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불왕생하신 외할머니
나의 외할머니는 지식인으로 대학교수이다. 일생 동안 선을 행하며 다른 사람에게 상냥하고 친절하였다. 처음엔 그 분도 불교를 미신으로 여겼다. 그러나 내 일로 인하여 불교는 미신이 아니며 인과가 확실히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역자주 : 이 이야기 또한 전편의 ‘개구리를 즐겨 먹은 과보’의 주인공이 쓴 글이다>
외할머니는 평생 동안 건강하고 병과 재난이 없었다. 만년에 이르러 신체 곳곳에서 불편한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사실 이것은 정상적인 노쇠현상이며 큰 고통은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기 몸의 수명이 다하게 된 것으로 생각하고 스스로 애를 태웠다.
그 후에 양 여사가 여러 차례 가르침을 주면서 “모든 인연을 놓아버려야 하며, 몸에 과도하게 집착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지금은 많은 경서를 읽을 필요 없이 단지 일심으로 염불하여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하면, 대자대비하신 아미타불의 가르침을 받아 우주인생의 진리를 깨우쳐 모든 고통에서 진정으로 해탈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외할머니는 모든 인연을 놓고 염불하기 시작하였다. 본래는 완전한 채식을 하려고 하였으나 자녀들이 연세가 많아 영양이 부족해진다며 고기를 조금 먹기를 권하였다. 그래서 완전한 채식은 하지 못하였다.
팔십삼 세 되는 그 해 어느 날 위가 불편하여 무엇을 먹으면 다 토하였다. 나중에 토한 것은 간장 색의 액체였다. 먹는 것도 많지 않았으며, 게다가 언제나 토하니 정신이 맑을 때가 며칠 없었다. 횡설수설하며 혼미하였다. 입원하여 검사해보니 의사는 노인이 돌아가실 때가 다 되었으니, 치료를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X레이 사진상 소뇌가 매우 위축되어 치매로 변한 것이라 하였다.
우리 온 가족은 모두 의사에게 백분의 일의 가능성이라도 있으면 최선의 노력을 다해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래서 병원에서는 수액치료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집에서 초조한 심정으로 어떻게 하면 효심을 다하여 외할머니를 도울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였다. 갑자기 의사가 치료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생각나 어찌 염불을 안 하고 외할머니의 극락왕생을 도울 수 있겠는가? 그래서 전화를 걸어 양 여사에게 가르침을 구하였다.
그는 내게 성심으로 외할머니를 위하여 『지장보살본원경』을 염송할 것을 일러 주었다. 만약 수명이 다 되었으면 조만간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하여 고통을 면할 것이며, 수명이 다하지 않았으면 조만간 회복하여 수행을 계속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나는 매일 성심성의껏 외할머니를 위하여 독경하였다. 경을 세 번째 독경할 때 외할머니가 깨어났다고 하였다. 정신도 매우 맑았으며 먹을 것을 요구하였다. 채식을 하였으며 고기는 들지 않았다. 외삼촌은 먼저 외할머니의 뜻에 따라 원하는 것을 주었다. 나는 독경의 불가사의함을 느끼고 더욱 경건하게 『지장경』을 일곱 번 염송하였다.
할머니는 이때부터 몸이 하루하루 좋아졌다. 어떠한 치매 증상도 없을 뿐 아니라 음성도 또랑또랑하였으며 기력도 충분하였다. 노인이 저승문에 들어갔다가 이렇게 좋은 상태로 회복되니 의사도 정말 알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였다. 의사는 병을 치료할 때 치료과정을 이야기하고 외할머니는 치료하는 시간에 한편으로 같은 병실의 환자에게 염불할 것을 권하였다. 그들이 볼 때 할머니가 병실에 들어올 때는 사망 직전의 환자였는데, 예상외로 현재 그들보다 회복이 훨씬 빠르니 매우 놀랐으며, 모두 불법을 배워 염불해야겠다고 말하였다. 이 사건은 적지 않은 사람들을 불법으로 인도하였으며, 외삼촌, 외숙모도 불법의 불가사의함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외할머니는 퇴원 후 다시 채식하겠다고 말하니, 자식들도 이상의 과정을 직접 눈으로 보았으니 그렇게 따르기로 하였다. 외할머니는 내가 『지장경』을 염송한 자초지종을 듣고는 불보살이 자기를 구했다고 깊이 믿고 더욱 열심히 염불하였다.
이전에는 모든 가정 사정을 물었는데 이번에는 아무 것도 관여하지 않았으며, 나에게 일심 염불하여 정토왕생의 자량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내가 매일 「대비주」를 염송하는 것을 보고, 나에게 「대비주」의 수승한 공덕을 듣고 「대비주」를 배우려고 하였다.
양 여사가 말하였다.
“「대비주」는 확실히 매우 수승합니다. 다만 노인네가 연로하시며 또 흔히 쓰지 않는 글자가 많으니 굳이 이것을 염송할 필요가 없습니다. 전심으로 ‘아미타불’ 성호를 지송하면 됩니다.”
하지만 외할머니는 기왕 「대비주」가 불법을 배우는 사람에게 필수적인 것이라면 반드시 배우겠다고 하였다. 그 때부터 외할머니는 염불하는 시간 외에 특별히 시간을 내어 녹음테이프를 따라 반복하여 배웠다. 연세가 많아 기억력이 떨어져 자주 잊어 먹었다. 그러나 법을 배우겠다는 마음이 매우 견고하여 뜻을 바꾸지 않았다. 그녀가 완전히 암송할 때까지 반복하여 나에게 듣게 하면서 발음이 정확하지 않는 글자는 수정하게 하였으며, 모든 글자를 정확하게 염송해야만 만족하였다. 이후 그녀는 매일 새벽에 일어난 후 먼저 「대비주」 일곱 번을 염송한 뒤 하루 종일 “아미타불”을 염하였다. 이와 같이 하기를 일년 이상 지속하였다.
외할머니는 매년 병원에 가서 한 번씩 수혈을 받았다. 어느 날 외사촌형이 할머니를 모시고 수혈을 받고 있는 중 돌연 반대편 벽을 가리키면서 말하였다. “누가 창문을 열었나! 어째 이렇게 큰 바람이 들어오냐?” 하고는 혼수상태에 빠져버렸다. 형은 급히 의사를 찾아 응급조치를 하였다. 조금 지나 깨어난 외할머니가 의사에게 하는 말이 “의사 양반! 내가 돌아왔어.”라고 하였다. 모두들 이상하게 여겼다. 할머니는 완전하게 정신이 돌아오자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였다.
“혼미해진 뒤 내가 매우 넓은 대로를 따라가는데 길 양 옆에 많은 사람이 서서 소라를 불고 북을 치고 하는 것이 마치 나를 환영하는 것 같았으나, 나에게 말을 하는 사람은 없었어. 내가 계속 대로를 따라 앞으로 가니 작은 절이 보였어. 그러나 절 안에는 불상도 없고 아무도 없었어. 나는 이곳은 들어가면 안 되는 곳인가 생각하고 돌아왔지. 돌아 걸어오니 깨어난 것이야.”
외할머니가 이야기를 마치자 병실의 환자들은 모두 놀랐다. 왜냐하면 사람이 죽으면 모든 일이 끝나는 줄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할머니를 치료하는 주치의가 말하였다.
“할머니, 당신이 간 그 곳은 아마 토지묘(土地廟)일 것이며, 그 곳은 당신이 가서는 안 되는 곳입니다. 반드시 아미타불이 당신을 맞이하여 서방극락세계에 가야 하며, 다른 어떤 사람이 맞이하면 절대로 가지 말아야 합니다.”
알고 보니 의사선생님도 불교인이었으며, 이것은 정말로 외할머니의 수행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와 외할머니는 모두에게 이러한 일련의 경험을 이야기한 후 반드시 인과와 육도윤회를 깊이 믿고 조속히 불교에 귀의하고 불법을 수행하여 삼계를 벗어나 생사를 해탈할 것을 권하였다.
한 달 후 어느 날 오후 우리 집에 모셔둔 불상이 갑자기 탁자 위에서 미끄러져 내렸다. 매일 내가 불상을 깨끗하게 닦고 모셔놓는데, 지금까지 한번도 이런 일이 없었다. 나는 재빨리 불상을 다시 새로 모셔놓으니 이때 외할머니가 나에게 말했다.
“부처님이 내려왔어. 내가 빨리 가야겠다.”
나는 듣고 재빨리 말했다.
“할머니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아직 사실 날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이건 오늘 내가 다 닦지 않고 모셔놓아서 불상이 떨어진 것입니다. 할머니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여전히 말했다. “갈 때가 되었어.”
저녁에 어머니가 돌아오니 외할머니는 속이 안 좋아 아무 것도 먹고 싶지 않다고 하였다. 그 날 저녁 할머니는 토하기 시작하여 연 3일을 토하였다. 평소 나는 매일 저녁 잠자고부터 날이 샐 때까지 한 번도 일어나지 않는 습관을 갖고 있는데 4일째 되는 날 새벽 4시경 나도 모르게 갑자기 일어나졌다. 할머니 방에서 무슨 동정이 있기에 건너갔다. 가서 보니 어머니, 누나 모두 이미 혼수상태에 빠진 할머니를 돌보고 있었다. 어머니는 누나보고 빨리 외사촌 오빠에게 연락하여 병원으로 후송할 준비를 시켰다.
이때 나는 재빨리 할머니 귀에 대고 말했다. “제발 아미타불 염불하시는 것을 잊지 마세요. 반드시 서방극락세계에 가십시오.”
두 분 사촌형님이 도착한 후 외할머니는 갑자기 깨어나시면서 말하기를 “너희들 어째서 모두 왔니?”
두 분 형님은 말했다. “좀 있다가 병원에 모시려고요.”
할머니는 말했다. “나는 옷을 갈아입어야겠다.”
어머니가 할머니더러 조급해 하지 마시고 가실 때 다시 입으시라고 하였으나 할머니는 그래도 옷을 갈아입으려고 하셨다. 어머니가 물었다.
“배고프세요? 배고프면 우유를 마시세요.”
할머니는 우유를 한잔 마셨다. 그리고는 침대 밑에 정리해둔 옷을 다 입은 후 갑자기 머리가 돌아가시면서 몸도 아래로 내려앉았다. 두 형은 급히 할머니를 침대로 모셨다. 두 형은 병원에 가지 말자, 어디 가도 늦을 것이라고 하였다. 어머니가 울기 시작하자 두 형은 “울지 말아야 한다. 노인이 왕생하는 데 영향을 주니. 너희들은 옆방으로 가서 뒷일을 상의하고 우리들은 노인을 위하여 조념을 하겠다.”고 말했다.
나와 누나는 바닥에 꿇어앉아 큰 소리로 염불하고 아울러 할머니 귀에 대고 큰소리로 말하였다. 반드시 믿음을 굳게 하고 극락세계에 왕생해야 한다고 하였다. 큰형과 형수는 나의 일 때문에 부처님을 믿고 불교를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조념은 새벽 5시부터 시작하였다. 할머니는 돌아가실 때 눈을 뜨고 입을 벌리고 있었는데, 염불을 아침 8시까지 하였을 때 눈을 감고 입도 닫았으며 매우 자상하고 편안한 모습이었다.
이때 친척들이 다 와서 외사촌형이 장례를 상의하였다.
“할머니께서 기왕 부처님을 믿고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하시기를 원하였으니, 큰아버지, 삼촌께 청하오니 저는 불교식으로 장례를 준비하려고 합니다. 의견은 어떻습니까?”
모두 일치하여 “단지 노인에게 유익하다면 무슨 방법이든 모두 좋다.”
사촌형은 다시 말하였다.
“모두가 할머니에게 매우 효성스러우니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도록 다같이 도웁시다. 슬픔을 자제하시고 큰소리로 울지 마십시오. 염불을 원하시는 분은 우리와 같이 할머니 옆에서 염불하고, 그 밖의 사람은 장례 일을 상의하십시오. 8시간 후 할머니에게 목욕을 시키고 옷을 갈아 입힐 수 있습니다. 그런 뒤에 빈소를 설치합시다.”
아침 9시경 나는 양 여사에게 전화를 걸어 한번 오셔서 조념의 일을 지도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얼마 후 양 여사는 문을 들어서며 말했다.
“매우 좋습니다. 노부인은 이미 서방에 왕생했습니다. 전화를 받은 후 바로 내 눈앞에 노부인이 깨끗한 꽃 속에 단정히 앉아있는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주변에 몇 사람이 꿇어앉아 염불하고 있었으며, 노부인은 염불소리 가운데서 서서히 서방으로 향하여 공중으로 올라가는 모습이 보였는데, 그 경계가 매우 상서롭고 장엄하였습니다. 노부인은 평생 선을 행하고 만년에 일심으로 염불하면서 왕생을 원했으며, 또 임종시 전가족이 조념하고 법대로 장례를 준비하였기 때문에 직접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하였습니다.”
양 여사도 우리와 같이 계속 조념하였다. 그리고 몇 명의 사촌형, 누나는 비록 부처님을 믿지는 않지만 자기 할머니에 대해 이와 같이 많은 불가사의한 현상을 듣게 되고 아울러 우리 모두 꿇어앉아 성심으로 노인을 위하여 염불하는 것을 보면서 같이 꿇어앉아 염불하기 시작하였다.
유체를 화장한 후 나는 할머니에게 『아미타경』을 49일 동안 독송해드리겠다고 발원하였다. 그리하여 노인의 왕생품위가 올라가며 아울러 노인이 몸을 나타내 우리들에게 안심시켜 줄 것을 희망하였다. 큰형과 형수도 매일 노인을 위하여 독경하였다. 독경한 지 사흘 후 사촌형이 전화를 걸어 나에게 알려주었다.
아침에 형수가 일어난 후 정리하느라 매우 피곤하여서인지 눈을 뜨려고 해도 뜰 수가 없었다. 이 때 갑자기 눈앞이 밝아지면서 노인이 그녀 앞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몸에는 스님 옷을 입고 이미 머리를 깎은 모습이었다. 생전에는 키가 작고 야위었는데, 당시 키가 매우 높고 컸으며, 야위지도 않고 얼굴에 홍조를 띠고 있었다.
형수가 노인을 알아볼 수 있었으며, 노인은 그녀를 보고 미소를 지어 보였단다. 형수는 본래 노인의 정상(頂上)에 스님의 계 받은 흔적을 보려고 했으나, 노인의 머리에는 금빛이 빛나면서 눈이 부셔서 볼 수 없었으며, 나를 부르려고 했으나 입을 열려고 해도 열리지 않았으며, 상서로운 모습이 2, 3분간 지속되다가 서서히 소멸되었다고 하였다.
나는 이 말을 듣고 매우 기뻤으며, 염불심이 깊으면 소원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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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를 먹으면 왕생할 수 없다
오십여 세 된 부녀자 한 분은 염불한 지 여러 해가 되었으나 당뇨병을 앓고 있었다. 묘법 스님은 그녀에게 살생의 업이 중하여 그 병을 얻게 된 것이라고 일러주었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담이 작아 조그만 벌레 하나도 죽이지 못한다고 하면서 어찌된 일이냐고 물었다.
스님이 그녀에게 “자주 바닷가에 가서 살아있는 바다 게를 먹지는 않는지” 하고 되물었을 때 그녀는 놀라 멍해져서 연달아 그런 일이 있다고 하였다. 그녀의 딸이 일본에 파견되어 가 생활한 지 몇 년이 되어 매년 일본에 가서 한 달 정도 살다가 오곤 했는데, 딸은 고기를 먹지 않기 때문에 매주 차를 몰고 바닷가에 가서 그녀에게 바다 회를 사주었다고 하였다. 하지만 종업원이 들고 온 바다고기들은 모두 익힌 것이고 자기가 죽인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묘법 노스님이 이들 바다 게는 손님이 먹으려고 주문을 하기 때문에 비로소 주방장에 의하여 솥에 삶아져 죽게 된 것이니, 그 죽은 동물은 손님을 기억하려 한다고 일러주었다.
또한 그녀에게 이르기를 먹었던 동물은 주문할 때 곧 죽는 것이며 냉동된 것, 혹은 이미 요리로 만들어진 음식도 모두 살생의 업을 저지르는 셈이라고 하였다. 왜냐하면 만약 먹는 사람이 적으면 죽이는 것도 자연히 적어지기 때문이다. 결국은 동물의 고기를 먹는 것은 바로 살생을 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말하였다.
스님이 그녀를 보니 여전히 마음속에 의혹이 존재하는 것을 알아차리시고, 진일보하여 법문해 주셨다.
“어떤 사람이 많은 생명을 죽였고 심지어 살생하는 일에 종사하고 있어도 그는 현재 여전히 매우 건강하며, 어떤 사람은 단지 한 번 어떤 동물을 죽이고 혹은 한 번 고기를 먹었을 뿐인데도 병에 걸리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개개인이 전생과 금생에서 누적된 업력과 복보(福報)가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매일 한 병의 술을 마시더라도 단기간 내에 그는 아무런 병에 걸리지 않는 반면 어떤 사람은 한잔의 백주(白酒)도 마시지 못하며 마시면 곧 취합니다. 이것은 각 개인의 주량이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좋지 않은 기호(嗜好)가 사람에게 초래하는 해로움은 단지 빠르고 늦을 뿐입니다. 구복(口腹)의 욕망을 채우기 위하여 함부로 동물을 잡아 기름 솥에 넣는 등 온갖 방법으로 요리하여 이런 비린내나는 ‘맛있는 요리’가 비록 게걸스러운 식욕을 채우게 하지만 한편으로는 원한의 화근을 초래하게 하는 것입니다. 즉 ‘병은 입으로부터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노스님이 그녀에게 묻기를 “당신 집에 동으로 만든 향로가 있습니까?”
“있습니다. 있습니다.” 매우 놀라는 기색을 드러내면서 그녀는 두 눈을 스님에게 주시하였다.
“당신은 그것을 어디에 놓아두었습니까?”
“아마 베란다에 두었을 것입니다.”
“당신은 돌아가서 빨리 그 향로를 찾아 깨끗하게 닦으십시오. 무릇 공양구는 사용하지 않으면 타당하게 처리해야 합니다. 보관을 잘 하든지 혹은 다른 사람에게 보내든지 해야 할 것이며, 함부로 방치하는 것은 불경(不敬)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당신에게 일러준 두 가지 일에 대해 만약 잘못을 알고 참회할 수 있으면 당신의 병은 천천히 좋아질 것이며, 만약 진정으로 회복되기를 원한다면 육식을 금하고 채식을 하기만 하면 됩니다. 중생의 고기를 먹으면서 염불하면 탐욕이 제거되지 않으며, 나쁜 기운이 소멸되지 않아 부처님의 명호[佛號]와 마음이 상응할 수 없으니, 백년을 염불해도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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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치료와 무당
어떤 사람이 이전에 나에게 물었다.
“불교는 인과의 도리를 통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잘못을 깨닫고 올바른 길로 가게 하며, 잘못을 고치고 선을 향하게 하여 병을 치료하고 사람을 구제하니, 실로 대단합니다. 그러나 지금 민간에서는 무당이 아직도 활동하고 있으며 나아가 일찍이 일시적으로 풍미한 기공사도 병을 치료한다고 하던데, 기공사와 무당은 인과를 중시하지 않으니, 이건 어째서 그렇습니까?”
