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대종사의 포교사상
목 차
Ⅰ. 들어가는 말
Ⅱ. 청담대종사 포교사상의 형성배경
Ⅲ. 청담대종사 포교의 당위성
Ⅳ. 청담대종사 포교사상의 내용
Ⅴ. 맺음말
Ⅰ. 들어가는 말
청담 대종사(1902-1971)는 한국 근〮〮· 현대 불교사의 중심에서 대승보살도의 살아있는 실증을 보이신 인욕보살로 칭해지고 있다. 청담대종사는 일생을 온몸으로 불교의 정화운동과 중생교화의 보살도를 실천한 분이시다. 생존 시, 스님의 법문 주조(主潮)인 “육신은 멸해도 법신은 영원하다. 성불을 한 생 미루더라도 모든 중생을 다 건지리라”고 하신 말씀에 스님의 포교의 정신이 함축되어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청담 대종사는 1600여년 한국불교 법통의 법등(法燈)을 지켜 평생을 중생교화와 불교의 포교 현대화를 위해 보살행을 실천하셨다. 대종사는 생존 시 오직 홀로 거의 매일같이 발길 닿는 대로 중생이 있는 곳이나 원하는 곳이라면 언제 어디서나 잠시의 쉴 틈도 없이 실로 초인적인 전법활동을 펴시어 불교교단에 대한 사회의 소홀한 인식을 적극적 관심으로 개선시킨 분이시다. 이런 중생교화로서 포교의 사상은 위법망구의 구도를 통해 체득한 보살의 안목에서 연유되었다고 인지된다. 청담대종사의 포교사상은 대승불교의 이상적 인간상인 보살의 정신을 스님의 독특한 구상과 방식과 특색이 작용하여 한국의 20세기에 구현한 것으로 필자는 생각한다.
보살의 이념과 실천은 초기 대승경전에 잘 나타나있다. 그래서 필자는 본고에서 청담대종사의 포교사상이 초기 대승경전으로부터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형성된 내용이 무엇이고, 어떻게 실천했는가를 탐구함을 목적으로 한다. 이러한 연구는 한국불교의 포교이념과 방향을 정립하는데 필요성이 있다고 논자는 생각한다.
본 논문에서는 청담 문도회에서 편집한 『청담대종사전서(靑潭大宗師全書)』권 1-8권과 초기 대승불교의 불전을 중심으로 청담 대종사의 표교사상을 고찰하고자 한다.
Ⅱ. 청담대종사 포교사상의 형성배경
우리나라 역사에서 근대라 함은 조선조의 고종(고종)시대(1864∼1906)로부터 일제강점시대(1910∼1945)까지를 말한다. 이 동안은 연대 수로는 불과 50년 정도 밖에 안 되지만 국가적으로는 개화기이며 또한 격동의 복잡다단한 시대였다. 그 국가적 운명의 틈바구니에서 불교 교단도 적지 않은 역사적 문제들을 안고 왔었다. 나라가 송두리째 빼앗김을 당한 우리 민족은 정신 사상도 문화도 모두 빼앗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36년 동안 이 땅의 모든 것이 다 빼앗기고 日本化되어 갔지만, 불교 교단만은 끝내 조선 불교 선교 양종 또는 조선 불교 조계종이라는 명목 아래, 끝까지 우리의 전통을 유지하여 왔다. 본장에서는 일제강점기를 중심으로 청담(1902-1971)스님의 포교사상 배경을 살펴보고자 한다.
일제강점기에 한국불교의 개혁을 주창하고 실천한 선각자들 중에서 대표로는 경허 성우(鏡虛 惺牛, 1846~1912), 용성 진종(龍城 震鍾, 1864~1940) 그리고 용운 봉완(龍雲 奉琓, 1879~1944)을 들 수 있다. 본 장에서는 이들 세 분의 불교혁신 운동이 청담스님의 포교사상 형성 배경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유추아래 세분의 혁신 운동을 일별해 보자.
경허스님이 활동하던 시기는 구한말 일본강점기의 암울한 시기로써, 1878년 말 일본 정토진종의 오쿠무라 연신(奧村圓心)이 부산에 본원사(本願寺) 별원(別院)을 세워 일본불교가 침투해 오는 시기였다. 경허스님은 당시 불교계의 현실에 대하여 ‘정법 보기를 흙같이 하고, 혜명(慧命)의 계승을 아이들 장난처럼 생각한다’고 개탄하고 무엇보다도 정법(正法) 수호의 기치를 들었다. 그래서 스님은 1899년부터 1903년까지 5년간 해인사, 화엄사 그리고 범어사 등을 중심으로 사부대중 모두가 참여하는 정혜결사(定慧結社)운동을 전개하면서 선풍(禪風)을 진작시켰다. 이것은 보조 지눌(1158-1210) 이후 끊어졌던 선수행(禪修行)의 전통을 중흥시킨 것이다. 이로써 경허스님은 한국 근대사에서 ‘선의 중흥조’로 추앙받고 있다.
