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불교 Early Buddhism

승가화합의 판단 기준에 관하여/이자랑

수선님 2021. 6. 6. 12:13

승가화합의 판단 기준에 관하여

이 자랑/동국대학교

 

Ⅰ. 서론

 

한국불교를 비롯하여 중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 불교권에서는 계

(界, sīmā), 즉 경계가 승가공동체의 생활에서 필수적인 개념은 아

니다. 그러나 율장에 의하면, 승가의 성립은 경계의 설정[結界]부

터 시작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방으로 산이나 바위 등의 표식

을 정해 이를 기준으로 형성된 하나의 경계는 현전승가(現前僧伽,

sammukhībhūtasaṃgha)1)라 불리는데, 이 개개의 현전승가야말로

율장 건도부에 기술된 모든 규정이 그 효력을 발휘하게 되는 기본 단위

이다. 따라서 경계의 설정 없이는 승가의 운영 자체가 불가능하다.

1) 현전승가란 지금 여기 성립하고 있는 승가, 즉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한정되는 

   승가이다. 사방으로 산이나 바위 등의 표식(nimitta)에 의해 정해진 경계 안이 현전승

   가의 범위가 되며, 이 안에 있는 비구들은 포살 등의 승가갈마를 함께 실행하고, 또한 

   보시 받은 먹거리나 옷 등도 함께 분배하여 생활한다. 한편, 이 다수의 현전승가를 

   묶는 형태로 사방승가(四方僧伽, cātuddisa-saṃgha)라는 이상적인 이념이 존재한

   다. ‘우리들은 사문석자이다’라는 공통의식에 기반을 둔, 모든 불교수행자를 포함한 

   이상적인 개념이다. 승가의 화합이나 파승의 개념은, 이 두 가지 승가 개념 가운데, 

   비구들이 실제생활을 하는 현실적인 공간인 현전승가와 관련을 맺고 있다.

 

근년, 율장이 초기·부파불교 교단사 연구를 위한 절호의 자료라는

점이 밝혀지면서, 승가 운영의 기본 단위인 현전승가의 운영 실태에 관

한 연구가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바

로 승가의 화합(和合, samagga) 내지 파승(破僧, saṃghabheda)에

관한 논의이다. 그 이유는 부파분열에 관한 전승 내지 이와 직간접적으

로 관련된 자료들에 승가의 화합이나 파승에 관한 기술이 종종 등장하

기 때문이다.

 

화합이 승가 운영에 있어 가장 대표적인 특징이라는 점, 그리고 승

가분열 행위인 파승이 율장에서 엄격하게 금지되고 있다는 점 등은 이

미 오래 전부터 알려져 있던 사실이지만, 이 두 용어의 구체적인 의미

에 관한 논의의 실마리를 본격적으로 제공한 것은 아마도 1961년에 발

표된 Bechert의 파승에 관한 논문일 것이다. 아쇼까왕의 분열법칙

(Schism Edict)과 초기 빨리역사서에 보이는 제3결집 전승의 관련을

둘러싼 논의가 한창일 무렵, 그는 분열법칙의 용어가 빨리율에서 사용

되는 전문용어와 매우 밀접한 관련을 지닌다는 사실을 발견, 빨리율

의 세밀한 검토에 근거하여 파승의 의미를 고찰한다. 그 결과, 파승이

란 경계 설정에 의해 형성된 작은 규모의 개개의 지방승가, 즉 현전승가

에서 집단행사인 갈마(羯磨, kamma)의 실행을 둘러싸고 발생하는 분

열이라는 점을 밝혀낸다.2) 즉, 하나의 현전승가 안에서 함께 갈마를 실

행하는 상태가 화합이며, 나뉘어서 실행하는 상태가 파승인 것이다. 이

연구 성과에 의해, 승가의 화합이나 파승은 승가의 구성원들이 단지 충

돌하는 일 없이 사이좋고 평화롭게 지낸다거나 혹은 서로 대립한다거

나 하는 막연한 개념이 아닌, 일정한 경계를 중심으로 형성된 현전승가

안에서 이루어지는 갈마의 공동실행 여부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개념이

라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2) H. Bechert, Aśokas ‘Schismenedict’ und der Begriff Saṅghabheda, Wiener

   Zeitschrift für die Kunde Süd-Ostasiens , Ⅴ, 1961, 18-52쪽.

 

이 결론은 일본의 대표적 계율학자인 히라카와 아키라(平川彰)의 연

구 결과와도 일치한다. 그는 광범위한 율장 연구를 통해 현전승가 최대

의 특징으로 화합승을 거론하며, 이때 화합이란 동일한 현전승가에 속

하는 비구들이 포살 등의 갈마를 함께 실행하는 것을 가리킨다는 점

을 분명히 한다.3)

3) 히라카와는 빨리율에 나타나는 화합의 정의에 근거하여, 갈마의 공동실행과 더불어

   ‘보시물의 공동 분배’를 화합의 중요 요소로 들고 있는데, 이 견해에 관해서는 본 논문

   의 제2장에서 언급하며, 그 문제점을 지적해 둔다. 平川彰,『 原始佛敎の硏究』(東京:

   春秋社, 1964), 295-351쪽.

 

한편, 근래 율 연구의 대표적 중견학자인 일본의 사사키 시즈카(佐々

木閑)는 위와 같은 기존의 연구 성과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현존하는

6종의 광율(廣律), 그리고 설일체유부의 논서에 걸쳐 폭넓게 파승 문제

를 검토, 그 결과, 파승의 정의에 파법륜승(破法輪僧, cakrabheda)과

파갈마승(破羯磨僧, karmabheda)의 두 가지 종류가 있으며, 율에 따

라 파승의 정의에 차이에 있다는 사실을 지적해 낸다. 파법륜승이란 불

설에 위반되는 의견을 주장하는 자가 추종자들을 모아 별개의 승가를

만드는 것을 말하며, 파갈마승이란 동일한 경계 안에서 따로 포살 등

의 갈마와 같은 승가행사를 실행하는 것을 말한다. 사사키에 따르면,

파승의 정의가 파법륜승인가 아니면 파갈마승인가에 따라 승가 운영

은 크게 달라진다. 파법륜승일 경우에는 교의가 다른 자의 공동생활

[共住]은 절대 불가능하지만, 파갈마승일 경우에는 교의가 달라도 승

가 행사만 함께 실행한다면 공동생활이 가능해진다고 한다. 아쇼까왕

시대에 파승정의가 파법륜승에서 파갈마승으로 전환됨에 따라, 승가

에서는 포살 등의 갈마만 함께 실행하면 파승이 되지 않는다는 원칙이

생겨나고, 그 결과 교의가 다른 자의 공주(共住)가 가능해졌다는 결론

을 제시하고 있다.4)