내가 그에게 말했다.
“인과의 도리로 몸의 병을 치료하는 것은 불교의 궁극 목적이 아니며, 단지 하나의 수단이며 방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방법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인과의 존재를 믿게 하며, 그리하여 스스로 자신의 언행을 점검하여 일체의 악을 끊고 모든 선을 닦게 합니다.
또한 현생에서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재난을 멀리하게 할 뿐만 아니라 임종시에는 선종(善終 : 고통이나 고생 없이 생을 마감하는 것)하게 하며, 극락세계에 왕생하게 하여 영원히 고해를 벗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선으로 향하면 많은 사람들이 이익을 얻을 수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선을 행하면 사회가 정화되니, 이것이 바로 불교가 세상 사람을 구제하는 이상(理想)입니다.
무당도 병을 고칠 수 있는 도리에 관하여는 『능엄경』에서 오십 가지의 음마(陰魔)에 관하여 상세히 설하고 있습니다. 나의 해석은 매우 간단합니다. 기공사와 무당은 육도 윤회를 벗어나지 못한 것입니다.
비유하면 진정한 기공사는 천도(天道)에서 윤회해 왔을 가능성이 크며, 혹은 기공사의 전생이 수도인이었으며 근기가 좋아 금생에 기공을 연마하여 그의 잠재적인 능력이 개발되어 나올 수도 있습니다. 이들의 특징은 사람됨이 정직하고 동정심을 갖추고 사람의 병을 치료해 주면서 합리적인 비용을 받으며, 사람을 속이지 않고 자기가 수련한 정기(正氣)를 사용하여 환자의 병기(病氣)를 물리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기공치료라는 이름을 빌려 환자의 재물을 탈취하며 명예를 도적질하는 것이 목적인 사람도 있습니다. 이들은 손이 닿기만 하면 병이 낫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사람들을 미혹시켜 그에게 예배, 공양하게 하며, 자기 스스로 자화자찬하면서 ‘대사’, ‘보살’, ‘불자’ 등등의 이름을 붙입니다.
이런 사람의 전생은 『능엄경』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마왕, 마민(魔民), 마녀, 대력귀신, 비행야차 등이 세간에 온 경우가 많으며, 그들은 불교의 허울을 내걸고 중생을 미혹케 하고 어지럽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우리 사회에서 가짜를 만들어 파는 사람이 명성도 있고 지명도 높은 상표를 모방하는 것과 같습니다.
무당은 정령(精靈), 요매(妖魅), 삿된 사람, 여우, 족제비, 뱀, 쥐 같은 무리가 사람의 몸에 붙은 것입니다. 동물이 되어 낮에는 엎드려 있고 밤에 나오면서 항상 동굴 속에서 ‘입정(入靜)하기 때문에 신통이 나타나 인간으로 전생(轉生)한 후 좌선 입정하면 그러한 신통이 표출되어 나옵니다. 그런 사람들은 왕왕 재물을 탐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을 짐짓 현묘한 것처럼 꾸밉니다.
위에서 열거한 그런 이들은 모두 도움을 구하러 오는 사람에게 과거, 미래의 몇 가지 일을 말하면서 질병을 치료하며 어떤 때는 현저한 효과가 나타나 사람들을 미혹시킵니다. 그러면 어째서 그들은 몇몇 사람들에 대해서만 효과를 나타내는가?
이것은 먼저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병을 얻게 되는가를 이해해야 합니다. 많은 환자들은 살생, 육식으로 말미암아 질병을 불러들입니다. 가령 잡아먹은 고기가 돼지, 소, 양, 닭, 오리, 물고기 등일 경우 이들의 신식이 잡아 먹혀서 의탁할 곳이 없어졌기 때문에 복수하기 위하여 자기를 잡아먹은 몸에 붙는 것인데, 이 사람이 먹는 고기가 많아짐에 따라 그의 몸에 붙는 동물의 신식도 더욱 많아져서 어떤 부위에 병의 둥지(病巢)가 형성되며, 심해지면 통증을 느끼면서 병이 발생되는 것입니다.
병원에서 치료하여 좋아지는 것은 병자가 지난 세월 동안 쌓아온 복보(福報)가 금생에 저지른 업보다 크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돈을 쓰게 되고 고통을 많이 받고 나면 그와 관련된 묶인 업은 끝나는 것으로 간주됩니다. 그러나 병자가 불법을 이해하지 못하여 병이 난 후 고기와 산 짐승으로 몸을 보하면 비록 영양은 신체를 보하게 될지 모르지만 동시에 새로운 원한의 빚을 형성하게 됩니다.
따라서 약을 먹고 주사를 맞고 수술을 하는 것은 단지 병의 고통을 잠시 제거하는 것이며, 다른 재화(災禍)와 병이 다시 형성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어떤 환자는 병원에 가서 치료를 하여도 효과가 없으니 돌고 돌아 귀신을 구하고 점을 치는 것입니다.
소위 무당, 박수, ‘대선(大仙)’ 등은 여우, 쥐, 뱀, 족제비, 고슴도치가 와서 붙은 것이 많습니다. 『양황보참』 가운데 동물로부터 온 사람에 대하여 이야기한 부분이 있는데, 몸에서 전생 동물이었을 때의 냄새가 발생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신식과 신식은 상통하기 때문에 병자의 몸에 붙은 신식이 닭, 오리, 비둘기 무리일 경우 여우, 족제비를 만나면 위협을 느껴 반드시 도망갈 것입니다. 만약 병자의 몸에 붙은 것이 개구리, 쥐, 토끼 등이면 무당의 신식이 뱀일 경우 어떻게 됩니까? 보기만 해도 두려워 피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소, 양, 개 등 큰 동물의 신식은 이런 무당을 만나도 도망가지 않습니다. 다만 무당의 신식이 악룡, 사자, 호랑이 등 맹수일 경우 그들은 도망을 갈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어떤 대선의 공력이 세며, 어떤 무당의 공력이 작다고 평가되는 원인이며, 이들이 병을 치료하는 원리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단지 잠시 병을 도망가게 할 뿐이며 원한을 가진 신식은 조만간 다시 찾아올 것입니다. 혹은 원래의 병소에서 다른 부위로 옮겨갈 것입니다. 만약 상당한 시간 동안 당신을 떠나 있다가 돌아온다면 그 동안 당신은 끊임없이 무당, 대선에게 돈을 바치게 하여 재산을 축내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마음 밖에서 법을 구하는 외도(外道)는 구경(究竟)의 법이 아니며, 또한 업을 없앨 수 없으니 생사해탈은 말할 나위도 못됩니다. 비유하면 내가 젊을 때 어떤 애들을 괴롭히는데, 그들은 나이가 어려 반항할 힘은 없으나 마음속에 원한을 새겨두는 것과 같습니다. 20년 후 내가 늙고 그들이 장성하여 기력이 장대해지면 그들은 나를 찾아와 원수를 갚으려고 할 때 나의 악보는 현전하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이때 강자에게 도움을 구하면 강자는 젊은 사람이 노인을 구박하는 것을 보고 그들을 쫓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후는 어떻게 됩니까? 강자는 언제나 내 곁에 있을 수 없으며, 원수는 다시 나를 찾아와 복수하게 될 것입니다.
가령 내가 만난 분이 이치에 밝은 선지식이라면 그분은 젊은 사람이 왜 노인을 때리는지 물을 것이며, 설명을 듣고 선지식은 내가 젊었을 때 그들을 괴롭힌 죄를 나무라면서 오늘 맞은 것은 당연한 과보라고 일러주면서, 사람되는 도리를 가르쳐 줄 것입니다. 그리하여 내가 이치에 밝아진 후 젊은이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하며 참회하고, 아울러 손해를 보상해주면 상대방은 반드시 나를 용서하고 다시는 나와 원수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소위 ‘원수’는 내가 이전에 죽였거나 먹은 중생을 말합니다. 선지식은 불법을 말하며, 보상은 진심으로 참회한 후 상해를 입은 중생을 위하여 염불, 독경, 천도하는 것을 뜻합니다.
앞에서 많은 실례를 이야기하였습니다. 당신이 잘못을 알아 고치고 실천하면 반드시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한 가지 더 설명하자면 만약 당신이 병을 고치기 위하여 진심으로 참회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신식(영혼)의 경계는 타심통(他心通)의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당신이 진심으로 참회하고 안하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상에서 설명한 살생으로 인하여 병을 얻는 것은 열 가지 악 가운데 한 가지에 불가한 것이다. 그 밖의 아홉 가지 악도 각종 병의 원인이며, 내가 다시 거론할 필요없이 『지장경』과 『양황보참』을 읽어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여러 불자들에게 감히 단정적으로 말하건대 만약 우리들이 진실로 경에서 이야기한 도리를 이해하면 다시 고승대덕 혹은 무슨 신통 있는 분을 찾아가서 약을 묻고 치료방법을 구할 필요가 없다.
부처님은 대의왕(大醫王)이시며 경전에서 우리들의 생활, 사업, 가정 내지 각종 질병과 번뇌의 대치방법을 설하셨다. 단지 우리들이 실천하기만 하면 영험 없는 것이 없다. 본래 불법에는 비밀이 없다. 우주 인생의 진리를 경전 상에 모두 이야기하셨다. 불경을 열람하지 않고 그러한 무속, 신통, 복술, 산명을 믿고 그것을 신묘한 것으로 여기는 사람이 적지 않은데, 결과적으로 돈 쓰고 정력을 낭비해도 진정한 이익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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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주(奴隸主)의 과보
몇 년 전 나는 미국에 있는 친구를 방문하였다. 친구가 특별히 초청하여 그곳에서 유명한 디즈니랜드 관광을 하게 되었다. 입구에 들어서서 멀리 가지 않아 고전식의 호화마차가 우리들 앞에 멈춰 섰다. 나는 순백색의 체형이 건장하고 아름다운 한 마리의 큰 말에 매료되었다. 그 말은 광채가 나는 털과 설산의 영양과 같이 우뚝 선 말갈기를 가졌으며, 온몸에 금빛 찬란한 안장을 걸치고 있어 캘리포니아의 맑고 아름다운 햇빛 아래 범상치 않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는 고정노선에 여행객을 태우고 한편으론 매혹적인 풍광을 유람하게 하고 한편으론 귀족의 멋을 누리게 하였다. 우리들은 마차에 탈 생각은 없이 그냥 그 준마가 마차를 끌고 멀리 가는 모습을 보기만 하였다.
어느덧 날이 어두워지자 우리들 일행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걸어나오다가 입구에 다다르니 여전히 여행객을 실어 나르는 그 말을 또 보게 되었다. 그러나 저녁 무렵의 그 말은 이미 아침의 그런 힘찬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머리를 늘어뜨리고 잔걸음으로 가고 있는데 매우 피곤한 모습이 역력하였다. 시계를 보니 아침부터 그 때까지 최소 12시간이 흘렀으니 그럴 만하였다. 말의 고단한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나도 모르게 저 말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저렇게 아름답게 생긴 것이 하루 종일 마차를 끄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날 얼마나 많은 여행객이 그를 힘들게 했으며, 일년이면 얼마나 될까? 설마 그가 전생에 그렇게 많은 사람에게 빚을 졌다는 것인가?
나는 귀국 후 특별히 이 일에 대하여 묘법 노스님에게 가르침을 청하니 생각지도 않게 스님은 정말 멋진 법문을 해주셨다.
“그 말은 과거생에 백인 노예주였다네. 그의 농장에는 백여 명의 흑인 노예가 일하고 있었지. 노예들은 주인의 무자비한 착취와 능멸에 고통을 당하였다네. 노예주는 죽은 후 지옥에 떨어져 과보를 받게 되었으며, 과보가 다한 후 현재 축생에 떨어져 지금의 말이 되었다.
준수한 외모, 강건한 체형은 오히려 그를 돈버는 도구로 만들어 노역의 고통을 실컷 받게 하였지. 비록 전생에 그에게 억압받은 노예는 단지 일백여 명이었지만 그는 잔인하게 흑인들을 학대하고 노역을 시켰기 때문에 이것은 노예에 대한 치욕을 범한 죄를 저질렀을 뿐만 아니라 더욱이 인간성에 대한 유린이며 전 인류에 대하여 죄를 지은 것이네.
따라서 지금 그는 사람들에게 부림을 받아 매를 맞아가며 수레를 끌고 하면서 매일 매일 쉬는 날이 없는 것이네. 이것은 그가 마땅히 받아야 할 과보라네. 그는 죄업이 매우 중하여 이후 얼마나 많은 세월 동안 소가 되고 말이 되어야 할지 모르네. 미래에 다시 인간이 되어도 빈궁하고 하천할 것이며 그 고통은 말할 수 없을 지경일 것이네.”
나는 법문을 듣고 난 후 입맛이 싹 떨어지고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귀엽고 가여운 말이 그렇게 좋지 못한 과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몹시 안타까웠다. 나는 그 말을 위하여 지장경을 독송해 조속히 죄업을 청산하고 고해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동시에 노예들이 제도되어 그들의 원한을 잠재우기 위하여 염불을 해주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이때 줄곧 옆에서 법문을 듣고 있던 말레이시아 거사가 갑자기 물었다.
“스님, 저희가 홍콩에서 살 때 ‘원니’라 불리는 작은 개를 기른 적이 있었는데, 그는 어릴 때부터 저를 따라다녔습니다. 우리 전 가족이 불교에 귀의하여 채식을 하고 난 후 이 개 또한 영성(靈性)이 있어 얼마 지나지 않아 고기를 먹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희들 온 가족은 매우 기쁘게 생각하였습니다. 저희 가족이 말레이시아로 이사를 온 지 2년 만에 ‘원니’는 늙어서 죽었는데, 저희들은 매우 슬퍼하였으며, 어머니는 특별히 절에 그의 왕생위패를 세우고 천도법회를 해주기도 하였습니다. ‘원니’가 현재 좋은 세계에 왕생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스님께서 한번 관찰해 주십시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스님께서 답하기를 “그 개는 생전에 당신 집에서 경을 듣고 채식을 하였으며, 또 죽은 후 당신들이 천도를 하였기 때문에 이미 인간으로 태어났습니다. 현재 말레이시아에서 살고 있으며 17세의 예쁜 여자애입니다.”
묘법 노스님의 말을 듣고 난 후 그 거사는 잠시 사색에 잠긴 듯하더니 갑자기 놀라며 소리쳤다. “원니가 죽은 지 마침 17년이 되었습니다. 스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저에게 알려 주십시오 그 여자애는 지금 어디에 살고 있으며 이름은 무엇인지? 저는 정말로 그녀를 만나고 싶습니다.”
스님과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웃었다. 내가 거사에게 묻기를 “만약 당신이 그녀를 찾아간다면 어떻게 말할 것입니까? 그녀에게 말하기를 너는 우리 집에서 기르던 개라고 할 것입니까? 그러면 그녀가 당신을 때리지 않으면 이상할 겁니다.”
그 거사도 쑥스러운 듯이 웃었다. 스님께서 자상하게 말하기를 “인연이 있으면 천리라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아마 그녀가 당신들을 만날 날이 있을 것입니다. 예전과 같이, 아울러 당신들에게 몇 배로 보답할 것입니다. 속담에 100년을 수행하여 한배로 물을 건넌다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오늘날의 동료, 이웃, 친구, 친척 심지어 원수를 포함하여 모든 사람들이 다생 이래의 인연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우리들은 널리 선연(善緣)을 맺고 악연(惡緣)을 풀어야 비로소 천지간에 오래도록 화기(和氣)를 간직하며 길상스러움을 보유할 수 있습니다 ….”
스님은 이와 같이 자비스러우며 기회를 보아 가르침을 내려주시는 데 능하시다. 이번의 법문에서도 얻은 이익이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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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념이 변화하여 법신이 되는 도리
무엇이 견성성불(見性成佛)인가?
부처님을 믿는다는 것은 바로 자기가 부처이며 부처님의 삼신(三身)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삼신은 바로 법신(法身), 보신(報身), 화신(化身)을 말한다.
이러한 도리를 어떻게 인식하는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식심(識心)은 본원과 통하고 성품(性品)은 작용이 있다.”고 하셨다.
무엇이 본원인가? 본지풍광(本地風光). 본지풍광에 범부와 성인이 함께 머문다.
무엇이 작용인가? 주변법계(周邊法界). 주변법계는 부처님의 삼신이다.
육신(肉身)이 변화하여 보신이 된다. 육신은 잡념으로 이루어져 업에 따라 과보를 받는다. 보신은 인연 따라 원을 행한다. 행원이 있으면 곧 보신이 세상에 머문다.
잡념이 변화하여 법신이 된다. 잡념이 있으면 범부이며, 부처님을 억념(憶念)하는 자는 성인(聖人)이다. 잡념을 가진 자는 생각 생각이 자기를 위하며, 부처님을 억념하는 자는 생각 생각이 남을 위한다. 자리이타(自利利他)로서 법계에 두루하며, 구제하지 못할 괴로움이 없으며, 도와주지 못할 어려움이 없다.
몸은 비록 범부이지만 생각 생각이 법계 중생을 위하며, 마음이 두루 법계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자비의 억념으로 모든 중생을 원융하게 하며, 마음이 허공 같아 법계에 두루 미치니 잡념이 변하여 법신이 되는 것이다.
변화소작이 변하여 화신이 된다. 범부의 행위는 자기를 위하며, 화신의 행위는 남을 도우며 중생을 위하여 고통을 대신 받는다. 비록 범부의 몸이지만 우리를 필요로 하는 중생의 곁으로 가서 중생을 편하게 한다. 고통과 어려움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서든 출현하여 모든 중생을 두루 이익되게 한다.
이와 같이 인식하면 자기가 범부라는 집착을 타파할 수 있다. 하지만 이미 집착을 놓고 부처의 일을 행하며 부처의 사업을 하면서 여전히 자기는 범부라고 말한다면 이것 또한 집착이다. 그리고 자기가 부처라고 말하는 것 또한 아만이다. 범부와 성인이라는 생각을 놓아버리면 마음이 가없이 넓게 되며, 자기도 없고 남도 없으면 성품이 작용하여 마음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화엄경』에서 선재동자가 오십 세 분의 선지식을 참방하는데, 여기에서 위로는 이룰 부처도 없고, 아래로는 제도할 중생도 없으며, 가운데는 끊어야 할 번뇌도 없음을 설명하고 있다. 일체에 머무는 바가 없으면 마음이 편안하여 인연에 따라 응현하며, 전도됨이 없이 깨달아 하루 종일 생각 생각이 명료하며, 임종시에도 이와 같으면 견성 성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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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經)을 많이 읽으면 지혜가 증장한다
어떤 여신도 한 분이 묘법 스님에게 가르침을 구하였다.
그녀는 심장병을 앓은 지 3, 4년이 되었으나 병원에 가 치료를 해도 어떤 때는 좋아지고 어떤 때는 나빠지고 하였다. 자기는 이렇게 젊은 데 심장병을 얻었으니 앞날이 암담하기 그지없단다. 나중에 어떤 신도의 소개로 스님의 설법을 듣고는 고기를 먹지 않고 살생하지 않으며 매일 염불하면 심장병이 회복될 것이라고 믿어 불문에 귀의하였다. 그러나 언제 그의 병이 좋아질지 알 수 없단다. 스님은 약간 웃으며 물었다.