다음 용성스님에게 있어서 불교유신의 방법은 불교 본연의 진면목을 드러낼 수 있는 교의로써 ‘각(覺)’에 착안하여 1916년 서울 종로 대각사에서 ‘대각교(大覺敎)’를 창립하였다. 대각교의 종지(宗旨)는 붓다가 삼처전심(三處傳心)한 뜻이며, 수행은 화두참구(話頭參究)의 법이라고 하였다. 그의 대각교운동은 ‘선율겸행(禪律兼行)’의 구체적 실천이다. 그는 이것을 구세운동이라고 생각하고 1925년 서울 도봉산에서 ‘만일참선결사회(萬日參禪結社会)’를 창립하여 선율겸행(禪律兼行)을 오후불식(午後不食) 장시간 묵언으로 실천하였다. 또한 용성스님은 1921년 4월에 3장역회(三藏譯會)를 만들어 한문경전을 우리 한글로 번역하여 깨달음의 사회화 운동을 실천하기도 했다.
셋째로 용운스님은 그의 『조선불교유신론』에서 “…유신하자는 소리가 온 천하에 가득 차 있는데, 조선불교만 고요히 아무 소리가 없으니, 과연 무슨 징조인가?”라고 불교계의 동면(冬眠)을 우려하고 있다. 유신할 내용은 첫째, 승려의 교육강화이다. 둘째는 참선운동 전개의 대중화이다. 스님이 제안하여 1921년 남천화상(南泉和尙) 등에 의해 서울 안국동에 선학원(禪學院)이 건립되어 참선대중화를 실천하는 계기가 되었다. 셋째, 포교의 활성화이다. 포교로는 불교지(佛敎誌)의 발간, 불교성전의 편찬과 보급, 포교당의 각 도시마다 건립, 그리고 한글대장경 번역 등이 중요한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의 선각자들은 불교지의 간행을 통한 문서포교에 힘썼다. 1919년 독립운동 이후 1924년 7월에는 ?佛敎?가 발간되어 10여년을 계속하다가 정간된 후, 1937년 3월 다시 속간되어 ?佛敎(新)?이라고 칭하여 해방 전까지 발행되었다. 그러나 ?佛敎?지를 제외하고는 대개 평균 10여 개월 간행되다가 종간된 것으로 미루어 보아 당시 불교계가 얼마나 열악한 상황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이상에서 논자는 일제강점기의 대표적 선각자 세 분의 불교혁신 운동을 살펴보았다. 이런 혁신운동이 청담대종사의 일대사인 ‘청정승가’ 확립과 ‘정법수호’ 의지를 다져 포교사상 형성의 밑거름이 되었으리라 추측된다.
청담대종사는 25세(1926년)에 당시 불교학 최고 강원인 개운사(開雲寺) 불교전문강원에 입학하여 대강백 박한영 스님의 지도아래 경‧율‧론 3장(藏)을 두루 섭렵하고 대교과를 1930년 5월에 졸업하였다. 스님은 그곳이 일생을 입지(立志)하는 데 크게 도움을 준 곳이라고 진술했다. 스님께서는 이 사바세계에 피어나는 연꽃과 같이 청정한 불조(佛祖)의 혜명(慧命)을 잇고 한국고유의 승풍(僧風)을 진작시키기 위한 포교의 만행을 다음과 같이 술회하고 있다.
누더기 옷을 걸치고 걸망에는 상비약과 삭발기를 가지고 다니면서 머리가 긴 아기나 어른을 만나면 머리를 깎아 주고 부처님의 정법(正法)을 일러주기도 했으며, 부스럼이나 상처가 난 사람을 만나면 약을 발라 주고 치료도 해주었다. 또 남의 집 처마 밑에서 한밤을 지새우며 인생무상을 되씹기도 하고 때로는 심해(深海)에 고요히 가라앉은 무딘 바위처럼 무뚝뚝한 시골 머슴들이 거처하는 사랑방에서 그들의 온갖 놀림을 받아가면서도 오히려 태연자약하게 대꾸해주며 한 구석진 곳에 새우잠을 자기도 했다. 혹독한 겨울 추위에도 맨발과 홑옷으로 지냈으나 가사장삼을 꼭 입고 다녔다. 추운 겨울이나 무더운 여름이나 사시사철 언제나…. 근세 조선 5백년 동안 천대받던 ‘중놈’이지만 언젠가는 신라‧고려시대와 같은 찬란한 불교 중흥을 이루어 3천만 겨레 모두에게 숭앙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중놈이, 아니 삼계(三界)의 도사(導師)와 사생(四生)의 자부(慈父)가 되겠다는 나름대로의 굳은 각오와 결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위의 내용은 청담대종사의 궁굴(窮屈)과 인고(忍苦)와 자약(自若)의 단련 속에서 형성된 포교의 이상이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면 이런 포교 사상이 어떤 불전(佛典)에 설해지고 있는가를 사상사적인 시각에서 일별해 보자.
