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산 노스님의 인과 이야기
저자 과경·각산/ 번역 정원규 / 불광출판사 간행(02-420-3200)
원저자 묘법스님은
1916년에 태어 나시어 수년 동안 오대산에서 폐관 수행을 통해 큰 깨달음을 이루셨다.
시절인연이 도래하자 세상에 나오셔서 중생을 교화하셨다.
특히 생생한 인과법문을 통해 업장을 소멸함으로써 치유시키는 신이한 힘을 가지셨다.
말년에는 은둔수행을 하시다가 2004년 (87세)입적하셨다.
중국에서 발간된 이 책의 원 제목은 [현대인과 실록]으로서
원저자의 뜻에 의해 비매품으로 발간, 배포되었다.
《오대산 노스님의 인과이야기》는 중국 오대산의 전설적인 은거승
묘법스님의 생생한 일화와 법문들을 정리한 《현대인과실록》이라는 책을
번역·출간한 것으로 주로 인과에 관한 이야기들로 구성돼 있다.
번역자 정원규 씨는 중국 속담 ‘가가도유일본난념적경(家家都有一本難念的經)’을
예로 들며 “이 책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맞닥뜨리는 일체 고(苦)를
어떻게 바로 이해하고 바로잡아 근본적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를 제시해준다”고 밝혔다.
묘법스님의 법문을 한 예로 들어보자.
“불법을 받아들여 자기 과거의 모든 악업을 진정으로 참회하면 아무리 하늘 가득한 큰 죄라도
소멸될 것입니다. 마치 아무리 견고한 얼음덩어리라도 뜨거운 햇빛을 만나는 것과 같으며,
또 문제를 해결하여 재난과 불행의 근원을 끊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스님의 법문을 보고 있노라면 불자들의 가슴속에 일여한 진리의 빛을 보여주려는
스님의 따스한 애정이 느껴진다. 장세훈 기자
저자 과경·각산/ 번역 정원규 / 불광출판사(02-420-3200) / 1만원
인연(因緣)
나는 어릴 때부터 무신론(無神論)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또한 불교를 접한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종교도 가까이 한 적이 없었다. 장성한 후 비록 절에 가본 적은 있지만 그것은 다만 여행 삼아 놀러 간 것뿐이다. 물론 호기심이 나서 친구들과 교회에 가본 적도 있다. 그러나 내 마음속에는 모든 종교를 미신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내가 어떻게 불교를 배우는 길에 들어서게 되었는가? 10년 전 여름 오대산(五台山)에 놀러갔을 때부터 인연이 시작되었다. 오대산은 우리나라(중국)의 4대 불교성지 중의 하나이며 문수보살(文殊菩薩)이 상주하시는 도량이다. 그동안 유명하다는 절은 이곳저곳 놀러가 보곤 하였는데, 높고 장엄한 고찰(古刹), 향이 피어오르는 전각, 나아가 인간 세상의 속진(俗塵)을 없애는 듯한 종소리는 매번 내게 감동을 주었다. 그 무렵 오대산에 다시 오게 되었는데, 나는 갑자기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심산계곡의 한적한 절에 계시는 스님을 찾아뵙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다.
맑은 한기(寒氣)가 엄습하며 자색안개가 피어오르는 그 날의 새벽은 내 마음속에 영원히 간직되어 있다. 한결 기분이 상쾌해진 나는 행장을 정리하여 한 장의 지도를 옷 속에 품고 혼자 그윽한 곳을 찾아가는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 날의 여정이 나와 많은 사람들의 운명을 바꾸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그래서 나는 오대산을 내가 새로 태어난 곳으로 여기고 있다.
집을 나선 뒤 나는 일부러 넓고 평탄한 길을 피하고 구불구불한 길을 택하여 걸어갔다. 길을 따라가면서 높이 솟은 산봉우리, 그윽하고 깊은 계곡의 숲, 비취색 같은 서기가 눈에 비쳐 빛을 뿜어내는 것을 보면서 기분이 날아갈 듯 상쾌하고 마음의 문이 활짝 열리는 듯하였다.
길은 가면 갈수록 험하여졌다. 아예 개울을 따라 구불구불한 계곡 길을 따라갔다. 고목과 차가운 바위, 흰구름 비치는 푸른 샘, 기이한 풀과 야생화들을 완상하면서 가다보니 몸이 산수간에 있는 것도 잊을 지경이었다. 계곡을 오르다 보니 어느덧 정오, 그러나 은사(隱士), 한가로운 스님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아 다소 실망스러웠다. 내가 아득한 사방을 둘러보고 있을 때 갑자기 목탁소리가 은은하게 울려왔다. 또르르 딱 또르르 딱… 신묘하면서도 고졸(古拙)한 여음이 산가를 맴도는데 마치 하늘이 서서히 열리는 듯하였다. 직감적으로 이 소리가 서쪽 안개 그윽한 산 계곡에서 들려오는 것으로 판단하고 곧바로 정신을 바짝 차려 한 걸음 한 걸음 잔돌을 밟으며 계곡 가운데로 나아갔다. 깊은 계곡으로 들어오니 다만 자색 기운과 우람한 나무들만 보이는 것이 이곳이 선경(仙境)이 아닌가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이때 목탁소리가 먼 곳으로부터 가까운 곳으로 들려오더니 갑자기 끊어졌다. 여음을 들으면서 홀연히 맑은 개울물이 눈앞에 나타난 것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마치 인간세계로 내려온 선인같이 티끌에 물들지 않아 주옥을 토해내는 것 같았다. 아무런 생각 없이 즉시 몸을 굽혀 물을 한 모금 떠 마시니 시원하고 달콤하며 입에서 향이 나오는 것 같았다. 물을 마신 후 손으로 얼굴을 씻으니 어찌나 상쾌하던지.
그때 갑자기 건너편에 사람이 한 명 서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놀라 고개를 들어보니 수염과 머리털이 덥수룩하며 납의(衲衣)를 걸친 노스님이 두 손을 모으고 단정히 서 계셨다. 소나무 사이로 바람이 불어오니 수염과 머리털이 휘날리며 납의가 표연히 흩날렸다. 서로 상대방을 쳐다보는데 갑자기 눈앞이 어지러워지는 것 같았다. 그분의 눈은 맑고 깨끗하며 매우 자상해 보였다. 나는 어떻게 건너편의 스님 곁으로 가야 할지 몰랐다. 단지 그 노스님이 지난 세상의 부모와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시주, 방해가 되었소이다.” 노스님이 합장하며 말씀하셨다.
“아닙니다. 제가 오히려 스님의 수도(修道)를 방해하였습니다.”
노스님의 말씀에 나는 매우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 황급히 대답하였다. 이것이 내가 처음으로 출가한 스님과 대화한 말이다. 나는 빠르게 적당한 말을 찾아내려고 애썼다.
“시주께서는 이렇게 그윽하고 적막한 곳을 좋아하시는가 보죠?”
“단지 시끄럽고 번잡한 곳을 피해 혼자 산 속을 거닐어보고 싶어서.”라고 답하면서 쑥스러운 듯이 뒷말을 이었다.
“사실 저는 기이한 만남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오, 그렇게 말하시니 정말 방해를 했소이다. 시주는 천천히 놀다 가십시오. 노납은 먼저 갑니다.”
내가 입을 열려고 할 때 노승은 이미 표연히 저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재빨리 몇 걸음 따라가면서 얼굴을 붉히며 말하였다.
“걸음을 멈추십시오. 사실 저는 스님과 같은 고승을 만나 뵙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래요. 나는 고승이 아닙니다. 단지 우매하고 완고한 길을 인도하는 스님입니다.”
“방금 스님께서 목탁을 치셨습니까?” 나는 입을 크게 벌려 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목탁을 치는 것은 꿈속의 손님을 깨우는 것이요, 맑은 개울물은 속세의 때묻은 마음을 씻어 없애는 것입니다.”
나는 묵묵히 노스님의 말씀을 되씹으면서 알 듯 모를 듯할 즈음 이미 노스님을 따라 숲을 돌고 등나무를 헤치면서 매우 넓고 탁 트인 곳에 도달하였다. 그 곳에는 단지 푸른 숲과 하늘만 보이고 졸졸 흐르는 개울물 소리만 역력하였다. 주위에 둘러 심은 늙은 배나무는 구부러진 채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북쪽 지세는 높고 평평하였으며 샘이 솟는 곳에 조그마한 초막이 있었다.
“제가 정말로 큰스님을 만나 뵙게 되었습니다.”
나는 매우 흥분되었으며 한편으론 의문이 생겨 입을 열려고 하였으나 범속한 소리는 도리어 속진이 끊어진 이곳을 오염시킬까 봐 말이 입가에서 맴돌았다.
“사바세계는 오래 몸을 숨길 수 없으며, 세월은 한계가 있어 죽음이 임박하기를 기다릴 수 없다. 명예와 이익은 언제나 공허하며 세속의 은애는 끝내 헤어지게 되고 원수는 서로 보복하기를 끝이 없다.”
노스님의 무심한 듯한 읊조림은 나에게는 우렛소리와 같았다.
“세상 사람은 단지 나쁜 짓을 할 줄만 알지 참회할 줄은 모르며, 단지 복을 구할 줄만 알지 복을 자기의 분수에 맞게 쓰려고 하지 않네. 염불 일성(一聲)이 무량한 복을 증진시키며, 예불 일배(一拜)가 강가의 모래알같이 많은 죄를 없애는 줄을 전혀 모르네.”
나는 나도 모르게 노스님 앞으로 가서 꿇어앉아
“스승님, 저를 제자로 받아주십시오. 저는 스님께 불법(佛法)을 배우고 싶습니다.”
“불법은 바다와 같아서 오직 믿음이 있어야 들어갈 수 있다. 너는 믿느냐?”
노스님은 ‘믿음’이라는 자에 힘을 주어 말씀하셨다. 이 물음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그 때까지 나는 불교를 미신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처님께 예배하지도 않았었다. 그런데 오늘 나는 어째서 한 번 만난 적도 없는 노스님 앞에 경건히 꿇어앉아 있는가? 나는 스님의 물음에 대답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공(空)’, ‘속진’, ‘참회’ 등등 이런 단어들이 이미 나의 뇌리에 깊이 새겨져 있었으며, 아울러 내 마음속에서는 마치 오래간만이라는 정감이 끊임없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내가 이처럼 넋이 나가 있을 때 따스하게 나를 응시하는 노스님의 자비로운 눈길이 느껴졌다. 이때 만감이 교차하면서 굵은 눈물방울이 노스님의 발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비록 스스로 추태라고 생각하면서도 눈물은 여전히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흘러내렸다. 나는 마치 실수를 저지른 어린아이처럼 소리 없이 흐느꼈다.
