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도(至道, 지극한 도)
至道無難 唯嫌揀擇
지도무난 유혐간택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음이요
오직 간택함을 꺼릴 뿐이니
지극한 도(道)란 곧 무상대도(無上大道)를 말합니다. 이 무상 대도는 전혀 어려운 것이 없으므로 오직 간택(揀擇)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간택이란 취하고 버리는 것을 말함이니, 취하고 버리는 마음이 있으면 지극한 도는 양변(兩邊), 즉 변견(邊見)에 떨어져 마침내 중도의 바른 견해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세간법(世間法)을 버리고 불법(佛法)을 취해도 불교가 아니며, 마구니(魔軍)를 버리고 불법을 취해도 불교가 아닙니다. 무엇이든지 취하거나 버릴 것 같으면 실제로 무상대도에 계합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참으로 불법을 바로 알고, 무상대도를 바로 깨치려면 간택하는 마음부터 먼저 버리라고 한 것입니다.
但莫憎愛 洞然明白
단막증애 통연명백
다만 미워하고 사랑하지만 않으면
통연히 명백하니라.
미워하고 사랑하는 이 두 가지 마음만 없으면 무상대도는 툭트여서 명백하다는 것입니다. 부처는 좋아하고 마구니는 미워하며, 불법을 좋아하고 세간법은 미워하는 증애심(憎愛心)만 버리면 지극한 도는 분명하고 또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무상대도를 성취하려면 간택하는 마음을 버려야 하는데,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미워하고 사랑하는 마음, 즉 증애심입니다. 이 증애심만 완전히 버린다면 무상대도를 성취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습니다.
이상의 네 귀절이 바로 [信心銘]의 근본 골자입니다. 이제 정맥으로서 낭야각(瑯揶覺)선사라는 큰스님이 계셨습니다. 그 스님에게 어느 재상이 편지로 "신심명은 불교의 근본 골자로서 지극한 보배입니다. 이 글에 대하여 자세한 주해(註解)를 내려 주십시오" 하고 부탁했습니다. 그랬더니 낭야각선사가 답하기를, '至道無難이요 唯嫌揀擇이니 但莫憎愛하면 洞然明白이라'하는 첫 귀절만 큼지막하게 쓰고, 그 나머지 뒷 귀절들은 모두 조그맣게 써서 주해로 붙여버렸습니다.
그렇게 한 뜻이 무엇일까요? [신심명]의 근본 골수는 크게 쓴 귀절속에 다 있으므로 이 귀절의 뜻만 바로 알면 나머지 귀절들은 모두 이 귀절의 주해일 뿐, 같은 뜻만 바로 알면 나머지 귀절들은 모두 이 귀절의 주해일 뿐, 같은 뜻이라는 말입니다.
낭야각선사가 앞 네 귀절만 크게 쓰고 뒤절은 주해로 써서 답장한 이것은 [신심명]에 대한 천고의 명 주해로서, 참으로 걸작이라는 평을 듣는,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실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신심명]을 바로 알려면 미워하거나 사랑하는 마음을 버려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증애심만 떠나면 중도정각(中道正覺)입니다. 대주스님은 [돈오입도요문(頓悟入道要門)]에서 '증애심이 없으면 두 성품이 공하여 자연히 해탈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첫 네 귀절이 [신심명]의 핵심이고 뒷 귀절들은 주해의 뜻으로 이해하여야 할 것입니다.
毫釐有差 天地懸隔
호리유차 천지현격
털끝만큼이라도 차이가 있으면
하늘과 땅 사이로 벌어지나니.
"지극한 도는 어렵지 않네! 취하고 버리는 마음과 미워하고 사랑하는 마음만 버려라"고 하니, "아 그렇구나, 천하에 쉽구나!" 라고 생각할는지 모르겠지만, 이 뜻을 털끝만큼이라도 어긋나게 되면 하늘과 땅 사이처럼 차이가 난다는 것입니다.
쉽다는 것은 간택심 증애심만 버린다면 중도를 성취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고, 성불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으며, 무상대도를 성취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지만, "이 간택심을 버린다, 증애심을 버린다"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이 뜻을 털끝 만큼이라고 어긋나게 되면 하늘과 땅 사이만큼이나 벌어진다고 하니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欲得現前 莫存順逆
욕득현전 막존순역
도가 앞에 나타나길 바라거든
따름과 거슬림을 두지 말라.
"무상대도를 깨우치려면 따름(順)과 거슬림(逆)을 버리라"라고 한 것입니다. '따름'과 '거슬림'은 상대법으로서, 따른다 함은 좋아한다는 것이고, 거슬린다 함은 싫어한다는 것이니, 이는 표현은 다르나 '싫어하고 좋아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이는 쉽다면 쉽고 어렵다면 어려운데, 지극한 도를 얻으려면 따름과 거슬림의 마음을 내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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