Ⅲ. 청담대종사 포교의 당위성
20세기 한국 불교의 출가승들이 사원에 안주하여 자리적(自利的)인 수행에만 전념하는 것에서 과감히 탈피하여 스님은 일체중생(一體中生)을 제도(濟度)할 것을 목표로 삼는 새로운 대중적 불교, 즉 ‘유심불교(唯心佛敎)’를 제창했다. 청담스님은 그의 이념인 유심불교를 보편화하여 대중화·생활화시키기 위하여 포교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포교는 어떤 종교를 막론하고 그 종교가 존속되는 원동력이다. 포교는 그 종교의 존재 의의를 확인시키고 그 종교를 발전시키는 필수적인 조건이다. 그러므로 포교를 잘 하는 종교는 부흥할 것이요, 포고를 등한시하는 종교는 아무리 위대한 교설(敎說)을 가지고 있더라도 쇠퇴할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한 일이다.
布敎란 말이 불교문헌에 처음 쓰여진 사례는 天台智顗(538-597)의 『法華玄義』에서이다. 포교란 말은 經典上 많이 나오는 敎化, 轉法輪(dharma-cakra-pravartana), 傳法, 傳道, 流布, 弘布, 法布施 등을 包括하여 나타내는 代名詞로서 一般化되어 사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포교는 聖人께서 깨치신 깨달음의 진리를 널리 편다는 뜻으로 쓰고 있다.
佛敎史는 布敎의 歷史라고 말할 수 있다. 불교 포교의 역사 중 중요한 사례 몇 가지를 인용하고자 한다. 불교 포교의 시원은 석존이 成道 후 깨달음의 法悅에 잠기고 있는 동안 梵天勸請으로 다음과 같은 동기의 當爲로 傳法은 시작되었다.
여래는 이제 梵王의 권청을 받아들여 轉法輪을 하고자 한다. 한량없는 모든 중생들을 불쌍히 여김에서이고, 한량없는 모든 중생들을 이익 되게 위해서이고, 한량없는 모든 중생들을 안락하게 위해서이고, 천상과 인간을 훌륭하게 자라게 하여 나쁜 길을 덜하여 줄이게 위해서이고, 모든 중생들을 위하여 열반을 얻게 하기 위해서 마땅히 법륜을 굴리는 것이니라.
위에서 인용한 文證은 佛陀의 布敎의 이념을 나타낸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석존의 포교의 이념은 우리 불자들이 指南의 原理로 信受奉行해야 한다. 불타의 포교의 이념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自我完成과 佛國土建設’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래서 석존은 포교의 當爲性을 전도의 초기에 바라나시에서 야사스를 비롯한 청년들을 교화하여 61인의 아라한이 생겼을 때 다음과 같이 설하셨다.
비구들이여! 傳道를 떠나라. 여러 사람의 利益과 安樂을 위하여, 세상 사람들과의 공감을 위해, 그리고 천계의 신들과 인간의 안락을 위해 가라. 두 사람이 한 길로 가지 말라. 처음에도 중간에도 마지막에도 도리에 맞고 논리가 분명한 법을 설하라. 홀로 圓滿無缺하고 청정한 행을 보이도록 하라. 사람들 중에는 마음의 더러움이 적은 자도 있으나, 法을 듣지 못한다면 그들도 惡에 떨어지고 말리라. 法을 들으면 깨달을 것이 아닌가. 비구들이여! 나도 또한 법을 설하기 위하여 우루벨라의 세나니가마(장군촌)로 가리라.
위의 인용에서 두 사람이 한 길을 가지 말고 한 사람이 길을 가, ‘처음도 중간도 마지막도’ 도리에 맞고 논리가 분명한 진리(法)를 설하라는 전도의 자세는 불교 포교의 특징으로 간주된다.