“믿음은 도(道)의 문으로 들어가는 공덕의 어머니이다. 하지만 믿음은 바른 믿음과 삿된 믿음으로 구분된다. 소위 바른 믿음이란 바르되 삿되지 않으며 깨달아 미혹되지 않는 것이다. 불교에 귀의하는 자는 반드시 먼저 정확한 지견(知見)을 수립해야 한다….”
“예불은 부처님의 덕을 경배하는 것이며, 염불은 부처님의 은혜를 느끼는 것이며, 간경(看經)은 경의 이치를 밝히는 것이며, 좌선은 부처님의 경지에 오르는 것이며, 깨달음을 얻는 것은 부처님의 도를 증득하는 것이다….”
나는 기갈에 허덕인 듯 노스님의 주옥 같은 법문을 경청하였다. 눈앞에 있는 작은 풀들이 모두 금빛으로 번쩍였다. 푸른 나뭇잎들이 모두 부처님의 모습처럼 느껴졌다. 어느덧 해는 서산에 기울었다. 노스님은 나를 배웅하려고 몸을 일으키셨다. 그리고 샘물 솟는 곳에서 배를 하나 꺼내 나에게 건네주셨다. 선황색의 배를 바라보면서 나는 비로소 아침과 점심을 먹지 않은 것이 생각났다. 노스님께 감사 드리며 배를 한 입 베어 물으니 싱그러운 향이 입안에 가득하고 가슴이 상쾌한 게 마치 하늘의 선과(仙果) 같았다.
노스님은 그러한 내 모습을 바라보면서 어린애같이 순진하게 웃으셨다. 웃는 모습이 마치 주름살 가운데서 즐거움의 꽃이 솟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스님의 웃는 모습은 나를 깊게 감동시켰으며 안 지 몇 년 된 오랜 친구같이 느껴졌다.
“이 배는 본래 써서 삼키기 어려운 것인데, 이 샘물에 담가 3개월이 지나면 이렇게 달게 변한다네. 이 샘은 겨울에는 부드럽고 여름에는 차가우며, 배를 따서 흐르는 물 속에 1년 동안 보존할 수가 있다네.”
“그렇게 말씀하시는 걸 보니 스님은 여러 해 동안 이곳에서 수행하셨겠네요?”
나는 호기심과 동경의 마음이 가득하여 물었다. 노스님은 미소만 지을 뿐 옳다 그르다 이야기하지 않았다. 옛달은 서리 같고 청풍은 물과 같으며 작은 시냇물은 졸졸 흐르고 있었다. 나와 노스님의 청담(淸談)은 이어졌다. 노스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보니 한기(寒氣)는 물론이고 먼길도 가깝게 느껴질 정도였다. 절로 돌아가는 큰길로 되돌아 왔을 때 노스님은 소매 속에서 작게 접은 종이를 꺼내 건네주시면서 두 손을 합장하고 이별을 고했다. 나는 사실 이별이 아쉬웠으나 여러 말이 무익하다는 것을 알았다.
“인연이 있으면 저절로 만나게 될 것이다.” 하면서 노스님의 모습이 소나무 숲 속으로 사라졌다.
은하수가 쏟아지듯 수많은 인가의 불빛을 마주하면서 나는 비로소 감동과 아쉬움을 느꼈다.
“오늘은 이미 지나가고 수명 또한 그에 따라 줄어드는 것이 마치 줄어드는 물 속의 고기 같은데 무슨 즐거움이 있겠느냐?”
나는 지금까지 그 날 같은 명철함과 평온한 마음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노스님은 곧 폐관(閉關) 수행을 끝내고 세상에 내려와 중생을 제도하면서 인연에 따라 법을 설할 것이라고 하셨다. 노스님의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숙소로 돌아가는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스님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숙소로 돌아왔다.
객방의 탁자 앞에 조용히 앉아 이날의 꿈 같은 일을 회고하니 이 모든 것이 깊은 의미가 있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문득 노스님의 이름을 여쭙는 것을 잊었다는 것을 깨닫고 마음이 몹시 괴로웠다. 이때 노스님이 나에게 남겨준 쪽지가 생각나 급히 펼쳐보았다.
“해지는 초당(草堂)에 부처님의 뜻이 깊어
홀로 앉아 옥토끼(달)를 닦네.
달이 차고 이지러져도 초심(初心)을 잃지 않고
소박한 마음으로 번뇌를 막네.
이슬이 맺힌 난초, 새가 깃든 회나무
만물의 온갖 소리 구름 속으로 녹아드네.
쾌적한 바람이 소나무와 춤을 추고
거짓에 물들지 않고 진실을 꾸미지도 않네.”
몇 행의 소박하면서도 힘이 있는 글씨가 한눈에 들어왔다. 아래에 단정하게 쓰여 있는 작은 글씨, 석묘법(釋妙法)이라는 스님의 법명이 또렷하게 담겨 있었다.
‘거짓에 물들지 않고 진실을 꾸미지 않는 곳’이 묘법 노스님의 상주(常住)세계임을 알고 나는 무척 즐거웠다. 하루 빨리 법의 비를 다시 맞기를 바랬다. 오래지 않아 노스님과 연락이 되었고, 그 때부터 우리 사제간의 떨어질 수 없는 인연이 시작되었다.
세월은 덧없이 흘러 10년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지금 내가 이미 회갑에 가까웠으니, 그 동안 심혈을 기울여 위법망구(爲法忘軀)하시며 중생을 교화하시는 노스님의 모습을 무수히 보아왔다. 그러나 내 자신은 세월을 헛되이 보내면서 아직 모든 인연을 놓지 못하고 진실을 수용하지 못하였으니(즉 도를 깨치지 못함을 뜻함) 부끄럽기 그지없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신선하면서도 명확한 인과의 실례를 나 혼자 무덤 속으로 가지고 가기가 아까워 재삼 망설이다가 비록 글재주는 없지만 붓을 들게 되었다. 이 책의 내용 중에서 적당하지 못한 단어와 빠뜨린 곳이 많을 것이다. 여러 대덕 불자님께서 가르침을 주시기를 원한다. 마지막으로 한 수의 게(偈)로써 여러 불자님들과 함께 닦아가기를 원한다.
“탐욕과 성냄을 놓지 못하면 불경(佛經)을 헛되이 읽은 것이며, 약방문을 보고도 약을 먹지 않으면 어찌 병이 나아지겠는가?”
새 천년의 시작을 맞이하여 우리들 모두 삼근(三根)으로 수행하며, 이근(利根)과 둔근(鈍根)이 같이 수행하여 복혜(福慧)가 증장하며, 불도를 하루빨리 이루기를 기원한다.
나무 아미타불 참회 삼보(三寶) 제자 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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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 털을 가진 수탉
장(章)씨라는 농민이 폐암에 걸렸다. 병원에서도 치료를 하지 못하였고 백약이 소용이 없었다. 급기야 병원에서 가족들에게 뒷일을 준비하라고 하였다. 그의 친척 중 한 사람이 장씨의 아내를 데리고 우리 집으로 왔다. 내가 집에서 불교를 연구하고 있는 것을 알았던 그는 불법(佛法)의 도움을 구하고자 하였다. 때마침 공교롭게도 묘법 노스님이 우리 집에 머무실 때였다. 그들은 노스님께 자비의 구원을 해 주십사 간청하였다.
묘법 노스님이 물었다. “병자는 살생의 업이 매우 중하군요. 더욱이 닭을 죽인 업이 가장 많습니다. 맞습니까?”
장씨 처가 대답하기를 “네. 제 남편은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여 마을의 경조사 때 사람들이 남편을 요리사로 초빙하곤 하였습니다. 남편은 다른 사람이 닭을 잡는 것은 솜씨가 재빠르지 못하고 칼 놀리는 것이 서툴다 하여 모두 자기가 주관했습니다. 매번 경조사 때마다 닭 수십 마리를 잡고 나면 피가 개울을 벌겋게 물들이곤 하였습니다.”
스님께서 또 묻기를, “당신들은 다른 집의 큰 수탉 한 마리를 훔쳐 잡아먹은 일이 없는지요? 이 수탉은 목 위 털이 금황색이고 몸의 털은 갈홍색이며, 꼬리부위의 털은 흑녹색으로 빛이 번쩍번쩍 나는 닭입니다. 그 닭은 머리를 치켜들면 0.5미터 이상으로 크며, 매우 웅장하며 잘 생겼지요.”
장씨 처는 스님의 말씀을 듣고 대경실색하며 스님께 큰절을 올리면서,
“아이고, 큰스님! 닭을 잡아먹는 것이 그리도 큰 죄가 되는 줄 어찌 알았겠습니까? 흉년에 먹을 게 없어 매일 배는 고프고, 너무 힘들어서 하루는 이웃집 큰 수탉이 우리 집으로 날아 왔길래 그 집에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고 몰래 잡아먹었습니다. 큰스님께서는 정말로 다 알고 계시군요. 악을 저지르면 악한 과보를 받는다더니, 다음부터는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않겠습니다. 흉년을 넘길 때마다 저희들은 다른 집의 사료도 훔쳐먹고 전답의 곡식도 훔쳐먹곤 하였는데, 제가 이제 그 죄를 알겠습니다. 이것은 모두 제가 남편을 부추겨 저지른 것입니다. 제 수명을 감해주세요. 제가 남편을 대신하여 죽게 하여 주십시오….”
그녀는 한편으로 무슨 말을 읊조리면서 한편으로 울고 하여 나도 감동되어 눈물이 나왔다. 생각지도 않게 이 부인의 깨우침은 매우 높았다. 정말로 이렇게 빨리 알아차리기 힘들다. 그녀의 소박한 말솜씨며, 진실한 부부의 감정은 실제로 얻기 어려운 것이다. 나는 그녀를 부축하여 일으켜 세워 묘법 노스님의 법문을 듣도록 하였다.
스님도 다소 감동이 되었는지 말씀하시는 음성이 약간 떨렸다.
“방금 울면서 하소연한 것이 진정한 참회입니다. 돌아가서 당신 남편에게도 참회하도록 하고 이후로는 절대로 살생을 하지 않도록 하세요. 절에 가서 『지장경(地藏經)』을 구하여 죽은 닭을 위하여 49번 독송하고 그들에게 회향하세요. 당신 남편이 직접 『지장경(地藏經)』을 독송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당신들이 훔쳐 잡아먹은 이웃집의 그 수탉은 닭 중의 왕입니다. 그 닭을 잡아먹고 나서 당신 남편이 두통을 앓지 않았습니까?”
