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난 자는 반드시 죽는다는 연기(緣起)의 법칙을 일러주고
재가자는 사불괴정(四不壞淨)을 닦아야 한다는 것이 經의 핵심
[원문]
(八五四) 如是我聞 : 一時, 佛住那梨迦聚落繁耆迦精舍. 爾時, 那梨迦聚落多人命終. 時, 有眾多比丘著衣持缽, 入那梨迦聚落乞食, 聞那梨迦聚落罽迦舍優婆塞命終, 尼迦吒 ․ 佉楞迦羅 ․ 迦多梨沙婆 ․ 闍露 ․ 優婆闍露 ․ 梨色吒 ․ 阿梨色吒 ․ 跋陀羅 ․ 須跋陀羅 ․ 耶舍耶輸陀 ․ 耶舍鬱多羅悉皆命終. 聞已, 還精舍, 舉衣缽, 洗足已, 詣佛所, 稽首佛足, 退坐一面, 白佛言 :“世尊! 我等眾多比丘晨朝入那梨迦聚落乞食, 聞罽迦舍優婆塞等命終. 世尊! 彼等命終, 當生何處?”
佛告諸比丘 :“彼罽迦舍等已斷五下分結, 得阿那含, 於天上般涅槃, 不復還生此世.’
諸比丘白佛 :“世尊! 復有過二百五十優婆塞命終, 復有五百優婆塞於此那梨迦聚落命終, 皆五下分結盡, 得阿那含, 於彼天上般涅槃, 不復還生此世? 復有過二百五十優婆塞命終, 皆三結盡, 貪 ․ 恚 ․ 癡薄, 得斯陀含, 當受一生, 究竟苦邊? 此那梨迦聚落, 復有五百優婆塞, 於此那梨迦聚落命終, 三結盡, 得須陀洹, 不墮惡趣法, 決定正向三菩提, 七有天人往生, 究竟苦邊?”
佛告諸比丘 :“汝等隨彼命終 ․ 彼命終而問者, 徒勞耳! 非是如來所樂答者. 夫生者有死, 何足為奇? 如來出世及不出世, 法性常住. 彼如來自知成等正覺, 顯現演說, 分別開示. 所謂是事有故是事有, 是事起故是事起, 緣無明有行, … 乃至緣生有老 ․ 病 ․ 死 ․ 憂 ․ 悲 ․ 惱 ․ 苦. 如是苦陰集 ; 無明滅則行滅, … 乃至生滅則老 ․ 病 ․ 死 ․ 憂 ․ 悲 ․ 惱 ․ 苦滅, 如是苦陰滅. 今當為汝說法鏡經, 諦聽! 善思! 當為汝說. 何等為法鏡經? 謂聖弟子於佛不壞淨, 於法․僧不壞淨, 聖戒成就.’
佛說此經已, 諸比丘聞佛所說, 歡喜奉行.
[역문]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나리가(那梨迦)라는 마을에 있는 번기가(繁耆迦) 정사에 계셨다.
그때 나리가 마을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그때 많은 비구들이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 나리가 마을에 들어가 걸식하다가 나리가 마을의 계가사(罽迦舍) 우바새가 목숨을 마쳤고, 니가타(尼迦吒) ․가릉가라(佉楞迦羅) ․ 가다리사바(迦多梨沙婆) ․ 사로(闍露) ․ 우바사로(優婆闍露) ․ 이색타(梨色吒) ․ 발타라(跋陀羅) ․ 수발타라(須跋陀羅) ․ 야사야수타(耶舍耶輸陀) ․ 야사울다라(耶舍鬱多羅) 등이 모두 목숨을 마쳤다는 말을 들었다. 그들은 그것을 들은 뒤에 정사로 돌아와 가사와 발우를 챙겨두고 발을 씻은 뒤에 부처님이 계신 곳으로 나아가 부처님의 발에 머리 조아리고는 한쪽에 물러 앉아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희 비구들이 이른 아침에 나리가 마을에 들어가서 걸식하였는데, 거기에서 계가사 우바새 등이 목숨을 마쳤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들은 목숨을 마치고 나서 어느 곳에 태어났습니까?”