佛陀와 같이 청담 스님은 포교의 當爲性을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우리는 함께 세상에 태어났다는 인연 때문에 사해대중들을 깨우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세존께서는 득도를 한 다음 우루벨라촌에 내려왔고, 義湘(625∼702) 스님도 고국 新羅로 돌아왔던 것이다. 오늘 우리들은 ‘그들이 왜 내려왔고 돌아왔는가’라는 사실을 깊이 생각지 않으면 안 된다.……
죄악과 번뇌와 고통 속에 잠긴 인간을 참인간이게 하는 것, 지혜롭게 하는 것, 자비로운 협조자이게 하는 것, 그것이 불교의 참뜻인 것이다. 그것을 元曉(617∼686)는 오직 ‘자리(自利)와 타리(他利)를 염원하고, 보리(菩提), 즉 진정한 의미의 평화를 향해 노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위의 인용과 같이 청담 스님은 한 평생 地藏菩薩의 願力과 같이 成佛을 한 생 미루더라도 중생제도를 위하여 포교에 전념하셨다.
Ⅳ. 청담대종사 포교사상의 내용
대승불교 운동은 지극히 형식주의적이며 번쇄한 학문불교였던 部派佛敎의 自利的 정신적 평안만을 추구하는 소극적이고 현세도피적 출가주의에 반발하여 一切衆生을 濟度할 것을 목표로 삼은 새로운 종교적 覺醒에서 기원전 1세기에 일어났다. 업보사상의 부파불교에서는 우선 자신이 고통의 세계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 중요시되지만, 대승불교는 악취와 고통의 세계에 자신이 직접 뛰어들어 자기뿐 아니라 타인과 함께 모든 중생을 제도하려는 自利利他의 願行사상에 서있다.
초기 대승경전에서는 이론보다는 신앙과 실천을 중요시했으며, 이론이 설해지더라도 그것은 이론을 위한 이론이 아니라 신앙실천의 기초를 위한 이론이었다. 그래서 대승은 성문승이 阿羅漢이 되는 것을 이상으로 삼는 데에 대하여, 菩薩乘을 세우며 부처가 되는 것을 이상으로 삼고 있다. 대승불교의 이상적 인간상인 菩薩은 생사의 세계에서 고통받고 있는 모든 중생, 즉 九類衆生들을 제도한다고 하는 利他行을 강조하는 행동주의적 불교를 제창하고 있다. 이것은 從來의 部派佛敎가 나만이 혹은 내가 소속한 집단만이 해탈할 수 있다는 일체의 차별의식이나 특권의식을 거부한 대승불교의 출발정신이며 宗旨인 것이다. 이런 대승정신은 ‘自利利他 覺行圓滿’이라는 언명으로 대변된다. 이런 정신은 나의 깨달음을 타인의 깨달음으로 廻向(pariṇāma)시킨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一切諸法의 空觀에서 보면 濟度하는 자와 濟度받는 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金剛經』에서 설하고 있다. 이러한 사상은 小乘(Hīnayāna)중에서도 說一切有部(Sarvāstivāda)라는 部派가 주장한 ‘我空法有’의 주장을 破邪顯正하려는 시대적 사명을 가지고 나타났다. 그러므로 대승정신은 보살정신이요, 보살정신이 바로 반야사상이며, 반야사상에 입각하여 보살은 보살도를 다음과 같이 설하고 있다.
수보리야! 만약 어떤 사람이 있어 數로 헤아릴 수 없는 무량한 세계에 가득 찬 칠보를 가지고 보시를 한다고 해도, 여기 선남자 선여인이 있어 보살의 마음을 발하여, 이 경을 지니고 그 사구게 등이라도 받아지니고 읽고 외우며, 다른 사람을 위해 설해준다면 그 복이 저 칠보의 복보다 나으리라.
위의 내용은 『金剛經』의 성립 당시 부파불교 교단은 王(rāja)과 長者(śreṣṭha)들의 후원 아래 출가자들이 안정된 생활을 바탕으로 사원에서 아비다르마 교과의 연구에만 몰두하고 실천은 형식화되었던 것을 통박하면서 法施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法施의 실천은 ‘自覺覺他覺行圓滿’하기 때문이다. 보살에게 있어 자기를 위해 깨달음을 구하는 ‘上求菩提’의 ‘自利行’과 남을 위해서 자비행을 실천하는 ‘下化衆生’의 ‘利他行’ 은 둘이면서 둘이 아닌 불가분으로 ‘自利卽利他 自利利他圓滿’이다. ‘自他不二’, ‘自他平等’ 정신은 空의 정신을 바탕으로 하여 보살의 이타행으로 활용되어 온 대승불교의 근본정신이다.
