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4 지공 화상 37 /대승찬송십수(大乘讚頌十首) 10-1 /
깨달으면 곧 보리다
오해즉시보리 - 悟解卽是菩提
료본무유계처 - 了本無有階梯
감탄범부구루 - 堪嘆凡夫傴僂
팔십불능발제 - 八十不能跋蹄
깨달으면 곧 보리다.
근본을 알면 차례가 없다.
슬프다. 범부들이 비실거리며
80이 되어서도 능히 걷지를 못하네.
해설 ; 모든 깨달은 사람들이 다 그렇듯이 지공 화상께서도 사람으로 태어나고 더구나 불법을 만난 사람으로서 참되고 바른 이치를 모르고 꿈속에서 헤매듯이 비실비실하면서 80이 넘도록 진정한 인생을 살아가지 못하는 그 처지가 안타까워서 하신 말씀이다. 깨달으면 곧바로 보리인데 그리고 아무런 차례도 계단도 순서도 없는 데서 그런 이치를 모르고 한단계한단계 밟아 올라가면 무엇인가가 있는 줄로 아는 어리석은 기존의 불교인의 상식을 깨트려 주는 가르침이다.
제124 지공 화상 38 /대승찬송십수 10-2 /
한갓 수고로이 일생을 헛되게 보내면서
도로일생허과 - 徒勞一生虛過
불각일월천이 - 不覺日月遷移
항상간타사구 - 向上看他師口
흡사실내해아 - 恰似失妳孩兒
한갓 수고로이 일생을 헛되게 보내면서
날과 달이 옮기고 옮겨감을 알지 못하네.
위로 나아감에 스승의 입만 바라보니
흡사 어머니의 젖을 잃은 어린아이와 같도다.
해설 ; 하루가 지나고 한달이 지나고 한해가 지나가는 것을 가만히 살펴보면 참으로 빠르고 빠르다. 그 빠름을 느끼는 것은 나이가 많을수록 그 속도는 더하다. 차가 달리는 속도에 견주어 말하기도 한다. 40대에는 40키로로 달리는 것과 같고, 50대에는 50키로로 달리는 것과 같고, 60대에는 60키로로 달리는 것과 같고, 70대에는 70키로로 달리는 것과 같다고 한다. 참으로 맞는 말이다. 그렇게 빨리 지나가는데도 지나놓고 보면 마음에 흡족할 정도로 한 것이 없다. 지공 화상께서는 수행을 한다는 사람들도 기껏해야 선지식의 설법하는 입만 쳐다보고 있는 꼴이 마치 어머니가 젖을 주지 않을 때 그 어머니만 쳐다보고 있는 어린아이의 모습과 같다고 하였다.
제124 지공 화상 39 /대승찬송십수 10-3 /
종일토록 죽은 말을 듣고 있구나
도속쟁엽집취 - 道俗崢嶸聚集
종일청타사어 - 終日聽他死語
불관기신무상 - 不觀己身無常
심행탐여낭호 - 心行貪如狼虎
도를 닦는 이와 속인들이 다투어 모여들어
종일토록 죽은 말을 듣고 있구나.
자신의 몸이 무상한 줄은 관찰하지 않고
마음으로 탐욕하는 것이 이리나 호랑이와 같도다.
해설 ; 불교를 공부한다. 수행을 한다. 라고 하는 이들이 대개는 경전이나 어록이나 또는 요즘 사람들이 쓴 글들을 읽고 머리로 이해하는 것에 그친다. 이웃 종교인들도 마찬가지다. 마음에 깊이 새겨 그 내용을 자신의 인격이 되게 하여 실천하는 것을 보기는 어렵다. 이해만 하고 말면 아무리 훌륭한 가르침이라도 모두가 죽은 말이 되고 만다. 하찮은 말이라도 마음에 깊이 새겨 실천에 옮긴다면 그것은 살아있는 말이 된다. 말 자체에는 죽은 말과 살아있는 말이 없다. 받아드리는 사람의 자세에 따라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한다. 훌륭한 가르침이지만 실천에 옮기지 않으니 본능대로 온갖 것에 욕심을 부리면서 살 수 밖에 없다. 지나치면 그 모습이 마치 이리나 호랑이와 다를 바 없다. 진정으로 뜻있는 삶, 큰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지나친 욕심을 삼가고 성인의 가르침을 자신의 인격으로 하여 자신도 이롭고 남도 이로운 길을 가야할 것이다.