4) 佐々木閑,『 インド佛敎變移論 -なぜ佛敎は多樣化したのか』(東京: 大藏出版社, 2000),

   이자랑 역,『 인도불교의 변천』(동국대출판부, 2007)

 

승가의 화합이나 파승이 현전승가를 단위로 이루어지는 갈마의 공

동실행과 직접적으로 관련된다는 기존의 연구 결과는 율장을 통해 보

는 한 의심할 여지없는 사실이며, 필자 역시 의견을 함께 한다. 그런데,

이들 승가의 화합이나 파승에 관한 기존의 연구에서는 이것들을 판단

하는 기준인 ‘동일 경계에서 갈마의 공동실행 여부’라는 관점에 중점이

놓여, 갈마를 함께 실행한다고 하는 행위의 배경에 있는 요소에는 별

로 주의를 기울여 오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특히 사사키의 연구 결과에

서는 이와 같은 경향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어, 현전승가에서의

갈마 실행은 구성원들의 정신적인 유대와는 전혀 무관한, 오로지 동일

경계 안에 속한 비구들의 전원집합이라는 형식적인 차원의 문제로서만

등장하게 된다고 볼 수 있다.5)

5) Bechert나 히라카와(平川)는 동일한 현전승가 안에서의 갈마의 공동실행이 화합이며,

   만약 이 안에서 의견의 차이가 발생하여 승가를 형성할 수 있을 정도의 인원이 양쪽으

   로 나뉘어 갈마를 실행하게 된다면 그것이 파승이라는 점까지만 언급하고 있어, 이 점

   에 관한 명확한 입장은 알기 어렵지만, 화합의 상징인 갈마의 공동실행에 구성원들의

   정신적인 유대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에 관해서는 양자 모두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

   지 않다. Bechert, 위의 논문 및 The Importance of Aśoka’s so-called Schism

   Edict, Indological and Buddhist Studies, Volume in Honour of Professor J.W.de

   Jong on his Sixtieth Birthday, 1982, 61-68쪽; 平川彰, 위의 책, 295-351쪽.

 

본 논문에서는 승가화합이나 파승의 판단 기준을 논해 온 기존의 이

들 연구에서 간과되고 있다고 생각되는 측면, 즉 현전승가에서 실행되

는 ‘갈마의 공동실행’이라는 현상이 단지 동일한 경계 안에 있는 비구

들의 전원 집합이라고 하는 형식상의 문제가 아닌, 구성원들의 정신적·

육체적인 완전한 결합을 필요로 하는 행사였으며 이것이 곧 진정한 화

합승의 실현이었다는 점을 빨리율에 나타나는 화합의 정의를 중심으

로 검토, 지적해 두고자 한다.

 

Ⅱ. 화합승의 정의

 

1. 화합승의 정의,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승가의 특징이 화합승(和合僧, samagga-saṃgha)이라는 점은 이

미 기존의 연구에 의해 지적되고 있는 바이며,6) 율장의 기술로부터 보

아도 의심할 여지없는 사실이다. 서론에서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율

장이 제시하는 화합의 의미는 동일한 현전승가 안의 구성원들이 전원

집합하여 갈마를 실행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그런데, 빨리율에 나타나

는 대표적인 화합(samagga)의 정의를 볼 때, 기존의 이 이해에 약간의

추가 설명이 필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검토해 볼 정의는 다음과 같다.

6) 平川彰, 위의 책, 295쪽.

 

Samaggo nāma saṃgho samānasaṃvāsako samānasīmāya ṭhito.

 

데와닷따의 파승사건을 계기로 제정된 경분별 승잔죄 제10조 ‘파

승위간계(破僧違諫戒)’를 비롯하여,7) 빨리율 곳곳에서 등장하는 화

합의 대표적인 정의이다.8) 매우 간단한 문장인데, 이 가운데 한 용어

에 관한 기존의 번역들 사이에서 혼동이 발견된다. 이 문장은 승가가

samānasaṃvāsako와 samānasīmāya ṭhito라는 두 가지 조건을

갖추고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화합이 실현된 상태라는 것을 의미한다

고 볼 수 있다. 이 가운데 후자인 samānasīmāya ṭhito는 ‘동일한 경

계 안에 서 있는 것’, 다시 말해 일정한 경계 안에 지금 승가가 존재하

고 있는 것이 화합의 하나의 조건으로서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공간적인 문제이다. 이 말의 의미에 관해서는 기존의 학자들 간에

의견의 차이는 없다.

7) Vin ⅱ, 204쪽.

8) Vin ⅳ,154쪽; Vin ⅳ, 218쪽; Vin ⅳ, 231쪽 등.

 

그러나 화합의 또 하나의 조건으로 거론되는 samānasaṃvāsako

에 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적지 않은 해석의 차이가 존재한다. 예

를 들어, 히라카와 아키라(平川彰)는 위의 문장을 ‘화합(samagga)이

란, 승가가 생활을 함께 하고(samāna-saṃvāsako), 동일한 경계 안

에 서 있는 것(samānasīmāya ṭhito)이다’라고 번역하고, ‘생활을 함

께 하는 것’이란 신자의 보시를 공동으로 분배해서 생활하는 것이

라고 설명한다.9) 즉, samānasaṃvāsako란 의식주 생활을 함께 하

는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사토우 미츠유(佐藤密雄)는

‘화합이란, 승가가 동일하게 머무르고[同一住]동일한 경계 안에 있

는 것이다’라고 하여, samānasaṃvāsako를 ‘동일하게 머무르는 것’

이라고 번역한다.10) 사토우가 이 말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해했는가

는 분명하지 않지만, 다른 저서에서는 samānasaṃvāsaka의 반대어

인 nānāsaṃvāsaka를 ‘이주처자(異住處者)’라고 번역한 후, 이를 ‘다

른 토지에 사는 자’로서 이해해야 한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는 점으

로부터 생각해 본다면, samānasaṃvāsako는 동일한 토지에 사는

자, 즉 동일한 주처에 있는 자를 가리킨다고 이해하고 있다고 추측된

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사토우 스스로도 자각하고 있는 바와 같이,

samānasīmāya ṭhito, 즉 동일한 경계 안에 서 있는 것과는 구체적으

로 어떤 차이를 지니는지, 양자의 구별은 어려워진다.11)

9) 平川彰, 위의 책, 296쪽. 한편, 다른 저서에서는 부파상호간의 교섭을 논하는 가운데,

   samānasaṃvāsaka를 ‘동주(同住)’ nānāsaṃvāsaka를 ‘이주(異住)’라고 번역한 후,

   각각 자파의 비구와 다른 부파의 비구를 가리키는 용어라 설명하고, 이 용어들을 근거

   로 부파상호간의 비구 간에 교섭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상세한 고찰은 하고 있

   지 않다. 平川彰,『初期大乘佛敎の硏究』(東京: 春秋社, 1968), 687-689쪽.