“당신은 결코 채식을 하지 않았습니다.”
“스님, 저는 채식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보기에 여전히 생선, 새우, 게 등을 먹으며 더욱이 큰 새우 먹는 것을 좋아하는군요. 자기도 좋아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소개하면서 어떤 음식점에 가면 새우요리가 맛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 여신도는 스님의 말씀을 듣더니 눈물을 흘리면서, “아, 스님! 생선, 새우, 게도 고기에 들어갑니까? 저는 줄곧 채식하는 줄로 생각해 왔습니다.”
“생선, 새우, 게 등이 고기가 아니면 무엇입니까? 그것들이 채소입니까? 불교도가 비린내가 나는 음식(吳腥)을 금해야 하는데, 훈(吳)은 풀초(草)변이 있으니 파, 마늘, 부추, 양파, 마늘 등을 뜻하며 이것들은 자극성이 강한 음식이며, 성(腥)은 고기 육(肉)변으로 생명과 기혈(氣血)을 가지고 있는 동물을 가리킵니다. 물고기, 새우, 게는 비린 맛이 안 납니까? 당신이 이것들을 끊으면 병도 좋아질 것입니다.”
“네. 스님! 지금부터 저는 다시는 그런 고기들을 먹지 않겠습니다.”
“불교도는 자기 스스로 살생하지 않고, 고기를 먹지 말고, 술·담배를 끊어야 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권해서도 안 되며, 더욱이 이런 물건들을 파는 장사를 해서도 안 됩니다. 왜냐하면 담배, 술, 고기 등 이런 종류의 장사를 하여 남에게 먹고 사용하게 하는 것도 죄를 짓는 것입니다. 마치 아편을 피우지는 않지만 다른 사람에게 팔아서 피우게 하는 것과 같은 죄를 저지르는 것입니다. 그러니 참회를 많이 해야 합니다.”
“스님, 이번에 저는 깨달은 바가 있습니다. 금후로는 저 자신도 채식을 할 것이며, 아울러 다른 사람에게 육식을 권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스님께서 말씀하였다.
“부처님을 믿고 채식하는 것은 병을 치료하기 위함일 뿐 아니라 더욱 우주 인생의 대진리를 이해하고 실천하기 위함입니다. 『반야심경』, 『지장보살본원경』, 『육조단경』과 『양황보참(梁皇寶懺)』과 같은 책은 반드시 보아야 합니다. 또한 『대불정수능엄경』은 지혜를 여는 경으로서 이 경을 이해하면, 더욱이 그 중의 ‘사종청정명해(四種淸淨明海)’와 ‘오십 가지의 음마(陰魔)’ 이 두 부분의 내용을 이해하면 자기의 수행 수준을 찾을 수 있으며, 또한 모든 사람의 행위가 정법에 부합한지 여부를 비춰볼 수 있는 표준입니다. 따라서 경서를 많이 읽으면 지혜가 증장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노스님의 이번 법문은 법을 듣는 모든 사람들에게 새로운 깨우침을 얻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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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병과 금산사의 수몰
1997년 7월경 대만 모 대학의 교수로 있는 주(朱) 여사가 남편과 함께 오대산으로 참배하러 왔었다. 우연한 기회에 그들은 묘법 노스님의 높은 수행 이야기를 듣고 특별히 가르침을 청하고자 시간을 약속한 것이다.
주 여사는 대략 삼십 이, 삼 세의 나이이며, 중간 정도의 몸매, 얼굴이 단정하고 피부가 희고 깨끗하며 금테안경을 쓰고 있어 여학자의 우아한 풍모가 느껴진다.
주 여사가 말하기를, “제 두 눈은 어릴 때부터 좋지 않아서 언제나 따끔따끔한 느낌을 받았으며 때때로 약간의 통증을 느꼈어요.두 눈을 치료하기 위해 부모가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모르며, 정확한 액수를 알 수 없는 많은 돈을 썼으나 치료효과가 없었지요. 나중에 그녀는 미국에 가서 공부하는 동안에도 사방에서 치료해 보았으나 여전히 치료할 방법이 없었습니다.”라고 한다.
주 여사는 노스님에게 자기 눈의 정황을 이야기한 후 스님께 여쭈었다. 스님은 두 눈을 가볍게 감더니 잠시 후 나조차도 믿기 어려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였다. 스님께서 물었다.
“당신들은 전설 중의 백(白) 낭자가 금산사를 수몰시킨 고사를 알고 있습니까?”
우리들은 대답하였다.
“알고 있습니다. 어릴 때 이와 관련된 연극을 본 적이 있으며 이후 영화를 본 적도 있습니다.”
스님이 말하였다.
“사람들은 모두 그것을 단지 꾸민 신화나 전설로 알고 있으나 역사상에서 진짜로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어떤 동물은 긴 세월의 수행을 통하여 소위 말하는 ‘신통’을 부릴 수 있습니다. 이것은 결코 희귀한 일이 아닙니다. 백사(白蛇)가 백낭자로 화현하였는데, 이것은 그녀가 수련과정 중 음욕을 끊지 못하여 길을 잘못 들어 인간 세상의 남녀환락에 집착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자연의 법칙은 이러한 인간과 축생의 음란한 행위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가령 문명이 고도로 진보하여 관념이 신속히 변화된 오늘날에도 사회윤리가 허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백사전』 속의 법해(法海) 화상께서 백사가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저지한 것은 대자비심의 발로입니다. 만약 백사가 이러한 윤리를 문란시키는 행위를 즉시 멈추지 않으면 심각한 후회를 하게 될 것이며, 장차 여러 해의 도업을 허물게 될 뿐 아니라 지옥에 떨어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백사를 뇌봉탑 아래 가둔 것은 실제로는 그녀로 하여금 폐관(閉關)수행을 하여 음욕심을 제거하는 것을 돕기 위한 것입니다. 『백사전』이 불법을 해치고 스님을 비방하기 위하여 이야기 속에서는 자비스런 법해 화상을 악마로 만들고 불보살을 그렇게 합리적이지 못하게 묘사하여 인간의 아름다운 애정을 갈라놓았으며, 요괴(妖怪)를 과장해서 인간미가 풍부한 것처럼 묘사하여 오히려 인간과 축생의 근본적인 구별을 등한시하였습니다.
작자는 이와 같이 정(正)과 사(邪)를 전도시켜 대중을 잘못 이끌고 불교를 비방하였으니, 이것은 인과를 위배한 것이죠. 시비곡직을 눈 밝은 사람이라면 한눈에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왜 이런 고사를 이야기하는가? 왜냐하면 주 여사의 눈병이 이 고사와 관련이 있으며, 또한 그녀가 염불하여 불법을 보호한 덕행의 감응입니다.
금산사 수몰 이야기는 백사(白蛇), 청사(靑蛇)가 법해(法海) 노스님의 권고를 듣지 않고 오히려 그와 대결하여 삿된 주문으로 수신(水神)을 충동질하여 바람을 일으키고 파도를 일으켜 금산사를 수몰시킨 일입니다. 당시 수신은 상황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악인을 도와 나쁜 일을 한 것으로서 절을 수몰시켜 호법천신의 노여움을 사게 되었던 것입니다. 천신은 번개로 수신을 때렸으며 불덩어리가 수신을 치려는 순간 재빠른 수신은 신속히 물 속으로 들어가 목숨을 건졌으나, 두 눈은 이미 번개에 손상을 입어 그 고통을 참기 어려웠습니다. 수신의 부하들은 흰 비단으로 수신의 두 눈을 감싸고 급히 수신을 다른 산의 작은 절로 호송하였으며, 그 절에 거주하는 스님께 도움을 청하게 되었습니다.
그 스님은 병을 잘 치료하였는데, 수신의 두 눈을 감싼 비단을 벗겼을 때 수년간 수행한 스님은 수신의 미모에 반하여 사랑의 마음이 갑자기 일어났습니다. 일념의 차이로 그 동안 노력한 수행의 공력은 일순간에 소멸되었으며, 수신의 상처도 고치지 못하였습니다.
이 고사 가운데의 수신은 바로 현재의 주 여사이며, 이것이 바로 주 여사 당신이 금생에 눈병을 앓게 된 전세의 인연입니다. 당신의 남편은 바로 수신을 보고 마음이 동한 스님입니다. 그는 당신을 매우 좋아하며 당신을 잘 보살피지 않습니까?”
묘법 스님의 이번 이야기는 모두를 흥분시켜 일제히 그들 부부를 쳐다보았다. 줄곧 스님의 이야기를 열심히 듣고 있던 주 여사는 이상한 감동에 북받쳤으며, 다시금 자기의 남편을 자세히 바라보면서 그녀는 깊은 감정으로 웃으면서 말하였다.
“맞습니다. 그는 언제나 나를 아이같이 잘 보살펴줍니다.”
그녀의 남편은 다소 계면쩍은 듯이 입을 오므리고 미소지으며 머리를 숙이고 말이 없었다.
스님은 이어서 주 여사에게 말하였다.
“기다리세요. 당신 부부는 대웅전에 가서 숙세의 업을 참회해야 합니다. 금산사를 수몰시킨 것이 비록 수신의 본의는 아니었을지라도 부지불식간에 나쁜 무리를 도왔으므로 그 죄업이 작지 않습니다. 금후 『양황보참』으로 참회하고, 항상 『지장보살본원경』을 독송하면 눈병이 반드시 좋아질 것입니다.”
스님은 또 주 여사 남편을 보면서 말하였다.
“본래 당신은 근기가 괜찮은 노 수행자였으나 매번 과거 생에서 음심을 놓지 못하여 깨달음을 눈앞에 두고 막판에 실수로 그르치곤 하였습니다. 금생에 두 분은 전생의 인연을 다시 이어 부부가 되었으니, 더욱 함께 발심하여 이생에서 반드시 계·정·혜를 닦아 무상보리(無上菩提)를 증득해야 합니다. 당신은 내가 말하는 이야기를 그다지 믿지 않을 가능성이 있습니다만, 돌아가서 내가 말한 대로 진심으로 참회하기만 하면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일주일 후 주 여사 부부는 또다시 묘법 스님을 친견하러 왔다. 그녀의 두 눈이 반짝이며 안광이 충실하고 눈 흰자위의 혈흔이 소멸되었으며, 기색이 빛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그녀가 말하였다.
“스님께서 이야기하신 고사에 대하여 저희들은 마음속에 의혹이 있었으나 진실한 이야기로 여기고 참회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생각지도 않게 불전(佛前)에서 참회할 때 한 줄기 시원한 느낌이 두 눈으로 스며들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눈에 이런 편안한 느낌이 없었으며, 확실히 부처님의 가피를 받았으며, 스님께서 말씀하신 이야기가 진실한 것으로 굳게 믿게 되었습니다. 제 남편도 깊이 감동하여 저희 두 사람은 그 날 저녁 호텔에서 『지장경』을 독송하면서 죄업을 참회하였습니다. 다음날 아침 눈을 떴을 때 두 눈의 따끔따끔한 통증이 없어져 매우 기뻤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매일 『지장경』을 독송하며 아울러 더욱 경건하게 죄업을 참회하고 있습니다.”
현재 그녀의 눈은 완전히 좋아졌으며 대만에 돌아갈 시간이 되어 특별히 스님께 감사하다고 인사하며 떠나갔다. 그녀는 대만에 돌아가면 매일 시간을 내어 『양황보참』 예배를 할 것이라고 다짐하면서 또 한 가지 어려운 문제를 스님께 여쭈었다.
“만약 다른 사람들이 눈을 어떻게 치료했느냐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요? 어느 병원에 가서 치료했다고 할 수도 없고 또 사실대로 내가 전생에 『백사전』에 나오는 큰 물을 일으켜 금산사를 수몰시킨 수신이라고도 할 수 없습니다. 만약 그와 같이 말하면 그들은 저를 정신병자라고 여길 게 아니겠습니까?”
이 말을 하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웃었다.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매우 간단합니다. 오대산에서 예불하고 독경하여 치료했다고 하면 됩니다.”
스님께서 이야기한 이 고사를 들으면서 당시에 나도 한 점의 의혹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비록 내가 스님을 완전히 믿지만 어릴 때부터 어른들에게 들어온 『백사전』은 단지 전설이라고 생각하였으며, 어떻게 진짜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겠는가 여겨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또 수신이 환생하여 내 눈앞에 있으니… 그러나 며칠 후에 나타난 결과를 보고 나의 의혹은 소멸되지 않을 수 없었다. 주 여사의 눈병은 정말로 회복된 것이다.
당시 이 일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아야 육, 칠 명에 불과하다. 다만 주 여사가 이 책을 보고 화를 내지 않기를 바란다. 비록 내가 가명으로 이 일을 이야기하지만 결국 그녀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상황에서 그녀의 흥미로운 비밀을 드러낸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 고사로 인하여 수행자들이 불법(佛法)과 인과(因果)에 대하여 진일보된 인식을 하게 된다면 이 공덕은 응당 모두 그들 부부의 것이다. 그들 부부가 조속히 수행의 성과를 증득하기를 축원한다.
여기에서 나는 문학 수준이 높은 대덕, 거사분이 불교의 관점에서 『백사전』을 다시 새롭게 재구성할 때 이 수신의 환생 이야기를 덧붙이기를 희망한다. 만약 어느 누가 백사, 청사, 허선(許仙)의 내력을 이해하고 싶으면 묘법 스님께 도움을 청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를 TV연속극, 대만에서 촬영한 옥림(玉琳) 국사의 이야기를 묘사한 「재세정연(再世情緣)」과 같이 촬영한다면 보기도 좋고 사람들에게 교육적이며, 동시에 법해 노스님에 대한 잘못된 인식도 바로잡게 될 것이며, 무량한 공덕을 쌓는 일이 될 것이다. 법해 스님의 내력에 대하여 그는 도대체 누구이며 어느 불보살의 환생인지 이후 기회가 있으면 다시 이야기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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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보일배의 고행두타 묘림스님 구도일기
스님의 출가
나는 본래 죄가 많아 세상에 태어나 우유를 먹지 않고 3일을 크게 울었으며, 그 후 병이 났다. 세 살이 되었을 때 또 연속 7일을 먹지 않았다. 부모님은 내가 살아날 가망이 없음을 알고 포기하여 숨이 끊어지면 밖에 버리려고 하였다.
그러나 때마침 부친이 집으로 돌아오던 중 길에서 어떤 노인 한 분을 만나 처방을 듣고 한번 써보니 매우 효과가 있었다. 그 덕분에 가까스로 살아났으나 줄곧 병을 앓아 집에서는 나에게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다. 일곱 살이 되어 학교에 가야 했기 때문에 비로소 병원의 마오(毛)라는 의사가 몸이 좋지 않으니 길이 편안하라고 장녕(長寧)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모친은 불교를 믿고 채식을 하였는데 나도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부처님께 절하게 되었다. 항상 집 밖을 나가지 않고 집에서 혼자 부처님께 절하는 나를 보고 주위의 이웃사람들은 모두 보통 아이와 같지 않다고 하였으며, 내 누나는 나이답지 않다고 나무랐다.
우리 집 후원에 아무도 공양하는 사람이 없는 관음보살상이 있었다. 어머니께 수차 집안으로 모셔오기를 요청하였으나 들어주지 않았다. 그래서 연속 3일 밥을 먹지 않았는데 부모는 그 까닭을 알지 못했다. 부친이 왜 밥을 먹지 않느냐고 물었다. 나는 관음보살상을 모셔올 것을 청하였다. 어머니가 그 말을 듣고는 바로 관음상을 모셔 왔다.
나는 정말로 기뻤다. 관음보살상을 오전에 닦고 오후에도 닦았다. 방과 후 돌아와서는 책가방을 놓자마자 바로 절하였다. 어머니는 내가 숙제도 하지 않고 관음보살상에 빠진 것을 보고는 관음상을 몰래 감추어 버렸다. 내가 아무리 원해도 내놓지 않았으며 나는 조급하여 학교에도 가지 않았다. 어머니는 화를 내며 나를 때리고 욕하였다. 그 때부터 나는 병이 났으며 하루하루가 즐겁지 않았다. 당시는 매우 어려서 관음보살상을 구할 줄 몰랐다. 매일 괴로워하며 관음보살상을 놓은 곳에서 눈물을 흘리며 관음보살상이 없는데도 절하였다.
어머니는 이러한 나를 보고는 할 수 없이 관음보살상을 다시 모셔왔다. 이때 내 나이 12세였으며, 나는 스스로 방에 갇혀 밖에 나가지 않고 줄곧 절만 하였다. 내가 지금 배향(拜香 : 절하며 성지를 순례하는 것)하는 것은 어릴 적 부처님께 절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나는 절하는 것을 정말 좋아하였다.
16세 때 폐렴을 앓았는데 수혈에 과민반응이 일어나 병원에서 다섯 시간이나 응급치료를 하였으나, 의사는 치료하지 못하겠다고 말하였다. 아버지는 나를 안고 대성통곡하였다. 이때 나는 마치 꿈인 듯 많은 사람을 보았다. 어떤 사람은 아는 분이었으며, 어떤 사람은 모르는 분이었다. 나는 이들을 따라 높은 계단으로 올라갔다. 높은 곳에서 어떤 보살의 방광(放光)을 보게 되었다(지금 비로소 그 분이 지장보살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눈을 뜨지 않고 손이 마비되면서 계단 위에서 뛰어내렸다. 알고 보니 병원의 침상 위에서 뛰어내린 것이었다. 집안사람들은 기뻐하였다.
의사선생님이 말하였다. “이렇게 죽었다가 살아난 것은 처음 봤다.”
이와 같이 나는 죽었다 살아났다. 그 후에 이빨이 모두 빠져버렸다가 다시 새로운 이빨이 자라났다. 아마 이것은 환골(換骨)일 가능성이 있다.
18세 때 해라얼(海蹈爾) 이공대학에 진학하였다. 졸업할 무렵 아버지는 중풍으로 3년을 고생하였다. 아들로서 아버지를 위하여 무엇을 해드려야 할지를 몰랐다. 나중에 나는 채식을 하면서 아버지를 위하여 대신 고통을 받기를 발원하였다. 결과적으로 1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부친의 병은 치료하지 않고도 완쾌되었다.
나는 졸업 후 국영기업에서 영업을 담당하였으며 아울러 부사장을 맡게 되었다. 그러나 채식을 하기 때문에 번화한 속세에서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할지 몰랐다. 나는 매우 소극적이었다. 그 후 침대 앞에서 내가 가사를 입고 있는 모습의 환상이 나타났으며, 마땅히 출가해야겠다고 느꼈다.
부모님께 말씀드리니 아버지는 관여하지 않았으나 어머니는 허락하지 않았다. 누나가 말하기를 “어릴 때부터 다른 애들과는 다르다.”고 보았단다. 할 수 없이 편지를 써서 쌀자루 안에 놓아두고는 출가하였다.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존경하는 두 분께:
두 분이 이 편지를 보게 될 때 불효한 이 아들은 출가의 길에 올라 있을 것입니다. 저는 출가의 길을 선택하여 제 일생을 완성할 길을 갈 수밖에 없습니다. 저를 찾지 말아 주십시오. 제 자신의 일을 잘 처리할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불법에 대하여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묘함이 어디에 있는지 모릅니다. 저에게는 오히려 가장 좋은 귀착점입니다. 아들로서 비록 몸으로는 효를 다할 수 없지만 마음으로 효를 다하여 두 분의 양육의 은혜에 보답할 것입니다.