제124 지공 화상 40 /대승찬송십수 10-4 /오장육부만 조복하려하네
감차이승협열 - 堪嗟二乘狹劣
요수최복육부 - 要須摧伏六府
불식주육오신 - 不食酒肉五辛
사안간타음저 - 邪眼看他飮咀
갱유사행창광 - 更有邪行猖狂
수기불식염초 - 修氣不食鹽醋
약오상승지진 - 若悟上乘至眞
불가분별남녀 - 不假分別男女
슬프다, 이승들의 마음은 좁고 용렬해서
오장육부만 조복하려하네.
술과 고기와 오신채를 먹지 않고
비뚤어진 눈으로 남이 먹는 것을 곁눈질하네.
더하여 삿되고 미친 짓을 보태어
정기를 닦느라고 소금과 식초를 먹지 않네.
만약 최상승의 지극한 진리를 깨달으면
남자와 여자를 분별하는 짓을 하지 않으리라.
해설 ; 이승이란 불교를 공부하면서 소견이 터지지 못하고 본디 좁은데다 자기의 주장까지 더하여 더욱 아주 이상하리만치 비뚤어진 종류의 사람들을 가리킨다. 마음을 닦고 수행을 하여 가장 모범이 되고 바람직한 인생을 살고자하면서 겨우 5장 6부나 다스리고, 술이나 고기를 먹지 않고, 5신채를 먹지 않는 등 좁은 의미의 계율이나 지키는 것으로서 자랑을 삼는다. 그러면서 일반인들이 그러한 음식을 먹는 것을 지나치게 죄악시하면서 대단히 삿된 짓을 하는 것이라고 하여 사람 취급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참으로 소승이라고 비판받아 마땅하다.
또 한편으로 삿되고 미친 짓을 더하여 운기조성을 한다느니, 정기를 닦는다느니 하면서 다만 건강과 장수만을 궁리하여 소금과 식초를 먹지 않으면서 비정상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선방에 앉아서 화두는 잊어 버린지 오래고 위와 같은 행태를 자행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다. 불교는 이 세상에서 가장 수승한 가르침이다. 그러므로 가장 수승한 삶을 사는 길을 제시하였다. 그 소중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나서 진정으로 불교적 삶이 무엇인가를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고 사는가. 그래서 불교는 모든 것을 초월한 해탈의 삶을 주장한다. 해탈이란 무엇인가. 행복도 불행도 아니다. 오래 살고 일찍 죽고를 생각하지 않는다. 승속도 따지지 않는다. 물론 남자와 여자도 분별하지 않는다. 그 모든 차별로부터 멀리 벗어난 거칠 것 없는 삶이다. 외형은 어떤 모습이든 따지지 않는다. 마치 여름날 하늘에 뭉게구름이 별별 모습을 짓다가 순식간에 정처 없이 저 먼 하늘가로 사라져 버리는 것과 같다.
지공 화상이 이와 같은 대승찬송(大乘讚頌) 십수(十首)를 지어 세상에 전하는 뜻은 소중한 인생으로 태어나서 더없이 값진 불법까지 만났으니 모두가 대승적 삶, 즉 크고 위대한 삶을 살다 가라는 것이다. 공연히 좁고 좁은 소견으로 귀중한 인생을 허비하지 말라는 뜻이다. 큰 인생, 위대한 삶이란 역사에 기록되고 위인전에 오르는 그런 삶이 아니다. 소견이 툭 터져 어디에도 메이지 않는 해탈의 삶으로서 본래 지닌 인생의 가치를 한껏 누리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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