10) 佐藤密雄,『南專大藏經』律藏 권1, (東京: 대정신수대장경간행회, 1936), 290쪽.

11) 佐藤密雄,『原始佛敎敎團の硏究』(東京: 山喜房佛書林, 1972), 282-283쪽.

 

한편, 빨리율의 영역에서는 ‘Harmonious means: an Order belonging

to the same community is established within the same boundary.’라고 

번역하고, 그 주에서 ‘belonging to the samecommunity’,

즉 samānasaṃvāsako란 견해나 종교행사를 함께 하는, 정신적으로 하나로 

묶인 것이라고 하는 빨리율 주석서 (Sama -ntapāsādikā , 이하 Smp 로 표기)의 

설명을 소개하고 있다.12)

12) The Book of the Discipline , 1.300. Belonging to the same community means that

    there are none living together holding various heretical views or various religious

    proceedings; that there is no mental separation from those of the same mind. (Smp

    ⅲ, 607쪽)

 

이와 같이, ‘Samaggo nāma saṃgho samānasaṃvāsako samānasīmāya ṭhito.’라는 

화합의 가장 대표적인 정의에 나타나는 samānasaṃvāsako라는 용어의 의미는 

기존의 연구에서도 그 이해가 일치하지 않으며, 매우 애매한 부분을 남기고 있다.13)

13) 필자는『 불교학연구』제8호(서울: 불교학연구회, 2004), 57-80쪽에 ‘승가 화합

    과 화합 포살’이라는 논문을 발표한 적이 있는데, 이때 이 화합의 정의를 다루며

    samānasaṃvāsaka를 동주자(同住者), 즉 동일한 경계 안에 함께 거주하는 사람의

    의미정도로 이해, 번역했다. 이 말의 반대어인 nānāsaṃvāsaka, 즉 부동주(不同住)

    라는 말이 지니는 중요한 의미에 관해서는 이미 인식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화합

    의 정의에 나타나는 samānasaṃvāsaka와의 직접적인 연관성까지는 미처 깨닫지 못

    했던 것이다.

 

2. 승가화합의 두 가지 판단 기준

 

1) 동일한 경계 안에 선다는 것

여기서는 위에서 제시한 빨리율의 화합에 관한 정의에 등장하는 승

가화합의 두 가지 판단 기준의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며, 이들이 화합

갈마의 실행과 밀접하게 관련된다는 점을 지적해 두고자 한다. 먼저,

samānasīmāya ṭhito, 즉 ‘동일한 경계 안에 선다’는 표현이 구체적으

로 의미하는 바를 살펴보자.

 

경계는 승가 운영의 기본 단위이자 건도부에 기술된 율이 실질적으

로 적용되는 범위인데, 처음 승가에 경계가 도입되는 인연담은 빨리율

「포살건도」에서 발견할 수 있다.「 포살건도」는 승가의 중요행사 가운데

하나인 포살(布薩, uposatha)에 관한 전반적인 규정을 설하고 있는 건

도이지만, 그 대부분의 규정은 포살 외의 다른 갈마의 실행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들이다.

 

이 건도의 전반 부분에서는 당시 종교계에서 일반적으로 실행되

고 있던 포살이라는 관습이 빔비사라왕의 적극적인 권유에 따라 승가

에 처음 도입되는 경위가 상세히 소개되고 있다. 왕은 많은 외도 유행

자들이 보름의 14, 15, 8일에 모여 법을 설하고 이를 통해 신자들을 늘

려가는 것을 보고, 승가 역시 이 방법을 도입할 것을 붓다에게 건의한

다. 이렇게 해서 처음에는 일반인에 대한 설법회와 같은 형식으로 승가

에 도입된 포살이 점차 승가의 포살설계갈마(布薩說戒羯磨), 즉 보름마

다 바라제목차를 낭송하며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는 모임으로 바뀌게

된다.14) 붓다가 포살설계갈마를 실행하라고 지시하자, 비구들은 자신들

의 모임에서 개별적으로 포살을 실행하게 되었고, 이를 들은 붓다는 모

든 비구들이 함께 모여 갈마의 형태로 포살을 실행하는 ‘화합포살갈마

(samaggānaṃ uposathakamman)’를 지시한다.

14) 처음 일반인에 대한 설법회와 같은 성격으로 승가에 도입된 포살이 왜 포살설계갈마

    로 바뀌게 되었는가, 이 점은 분명하지 않다.「 포살건도」에 의하면, 홀로 명상하던 

    붓다가 ‘내가 비구들을 위해 제정한 학처, 그것을 그들의 바라제목차 독송으로 제정하

    면 어떨까. 그것은 그들의 포살갈마가 될 것이다.’라고 생각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전하는데, 전후 연결이 자연스럽지 못하다. 이 점에 관해서는 앞으로 상세한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Vin ⅰ, 102쪽

 

한편, 비구들은 붓다에 의해 보름마다 한 번, 화합포살갈마를 실행

하라는 지시를 받았지만, 화합의 범위를 판단할 수 없어 당황하고 있었

다. 그러자 붓다는 ‘한 주처(住處, ekāvāso)가 화합의 범위이다’라고 설

했고,15) 다시 한 주처의 구체적인 범위를 묻는 비구들에게 사방으로 산

이나 바위, 나무 등의 표식을 정하고, 그 안을 경계로 묶을 것을 지시

한다. 즉, 한 주처란 경계를 기준으로 만들어진 일정한 공간인 것이다.

이 기술에 이어, 경계에 의해 정해진 한 주처는 ‘samānasaṃvāsaṃ

ekuposathaṃ’이라는 설명이 추가된다. 이들 기술로부터, 화합의 범위

=한 주처(ekāvāsa)=samānasaṃvāsa이자 ekuposatha(동일포살)인

경계(sīmā)라는 점을 이해할 수 있다.