어머니, 초파일은 어머니의 생신입니다. 제가 비록 어머니 곁에 없을지라도 어머니께서 기뻐하셔야 모두들 기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어머니는 자식이 곁을 떠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신 아들이 출가의 길을 선택한 것은 더욱 많은 어머니들이 고해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함입니다.
인간세상의 즐거움은 일시적이며 저의 괴로움도 일시적입니다. 어머니 아들은 떠납니다. 어머니께서는 반드시 슬픔을 견디실 것입니다. 관세음보살을 많이 염하십시오. 어머니께서는 불법에 대하여 신심이 깊으시니 아들의 출가에 대하여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어머니께서 스스로 탐착과 욕망을 버릴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놓아버리십시오. 청정한 신자가 되십시오.
두 분은 안심하십시오. 저는 부모와 조상님들께 부끄럽지 않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아마 긴 시간 소식이 없더라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출가인은 마땅히 일체를 놓고 수행에만 전념해야 합니다. 저는 제 자신의 일을 잘 돌볼 테니 안심하십시오.
불효자 장녕
어머니 생신에 떠나면서
● 해남(海南)에서 독사에게 물리다
나는 출가 이후 해남 복산(福山)으로 왔다. 어느 날 고향 사람이 바나나를 심는 것을 보고, “당신을 도와드리겠습니다. 노임은 받지 않을 것이며 식사도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단지 바나나만 먹을 수 있으면 됩니다.”라고 말하였다.
해남은 바나나가 많으며 버리는 것도 다 먹지 못할 지경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인가와 멀리 떨어진 곳에 오두막을 세우고 『금강경』을 공부하면서 다리를 단련하였으며, 낮에는 바나나 밭에서 일하였다.
6월은 매우 더웠다. 어느 날 저녁 11시가 넘어 약간 혼침에 빠져서 일어나 얼굴을 씻으려 맨발로 바나나 밭으로 가는 도중 마치 가시에 할퀸 것같이 다리가 얼얼한 것을 느꼈다. 발 밑을 보니 한 마리의 회색 빛 독사가 내 발에 밟혀 나를 향해 공격하여 왔다. 나는 다리를 들어 뛰었고, 독사가 뒤쫓아왔다. 흙길에 도착하니 독사는 더 이상 따라오지 않았으며 그제서야 비로소 독사에 물려 발이 찢어진 것을 의식하게 되었다.
초막으로 돌아왔다. 사람들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뱀에 물렸을 땐 물린 데를 칼로 베야 한다는데, 이렇게 어두운 밤에 어떻게 할까? 맞아, 발을 칼로 째자. 목숨을 보전하는 것이 중요하지! 나는 곧 바나나 자르는 칼을 꺼냈다. 하지만 차마 벨 수가 없었다. 끈으로 대퇴부를 나무막대기에 묶은 후 이를 악물고 스스로를 격려하였다. 목숨이 중요하다. 그래서 칼로 베기 시작하였는데 너무 깊게 베었다.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 ‘피를 너무 많이 흘려도 죽는다. 베는 것을 그만 두자.’
나는 크게 놀라 눈물이 흘러내렸다. 부처님! 제가 뱀에게 목숨을 빚졌습니다. 그러나 저는 도심(道心)을 발하려고 합니다. 『금강경』의 문구가 생각났다. 부처님의 전생시절, 인욕 선인으로 수행하실 때 가리왕에게 몸이 잘리면서도 진한심을 내지 않았다. 나는 곧 묵념하였다. ‘뱀아! 내 마음에는 독이 없다. 나는 너에게 원망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다. 내가 수행을 완성하면 먼저 너를 제도할게!’라고 생각하며 앉아서 보니 상처 난 발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나는 공중을 향하여 말하였다.
“고통을 구제하시는 관세음보살님! 저는 어릴 때 줄곧 당신께 절했습니다. 저는 살아야 합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을 아직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어떻게 부모님을 대할 수 있겠습니까?”
슬퍼서 울었으나 나중에는 지각이 없었다. 며칠이 지났는지 모르지만 깨어났다. 모기가 물어 몸은 군데군데 붉어져 있었으며 땅에 흘러내린 피는 모두 검게 되었으며, 발에는 뼈가 드러나 있었다. 그 위에 파리가 가득 떨어져 죽어 있었다. 독에 감염된 것이다.
가까스로 살아나게 된 나는 발을 질질 끌어 물가로 갔다. 발을 물에 담그고 썩은 살은 칼로 도려내고 뼈를 깨끗이 씻었으며, 옷을 오려 상처 부위를 감싸서 묶었다. 불행 중 다행이라는 생각에 기뻤다. 발이 남아있게 되었으니. 하지만 상처에서 계속 누런 물이 흘러내리고 온 몸에서 열이 났다. 고온의 6월에… 자살을 할까 생각하였다. 그만두자. 너무 고통스러우니. 안 돼. 중생을 널리 제도해야 하니. 정말 인간지옥이 따로 없었지만 또한 살아야 한다. 나는 7일을 굶기 시작하였다. 7일 후 예상외로 많이 좋아졌다. 이번의 재난을 넘긴 후 나는 해남을 떠나 종남산(宗南山)으로 왔다.
● 종남산에서 야생 독초를 먹고 중독되다
해남(海南)에서 내지로 돌아와 혼자 몸으로 종남산으로 들어갔다. 인간세상과 멀리 떨어진 산 계곡에서 생활하면서 야생초, 송진, 나무껍질, 황정 등을 먹으면서 지냈다. 매일 동물들과 왕래하였는데 그들은 나를 해치지 않았고 나도 매우 자유로웠다.
2년여를 지난 어느 날 하루는 황색의 작은 야생초를 먹었는데 수분이 매우 많았다. 대략 열 몇 입을 먹고 나서 혀가 마비되는 것을 느끼고는 그 야생초에 독이 있음을 알아차렸다. 곧 목이 뻣뻣해지고 입도 움직이기가 어려웠다. 물을 마시려고 하였으나 이미 늦었다. 곧 지각을 잃게 되었다. 단지 무수한 천녀가 꽃을 뿌리면서 웃으면서 나에게로 와 나를 둘러싸고 도는 것이 보일 뿐이었다.
나는 머리도 들지 못하고 무엇이 보여도 보지 않았다. 마음으로 생각하기를 무엇하러 여기 왔나. 마음으로 생각하면서 눈을 뜨니 꿈을 꾼 것과 같았다. 위로는 토하고 아래로 설사한 누른 물을 보고 나는 비로소 방금 마치 죽은 것과 같은 상태와 같음을 알아차렸으며, 아무 것도 분명하지 않았다. 이번의 중독으로 위장이 상해서 할 수 없이 물만 마시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니 점차 위가 좋아졌다. 도의 마음을 발한 수행자들에게 알려드리려고 한다. 도심을 발한 후 절대로 조급해 하지 말아야 하며, 먼 길을 천천히 가야 한다. 단지 가기만 하면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두려운 것은 가지 않는 것이다.
● 법문사(法門寺)에서 향을 올리다
법문사는 본사 석가모니 부처님의 정골(頂骨)사리를 모신 보배로운 성지로서 섬서성(陜西省) 부풍현(扶風縣)에 있다. 이때 징관(澄觀) 노스님이 주지로 계셨다. 나는 이곳에서부터 향을 올리고자 이른 아침 삼의와 바루를 수습하고, 높고 높은 사리탑 아래에서 여러 해 동안의 서원을 석가모니 부처님께 고하였다.
제1원 : 허공법계 일체의 보살, 연각, 성문이 부처를 이루지 못하면 나는 정각을 취하지 않겠습니다.
제2원 : 일체의 하늘과 인간, 아수라가 만약 부처를 이루지 못하면 나는 정각을 취하지 않겠습니다.
제3원 : 일체의 축생, 아귀, 지옥 등의 중생이 성불하지 못하면 나는 정각을 취하지 않겠습니다.
제4원 : 일체의 중생이 선을 억념하고 편안하게 되기를 원하며, 유정에게 널리 방편을 베풀어 안락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제5원 : 일체 중생이 나의 모습을 보거나 나의 이름을 들으면 모두 보리심을 발하고 구경에 안락을 얻게 되기를 원합니다.
제6원 : 나에게 귀의하는 일체 중생이 만약 성불하지 못하면 나는 정각을 취하지 않겠습니다.
제7원 : 일체의 복과 즐거움, 수명, 재물을 일체의 중생에게 널리 보시하기를 원하며, 중생의 모든 고난을 내 한 사람이 대신 받기를 원합니다.
제8원 : 이 생에서 일체 지를 이루고 널리 법을 펴는 데 장애가 없으며, 중생을 이롭게 하는 데 장애가 없기를 원합니다.
제9원 : 이 생에서 탁발하고 걸식하며 야외생활을 하겠습니다.
제10원 : 나와 일체 중생이 신, 구, 의가 청정하여 일체 제불에게 공양하기를 원합니다.
제11원 : 나와 일체 중생이 지장보살의 본원공덕을 수지하여 이고득락(離苦得樂)하며, 영원히 다시는 고통에 빠지지 않기를 원합니다.
제12원 : 몸과 마음으로 본존 지장보살마하살에게 공양하며, 세세생생 미래 겁이 다하도록 지장보살을 따르며, 일체 중생을 위하여 널리 방편을 갖춰 모두 안락하게 하며, 함께 상적광토(常寂光土)로 돌아가기를 원합니다.
자비하신 인천(人天)의 스승님, 당신은 항상 상적광(常寂光) 속에 계시면서 제자 묘림(墓林)을 위하여 증명이 되어 주십시오.
나는 말을 마치고 나서 오체투지하고 정례하였다. 이때 동쪽에서 태양이 떠오르면서 탑의 꼭대기를 비추었으며 상서로운 빛이 눈부시게 빛났다. 순식간에 마치 전체 사원이 나의 마음을 따라 떨리는 것 같았다. 이어서 배향하면서 일보, 이보, 삼보 후 절을 하였다. 몸을 아래로 굽히니 발 아래의 대지가 진동하였다. 온몸이 절할 때 대지는 무한히 연장되었다. 이때 몸도 따라 연장되었다. 나는 저절로 격정이 솟구쳤다.
대지여, 어머니여! 당신의 무한함은 수없이 많은 중생을 기릅니다. 우리들은 진정으로 당신의 은덕에 보답코자 합니다. 나와 일체 중생은 모두 무한히 당신에게 봉헌하여 일체 중생을 평안하게 하기를 원합니다. 비록 우리들의 몸은 대지와 동체가 될 수 없지만 우리들의 마음은 대지와 같이 묵묵히 우리와 같은 뿌리인 모든 중생을 윤택하게 하려고 합니다.
시방의 모든 부처님이시여! 제자 묘림은 비록 대지의 일체 중생을 천백 억 화신(化身)으로 제도할 수 없지만, 나의 방편으로 법계의 모든 유정을 안위할 것이며, 나의 피와 땀을 대지에 뿌릴 것이며, 나의 발자국을 모든 촌락에 남기려고 합니다. 정법이 오래 머물며 함께 상적광토에 나기를 원합니다.
종소리에 따라 배향도 장엄하게 진행되었다. 첫 번째인 법문사 대면옥불에는 지하에 18층 지옥이 있는데, 나는 곧바로 절하면서 내려갔다. 어떤 남자 거사가 나에게 말하기를 어제 오후 5시에 와불(臥佛)이 방광하였다고 한다. 또 한 분의 여자가 말하기를 그 빛이 매우 컸다고 한다.
나는 그들의 말을 듣고 대답하지 않았으나 속으로 기뻤다. 내가 어제 오후 5시에 법문사에 도착하였으니 이것은 부처님의 나에 대한 가피였다. 당시 서안 와룡사의 일범(一凡) 법사는 함께 기뻐하였으며 이번의 배향은 반드시 성공할 것을 예시하였다. 정오에 여섯 번째 집에 탁발하였으며 약간의 음식을 얻어먹었다. 먹고 난 후 계속 앞으로 삼보일배 하면서 나아갔다.
● 관음보살이 사람을 시켜 밥을 보내다
무공(武功)이라는 지역에 도달하였을 때 첫째 날 탁발하였으나 밥을 얻지 못하였다. 둘째 날 점심 때 여전히 일곱 집에서 탁발하였으나 공양이 없어 단지 굶는 수밖에 없었다. 날이 어두워지려 할 때 어느 촌에 들어갔다.
절하면서 가다가 칠순 노인 한 분을 만났는데, 나에게 예배하면서 말하였다. “스님, 저는 오후 내내 스님을 기다렸습니다.”
내가 무엇 때문이냐고 묻자 그녀가 말하기를, “어제 밤 꿈에 관음보살이 세 번이나 나타나 제게 말하기를 ‘내일 오후 승려 한 분이 당신 집 앞을 지나갈 테니 당신은 문을 열어 그에게 하루 밤 휴식하게 하고 식사를 대접하시오.’라고 하여서 계속 기다렸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그 집에 들어서자 침상이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내가 앉으니 그녀가 말하였다. “국수를 준비하러 갈 테니 쉬십시오.” 잠시 후 국수를 들고 들어왔다. 이틀을 굶었으니 관음보살께서 사람을 시켜 밥을 보내 온 것에 대해 감사하였다. 다 먹은 후 노보살이 어떻게 염불하면 되는가 하고 묻기에 내 방법을 간단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적게 말하고 많이 염불할 것이며, 밥을 적게 먹고 과일을 많이 먹으며, 적게 눕고 많이 앉으며, 적게 잠자고 정신을 많이 차릴 것이며, 병이 없어지려면 많이 절하십시오. 이것이 바로 비결입니다.”
● 진령(秦嶺) 고개에서 기한(飢寒)을 참다
황혼 무렵 태양은 붉은 빛을 남김없이 비추고 있었다. 이미 닷새 동안 먹지 못한 나는 진령 고개에서 아주 힘겹게 절하고 있었다. 이때는 이미 음력 10월 초파일이었으니 뼛속을 스며드는 차가운 바람은 마치 칼로 살을 도려내는 것같이 고통스러웠다. 단지 절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앞뒤로 인가는 보이지 않고 날은 점점 어두워져 왔다. 마치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오는 것 같은 일종의 공포감이 밀려왔다. 바람은 크게 불었고, 작은 쌀알 같은 눈은 바람의 힘을 빌려 내 몸을 때렸다. 그것은 마치 돌멩이로 때리는 것 같은 아픔이 느껴졌다.
그 때 ‘만약 밥을 조금 먹어 에너지가 생기면 지탱할 수 있으련만.’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멀리서 불빛이 날아왔다. 놀라움, 기쁨이 교차했다. 차량이 지나가면서 먹을 것을 주면… 조금 후 승용차 한 대가 보이더니 멀리서 여자의 말소리가 들렸다.
“맨발을 한 스님 한 분이 눈길에서 절을 하고 있네.”
내가 손을 드니 차가 멈춰 섰다. 어둠 속에서 운전사가 말하였다.
“뭘 봐. 미친 사람이군!”
여자가 말하였다.
“그렇게 안 보여. 내가 보기엔 좋은 사람 같아.”
남자가 말하였다.
“온전한 사람이 누가 절하면서 산길을 가. 이런 날 얼어죽으려고 작정한 사람이지.”
여자가 말하였다.
“우리 그를 산 밖에까지 모셔다 줍시다.”
“당신은 무엇이든 하려고 해. 미친 사람도 태워 줘!”
차가 가속을 시작하자 여자가 말하였다.
“정말 가련해….”
차가 떠나가는 것을 보면서 나는 줄곧 그 곳에 멍하니 서 있다가 갑자기 입가가 짭짤한 것을 느끼고, 비로소 내가 눈물을 흘렸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배가 고파 운 게 아니라 산의 동물들도 나에게 먹을 것을 보내주는데, 사람이 어찌 이럴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나는 다시 생각을 돌려 ‘그만두자, 인연을 따르자’ 하고 생각하였다.
나는 계속하여 절하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이때 날은 이미 크게 어두워졌으며 길도 분간할 수 없었다. 눈은 점점 크게 내리며 큰 바람은 눈송이를 집어 휙휙 소리를 내며 불어대어 서 있기도 힘들어 할 수 없이 길가 바위 밑을 찾았다. 잠시 후 뼈를 쪼개는 것같이 차가웠고, 약간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먹을 것이 있으면 좋아질 것 같았다.
무엇을 먹어야 하나? 위로 보니 캄캄한 하늘이요, 아래는 큰 눈으로 몸이 흰 눈사람이 된 것 같았다. 배고픔과 추위가 함께 엄습하였다. 삼의(三衣)를 머리에 걸친 채 하는 수 없이 두 무릎을 가슴으로 안고 몸을 작게 웅크렸다. 스스로 잠자면 안 된다고 계속 각성시켰다.
한바탕의 배고픔이 또 몰려왔다. 어떻게 하나? 몸 옆의 나뭇가지를 꺾어 입에 넣어 씹었다. 이때는 손을 움직이기가 어려웠고, 입도 움직이기가 쉽지 않았으며, 몸은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나는 죽음이 또 한번 찾아왔음을 느꼈다. 그만두자. 놓아버리자! 이 몸뚱이를 집착하는 고통을 놓아버리자!
시방의 모든 부처님이시여! 제자 묘림은 지금의 배고픔과 추위를 바꿀 힘이 없습니다. 단지 기도할 뿐입니다. 내생에 다시 인간세상에 와서 배향의 서원을 이루게 해주십시오.
안녕, 아들이 일찍 돌아오기를 기대하는 부모님! 안녕, 모든 친척들이여! 인연이 있으면 내생에 다시 만나기를….
기도 중 나는 지각을 잃었다.
갑자기 눈앞에 자상한 노스님이 출현하여 나에게 말하기를 “수도인은 자기를 고통스럽게 하면 안 된다.”라는 말을 마치고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놀라서 깨어났다. 이때 큰 눈이 나를 덮고 있었다. 이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알지 못하였다. 발버둥치면서 기어 나와서 내가 여전히 살아있음을 알아차렸다. 죽지 않았어. 죽지 않았어! 나는 살았어! 이때 태양이 내리비춰 나에게 고함칠 힘이 있게 하였다.
“나는 죽지 않았다. 모든 친척들이여!”
나는 눈 속에서 삼의를 꺼내 수습한 후 눈을 조금 먹었다. 기억하기를 ‘저녁에 부처님이 와서 나를 구한 것인가. 아니야. 마치 은거한 성스러운 스님 같았어. 맞아. 성스러운 스님이야.’
고인이 말하기를 “팔백 조사(祖師)가 종남산을 진동하고 십만 사자(獅子)가 진령에서 외친다.”고 하였다. 성승(聖僧)-은인. 어디에 가서 찾지? 비록 망망한 숲 속, 험준한 숭산(崇山)일지라도, 아무리 어렵더라도 생명을 구해준 은인을 찾으려고 하였다. 성승은 반드시 나를 보호하여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실 거야.