부처님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저 계가사 등은 이미 오하분결(五下分結)을 끊고 아나함(阿那含)이 되어 천상에서 완전히 열반하였으니,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지 않을 것이다.”
모든 비구들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다시 250명이 넘는 우바새가 목숨을 마쳤고, 또 500명의 우바새가 이 나리가 마을에서 목숨을 마쳤습니다. 그들도 다 오하분결을 끊고 아나함이 되어, 천상에서 완전히 열반하여 다시는 이 세상에 도로 태어나지 않겠습니까? 다시 250명이 넘는 우바새가 목숨을 마쳤습니다. 그들도 다 세 가지 결박이 다하고 탐욕 ․ 성냄 ․ 어리석음이 엷어져 사다함(斯陀含)이 되어, 한 번의 생을 받고는 마침내 괴로움을 완전하게 벗어나겠습니까? 이 나리가 마을에는 또 500명의 우바새가 있는데, 그들도 이 나리가 마을에서 목숨을 마쳤습니다. 그들도 다 세 가지 결박이 다하고 수다원(須陀洹)이 되어, 나쁜 세계 법에는 떨어지지 않고, 결정코 바르게 삼보리로 향하여 일곱 번 천상과 인간 세상을 오가면서 태어났다가 마침내는 괴로움을 완전하게 벗어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이 그들의 죽을 때마다 그들의 죽음에 대해 묻는 것은 한낱 수고롭게만 할 뿐이라서, 그런 것들은 여래(如來)가 대답하기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태어나는 것에는 반드시 죽음이 있거늘 무엇을 놀랍다 하겠는가? 여래가 이 세상에 출현했거나 또는 이 세상에 출현하지 않았거나 간에 법의 성품은 언제나 존재하는 것이다. 여래는 그것을 스스로 알아 등정각(等正覺)을 성취하여, 그것을 나타내어 자세히 연설하고 분별하여 열어 보인 것이다. 그것은 이른바 ‘이 일이 있으므로 저 일이 있고, 이 일이 일어남으로 저 일이 일어난다. 즉 무명(無明)을 연(緣)하여 행(行)이 있고, … 태어남을 연하여 늙음 ․ 병듦 ․ 죽음 ․ 근심 ․ 슬픔 ․ 괴로움 ․ 번민이 있다. 그리하여 괴로움의 무더기가 발생하는[集] 것이나, 무명이 사라지면 행이 사라지고, … 태어남이 사라지면 늙음 ․ 병듦 ․ 죽음 ․ 근심 ․ 슬픔 ․ 괴로움 ․ 번민도 사라진다. 이리하여 괴로움의 무더기가 사라지는 것이다.’라고 한 것이니라.
나는 이제 너희들을 위해 <법경경(法鏡經)>을 설명하리니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라. 마땅히 너희들을 위해 말하리라. 어떤 것을 <법경경>이라고 하는가? 이른바‘거룩한 제자가 부처님에 대하여 무너지지 않는 깨끗한 믿음과 법과 승가에 대하여 무너지지 않는 깨끗한 믿음을 내고 거룩한 계를 성취하는 것이다.’라고 한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해석]
이 경은 ≪잡아함경≫ 권30 제854경 <나리가경(那梨迦經)>(T2 p.217b-c)이다. 이 경과 대응하는 니까야는 SN55:10 Giñjakāvasatha-sutta(SN Ⅴ, pp.358-360)이다. 니까야에는 이 경 외에도 같은 제목의 경이 두 개나 더 있으며, 이 경과 같은 내용이 ≪디가 니까야≫ 제15 <대반열반경>에도 실려 있다.
이 경은 부처님께서 나리가(那梨迦)라는 마을의 번기가(繁耆迦)에 머물고 있을 때 설한 것이다. 나리가(那梨迦)는 냐띠까(Ñātika)의 음사로 ‘친척사이’라는 뜻이고, 번기가(繁耆迦)는 긴자까와사타(Giñjakāvasatha)의 음사로 ‘벽돌집’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이 대목은 “한때 부처님께서‘친척사이’라는 마을의‘벽돌집’에 머물고 계셨다.”고 번역할 수 있다.