15) anujānāmi bhikkhave ettāvatā sāmaggī yāvatā ekāvāso’ti. Vinⅰ, 105쪽

 

「포살건도」의 이 기술로부터 알 수 있는 것은, 일정한 경계를 중

심으로 형성된 하나의 주처가 화합의 구체적인 공간이며, 이 공간은

samānasaṃvāsa이자 함께 포살갈마를 실행하기 위한 목적에서 만들

어졌다는 점이다. 즉, 경계 설정의 주된 목적은 화합포살갈마의 실행을

위해서인 것이다.「 포살건도」로부터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발견할 수

없으므로, 화합포살갈마가 필요해진 구체적인 경위는 알기 어렵지만,

화합포살갈마의 실행을 목적으로 경계 설정이 도입된 것만은 분명하다.

승가화합의 한 판단 기준으로 등장한 ‘동일한 경계 안에 선다는 것’은,

곧 동일한 경계 안에 속한 모든 비구들의 전원 출석으로 이루어진 갈

마가 곧 화합포살갈마이자 화합승의 한 판단 기준이라는 점을 의미하

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 등장하는 samānasaṃvāsa란 어떤 의미일까?「 포

살건도」에 등장하는 ‘samānasaṃvāsaṃ ekuposathaṃ’은 일반적

으로 ‘동일주처 동일포살(同一住處 同一布薩)’이라고 번역되는 경우가

많은데,16) 이 가운데 ‘동일주처(samānasaṃvāsaṃ)’라는 말의 구체

적인 의미는 필자가 아는 한, 지금까지 본격적으로 다루어진 일이 없

다. 이하, 이 말과 더불어 위에서 소개한 화합승의 정의에 등장하는

samānasaṃvāsako의 의미를 생각해 보자.

16) 平川彰,『 原始佛敎の硏究』(東京: 春秋社, 1964), 303쪽; 佐藤密雄『, 南專大藏經』律藏

    권3, (東京: 대정신수대장경간행회, 1938), 188쪽.

 

2) samānasaṃvāsaka의 의미

samānasaṃvāsa 혹은 이 말에 ka라는 접미사를 붙여 만들어진

samānasaṃvāsaka17)는 ‘같은’, ‘동일한’ 등의 의미를 지니는 samāna

라는 형용사에 ‘공주(共住)하는 (자)’라는 의미의 saṃvāsa(ka)라는

말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것으로, ‘공주생활을 함께 하는 (자)’라는 의

미를 지니게 된다. 한편, 빨리율을 조사해 보면, 이 말의 반대어는

nānāsaṃvāsaka이다. 이 말은 nānā+saṃvāsa(ka)로 구성된 것으로,

이때 nānā란 ‘다른’, ‘다양한’ 등의 의미를 지니므로, nānāsaṃvāsaka

란 ‘공주생활을 달리 하는 (자)’라는 의미가 된다. 그렇다면, ‘공주생활

을 함께 한다, 혹은 함께 하지 않는다’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일까?

17) 필자는 이전에 「율장에 나타난 ‘不同住 (nānāsaṃvāsaka)’에 관하여」,『印度哲學』

    제11권 제2호 (서울: 인도철학회, 2002), 181-200쪽에서 이 용어들의 의미를 다룰

    때,『 사분율』등에 나타나는 동주(同住, samānasaṃvāsaka)와 부동주(不同住)란 번

    역어를 각각 사용했다. 그러나 본 논문에서는 빨리어 원어로 표기하는 방법을 선택했

    다. 그 이유는 한역으로 동주, 혹은 부동주라고 표현했을 때 일반적으로 갖게 되는 선

    입견이 이 두 용어의 의미를 파악하는데 장애가 된다는 판단에서이다. 실제로 『사분

    율』과『 오분율』 외의 한역 광율에서는 다른 번역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동주나

    부동주라는 번역어에 의존할 경우, 다른 율에서 해당 부분을 간과해 버리기 쉽다. 그

    러므로, 본 논문에서는 우선 빨리율에서 사용되는 용어를 그대로 표기하며 그 의미를

    명확히 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먼저, 공주(saṃvāsa)에 대한 빨리율의 정의를 보면 다음과 같다.

 

saṃvāso nāma ekakammaṃ ekuddeso samasikkhātā,

eso saṃvāso nāma.18)

(공주란, 갈마를 하나로 하고, 설계를 하나로 하며, 함께 배우는 것, 이

것을 공주라고 한다.)

18) Vin ⅲ, 28쪽

 

이 정의에 의하면, 공주의 판단조건은 동일갈마, 동일설계, 함께 배

우는 것의 세 가지이다. 이 가운데 동일갈마와 동일설계는 갈마와 포살

을 함께 실행하는 것이며, 함께 배운다는 것은 세존에 의해 제정된 학

처를 함께 배우는 것이다.19) 포살에서는 학처를 낭송하게 되므로, 결국

이 세 가지는 포살을 비롯한 승가갈마를 함께 실행하는 것을 의미한

다. 공주란 단순히 함께 사는 것이 아닌, 갈마를 함께 실행한다고 하는

보다 한정적인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19) Smp ⅰ, 260쪽

 

이 설명을 상기하며, samānasaṃvāsa(ka)나 nānāsaṃvāsa(ka)의

어원적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본다면, 이 말들은 승가갈마를 함께 실행

하는 공주생활을 같이 하는 자들인가, 아니면 달리 하는 자들인가를

각각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위에서 제시한 화합승의 정

의에 나타나는 두 가지 판단기준이 모두 승가의 화합갈마와 밀접하게

관련된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즉, 화합승이란 포살 등과 같은 승가갈

마를 공동 실행하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빨리율에 산발적으로 등장하는 이 두 용어의 용례를 보아도, 이들이

포살 등의 승가갈마의 공동 실행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포살건도」에는, 포살은 samānasaṃvāsaka끼

리 실행해야 하며, 거기에 nānāsaṃvāsaka를 포함시켜서는 안 된다

는 기술이 등장한다. 즉, 다음과 같다.

 

비구들이여, 외부에서 찾아든 비구들(āgantukā bhikkhū)이 원래 살

고 있는 비구(āvāsike bhikkhū)인 nānāsaṃvāsaka들을 본다. 그들

(외부에서 찾아든 비구들)은 samānasaṃvāsaka라는 견해를 갖는다.

samānasaṃvāsaka라는 견해를 가지고 묻지 않는다. 묻지 않고, 함께

포살을 한다면 무죄이다. 그들은 묻는다. 묻고 주의하지 않는다.20) 주

의하지 않고, 함께 포살을 한다면 악작죄이다. 그들은 묻는다. 묻고 주

의하지 않는다. 주의하지 않고 따로 포살을 한다면 무죄이다.

