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장극복

마음 수행과 마의 장애

수선님 2021. 6. 20. 11:02

마음 수행과 마의 장애 1

無上大道 설하는 자도 없고 듣는 자도 없고 설할 법도 없다. 無上大道는 전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大道를 이해시키기 이한 방편으로 法을 설하는 것이다. 法을 들을 때는 설하는 법문 너머의 법을 깨쳐야 한다.

부처님께서는 成佛을 이루기 전 마의 장애를 겪으셨다. 6욕천<他化自在天>의 마왕과 함께 온 魔의 군사를 마구니라고 한다. 수행 과정엔 반드시 魔의 장애가 발생한다. 마의 애를 알지 못하면 대도를 향해 나아갈 수 없게 된다. 마구니가 침범하면 작은 神通力으로 세상을 惑世誣民 하기도 한다. 마구니는 수행자의 지혜와 혜명을 파괴해 결국 폐인으로 만든다. 그러므로 이런 진리의 법문을 통해 이해해야만 마음공부에 도움이 된다.

 

魔의 장애를 알기 위해선 마음의 실상을 알아야 한다. 마음은 心意識 3중 구조로 작용된다. 이 3중 구조 때문에 眞如本性의 지혜는 識으로 전변된다. 지혜가 識<알음알이>으로 전변될 때 마가 침범한다. 한번 魔가 침범하면 마장을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阿賴耶識이라 부르든 영혼이라 부르든 마음은 오직 한 마음일 뿐이다.

한 마음은 의식과 무의식을 함께 갖추고 있다. 阿賴耶識의 마음 외에 眞如本性의 淸淨心의 실체가 따로 다면 阿賴耶識의 마음은 眞如本性과 이원론적 개념 속에서 혼란스러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쓰고 있는 마음은 8 阿賴耶識 제7 말라식 제6 의식의 마음들은 眞如本性과 모두 한 덩어리의 마음이라는 것이다. 心意識 3중 구조로 된 마음은 온갖 번뇌와 무명을 만들어 낸다. 그러므로 마음의 실체를 바로 정확히 알아야 한다.

 

阿賴耶識=眞如本性=淸淨心=一心=自性=毘盧遮那佛=創造主

그 마음이 바로 내 마음이다. 그런데 우리는 無量功德을 갖춘 自性佛의 내 마음을 믿기 어려워한다. 無量功德을 갖춘 내 마음을 믿지 못하는 것은 無明 때문이다. 마음에는 空劫 이전의 시대부터 미래까지의 훈습정보가 축적되어 내장되어 있다. 선천적 薰習정보에는 생리적 유전정보와 集團 無意識이 저장되어 있다. 집단 무의식에는 神話的 무의식 共同體 무의식 인간 이전의 무의식이 들어 있다. 한 마디로 내 마음 속에는 時空을 포함한 삼라만상의 모든 정보가 다 내장되어 있다. 생리적 유전정보에는 신체발육과 성장 및 유전인자인 DNA의 활동정보가 들어 있다.

 

우리는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는 순간 이미 부모가 정해져 있다. 그러므로 내 마음 속에는 부모와 조상들이 지은 業識과 薰習들이 모두 들어 있다. 눈으로 눈을 보지 못하듯 마음으로는 마음을 보지 못한다. 우리는 5감 6감을 통해 認識되어야만 있다고 생각한다. 볼 수 없는 마음은 온갖 마음을 다 만들어 낸다. 마음은 不生不滅이며 時空을 초월한다. 마음은 生死와 涅槃 智慧와 煩惱가 나누어지기 이전의 모습이다.

그런데 우리는 無量功德을 갖춘 한 마음을 모르고 살고 있다. 비유하자면 지구라는 거대한 몸을 가지고 작은 모래에 빠져 사는 것과 같다. 중생이 무량공덕장의 한 마음을 모르고 사는 것은 티끌 스스로가 우주인 줄 모르고 티끌만을 집착하며 사는 것과 같다. 그러다 티끌 스스로가 광활한 우주임을 발견하는 순간 깨침이 있다. 중생은 생명체인 몸이 내가 아니라 한 마음이 나임을 깨닫는 순간 大解脫을 하게 된다.  

 

大解脫을 얻기 위해선

1.자기 마음을 믿어야 한다.

