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의 ‘실(實)’과 방편의 ‘권(權)’은 불이(不二)
법화열반시의 비돈비점(非頓非漸)
불길은 치성하여 온 집을 태우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들은 집에 불이 붙었는지도 모르고 놀고 있었다. 철이 없는 아이들은 도무지 집 밖으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를 본 아이들의 아버지는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크게 외쳤다. “너희들은 빨리 나오너라. 밖으로 나오는 사람에게는 내가 멋진 수레를 주겠다!” 아이들은 소가 끄는 수레, 사슴이 끄는 수레, 양이 끄는 수레를 원하는 대로 각각 주겠다는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비로소 불 속에서 나왔다.
위 내용은 〈법화경〉에 나오는 삼계화택(三界火宅, 비유품)의 비유다. 아이들의 마음과 기호에 따라 양ㆍ사슴ㆍ소가 끄는 수레를 준다고 말한 것은 3승의 근기에 맞춘 것이라 할 수 있다. 모두 방편의 법문이지만, 어느 것이나 모두 부처님의 자증(自證)의 진실 속에 포함된다. 세 가지 수레는 다만 이름 뿐, 실질적인 근간[車體]은 1불승의 크고 훌륭한 흰 소가 끄는 대승의 수레(大白牛車)다.
근기와 인연에 따라 중생을 위해 설해지는 부처님 법은 일견 다르게 보이지만, 실상 그 근간에서는 결코 다르지 않다. 마치 우리가 파도치는 바다를 볼 때, 일견 물과 파도가 다르게 보이지만 근간에서는 다르다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여래의 설법은 진정 묘법(妙法)이다. 1불승에 대해 3승의 가르침으로 분별하여 설하거나, 내지 3승으로써 1불승의 이법(理法)을 나누어 설한 것이지, 부처님의 법은 실상 한 음성으로 꾸준히 설해진 것이다.
부처님의 설법은 중생의 기근과 인연에 감응하여 일어난다. 예컨대 5시설 가운데 앞의 4시인 화엄시와 아함시와 방등시와 반야시의 시기 동안, 중생의 근성은 여러 가지로 나누어져 있다. 이러한 까닭에 중생교화라는 입장에서 돈교ㆍ점교ㆍ비밀교ㆍ부정교 등의 화의4교로 나누어진다.
제5시에 이르러 3승의 중생 기근은 융합되지 못하였던 일이 비로소 하나로 모아진다. 이러한 이치에서 볼 때, 결국 화의4교는 화엄시와 아함시와 방등시와 반야시에 한정된다 할 수 있다.
법화시에 이르면 중생의 근성은 다르지 않게 되어, 더 이상 화의4교라는 구분으로 국한할 수 없다. 상대성과 절대성, 평등성과 차별성 등의 여러 요소로 더 이상 법화시를 규정지을 수 없다. 따라서 천태의 여러 전적에서는 제5시를 비돈교ㆍ비점교의 이치로 설명하고 있다. 흔히 제5시를 법화시로 간략히 언급하는데, 이는 〈열반경〉을 의도적으로 생략한 것이 아니라 줄여 표현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더불어 경우에 따라 간혹 제5시를 점원(漸圓)으로 보는 견해가 있음을 알아 두어야 하겠다. 〈법화경〉의 수승한 원교를 근기가 점차 무르익는 중생의 입장에서 수용하는 관점이다. 시간적으로 점진적인 성취를 판별하고자 별도로 그 의미를 부여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이 지면에서는 일반적인 견해에 따라 〈법화경〉이 지닌 순정한 묘법(妙法)에 대한 판석(判釋)을 돈교나 점교 어느 하나로 규정지을 수 없다는 전제로 글을 이어 나가기로 한다.