비구들이여, 외부에서 찾아든 비구들이 원래 살고 있는 비구인

samānasaṃvāsaka들을 본다. 그들(외부에서 찾아든 비구들)은

nānāsaṃvāsaka라는 견해를 갖는다. nānāsaṃvāsaka라는 견해

를 갖고 묻지 않는다. 묻지 않고 함께 포살을 한다면 악작죄이다. 그들은

묻는다. 묻고 주의한다. 주의하고 따로 포살을 한다면 악작죄이다. 그들

은 묻는다. 묻고 주의한다. 주의하고 함께 포살을 한다면 무죄이다.21)

20) 이 문맥 속에 등장하는 ‘주의한다(abhivitarati)’란 말이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

    를 지니는지 빨리율로부터는 명확하게 알기 어렵다. 한편, 주석서에서는 이 부

    분을 “nābhivitarantī’ti nānāsaṃvāsakabhāvaṃ maddituṃ abhibhavituṃ

    na sakkonti, taṃ diṭṭhiṃ na nissajjāpentī’ti attho.”(‘주의하지 않는다’란,

    nānāsaṃvāsaka의 상태를 파괴하거나 제압하지 못하고 그 견해를 포기시키지 못한

    다는 의미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상대방이 nānāsaṃvāsaka라는 사실을

    알게 된 단계에서 적극적으로 그들을 제압하여 samānasaṃvāsaka로 전향시켜야 하

    며, 만약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함께 포살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Smp ⅴ, 1066쪽

21) Vin ⅰ, 134쪽

 

이 기술에 이어, 원래 살고 있던 비구들이 외부에서 찾아든 비구

들을 맞이하는 경우에 관해서도 동일한 설명이 보인다.22) 이 외, 포

살일에 승가와 함께 하거나 혹은 재난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nānāsaṃvāsaka비구들이 있는 주처에 가서는 안 된다는 규정 역시

포살 등의 갈마는 samānasaṃvāsaka와 함께 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23)

22) 위와 같음.

23) Vin ⅰ, 134-135쪽. 이것은 포살 외의 다른 갈마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로, Vin ⅰ, 320

    쪽에 의하면, nānāsaṃvāsaka의 참석 하에 이루어진 갈마는 무효로 처리된다.

 

그렇다면, 포살 등의 승가갈마는 왜 samānasaṃvāsaka끼리 실행

해야만 하며, nānāsaṃvāsaka는 철저히 배제되는가? 빨리율이나 그

주석서에 등장하는 이 두 용어의 용례를 검토해보면, 이 용어들이 좀

더 특수한 의미를 지닌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하, 이 점을 중심

으로 승가갈마의 특징을 살펴보자.

 

Ⅲ. 화합승의 의미

 

1. 거죄갈마의 판단을 둘러싼 대립

이미 다른 논문을 통해 지적한 바와 같이,24) 이 두 용어가 가장 체

계적인 문맥 속에서 등장하는 것은 율장 대품「 꼬삼비건도」이다.25) 자

신의 행동을 잘못이라 인정하지 않는 한 비구에게 승가는 불견죄거죄

갈마(不見罪擧罪羯磨)라는 징벌갈마를 실행했고, 갈마의 결정에 납득

할 수 없었던 이 비구는 자신의 무죄를 지지해 주는 비구들을 모아 승

가와 대립한다. 결국 이들에게 거죄갈마를 실행한 비구들이 경계 밖으

로 나가 개별적으로 포살 등의 승가갈마를 실행하게 되는데, 이 행동

에 대해 붓다는 자신이 설한 가르침대로 실행한다면 여법하다는 판단

을 내린다. 그 이유로서 그들이 서로 nānāsaṃvāsaka라는 점을 들며,

nānāsaṃvāsaka나 samānasaṃvāsaka의 근거를 다음과 같이 든다.

24)「 율장에 나타난 ‘不同住 (nānāsaṃvāsaka)’에 관하여」,『 印度哲學』제11권 제2호 (서

    울: 인도철학회, 2002), 181-200쪽에서는 주로 nānāsaṃvāsaka의 의미를 중심으로

    다루었으며, 최근 samānasaṃvāsaka와 nānāsaṃvāsaka에 대한 빨리율 및 그 주

    석서인 사만따빠사디까의 용례를 전반적으로 검토, 화합승과 관련된 두 용어의 구

    체적인 의미를 다룬 논문을 곧 발간 예정인 『佛敎硏究』제36호(浜松: 국제불교도협

    회, 2008), 231-253쪽에 발표했다. 본 논문 가운데 일부분은 『佛敎硏究』에 발표한

    논문의 내용 중 일부를 발췌, 보충정리한 것이다. 그러므로 samānasaṃvāsaka 및

    nānāsaṃvāsaka의 의미에 대한 보다 상세한 고찰은 이들 졸고를 참고하기 바란다.

25) Vin ⅰ, 337-360쪽

 

비구여, 다음과 같은 2종의 nānāsaṃvāsaka의 근거가 있다. 스스로 자

신을 nānāsaṃvāsaka로 하거나, 혹은 승가가 화합하여 그를 불견(不

見)·불참회(不懺悔)·불사(不捨)로 거죄한다. 비구여, 이것이 2종의

nānāsaṃvāsaka의 근거이다. 비구여, 다음과 같은 2종의 samānasaṃvāsaka의

근거가 있다. 스스로 자신을 samānasaṃvāsaka로 하거나, 혹은 승가가 

화합하여 불견·불참회·불사로 거죄된 그를 해죄한다. 비구여, 이것이 2종의 

samānasaṃvāsaka의 근거이다.26)

26) Vin ⅰ, 340쪽

 

이 기술에 등장하는 2종의 근거나 「꼬삼비건도」의 전체적인 내용

으로부터 판단하건대, samānasaṃvāsaka 혹은 nānāsaṃvāsaka

가 되는 배경에는 주로 승가의 거죄갈마가 깊이 관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거죄갈마의 결정에 대한 의견 대립을 원인으로 거

죄갈마를 실행한 승가와, 승가의 판단에 불복하는 또 하나의 그룹

으로 나뉘게 되었을 경우, 이때 동일한 견해를 지닌 자들은 서로를

samānasaṃvāsaka라는 이름으로, 한편 자신들과 대립하는 견해를

지니는 상대방은 nānāsaṃvāsaka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된다고 볼

수 있다.