『金剛經』에서는 재가․출가라는 분별된 입장을 버리고 법(dharma)의 자각과 보살행을 강조하면서 이 경의 四句偈 하나라도 외우고 타인을 위해 설명해 준다면 그 공덕(puṇya)은 七寶의 財施보다도 더 크다고 설하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金剛經』의 이론이 신앙과 실천을 중요시하는 것을 인지할 수 있다. 이것은 대승불교 보살운동의 진보적 성격을 잘 나타내주는 것으로 깨달음의 보편화․대중화를 시도한 바람직한 역사의 전개방향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초기대승불교운동의 지도자와 마찬가지로 청담 스님은 20세기 한국의 대승보살로서 육체를 중심으로 한 ‘假我’에서 ‘참나(眞我)’발견을 강조하는 한국불교를 淨化하여 傳法할 것을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일본이나 중국에 가서 들어보아도 宗派佛敎가 되어서 각각 설명 방법과 수행양식이 달라서 한국불교와 같은 참된 부처님의 정신은 들어볼 수 없다. 동남아 소승불교도 各宗 各派마다 그 주장이 다르고 한 조각의 불교밖에는 말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루 바삐 한국불교를 바로 세워서 道人이 많이 나오도록 해야 한다. 한국불교의 정신이 온 세계에 널리 퍼졌을 때 인류의 평화는 비로소 올 것이다. 나는 오늘의 세계를 지도하고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진리의 寶庫가 한국불교에 있다는 것을 확신한다.… 육체가 내가 아닌 줄 알고, 마음자리가 나인 것을 강조하는 한국불교를 실천하고 전법하자.
청담 스님은 보살의 이타행이란 불법을 널리 알려 중생으로 하여금 깨달음(萬古光明)에 들게 하여 離苦得樂케 하는 데에 있다고 했다. 그러한 방법의 일환으로 청담 스님은 元曉(617∼686) 스님이 신라불교의 사상과 이론을 會通하여 和諍佛敎를 일으켰듯이 1930년 이래 타락한 한국불교 교단의 淨化와 正法化를 위해 일생(1930∼1971)을 다 바치셨다.
청담 스님은 일생을 오직 누더기 하나로 오후불식과 장좌불와의 수행을 하시면서 한시도 自利利他의 修行에 여념이 없으셨으며 아침부터 저녁까지 오직 佛法의 正法化와 大衆化 이외에는 아무 것도 생각함이 없는 인욕보살이었다. 청담 스님은 한국불교의 찬란한 전통을 되살려 제 구실을 하기 위해서는 교단 자체 정화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하시면서 正法의 傳法化를 다음과 같이 강조하셨다.
백년대계를 위해서는 근본적인 변혁이 한국불교의 내부에서 일어나야 한다. 불교란 世尊만을 모시고 개인의 영욕을 취하는 종교가 아니다. 그런 종교였다면 세존은 우루벨라촌의 보리수 아래에서 그의 正覺을 가짐으로써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세존은 그 正覺을 가짐으로써 오히려 世俗으로 내려와 四海大衆들과 만났다. 그의 정각은 세속인을 깨우치고 바른 길로 인도하려는 데에 뜻이 있었다. 세존이 사해대중과 만났다는 사실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서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된다. 세존은 대중을 만나기 위해서 그의 정각을 가졌다. 그러므로 오늘의 불교 역시 오늘의 대중을 만나기 위해서 正覺을 가져야 한다고 우리는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청담 스님은 “중생제도를 위해 成佛을 한 생 미루더라도 한국불교의 敎團淨化와 正法의 大衆化를 위해 기필코 완수하겠다”는 願行의 삶을 일생 실천하였다. 청담 스님은 중생을 고통에서 구하는 것이야말로 나의 解脫이며 願이라고 강조하였다. 그러면 이러한 스님의 願行思想이 어디서 유래되었는가를 필자는 壓縮해서 探索해보고자 한다.