나와 내 마음이 이미 부처님이고 온 宇宙法界의 창조주임을 수없이 들었지만 아직도 의심하고 있다. 중생의 마음이 부처임을 믿지 못하는 이유는 마구니 때문이다. 마구니는 항상 깨달음을 방해한다. 우리가 成佛하지 못하는 것은 마음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이 부처임을 믿지 못하는 것은 마구니의 노예가 된 탓이 크다. 우리는 無明 때문에 티끌과 같은 의식만 의지한 채 우주보다 더 광활한 무의식과 참 나의 실상을 모르고 있다.

의식을 초월하면 무의식이 열린다. 무의식의 세계는 우주보다 더 광활하다. 의식과 무의식을 온전히 발견할 때 완전한 깨달음인 無上正等正覺을 얻는다. 석존은 한 마음을 온전히 깨달아 宿命通 天眼通 漏盡通 3명을 얻고 제법의 실상<緣起法>을 證得하셨다. 무의식의 세계는 온갖 신통변화가 존재한다. 스스로 갖춘 마음의 무한한 능력을 믿어라. 무의식의 신통변화는 全知全能하다. 외도는 전지전능의 신통력을 절대神<創造神>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全知全能한 절대자는 바로 내 자신이다. 내면의 무의식으로 들어갈 때 우리 몸과 마음은 神通변화의 기적이 생긴다. 무의식의 마음은 生死 涅槃이 없다. 불생불멸이다. 지구나 우주가 변하지 않듯 무의식의 세계는 전혀 생사가 없다. 한 마음은 思量할 수 없는 無量義이다. 思量할 수 없으니 중생은 마음을 믿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런 神通妙用한 일들은 진리일까?

이것과 저것이 緣起함으로써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 것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변화한다. 그래서 緣起라고 하는 것은 空性이다. 神通變化는 나타나지만 본래 없는 것이다. 마음의 신통변화는 空劫 이전부터 선천적 薰習정보가 다 저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음에 내장된 薰習정보들은 하늘에 떠 있는 구름처럼 실체가 없다. 무의식 속 선천적 훈습정보는 無自性 空性이다. 훈습정보는 실제가 아니고 기억이다. 그러나 그 기억을 통해서 신통변화가 나타나고 있지만 마음의 신통변화는 진짜 실체가 아니기 때문에 空이며 진리가 아니다. 그렇다면 無量功德을 갖춘 한 마음을 두고 무엇을 따로 찾을 것인가?      

참 나를 모르면 한 마음 밖에서 神을 찾는다. 無量功德을 갖춘 眞如本性은 우리 모두의 한 마음이다. 우주 森羅萬象은 모두 한 마음이 만든 작품이다. 우주 삼라만상의 창조주는 한 마음이다. 일체 삼라만상 만물을 만들어내는 게 나와 우리의 실체이고 그 자리는 오직 하나다. 한 마음이 나를 만들고 너를 만든다.    

 

大道의 신실한 실상의 法은 법을 설하는 이도 한 마음 법을 듣는 이도 한 마음 전하는 진리도 한 마음 이 모든 것을 보고 아는 이도 한 마음이다. 그러니 한 법도 전할 것이 없다.

 

마음의 9가지 오염심

1.無明業相 – 眞如本性의 한 마음을 알지 못해 움직이는 것

2.能見相 – 자신을 보고자 함으로써 생겨나는 모습<主觀心>

3.境界相 – 보여지는 경계의 모습<客觀心>

4.智相 – 자아의식

5.相續相 – 생각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것

6.執取相 – 집착하는 모습

7.計名字相 – 경계에 대해 이름을 붙여 헤아리는 것

8.起業相 – 갖가지 업을 짓는 모습

9.業繫苦相 – 업에 매인 괴로운 모습

한 마디로 실상은 모른다. 대도를 깨친다고 해서 세상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인 다를까? 단지 생각의 주체만 달라진다. 깨닫지 못하면 識으로 분별을 일으키고 깨달으면 지혜가 나타나 이원화된 대립과 분별이 사라진다. 汚染心 때문에 見聞覺知 할 때마다 분별을 일으켜 세상을 바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  

 

마음 수행

1.오감을 제어하여 느낌이 無爲가 되게 하는 것이다.

오감 작용은 항상 번뇌를 일으킨다. 보고 들으면 반드시 번뇌를 발생시킨다. 오감은 어떤 대상을 접촉하더라도 번뇌를 일으키지 않는 그런 無爲의 마음이 되어야 한다.

無爲는 그 무엇에도 대응하지 않는 것이다. 무엇을 접촉하든 요동치지 말라. 어떤 느낌이 있더라도 좋다 나쁘다 분별하지 말라. 무위의 반대말 有爲는 조작이나 함이 있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뭐 조금 하고 마음에 상을 갖는데 이것이 有爲心이다. 무엇을 접촉하든 無爲로 대하라. 이것이 무위심의 成所作智이다.   