장씨 처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하기를 “맞습니다. 맞아요. 정말로 그 때부터 남편은 두통을 앓기 시작하였어요. 한 이틀 좋아졌다가 다시 아팠다가 하였는데, 무슨 약을 먹어도 효험이 없었습니다.”
“그 닭은 죽은 뒤 계속 당신 남편의 머리 위에 앉아 두 발로 머리를 할퀴고 어떤 때는 부리로 뇌를 쪼니 어찌 아프지 않았겠습니까? 이 닭을 위하여 절에 가서 위패를 세우고 『지장경(地藏經)』 일곱 번을 독송하고 스님들에게 청하여 (그 닭을) 천도(薦度)해 주면 그 닭은 천상에 태어나 봉황이 될 것입니다.”
“스님, 우리들은 글자를 많이 알지 못하여 독송하기 어려운데 어찌해야 합니까?”
“경을 독송하는 것은 당신 남편의 목숨을 구하는 일이며, 당신에게도 큰 이익이 있습니다. 모르는 글자는 사전을 찾고 다른 사람에게 묻고 하여 깨우치세요. 사실 본인이 경을 읽지 못하면 돈을 들여 다른 사람을 청하여 독경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독경하는 것보다는 못합니다. 독경의 공덕은 모두 자기 것이 됩니다. 또한 천도할 기간에 주의할 것은 비린내가 나는 모든 육식과 생선을 먹지 말고, 마늘, 파, 부추 등 오신채를 다 금하고, 술과 담배도 끊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왜냐하면 비린내가 나는 입으로 경을 읽으면 천인(天人)과 귀신들이 와서 듣지 않으니 중생들이 이익을 얻을 수 없습니다. 또한 불법에 대한 불경(不敬)이기도 하니 무슨 공덕이 있겠습니까? 닭이 만약 천도되지 못하여 떠나지 않으면 당신 남편의 병도 좋아지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계를 지키면서 독경하면 불보살(佛菩薩)께서 반드시 당신들을 가호할 것입니다.”
장씨 처가 또 묻기를 “제 남편은 현재 이미 병이 위중하여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독경(讀經)이 때가 늦은 것은 아닙니까?”
묘법 스님께서 답하시기를 “당신 남편이 만약 그렇게 많은 닭을 죽이지 않았더라면 수명이 본래 다하지 않을 건데 살생을 많이 하여 수명을 감한 것입니다. 그러나 방금 당신이 진심으로 참회를 하였기 때문에 이미 돌이킬 수 있는 여지가 마련되었습니다. 진정한 참회는 능히 죄업을 소멸시킬 수 있으니, 당신 남편이 만약에 진심으로 참회하여 독경, 염불을 열심히 한다면 반드시 위험한 상태에서 벗어날 것이니 명심하십시오.”
장씨의 처는 병원으로 돌아간 후 뜻밖에도 남편이 기적처럼 침상에 앉아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어찌 된 일인지 남편에게 물어보니, 방금 갑자기 많은 가래를 토하고 나니 가슴이 답답한 게 없어졌다는 것이다. 이것은 병이 심해진 뒤 처음으로 자기가 토한 가래였다.
아내는 매우 흥분되어 묘법 노스님을 만난 일을 조용히 남편에게 말하니 남편도 몹시 놀라워하며 기뻐하였다. 그 다음날 바로 퇴원하여 집으로 돌아갈 것을 결정하고 “어쨌든 병원에서는 고칠 방법이 없을 테니 집으로 가겠다!”고 병원에 알리고 퇴원했다.
폐암으로 오래 지나지 않아 죽을 거라던 병자가 기적같이 살아나 자기 집 대문에서 자전거를 수리하니 마을의 많은 사람들이 어찌 된 일인가 하고 묻곤 하였다. 그 후 비가 와서 그의 집에 비가 새자 지붕에 올라가 수리하는 것을 보고는 모두들 놀라며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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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수행해야 이익을 얻을 수 있습니까?
수행은 고통 스러우며 심지어 견디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마치 독약을 삼키면 그것을 토해내어야 하는것과 같지요.
하지만 당신은 영원히 다른 사람의 뱃속에서 당신이 삼킨 독약을
토해내기를 바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수행은 급히 이루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제불보살이 언제나 수행자를 가호하나 당신들이 먼저
무시이래 삼킨 독약을 토해내야 비로서 제호의 미묘한 맛을 맛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낡은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받아 들인다는 도리입니다.
따라서 불법을 배우려면 먼저 아집을 타파해야 하며
시비를 분별해서는 안 되며 모든 원한은 다 자신이 다겁 이래로
지은 업장의 발현이니 경견하게 참회하면 수습될 것입니다.
마구 책망하기만 하면 평지풍파를 일으키고 공연히 원한을 증가시켜
해탈할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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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은 입으로부터 들어온다
사람들 개개인은 살아 가면서 적거나 많거나 모두 갖가지 질병으로 인하여
자기는 물론이고 가족에게 막대한 고통을 겪게 한다.
가난한 사람이거나 부유한 사람이거나 권세가 있는 사람이거나
없는 사람이거나를 막론하고 병으로부터 벗어 날수 있는 사람은 몇 안 된다.
심지어 돈과 권력이 아무리 많다 할지라도 생명이 점점 소멸되어갈 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은 왜 질병의 고통을 겪게 되는가?
정상족인 노쇠현상과 인체의 기능이 점점 감퇴하는 것 외에 일반적으로 질병이
입으로 들어 온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불결한 음식을 먹으면 병에 걸리게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맞다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일찍부터 보아온, 예를 들면 얼굴도 씻지 않고 목욕도 하지않고
쓰레기통에서 먹을 것을 찾아 먹는 사람들을 한번 생각해보자.
겨울 여름 할 것 없이 옷으로 몸을 제대로 가리지 못하고 모기 등 해충에게 물리고,
더러운 음식을 먹으면서도 이 사람들이 설사를 하거나 혹은 감기에 걸려 열이 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그런 사람들보다 오히려 우리가 소위 말하는 문명인들, 위생적으로 매우 중시하고
음식으로 보신하면서 건강을 돌보는 사람들이 도리어 약과 병원을 떠나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그러면 병은 입으로부터 들어온다는 말이 함축하고 있는 뜻은 무엇일까?
1950년대를 기억하건대 폐렴에 걸리면 약이 없었다.
그 뒤에 테트라시클린이라는 약이 나옴에 따라 폐렴은 치료될 수 있었다.
그 후 또 무서운 폐결핵이 출현하였으나 스트랩토마이신에 의하여 폐결핵도 물러가게 되었다.
뒤이어 암, 에이즈 심지어 이름도 모르는 병들이 나타났고, 전 세계 의학자들이
심혈을 기우려 연구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치료방법을 찾아내지 못하였다.
그 외에도 우리는 신문지상에서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병들이 끊임없이
출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과학은 날로 발전하고 의료설비도 더욱 선진화되며 각종 새로운 고가의 약품들이
생겨났는데도 이러한 질병들을 퇴치하지 못하고 있다.
마치 하늘이 계획적으로 인류와 싸움을 하는 것처럼 도가 한척 높으면
마가 일장이 높다는 기세와 같다.
오늘날 병원에서는 진찰 받는것도 어렵고 진료비도 비싸며 좋은 의사를 찾는것도 어렵다고 한다.
필자는 불경을 보고 난후 사람이 병에 걸리는 진정한 원인을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으며
그후 실생활 속에서 수차례 검증하여 알게 되었다.
간단히 말하면 탐진치가 병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으며 구체적으로 말하면
열가지 악업이 각종 질병의 발원지인 것이다.
병이 입으로부터 들어온다는 뜻은 본래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먹어서, 말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해서 . 혹은 저지르지 말아야 힐 짓을 해서 병에 생긴다는 것을 가리킨다.
삶은고기 구운 물고기로 식욕을 채우나
죽은 동물의 마음에 원한이 가득함을 모르네
주방은 도살장으로 변하여
배를 가르고 머리를 잘라 칼산에 오르네
지지고 볶고 튀기고 삶는 모든 형벌로
통째로 삼키고 산 채로 씹어 먹는 것을
맛있는 요리라고 하네
신식이 그대몸에 깃들면
조만간 그대는 목숨으로 되 갚아야 하네
선악이 때가되면
마침내 과보가 있으니
병은 입으로 들어옴을 등한시 말아야 하네
시일이 오래지 않아 악이 가득차면
질병이 몸에 달라 붙어 병원 신세져야 하네
수술칼 아래 아래 배를 째고 머리를 가르는 것이
모두 주방 모습에 재현이로구나
금일 지옥에 떨어질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처음부터 개걸 스럽게 먹지 말았어야 하는건데....
죄업을 소멸하는 길
우리가 불교를 배우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교신자는 채식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고기를 먹는 것은 다른 중생의 생명을 해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동물이 인간에게 먹히기 위해서 존재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또 누구에게 먹히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인가?
만약 이 세계를 진정으로 깨끗이 하고 모든 독을 없애려고 하면 채식을 하고
고기를 먹지 말아야 할 것이다.
무릇 학질 암 등과 같은 악한 질병은 모두 내면의 귀신이 지배하여
사람의 오장육부를 뒤틀리게 만들고 사대를 조화롭지 못하게 한것으로
다 업장이라는 귀신이 장난치는 것이다.
왜냐하면 만일 사람이 숙세의 업장이 있으면 때가 되어 귀신이 빚을 갚으로 오기 때문이며 ,
또한 그 사람의 양기가 부족하면 음기가 성하고 양기가 쇠하므로 귀신이
그틈을 얻어 들어 오기 때문이다.
그대가 만약 항상 번뇌가 없고 지혜가 현전하면 귀신이 비집고 들어올 틈을 얻지 못한다.
일단 욕념, 무명이 일어나면 귀신이 뚫고 들어오기가 쉽다.
따라서 세상의 모든 질병은 인과에 의한 것이다.
심지어 모기가 물고 벌에 쏘는 것, 나아가 인간 세상에서 만나 는 모든것이
다 인因과 과果가 서로 교차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사람이 만약 이런 도리를 깨달으면 잘못된 일은 털끝만큼도 할 수 없으며
한번 잘못된 일을 저지르면 그에 대한 과보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것이다.