대승불교를 일관하는 思潮는 보살사상이다. 보살의 출발점은 願(praṇidhāna)이다. 보살은 자신의 해탈에 앞서 남부터 해탈시킨다는 慈悲(karuṇā)의 願을 세워서 涅槃(nirvāṇa)을 추구하지 않고 生死의 세계에서 고통을 당하는 衆生들을 돕기 위하여 활동한다는 것이다. 보살은 성불을 위해서는 3아승지겁이라는 오랜 동안의 수행이 필요한데, 그 동안에 모든 自利利他의 ‘行’을 완성하여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로 菩提心을 발한 보살은 어떠한 역경에도 不退轉의 의지를 견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결의를 구체적으로 나타낸 것이 ‘願’이다. 自利와 利他를 위해 모든 보살이 發하는 ‘願’은 나중에 四弘誓願으로 구체화되었다. 이것을 보살의 ‘總願’이라고 한다. 이 밖에 보살 각자의 특수한 願인 ‘別願’으로 阿彌陀佛의 48원, 藥師如來의 12원, 阿閦佛의 18원, 普賢菩薩의 十大願 등이 있다. 대승불교의 초기경전인 『華嚴經』의 「普賢行願品」에서는 실천행을 중히 여겨 스스로 제도받기에 앞서 남을 먼저 제도하는(自未度先度他) 利他主義的 입장을 취하는 행동철학을 설하고 있다. 『華嚴經』의 普賢行願은 모든 중생들을 이익 되게 하는 利他行을 강조하는 행동주의적 해탈관이다. 초기불교나 부파불교 그리고 초기 대승불교 경전인 ‘반야경’ 계통에서는 ‘지혜(prajnā)’에 의한, 즉 다시 말하면 主知主義的 解脫觀(成佛)의 길을 나타내는 것이 주류였지, 誓願의 行動哲學, 즉 主意主義的 해탈관은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普賢行願品』은 華嚴經의 총결론으로서 무량한 세계에 한없는 중생을 다 건져내어 함께 不思議解脫境界로 들어가게 하는 방법의 수행체계 법문이다. 우리는 대승불교의 要諦인 菩薩道의 典型을 『普賢行願品』에서 볼 수 있다. 『普賢行願品』에서 가장 대표적인 願行의 句節을 들면 아래와 같다.
만약 보살이 중생을 隨順하면 곧 모든 부처님을 수순하여 공양함이 되며, 만약 중생을 존중히 받들어 섬기면 곧 부처님을 존중히 섬김이 되며…… 모든 부처님은 자비하신 마음으로 근본(體)을 삼으시기 때문에 중생으로 인하여 보리심을 발하고, 보리심으로 인하여 等正覺을 이루느니라.
불교의 궁극적 목적은 成佛인 ‘無上正等正覺’에 있다. 위의 내용은 중생을 수순하여 供養함이 곧 부처님께 공양함이 되어 무상정등정각을 성취할 수 있다고 설하고 있다. 대승의 보살은 중생과 함께 모든 고통을 인내하면서 불교가 이상으로 하는 경지인 成佛의 경지까지 모든 중생을 이끄는 자이다. 이런 보현행원의 사상 영향으로 청담 스님은 20세기 한국의 보살 화신으로서 모든 중생들에게 보리심을 발할 것을 권하고, 인연 따라 조그마한 암자, 학생회, 교도소, 군부대 등 가릴 것 없이 그 몸을 안 나타낸 곳 없이(處染常淨) 普賢行願(慈悲無敵)을 실천하신 忍辱菩薩이었다. 청담 스님은 “단 한 사람이라도 제도 받지 않은 중생이 있는 한은 成佛하지 않겠다”고 하는 서원으로 포교를 하였다. 청담 스님의 육신은 비록 四大로 흩어졌지만 “다시 태어나도 기꺼이 이 길을 걷겠다”는 誓願의 法門을 통해 스님의 법신은 영원히 모든 불자의 가슴에 살아있다.
Ⅴ. 맺음말
청담 스님(1902-1971)은 20세기 한국불교 菩薩의 化身으로서 ‘마음’의 법문을 깨닫기 위해 出家하여 ‘마음’의 哲理를 1934년에 開悟하고, 그 후 약 40년간을 마음의 眞髓를 설법하시다가 우리 곁을 떠난 忍辱菩薩이었다. 스님은 우리 범부중생들은 항상 몸뚱이를 ‘나’로 아는 ‘顚倒見(mithyādṛṣṭi)으로 醉生夢死의 삶을 산다고 하시면서 영원불멸의 실재인 ’마음‘을 참나(眞我)’로 아는 正見(samyagdṛṣṭi)을 把持할 것을 법문하셨다. 스님은 우리들에게 “모든 것의 주체이고 근본인 마음이 眞我이다”라고 하시면서 그것을 알리는 데 그의 生涯 전체를 불사르셨다. 큰 스님은 그의 마지막 설법 “肉身은 滅해도 法身은 永遠하다. 成佛을 한 생 미루더라도 모든 중생을 다 건지리다”는 법문을 우리에게 남겨두시고 이 沙婆世界를 1971년 11월 15일에 떠나셨다. 논자는 이 遺訓의 法門이 청담 스님의 이념과 포교정신을 가장 正確히 나타내는 것이라고 고찰했다. 청담 스님의 이념과 포교의 정신이 초기 대승불교의 경전 중 『金剛經』과 『華嚴經』의 「普賢行願品」으로부터 주로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다는 것을 논자는 考究하였다. 그 내용을 壓縮해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청담 스님의 이념인 ‘마음’은 元曉(617-686) 스님의 ‘一心’이나 知訥(1158-1210) 스님의 ‘眞心’과 대응되는 궁극적 실재의 槪念이다. 청담 스님은 그의 궁극적 실재인 ‘마음’을 억지로 언어로 빌어 표현한다면 다음과 같다고 주장하였다.