● 숭산(崇山) 준령에서 은인을 만나다
차가운 바람이 뼈를 찌르는 진령 고갯마루에서 이미 9일 동안 양식을 먹지 못하고 나무껍질을 씹으며 맨발로 눈 속을 다니면서 큰 산, 작은 산, 산골짜기, 바위 밑으로 은인을 찾아 다녔다.
은인이시여, 당신은 어디에 있습니까? 설마 저를 만나볼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시겠죠? 저는 당신을 매우 만나고 싶습니다.
희디 흰 큰 산을 바라보면서 울기 시작하였다. 안 돼. 반드시 찾아야 해! 그렇게 숲 속을 뚫고 들어가서 머리를 들어보니 한 마리 흑곰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경악했다. 곰도 사람을 잡아먹는다고 하고, 호랑이보다 더 사납다고 한다. 나는 깊은 산 속에 살 때의 경험을 생각하여 거짓으로 죽은 체하고 드러누웠다. 곰은 내 주위를 몇 바퀴 돌더니 소리를 지르면서 떠나갔다.
나는 큰산을 따라 위로 찾아갔으며 높은 산꼭대기까지 갔다. 아래를 보니 길게 이어진 작은 산들이 보였다. 작은 산으로 내려가 아래를 보고 매우 놀랐다. 사람이 보이는 게 아닌가! 발 밑을 돌볼 겨를도 없이 날듯이 뛰어내려 갔다.
보았다. 보았다. 생명을 구한 은인이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매우 감격하여 배고픔과 추위는 흔적조차 없을 정도였다. 풀밭을 따라 절을 하며 건너갔다. 나는 은사가 나를 향하여 걸어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이미 여러 해를 부모와 가족간의 내왕이 없었다. 이때 나는 잃어버린 아들이 어머니 곁으로 돌아온 것같이 스스로 억제하지 못하고 큰소리로 울기 시작하였다. 한편으로 울고 한편으로 절하면서 은인을 맞이하였다. 은사는 나를 부축하면서 “됐어. 울지 마라.”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바로 성스러운 스님의 모습이었다. 은백색의 눈썹이 아래로 내려와 수염과 같이 있었다. 높은 이마와 평평한 얼굴, 정말로 위엄이 있었다. 나는 정신을 집중하였다. 일체에 대하여 기억을 상실한 듯 의념이 없었으며 생각이 없었다. 삼보일배로 바위에 쌓아올린 오두막으로 들어가니 안에는 단지 나무막대기로 만든 선상(禪床)만이 있었다.
은사(隱師)가 말하였다. “진령은 사람을 얼려 죽인다. 너는 그것을 아느냐? 가지 말고 여기 머물러라.”
나는 그 말을 듣고 매우 기뻤다. 마침 참학하고자 하였다. 내가 말하였다. “은사여! 저는 출가 이래 밖에서만 다녀 배운 게 없으며 무익한 고통만 받았습니다.”
은사가 말하였다.
“승려의 삼의를 입는 것이 쉬운 게 아니며, 입을 수 있는 것은 더욱 대단한 일이야. 도심을 발하는 것은 매우 어렵지. 부처님이 『대반야경』을 설하실 때 여러 부처의 어머니인 문수보살로 하여금 대문을 지키게 하였지. 무엇 때문인가? 바로 천마외도가 듣는 것을 두려워해서지. 그래서 문수보살이 와서 문을 걸었지. 우리의 공부는 신(神)이 모르고 귀(鬼)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비로소 도에 들어갈 수 있어. 겨울 결제를 여기서 하지. 앉게!”
이렇게 하여 나는 동안거를 지내기 시작하였다.
● 은인에게 절하여 스승으로 모시다
이번 겨울결제 때 은사(恩師)는 줄곧 선정 중에 있었으니 내가 어찌 따라갈 수 있겠나. 도중에 배가 고팠다. 식사는 산 속의 말린 야채를 물에 한번 담가 먹을 뿐이었다. 다행히 나는 (산에 사는) 기초가 되어 있어 그런 대로 견딜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산을 내려가는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느 날 스님이 선정(禪定)에서 나왔다. 나는 매우 기뻐 급히 절을 하고 말하였다.
“은사님, 저에게 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 당신을 의지스승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저를 받아 주십시오.”
은사는 줄곧 나를 바라보면서 한참 동안 말이 없다가 탄식하듯 말하였다.
“나는 출가 이래로 아직 제자를 받아들이지 않아 의지스승이 되어 본 적이 없어. 좋아! 너를 받아들이마.”
나는 너무나 기뻤다. 은사께서 말하였다.
“나는 어릴 때부터 부모가 없어 이웃에서 나를 길러주었지. 13세가 되었을 때 출가했어. 절의 스승은 나를 집 없는 아이로 여겼지. 하지만 나에게 아무것도 일러주지 않더군. 어떤 사람이 염불하는 것을 듣고 나도 따라 염불했지. 저녁에 다른 사람은 휴식해도 나는 쉬지 않고 불전을 돌며 염불했어. 염불을 십 몇 년 하니 한소식 했지. 그리하여 나는 절을 떠나게 되었어. 나는 허운(虛云) 노스님과 배향(拜香)하고 행각하면서 밖에서 많은 해를 다니면서 중화민국이 건국되기 전에 은거하여 지금에 이르렀어.”
내가 말했다.
“스님, 당신은 이미 삼신(三身)을 증득하였습니다. 왜 하산하여 널리 중생을 제도하지 않습니까?”
스님이 말하였다.
“지금은 게으른 자가 많아. 만약 정진하는 이를 만나게 되면 나는 하산할 거야.” 나는 그 말씀을 듣고 하산하여 (나를 구한 분은) 스님의 화신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부처님이 없는 게 아니라 우리들이 정진하지 않는 것이다. 열심히 정진하기만 하면 부처님은 항상 우리들 몸 곁에 계신다. 나는 또 청하였다.
“스승님, 당신은 저에게 어떤 길을 가야 할지를 가르쳐주십시오. 저에게 가야 할 수행방향이 있으면 저는 줄곧 행할 것입니다. 장래 좋은 소식이 있으면 부모님을 뵐 면목이 설 수 있을 것입니다.”
“좋아, 나에게 호흡오음염불법(呼吸五音念佛法)이 있어. 일천만 구(句)만 하면 반드시 극락에 왕생하게 될 것이다. 너에게 가르쳐 주마.”
나는 그 말씀을 듣고 이것은 우리 고난 중생들의 복이며, 반드시 행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승님은 염불, 반문(反聞 : 돌이켜 듣다), 반문(反問 : 돌이켜 의심하다)의 행을 자세히 나에게 전해 주셨다. 구체적인 내용은 뒷면에서 설명할 것이다.
● 초당사(草堂寺)에서 한번 앉아 삼일이 지나다
종남산 아래의 초당사에서부터 절하기 시작하였는데 도중에 긴 과수원 길이 있었다. 저녁에 매우 추웠고 바람이 많이 불었다. 나는 다만 안정을 취하였다. 내가 느끼기에 방금 앉았는데 어떤 사람이 나를 흔들어 눈을 떠보니 주위에 많은 사람이 둘러싸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일어나요. 앉은 지 이미 3일이나 되었어요.”
나는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시계를 보니 오후 세 시가 넘었다. 내가 앉은 채 선정에 들었음을 알아차렸다. 급히 몸을 일으켜 행장을 수습하여 절하면서 나아갔다.
그 땐 정말로 위험하였다. 다행히 그 곳에는 동물이 적었다. 오대산(五台山)을 배향할 때 다리 아래에 앉아 정에 들었는데, 한 마리 산돼지가 내 품으로 뛰어 들어와 오른손 새끼손가락을 물렸었다. 눈을 떠보니 앉은 지 며칠이 지나간 것을 알았다.
여기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좌선할 때 안전에 주의할 것을 권한다. 지켜줄 사람이 있으면 가장 좋다. 남녀를 막론하고 정좌할 때에는 마른 수건으로 국부를 덮어 풍한을 방비해야 한다. 남자는 또 수건으로 허리를 감아야 한다. 그러면 장시간 앉아도 병이 생기지 않는다. 여인은 반가부좌를 하는 것이 가장 좋으며, 생리상에도 좋아 병이 생기지 않으며 왕생의 품위에도 영향을 주지 않는다. 앉을 때 발등을 곧게 펴 좌복 위에 놓고 발 중심이 위로 향하도록 하면 혈액순환이 잘 되며 다리에도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시작할 때에는 다리가 아프지만 어려운 고비를 넘겨야 한다. 아픈 것을 겁내지 않으면 조금 지나 마비가 되는데 움직이지 말고 손으로 무릎을 문지르면 일반적으로는 잘 통한다. 이와 같이 앉을 수 있으면 번뇌가 적어지며, 자연히 청정해진다. 모두들 겁내지 말아야 한다. 항상 좌선하는 사람은 음식을 담백하게 먹고 적당하게 조절해야 한다.
경에 이르기를 “무량의 청정 지혜는 선정으로부터 생긴다.”고 하였다. 이렇게 왕생하면 비로소 파악되는 것이 있다. “어떻게 왕생해도 모두 괜찮다.”는 감언이설을 배우지 말아야 한다. 앉아서 왕생해야지 얼굴을 하늘로 보고 왕생하면 위의가 없지 않은가.
● 마천령(摩天嶺)에서 동안거를 보내다
시간은 이미 동안거 시작 무렵이 되었다. 종남산 풍곡 마천령 바위 밑으로 와서 산에 들어올 때 어떤 신도가 보시한 세 근의 국수와 물이 새는 알루미늄 냄비를 내려놓았다. 나는 구멍 난 냄비를 황토로 때우고 나서 하늘이 보이는 바위 밑에 걸었다. 두 개의 긴 막대기를 묶어 침상을 만들어 별빛 아래에 앉아 폭포 소리에 따라 리듬 있게 호흡에 맞춰 오음염불을 하였다. 낮에 산에서 찾은 아직 눈에 묻히지 않은 야생채소와 나뭇가지, 솔잎 등을 냄비에 넣어 끓여 먹었다.
그 해에는 눈이 특히 많이 내렸다. 눈이 내릴 때는 삼의를 머리 위에 덮어썼다. 열심히 공부하다 보니 어느새 봄이 왔다. 납월 이십팔일, 그때 산 아래 절에서 출가하려는 여신도가 나를 생각하여 한 그릇의 음식을 몰래 가져왔다. 나는 문제가 있음을 걱정하며 그녀에게 물었다.
“당신이 나에게 음식을 가져왔는데, 당신 스님이 알고 있습니까?”
그녀가 말했다. “모릅니다.”
내가 말했다.
“거사님, 이것은 승물(僧物)을 훔친 죄를 범하게 됩니다. 가져가세요. 나는 안 먹겠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아침에 스님이 나가시면서 저보고 음식을 만들어 먹으라고 했습니다. 제가 먹지 않고 스님에게 가져온 것입니다.”
내가 말했다.
“이렇게 합시다. 스님께 마땅히 말해야 합니다.”
그녀는 수긍을 하면서 음식을 바루 안에 담았다.
다음날 나는 북방의 풍속에 따라 음식을 부처님께 공양을 올린 후 산 위에서 산신, 토지신에게 공양하였다. 공양을 올린 후 나는 아직 얼지 않은 음식은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하산 길에 눈이 얼어 막대기로 눈길을 찔러보니 견고하였다.
그러나 누가 알았으리오. 딱딱한 눈 위를 한번 밟자 그만 푹 빠져버렸다. 바루를 쥔 채 산비탈을 굴러 내려가다가 바루도 놓쳐버렸다. 다행히 나무에 걸려 멈춰 섰다. 눈이 쌓인 땅이라 얼굴은 나무에 긁혀 찢어졌으나 그리 큰 상처는 입지 않았다. 나무를 잡고 일어나니 몸은 온통 눈으로 뒤덮였다. 급히 옷을 벗어 나무에 치대어 털어 냈다. 그 후 푹푹 빠지는 적설을 밟고 산비탈을 따라 바루를 찾아 내려갔다. 바루의 음식은 산비탈에 흩어졌으나 다행히 이미 부처님께 공양을 올린 뒤라 위안이 되었다. 곧바로 산 아래로 내려와서야 빈 바루는 풀로 가득 찬 것을 보게 되었다. 이때 나는 정말 견디기 어려웠다. 빈 바루를 보면서 어찌할 도리 없이 일어나서 참죽나무 껍질을 벗겼다. 바위 숙소로 돌아와 보니 갈 때 붙인 불은 아직도 타고 있었다.
나는 냄비에 물을 더 부어 나무껍질을 삶기 시작하였다. 마음은 망연히 망망한 큰산을 바라보았다. 이때 머리 위에서 황색 빛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날아가는 것을 보고 나는 비로소 배향을 시작해야겠다고 의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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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보일배의 고행두타 묘림스님 구도일기 2부
염불은 체면을 놓아버려야 한다
배향하며 곽주에 도착했을 때 비가 내렸다. 나와 제자는 길 옆에서 휴식을 하게 되었다. 멀리 보니 자전거를 탄 여자 한 분이 나를 향하여 “스님” 하고 큰 소리로 부르며 쫓아왔다. 나에게 절을 하며 묻기를 “스님, 방금 절하며 지나가시던데 지장보살을 염하지 않습니까?”
듣고 보니 이상하여 기공을 공부하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개의치 않고 말했다. “나는 지장보살을 염합니다.”
그녀가 말했다.
“스님을 집으로 청하여 식사를 공양하고 싶은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내가 말했다.
“안 됩니다. 내 몸은 매우 더러우며 맨발에 살이 드러났으니… 산서(山西) 지방에는 석탄이 많아 길에서 절을 할 때 석탄재가 날려 마치 검은 밀가루를 온몸에 덮어 쓴 것 같습니다. 게다가 땀까지 흘려 정말 거지보다도 더 더럽습니다.”
그녀는 단지 절을 할 뿐 일어나지 않았다. 방법이 없었다. 할 수 없이 그녀의 요청에 허락하였다. 그녀는 매우 기뻐하였다. 보아하니 대략 삼십여 세 되어 보였다. 마침내 그녀의 과수원을 지나게 되었는데, 그녀가 남편에게 삼륜차로 우리를 싣고 가게 청하였다. 그러나 그녀의 남편은 아무런 응답이 없었으며 또한 움직일 기색도 없었다.
나는 길이 그리 멀지 않으니 걸어서 가면 된다고 하였다. 그녀도 수긍하였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함께 마을에 들어섰다. 제법 큰 마을이었으며 그녀의 집은 마을 서쪽에 위치하였다. 우리는 동쪽으로 들어가는데 마을사람들은 여자가 매우 더러운 행색의 두 스님을 모시고 신발도 없이 걸어가는 것을 보고, 우리를 보러오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다. 마치 특별히 (우리가 온다고) 알린 사람이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내가 쑥스러워할까 두려워하면서 말했다.
“스님, 고개를 드세요.”
내가 말하였다.
“나는 여인을 보면 고개를 들지 않습니다.”
그녀가 나와 같이 가니 주위에 구경하는 사람들이 웃기 시작하였다. 나는 그녀의 정력(定力)을 보았다. 그녀는 조금도 얼굴색이 변하지 않았다. 대단하였다. 체면을 놓은 것이다. 나는 비로소 알아차렸다. ‘이 여인이 심상치 않아. 내가 지장보살을 염하는 것을 알 수 있는 것만 봐도 정말 공부를 많이 한 것을 알 수 있어. 기공을 공부하는 분은 아니야.’ 마음속으로 이러한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집에 도착하니 그녀는 나와 제자를 불당(佛堂)으로 들게 했다. 방 한 칸은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었고 불전에 청수를 공양하고 있었다. 이때 따라온 사람들이 창문으로 안을 들여다 보았다. 그 여신도는 채소를 사러가고 나는 구경꾼들에게 설명하였다.
“우리는 승려입니다. 이 집 여주인은 불교를 믿는 분으로 우리를 맞이하여 식사를 대접하려는 것입니다.”
그러자 그들은 천천히 물러갔다. 그녀는 두 가지의 반찬을 준비하였으며 우리는 식사를 하기 시작하였다. 조금 후 그녀의 남편이 돌아왔다. 부엌문을 사납게 열더니 냄비를 탕, 탕 치기 시작하였다. 그는 불만이 가득 찬 것이다. 이때 나는 자세히 그녀의 무명화(無明火)를 관찰하였다. 그녀는 예상외로 무엇도 듣지 않고 보지 않은 것처럼 어떠한 반응도 표시하지 않았다. 정말 대단하였다. 그녀의 정력(定力)이 이렇게 대단할 줄이야. 식사를 마친 후 염불당에 갔다. 그녀가 말하였다.
“스님, 저는 지금에서야 비로소 불법을 배우는 것이 가장 자재로운 일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스님, 염불하여 염하지 않아도 저절로 염해지며, 염하여 무념(無念)이 될 때 어떻게 합니까?”
나는 말하였다.
“눈물을 흘리며 울기를 다할 때 부처님께서는 당신에게 일러줄 것입니다.”
그녀는 정말로 울었다. 세탁한 옷이 마르기를 기다려 우리들은 다시 절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 목마하(牧馬河) 교량에서의 큰 사고
그 날은 날씨가 매우 더웠다. 오후가 되어 목마강 큰 다리에 도착하였다. 하늘을 보니 비가 올 것 같아 절하지 않았다. 어린 제자는 탁발하러 갔는데,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하였다.
나는 맨발로 수레를 밀면서 나아갔다. 다리 위에는 뾰족한 돌이 매우 많아 잘못 밟아서 미끄러져 내렸다. 급히 손으로 다리 난간을 잡았으나 잡히지 않아 머리가 다리 밑으로 떨어져 내렸다. 공중에서 급히 몸을 돌려 다행히 두 다리가 먼저 땅에 떨어지는 찰나 다리 밑을 보니 토석이 섞여 쌓여 있었다. 다리가 땅에 떨어질 때 두 손을 미니 몸이 공중에 날아 3m나 넘게 멀리 떨어지면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이때 수레도 교량 위에서 떨어져 내렸다. “와” 하는 소리와 함께 내가 방금 떠난 토석더미로 떨어진 것이다.