2.貪嗔痴를 일으키는 제6식을 여의고 분별심을 소멸하라.

나와 남을 二元化시켜 대립하고 나를 우선시하는 마음이 발생한다. 我癡 我見 我慢 我愛의 4가지 근본 번뇌를 일으키는 제7 말나식의 작용으로 인해 제6의식은 항상 내 중심적으로 남과 나를 대립시킨다. 나와 남을 차별화하는 마음이 제6식에서 발생한다. 나와 남이 둘이 아니고 일체 모두가 나이다. 똥도 나인데 무엇이 더럽고 깨끗한 것인가? 제6식의 작용을 여의면 분별심의 소멸로 대상을 바르게 관찰하는 지혜가 생긴다. 이것이 보편성의 妙觀察智이다.     

3.자아의식이 강한 제7식을 여의면 아집의 소멸로 자타가 동등한 경지에 이른다.

진실된 참 나를 깨침으로써 보편성과 평등성을 회복하여 平等性智를 이룬다.

4.마음의 이원화가 시작되는 제8 阿賴耶識의 生動心 소멸로 만상을 있는 그대로 비추어 보라.

阿賴耶識의 마음을 조절 제어 꿰뚫으면 二元化된 마음을 멈출 수 있다. 이원화되는 마음은 한 생각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 생각 멈추면 이것이 大圓鏡智다. 깨달음의 시작은 믿음이다. 일체와 나는 둘이 아니다. 나는 한 뿌리다. 무의식 세계의 내면으로 들어가면 이미 나와 너는 똑같은 하나다. 부처와 覺者는 나와 똑같은 마음이다. 괴로움이 소멸되는 행복의 결과를 얻을 것이다.

 

수행 과정엔 반드시 마의 장애가 있다.

항상 중생의 삶으로 이끄는 존재는 내 마음 속에 있다. 마는 수행자의 마음을 파괴하고 법신의 혜명을 깨뜨린다. 탐지치 3독을 일으키는 마는 아뢰야식 속에 이미 들어 있다.   

 

5감으로 보여지는 일체의 경계는 모두 마장이다 <外魔>

4대로 이루어진 외계나 몸뚱어리를 마라고 한다. 受相行識 등 정신작용 모두 魔이다 <잡아함경>

내 마음 속 일체 경계는 모두 마장이다. 세존은 5온의 요소들이 작용해서 생기는 내재적 갈등이나 불안을 魔라고 보았다. 또 세존은 18계도 魔에 속한다고 하였다. 그 마가 들끓는 세계를 통틀어 욕계세계라고 한다.

우리가 사는 욕계는 마왕 파순과 함께 공존하는 세계다. 마를 降伏시키려면 모든 것을 空한 것으로 봐야 한다. 空한 것으로 보는 空 또한 공한 것으로 보라.   

 

일체 삼라만상의 우리가 보고 있는 일체 경계를 다 空으로 보라. 또 내 몸도 空임을 보라. 또 내 마음도 空임을 보라. 마구니도 공으로 보라. 일체를 모두 공으로 보고 공으로 보는 마음조차도 공으로 보라. 마음이 무념무상이 될 때 일체 마구니는 소멸된다 <大智度論>

 

마를 소멸하는 방법

1.염불을 하라.

2.주력을 하라.

3.마를 알아차리고 마를 降伏시켜라.

4.마와 부처가 둘이 아님을 알라.

일체만물은 그대로 진리이며 실재이다. 마와 부처님의 세계가 같고 열반과 생사의 세계가 둘이 아니다.

7회. 대풍 범각스님. 마음 수행과 마음의 장애 1 중에서

 

마음수행과 마의 장애 2

과거부터 시작된 貪嗔癡 3독과 업들로 薰習된 정보를 가진 마음. 현실 속에 어떤 환경을 만나면 魔의 장애가 발생한다. 眞如本性을 발현하기 위해선 魔는 반드시 극복해야 할 일이다. 마의 장애나 마구니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魔의 장애를 알지 못하면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 마가 침범해도 마에게 당한 줄 모른다. 마가 침범하면 폐인이 되거나 마의 권속으로 왜 마구니가 발생하는가?

