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명추회요’ 역경 시작
원각경 선요 서장 능엄경 번역
‘우리말 염불집’ 발간 준비 중
오역 때문에 불교 이해 못하고
단순히 어렵다는 인식만 팽배
정확하고 쉽게 부처님법 전할
스님들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
인월암 초입, 높다랗게 자란 대숲을 배경으로 선 원순스님.
원순스님은 1996년부터 조계총림 송광사 인월암에서 경전과 어록을 번역하며 저술활동을 해 왔다. 인월암은 조계산 산등성이에 숨어 있는 작은 암자로, 인법당 한 채와 친환경 해우소가 전부다. 이곳에서 스님은 홀로 수십 권의 불서를 우리말로 풀어냈다.
지난 10월22일 인월암으로 찾아갔다. 법당 안에는 작은 불상이 봉안된 불상과 작은 다탁이 전부다. 휑한 법당 안에 눈에 띄는 건 벽에 걸린 빈 족자다. 아무것도 없는 족자를 걸어둔 의미를 묻자 스님은 ‘텅 빈 마음’ 즉 부처님 마음이라고 설명했다. “마음을 비우지 못하고 살다보면 중생살이 온갖 고통만 있을 뿐이라, 텅 빈 여백을 보고 맑고 깨끗한 삶을 다짐하는 것”이라고 했다.
스님이 번역을 시작한 건 1995년 <명추회요> 교정을 부탁받으면서다. 출판사에서 십년 전에 완성된 명추회요 상중하 원고를 윤문해서 책을 내려는데, 하권 내용이 어려워 윤문을 못하고 있었다. 왜 그런가 하고 보니 번역이 문제였다.
그 해 겨울 눈 쌓인 서진암에 중고노트북을 사서 들어가 독수리타법으로 다시 번역했다. 밤을 새워가며 작업해 한 달 만에 완성했다. 이 원고에 대한 반응이 좋아 나머지도 마저 번역해 달라는 편집부장의 부탁을 받았다.
수좌 스님들과 후학들이 볼 책에 오류가 없어야 한다는 생각에 스님은 전국 강주 강백 스님들에게 교정을 부탁했다. 그러나 검증이 안 된, 법명도 모르는 스님이 보낸 원고를 자세히 봐주는 스님은 없었다.
일장스님만 빨간 줄을 쳐가며 원고를 읽어줬는데, 원순스님은 그 고마움과 그리움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원고가 마무리되자 출간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우여곡절 끝에 자비로 장경각에서 <마음을 바로 봅시다> 상권을 먼저 출간했다.
하지만 상권을 출간한 다음날 원순스님은 사형들로부터 질책을 받았다. “대학교수들은 뛰어난 반면 스님들은 형편없다. 근데 왜 번역해 책을 냈냐”며 하권을 내지 않겠다고 했다. 그 때 스님은 충격을 받았다. 자괴감도 들었지만, 손을 놓진 않았다. 도반 스님들은 “좋은 책을 사장시키지 말고 출판사를 세워 출간하자”고 제안했다.
도서출판 법공양의 탄생비화다. “그 때는 선방에 법공양 한 번 올리면 그만”이란 생각에 이름도 부담 없이 ‘법공양’이라고 지었다. 1999년 <명추회요> 상중하 세 권을 <마음을 바로 봅시다> 두 권으로 출간했다. 그게 효시가 돼 ‘도서출반 법공양’ 이름으로 <원각경> <도서> <선요> <서장> <육조단경> 같은 경전과 어록들이 출간됐다.
원순스님은 “우리가 생활 속에서 가장 많이 접하여 읽는 경전일수록 정확하게 일러줘야 한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경전이 <반야심경>이다. 스님은 “조계종이 몇 년 동안 많은 시간을 들여 우리말로 번역했지만 아쉬움이 많다”며 “신도들이 듣고 이해를 못하니 감동을 주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게다가 오역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른바 앞뒤가 맞지 않은 구절이다.
반야심경에 ‘무무명 역무무명진(無無明 亦無無明盡)’은 ‘무명이 없으며 무명이 다함까지도 없고’라고 번역됐는데, ‘무명이 다함까지도 없고’는 무명이 다했다는 말에 부정이 더해진 것으로 곧 ‘무명이 있다’는 뜻이다. ‘무노사 역무노사진(無老死 亦無老死盡)’도 마찬가지다.
‘노사가 없고 노사가 다함까지도 없고’라고 하면 ‘생로병사가 있다’는 것이다. 무(無)로 모든 것을 부정하고 있는 문맥에서 느닷없이 ‘무명이 없고 무명도 있고, 노사가 없고 노사도 있고’라는 표현은 맞지 않다. 경전에서 무엇을 말하는지를 염두에 두면 이런 문제는 생기지 않는다고 말한 스님은 그 자리에서 반야심경을 강의했다.
