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위순(違順, 거슬림과 따름) - 1
違順相爭 是爲心病
위순상쟁 시위심병
어긋남과 다름이 서로 다툼은
이는 마음의 병이 됨이니
어긋난다, 맞는다 하며 서로 싸운다면, 이것이 갈등이 되고 모순이 되어 마음의 병이 된다는 말입니다.
不識玄旨 徒勞念靜
불식현지 도로염정
현묘한 뜻은 알지 못하고
공연히 생각만 고요히 하려 하도다.
"참으로 양변을 여읜 중도의 지극한 도를 모르고 애써 마음만 고요히 하고자 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대도를 성취하려면 누구든지 가만히 앉아서 고요히 생각해야지, 다른 방법이 없다' 고暉求� 사람들을 위해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대도(大道) 라는 것은 간택심(揀擇心) 증애심(憎愛心) 순역심(順逆心)을 버리면 성취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것이므로, 마음을 억지로 고요하게 해서도 안되고 그렇다고 분주하게 해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고요히 하면 안 된다고 하니 그러면 분주하게 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혹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움직임과 고요함 두 가지가 다 병으로서, 움직임이 병이라면 고요함도 병이고 어긋남이 병이라면 맞음도 병입니다. 왜냐하면 이 모두가 상대적인 변견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대를 버려야 대도에 들어가게 됩니다.
圓同太虛 無欠無餘
원동태허 무흠무여
둥글기가 큰 허공과 같아서
모자람도 없고 남음도 없거늘
"지극한 도는 참으로 원융하고 장애가 없어서, 둥글기가 큰 허공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즉 융통자재하여 아무런 걸림이 없음을 큰 허공에 비유하였습니다. 여기에는 조금도 모자라거나 남음도 없습니다. 지극한 도란 누가 조금이라도 더 보탤 수 없고 덜어낼 수도 없어 모두가 원만히 갖추어 있기 때문에, 누구든지 바로 깨칠 뿐 증감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지극한 도가 눈앞에 나타나지 않는 것일까요?
良由取捨 所以不如
양유취사 소이불여
취하고 버림으로 말미암아
그 까닭에 여여하지 못하도다.
"지극한 도는 취하려 하고, 변견은 버리려하는 마음이 큰 병이라"는 것입니다. 대중들이 변견을 버리도록 하기 위해서 나도 할수 없어서 중도를 많이 얘기하지만, 그 말을 듣고 중도를 취하려 하고 변견을 버리려 하면 이것이 큰 병이라는 뜻입니다. 혹 변견은 취하고 중도를 버리면 되지 않겠느냐고 생각하겠지만, 그것도 병은 마찬가지로서 무엇이든지 취하고 버리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큰 병입니다.
대도에는 모든것이 원만구족하여 조금도 모자라고 남는 것이 없지만, 우리가 근본 진리를 깨치지 못한 것은 취하고 버리는 마음, 즉 취사심(取捨心)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중생을 버리고 부처가 되려는 것도 취사심이며, 불법을 버리고 세속법을 취하는 것도 취사심으로서 모든 취하고 버리는 것은 다 병입니다.
때문에 "취사심으로 말미암아 여여한 자성을 깨치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여여한 자성'이란 무상대도를 말합니다. 그렇다면 취사심을 버리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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