 

제8 阿賴耶識의 마음을 의지해 제7 말라식 제6 의식이 일어난다. 魔가 침범하는 이유는 오염된 마음으로 분별하기 때문이다. 무명으로 인해 業識이 일어나면 마가 침범한다. 마음은 무명 업식으로 인해 한 생각을 일으킨다. 一念은 不覺의 망념으로 인해 보는 자<能見相>와 境界相을 만든다. 마음은 보는 能見相을 개별 자아로 잘못 착각하여 자아의식<智相>을 만든다. 자아의식은 念念히 相續하여 끝없이 이어지게<相續相> 된다. 나라는 자아의식은 지금까지 갖고 있고 살아 있는 동안 계속 이어질 것이다. 영혼이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오염된 자아의식 때문이다.

 

일상의식은 나와 남을 二元化하여 바깥 경계에 집착하고 집착한 것들은 言語化시키고 名稱化시켜 저장하여 스스로<計名字相> 매인다. 이렇게 分別 집착에 따른 業을 짓고<起業相> 업에 따라 고통의 果報를<業繫苦相> 받는다. 무명으로 인한 心意識의 중층구조는 마음의 장애를 일으킨다. 인식하는 것도 마음이요 인식하는 내용도 마음이다. 그러나 마음은 마음을 보지 못한다. 마음은 마음을 보지 못하므로 얻을 바가 없다. 이 세상 일체는 오직 한 마음의 조화다. 한 마음 외에 따로 한 물건도 없다. 아무런 차별이 없는 한 곳 한 공간이다.  

 

분별이 사라지면 오직 한 마음 一心 뿐이다. 물방울은 스스로가 물인 줄 모른다. 스스로가 眞如本性인 줄 모르고 일으키는 分別心 때문에 마가 침범한다. 우리는 欲界 色界 無色界 3界 중 욕계에 살고 있다. 욕계 중 제일 높은 세계가 마왕이 거느리는 他化自在天이다. 따라서 욕계에 살고 있는 중생은 마왕의 백성인 셈이다. 그래서 욕계를 벗어나려면 반드시 마왕의 시험을 거쳐야 한다. 마왕의 침범을 극복하여 無上正等正覺을 얻으신 부처님 때문에 중생의 깨달음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마가 침범하는 것이다.

 

道高魔盛 도가 높아지면 마도 치성하다.

수행이 깊을수록 수행자를 괴롭히는 마는 더욱 치성해진다. 지리산에 공부할 때의 일이다. 마의 첫 번째 시험은 공포와 두려움이다. 법당 안 연등이 심하게 흔들리는 환청 환각이 든다. 움막 안에 있으면 형상을 알 수 없는 괴물이 들어와 난리를 쳤다.

두려움과 공포는 마구니의 장난이다. 두 번째 시험은 애욕과 욕망이다. 눈을 뜨고 있는데도 아름다운 선녀들 환상이 나타난다. 세 번째 시험은 온갖 번뇌와 망상들이 혼란을 일으킨다. 이렇게 한 순간도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힐 수 없는 그런 시험들이 계속 발생한다. 이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살려주세요 뿐이었다. 이렇게 一念이 되는 순간 나는 또 다른 나를 보았다. 빌고 있는 내가 나를 보고 있었다. 마의 장애는 수행 정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魔는 산스크리트어로 Mara<魔羅>이다. 의역하면 障 殺者 惡者 惡魔 邪魔 魔怨 魔王 등으로 불린다. 마를 욕심의 주인이라 하여 欲主 사람을 유인하여 집착을 일으키므로 화전 5근을 파괴하는 5화살이라 하여 五箭<五欲箭 五情箭>이라고도 한다 <대지도론 5권>

 

결론적으로 말하면 5온으로 이뤄진 내 몸과 마음이 魔였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바깥 경계도 모두 다 魔였다. 이렇게 끝없이 내 마음을 고요히 두지 않고 요동치게 만드는 정체는 바로 내 육체였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雜阿含經에서 5온이 魔라고 하셨다. 또한 바깥 경계인 6경 6진이 다 魔라고 하셨다.

중생이 속고 있는 중요한 요인은 表象 假象 虛像 때문이다. 마음 속에 맺혀져 있는 사실이 아닌 환상이 표상이며 연기하고 변화하는 존재를 실재하는 존재라고 착각하는 것이 가상이고 과거를 추억하고 미래를 상상하며 있다는 생각이 虛像이다. 또한 내 意根으로 생각되어지는 모든 것들은 다 虛像이다. 이처럼 表象 假象 虛像은 마음의 장애를 일으키는 주범이다.