그대가 만약 자기의 잘못을 알고 참회하여 잘못을 고칠 수 있으면
죄업에 묶인것을 풀수 있으며 그러면 죄업은 곧 소멸되고 병이 없어진다.
그대에게 병이 있을 때 온몸에 땀을 흘릴 정도로 참회하고 나면 점점병은 나아질 것이다.
사스(SARS)가 전염을 멈추었다. 이 전염병에 대하여 현대 과학계는
둥물이 보균한 세균과 관련이 있다는 점을 증명하였으며 병균의 생성과
급속한 번식의 근원에 관하여는 정확한 답을 내리지 못하였다.
우리 불교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살생이 불러 일으킨 것이라는 것을 명백히 알수 있다.
최근 몇 년이래 사람들은 돈이 많아지고 생활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먹는 욕구가 다양해지고
동물의 고기와 피를 먹으면 크게 보신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살생도 백배 천배 증가하게 되었다.
사스는 어떻게 온것인가.
모두들 내 설명을 들어 보기 바란다. 결코 미신이 아니다.
사람들 각자 모두 꿈을 꾼다.따라서 사람마다 모두 신식神識을 가지고 있다.
모든 동물도 생각이 있으며 또한 신식을 가지고 있다.
사람이 살해될 때 원한심을 가지게 되는 것과 같이 동물도 살해될 때 원한심을 가지게 된다.
단지 방법이 없을 뿐이다.
동물이 사람에 비하여 약하니 대량으로 살해되는 것이다.
결과는 어떠한가?
비유를 들어보면 열 사람이 함께 있는데 만약 그 가운데 8.9명이 즐겁지 않으면
전체 분위기가 자연히 가라 앉아 긴장하게 된다.
이것은 바로 신식이 일으키는 작용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모든 동물의 형상은 구별이 있으나.
신식은 구별이 없다고 하셨다.
만약 대량의 동물이 살해되면 그 분노의 진한의 신식은 무량무변으로 허공에 가득차게 된다.
만약 분노,진한의 신식이 허공 중에 단지 증가하기만 하고 감소하지 않는 다면
우리 인류의 공포와 두려움과 그로 말미암아 초래되는 질병 .전염병. 긱종사고와 전쟁등도
그에 따라 격화될 것이다.
이 모든것은 현재 우리들 눈앞에 나타나고 있다.
영지靈知에 대하여 우리가 보지 못했다고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다.
신식도 이와 같이 만약 한사람이 어떤 사람을 죽이면 그 주변의 영지는 공포와 두려움으로 변한다.
이것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은 살해된 사람의 신식에서 오는 것으로 살해 된자가 공포와 두려움 가운데
목숨을 잃어 그 반작용으로 살해한 자도 공포와 두려움의 심정을 갖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적지 않은 사례를 들은 적이 있다.
도망다니던 살인범은 오히려 잡힌후 마음의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동물도 사람과 같은 것이다.
사람이 만약 살생하는 것이 많으면 공포,두려움이 이 사람의 머리위로 내려오게 된다.
이에 따라 운이 안좋게 되고 성을 잘내며 병이잘 나고 악몽을 자주 꾸게 된다.
심하면 정신이상을 가져 오기도 한다.
또한 세상 사람들은 인간만이 조상이 있고 동물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신이 동물의 후손을 다치게 하면 공업共業이 눈 앞에 나타날 때 그의 조상이
당신에게 빚을 독촉할 것이다.
지금 이사회는 거의 매일 동물을 죽여 매일 고기를 먹으니 무수한 분노 ,공포,두려움의
신식이 허공에 충만하여 인류에게 공포, 두려움의 생존 공간을 조성하고 있다.
만악 우리들이 다시 노력하여 현재의 생활환경을 바꾸지 않는 다면 우리는
바로 재난에 직면하게 된다.
노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착하면 하늘이 와서 보호하고
사람이 악하면 하늘이 내려와 재앙을 준다.
이 말속에서 우리는 마땅히 알아야 한다.
화와 복은 모두 자신이 조성하는 것이며 천신은 단지 세상의 법관과 같다
형벌을 판결하여 처분하는 것은 당신 자신이 죄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류를 주재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며 어떤 천신도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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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소 실천하고 항상 좋다고 말하라 작년 가을 어느 날 오후 석가장(石家庄 : 하북성 성도)에서 온 열 몇 분의 신도 중 오십여 세 된 여자 한 분이 묘법 노스님에게 자기의 고충을 털어놓았다. “저는 불교에 귀의한 지 4년이 되었으며, 줄곧 초하루, 보름날은 채식을 하고 있으나 건강이 좋지 않습니다. 반 년 전 한 분의 선지식을 만났는데, 제 몸을 건강하게 하려면 반드시 모든 육식을 끊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육식을 끊은 후 제 몸은 하루하루 좋아졌으며, 이제야 삼정육을 먹는 것은 단지 방편법임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저는 딸자식들에게 장차 병에 걸리지 않으려면 항상 채식할 것을 권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듣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제가 불법을 배울수록 더욱 어리석어진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이전보다 더 심하게 저에게 고기를 먹으라고 권하며, 심지어 특별히 산 자라를 사와서 저에게 보신하라고 하니 정말 화가 나고 이런 일로 자식들과 자주 다툽니다. 그러나 누구도 승복하지 않아서 집안의 분위기가 더욱 긴장되고 있습니다. 최근 제가 화가 나서 견딜 수 없어 친구 집에 가서 며칠 머물기도 했습니다. 자식들이 나중에 저에게 잘못했다고 빌면서 저를 집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그러나 식사할 때가 되면 모두 마음이 유쾌하지 못합니다. 저는 출가하려 해도 절에서 받아주지 않을까 두려우며, 노인요양원에 가 지낼까 생각해도 채식의 문제가 잘 해결될 것 같지 않습니다. 지금 저는 매우 고민스럽습니다. 스님! 자비로 길을 열어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스님은 시종 결가부좌하신 채로 듣기만 하시더니 천천히 입을 여셨다. “불교를 배우는 사람은 대중과 화순(和順)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바로 다른 사람의 습관, 선택, 신앙을 존중할 줄 아는 것입니다. 심지어 자기 자녀에게도 강요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당신은 그들이 불교를 믿고 채식을 하는 것이 그들을 위해서도 좋다고 생각합니다만 그것도 기회를 보아 가르침을 주어야 하며, 급하게 이루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과는 바라는 바와는 정반대로 되어, 그들이 불교에 대하여 모순과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식사문제에서는 ‘한 식탁 두 가지 방식’을 택할 수 있습니다. 자녀들이 고기를 먹는다고 원망하면 안 됩니다. 스스로 반성해 보십시오. 우리 자신이 진정으로 불살생계를 지니며 고기를 끊은 것이 얼마나 되는지를! 만약 우리들이 수행을 잘 했으면 어찌 지금까지 육도를 벗어나지 못했겠습니까? 불보살이 줄곧 우리를 버린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따라서 다른 사람을 제도하는 데는 시기와 방법을 중시해야 합니다. 말로 가르치는 것 외에 몸소 실천하며 가르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면 당신이 불교를 배우고 채식을 한 후 기색이 갈수록 좋아지고 건강해지며, 마음이 갈수록 자상해지는 것을 보면 그들도 자연히 불법을 믿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은연중에 당신에게 감화를 받아 당신을 향해 가까이 다가올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제도하고자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자기가 먼저 힘써 ‘바르되 삿되지 않으며, 깨달아 미혹하지 않는’ 것을 실천해야 합니다. 남을 바르게 하고자 하면 먼저 자기를 바르게 해야 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밖에 노인이 되면 항상 ‘세 가지 좋다(三好)’를 말해야 합니다. 첫째, 항상 자녀가 좋다고 말해야 하며, 좋지 않아도 좋다고 말해야 합니다. 둘째, 항상 생활이 좋다고 말해야 하며, 좋지 않아도 좋다고 말해야 합니다. 셋째, 항상 친척, 친구가 좋다고 말해야 하며, 좋지 않아도 좋다고 말해야 합니다. 이상 세 가지를 항상 마음속에 기억하면서 입에 달고 있어야 합니다. 족함을 알면 항상 즐겁다고(知足常樂) 합니다. 자녀 또는 친척, 친구, 이웃을 막론하고 설령 이전에 잘 지내던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당신은 언제나 그들의 나쁜 점을 숨기고 좋은 것을 드러내며, 덕으로 원수를 갚으면, 오래 지나지 않아 그들도 뉘우치게 되고 바뀌게 될 것입니다. 항상 ‘세 가지 좋다’를 말하면 반드시 모두의 존중과 추대를 받게 될 것이며, 당신의 생활은 갈수록 좋아지게 될 것입니다. 반대로 만약 다른 사람이 자기를 존중하지 않을까 걱정하여 곳곳에서 거드름을 피우고 다른 사람의 그릇된 점을 들추어내면 일은 자기가 원하는 것과는 반대로 됩니다. 자녀, 친척, 친구들과 틈이 벌어지게 되고, 생활도 끊임없이 마찰을 빚게 되면서 사람마다 원망하는 마음이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같은 이치로 ‘세 가지 좋다’의 기법을 실천하는 데 방법이 서툴면, 노인이나 자녀, 남편이나 아내, 출가나 재가를 막론하고 번뇌가 많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여신도는 스님의 법문을 듣고 연신 고개를 끄떡였다. 처음의 걱정스런 모습은 없어지고 만면에 춘풍이 감돌았다. 불법은 정말로 묘법(妙法)이며, 스님도 정말 묘한 스승(妙師)이다. 그분은 언제나 정심한 불법의 이치를 아주 세속적으로도 이해하기 쉽게, 그리고 원융무애(圓融無碍)하게 설하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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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표사에서의 삼귀의(三歸依), 오계(五戒) 법문
삼귀의는 상호 장엄한 부처님께 귀의하며, 바른 불법에 귀의하며, 청정한 복전인 스님께 귀의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부처님을 모범으로 삼아 고난의 중생을 구제하며, 모든 중생을 이롭게 돕고, 유정(有情)을 즐겁고 편안하게 돕는 것을 말합니다. 불경의 가르침에 따라 바른 길, 정법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경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경은 길입니다. 스님을 모범으로 삼아 욕념과 감정을 놓아버리고 청정한 길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삼보(三寶)라는 것은, 깨달음은 부처님이며, 바름은 법이며, 깨끗함은 승입니다. 자성삼보를 보게 되면 깨달아 미혹하지 않고, 바르고 삿되지 않으며, 깨끗하여 오염되지 않으니 곧 모든 삼신불을 보게 됩니다. 사람마다 성불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단지 일념이 바꿔지느냐에 달려 있지요. 일념이 일어나면 망상집착에 전도되지 않으니 곧 부처입니다. 그밖에 아무것도 없어요. 얼마나 신묘합니까!