우리는 지난 12회의 연재에서 개권현실(開權顯實)과 폐권입실(廢權立實)을 잠시 살펴보았다. 여러 경을 통해 여래의 방편이 설해졌고, 드디어 제5시에 이르러 진실을 설하게 되므로 개권현실(開權顯實), 방편을 폐하고 진실을 세우므로 폐권입실(廢權立實)이라 칭하는 것이 내용의 요지다.
내용의 긴요함을 고려하여 권(權)과 실(實)이라는 말의 뜻을 거듭 살펴보자. 불가에서는 근본적인 진리를 가리켜 실(實), 근기에 맞춘 방편을 가리켜 권(權)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그간 살펴보았던 화의4교 가운데 돈교ㆍ점교를 권이라 놓고 본다면 이에 상대하여 비돈ㆍ비점을 실이라 할 수 있다. 나아가 화법4교와 결부하여 살펴보면, 장교ㆍ통교ㆍ별교의 3교를 권이라 할 때 원교를 실이라 한다.
여래는 법을 널리 펴 근기에 따라 중생에게 이익을 주는 바, 기실 털 한 올 만큼의 차이도 없다. 하지만 중생의 근기가 모두 같지 않다. 그리하여 영산에서 여래가 〈법화경〉을 설하여 성문과 연각과 보살 등의 3승에게 하나의 1불승을 깨닫게 해 본래 뜻을 펼치게 되는 것이다. 참으로 일대사인연의 묘한 극치라 하겠다.
〈법화경〉의 설법을 불가의 어른들께서는 “방편을 열어 진실을 보인다”고 표현한다. 5시 가운데 앞의 4시(화엄시ㆍ아함시ㆍ방등시ㆍ반야시)와 화법4교 가운데 3교(장교ㆍ통교ㆍ별교)를 통해 실상을 열어 보인다는 뜻이라 보면 이해가 쉬이 된다.
정리하면, 이전까지의 설법을 방편으로 삼아 드디어 1불승이 지닌 실상의 진실을 중생에게 보이는 것이 〈법화경〉의 가르침이다. 아울러 중생의 3독(탐ㆍ진ㆍ치)에 물든 망심(妄心)을 활연히 열어 모든 부처님께서 지니신 3덕(법신ㆍ반야ㆍ해탈)의 실상을 열어 보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셋을 모아 하나로 귀결케 한다’고 표현하며, 3승을 함께 모아 1불승을 드러내는 가르침이라 규정지을 수 있다.
꽃과 열매의 비유, 연화3유(蓮華三喩)
입춘이 지나 매화가 개화한 계절이다. 꽃이 피고난 후 열매가 맺는 것은 세간의 보통 일이다. 하지만 연꽃의 경우 이와 다르다.
‘적문’의 일을 두루 설하시고 ‘본지’의 수명 나타내시고자 / 본시의 권속을 모아 말씀하지 않으셨던 바를 말씀하시네 //
위의 게송은 〈행적송〉 제106게송이다. 여기서 등장한 ‘적문(迹門)’과 ‘본지(本地)’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나아가 ‘본(本)’과 ‘적(迹)’이라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제 연꽃의 비유를 통해 이 궁금증을 해결해보기로 하자.
연꽃의 열매를 연밥이라 한다. 늪 위의 연화는 다른 꽃과 달리 꽃과 열매가 동시에 존재한다. 이러한 특성에 비추어 〈법화경〉의 묘법(妙法)이 설명되어져 왔다. 천태대사에 의해 적문(迹門)과 본문(本門)의 관계는 아래와 같이 연꽃과 연밥의 관계로 비유되었다.
㉠ 연밥을 위하여 연꽃이 핌(爲蓮故華) ㉡ 연꽃이 개화하여 연밥이 드러남(華開蓮現) ㉢ 연꽃이 떨어져 연밥을 이룸(華落蓮成) 등의 셋을 대사는 큰 특징으로 손꼽고, 〈법화경〉의 구성을 본문(本門)과 적문(迹門)으로 나누었다.
