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식

계룡산 무상사 조실 대봉스님

수선님 2021. 9. 21. 14:56

“나(我)를 버려야 대자유 얻어”

무상사서 외국인 참선 지도하는 대봉스님

 

 

매서운 동장군이 물러나자 봄을 재촉하는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2월 25일 계룡산 무상사 국제선원에서 3개월간의 안거기간동안 화두와의 한판 대결을 마친 납자(衲子)들도 봄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동안거 해제를 3일 앞두고 만난 무상사 조실 대봉(大峰)스님 역시 경내를 오가는 수행자들과 대화를 나누며 얼마 남지 않은 안거의 일상을 챙기고 있었다. 무상사 주지 대진스님은 “무상사는 매주 일요일 오후에는 영어 법문을 하고 화요일과 금요일에는 외국인 수행자를 위한 선문답, 즉 인터뷰를 진행해 공부 내용을 점검한다”며 “영어와 한국어가 다 서툰 러시아인이나 중국인 등을 위해서는 별도 통역을 둔다”고 전한다. 대진스님은 또 “처음 온 분들에게 ‘어디에서 왔느냐’, ‘죽으면 어디로 가느냐’, ‘마음이라는 것은 어디로 가느냐’ 등을 묻고 오직 ‘모를 뿐’이라는 답을 이끌어낸다”며 “외국인이든 한국인이든 우선 그 ‘모를 뿐’인 자리에서 시작하는 것이 수행”이라고 말했다.

 

대봉스님은 잘 알려져 있듯이 한국불교를 세계에 알렸던 숭산스님의 법을 이어받은 제자 중의 수제자다. 미국 필라델피아 출신인 스님은 1977년 뉴헤이븐 선원에서 숭산스님의 법문을 듣고 감명을 받아 프로비던스 선원에서 행자생활을 시작했다. 1984년 서울 화계사로 출가해, 한국불교에 귀의한 스님은 1992년 숭산스님으로부터 인가를 받고 전법제자가 되었다.

 

                               

 

스님은 “나는 미국에서 부유하게 자랐지만, 고통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11살 때 일본에서 가마쿠라 대불(大佛)을 보고 부처님은 뭔가를 알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 이후로 ‘살아있는 부처’를 보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던 차에 숭산스님을 만나게 되었다.

 

물론 숭산스님을 처음 만났을 때 ‘인연’을 예감했다. 숭산스님의 법문 중 한 사람이 “미친 것은 무엇이며, 미치지 않은 것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숭산스님은 “당신이 어떤 것에 매우 집착하고 있으면 미친 것이고, 어떤 것에 조금 집착하고 있으면 조금 미친 것이며, 집착하지 않고 있으면 미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대봉스님은 이 말을 듣고 “내가 매달려온 심리학 10년 공부보다 숭산스님의 한 말씀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숭산스님, 한국불교와의 인연이 시작되어 오늘에 이른다.

 

이번 안거동안 스님은 모두 80여명의 대중을 이끌었다. 25일에도 스님은 11명의 후배스님 11명과 3명의 행자, 19명의 재가자들과 함께 정진하고 있었다. 재가자들은 벨로루시, 독일, 리투아니아, 뉴질랜드, 러시아, 체코, 이스라엘, 말레이시아, 남아공, 스페인 등에서 온 사람들이다. 특히 재가자들은 하루 8시간의 참선과 울력, 발우공양까지 스님들과 똑같이 수행한다. 성도재일(1월 22일)을 기준으로 앞 7일 동안에는 가행정진도 해냈다.

 

 

대봉스님은 “숭산 큰스님께서는 재가자들과 벽을 두지 말 것을 항상 말씀하셔서 무상사에서는 그 말씀을 따라 승속(僧俗) 구분 없이 함께 정진한다”고 귀뜸한다.

 

“배고프면 먹고, 피곤하면 자는 것이 결제”라는 대봉스님은 “배고픈 사람에게는 음식을 주고, 도움을 바라는 이들에게는 도움을 주는 것이 이치”라고 설명한다. 스님은 “‘내가 모른다’(I don't know)는 자각에서 더 나아가 ‘오직 모를 뿐’(Only don't know)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I’를 내려놓을 때, 태어나지도 죽지도 오지도 가지도 않는 ‘오직 청정한 한 물건’, 그것의 참된 주인을 찾을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나’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야 대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스님은 점검(interview)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공안의 첫째 목적은 수행자가 바른 수행방향을 갖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것은 ‘오직 모를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인터뷰 중에 수행자들은 화를 내기도 하고 울기도 하면서 자신의 업을 드러냅니다. 이곳에 온 사람들은 수많은 이유로 수행을 하는데, 어떤 이는 마음의 평화를 위해, 편안한 마음을 갖기 위해 온 사람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초능력을 갖기 위해 온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깨달은 이후에는 무엇을 할 것이냐고 물으면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인터뷰는 수행의 방법을 제시하기 위한 것입니다.” 요즘 한국 선방에서 사라졌다고 하는 ‘점검’이 중요한 이유가 대봉스님의 말 속에 녹아 있다. 스님의 얘기는 계속됐다. “여기에서 공안을 통한 인터뷰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지혜를 좀 더 증진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지혜는 책속의 지식이 아닙니다. 우리가 지금 이 순간 바른 행동을 보여주는 것, 그것이 지혜가 됩니다. 우리는 지혜롭게 행동하기가 어렵습니다. 매순간 탐진치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인터뷰를 통해 지혜가 나오도록 하는 것은 숭산스님의 가르침 그대로입니다.” 스승의 지도가 제대로만 된다면 수행자들은 좀 더 치열하게 정진하고 점검받으면서 공부를 계속할 수 있을 것이다.

 

숭산스님으로부터 전법게를 받을 때의 상황이 궁금하다는 질문에 스님은 “고무신도 흰색이고 운동화도 흰색”이라는 말로 답을 대신한다. 알 듯 모를 듯 한 말이다. 대진스님은 “수행에 대한 인가나 전법게, 이런 것들에 대한 분별심을 버리라는 말씀”이라고 설명한다.

 

대봉스님은 우리 사회의 경쟁풍토에 대해서도 “잘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좋으나 그것에 집착이 생기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미 프로농구(NBA) 시카고 불스를 이끌었던 필 잭슨 감독도 참선 수행자지만 현실에서는 냉정한 승부사입니다. 김연아 선수와 아사다 마오 선수 둘 다 참 잘하는데, 더 잘하려고 선의의 경쟁을 했습니다. 경쟁이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내가 꼭 이겨야지’ 하는 마음을 먹는다면, 그 승리에 집착한다면, 승리자가 돼도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대봉스님은 “해제 후 3, 4월에는 3주간 미국, 3주간 유럽에서 선원을 돌면서 외국인들을 지도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스님은 무상사 창건 후 한번도 안거에 빠진 적이 없다. 또 해제후에는 세계 곳곳을 누비며 법을 전한다. 스승 숭산스님이 그랬듯이, 정열적으로 한국의 전통 수행법인 참선(參禪)을 세계에 알릴 때 이세상은 세계일화(世界一花)가 될 것이다. 그래서 세계의 많은 수행자들은 대봉스님에 발걸음 하나하나에 시선을 모으고 있다.  

 

 

 

 

 

 

 

 

[출처] 17. 계룡산 무상사 조실 대봉스님|작성자 jajuyc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