 

먼저, ‘승가가 화합하여 그를 불견·불참회·불사로 거죄한다’거나, 혹

은 ‘승가가 화합하여 불견·불참회·불사로 거죄된 그를 해죄한다’는 표

현을 보자. 불견·불참회·불사란 3종의 거죄갈마를 말한다. 주로 악견

(惡見)을 주장하여 이를 시정할 것을 승가로부터 지적받았음에도 불

구하고 그 악견을 인정하지도, 참회하지도, 버리지도 않는 자에게 승가

가 내리는 일종의 징벌갈마이다. 징벌갈마를 받은 자는 불공수(不共受,

asaṃbhoga)라고 하여 많은 제약을 받게 되는데,27) 이것을 ‘승가가 화

합하여 그를 불견·불참회·불사로 거죄하여 nānāsaṃvāsaka로 한다’

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가 뉘우치고 승가로부터 해죄갈마를 받는다

면 그는 언제라도 승가의 정식 구성원으로 복귀할 수 있다. 이를 ‘승가

가 화합하여 불견·불참회·불사로 거죄된 그를 해죄한다.’라고 표현하

는 것이다.

27) 승가로부터 악견을 버릴 것을 지시받고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바라제목차에

    서는 바일제죄를 적용시킨다. 하지만, 건도부에서는 거죄갈마라는 일종의 징벌갈마

    를 적용하여 그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악견을 버릴 때까지 자신이 속한 승가의

    구성원들과 공동생활을 하지 못하는 상태, 즉 불공수(不共受, asaṃbhoga)의 상태에

    두게 된다. 이 점에 대해서는 졸고, ‘惡見 주장자에 대한 불교 승가의 입장(1) -‘惡見

    違諫戒’와 ‘不捨惡見거죄갈마’를 중심으로-’,『 大覺思想』제6권 (서울: 대각사상연구

    회, 2003), 197-225쪽을 참조 바람.

 

두 번째 근거인, ‘스스로 자신을 nānāsaṃvāsaka로 한다’ 혹은 ‘스

스로 자신을 samānasaṃvāsaka로 한다’는 문장에 대해 Smp는 다

음과 같이 주석한다.

 

"‘스스로 자신을’이란, 이 경우, 승가에 의해 거죄갈마를 집행 받은 비법

설자들 쪽에 앉아 있던 자가 ‘당신들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까?’

라고[물어], 그들(자신과 같은 쪽의 자들)과 반대쪽 사람들의[양쪽의]

의견을 듣고, ‘이쪽이 비법을 말하는 자들이다. 반대쪽이 법을 말하는

자들이다’라는 생각을 일으켜, 그는 그들(비법을 말하는 자들) 속에 앉

아 있으면서, 그들과는 nānāsaṃvāsaka가 되고, 갈마를 비난하고, 반

대쪽(여법자들)에 대해서도 가까이 오지 않은 것을 비난한다.28) 이렇게

해서 스스로 자신을 nānāsaṃvāsaka로 하는 것이다.

samānasaṃvāsaka란, 이 경우, 비법설자들 쪽에 앉아 있던 자가, ‘이

자들은 비법을 말하는 자들이며, 다른 쪽의 자들이 법을 말하는 자들이

다’ 라고[생각하고], 그들(여법자들)속으로 들어간다. 혹은 어떤 쪽에

앉아있든지 간에 이들이 여법설자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스스로 자신

을 samānasaṃvāsaka로 하는 것이라고 이해해야 한다."29)

28) ‘반대쪽(여법자들)에 대해서도 가까이 오지 않은 것을 비난한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을 의미하는지 분명하지 않다. 갈마를 통해 적극적으로 화합을 구하지 않았

    다는 점을 비난한다는 의미인가?

29) Smp ⅴ, 1149-1150쪽

 

이 주석에서 ‘스스로 자신을 nānāsaṃvāsaka로 한다’는 것에 관

한 설명은 약간 구체적인 내용을 파악하기 어렵지만, 아마도 다음과 같

은 상황일 것이다. 어떤 한 비구가 거죄갈마를 받고, 그를 따르는 비구

들과 그에게 갈마를 실행한 비구들에게 따르는 비구들의 두 그룹으로

나뉘어 있었다. 다름 아닌「 꼬삼비건도」에 전해지는 것과 같은 상황이

다. 전자는 후자로부터 본다면 당연히 비법설자이다. 그런데, 어떤 비

구가 거죄갈마를 받은 비구의 그룹에 앉아 있었는데(아마 그들의 주장

이 옳다고 판단하여), 다시 한 번 양쪽의 주장을 확인해 본 결과, ‘아

아, 실은 거죄갈마를 받은 쪽을 따르는 그룹이 비법설자이며, 상대쪽

이 여법설자이구나’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것에 의해, 그는 원래

자신이 올바르다고 생각해서 선택한 그룹, 즉 거죄갈마를 받은 그룹

과는 정신적으로 나뉘고, 그들에 의한 갈마를 비난하고, 그들과는

nānāsaṃvāsaka가 되는 것이다.

 

한편, 이 인용문의 후반에 보이는 ‘스스로 자신을 samānasaṃvāsaka로

한다’에 대한 주석에서는 보다 명확한 상황을 읽을 수 있다. 자

신이 속해 있는 승가가 비법설자들이라는 것을 안 자가, 이 자들은 비법

설자이며, 상대 그룹의 자들이 여법설자라고 생각하여, 그들, 즉 여

법설자 속으로 들어가는 것에 의해 그들과 samānasaṃvāsaka가 되

는 것이다.

 

이와 같이, samānasaṃvāsaka 혹은 nānāsaṃvāsaka가 되는 두

가지 근거의 배경에는 승가의 거죄갈마가 깊이 관여하고 있으며, 갈마

의 결과에 대해 의견의 일치를 본 자들은 samānasaṃvāsaka로, 반

대 의견을 지닌 자들은 nānāsaṃvāsaka로 불린다는 사실을 알 수 있

다. 즉, 이 두 용어는 견해의 차이의 유무를 구별할 필요성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30)

30) 단지 갈마를 함께 실행한다거나 하지 않는다거나 하는 의미만을 나타내고자 한다

    면, saṃvāsa(共住)와 asaṃvāsa(不共住)라는 표현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실

    제로 asaṃvāsa는 바라이죄를 저지른 자에게 부과되는 벌로서 빨리율에 나타난

    다. 한편, Kieffer-Pülz은 경계에 관한 연구에서 간단히 samānasaṃvāsaka와

    nānāsaṃvāsaka에 대해 언급하며, 이 용어들이 포살 등의 갈마의 공동 실행 및 율의

    해석 등에 있어 의견 차이를 둘러싼 대립으로부터 생겨났다는 시점에서 파악하고 있

    다. 본 논문의 연구 결과와도 일치하는 견해이다. 그런데 Kieffer-Pülz는 동일한 공

    동체에 속하는 상태를 나타낸다는 점에서 saṃvāsa와 samānasaṃvāsa(ka)를 동의

    어로 이해한다. 분명 이 두 용어는 동일한 현전승가에 속하며 공동으로 승가갈마를

    실행하는 상태를 나타낸다는 점에서 거의 같은 의미로 이해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saṃvāsa만으로도 공동생활의 상태를 나타낼 수 있는 것을, samāna라는 말

    을 붙여 ‘공주생활을 함께 한다’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것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와

    상대 공동체를 구별할 필요성이 발생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따라서 좀 더 주의 깊

    은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P. Kieffer-Pülz, The Sīmā , (Berlin: Dietrich Reimer

    Verlag, 1992), 52-54쪽.

