh?tv? bhavati bh?tv? ca paratigacchati.)”고 설해져 있다.
또한 한역에서는 “업보(業報)는 있지만 짓는 자[作者]는 없다. 이 음(陰)이 소멸하고 나면 다른 음이 이어진다. 다만 속수법(俗數法)은 제외된다. 귀·코·혀·몸·뜻도 또한 이와 같다고 말하겠으나, 단 속수법은 제외된다.(有業報而無作者, 此陰滅已, 異陰相續, 除俗數法. 耳·鼻·舌·身·意亦如是說, 除俗數法..)”고 설해져 있다. 범본에서는 “행위가 있고 과보가 있다. 그러나 ‘법(法)을 지칭하기 위한 가명(假名)’을 제외한다면, 이 온(蘊)들을 버리고 다른 온(蘊)들을 상속(相續)하는 행위자(행동주체)는 없다. 귀[耳]·코[鼻]·혀[舌]·몸[身]·뜻[意]에 있어서도 또한 마찬가지로 말해야 할 것이다.(asti karm?sti vip?ka? tu nopalabhyate ya im??? ca skandh?n nik?ipaty any??? ca skhandh?n pratisa?dadh?ty anyatra dharmasa?ket?t. eva? ?rotra? ghr??a? jihv? k?yo mano v?cyam.)”고 설해져 있다.
이것은 오온(五蘊)의 무실체성(無實體性)을 간단명료하게 설한 것으로 이 경의 핵심이다. 바수반두는 ≪구사론≫에서 이 구절을 두 번이나 인용하였다. 이른바 눈[眼]·귀[耳]·코[鼻]·혀[舌]·몸[身]·뜻[意]을 통해 지은 업보(業報)는 있지만 짓는 자[作者]는 없다. 다시 말해서 이 오온(五蘊)을 버리고 다른 오온으로 상속하는 행위자는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업(業)의 주체(主體, k?raka)에 관한 문제이다. 위 대목은 오온 너머에 참나(眞我)가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에게 업은 있지만 업을 짓는 자[作者]는 없다고 말한 것이다. 이른바 이음상속(異陰相續)하는 실체아(實體我), 즉 진아(眞我)는 존재하지 않음을 천명한 것이다.
한역의 속수법(俗數法)은 연기법(緣起法)을 말한다. 범본에서 “법을 지칭하기 위한 가명을 제외하고(anyatra dharmasa?ket?d iti)”라는 표현은 “연기(緣起)를 다만 지칭하는 것 외에는(anyatra dharmasa?ket?d iti pratityasamutp?dalak?a??nt(ar)e?a)”이라는 뜻이다. 이것을 구나바드라(Gu?abhadra)는 ≪잡아함경≫에서 ‘제속수법(除俗數法)’으로 번역했고, 상가데와(Sa?ghadeva)는 ≪증일아함경≫에서 ‘제가호법(除假號法)’으로 번역했으며, 현장(玄?)은 ≪구사론≫에서 ‘유제법가(唯除法假)’로 번역하였다.
한역에서 “속수법이란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기 때문에 저것이 일어난다’는 것을 이르는 말이니, 무명을 인연하여 행이 있고, 행을 인연하여 식이 있으며, …… 순전히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가 발생하고 일어난다.(俗數法者, 謂此有故彼有, 此起故彼起, 如無明緣行, 行緣識 廣說乃至 純大苦聚集起.)”고 설해져 있다. 범본에서는 “‘법(法)을 지칭하기 위한 가명(假名)’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법을 지칭하기 위한 가명’(俗數法)은 이런 의미이다.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면 저것이 일어난다.’ 즉 무명(無明)으로 말미암아 행(行)이 있고 행을 말미암아 식(識)이 있고, …… 이와 같이 이 전체의 큰 고온(苦蘊)의 발생이 일어난다.”고 설해져 있다.
한역에서는 “또 ‘이것이 없기 때문에 저것이 없고, 이것이 소멸하기 때문에 저것이 소멸한다’는 것이니, 즉 무명이 소멸하기 때문에 행이 소멸하고, 행이 소멸하기 때문에 식이 소멸하며, …… 순전히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가 소멸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제일의공법경(第一義空法經)이라고 부른다.(又復, 此無故彼無, 此滅故彼滅, 無明滅故行滅, 行滅故識滅 如是廣說, 乃至 ‘純大苦聚滅. 比丘! 是名第一義空法經.)”고 설해져 있다. 범본에서는 “그리고 또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고, 이것이 소멸하면 저것이 소멸한다.’ 즉 무명(無明)이 소멸하기 때문에 행(行)이 소멸하고, 행이 소멸하기 때문에 식(識)이 멸하고, …… 이와 같이 이 전체의 큰 고온(苦蘊)이 소멸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제일의공경(第一義空經)이라 부르는 법문(法門)이다.”고 설해져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유부(有部)는 삼세실유설(三世實有說)을 주장하였다. 삼세실유설은 단일성(單一性, dravya) 또는 자성(自性, svabh?va)으로서 다르마(dharma, 法)는 과거·현재·미래의 삼세에 걸쳐 실유(實有)한다는 것이다. 이 삼세실유설에 대해 바수반두(世親)는 강하게 비판하였다. 그는 유부(有部)의 과미실유설(過未實有說)을 논파하기 위해 이 <제일의공경(第一義空經)>을 인용하였다.
바수반두는 ≪구사론≫에서 유부가 주장하는 과거와 미래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현재만이 존재한다고 주장하였다. 즉 “세존이 ‘과거 업이 있다’라고 말씀하실 때, 그는 과보를 내는 효능, 즉 과거에 있었던 행위에 의해 상속(相續)가운데 있게 되는 힘을 고려한 것이다. 달리 해석하여, 과거 업이 그 자체로서 현재에 실제로 존재한다고 한다면, 어떻게 그것을 과거로 볼 수 있겠는가? 더욱이 경전에는 아주 명백한 언명이 있다. 즉 세존께서는 <제일의공경>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또한 “비구들이여, 눈이 생길 때 다른 어떤 곳(즉 미래)에서 오지 않으며, 그것이 사라질 때 어떤 곳(즉 과거)에 축적되기 위해 가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눈은 비존재였다가 생겨나며, 생겨났다가 사라진다. 만일 미래의 눈[眼]이 존재한다면 세존이 눈은 비존재였다가 생겨난다고 말씀하지 않았을 것이다.”고 바수반두는 주장하였다.
유부(有部)에 의하면, “삼세(三世)는 본체(本體)의 상태의 차이로 나타나며, 본체가 작용과 결합하여 현세적(顯勢的)일 때가 현재이고, 작용을 떠나 잠세적(潛勢的)인 상태로 있을 때는 과거나 미래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법(法)은 자성(自性)을 가지고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제일의공경>에 의하면, 잠세적인 상태로 남아 어딘가에 보존되어 있게 된다는 것이 전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없었다가 생겨나 다시 사라져 버리는 생멸(生滅) 현상만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바수반두는 <제일의공경>에 근거하여 과거와 미래는 현재처럼 실재하지 않으며 오직 현재만이 존재한다는 그의 지론을 펼쳤다.

(동국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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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眼]이 생길 때 다른 곳에서 오지 않으며, 또한 사라질 때 어떤 다른 장소에 저장되기 위해 가지 않는다” “행위가 있고 과보가 있다. 그러나 ‘법(法)을 지칭하기 위한 가명(假名)’을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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