마음은 물질도 허공도 아니며, 선도 악도 아니며, 여성도 남성도 아니며, 지식도 사상도 신앙도 아닙니다. 그리고 이 마음은 아무 것도 아닌 것조차도 아닌 것이 마음입니다.… ‘마음’은 영원불멸의 것이고 또한 절대자유의 것입니다.
위의 인용 註30)의 마음의 의미는 一切는 固定的인 實体가 없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 註 31)의 마음의 의미는 空的인 어떤 것에 집착하지 않는 ‘空亦復空’이라고 다시 부정하여 어떤 것도 固定 對立的인 것으로서 인정하지 않는 一切가 統一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위의 註 30)와 註 31)의 전체적인 의미는 ‘非有非無’의 中道(madhyamā pratipad)를 나타내는 如實智見(yathābhūtanaṇadassana)의 경지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청담 스님의 궁극적 실재인 마음의 定義 패러다임의 유래는 『金剛經, vajracchedika-prajnāpāramitā-sūtra)』의 아래의 四句偈의 영향으로 나왔다고 필자는 推定한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무릇 있는 바 상(相, lakṣana)은 모두 허망한 것이니라. 만약 모든 相이 相 아님을 보면 곧 여래를 보는 것이니라.
청담 스님이 말하는 ‘마음’은 ‘心性’, ‘佛性’이란 뜻으로 나타낸 것으로 우주를 주재하는 것은 ‘마음’이라는 부처님의 唯心思想(citta-mātratā)을 청담 스님의 해석학적 용어로 나타낸 것이다. 청담 스님은 팔만대장경 곳곳에서 궁극적 가치 즉 궁극적 깨달음의 체험의 표현이 涅槃이나 般若․佛性․中道․生命 등으로 함축된 것을 우리말로 ‘마음’이라고 표현했다. 『金剛經』이 초기불교의 無我(anātman)說을 ‘無相’으로 새롭게 해석하여 當代의 인도 모든 사상, 즉 正統派(āstika)나 非正統派(nāstika)의 모든 偏見을 破邪顯正하여 會通한 바와 같이, 청담 스님도 20세기 한국불교의 출가승들이 寺院에 安住하여 瞑想과 涅槃의 寂靜만을 추구하는 고답적인 실재의 관념들에서 과감히 탈피하여 누구든지 수행하면 成佛할 수 있다는 ‘마음’의 도리(萬古光明)를 보편화하여 대중화․생활화시켰다는 것은 혁명적인 공로이다.
청담 스님의 포교정신은 “成佛을 한 생 미루더라도 모든 중생을 다 건지리다”는 誓願에 잘 나타나 있다. 이러한 스님의 願行의 영향은 대승불교의 要諦인 菩薩道의 典型을 說한 『華嚴經』의 「普賢行願品」에서 유래되었을 것이라고 推定하고 논자는 本文에서 考察하였는데 그 내용의 眞髓를 기술하면 아래와 같다.
만약 보살이 중생을 隨順하면 곧 모든 부처님을 수순하여 공양함이 되며, 만약 중생을 존중히 받들어 섬기면 곧 부처님을 존중히 섬김이 되며…… 모든 부처님은 자비하신 마음으로 근본(體)을 삼으시기 때문에 중생으로 인하여 보리심을 발하고, 보리심으로 인하여 等正覺을 이루느니라.
이런 『華嚴經』普賢行願의 사상 영향으로 청담 스님은 20세기 한국불교의 菩薩의 化身으로 모든 중생들에게 보리심을 발할 것을 권하고, 인연 따라 조그마한 암자, 학생회, 교도소, 군부대 등 가릴 것 없이 그 몸을 안 나타낸 곳 없이(處染常淨) ‘普賢行願’(慈悲無敵)을 실천한 忍辱菩薩이었다. “다시 태어나도 기꺼이 이 길을 걷겠다”는 청담 스님의 誓願의 獅子吼는 모든 불자의 마음에 새겨져 영원히 살아있으리라 생각한다.