 

2. 화합승의 의미-정신적·육체적 결합을 기반으로 한 화합갈마의 공동실행

이상의 고찰 결과를 바탕으로 생각해 본다면, 본 논문의 제2장에서

제시한 화합승의 정의에 나타나는 samānasaṃvāsako는 동일한 주처

에 거주하며 의식주를 함께 한다는 동주(同住) 정도의 의미가 아닌,31)

의견을 함께 하며 포살 등의 승가갈마를 실행해 갈 수 있는 든든한 정

신적 유대관계를 지닌 사람들을 의미하는 말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점은 문제의 화합승의 정의에 나타나는 ‘화합(samagga)’이란 말에

대한 Smp 의 다음과 같은 설명을 통해 보다 명확히 드러난다.

31) Olivelle는 상세한 고찰은 하고 있지 않지만, 다른 주처(āvāsa)에 사는 비구들

    도 samānasaṃvāsaka라 불리는 경우가 빨리율에서 발견된다는 사실로부터,

    samānasaṃvāsaka가 단지 토지나 영역을 의미하는 말이 아닐 가능성을 지적하고 있

    다. P. Olivelle, The Origin and the Early Development of Buddhist Monachism ,

    (Colombo: Gunasena, 1974), 38-39쪽.

 

"화합이란, 마음이 결합되고, 육체가 떠나지 않은 것이다. [경분별]의

어구의 주석에는 바로 이 의미가 설해진 것이다. samānasaṃvāsako

라는 말은 마음이 떠나 있지 않은 것이다. samānasīmāya ṭhito라는

말은 육체가[떠나 있지 않은 것이다]. 무슨 이유인가? samānasaṃvāsako는

주장에 의한 nānāsaṃvāsaka나, 갈마에 의한 nānāsaṃvāsaka가

없는 동일한 마음이므로 마음이 떠나 있지 않은 것이며, samānasīmāya

ṭhito는 육체적인 화합을 주는 것이므로 육체가 떠나 있지 않은 것이다."32)

32) Smp ⅲ, 607쪽

 

즉, samānasaṃvāsaka는 동일한 주장이나 동일한 갈마에 의해 정

신적인 면에서 나뉘어 있지 않은 것을 의미하는 한편, samānasīmāya

ṭhito는 육체적인 면에서 나뉘어 있지 않은 것, 다시 말해, 같은 경계라

고 하는, 동일한 공간에 서 있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 이해에 따르

면, 화합은 정신적인 면과 육체적인 면의 양쪽에 걸쳐 있으며, 이 두 가

지 요소가 모두 갖추어졌을 때 실현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왜 화합의 상징인 포살 등의 승가갈마는 정신적·육체적

인 결합을 통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일까? 이 문제에 대해서는 승가갈

마의 특징 등을 고려한 좀 더 상세한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여기서 간

단히 언급해 두고자 한다.

 

승가에서는 모든 대소사를 갈마라는 승가회의를 통해 결정하는데,

갈마는 동일한 경계 안에 있는 모든 이들의 만장일치를 통해 결론을

내리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이 ‘만장일치에 의한 결정’이라고 하는 원

칙의 배경에는 단순히 승가 구성원 전원의 의견을 평등하게 모두 반영

한다고 하는 의미보다는, 승가가 붓다의 가르침에 근거하여 여법하다고

판단한 사안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자 없이 모두 동의했다고 하는 것

에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예를 들어, 승가에 쟁사(諍事)가 발생했을 경우 그 해결법을 제시하

는「 멸쟁건도」의 내용을 보면, 쟁사 해결의 기본원칙으로 제시되는 중

요한 요소는 ‘여법설자가 비법설자를 이기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 여법

과 비법을 판단하는 것은 승가에 의해 매우 엄격한 기준을 통해 선발

된 갈마의 사회자이다.

 

혹은 좀 더 복잡한 쟁사일 경우에는 위원회 같은 것이 구성되어 몇

명의 장로들이 모여 여법과 비법을 결정하기도 한다. 여하튼 이렇게 선

발된 비구들은 자신이 여법이라 판단한 사항에 대해 다른 대중들의 동

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만약 이것이 제대로 실행되지 않는다면 이들은

목적이 이루어질 때까지 여러 가지 방법으로 갈마를 무산시킬 수도 있

다.33) 이와 같은 점을 고려할 때, ‘만장일치’를 표방한 갈마의 배경에는

반드시 ‘여법’이라는 원칙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단지 다

수의 의견이라든가 혹은 승가 전원의 의견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기 보

다는, 훌륭한 인격과 학식을 지닌 일부 장로들의 ‘붓다의 법과 율에 근

거한 여법한 판단’에 대해 승가 전원이 동의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

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율장에서는 갈마를 이끌어가는 사회자의

선발 등에 매우 엄격한 기준을 부여하는 것이다.