그때 냐띠까 마을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경전에서는 무슨 까닭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에 대한 언급은 없다. 아무튼 비구들이 냐띠까 마을에 걸식하러 갔다가 많은 우바새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돌아와 세존께 저들이 목숨을 마치고 어느 곳에 태어났느냐고 여쭈었다. 그러자 붓다는 그런 것을 묻는 것은 번잡한 일이라고 일러주고, 태어난 자는 반드시 죽는다는 연기(緣起)의 법칙을 일러주었다. 그리고 모름지기 재가자는 사불괴정(四不壞淨)을 닦아야 한다는 것이 이 경의 핵심이다.
이 경은 크게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반부는 사쌍팔배(四雙八輩)에 관한 것이고, 중반부는 연기법(緣起法)에 관한 것이며, 후반부는 사불괴정(四不壞淨)에 관한 가르침이다. 전반부에서는 네 가지 수행의 단계와 그 경지에 대해 설하고 있다. 이것을 불교술어로 ‘사쌍팔배(四雙八輩)’ 혹은 ‘사향사과(四向四果)’라고 한다.
사쌍팔배란 예류향(預流向) ․ 예류과(預流果), 일래향(一來向) ․ 일래과(一來果), 불환향(不還向) ․ 불환과(不還果), 아라한향(阿羅漢向) ․ 아라한과(阿羅漢果)를 말한다. 이 경에서는 수다원(須陀洹), 사다함(斯陀含), 아나함(阿那含), 아라한(阿羅漢)으로 번역되었다.
첫째, 수다원(須陀洹)은 빨리어 소따빤나(sotāpanna)의 음사다. 예류(預流) ․ 입류(入流)라고 번역한다. 욕계(欲界) ․ 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의 견혹(見惑)을 끊은 성자를 말한다. 처음으로 성자의 계열에 들었으므로 예류 ․ 입류라고 한다. 수다원과(須陀洹果) 혹은 예류과(預流果)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세 가지 번뇌, 즉 삼결(三結, 有身見結 ․ 戒禁取結 ․ 疑結)을 끊어야 한다. 결(結)은 번뇌를 뜻한다. ⑴ 유신견결(有身見結)이란 오온(五蘊)의 일시적 화합에 지나지 않는 신체에 불변하는 자아가 있고, 또 오온은 자아의 소유하는 그릇된 견해를 말한다. ⑵ 계금취결(戒禁取結)이란 그릇된 계율이나 금지 조항을 바른 것으로 간주하며 거기에 집착하는 견해를 말한다. ⑶ 의결(疑結)이란 바른 이치를 의심하는 번뇌를 말한다.
둘째, 사다함(斯陀含)은 빨리어 사까다가민(sakadāgāmin)의 음사다. 일래(一來)라고 번역한다. 욕계(欲界)의 수혹(修惑)을 대부분 끊은 성자를 말한다. 그러나 이 성자는 그 번뇌를 완전히 끊지 못했기 때문에 한번 천상의 경지에 이르렀다가 다시 인간계에 이르러 완전한 열반을 성취한다고 하여 일래라고 한다. 사다함과(斯陀含果) 혹은 일래과(一來果)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앞의 세 가지 번뇌가 다하고, 다시 탐욕 ․ 성냄 ․ 어리석음이 엷어져야 한다.