우리 범부는 망정(妄情)을 자아로 여기니 생각 생각이 생멸합니다. 하지만 망정이 없고 일념이 직심(直心)이면 생각 생각이 명료하지요. 혼침하지 않고 들뜨지 않으니 12시 중 출입하고 행동함에 바로 왔다 바로 가고, 천둥소리를 들어도 머무름이 없으니 이 사람은 선 자리에서 성불할 수 있음을 보증합니다.
눈썹이 한번 움직이면 조사가(祖師家)의 규칙을 범하는 것입니다. 만약 능히 할 수 있으면 바로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낸다(應無所住而生其心).”는 것입니다. 만약 할 수 없으면 입을 떼지 말아야 합니다. 하지만 한 올의 털로 천강(千江)의 달을 건져 올리는 것을 보면 친척이 아니라도 친척입니다. 귀의했다고 해서 바로 불자는 아니에요. 하지만 한 필로 서방극락세계를 그릴 수 있으면 친척이 오는 것이 아니라도 친척인 것입니다.
부처님은 이미 성불한 부처님이며, 우리는 아직 성불하지 못한 부처이며, 모든 사람은 성불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불경을 배워야 하며 스님을 스승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에서 이르기를 스님은 인천(人天)의 복전이며 스님을 만나게 되면 반드시 예배, 공양, 청법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태만한 스님과 태만한 부처는 같은 죄인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현재 출가하는 사람은 매우 적으니, 우리는 반드시 스님을 공경해야 합니다. 정법이 흥하려면 삼보 중 하나라도 부족해서는 안 됩니다. 한 사람이 출가하는 것도 매우 어려운데, 우리 사중 제자는 단결하여 부처님의 가업을 전해가야 하며, 후대인의 의지처가 없어져서는 안 됩니다. 스님의 모습이 좋으면 부처를 믿는 사람이 저절로 많아질 것이며, 출가하는 사람도 저절로 늘어날 것입니다. 스님이 적다는 것은 불법이 쇠미하다는 상징이에요. 스님이 되고 나서 나는 스님의 어려움을 알게 되었습니다. 모두들 스님이 말하는 것이 다 옳지 않더라도 스님을 공격해서는 안 됩니다. 출가를 선택하는 것은 바로 불법에 대한 믿음이 있다는 것이니 우리는 마땅히 기뻐해야 옳습니다.
고인이 말하기를, 집안의 안 좋은 일은 밖에 알리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옳지 않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만약 당신이 생사의 난관에 봉착하게 되면 세상사람 모두 착한 사람이며 은인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부처님은 배고픔을 시현하여 우리들에게 알려주셨지요. 도심을 발하기 위해서는 자기의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하는데, 다른 사람의 옳고 그름을 어떻게 놓지 못하겠습니까? 이렇게 하면 세간에는 잘못이 없는 것입니다.
나는 모든 대덕, 장로들에게 깊이 바랍니다. 이들 가련한 스님들을 도와서 그들에게 한 그릇 밥이라도 배불리 먹이기를. 우리 모두도 헛되이 출가해서는 안 됩니다. 젊은 승려들의 성장에 관심을 가지고, 또한 연로한 스님들에 대해서는 부모처럼 돌봐드려야 합니다. 스님이 어려우면 우리들은 더욱 그들이 난관을 극복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들이 옷과 음식이 부족하지 않도록 하여 불가의 따뜻함을 얻도록 하면 이것이 바로 한집안 사람과 같은 것이지요.
사람이 이 세간에 태어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반드시 시간을 다잡아 수행해야 하며, 죽음이 도래할 것을 철저히 생각하고 소식이 있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집에 앉아 태평히 책을 읽고 신문 보는 것은 출가인의 일이 아닙니다. 도심을 발하여 염불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화엄경, 능엄경, 법화경, 금강경 등 대승경전을 독송해야 부처님의 일대시교가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이것은 왕생에 영향을 주지 않으며 마음에 걸리는 것이 없으면 바로 인간의 호시절이지요. 망상이 어디로 가면 마음도 그 곳으로 쫓아가나 몸은 따라갈 수 없는 것입니다. 앉아서 공부하는 데는 다리를 단련하여 신체를 잘 보호해야 마음이 편안하며 도가 융성해져서 공부가 상응할 수 있습니다.
문제가 있으면 선지식에게 가서 묻고 선지식을 찾지 못하였으면 『능엄경』에서 그 해답을 찾으면 됩니다. 만약 이해가 잘 되지 않으면 한편으로 경문을 억념하면서 한편으로 절하면 3일이 되지 않아 저절로 마음이 열리게 됩니다.
진정한 묘법은 말로 할 수 없는 것이며 핵심적인 것은 구경(究竟)을 말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묘법을 이해하려면 스스로 닦아 스스로 자신의 미타를 얻어야 합니다. 만약 점검해 줄 사람이 없으면 모든 경계를 떠나면 자연히 몸을 돌이킬 때가 있을 것입니다. 불문(佛門)을 한번 밟으면 불가인(佛家人)이니 법복을 입을 수 있으며, 법복을 입고 부처님께 절하면 비로소 위의가 있게 됩니다.
삼귀의에 대한 설명은 여기까지 하고 다음에는 오계에 관하여 설명하겠습니다. 오계는 아시는 바와 같이 살생하지 않으며, 도둑질하지 않으며, 사음하지 않으며, 거짓말하지 않으며, 술을 마시지 않는 것입니다.
계는 부처님의 바른 영(令)이며, 불법의 수명이며 부처님의 사리요, 금강보검입니다. 모든 종파를 막론하고 계를 지녀야 합니다. 염불은 계를 지키는 기초 위에서 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지계를 염불의 기초 위에 하는 것이 아님을 명백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계가 없으면 아무 것도 논할 수 없으며, 계·정·혜는 하나라도 빠뜨릴 수 없습니다. 계는 잘 지켜야 합니다. 당신이 무슨 계를 받았든지 간에 그 계를 잘 지켜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하든지 관계없이 다른 사람은 모두 응신이라 생각하고 오직 내가 삼악도에서 왔으니 만약 다시 수행을 잘 하지 못해서 다시 삼악도로 돌아가게 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계에 관하여 이야기를 하니, 방금 발심한 사람은 약간은 두려워하는데 겁내지 마십시오. 청정한 계를 지키면 무량무변의 공덕이 있습니다. 만약 오계만 청정하게 지킬 수 있어도 현재의 몸으로 성불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살생계입니다.
계는 잘 받아서 잘 보호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중요한 것은 계를 잘 보호하는 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하니, 여러분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길을 갈 때 머리를 들지 않고 발 아래를 잘 살핍니다. 살생하는 소리를 들을 때는 머리를 들지 않고 마음속으로 묵념합니다.
‘나무 불! 진심(嗔心)을 내지 말고 돌아가라, 돌아가라, 돌아가면 끝난다. 무생(無生) 국토에 왕생하기를 빈다.’
직접 자기 손으로 죽이지 말 것이며, 다른 사람을 시켜서도 죽이지 말아야 합니다. 만약 살생하는 것을 보았을 때는 마음속으로 묵념합니다.
‘나무 불! 목숨의 빚에 대한 원한을 풀 것이며, 진한심을 내지 말고 청정한 불국토에 왕생하기를 빈다.’
길에서 죽은 동물 등을 보게 되면 관여하지 말고 이 몸이 그에게 고통을 받게 하였으니 길을 가는 데 고통스럽다고 하며, 마음속으로 묵념하기를,
‘나무 불! 신식(神識)은 주(主)가 없으니 청정하게 안주하고 안락국토에 왕생하기를….’
살아있는 것을 보았을 때는 구제해 주어야 합니다. 길가 한쪽에 놓고 마음으로 묵념하기를,
‘나무 불! 탐심을 놓으세요. 무우(無憂)국토에 왕생하기를….’
만약 재가자가 채식을 한다면 채식할 조건이 안 되더라도 먹지 말아야 합니다. 이미 죽은 것을 사 가지고 왔을 때는, 요리할 때 마음속으로 묵념하기를 ‘나무 불! 몸은 사대로 이루어져 있으며, 형상은 환화(幻化)에 속하니, 무구(無垢)국토에 왕생하기를….’
살아있는 것을 사와서 죽이면 안 됩니다. 만약 조심하지 않아 동물을 다치게 했을 경우 이렇게 묵념합니다.
‘나무 불! 마음을 내지 말고, 마음을 내면 죄가 생기니, 극락정토에 왕생하기를….’
가장 좋은 것은 채식하며 죽이지 않고, 육식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만약 이미 채식을 하는데도 고기 먹고 싶은 마음이 그치지 않으면, 매일 아침 지장보살 멸정업진언을 21번 외우고, 불전에 올린 물 한잔을 마십니다.
두 번째는 도둑질을 하지 않는 계입니다.
이 계는 전문적으로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을 금할 것이며, 육근이 도둑질하지 않게 막고 공부하게 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어떠한 물건도 주인이 동의하지 않은 것은 움직일 수 없으며, 하물며 가서 훔치는 것은 더 말할 것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내 물건을 보고 좋다고 하면 그에게 주면 됩니다. 다음은 본인이 계를 지키는 방법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물건이 별로 없는 사람입니다.
눈의 도적을 막아야 합니다. 나는 고개를 들지 않으며, 여인을 바로 보지 않으며, 좌우로 살피지 않고 갑자기 뒤를 보지 않으며, 위를 보지 않으며, 멀리 보지 않고 5m 정도를 보며, 텔레비전을 보지 않고 신문 잡지를 보지 않습니다. 이렇게 하여 눈의 도적을 꽉 잡습니다.
귀의 도적을 막아야 합니다. 한쪽 귀로 들은 것은 한쪽 귀로 흘리며, 노래(불교음악 포함)를 듣지 않으며, 음악을 듣지 않습니다. 좋고 나쁜 것을 듣게 되면 하하 하고 웃어넘깁니다. 여인의 노랫소리와 웃음소리를 듣지 않고 귀의 도적을 잘 살펴 번뇌가 생기지 않게 합니다. 일심으로 청정한 염불소리를 듣습니다.
코의 도적을 막아야 합니다. 의식적으로 향기로운 냄새를 맡지 않으며 불향이라도 맡지 않습니다.