분류에 따르면 서품에서 안락행품의 14품이 적문, 용출품에서부터 경의 끝까지의 14품이 본문이다. 시간적으로 본다면 아득히 오랜 겁 이전 여래가 본래 앉은 도량에서 이룬 바가 근본이 되며 이를 본문으로 삼는다. 그리고 대통승지불의 중간부터 내지 가까운 시절에 이루어진 여래의 자취가 적문이 된다.
즉 아득히 옛 시절 이미 성불한 여래의 측면에서 본문이라 칭하는 것이고, 본신으로부터 드리워 중생을 위해 능히 온갖 교화를 펴는 근본이기에 본지(本地)라 한다. 그리고 보리수 아래에서 성불하신 응화(應化)의 석가여래가 이루신 교화의 측면을 적문이라 칭하고, 능히 응현하는 여래의 자취이므로 수적(垂迹)이라 칭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아득히 오래 전 이루어진 여래의 본지를 줄여 본(本)이라 하고, 근래에 이루어진 성불의 자취인 수적을 줄여 적(迹)이라 표현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쓰는 말로 정리하여 말하면, 적문은 석가여래의 모습으로 나타나 권을 이끌어 실에 귀결시키는 것을 말하고, 본문은 과거 오랜 시절 겁 이전에 성불한 최초의 부처님이 성불한 일을 나타내어 진실의 길을 증진하는 것이다.
본문(本門)
본문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부처님의 본체(本體)를 나타내는 측면이다. 〈법화경〉의 후반 14품에 해당한다. 천태대사 이래로 이를 살펴 볼 수 있는 주요 잣대는 ① 본지로부터 자취을 드리움[從本垂迹] ② 자취를 열어 본지를 나타냄[開迹顯本] ③ 자취를 폐하고 본지를 내세움[廢迹立本] 등의 내용이다. 이를 좀 더 풀이하여 살펴볼 필요성이 있다.
앞서 위에서 연화의 세 가지 특성을 제시하였다. 진실과 방편이라는 측면에서 연꽃과 연밥의 관계를 비유로 든 것이데, 이 중 첫째 비유는 ㉠ 연밥을 위하여 꽃 핌이다. 이에 대해 본문의 입장에서 ① 본지의 부처님으로부터 자취[迹]를 드리우는 것으로 본다.
여기서 연밥이란 본지의 부처님 즉 본불(本佛)을 뜻하고, 연꽃은 사바세계에서 8상의 교화를 펼쳐 구원실성의 본지를 드러낸 석가부처님 즉 적불(迹佛)을 의미한다.
둘째, ㉡ 연꽃이 피어 연밥이 드러남을 본문의 입장에서는 ② 자취의 적문을 열어 본지의 본문을 드러내는 것으로 본다.
‘꽃 피다’라는 표현은 적문을 활짝 연 것을 비유한다. 이를 통해 연밥을 드러내어 본문을 드러내는 것이다. 보리수 아래에서 여래가 비로소 처음 성불했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아득한 오랜 옛 시절 전에 성불한, 구원 성불의 본불을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셋째, ㉢ 연꽃이 떨어져 연밥을 이룸[華落蓮成]에 대한 본문의 입장은 ③ 연꽃이 떨어지고 나면 연밥이 이루어지듯 적문을 닫고 본문을 세운 것이라 본다.
여기서 ‘꽃 지다’라는 표현은 적문을 닫는 것이고, 연밥이 이루어진 것은 본문을 세운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일체의 부처님께서 교화하신 법은 가여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것이다. 이는 진실되며 허망한 바가 아니다.
이러한 까닭에 보리수 아래에서 성도한 후 중생을 교화하였고, 열반에 들어 스스로 적문을 닫았다. 이미 아득한 오래 전, 구원겁 전에 성불한 부처님의 본문을 세운 것이다. (적문은 다음호에)
정성우/선리연구원 상임연구원 ggbn@gg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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