大智度論에 의하면 마가 생기는 원인은 貪嗔癡 3독심 때문이라 하였다. 그러므로 貪嗔癡 3독심을 제거하면 마의 속박에서 벗어난다. 또한 마가 생기는 또 다른 중요한 요인은 分別心 때문이다. 그러므로 분별을 멈추면 마의 장애가 사라진다.

 

마의 종류

5온이 수행을 장애하는 蘊魔. 심식에서 일어나는 8만4천 가지 煩惱魔. 중생을 죽음의 굴레로 속박하고 장애하는 死魔. 욕망과 번뇌의 상징인 마왕 파순을 의미하는 自在天魔. 蘊魔 煩惱魔 死魔는 내 내면에서 일어나는 內魔다. 自在天魔는 外魔이다. 이 4가지 마는 항상 나를 유혹한다. 내 마음 속 內魔가 방해의 주범이다. 수행을 방해하는 내적 외적 장애가 다 마구니이다.

 

천태교학은 自在天魔를 추척귀 시미귀 마라귀 등 3가지 귀신마로 구분한다. 벌레 같은 여러 형상으로 수행인을 괴롭히는 마가 추척귀이다. 12띠의 짐승이 변해 여러 형색을 나타내며 수행자를 방해하는 마가 시미귀이다. 두려움 애욕 혼란 등 3가지 경계로 변화하여 수행자의 착한 마음을 파괴하는 마가 마라귀이다.

 

마가 나타나는 대표적인 방식

1.형상을 나타내거나 설법을 한다.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색감 음성 등의 느낌으로 나타나는 것은 모두 마구니에 놀아나는 것이다.  

2.神通을 얻거나 변재를 일으킨다.

3.의혹을 일으키거나 업을 짓게 한다.

4.갑자기 三昧에 들거나 禪을 얻게 한다.

눈 밝은 명안종사의 선지식들에게 반드시 물어서 점검하거나 답을 얻어야 한다.

 

귀신마를 대처하는 법

추척귀는 꾸짖거나 戒目을 외운다. 시미귀는 12띠의 시간을 알아 그에 해당하는 짐승의 이름을 부르며 꾸짖는다. 마라귀는 空觀을 철저히 행하거나 능엄주를 지송한다.

 

1.지극한 마음으로 염불을 함으로써 마를 극복한다.

부처님 명호를 외우고<念佛> 法을 생각하고<念法> 스님을 생각하고<念僧> 계율을 생각하고<念戒> 보시를 생각하고<念施> 하늘을 생각하는<念天> 이런 염불수행으로 마를 물리칠 수 있다 <잡아함경>

2.呪力<다라니>로 마를 대처한다.

능히 막는다=다라니. 관세음보살의 온화한 모습이 다라니를 외우자 더러운 마구니 모습으로 변해 사라지는 것을 체험했다. 마로 인해 생긴 병은 모름지기 깊은 觀力과 신비한 주문을 사용해야만 곧 그 치유를 얻을 수 있다 <마하지관>

3.諸法實相을 觀함으로써 마를 대처한다.

제법의 실상은 모습이 없다. 일체 경계가 空한 것을 관한다. 魔界가 곧 佛界임을 관한다.

보고 듣고 느끼는 경계가 모두 실제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아서 이를 받아들이거나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라는 諸法實相觀을 통해서 마장을 대처하기를 권하고 있다 <차제선문>

4.相卽의 원리로 마를 대처한다.  

마의 眞如와 부처님의 진여가 동일한 진여로 2가지가 없는 평등한 상의 眞如임을 알아 마와 부처님을 분별하지 않는다면 實際에 안주하게 된다 라고 相卽의 원리로 마를 대처할 것을 권한다 <마하지관>

相卽 – 번뇌 즉 보리. 魔界 卽 佛界와 같이 다른 2 개념이 하나로 會通됨을 말한다.

 

마의 世界든 불의 世界든 본래 자성이 없는 空이며 연기이므로 마계의 眞如와 불계의 眞如는 동일한 것이다. 마가 침범했을 때 선지식을 찾아가 점검을 받고 해결해야만 깨달음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 眞如本性은 無念의 상태라 어떠한 경계도 나타나지 않는다. 수행자가 이런 마의 경계를 알지 못하고 수행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수행을 방해하는 마의 권속이 될 수 있다.

8회. 대풍 범각스님. 마음 수행과 마의 장애 2 중에서

 

 

 

 

 

 

 

 

 

[출처] 699.마음 수행과 마의 장애|작성자 Inkf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