혀의 도적을 막아야 합니다. 공부하는 사람은 깨, 향유, 향채(香菜), 고추, 조미료, 오신채 등을 먹지 않거나 적게 먹는 게 가장 좋습니다. 이들 물질은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을 격렬하게 자극시킵니다.
몸의 도적을 막아야 합니다. 부드러우며 꽉 끼는 옷을 입지 않으며, 부드러운 좌석 또는 침대에 앉거나 자지 않고 정신집중이 되지 않거나 실념하는 것을 방비합니다. 정말로 공부하려면 일체를 모두 방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공부는 할 수 없습니다.
뜻의 도적을 방비해야 합니다. 만나는 모든 인연에 제2념을 막는데, 만약 악념을 막지 못하면 마음이 크게 혼란해져서 염불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심란하면 「반야심경」 혹은 「대비주(大悲呪)」를 여러 번 외우며, 마음이 안정되면 다시 염불합니다.
만약 무엇이라도 염할 수 없을 지경이면 멈추고 불전에 올린 청정수 석 잔을 아침에 한 잔, 정오에 한 잔을 마시고, 저녁의 한 잔은 창 밖에 쏟으며 묵념합니다. ‘모든 중생의 번뇌를 끊게 하시고 청정 안온하게 하소서.’ 이후 「대비주」를 한 번 외웁니다. 그러면 3일이 지나지 않아 마음이 안정되며, 의념이 밖으로 나가지 않습니다. 이렇게 염불하면 착실하게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치료하기 어려운 병이 있으면 무슨 약이든 먹기 전에 그 약을 불전에 태우는데, 먹을 약의 양만큼 약사여래부처님 전에 태웁니다. 세 개의 기름등을 밝히고 기름을 더할 때마다 묵념합니다.
‘저와 모든 중생이 몸과 입과 마음을 청정히 하여 모든 부처님에게 공양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병은 곧 낫습니다.
이것은 육근이 육진의 도적에 대한 방비로서 마음의 혼란을 막을 수 있으며, 부처님이 말씀하신 모든 법은 다 마음을 치료하기 위한 것입니다. 일체의 마음이 없으면 어찌 일체의 법을 쓸 수 있겠습니까?
세 번째는 사음(邪淫)하지 않는 계입니다.
재가불자가 사음하지 않는 것은 바로 부부 이외의 사람과는 성관계를 맺지 않는 것입니다. 이 점 모두 잘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마음에 대하여 말하면 매우 어렵습니다. 욕계중생은 욕념으로 인하여 생하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 중음(中陰)에서 태에 들 때 남자를 생각하는 사람은 얼굴을 밖으로 향하고, 여자를 생각하는 사람은 얼굴을 안으로 향합니다. 태에 드는 것은 성욕으로 인하여 그런 것이며, 성욕은 또 업감(業感)으로 인하여 이루어지며, 무명(無明)이 이곳에 있으니, 자기도 잘 알지 못하며 주재할 수가 없습니다.
홍진세상에 태어난 이 중에 어떤 남자가 장부인가. 무명이 오면 모두 괴롭습니다. 『능엄경』에서 말하기를 음심(淫心)을 제거하지 못하면 생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하였는데, 매우 중요한 법문입니다.
지금 많은 수행자들은 음심을 대치하는 데 방법이 없으니 매우 고통스러워하지요. 마음으로 다음과 같이 묵념합니다. ‘저와 모든 중생이 몸에 음란한 습관이 없고, 마음에 음란한 생각이 없게 되어 감로의 관정(灌頂)으로 청량하고 자재하게 되기를 비옵니다.’
그리고 마음으로 관상하기를 머리 위에 백의대사 관세음보살께서 깨끗한 감로수를 폭포처럼 쏟아 부어 내 몸을 목욕시키니 더할 나위 없이 상쾌하다고 생각하는데, 이 방법이 매우 효과가 좋습니다.
재가불자는 음습이 있어 홍진세상을 아직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부부관계를 가진 자가 도심을 발하고 또한 부부가 화목하기 위해서는 성생활에 만족해야 합니다. 만약 보살계를 받았으면 십재일(十齋日)에는 (부부관계를) 피해야 합니다. 성관계를 맺을 때 마음으로 묵념하기를
‘대자대비하신 관세음보살께 귀의하오니, 원컨대 저와 모든 중생이 몸에 음욕의 즐거움이 없고 마음에 음심이 없게 되며, 버드나무 정수(淨水)를 모든 속진에 뿌려 불꽃이 홍련(紅蓮)으로 변하기를 비옵니다.’
또 마음으로 관상하기를 ‘백의관세음보살께서 버드나무 가지와 병을 잡고 버드나무 가지를 공중에 뿌려 무수한 연꽃으로 변화되는 것을 생각한다.’ 한편으로 관상하며 한편으로 관세음보살을 묵념합니다. 이렇게 하면 음욕이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남녀의 모습이 있으나 마음에는 남녀의 형상이 없으니, 부부가 불교를 믿는 것 때문에 화목하지 못할 것을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몸은 홍진세상에 태어났으나 마음은 홍진세상에 물들지 않네.
혼탁한 고해 속에 태어났으나 마음이 청정한 사람이 되었네.
네 번째는 거짓말하지 않는 계입니다.
말을 함에 있어 반드시 더하지도 말고 빼지도 말 것이며, 이렇게 시간이 오래 되면 자연히 선정이 생깁니다.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는 방편으로 거짓말을 할 수 있습니다.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토끼를 죽이려고 쫓아가는데 오계를 받은 당신에게 토끼가 어디로 도망갔는지 방향을 물을 때에는 토끼를 살리기 위해서는 부득이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토끼를 쫓는 자와 토끼와는 인과의 빚이 있으니 잘못 말하면 인과를 그르치게 됩니다. 이때 당신은 다음과 같이 묵념합니다.
‘모든 중생이 서로 해치지 않고 서로 얽히게 하지 않고 그들의 원결(寃結)이 풀어지기를!’
뒤이어 토끼를 쫓는 자에게 방편으로 거짓말을 해주어 그들의 죽음의 빚이 풀어지게 하며, 장래 수명이 다하여 자연적으로 죽게 되면 토끼는 어떤 사람도 원망하지 않게 됩니다. 방편으로 거짓말을 하는 것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것이지, 자기를 위해서 하면 안 됩니다. 모두 반드시 주의해야 합니다.
다섯 번째는 술을 마시지 않는 계입니다.
술에 대해서는 마시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아야 합니다. 무능한 사람은 술 마시는 장애가 모두 큰데 하물며 유능한 사람이겠습니까. 많은 영웅호걸들이 술을 많이 마셔 타락하니 반드시 술을 끊어야 합니다.
술은 난세의 영웅호걸들로 하여금
우쭐거리며 본성을 어지럽게 하고 색마가 되게 하네.
마음이 함부로 날뛰며 주재함이 없으니
어떤 영웅 남자가 대장부인가!
부처님의 계를 받아 부처님의 지위로 들어가려면 반드시 오계의 옷을 걸쳐야 합니다. 우리들이 불보살과 같이 자비로 중생을 보살피려면 큰일, 작은 일 모두 남이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하며 자기가 곳곳에서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모두 기뻐하게 되며 부처님이 우리를 보아도 더욱 기뻐하게 됩니다. 우리들이 불보살의 사업으로 중생을 제도하여 다 함께 상적광토로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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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아가 지장경 듣기를 좋아하다
이웃 사람 한 분이 찾아와 자기 딸이 임신 8개월째인데, 줄곧 입덧이 너무 심하다고 하소연하였다. 요즘 들어서는 태아가 시시때때로 뱃속에서 때리고 차고 하는 느낌으로 고통이 이만저만 아니란다. 어떤 사람이 딸에게 염불을 하면 고통이 줄어들 것이라 하였다는데, 자기들은 회족(回族)으로 이슬람교를 신봉하기 때문에 감히 염불을 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나는 그녀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해 주었다.
“불교, 천주교, 기독교, 이슬람교, 그리고 중국의 도교, 유교 등은 바른 종교로서 모두 인애(仁愛)를 주창하고 사람들에게 선을 행할 것을 권하는 것이며, 그들이 종교라고 이름하지만 사실은 모두 인류의 정신세계에 대하여 탐색하며 계몽하는 학교인 것입니다. 단지 지식을 가르치는 깊이와 넓이가 다를 뿐입니다.
불교가 가르치는 것은 우주와 인생의 보편적 진리입니다. 모든 바른 종교를 인정하고 포용하니 마치 종합대학과 같은 것입니다. 석가모니부처님은 바로 이 대학의 교장인 셈이지요. 공자는 학생들에게 사람되는 가장 기본적인 소양, 즉 인·의·예·지·신을 가르쳤습니다. 노자는 우리들에게 사람됨의 바탕 위에 신체를 건강히 하고 인체의 잠재적 능력을 개발하여 천인합일(天人合一)의 경지를 구하여 우리의 인생을 화목하고 아름다움이 충만한 생을 살도록
하신 것입니다. 마호메트와 예수는 여러 종족, 국가, 백성의 정신적 인도자로서 서로 사랑하여 싸움 없는 인류사회를 건설코자 하신 것입니다. 불교적인 입장에서 보면 이 모두가 다 불보살의 화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모든 중생을 위하여 그 당시, 그 사회의 실정에 맞게 적합한 가르침을 펼친 것입니다. 즉 ‘각종 몸으로 각각의 중생을 제도한다’는 것이죠. 이것은 또한 사람의 근기에 따라 가르침을 주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따라서 당신 딸이 의혹과 곤란에 봉착하여 선생님에게 가르침을 구하는 것은 모하메트도 반드시 기뻐하며 지지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숭고한 스승은 모두 그의 학생이 진보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나의 해석을 듣고는 그녀는 걱정이 해소되었다며 기뻐했다. 나는 또 그녀에게 말하였다.
“불교의 도리에 따라 이야기하자면, 당신 딸의 뱃속 태아는 악연으로 인하여 생긴 것이며, 빚을 받으러 온 것입니다. 아마도 살생하여 고기를 먹은 업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딸에게 지금부터 고기를 먹지 말게 하고 태아를 위하여 『지장경』을 독송하게 해보십시오. 딸이 공경심으로 독송하면 반드시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만약 『지장경』 일곱 번을 독송하여 태아에게 회향해 준다면 그들간의 원한관계는 소멸될 것입니다. 만약 효과가 없다면 다시 고기를 먹어도 좋습니다. 만약 내가 틀린 말을 하여 마호메트 교주에게 죄가 된다면 당신 딸의 독경은 효과가 없을뿐더러 나도 벌을 받게 될 것이며, 도리어 알라신이 당신 딸에게 가피를 줄 것입니다.”