33) Vin ⅱ, 97-99쪽

 

그런데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승가의 이런 운영 방침이야말로 승가

에 타협할 수 없는 의견 대립을 불러일으킬 위험을 안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위에서 소개한「 꼬삼비건도」의 전승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 바와 같

이, 여법과 비법을 판단하기 어려운 미묘한 사안일 경우 일방적인 결정

은 승가 안에 불화를 일으키게 된다. 물론, 이런 경우 등을 대비해 율

장에서는 여러 가지 가르침을 주고 있지만, 모든 것이 항상 원칙대로만

움직여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승가측에서 본다면 여법한 가르침

을 기반으로 비법을 다스려 나간다는 확고한 신념하에 이루어지는 일

이겠지만, 그 판단에 납득할 수 없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본다면 승가의

이런 태도나 판단이야말로 비법이며, 오히려 자신들이 여법설자인 것이

다. 이런 경우, 서로를 비법설자라고 생각하는 자들끼리 만장일치를 원

칙으로 하는 갈마를 지속하며 동일한 현전승가의 구성원으로 지낼

수는 없는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그 구체적인 시기를 추정하기 어렵지만, 승가화합과

파승이라는 문제가 갈마의 공동실행 여부라는 구체적인 현상과 밀접

하게 관련되면서, 여법에 관한 공통된 이해를 기반으로 한 갈등 없는

갈마 실행을 위한 노력이 기울여졌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갈마를 둘러

싸고 발생하는 대립은 사실 현실적으로 완전히 피해가기는 어렵다.34)

34) 갈마가 승가의 대소사를 결정하는 방법인 만큼, 율장에서는 갈마를 진행하는 사회자

    의 선정은 물론이거니와, 구체적인 절차 등 올바른 갈마의 실행방법에 대하여 상세하

    고도 신중하게 규정하고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갈마의 결정을 둘러싼 트러블은 분명

    많이 줄어들게 된다. 하지만, 제2결집의 전승에서 보는 바와 같이, 왓지족 출신의 비

    구들이 실천하고 있던 금은수납이라는 행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이 사실을 재가

    신자들에게 인식시킨 야사비구가 오히려 왓지족 출신의 비구들로 구성된 승가로부터

    징벌갈마를 받게 되는 것과 같은 경우도 있다. 금은수납은 율에 비추어 본다면 분명

    잘못된 행동임에도 불구하고, 승가의 일방적인 판단으로 오히려 야사는 범계자로 몰

    린 것이다. 이것은 승가 전체의 의도에 따라 때로는 불합리한 갈마의 결과가 나타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야사비구는 이 갈마를 비법이라 비난하며, 왓지족 출신의 비

    구들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인도 각지로부터 자신의 의견을 지

    지해 줄 비구들을 소집하고, 이를 계기로 결국 승가는 상좌부와 대중부로 근본분열하

    게 되었다고 한다. Vin ⅱ, 294-308쪽

 

samānasaṃvāsaka나 nānāsaṃvāsaka라는 용어는 승가가 안고 있

던 이런 문제에 대한 일종의 해결책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스스로의 선택이든 승가갈마에 의한 결정이든, 여하튼 의견을 달리 하

며 승가에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있는 자를 배제하고, 승가와 의견을

함께 하는 자들끼리 갈마를 진행함으로써 갈등 없는 승가운영을 지향

하게 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Ⅳ. 결론

 

이상, 빨리율에 나타나는 화합의 정의를 중심으로 승가화합의 판단

기준을 살펴보았다. 화합승이란 동일한 경계 안에 선 자들이 여법에 대

한 공통된 인식을 기반으로 공동 화합갈마를 실행하는 것을 말한다.

승가와 의견 대립을 일으키고 승가로부터 시정을 요구받았음에도 불구

하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3종의 거죄갈마를 받거나, 혹은 스스로 승

가와 의견을 달리 한다는 점을 밝힌 자는 nānāsaṃvāsaka라는 이름

으로 구별되어, 자신이 원래 속해 있던 현전승가의 정식 구성원으로서

의 자격은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35) 물론 그가 자신의 죄를 인정하

고 해죄갈마를 받는다면 언제든지 samānasaṃvāsaka로 복귀할 수

있다.

35) nānāsaṃvāsaka로 분류된 자들은 더 이상 승가의 정식구성원(물론 현전승가

    의 구성원을 말한다)으로 헤아려지지 않게 된다. 데와닷따의 파승사건을 전하는

   「파승건도」에서는 파승에 관해 묻는 우빨리존자에게 붓다는 ‘우빨리여, 청정비

    구이며, samānasaṃvāsaka이며, 동일한 경계 안에 선 자가 승가를 파괴하느니

    라.’(bhikkhu kho Upāli pakatatto samānasaṃvāsako samānasīmāya ṭhito

    saṃghaṃ bhindatīti.)라고 대답한다. Vin ⅱ, 204쪽. 단, samānasaṃvāsaka와

    nānāsaṃvāsaka가 서로 어떤 관계를 유지했는가, 그 구체적인 내용은 지금 단계에

    서는 단언하기 어렵다. 분명한 것은, 이들이 포살 등의 승가갈마를 함께 하지 않았다

    는 점이며, 이것은 그들이 서로를 현전승가의 정식 멤버로 인정하지 않았음을 보여주

    는 것이다.

 

승가의 이와 같은 화합 유지 방법은 한편에서 보면, 상당히 독선적

인 감도 없지 않다. 하지만, samānasaṃvāsaka라는 이름으로 현전승

가 차원에서의 확고한 화합을 실현하고, 자신들과 도저히 의견의 타협

을 볼 수 없는 자들을 nānāsaṃvāsaka라는 이름으로 구별하여 그들

의 존재를 인정해 주는 태도야말로 전체적인 불교의 화합을 위해서는

유효한 방법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nānāsaṃvāsaka라는 개념은 파

승, 즉 동일한 현전승가 안에서 대립하는 두 그룹이 개별적으로 승가갈

마를 실행하며 불화를 초래하는 상황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혹은 미

연에 방지하기 위한 방법으로서는 상당히 유효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단, 파승자(saṃghabhedaka)와 nānāsaṃvāsaka의 관계에 대해서는

앞으로 좀 더 상세한 검토가 필요하다. 율에 따라, 이 양자를 명확히

구별하는 경우도 있고, 파승의 결과 nānāsaṃvāsaka가 된다는 식으

로 기술하여 결국 양자가 같은 의미로 다루어지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

다. 승가는 내부에서 일어난 이설(異說)에 대해 서로 적절한 거리를 유

지하면서도, 또 한편으로 적절히 그것들을 병존시켜 나가는 길을 발견

한 것이다. 분열에 의한 통합이라고나 할까. 이것은 현전승가 차원에서

의 화합은 물론이거니와, 사방승가라고 하는, 점단위의 수많은 현전승

가를 포함하는 형태로 보다 폭 넓은 승가의 개념과 관련되면서 불교교

단 전체의 보다 고차원적인 화합을 실현시켰다고 생각된다.

 

 

 

 

 

 

 

 

 

 

승가화합의 판단 기준에 관하여/이자랑

승가화합의 판단 기준에 관하여 이 자랑/동국대학교 Ⅰ. 서론 한국불교를 비롯하여 중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 불교권에서는 계 (界, sīmā), 즉 경계가 승가공동체의 생활에서 필수적인 개념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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