우리는 청담 스님의 이념인 唯心思想(citta-mātratā)에 의지하여 선악의 주체인 ‘마음’을 맑히고 밝혀서 영원한 大自由人이 되어 一切衆生을 濟度하겠다는 願力(praṇidhāna)을 갖고 삶을 살아가야겠다. 결론적으로 청담스님의 포교사상은 우리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는 萬古光明을 계발하여 慈悲無敵의 삶을 실천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스님의 포교사상의 요체인 ‘萬古光明’은 『금강경』으로부터 나왔고, ‘慈悲無敵’은 『화엄경』「보현행원품」으로부터 유래되어 스님의 독특한 구상의 방식과 특색이 작용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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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약>
청담 대종사(1902-1971)는 한국 근·현대 불교사의 중심에서 대승보살도의 살아있는 실증을 보이신 인욕보살로 칭해지고 있다. 청담대종사는 일생을 온 몸으로 중생교화의 보살도를 실천한 분이다. 생존 시, 스님의 법문 주조(主潮)인 “육신은 멸해도 법신은 영원하다. 성불을 한 생 미루더라도 모든 중생을 다 건지리라”라고 하신 말씀에 스님의 포교사상이 함축되어 있다고 필자는 고구(考究)했다.
청담스님의 포교사상은 초기 대승불교의 경전 중 『금강경』과 『화엄경』의 「보현행원품」으로부터 주로 영향을 받아 청담스님의 독특한 구상의 방식과 특색이 작용하여 한국의 20세기에 보살도를 구현한 것으로 필자는 생각한다. 스님의 포교사상은 우리 마음 속에 내재되어 있는 ‘萬古光明’을 계발하여 ‘慈悲無敵’의 삶을 실천하자는 것이다.
이런 보살의 정신으로 스님은 생존 시 오직 홀로 거의 매일같이 발길 닿는대로 중생이 있는 곳 원하는 곳이라면 언제 어디서나 잠시의 쉴 틈도 없이 초인적인 전법활동을 펴시어 불교교단에 대한 사회의 소홀한 인식을 적극적 관심으로 개선시킨 분이다. 스님의 삶은 오늘의 포교이념과 방향을 정립하는데 지남(指南)이 될 것이다.
주제어: ‘대승의 보살도’, ‘만고광명(萬古光明)’·‘자비무적(慈悲無敵)’
Venerable Chung-dam's Missionary Thought
Sun-Keun Kim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work is a study of Venerable Chung-dam's Missionary Thought. Just as Buddha who was born 'the Way', found 'the Way' while asking about 'the Way', guided all sentient beings to 'the Way', Venerable Chung-dam'(1902-1971) lived his whole life practicing 'Bodhisattva's respectable conducts(praṇidhāna).
The fundamental attitude of Venerable Chung-dam on missionary activities is derived from Bodhisattva's view on Ātman in Mahāyāna Buddhism.
The Bodhisattva, in the Jātaka as well as in the Mahāyāna-sūtras, is one who researches his own enlightenment but also educates all the peoples. That is, Venerable Chung-dam wants to save all the world. This spirit must be a basis for the missionary.
In the Saddharmapuṇḍarīka-sūtra we find a following passage. "If there be any who hears the dharma, not one will fail to become Buddha. This is a Buddha's(tathāgata)Vow." This basic point is also adaptable to Buddhist activities to the modern world. Why, now then, is missionary activity so necessary for human beings? We find this answer in the following from Vināya. "For the gain of the many, for the welfare of the many, out of compassion for the world, for the good, for the gain, and the welfare of gods and men."
During about forty years after Venerable Chung-dam got his enlightenment in 1934, he educated many kind of people such as Rājan(king), Gṛhapati(house holder), Śreṣṭhin(great merchant) and women. His sphere of missionary activities was very wide, namely from the North Seoul district to the South Pusan district. His way of Budhisattva in instruction for all creatures came from 'the mind philosophy'. He said 'mind is the subject of all'. It may be the most appropriate way for us to develop the eternal enlightenment(萬古光明) within ourselves, and to practice's the life of 'compassion with no enemy(慈悲無敵)', through his way of Bodhisattva. Venerable Chung-dam can be a model and hope for all.
In conclusion, I would like to emphasize that the most important thing is whether the individual Buddhist realizes his own duty or not
Key words; Way of Budhisattva, Eternal enlightenment(萬古光明), Compassion with no enemy(慈悲無敵).
[출처] 청담대종사의 포교사상|작성자 만남 창조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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