말을 마치고 나는 그녀에게 간체자로 된 『지장보살본원경』 1권을 주었다. 다음날 해질 무렵 또 동네에서 그녀와 마주쳤다. 기뻐서 나에게 감사하다고 말하며 어제 집에 돌아가 내 말을 딸에게 전했더니 딸은 바로 믿으면서 즉시 손을 씻고 탁자를 깨끗이 하여 경을 읽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정말 놀라운 것은 경을 읽기 시작한 그 때부터 지금까지 태아는 줄곧 조용하며, 딸도 마침내 편안한 잠을 자게 되었단다. 이것은 최근 몇 달 이래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딸은 『지장경』을 1편 다 읽고 지금까지 한 번도 고기를 먹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가 말하기를 불법은 진실로 매우 영험이 있으며, 만약 일찍 가르침을 청했더라면 어찌 몇 개월을 고생했겠느냐고 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딸은 편안하게 귀여운 아들을 낳았으며 낳을 때 거의 아무런 고통도 없었다. 산욕기에 들어서 매일 『지장경』을 1편 독송하였으며, 이제는 제법 빨리 읽어 내려간다. 그 후 그녀는 또 나에게 말하기를, 이전에는 딸이 고기를 좋아했는데 이상한 것은 지금은 고기냄새를 맡으면 구역질이 난다고 하며, 이것은 부처님이 못 먹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물었다.
나는 그녀에게 “불보살은 스승과 같이 우리들에게 가르칠 책임이 있으며, 배우고 안 배우고는, 혹은 배운 지식을 행하고 행하지 않는 것은 학생 자신의 일입니다. 스승이 문 안으로 데리고 들어올 수 있으나 수행은 개개인에게 달려 있습니다. 고기를 먹고 안 먹고는 자기의 일입니다. 고기 냄새에 구역질이 나는 것은
그 동안 독경하여 심신이 정화되었기 때문이며, 자신이 본래 가지고 있는 불성(佛性)이 드러나기 때문으로 다시는 더러운 중생의 고기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며, 단지 각종 채소와 콩 제품을 많이 먹으면 몸은 반드시 이전보다 더 건강해질 것입니다. 믿어지지 않으면 병원에 가서 고기를 먹지 않는 환자가 몇이나 되는지 보십시오.”라고 말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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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 정진 중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이
관의 거사(管義居士)
길림(吉林)의 관의 거사, 그는 불치의 병을 앓아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와 갈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후 선지식을 만나 교화를 받아 오계(五戒)를 수지하고 온 마음을 다해 염불수행을 하여 기적같이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더욱 열심히 염불 정진하게 되었다.
어느 날 하루 염불 정진 중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이 홀연히 눈앞에 나타난 것을 보고 매우 기뻐하였다. 또 어떤 때에는 염불하는 사이에 홀연히 지옥에 가기도 하였다. 지옥에서 벌을 받고 있는 죄인들이 고통으로 울부짖으며 그에게 도움을 구하는 것을 보기도 하였다. 그때 그는 “나는 지금 당신들을 어떻게 구제해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하였다.
이 관의 거사 부부는 불경을 깊이 연구하고 염불하면서 오계를 지키며 매일 행주좌와 언제 어느 때에도 정념을 잃지 않았다. 이제 출가하여 부처님의 은혜에 보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사방으로 어느 절 어떤 스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출가하는 게 좋은지 자문을 구하였다. 묘법 노스님께서 이런 사정을 들으신 후 한 수의 게송을 읊으셨다.
불법은 듣기 어렵지만 오늘 이미 들었고
눈 밝은 스님은 찾기 어려우나 경 속에서는 찾을 수 있네.
이 몸을 금생에 제도하지 못하면
어느 생에 이 몸을 제도할까.
재가불자로서 네 가지 중계(重戒)를 엄히 지키고
육도만행을 몸소 행하니 자비희사(慈悲喜捨)는 보살행이며
모든 행에 머묾이 없음이 선(禪)이네.
청정한 아미타불이 마음 가운데 앉았으니
희로애락이 모두 범음(梵音)이네.
중생을 널리 교화하면 백의(白衣)를 입은 것이며
자기도 제도하고 남도 제도하면 불신(佛身)을 증득하리라.
관의 거사는 이 게송을 받아 읽은 후 계속하여 경서에 정례하며 더욱 수행에 정진하여
다시는 밖으로 반연을 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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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 고기를 즐겨 먹은 과보
나는 장의(張義)라고 하며 금년 24세, 불교에 관하여는 초학에 불과하여 불법에 대하여 별로 아는 게 없으며, 불법을 담론할 자격이 없다. 그러나 불교를 배우면서 나와 우리 가족들에게 일어난 일을 적어 여러 불자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한다.
나는 19세 때 큰 병에 걸렸다. 처음에는 오른쪽 다리가 마비되면서 걸을 때 힘이 빠져 병원에 가서 검사해보니 매우 심각한 상태니 빨리 입원하라고 하였다. 그 날 저녁 양쪽 엉덩이뼈 관절부분이 아파서 못 견딜 지경이었으며, 양쪽 다리는 움직일 수도 만질 수도 없었다. 만약 누가 조심하지 않아 나의 침상에 부딪히면 아파서 온몸에 경련이 일어날 정도라서 사람을 보면 나를 만질까 봐 겁이 났다.
부모님은 매우 놀라 천진(天津) 시내 대학병원을 전전하며 치료하였으나, 무슨 병인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내가 만질 수조차도 없는 몸으로 곳곳에 가서 검사를 해야 했으니 그 때 받은 고통은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지금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 당시 내 마음을 조급하게 한 것은 어느 병원에 가도 확실한 병명이 나오지 않은 것이었으며, 최종적으로 아마 ‘강직성 척추염’이라 할 수 있다는 판정을 받았다.
의사는 부모님께 이 병은 치료할 수 없으니 집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라고 하였다. 그래서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몸의 고통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고 하루종일 움직이지 못한 채 침대에 누워있었으며, 저녁이 되면 통증은 더욱 심하여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러니 부모님은 쉬지도 못하고 주야로 번갈아 나를 돌봐야 했다. 그들은 낮에는 백방으로 치료할 병원을 구하러 다니고 저녁에는 잠도 편히 주무시지 못하였으니, 그 때 나는 하늘 같은 부모님의 은혜를 깊이 느끼게 되었다.
어머니 직장 동료 중에 양씨라는 분이 계셨는데, 불교를 연구하여 불법의 이치를 깊이 깨달은 분이다. 후에 오대산 묘법 노스님에게 귀의하여 계정혜 삼학을 부지런히 닦으며 법을 널리 알리고 사람들을 제도하였다. 우리 부모는 사방으로 치료할 방법을 구하였으나 구하지 못하고 있는데, 양 여사로부터 묘법 스님께서 인과의 이치를 밝혀서 많은 난치병자들로 하여금 병마에서 벗어나게 해주신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리하여 부모님은 시험삼아 해본다는 심정으로 묘법 노스님께 청하여 나의 병에 대해 말씀드렸다.
묘법 노스님은 듣고 난 후 잠시 멈추더니 다음과 같이 물었다.
“그는 개구리고기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까?”
어머니가 대답하였다.
“그는 맵게 볶은 참개구리 고기를 가장 즐겨 먹으며 일주일에 두, 세 번은 먹습니다.”
“그는 현재 두 다리를 이렇게 벌리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는 두 다리를 스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스님은 또 말하였다. “그가 두 다리를 벌리고 누워있는 자세가 마치 개구리 다리 형상이 아닙니까?”
부모님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노스님은 말하였다.
“그의 병은 참개구리 다리를 너무 많이 먹어서 초래된 것이며, 이것이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인과응보라는 것입니다.”
그런 후 스님은 또 부모님께 불교의 지식과 인과응보의 도리와 실례에 대하여 이야기하였으며, 친히 우리 집에 나를 보러 오시겠다고 하였다. 스님은 나를 본 후 우선 나에게 꿋꿋하게 견딜 것을 격려하며 병에 놀라 쓰러지면 안 된다고 하면서 최대한 나를 돕겠다고 하셨다.
다만 나에게 스님이 시키는 대로 따르면 반드시 좋아질 것이라고 하셨다. 스님이 오시기 전까지 나는 하루 종일 고문과 다름없이 침대에 누워 하루를 한해같이 지냈으며, 이후의 생활에 대하여 어찌해야 할지를 몰랐다. 그러나 스님의 말씀을 듣고 난 후 어둠 속에서 광명을 만난 것과 같이 더할 나위 없이 격앙되었으며, 스님만이 나를 구해주실 수 있을 것이라고 느꼈다. 이어서 스님은 인과응보와 육도윤회의 이치에 대하여 말씀해 주셨다. 당시에는 그다지 잘 이해하지는 못했을지라도 내심 스님의 말씀대로 따라 행하면 반드시 병이 좋아질 것을 믿게 되었다. 스님은 나에게 몇 권의 불교서적을 주시면서 열심히 읽어보라고 하셨다.
스님은 말씀하시면서 손으로 나의 다리를 주물러 주려고 하셨다. 모친이 황망히 저지하면서 “건드리지 마세요. 만지면 아파서 고함을 칩니다.”라고 하자, 스님은 웃으면서 나에게 물었다. “주물러 주어도 될까?”
본래 나는 다른 사람이 내 몸에 손을 대는 것은 매우 겁을 냈는데 스님이 물었을 때 오히려 스님에 대한 믿음 때문에 동의하였다. 노스님의 손이 나의 두 다리에 접촉했을 때 예상외로 조금도 고통이 없을 뿐 아니라 도리어 열이 나면서 저릿저릿한 게 매우 편안하였다. 내 입장에서는 두 다리가 새로 건강을 되찾게 된다면 그게 가장 큰 행복이고 만족이었기에 내 마음은 스님에 대한 공경으로 충만하였다. 아울러 처음으로 불법의 신비함과 위대함을 느꼈으며, 다시 새롭게 희망찬 생명의 불꽃을 피우게 되었다.