아이구, 정말 위험했구나. 조금만 늦게 피했더라도 수레에 깔려 죽을 뻔했군. 잠시 그 곳에 멍하니 있다가 갑자기 내 몸이 어떤지 생각이 났다. 머리를 흔들어 보니 괜찮고 팔을 흔들어 보아도 괜찮았으며, 왼쪽 다리를 움직여보아도 이상이 없었으나 오른쪽 다리를 움직여보니 전혀움직일 수가 없었다.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힘써 다리를 들어보았다. 바지를 당겨보고는 놀라 자빠졌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무릎 아래에서부터 발등까지 살이 밖으로 쩍 벌어져 나온 게 아닌가! 매우 놀랐다. 이렇게 큰 상처는 응급처치를 하여 봉합수술을 받아야 되는데, 내 몸에는 돈 한 푼 없으니…
약간 겁이 나서 손으로 지탱하며 위로 기어올라갔다. 오른쪽 다리는 이미 마비가 되어 쓸 수가 없었으며 올라갈 수가 없었다. 정말 큰일이다. 몸이 마비되면 안 되는데… . 힘써 다리 기둥까지 올라가서 기둥을 잡고 일어섰다. 이때 벌어진 살에서 피가 흘러나왔으며 순식간에 붉은 선을 이루어 발등을 따라 흘러내렸다. 빨리 지혈해야 하며 만약 피가 멎지 않으면 감당할 수 없는 사태에 이를 것임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그런데 무얼 가지고 지혈하지? 손으로 다리기둥을 잡고 돌아보았다. 피는 흥건히 땅에 흘러내렸다. 매우 당황스러웠다. 병원에 가서 인연을 구할까? 안 돼! 나는 이미 서원을 발했지 않는가! 인연을 구할 수는 없어! 하지만 만약 피가 너무 많이 흐르면 목숨이 위험해질텐데, 어떡하지? 집에 돌아갈까? 그러나 집이 어디 있지? 정말 한심스러운 일이군, 이 젊은이야!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안 돼! 견뎌내야 해. 지혈의 방법을 생각해 보자. 두루마기를 찢어 무릎 위를 단단히 묶었다. 이러면 안 돼. 피는 그래도 통해야 돼. 이때 숨을 헐떡거렸다. 호흡이 약간 힘이 들었으며 심장이 더욱 빨리 뛰었다. 출혈이 너무 심해 땅에 떨어진 피가 덩어리가 질 정도였다. 지탱할 수 없어 주저앉았다. “문수보살님! 설마 제가 목마강 다리에서 죽어야 하는 것은 아니겠죠?”
어린 제자가 탁발한 후 돌아왔다. 그도 보고 매우 놀랐다. 나는 풍습지통고(風濕止痛膏)가 생각이 나 그에게 가져오게 하여 상처에 모두 네 장을 붙였다. 붙이고 난 후 눈앞이 캄캄해지더니 지각을 잃어버렸다. 마치 꿈결처럼 한 분의 자상한 노스님이 내 머리를 두드리며 말하기를 “생명은 무상하며 즐거움은 적고 괴로움은 많구나. 돌아가거라. 가련한 아이야!”
나는 눈을 떴다. 몸에서 열이 나고 다리는 아프기 시작하였다. 하늘은 천천히 밝아오기 시작하였다. 일어서서 다리기둥을 의지하여 몇 바퀴를 걸었다. 단지 오른쪽 다리가 움직이기 어려웠다. 절을 할 수 있으면 괜찮아. 마음은 무리하게 절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다리를 굽힐 수가 없었다. 나는 다리를 끌면서 절을 하였다. 배향을 멈출 수는 없었다. 그러나 가는 것이 매우 느렸으며 그래도 절을 하려고 하였다.
다음날 고열이 났으나 그 다음날 아침까지 버텼다. 풍습고가 신통치 않음을 느끼고 한 장을 떼어내자 고약한 비린 냄새가 퍼져 나왔다. 순간적으로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감염이 된 것이다. 풍습고 네 장을 모두 떼어 내니 파리들이 몰려왔다. 상처를 보니 정말로 놀라울 지경이었다. 살은 밖으로 벌어져 나왔으며 흰 뼈가 노출되어 있었다.
하지만 여러 번의 죽음의 위기를 통하여 약간은 성숙되었는지라 매우 빨리 마음의 평정을 되찾았다. 아울러 스스로 안위하며, ‘겁내지 말자. 어떤 사람은 다리가 모두 없는데 나는 단지 한쪽 다리를 다친 것 아닌가. 마땅히 만족해야지. 어떤 사람은 나보다 어린 나이에 이미 죽지 않는가. 나는 아직 살아 있으니 마땅히 기뻐해야지. 단지 절을 할 수 있으면 나는 오대산과 가까워질 것이다. 견뎌내자. 견뎌내자….’
높은 열은 계속되었으며 대퇴부가 마비되고 파리가 다리를 에워싸고 한 무리를 이루었다. 길을 가는 사람들이 보고는 모두 코를 비비면서 “정말 고약한 냄새군. 목욕도 하지 않으니 몸에 파리가 날아들지. 이 더러운 화상아….”라고 하였다.
그러나 내 마음의 고통을 누구에게 하소연할까? 속으로 삼키자꾸나. 며칠 지나면 좋아질 거야. 어린 제자는 내 이런 모습을 보고 시골 진료소에 가서 약을 구하려고 하였다.
“우리 스승이 다리를 다쳤는데 소염약 좀 주세요.”
의사가 말하였다.
“네 스승은 다리가 썩었어. 아마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좋을 거야. 진통약이 있는데 필요하면 두 알 주지. 필요 없으면 그만 둬.”
그는 돌아와 나에게 의사의 말을 전하였다.
내가 말했다. “그만 두자. 필요 없어. 정말 한탄스럽구나. 좋은 일을 하는 것이 이렇게 어렵구나. 약을 주는 게 이렇게도 어려운지…, 이것도 내가 인지(因地)에서 복을 심지 못한 과보이지.”
이때는 이미 5일이 지난 뒤였다.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단지 하나의 신념이 있을 뿐이었다. 한 걸음을 가면 한 걸음 더 가까워진다. 매 한 걸음마다 이를 악물었다. ‘지탱하자. 멈출 수 없어. 신심이 있으면 반드시 도달할 수 있을 거야.’
저녁에 휴식할 때 나는 앉을 수조차 없었다. 앉으면 못 일어날 것 같았다. 그래서 날이 밝을 때까지 줄곧 서서 지냈다. 절을 시작하자 통증이 엄습하여 어떤 때는 감각을 잃었다. 어느 날 하루는 절하며 앞으로 가는데 어떤 사람이 뒤에서 사납게 발로 내 엉덩이를 차서 내 몸이 앞으로 3m나 넘게 비틀거리다가 까무러쳤다. 귀를 찌르는 자동차 경적소리에 깨어났다. 상처를 보니 살은 이미 검어지고 뼈에서 누런 진물이 흘러 나왔다. 증세가 가중된 것이다.
9일째 되는 날 호흡이 힘들고 대소변도 통제를 잃었다. 나는 가망 없음을 느끼고 나의 삶이 끝장이 났음을 느꼈다. 이날은 비가 온 뒤라 날씨가 매우 추웠다. 오대현(五台縣) 경계까지 왔을 때 붉은 팻말에 ‘오대현’이라 써 있었다. 옆에 고목이 한 그루 있고 아래에는 문이 없는 수신묘(樹神廟)가 있었다. 날은 어두워지려 하였다. 나와 어린 제자는 건너편에 앉았다. 눈물이 나도 모르게 흘러내렸다. 그에게 말하였다.
“오대산 배향은 이룰 수가 없구나. 너는 나의 의발을 가지고 오대산 배향을 마치거라. 너는 아직 어리니 장성한 후 다시 나머지 세 산의 배향을 마치거라.”
이 어린 제자는 학교에 다닌 적이 없고, 산골에서 자라 하루 배불리 먹으면 다 되었다. 무슨 좋고 나쁜 것에 대한 일체를 관여하지 않았다. 그가 나를 쳐다보기에 이어서 말하였다.
“나는 출가 이후로 금전계(신도들에게 일체의 돈을 받지 않는 계)를 지키느라 모아둔 돈이 아무 것도 없으며, 단지 삼의(三衣)와 하나의 바루가 있을 뿐이니, 너는 잘 거두거라. 내 몸은 처리해 줄 사람이 있을 것이다.”
부탁을 마친 후 연필과 종이를 꺼내어 먼 곳에 계신 부모님께 편지를 썼다. 출가할 때를 회상하니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아파서 견디기 어려웠다. 본래 출가하여 불교를 위하여 무엇을 좀 해보려고 했는데, 오늘 이런 모습이 될 줄 누가 생각이나 했으리오! 눈물이 흘려 내렸다.
어떻게 쓸까? 거짓말로 출국했다 하고 어찌 어찌 하다고 쓸까? 안 돼! 마음이 괴롭더라도 사실대로 말해야 돼. 나는 정신을 안정시키고 옷자락으로 눈물을 닦으며 편지를 썼다.
존경하는 부모님!
요 몇 년 동안 이 아들은 집을 떠난 뒤로 소식을 전하지 못했습니다. 잘 계신지요? 불효자 장녕은 출가 이래 줄곧 바깥에서 유랑하면서 부모님을 많이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 좋은 소식이 없어 두 분을 대할 면목이 없습니다.
저는 본래 출가하면 성취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오대산 배향 시 몸을 상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변변치 못한 아들은 (이 상처에) 맞설 힘이 없으며 말을 듣지 않는 이 몸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 아들을 용서하십시오. 장녕은 또 한번 말 없이 영원히 떠납니다.
아버지, 어머니! 저는 살아서 제가 좋아하는 불법을 위하여 일체를 행하고 진정한 자아를 깨달아 두 분의 양육의 은혜에 보답코자 하는 생각을 많이 하였습니다. 저는 다시 인간 세상에 와서 저의 서원을 완성하여 당신들께 반드시 보답할 것을 자신합니다.
저는 두 분이 더욱 노후의 시간을 아끼기를 바랍니다. 두 분은 불법에 대한 신심이 깊으니 아들의 죽음 때문에 그것을 잃지 않으시리라 믿습니다. 저는 두 분이 반드시 견딜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몸뚱이는 어떤 사람에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도심(道心)이 있는 사람에게는 매우 보배롭고 귀한 것입니다. 두 분이 만약 매일 300배의 절을 한다면 반드시 부처님의 가피를 입을 것이며 묘한 낙이 그 가운데에 있을 것입니다.
아들인 저는 두 분이 더욱 좋게 자기의 몸을 돌보아 전심으로 불법을 배우고 부처님께 예불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불효자 장녕(長寧) .
● 오대산에서 이별하면서
나는 편지를 다 쓴 후 신분증을 가사 안에 넣고 삼의와 바루를 수습하고는 수신묘에 앉았다.
“수신이여, 잠시 당신의 집을 빌려 휴가를 청합니다.”
다리를 포개고 수인(手印)을 맺으니 통증을 참을 만하였다.
구름 따라 물 따라 행각하는 승려 묘림
맨발로 네 산을 예배코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몸이 먼저 죽으니
지금부터 즐거운 사바세계를 생각하지 않으리.
일체 모든 것을 놓아버리자. 욕망, 비정, 고통 등 모두 놓아버리자. 잠시 후 지각을 잃었다. 몽롱한 가운데 한 여신(女神)의 기뻐하지 않는 모습이 보였다. 내가 보니 수신(樹神)이었다. 그녀가 말하였다.
“훌륭한 묘림 스님이여. 즐거운 사바세계를 생각하지 않으면 당신의 서원은 어디로 갑니까! 원력이 업력보다 크지 않습니까?”
그 말에 나는 곧 게(偈)를 고쳤다.
구름 따라 물 따라 행각하는 승려 묘림
염불하며 맨발로 네 산을 참배코자 하였으나
업도 크고 원도 크니 몸은 죽지 않을 것이니
지금부터 즐거운 사바세계를 잊지 않으리라.
말을 마치고 눈을 뜨니 먼 곳의 불빛이 보였다. 정신을 차리자 다리가 마비되었다가 통증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나는 정말로 기뻤다. 다시 한번 죽음에서 생명을 건져 올린 것이다.
● 문수보살이 수레 끄는 것을 도와주다
오대산 아래 도착하니 날이 어두워지려고 하였다. 멀리서 기이한 향기가 날아오니 성스러운 곳에 도착한 것을 알았다. 조금 후 두 분의 비구니스님이 라면 몇 봉지를 가져왔다. 하늘에서 비가 떨어지기 시작하여 우리들은 교량 옆에 앉아 비옷을 머리에 덮어썼다.
식사를 준비하는데 비옷을 높이 들어올리며 뛰어오는 사람을 보았다. “비가 많이 옵니다.”라는 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비가 정말로 많이 왔다. 내가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무엇을 하는 사람입니까?”
밥을 빌어먹는 사람이라는 그의 말을 듣고 내가 말했다.
“좋아요. 나는 걸식하는 사람이고, 당신은 밥을 빌어먹는 사람이니 우리는 친척이군요. 밥은 드셨습니까?”
그는 아직 먹지 않았다고 하였다. 나는 “마침 잘 되었군요. 나에게 라면이 있습니다.”라고 말하였다.
우리는 바루에 라면을 넣고 반찬을 섞어서 함께 먹기 시작하였다. 밥을 다 먹자 비도 그쳤다. 도로변에 앉아서 그의 이름을 물어보았다.
그가 말했다. “나는 뇌림(祺林 : 숲을 주무른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나는 묘림(墓林 : 묘지나 숲 속에서 지낸다는 뜻)이라 하는데, 당신은 뇌림이라 하니 우리는 ‘림’자 돌림이군요.
그는 나에게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냐고 물었다. 내가 말했다.
“우리는 부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절하면서 문수보살께 참배하러 왔습니다.”
그에게 부처님을 믿느냐고 묻자, “믿지 않아요. 하지만 우리 집에는 부처님을 믿는 사람들이 매우 많습니다.”라고 말했다.
내가 “그런데 당신은 어째서 부처님을 믿지 않습니까?”라고 묻자,
그는 “나는 내 자신을 믿지 부처를 믿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하며, 내일 비탈길을 올라갈 때 수레는 어떻게 할 거냐고 묻기에 천천히 끌고 갈 거라고 하였다. 그는 “내가 당신이 수레 끄는 것을 도와주겠습니다.”라고 말하였고, 나는 승낙하였다.
그 날 저녁 우리는 함께 길가에서 휴식을 취하였다. 다음날 아침 4시경 날이 희미하게 밝아오자 나는 절을 하기 시작했고 ‘뇌림’이라는 사람은 수레를 끌었다. 오대산 비탈에 들어서니 길은 가파르고 두 개의 고개를 넘자 아침 7시가 되었다. 나는 바루에 오이와 라면을 섞어 셋이서 같이 먹었다. 그의 슬리퍼가 발바닥이 드러난 것을 보고 내 장화를 그에게 주었다. 그는 매우 기쁘게 신고는 슬리퍼를 길가에 버렸다. 도로가 급하게 구부러지는 지점에 차량들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둥근 거울이 설치되어 있었다. 길은 매우 가파랐다. 어린 제자는 이렇게 큰 거울을 보고 매우 신기해하며 거울을 비춰 보았다. 뇌림은 본래 말을 많이 하지 않았지만 어린 제자가 거울을 비춰 보는 것을 보고 말했다.
“비춰 보긴 뭘 비춰 봐. 요사스런 거울을 비춰!”
나는 고개를 들면서 마음이 밝아졌다. 관(觀)이 있고 비춤(照)이 있으면 아상(我相)이 있고, 관이 없고 비춤이 없으면 열반(涅槃)이다. ‘요사스런 거울을 비춰 봐.’라는 것은 아주 좋은 한마디였다.
이 뇌림이라는 사람 심상치 않네
아마 문수가 와서 돕는 것인가
먹고 자고 수레를 끌며 함께 길을 가면서
거울을 비춰 요사스러운 거울을 깨니 마음도 없구나.
이미 정오가 되어 우리들은 같이 밥을 먹었다. 마지막 긴 오르막을 절하며 오르니 길이 평탄하였다. 그가 말했다.
“나는 먼저 가야겠소. 오대산이 보이는군요.”
나는 수박이 있으니 같이 먹자고 하였다. 수박을 다 먹고 나서 그는 내 몸 뒤로 가려 하였다. 나는 급히 몸을 일으켜 그를 배웅코자 하였다. 그러나 고개를 돌린 순간 곧고 곧은 대로에 그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바로 묘길상(妙吉祥 : 즉 문수보살)이었다.]
● 대회진(台懷鎭)에서 크게 토하다
대회진이라는 마을에 들어와서 첫날 저녁은 관음동(觀音洞) 아래 맞은 편의 평평한 곳에서 쉬었다. 오대산의 저녁은 매우 쌀쌀하였다. 아침에 남산사를 참배하고 저녁에는 현통사 앞 대백탑(大白塔) 뒤편의 공터에서 휴식을 취하였다. 우리는 대백탑을 참배한 후 탑 아래에서 쉬었다.
밤 열 시경 대백탑 상공에서 사자가 사자후를 하며 머리를 남쪽으로 향하는 것을 보았다. 이때 나는 비록 오대산에 도착했을지라도 뒤편의 길에서 사자후(獅子吼)를 해서 마(魔)의 무리를 무너뜨려야 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잠시 후 사자는 흰구름으로 변하여 공중으로 사라졌다.
아침에는 현통사(顯通寺)를 참배하며 이 절에서 오전 내내 절하였으며, 정오에는 선당(禪堂)에서 우리를 재(齋)에 초대하였다.
오후에는 탑원사(塔院寺)를 참배하였는데, 우리에게 돈을 주는 사람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으나 나는 금전계를 지키므로 돈을 받지 않았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몰래 우리 가방 속에 넣어주곤 하였는데 나는 집어서 공중에 뿌렸다. 하늘 가득 돈이 휘날렸다. 모두들 이런 모습을 보고 다 울었다.
저녁에는 현통사 종루 아래에서 휴식을 취하였다. 앉아 있는데 대략 12시경 온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사자가 부르짖어 마군(魔軍)이 나타난 것이라 생각하였다. 급히 결인(結印)을 하자 잠시 후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다시 조금 있으니 몸이 마비되고 눈이 붉어지며 아파오기 시작하였다. 어떻게 할까? 일어서서 종루 아래를 왔다 갔다 하였다. 몸을 움직여보아도 마음대로 잘 안 되었다. 눈은 여전히 아픈데, 갑자기 두촌(杜村)에서 겪은 일이 생각났다.
그 날 오후 차를 몰고 가는 한 분의 거사가 우리에게 두 개의 비닐 병에 담긴 물을 놓고 갔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그 물병을 가졌다. 잠시 후 거지처럼 초라한 행색의 사람을 만나 물병을 주려고 하니 받지 않았다. 내가 그에게 “가져가세요.” 하며 권하자 그제서야 받았다. 나는 그가 신발 수선 기계를 안고 있는 것을 보고 제자의 신발을 수선해 달라고 청하였다. 그는 신발을 수선하기 시작하였고 우리들은 건너편에 앉았다.
그가 나에게 무엇을 하는 사람이냐고 물었다. 나는 절하면서 오대산에 참배하러 간다고 하였다. 그는 걸어가는 것과 다르냐, 절하면서 가면 얼마나 힘드냐고 물었다. 나는 서원을 발하였기 때문에 꼭 절하면서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당신같이 이렇게 의지가 굳세고 큰 사람은 만나기 어려워요. 만약 길에서 몸이 마비되고 눈이 아프고 할 경우에는 풀이나 막대기로 목구멍을 건드려 먹은 것을 토해내고, 물을 마시고 다시 토하면, 병이 빨리 나을 것입니다.”라고 말해주었다.