‘무안이비설신의(無眼耳鼻舌身意) 무색성향미촉법(無色聲香味觸法)’의 의미도 설명했다. “반야심경의 오온개공(五蘊皆空)은 몸과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몸과 마음이 없으면 당연히 ‘안이비설신의’가 없고 ‘안이비설신의’가 없으면 그 대상인 ‘색성향미촉법’도 존재할 수 없다. 여기서 ‘무색(無色)’은 눈의 경계가 없다는 것이고, ‘무법(無法)’은 ‘의식의 경계가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바로 뒤에 나오는 무안계(無眼界)를 ‘눈의 경계도 없고’ 무의식계(無意識界)’를 의식의 경계까지 없다’라고 번역하면 문맥이 어울리지 않는다. 스님은 여기서 ‘무안계’는 ‘무안식계(無眼識界)’에서 식(識)이 생략된 것이라고 했다. 이는 ‘중생의 눈으로 보고 분별하는 알음알이가 없는 것’을 말하고 무의식계는 ‘중생의 마음으로 대상을 분별하는 알음알이가 없는 것’이다.
분별하는 중생의 알음알이가 없으므로 알음알이를 일으키는 무명이 없고[無無明], 무명이 없으므로 없는 무명을 다 없앤다고 헛된 노력을 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亦無無明盡]
무명 때문에 생로병사가 생겼는데, 무명이 없으면 자연히 생로병사도 없다. 생로병사가 없으니 없는 생로병사를 없애야 한다고 집착할 것이 없다, 생로병사가 없으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 고집멸도 사제가 필요 없고, 고집멸도가 필요 없으니 이것을 알아야 할 지혜도 필요 없다.[無智] 지혜가 없으니 이것을 통해 얻을 것도 없고[無得], 깨달음조차 얻을 것이 없기 때문에 전체를 통틀어 아무것도 얻을 것이 없는 ‘이무소득고(以無所得故)’라고 한다.
원순스님은 “반야심경은 지금 이 자리에서 내 생각, 내 모든 집착을 놓아버리라고 말하는 것이다. ‘오온(五蘊) 개공(皆空)’ ‘곧 몸과 마음이 실체가 없어 허깨비와 같으니 집착할 게 없구나.’ 하는 이 도리를 알아, 바로 집착이 사라진 그 마음자리가 깨달음이요 영원히 행복한 삶 열반이다”라고 설명한다.
스님은 잘못된 번역 때문에 사람들이 부처님 가르침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는 상황이 안타깝다고 했다. 그저 불교는 어렵다고 생각해, 불서를 읽어도 모르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는 불자가 많다. 알쏭달쏭한 번역문들을 당연한 듯 양해해 가며 읽어주는 형국이다.
스님은 그런 인식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역경을 할 때 정법을 중심에 두고 옳고 그름을 따져 뜻을 정확히 알고 풀어내야 한다”며 “한문경전이나 어록의 뜻을 이해 못하고 기계적으로 번역하다 보면 독자들에게 혼란만 줄 뿐”이라고 말했다.
정확하고 쉽게 전달하기 위해 스님은 책을 내기 전 출재가자를 막론하고 여러 사람에게 원고를 보여줘 수차례 교정을 본다. 일반 독자들이나 중학생 고등학생이 읽고 이해할 정도로 다듬으려고 노력한다. 그런 노력 때문인지 원순스님의 <육조단경>을 교재로 강의를 들은 한 스님은 한 번 듣고 정리가 되는 <육조단경>을 왜 그리 어렵게 배웠는지 모르겠다며 한탄했다고 한다.
원순스님은 불자들이 더 이상 불교를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다.
“부처님 말씀이 어려웠다면 그 당시 사람들이 부처님을 믿고 따르지 않았을 것이다. 조사 스님 말씀도 마찬가지로 쉽다. 그런데 우리는 알아듣지 못하고 또 못 알아듣는다는 것에 대해 왜 그런가 하고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어렵다는 선입견을 내려놓게 하기 위해서는 기본교육기관 교육자나 포교 현장의 스님들 역할이 중요하다. 스님들이 소임을 맡아서 법을 펼칠 기회가 온다면 부처님의 법을 바르고 쉽게 전해야 한다. 그래야 스님이나 불자들은 물론 세상 사람들이 불법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것이다.”
원순스님은…
1982년 해인사 백련암에서 성철스님 은사로 출가했다. 해인사, 송광사, 봉암사 등 제방선원에서 정진했다. <명추회요>를 번역한 <마음을 바로 봅시다>를 비롯해 <한글원각경> <선요> <서장-선(禪) 스승의 편지> <육조단경> <몽산법어> 등을 번역했다. 현재 조계총림 송광사 인월암8에 주석하며 역경을 하고, 산철에는 선방에서 정진한다. 지금 <화엄경>을 번역하고 있으며, 예불문, 천수경, 반야심경, 관음시식 등 일상에서 쓰이는 <우리말 법보 상용염불집>도 준비하고 있다.
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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