셋째, 아나함(阿那含)은 빨리어 아나가민(anāgāmin)의 음사다. 불환(不還) ․ 불래(不來)라고 번역한다. 욕계의 수혹(修惑)을 완전히 끊은 성자를 말한다. 이 성자는 미래에 색계․무색계의 경지에 이르고 다시 욕계로 되돌아오지 않는다고 하여 불환(不還)이라 한다. 아나함과(阿那含果) 혹은 불환과(不還果)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 즉 오하분결(五下分結, pañca orambhāgiyāni saṁyojanāni)를 끊어야 한다. 오하분결이란 유신견(有身見), 계금취견(戒禁取見), 의(疑), 욕탐(欲貪, 욕계의 탐욕), 진에(瞋恚, 성냄, 노여움, 분노, 증오)를 일컫는다. 이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는 존재를 욕계(欲界, kāma-dhātu)에 묶어 두는 족쇄라는 뜻이다. 이 가운데 처음의 셋은 예류자(預流者)와 일래자(一來者)에 의해서 제거되고 다섯 가지 모두는 불환자(不還者)에 의해서 제거된다.
넷째, 아라한(阿羅漢)은 산스끄리뜨 아르하뜨(arhat)의 주격 아르한(arhan) 혹은 빨리어 아라한뜨(arahant)의 주격 아라항(arahaṁ) 혹은 아라하(arahā)의 음사다. 응공(應供) ․ 응진(應眞) ․ 무학(無學) ․ 이악(離惡) ․ 살적(殺敵) ․ 불생(不生)이라 번역한다. 마땅히 공양 받아야 하므로 응공, 진리에 따르므로 응진, 더 닦을 것이 없으므로 무학, 악을 멀리 떠났으므로 이악, 번뇌라는 적을 죽였으므로 살적, 다시 태어나지 않으므로 불생이라 한다. 성문(聲聞)들 가운데 최고의 성자, 욕계 ․ 색계 ․ 무색계의 모든 번뇌를 완전히 끊어 열반을 성취한 성자를 말한다. 아라한과(阿羅漢果)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다섯 가지 높은 단계의 족쇄’, 즉 오상분결(五上分結, pañca uddhambhāgiyāni saṁyojanāni)을 끊어야 한다. 오상분결이란 색계에 대한 탐욕, 무색계에 대한 탐욕, 자만, 들뜸, 무명을 말한다. 이 ‘다섯 가지 높은 단계의 족쇄’는 존재를 색계(色界, rūpa-dhātu)와 무색계(無色界, arūpa-dhātu)에 묶어 두는 족쇄라는 뜻이다. 이 두 가지 족쇄는 사선정(四禪定)과 공무변처정(空無邊處定)에서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까지의 선정수행을 통해서 도달하게 된다. 오직 아라한만이 이 다섯 가지 높은 단계의 족쇄들을 모두 제거한다.
이 경의 중반부에서는 연기법(緣起法)을 설하고 있다. 이 연기법에 따르면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새삼스러울 것도 놀랄 일도 아니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태어남으로 말미암아 늙음 ․ 병듦 ․ 죽음 ․ 근심 ․ 슬픔 ․ 괴로움 ․ 번민이 일어나지만, 태어남이 없으면 늙음 ․ 병듦 ․ 죽음 ․ 근심 ․ 슬픔 ․ 괴로움 ․ 번민이 없기 때문이다.
끝으로 이 경의 후반부에서는 사불괴정(四不壞淨)을 설하고 있다. 이 경에서 말한 ‘법경경(法鏡經)’이란 ‘네 가지 무너지지 않는 깨끗한 믿음’, 즉 사불괴정(四不壞淨)을 의미한다. 사불괴정이란 “거룩한 제자가 부처님에 대하여 무너지지 않는 깨끗한 믿음과 법과 승가에 대하여 무너지지 않는 깨끗한 믿음을 내고 거룩한 계를 성취하는 것.”을 말한다. 즉 불(佛) ․ 법(法) ․ 승(僧) ․ 계(戒)에 대한 깨끗한 믿음을 의미한다. 여기서 승(僧)은 상가(Saṅgha)의 음사이다. 상가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아리야 상가(Ariya-sangha, 聖僧伽)이고, 다른 하나는 사뭇따 상가(Samuta-saṅgha, 俗僧伽)이다. 이른바 출가한 비구 ․ 비구니를 말한다. 이 두 가지 상가 중에서 우리의 신앙 대상은 아리야 상가(聖僧伽)이다.
출처 : 한국불교신문(http://www.kbulgyo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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