그 때는 주의 깊게 듣지 않았는데 오늘 그 사람이 일러준 방법을 써보게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가 어떻게 이렇게 정확하게 예견할 수 있었을까, 혹시 우연의 일치인가! 아, 이것은 아마 또 한번의 문수보살의 자비의 시현이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종루 밑에서 보니 모든 곳이 성지(聖地)인데 어디에 대고 토해야 할지 몰라 한참동안 토할 곳을 찾았다. 멀지 않은 곳에 주민들의 집이 있었다. ‘저 집의 지붕 위에 토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나는 손가락을 목구멍에 집어넣어 먹은 것을 토해냈다. 세 병의 물을 마시고 다시 토하고, 토한 후 나는 정좌하였다. 조금 지나니 좋아지기 시작하였다. 문수보살은 정말로 자비로웠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계속 절하고 저녁에 다시 종루 밑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밤 12시가 되자 몸이 마비되고 눈이 아팠다. 나는 어제와 같이 하였다. 먹은 것을 토한 후 물을 마시고 다시 토하니 또 좋아졌다. 정말 효과가 있었다. 그렇게 매일 장을 씻어냈다.
이 대회진이라는 곳은 정말로 넓었다. 나흘을 절했어도 반밖에 가지 못하였다. 나는 몸도 안 좋고 또 절하는 데도 없어 먼저 대라정(黛螺頂)의 오방(五方) 문수를 참배하기로 결정하였다.
아침에 시작하여 선재동(善財洞)에 도착했을 때 길가 계단에 앉아 쉬고 있는데, 위에서 한 분의 스님이 내려왔다. 나처럼 낡아 떨어진 옷을 입고 있었다. 그 스님이 내 옆에 앉았다. 아래에서 한 분의 여신도가 올라오면서 나와 어린 제자에게 각각 백 원씩 주었다. 그는 멍하니 ‘왜 나는 주지 않지.’라고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는 받지 않았다. 그가 나를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기에, 내가 말했다.
“발원한 보살은 중생의 사업을 해야 하고, 중생도 보살의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말을 마치고 절하며 위로 올라가 오방문수전에 도착하였다. 나는 다섯 개의 향을 피워 보정(寶鼎) 안에 놓고 절하면서 생각을 일으켰다.
‘큰 지혜의 문수보살님!
제자 묘림은 당신의 자비와 가호에 감사합니다. 당신의 위로로 편안해진 제자에게 하나의 청이 있습니다. 즉 오방의 문수를 세상에 내려보내 네 성지의 산에 절하며 향을 피우게 하여 말법시대 길을 잃은 고난의 중생을 위로하여 편안케 해주소서!’
이때 나는 오체투지하면서 눈물을 억제할 수 없었다. “3년 동안 온갖 풍상을 겪으며 사람이 먹을 수 없는 것을 먹고, 더러운 개울의 물을 마셔가며, 여러 차례 참기 어려운 매를 맞고 욕을 얻어먹었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나를 보고 큰소리로 울기 시작하였다. 그 때 주위에 사람이 너무 많았다. 나는 스스로 억제하고 절을 하며 대라정을 내려갔다. 벽산사(碧山寺)를 참배하기 시작할 때 많은 스님들이 내가 대회진에서 참배한다는 것을 알고 맞이하러 나왔다. 어떤 스님은 울었고, 천왕전(天王殿)의 한 노스님은 대성통곡하면서 말하였다.
“보살이 되기가 정말로 어렵구나!”
절을 마치자 묘강(妙江) 대화상이 나를 맞이하여 묵게 해주었다. 저녁에 또 병이 발작하여 물을 가지고 화장실에 가서 토한 후 돌아와 앉으니 날이 밝았다. 객실스님이 말하였다. “우리 선당(禪堂)에 계신 광심(廣深) 스님이 공부가 매우 많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만난 적이 있으나 말을 나눈 적은 없었다. 그는 내 이런 모습과 표정을 보고 매우 감복하는 것 같았다. 이 광심 스님은 이후 오대산에서 내려와 배향하는 다섯 분의 스님 중 한 분이 되었다. 동대(東台)를 참배하기 시작하였을 때 이틀을 탁발하지 못하여 전에 먹어본 적이 있는 야생초를 먹었다. 또 야생초를 찾아 먹으려고 하는데 두 분의 비구니가 밥을 가지고 왔다. 동대를 참배한 후 토하는 병도 나았다.
● 북대(北台)의 정상에서 차가운 비바람을 만나다
우리가 화북(華北)의 용마루에 도착했을 때는 날이 어두워지려 하였다. 석비루 아래 앉을 곳을 찾았다. 하늘에서 가늘게 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우리들은 비덮개를 머리에 둘러썼다. 이어서 바람이 부는 게 심상치 않았다. 북대의 바람은 매우 세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날은 어두워지고 비는 더욱 더 많이 내리기 시작하고 바람은 더욱 더 세차게 불어 일종의 공포감이 엄습해 왔다.
조금 있으니 광풍이 불기 시작하고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비덮개를 썼는데, 마치 머리 위에서 물을 쏟아 붓는 것 같았다. 손으로 비덮개의 한 모서리를 잡고 다른 한 모서리는 발로 밟아 지탱코자 하였으나 비덮개는 깃발 마냥 공중에 휘날렸다. 사람도 지닌 물건들도 모두 물에 젖어 그 차가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우박으로 변한 비는 마치 돌멩이로 때리는 것 같았다. 나는 오른손으로 덮개를 잡고 왼손으로는 어린 제자를 안았다. 한 시간 정도 지나자 손에 감각이 없어지는 것을 느꼈다. 힘을 내 흔들어 보았으나 움직이지 않았다. 또 다리를 오므려 보니 움직이지 않아 비로소 얼어서 손발이 곱은 것을 알았다.
나는 일찍이 오대산에서는 사람이 얼어죽을 수 있다는 것을 들었는데 지금 그것이 거짓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온힘을 다해 어린 제자를 보호하면서 비덮개를 그의 몸에 감쌌다. 나는 아무 것도 걸친 것 없이 쏟아지는 비를 그대로 머리에 맞으니 호흡이 곤란할 지경이었다. 게다가 손을 펴니 다섯 손가락이 움직여지지 않아 공포감이 또 엄습해 왔다. ‘보아하니 내 목숨을 북대에 내려놓아야 하겠구나….’ 이때 갑자기 문수보살께 하소연하고 싶었다. ‘3분이 지나도 비가 멈추지 않으면 저는 오대산을 떠나갈 것입니다. 오대산 참배가 이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겠죠?’ 그리고 탄식하기를,
청량성지(淸凉聖地)에 비가 세차게 내리니
세상사에 마(魔)가 있고 없음을 알겠네.
화북옥 마루에서 몸이 위험을 만나니
못 다한 뜻은 뒤에 사은(四恩)에 보답해야겠네.
내가 게송을 마치자 비가 갑자기 멎었다. 하늘을 보니 별이 가득하였으나 바람은 그치지 않았다. 나는 어린 제자에게 비덮개 속에서 나오라고 소리쳤다. 우리가 일어서니 바지에서 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한풍이 불자 곧 얼음덩어리로 변해버렸다.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오대산에는 평평한 산이 많으니 바람을 피할 곳이 없다.
‘대회진으로 돌아갈까. 안 돼. 길이 없어.’ 위를 보니 불빛이 보였다. 한 줄기 기쁨이 일어났다. ‘의발만 챙기자. 아무 것도 필요없어. 목숨을 보존하는 것이 중요해.’ 나는 어린 제자를 끌고 캄캄한 밤중에 짝짝 소리가 울리는 살얼음을 밟으며 위로 뛰어갔다.
위에 도착하여 급히 문을 두드리니 대답하는 사람이 있었다. 내가 말했다. “스님, 우리들은 북대에 참배하는 사람입니다. 큰비가 오고 하여 매우 춥습니다. 하루 밤만 머물고자 합니다.”
안에 있는 사람이 남문으로 가라고 하기에 남문으로 가서 한동안 사람을 불렀으나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한참동안 문을 두드렸으나 여전히 응답이 없었다. 이 문은 바람이 부는 입구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마치 얼음사람처럼 바람 속에 서 있었다.
내가 말했다. “이 세상에 우리보다 더 가련한 사람이 있을까? 정말 고통스럽구나. 이것이 바로 인과인가 보다!”
우리는 할 수 없이 그 곳을 떠나 바람이 덜 부는 동쪽 전각의 담으로 왔다. 담 모서리 안쪽에 어린 제자를 앉도록 하고 나는 밖에서 바람을 막았다. 잠시 후 제자가 졸기에 그를 자꾸 불러 잠들지 못하도록 하였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고 날이 밝아져 일어났다. 기념 합장주가 떨어졌으나 꽁꽁 언 손으로 주우려고 하니 주울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줍지 않았다. 산비탈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우리의 물건들은 바람에 날려 산비탈 밑에 흩어져 있어 주우러 갔다가 돌아왔다. 계속하여 배향하며 수레를 맨 끈을 어린 제자 허리에 묶어 제자는 끌고 나는 절하면서 밀었다. 이렇게 얼마를 지나고 나자 땀이 났다. 비로소 한숨을 돌렸다. 정말로 위험했어!
● 붉은 얼굴의 오리도 부처님께 절하다
연못에 이르러 목욕할 때 멀리 한 마리의 오리가 나를 향하여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 곁으로 와서 세 바퀴를 도는 게 아닌가. 이 오리를 보니 한 번 생각이 미혹되어 오리가 된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나는 진실하게 마음으로 말하였다.
‘같이 수행하는 이여! 습기(習氣)를 제거하지 못하면 속세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네. 너는 말하는 것은 좋으나 오리의 습기가 두터워 오리가 되려고 하면, 부처님도 너를 구제할 방법이 없다.’
내가 한번 절하니 오리도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대웅전에 와서 내가 삼배를 하니 오리도 부처님 주위를 세 번 돌았다. 내가 절하고 나올 때 그도 나를 따라 절하며 나와서 나를 제법 멀리까지 배웅하였다. 내가 앉으니 그가 내 옆에 오기에 그에게 말하였다.
미혹하고 깨달음은 단지 일념간에 있으며
습기가 현전하면 평온하지 못하네.
금생에 비록 오리가 되었지만
내생에는 남자로 태어나게.
“돌아가게!” 나는 다시 절하며 나아갔다.
● 대동(大同)에서 온 신도들 소리내어 울다
서대(西台)로 가는 길에서 절하고 있는데 뒤에서 20여 명의 사람들이 따라왔다.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으니 대동시에서 참배하러 온 신도들이란다. 그들은 내가 절하는 모습을 보고 모두 울기 시작하였다. 어떤 여신도는 매우 큰 소리로 울면서 말하였다.
“내가 오늘 여기 온 것이 헛되지 않았습니다. 진짜 부처를 보게 되었으니!”
어떤 사람은 정말로 보살이 세상에 머무신다고 말하였다. 앞다투어 돈을 주는데 받지 않았다. 그러자 먹을 것을 주었다. 그들이 먹지 않은 음식을 다 나에게 주었다. 나도 울었다. 기뻐서 울었다. 예상외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살심을 발하여 밥 빌어먹는 나에게 보시하고, 자비롭게 대하고, 안타까워하니 그 때마다 매우 큰 부자가 된 것처럼 느껴졌다. 어찌 이것이야말로 보살의 대비(大悲) 사업이 아니란 말인가? 보아하니 나 같은 이런 밥을 비는 거지노릇이 옳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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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장소멸게(業障消滅偈)/묘법스님
선과 악은 때가 되면 과보가 있으며
삼세인과는 하나도 빠뜨리지 않네.
전생의 원수가 금생에 모이고
현세에 나타나는 고액(苦厄)은 전세에 지은 것이네.
원한을 서로 갚으면 어느 때 끝나며
한생각 깨달으면 업이 모두 소멸하네.
원수를 덕으로 갚는 것이 불교이며
극락에 왕생하면 도업(道業)을 마치리.
악연이 재생하고 정연(情緣)이 재생한 이야기는 우리들 주변에 많이 있다.
우리들 자신을 포함하여 처자, 부모형제들이 언제 은원(恩怨)이
서로 모이지 않은 것이 있었는가? 동료와 이웃도 은원이 서로 모인 것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인생에는 8가지의 고통이 있다고 하였다.
생·노·병·사·구해도 얻지 못하는 것,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것,
원수와 서로 만나는 것, 오온(五蘊)이 치성하는 고(苦) 등이다.
사람마다 다 이런 여덟 가지 고통을 가지고 있으며,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당신이 어디에 있든지 막론하고 우리의 번뇌는 끝이 없다.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시기를 “섭심(攝心)을 계(戒)로 삼고,
계로 인하여 정(定)이 생기며, 정으로 인하여 혜(慧)가 생긴다.
이것을 세 가지 무루학(無漏學)이라 한다.”고 하셨다.
단지 마음을 한곳에 모아 산란치 않게 하고, 계를 받아 지키는
섭심수계(攝心受戒)하는 것이야말로 번뇌를 제거하는 최상의 양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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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에 있는 것은 우리 집에 다 있어요!
어느 날 오후 오십여 세의 공장기술자처럼 보이는 분이 노거사와 함께 묘법 노스님을 뵈러 왔다. 그는 마치 서로 안 지 오래된 것같이 문을 들어서면서 하하 웃으며 두 손을 마주잡고 인사하며, 스님께 삼배를 하고 나서 앉으라는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자리에 앉는 모습을 보니 호쾌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스님께서 그에게 묻기를 “허리가 아파서 왔군요?”
그는 약간 놀라워하며 “스님께서는 정말 신통하십니다. 제가 말씀드리기 전에 아시니.”라고 말하면서 몸을 일으켜 등 뒤의 옷을 걷어 올려 스님에게 보이면서 “스님, 제 허리를 보십시오.”라고 말했다.
그는 기계로 특수제작된 약 15센티 넓이의 허리보호대를 차고 있었다. 그는 앉으면서 “제가 이 물건을 차고 다닌 것도 벌써 10년이 되었습니다. 병원에서는 허리의 근육이 손상되어 약을 먹고 주사를 맞아도 아무런 효과가 없으니 단지 이 보호대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허리를 바로 펴지도 못합니다. 봄, 겨울에는 다소 나아지나 여름이 되면 그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모두 제가 젊었을 때 일을 너무 무리하게 해서 생긴 것입니다. 저분의 말을 들으니 스님은 살아 계신 보살이라고 들었습니다. 제발 저를 구해주십시오. 스님께서 제 허리를 고쳐주신다면 저는 매일 스님께 향을 피우고 절을 100배씩 하겠습니다.”라는 말을 마치고 또 스님께 엎드렸다.
묘법 노스님은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나는 보살이 아니며 병을 치료할 줄도 모릅니다. 당신의 병이 낫고 낫지 않고는 당신 자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왜냐하면 방울을 건 사람이 방울을 떼어내야 한다고 하듯이 자기가 저지른 일에 대해서는 자기가 해결해야 합니다. 먼저 당신에게 묻겠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술, 담배, 도둑질을 끊고 육식마저 금하라고 한다면 할 수 있겠습니까?”
“제 병이 나을 수만 있다면 무엇을 금하라고 하든 모두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훔친 일이 없는데 도둑질이라뇨!”
“허리가 아픈 느낌 외에 무거운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맞아요. 마치 허리를 무거운 물건이 누르는 것 같습니다.”
“혹시 공장의 쇠, 철사, 나사, 못 등을 집으로 가져간 적이 없습니까? 모두 조립하는 것이군요.”
그는 갑자기 멍해졌다. 잠시 후 머리를 끄떡이면서 말하기를 “그런 일이 있습니다. 저는 공장의 기계조립공입니다. 물가에 있는 누대에 제일 먼저 달빛이 비친다는 말이 있듯이 요즘 국가의 물건에 손을 대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것을 훔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우리 공장장도 집으로 가져간 물건이 적지 않습니다.”
“국가의 재산을 집으로 가져가는 것이 도둑질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당신은 정당하게 가져간 것입니까? 당신은 아무런 보수 없이 공장 밖에 가서 일합니까?”
노스님의 준엄한 질문에 그 기술자는 놀라 눈을 크게 뜨고 스님을 바라보면서 할 말을 잊은 듯했다.
“그뿐만 아니라 펜치, 나사칼, 스패너 등등… 당신은 또 공장의 백철을 사용하여 자기 집의 연기통, 삼태기를 만들었으며, 와이어로 화로통, 화로용 젓가락, 갈고리, 그 밖에….”
그는 갑자기 스님의 말을 끊으면서 “스님, 그만 하십시오. 공장에 있는 것은 모두 우리 집에 있습니다. 스님은 어떻게 그렇게 자세히 아십니까?”
“바로 그것들이 당신을 눌러 허리를 바로 세우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기술자를 보니 방금 들어올 때의 호방함은 어느새 없어졌다. 나는 갑자기 우리 집 서재가 마치 공안국의 취조실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마치 바람 빠진 공과 같이 풀이 죽어 있었다. 그는 작은 소리로 말하였다.
“제가 가져간 물건은 결단코 다 저희 집에서 사용한 것은 아닙니다. 또한 그걸 팔아 돈으로 바꾼 것도 아닙니다. 거의 다 친척, 친구, 이웃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임금이 많지 않아 그런 것을 가져가지 않으면 괜히 손해를 보는 기분이 듭니다.
저는 펜치공으로서 솜씨가 약간 있다 보니 창고 보관원과 내통하여 서로 돕고 하였는데, 이것은 공장 안에서 서로 이해하고 말할 필요가 없는 일입니다. 근본적으로 이것이 도둑질이라는 것을 미처 생각지 못했습니다. 오늘 스님의 꾸지람을 들으니 마치 청천벽력과도 같아 매우 놀랐습니다.
정말로 하늘은 눈이 있는가 봅니다. 내가 가져간 물건을 스님은 어떻게 모두 다 알고 계십니까? 그 물건들이 또 어찌 모두 제 허리를 누르는 겁니까? 정말로 인과응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최근 더욱 병이 중해지는 것을 느꼈는데 아마도 공장에서 가져가는 물건이 더욱 많아져서 그렇게 된 게 아닌가 생각되는군요. 오늘 저는 ‘하늘을 속일 수 없다’는 말이 진실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지금 스님 앞에서 맹세합니다. 오늘부터 담배 피우고, 술 마시며, 고기 먹는 것을 끊겠습니다. 또한 나라의 조그만 물건도 탐내지 않겠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제가 한 말에 책임을 져 왔습니다. 내일부터 불상을 모시겠습니다. 스님, 무슨 불서(佛書)를 사서 보는 것이 좋겠습니까? 왜 좀더 일찍 불교를 믿지 않았는지 후회가 됩니다. 그랬으면 나쁜 짓을 그렇게 많이 하지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나는 그분의 뉘우침이 이렇게 빠를 줄 몰랐다. 그분의 참회에 가까운 말을 듣고 내 마음은 법의 기쁨으로 충만했다. 노스님께서도 기뻐하시는 것 같았다.
내가 말했다. “제가 당신에게 불교서적 몇 권을 보내 줄 테니 먼저 보시고, 절에 가서 부탁할 수도 있습니다.”
그는 감사하다고 말한 후 다시 물었다.
“제가 이전에 공장에서 가져온 물건은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돌려줄 수 없다면 돈으로 환산하여 갚으면 되겠습니까?”
스님께서 말하였다.
“당신이 그렇게 하려면 힘이 들 겁니다. 일단 마음속으로 참회하면 죄의 원인도 소멸됩니다. 공장에 빚을 갚는 것에 대해서는 공장을 위하여 공헌할 방법을 생각하여 보상할 수도 있습니다. 동시에 당신 주변의 친척, 친구들에게 직접 겪은 경험담을 이야기하여 그들로 하여금 다시는 국가의 재산을 탐하지 않게 하십시오. 과오를 알면 반드시 고치고 행하면 되는 것이니, 공을 세워 속죄할 수 있습니다.”
