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제(解題)
<신심명(信心銘)>은 삼조(三祖) 승찬대사(僧璨大師)가 지은 글입니다. 명(銘)이란 일반적으로 금석(金石), 그릇, 비석 따위에 자계(自戒)의 뜻으로나, 남의 공적 또는 사물의 내력을 찬양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여 새긴 한문 글귀를 말하는데, 이 <신심명)>은 삼조(三祖)스님께서 우리가 처음 발심할 때로부터 마지막 구경성불할 때까지 가져야 하는 신심에 대해서 남겨 놓으신 사언절구(四言絶句)의 시문(詩文)입니다.
이 <신심명>은 글 자체가 뛰어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신심이란 도(道)의 본원(本源)이며 진여법계(眞如法界)에 사무쳐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글은 우리 수도인의 좌우명(左右銘)인 것입니다. 승찬대사는 수(隋)나라의 양제(煬帝) 대업(大業) 2년 10월 5일(서기 606년)에 입적하셨으며, 그의 세수는 알 수 없습니다.
승찬대사가 돌아가신 지 150여 년 뒤 당(唐)나라 현종(玄宗) 황제가 감지선사(鑑智禪師)라 시호(諡號)를 올리고 탑호(塔號)를 각적(覺寂)이라 하였으며 그 당시 유명한 재상인 방관(房琯)이 탑비문을 지었습니다.
승찬대사는 본래 대풍질(大風疾)이라는 큰 병에 걸려 있었는데 오늘날의 문둥병입니다. 스님은 문둥병에 걸려 죽을 고생을 하다 이조(二祖) 혜가 대사(慧可大師)를 찾아가 자기의 성명도 밝히지 않고 불쑥 물었습니다.
"제자는 문둥병을 앓고 있사옵니다. 화상께서는 저의 죄를 참회케 하여주십시오."
"그대는 죄를 가져 오노라. 죄를 참회시켜 주리라."
"죄를 찾아보아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대의 죄는 모두 참회되었느니라.
그대는 그저 불(佛), 법(法), 승(僧) 삼보(三寶)에 의지하여 안주해라."
"지금 화상(和尙)을 뵈옵고 승보(僧寶)는 알았으나
어떤 것을 불보(佛寶), 법보(法寶)라 합니까?"
"마음이 부처며 마음이 법이니라.
법과 부처는 둘이 아니요, 승보도 또한 그러하니 그대는 알겠는가?"
"오늘에야 비로소 죄의 성품은
마음 안에도 밖에도 중간에도 있지 않음을 알았으며
마음이 그러하듯 불보와 법보도 둘이 아닌 줄 알았습니다."
이에 혜가대사께서 그가 법기(法器)인 줄 아시고 매우 기특하게 여겨
바로 머리를 깎아 주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나의 보배이다. 구슬 찬(璨)자를 써서 승찬(僧璨)이라 하라."
그해 3월 18일 복광사(福光寺)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고 그로부터 병이 차츰 나아져서 2년 동안 혜가스님을 시봉하였습니다. 승찬대사는 평생을 은거하여 지내다가 나중에 어린 나이의 도신선사(道信禪師)를 만나 법을 깨우쳐 주고 뒤에 구족계를 받게 한 후 법을 전하면서 "나에게서 법을 받았다고 절대로 말하지 말아라."고 당부 하셨다고 합니다.
돌아가실 때에는 법회하던 큰 나무 밑에서 합장한 채 서서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그때 사람들이 묘를 써서 스님을 모셨는데, 뒤에 이상(李常)이라는 사람이 신회선사(神會禪師)에게 물어서 산곡사(山谷寺)에 승찬대사의 묘가 있음을 알고는 가서 화장하여 사리(舍利) 삼백 알을 얻었다고 합니다.
승찬스님은 본래 문둥병을 앓았기 때문에 문둥병이 나은 후에도 머리카락이 하나도 나지 않았으므로, 사람들은 스님을 적두찬(赤頭璨)이란 별명으로 불렀습니다. 이는 대머리의 붉은 살뿐이라는 뜻입니다.
그 승찬대사가 남겨 놓은 저술이 바로 이 <신심명>입니다. 요즈음 일본 학자들 가운데는 그 분이 숨어 다니면서 살았기 때문에 그의 행적에 모순된 점이 많다고 하여 실제 인물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역사적인 여러 가지 점들을 상고해 보면 삼조 승찬스님이 실제 인물임에는 틀림없다고 나는 봅니다.
그런데 이 <신심명>에 있어서 그 신(信), 곧 믿음이 보통의 신(信), 믿음이 아니라 신, 해, 오, 증(信解悟證) 전체를 통하는 신(信), 믿음입니다. 글 전체는 4언절구(四言絶句)로 해서 146구 584자로 되어 있는 간단한 글이지만, 팔만대장경의 심오한 불법도리와 천칠백 공안의 격외도리(格外道理)전체가 이 글 속에 포함되어 있다고 모두들 평(評)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의리적(義理的)으로 법문한 것 같지만 간단한 이 글 전체 속에 격외도리가 다 갖추어져 있으며, 교리의 현묘한 뜻도 빠짐없이 있습니다. 중국에 불법이 전해진 이후로 '문자로서는 최고의 문자'라고 학자들이 격찬할 뿐만 아니라 삼조 승찬대사의 <신심명>같은 문자는 하나일 뿐, 둘은 없다고들 평합니다. 그러므로 이 글이 불교에 있어서 참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와 같이 불교사상사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신심명의 근본 골자가 무엇인가 하면 글 전체가 모두 양변을 여읜 중도(中道)에 입각해 있다는 것입니다. 글 전체를 자세히 살펴보면 대대(對對)를 40대(四十對)로 갖추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대대(對對)란 곧 미워함과 사랑함[憎愛], 거슬림과 따름[逆順], 옳고 그름[是非] 등등 일상생활에서 나타나고 있는 중생의 상대 개념 즉 변견을 말하는 것입니다.
<신심명>은 간단한 법문이지만 대대(對對)를 떠난 중도법을 간명하게 보여준 드문 저술입니다. <신심명>은 일관된 논리로서 선(禪)이나 교(敎)를 막론하고 불교 전체를 통하여 양변을 여읜 중도(中道)가 불교의 근본 사상임을 표현한 총괄적인 중도총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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