떠날 때 그는 불서를 두 손으로 받들면서 정중하게 노스님에게 말하기를 “스님, 두고 보십시오. 제가 변하지 않으면 스님에게 죄를 짓는 것입니다.”
보름 후 그가 다시 왔다. 문을 들어서자마자 우리 집 불상 앞에 가서 예배한 후 그는 웃옷을 올려 허리를 보여 주었다. 허리 보호대는 보이지 않았다. 내가 묻기도 전에 그가 말했다.
“지난번에 집에 돌아갔을 때부터 병세가 많이 좋아진 걸 느꼈습니다. 제가 스님에게 약속한 일은 모두 그대로 행하고 있습니다. 우선 술 장식대를 개조하여 불상 모시는 대와 경서 장식장으로 만들어 관음보살상을 모셔 왔습니다.
지금까지 날마다 경서를 보았습니다. 불경 속의 법문들이 매우 좋다는 것을 알았지요. 저는 지금 마음이 너그럽고 기가 순조로우며 병도 좋아졌습니다. 요즘 우리 집은 하루하루가 즐겁고 행복합니다. 정말로 묘법 노스님께 감사 드립니다.”
이 말을 듣고 정말 잘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분이야말로 정말로 ‘도살장 칼을 놓자 선 자리에서 성불한 것’이라는 말의 실제사례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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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친을 굶겨 죽인 불효자들의 말로
아들딸이 불효하니 손자들도 무정하고
잔인하게 노모를 굶겨 죽이니
인간의 정은 어디에 있는가
하늘은 은혜를 배반한 자 용서하지 않으리.
나의 이웃이 그들 고향에서 발생한 두 가지 일을 나에게 이야기 하면서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인과응보가 아닌가?’라고 물었다.
길림성 어느 현(縣) 시골마을에 일가 8명이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인간비극을 연출하였다. 이것은 이웃마을 사람들도 모두 알고 있는 사건이다. 비록 그들이 무엇이 불법(佛法)인지 이해하지 못하지만 모두 이것을 일러 인과응보라고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이 집안의 부모는 수십 년 세월 동안 황토밭에서 고생스럽게 일하며 3명의 아들과 3명의 딸 모두 6명의 자녀를 키웠다. 아울러 아들들은 각자 아내를 맞이하여 집을 짓고 딸들은 예물을 들고 시집을 갔다. 이것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흔히 보는 일이기도 하다. 생활의 압박 속에서 허리가 굽은 늙은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막내딸을 시집보낸 후 자기는 피로가 누적되어 병에 걸려 영원히 일어나지 못하였다. 마을사람들은 모두 탄식하며 그의 운명이 고생스러웠다고 말하였으나 그의 아내는 오히려 그보다도 더 못하였다.
그 집의 늙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한 달도 채 못 되어 어머니는 뇌일혈로 인하여 침상에 눕게 된 후 반신불수의 병을 얻게 되었다. 비록 자기는 왼손으로 밥을 먹기도 하고 화장실에도 갈 수 있지만 반드시 돌보는 사람이 있어 부축해 주어야 했다.
이들 육남매는 그녀의 자식도 아닌 셈이었다. 모두 열두 명의 자녀들(아들, 며느리, 딸, 사위 등)은 일평생 고생한 모친을 어떻게 대우했는가?
처음에는 그들 자녀들은 두 사람이 한 조가 되어 돌아가면서 어머니를 돌보아 그런 대로 지낼 만하였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자 노모를 모시고 있던 셋째아들과 며느리는 점점 귀찮아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많이 와서 번거로워 싫다는 둥 이러쿵저러쿵 불평하다가 나중에는 빗대어 욕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동서와 큰시누, 작은시누들과 싸우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아예 사람들이 와서 간호도 못하게 하고 노모에게 밥도 보내지 않았다. 처음에는 그들이 밥 먹을 때 노모에게 약간의 먹을 것과 마실 것을 보냈으나 나중에는 시어머니가 식사 후 화장실에 자주 가는 것을 발견하고 셋째며느리는 악심을 품고 밥과 물을 줄이고 어떤 때에는 그것조차도 보내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다른 자녀들과 셋째며느리는 불화하여 열흘, 보름이 지나도 한번도 돌보러 오지 않게 되었으며, 한번은 셋째 딸이 와서 노모를 보고는 노모가 기력이 매우 약해졌음을 발견하고 모친이 하는 말을 자세히 듣게 되었다.
“배고파, … 배고파, …”
그래서 딸은 오빠 집에 들어가 먹을 것을 찾아 모친에게 주려고 하자 올케가 크게 화를 내면서 노모 방에 뛰어 들어가 고함을 치는 것이었다.
“방금 밥 두 그릇을 먹고 나서 어떻게 또 먹을 것을 달라고 합니까? 만약 너무 많이 먹어서 죽으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당신 딸이 우리보고 불효했다고 할 게 아닙니까!”
결국에는 셋째딸이 우겨서 모친에게 몇 입의 밥을 먹여드렸다. 밥을 먹일 때 딸이 올케언니가 방에 없는 틈을 타 어머니의 배를 만져보니 배가 홀쭉한 것을 보고는 올케언니의 말이 거짓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다음날 그 딸은 어머니에게 여섯 개의 계란을 가지고 갔는데, 노모는 그야말로 게 눈 감추듯 한 입에 다 먹어버렸다.
잠시 후 다소 힘이 나는 듯 그녀는 셋째딸에게 작은 소리로 말하기를 “너희들이 안 오면 쟤들은 물과 밥조차도 주지 않으니 나를 굶겨 죽일 작정인 모양이야.”라고 하였다. 또 며칠 지나서 둘째딸이 큰 새우를 두 마리 가지고 와서 노모에게 먹이는데 뒤에 들어온 셋째아들이 보고는 새우를 담은 그릇을 땅에 던졌다. 발로 새우를 밟아 더럽게 하고는 분노하여 둘째 여동생을 욕하며 노모에게 새우를 먹이지 못하게 하였다. 그의 말인즉, “뇌일혈 환자에게는 몸을 보하는 음식을 먹이면 안 돼. 몸을 보하여 피가 많아지면 다시 뇌일혈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죽으면 네가 책임질 거냐.”고 하면서 욕을 해댔다. 아울러 만약 너희들 중 누가 노모를 돌보려면 너희 집으로 보낼 테니 간섭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들의 집안 사정은 일찍부터 마을에 전해져 소문이 분분하였다. 많은 사람들은 큰아들에게 전하고 다른 자녀에게도 전하여 빨리 노모를 모시고 가서 돌보라고 권하였으나 끝내 한 사람의 자녀도 호응하는 이가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셋째아들 집에서 노모를 부르며 울며 고함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한평생 고생만 하신 노모는 병마와 기갈 나아가 그것보다도 더 잔혹한 천하의 불효자들에 의하여 끝내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매섭게 추운 한풍이 휙휙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게 마치 하늘을 진동시키고 땅을 놀라게 하는 슬픔이 상복(喪服)을 걸친 한 무리의 불효자식, 손자들을 따라 묘지로 향하고 있었다. 지전을 태우자 노한 한풍에 의하여 공중으로 솟구쳤다.
모친 사망 후 불행은 마치 길이 난 것같이 이 가정에 잇따라 찾아왔다. 한 달 후 큰아들이 뇌혈전으로 입원하게 되었다. 응급조치로 비록 죽음은 면했으나 반신불수가 되었으며 나중에는 몸을 웅크리고 다리를 질질 끌면서 거리에 나타났다.
큰아들이 퇴원한 지 한 달쯤 지났을 때 둘째아들과 큰사위가 전후 며칠 사이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으니, 진단결과 모두 뇌혈전이었다. 20일 후 그 두 사람이 아직 퇴원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둘째딸도 같은 병으로 진(鎭 : 중국의 행정단위)의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둘째딸이 퇴원한 다음 날 셋째며느리에게도 과보가 찾아왔다. 이번에는 뇌혈전이 아니라 위천공(胃穿孔)이었다. 셋째며느리가 아직 주사바늘을 찌른 채 누워있는데 셋째사위가 자전거를 타다가 경운기와 부딪쳐 2미터 정도 날아가 떨어졌다. 병원에 도착하였을 때 숨은 있었으나 온몸이 골절상을 입어 밖으로 양쪽 무릎이 가루가 되어 몇 개월 동안을 서지도 못하였다.
노모의 죽음 후 일 년이 채 안 되는 시간에 자녀들과 그들의 배우자들이 연이어 고향 진의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으며, 각자가 퇴원할 때에는 인민폐 일만 원 이상의 큰 돈을 쓰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농담으로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진의 병원을 돈 많은 사람들이 전세를 내었군. 의사, 간호사들이 지금까지 그런 큰 보너스를 타간 적이 없었는데, 매월 모두 일 백 원 이상을 수령해 갔으니. 이렇게 비싼 입원환자 모두가 한 집안 사람들이라며?”
그러는 동안 소문은 주변마을로 멀리 퍼져 논밭에서, 식당에서, 찻집에서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비록 그 지방에 불교를 믿는 사람은 매우 적을지라도 그 이야기를 입에 담는 사람들마다 모두 “그래도 싸지. 죽일 놈들. 이게 인과응보지!”라고 한마디씩 하였다.
아직 그 집안 이야기는 다 끝나지 않았다. 위에서 말한 반신불수의 큰아들은 어느 날 큰길에서 손발 운동을 할 때 갑자기 다리에 힘이 없어져 막 길을 지나가던 자동차에 머리가 부닥쳐 식물인간이 되어 지금까지 집에 누워있다고 한다.
얼마 후 둘째아들은 간염을 얻어 일 년여 동안을 고생하다가 죽었으며, 그 후 큰며느리도 뇌혈전을 얻어 사망하였다. 그 후 또 무슨 일이 발생하였는지는 알 수가 없단다.
나의 이웃사람 말에 의하면 손자, 손녀, 외손자, 외손녀들도 거의 모두 할머니의 보살핌 속에서 자랐는데, 할머니가 병들어 있을 동안 할머니를 병문안한 손자 손녀가 하나도 없었으니 사람들로 하여금 정말 탄식하게 하였다. 다만 선지식(善知識)이 그들에게 불법을 가르쳐 미래의 운명을 바꾸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렇지 않으면 자연의 이치가 분명하니 그들의 결말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불효자가 고의로 병든 노모를 굶겨 죽인 것은 비록 이웃이 고발하지 않고 관청에서 조사하지 않아 법의 제재를 받지는 않았다. 하지만 하늘의 그물이 비록 성근 것 같지만 악인은 결코 빠뜨리지 않는 법이니 이들 불효 자녀는 한 사람 한 사람 연이어 악보(惡報)를 받게 된 것이다. 이것은 정말로 세상만사와 만물이 모두 법을 설하는 셈이다. 선인(善人)은 선인의 법을, 악인은 악인의 법을, 사람은 사람의 법을, 축생은 축생의 법을 설하고 있다.
이 일을 바로 이해한다면 의식주행 모두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을 실천할 수 있다. 경(經)은 바로 길이다. 어떻게 가든 당신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내가 이런 생활 속에서의 인과보응, 현세에 나타난 실제 이야기를 쓰는 이유는 바로 부모에게 불효하는 역자(逆子)들이 하루 빨리 잘못을 고쳐 착한 사람이 될 것을 경고하기 위해서이다. 그렇지 않으면 악한 과보가 닥쳤을 때 후회해도 늦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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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영혼의 빙의(憑依)와 히스테리
베이징 시 모 중학교 학생 사, 오십여 명이 단체로 어느 산에 놀러갔었다. 산 위에 두 개의 큰 바위가 있었다. 그 바위의 사이가 약 1미터 정도 되는 틈이 있었는데, 그 틈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대략 높이가 10미터 정도 되었다. 비교적 담이 큰 한 여학생이 뛰어 건너는 것을 인솔한 선생님이 발견한 후 사고를 방지하기 위하여 제지하였다. 선생님이 그곳을 떠난 후 장난기 많은 몇 명의 남학생들이 뛰어 건너는 시합을 하게 되었다. A라는 학생이 건너기 전 갑자기 머리를 돌려 그와 가장 친한 동급생 B를 보고 웃으면서 말하기를 “만약 내가 떨어져 죽는다면 너는 우리 집에 소식을 알려라.” 하고 나서 몸을 훌쩍 날렸다.
아마 그때 말하는 데 정신이 분산되었는가 보다. 앞발이 건너편에 떨어지기 전 뒷발이 공중에 있을 때 어떻게 된 건지 모르지만 앞발이 안정되게 떨어지지 않고 힘을 잃어 엉덩이가 틈 사이로 빠져들었다. 동급생들이 그를 보고 놀라서 구하려 할 때 그는 이미 머리를 바위에 부딪쳐 선혈이 낭자하였으며 구제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며칠 후 A군의 장례식이 끝난 후 A군의 가족이 비통한 심정으로 주차장으로 갈 때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 중 B군이 돌연 A군 부친 옆에서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하기를 “아빠, 나에게 담배 한대 줘!”라고 말하는데 놀랍게도 A군의 음성이 아닌가. A군의 부친은 너무 놀라 어찌할 바를 몰랐다. B군이 다시 담배를 요구할 때 현장에 있던 사람들도 휘둥그레졌다.
왜냐하면 B군은 아직 담배를 피울 줄 몰랐으며 A군이 살아있을 때 집에서 몰래 담배를 피웠기 때문이다. B군을 다시 보니 비록 얼굴에 웃음을 띠고 있었으나 두 눈이 멍하니 보기만 해도 겁이 날 정도였다. 그 날 동급생들이 그를 억지로 집에 보내주었다. 왜냐하면 B군은 A군의 집이 자기 집이라고 말하였기 때문이다.
그 후 B군의 부모는 그를 데리고 병원으로 찾아다니면서 의사에게 치료를 구했으나 의사는 이런 증상은 정신상 큰 충격을 받아 발생된 히스테리라고 말하였다. B군은 오히려 매일 학교에 가면서 자기는 병이 없다고 말하였다. 더욱 이상한 것은 그가 쓰는 글자도 A군의 필체와 똑같이 변한 것이다.
정말로 인연이라 하던가. 당시 묘법 노스님이 우리 집에 머물고 계셨다. 앞에서 이야기한 적이 있는 이 선생이라는 분이 B군과 그의 부모를 데리고 우리 집으로 온 것이다. B군이 대문을 들어설 때는 두 눈이 멍하여 혼이 몸을 떠난 모양이었다. 그의 부모가 위에서 이야기한 상황을 설명하자, 묘법 스님은 잠시 아무런 말씀이 없었다. 단지 그를 자비스런 눈으로 바라보면서 묵묵히 손으로 염주를 돌리면서 잠시 후 비로소 B군을 관찰하면서 물었다.
“너 이름이 무엇이지?” “저는 B군입니다.”
“올해 몇 살이지?” “열네 살입니다.”
그의 부모는 놀라움의 미소를 지었다. 목소리가 본래의 그의 아들 목소리로 돌아온 것이다. 그의 두 눈을 보니 생기를 회복하였다. 그들은 아들을 끌어당겨 스님께 인사하게 하였다. 스님은 마땅히 불보살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며 그들에게 우리 집의 불상 앞에서 절하게 하였다.
모두가 스님께 이게 어찌된 일인가 하고 물었을 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B군이 이런 증상을 얻게 된 까닭은 A군의 신식(神識 : 영혼)이 B군의 몸에 붙어 떠나기를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A군이 나에게 말하기를, ‘자기는 이제 열네 살이며, 아직 인간의 즐거움을 누리지 못해 이렇게 죽으면 너무 억울하다’고 하더군요. B군은 자기의 좋은 친구이며 그는 B군의 몸에 붙어 먹을 것, 마실 것, 피울 것 등을 실컷 하고 싶다고 합니다.
이런 원인을 알고 내가 그에게 ‘네가 의외로 일찍 죽게 된 것은 전생에 살생의 업이 중한 과보 때문이다. 네가 현재 이렇게 친구 몸에 붙는 것은 새로운 나쁜 업을 짓는 것으로 너를 악도(惡道)에 떨어지게 할 것이다. 내가 너에게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가르쳐줄 테니, 염불하면 좋은 곳으로 천도될 수 있다. 왜 하필 친구 몸에 붙어 친구를 해치고 너 자신도 그르치게 할 것인가?’라고 말하니 A군은 깨달아 후회하며 염불하면서 떠나갔습니다. 그는 이후 다시 인간으로 환생하여 올 것이며, 내생에는 불법을 만날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B군의 부모는 스님의 말씀을 들은 후 매우 안심하였으며, 자기들도 채식하며 불법을 배우겠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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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의 거사(管義居士)
길림(吉林)의 관의 거사, 그는 불치의 병을 앓아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와 갈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후 선지식을 만나 교화를 받아 오계(五戒)를 수지하고 온 마음을 다해 염불수행을 하여 기적같이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더욱 열심히 염불 정진하게 되었다.
어느 날 하루 염불 정진 중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이 홀연히 눈앞에 나타난 것을 보고 매우 기뻐하였다. 또 어떤 때에는 염불하는 사이에 홀연히 지옥에 가기도 하였다. 지옥에서 벌을 받고 있는 죄인들이 고통으로 울부짖으며 그에게 도움을 구하는 것을 보기도 하였다. 그때 그는 “나는 지금 당신들을 어떻게 구제해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하였다.
이 관의 거사 부부는 불경을 깊이 연구하고 염불하면서 오계를 지키며 매일 행주좌와 언제 어느 때에도 정념을 잃지 않았다. 이제 출가하여 부처님의 은혜에 보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사방으로 어느 절 어떤 스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출가하는 게 좋은지 자문을 구하였다. 묘법 노스님께서 이런 사정을 들으신 후 한 수의 게송을 읊으셨다.
불법은 듣기 어렵지만 오늘 이미 들었고
눈 밝은 스님은 찾기 어려우나 경 속에서는 찾을 수 있네.
이 몸을 금생에 제도하지 못하면
어느 생에 이 몸을 제도할까.
재가불자로서 네 가지 중계(重戒)를 엄히 지키고
육도만행을 몸소 행하니 자비희사(慈悲喜捨)는 보살행이며
모든 행에 머묾이 없음이 선(禪)이네.
청정한 아미타불이 마음 가운데 앉았으니
희로애락이 모두 범음(梵音)이네.
중생을 널리 교화하면 백의(白衣)를 입은 것이며
자기도 제도하고 남도 제도하면 불신(佛身)을 증득하리라.
관의 거사는 이 게송을 받아 읽은 후 계속하여 경서에 정례하며 더욱 수행에 정진하여
다시는 밖으로 반연을 구하지 않았다.
~~~ 이상은 오대산 노스님과 인과 이야기 일부 글입니다
전문은 아래에 소개된 출판사에서 간행된 도서를 구입하여 보시기를 ~~
[오대산 노스님과 인과 이야기]에서
저자 과경.각산/ 번역 정원규 / 불광출판사 간행
구입처 불광출판사☎ (02-420-3200)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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