스님은 가실 때 나에게 다시는 개구리 고기를 먹지 말 것이며, 다시는 다른 동물을 죽여 먹지 말 것을 신신 당부하면서 만약 전부 채식을 하게 되면 병의 치료에 아주 좋으며, 과거에 저지른 살생의 업에 대하여 진심으로 참회해야 한다고 하였다. 부처님이 우리에게 이르기를 “하늘에 가득 찬 큰 죄업도 한번 참회하면 소멸한다.”고 하셨다고 하시면서 매일 나 때문에 죽은 많은 생명을 위하여 염불 천도하면 서서히 다리가 좋아질 것이라고 하셨다.
스님이 가신 후 나는 그분의 말씀에 따라 채식하며 염불하기 시작하였으며, 집안사람들에게 다시는 나를 위하여 살생하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그리고 나와 같이 염불하면 가장 좋으며 내가 하루 빨리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하면서 얼마를 지내자 병세가 안정되어갔으며 아울러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그 후 계속하여 친척, 친구들이 와서 나의 신체가 매우 허약한 것을 보고 고기를 많이 먹어 영양보충을 하라고 권하였다. 일반 사람이 볼 때 병이 있으면 보신을 해야 하며, 무엇을 먹으면 무엇에 좋으며, 신선한 것, 산 것일수록 영양 가치가 더욱 높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본심은 내가 하루 빨리 완쾌되기를 바라지만 “병은 입으로부터 들어온다”는 진정한 뜻을 누가 이해하겠는가? 주위 사람들이 모두 고기를 먹으라고 말하니 부모님도 나를 생각하는 마음에서 고기를 먹으라고 권하였다. 이유인즉 먼저 몸을 보양하고 나서 다시 채식을 하면 되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 당시 내 마음도 신심이 견고하지 못하고,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여 나는 또 고기를 먹기 시작하였다. 나중에 내 자신이 『지장경』에서 이야기한 “비록 선심을 발하여도 잠깐 사이에 퇴보한다.”는 사람의 부류에 속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시 비린내가 나는 음식을 먹기 시작하고부터 두 다리는 점점 통증이 증가하여 주사를 맞고 약을 먹어도 효과가 없었다. 부모님은 이때 다시 묘법 노스님을 생각하고 스님을 청하려고 하였다. 양 여사는 스님은 이미 남방의 절에 설법하러 가셨다고 말하였다. 그 후 몇 번의 곡절을 겪으면서 마침내 스님과 연락이 되었다. 스님은 전화를 통해 첫마디로 묻기를 “너 또 고기 먹었지?”라고 하셨다.
옆에 있던 어머니가 마음이 초조하여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며칠 전 그에게 모두가 보혈에 좋다고 말하여 선어(鷺魚)를 요리하여 주었습니다.”
스님은 탄식하시면서 “어째서 내가 한 말을 기억하지 않나. 그런 음식을 먹으면 네 몸에 좋을 게 없을 뿐 아니라 너의 죄업을 증가시킬 것이며, 나아가 병세를 가중시킬 것이다. 과거의 업은 없애지 못하고 새로운 업을 더하는구나. 지난 번 내가 너에게 몸을 조리한 후 채식을 지속하면서 염불 참회하면 반드시 병세가 좋은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며, 악화되지는 않을 것이라 했지?”
온 가족은 스님의 말씀을 듣고 난 후 후회막급이었으며, 이후로는 반드시 스님의 말씀대로 행할 것을 맹세하고 구제방법을 청하였다. 스님께서는 나에게 『지장보살본원경』을 많이 독송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읽을 때 진실된 마음, 참회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면 점점 업장이 소멸될 것이며, 아울러 가능한 빨리 「대비주」를 배워 매일 지성으로 독송하면서 송주의 공덕을 법계중생에게 회향하면, 자기 자신을 위할 뿐만 아니라 효과도 더욱 좋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 때부터 나는 비로소 진정으로 불법을 공부하기 시작하였다. 매일 『지장경』과 「대비주」 염송을 지속하였다. 처음에는 모르는 글자가 많아 염불테이프를 사와서 한 자 한 자 배우면서 지속하니 얼마 안 지나 『지장경』을 완전하게 읽을 수 있었으며, 「대비주」는 어느새 유창하게 암송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매일 집중하여 독경하고 송주하며 염불하였으며, 다시는 내 병이 언제 좋아질 것인지 염두에 두지 않기로 하였다. 일심으로 수행하며 모든 것을 인연에 맡기기로 하였다. 남들이 온갖 이유를 대면서 나에게 고기 먹을 것을 권했으나 다시는 동요되지 않았으며, 그러자 서서히 병세는 호전되기 시작하였다. 병원에 가서 검사해보니 ‘대퇴골괴사’라는 진단이 나왔다.
그 후 중의(中醫)에게 치료해보니 이 병은 난치병에 속하며 속칭 ‘불사인의 암’이라 하였다. 그러나 나의 병은 점점 좋아졌다. 비록 정상인과는 차이가 있지만 이전과 비교하면 천양지차로 많이 좋아진 것이다. 나는 이것은 바로 ‘경계는 마음을 따라 바뀐다’는 것이라 느꼈다. 따라서 내 마음속에는 내 병이 무슨 병이든지 간에 두려움이 일어나지 않았으며 슬픔 같은 것도 없었다. 이것은 인과응보이니 고통을 참고 견뎌내야 하는 것이다. 악기(惡氣)가 없어지면 상서로운 기운이 남는다. 불법을 깊이 믿으면 반드시 나쁜 경계가 좋은 경계로 바뀔 것이다. 나에게 이런 일이 발생한 뒤부터 주위 모든 분들에게 나와 같은 전철을 밟지 않도록 계를 지키며 살생하지 말라고 권한다.
“인과응보는 그림자가 몸을 따르는 것과 같다.”는 말은 매우 두려운 것이다. 아마 어떤 사람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은 개구리나 갖가지 동물들의 고기를 먹어도 왜 아무런 보응이 안 일어나는가?’라고.
나의 경우 병을 얻기 하루 전에도 자신이 그 다음 날 드러눕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 당시에는 누가 나에게 살생하여 고기를 먹으면 악한 과보가 있다고 일러주어도 믿지 않았을 것이다.
“악에는 악보(惡報)가 있고, 선에는 선보(善報)가 있다. 보응이 없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도래하지 않았을 뿐이다.”
“전생의 인을 알고자 하면 금생에 받는 것이 그것이며, 내생의 과를 알고자 하면 금생에 짓는 것이 그것이다.”
“만법개공(萬法皆空)이며, 인과불공(因果不空)이다.”
“인(因)이 있으면 반드시 과(果)가 있으며, 마치 그림자가 형상을 따르는 것과 같다.”
불조(佛祖)께서 말씀하신 인과법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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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 오음염불 방법 1
오대산 묘덕암(妙德庵)에서 법문하다
우선 묘덕암 주지스님과 대중들이 저에게 밥을 보내 준 것에 대하여 고맙게 생각한다. 하지만 절에서 법문을 청하여 매우 난처하였다. 앉아 있는 대중들 모두 불학원(佛學院)을 졸업하여 불교지식이 매우 깊은 분들인데, 아는 것 없이 밥을 빌어먹는 나를 치켜세워 앞에 앉아 법문을 설하라 청하니 정말로 난처하기 그지없었다. 어쩔 수 없이 법문을 하게 되었다.
모두들 내가 절하며 다니는 것을 신비한 눈으로 보지 말아야 합니다. 실제로 대해로 강으로 다녔지만 잡은 게 아무것도 없으며 아무것도 배운 게 없습니다. 내가 잘못 말하면 모두들 지적해 주시어 더욱 많은 사람을 그르치게 하는 것을 면하게 해주십시오. 만약 문제가 없으면 가르침을 따라 봉행하여 모두들 개개인들이 왕생할 수 있도록 하십시오.
나는 종남산에서 생명을 대가로 은거하신 스님을 만나 그분을 의지스승으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당시 큰스님과의 문답을 여러분에게 봉헌해 드리겠습니다.
내가 물었다: “어떻게 하면 부처를 볼 수 있습니까?”
스승의 답변: “염불하면 부처를 볼 수 있어.”
●문|“어떻게 염불합니까?”
●답|“호흡오음염불을 하면 돼.”
●문|“어떻게 호흡합니까?”
●답|“내쉬는 숨에 염불하고, 들이쉬는 숨에 멈추게.”
●문|“어떤 공양이 가장 큽니까?”
●답|“부처님께 몸과 입과 뜻으로 하는 공양이 가장 크네.”
●문|“어떻게 공양합니까?”
●답|“염불 일천만성(一千万聲)을 공양하면 곧 자기의 삼신불(三身佛 : 법신, 보신, 화신)을 만나게 돼.
●문|“어떻게 하는 것이 오음염불입니까?”
●답|“첫째음은 평음(平音)으로, 둘째음은 높게, 셋째음은 평하게, 넷째음도 평하게, 다섯째음은 돌아오는 음으로 하면 돼.”
●문|“어떤 부처를 볼 수 있습니까? 마음은 또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답|“자기의 삼신불을 보게 되면, 바야흐로 이일심(理一心)이 되는 것이네.”
●문|“무엇이 사일심(事一心)입니까?”
●답|“염불수행의 관점에서 말하면, 염하지 않아도 저절로 염해지는(不念自念) 경지이네.”
●문|“『능엄경』의 돌이켜 들으며 자성을 듣는 것(反聞聞自性)은 염불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답|“염하지 않아도 저절로 염하게 될 때 반문(反聞)은 돌이켜 듣는 것(反聽)이 되며, 그렇게 듣게 될 때, 돌이켜서 ‘누가 염불하는가’ 하고 의심을 하게 되면, 곧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삼신불을 볼 수 있게 돼.”
●문|“어떻게 음성을 들어 도를 깨닫습니까?”
●답|“귀로 듣는 것은 청(聽)이며, 마음으로 듣는 것은 문(聞)이며, 마음으로 듣게 되면 도를 깨닫게(悟道) 된다.”
●문|“무엇이 마음으로 들어 도를 깨닫는(心聞悟道) 것입니까?”
●답|“염불공부의 관점에서 말하면, 염하지 않아도 염하게 되는 것이 염불의 사일심(事一心) 경지이며, 반문(反聞)이 반청(反聽)이 되며, 염불을 반청(反聽)하게 될 때 반문(反問)하기를 ‘염불하는 놈이 누구인가’ 하면 곧 본심(本心)을 보게 되어 도를 깨닫게 된다.”
●문|“부처님은 어떻게 접인합니까?”
●답|“염불심으로 무생법인(無生法忍)에 들어가며, 염불하는 마음이 생하지 않으면 바로 견성(見性)이며, 자성미타(自性彌陀)를 보게 된다.”
●문|“어떻게 마(魔)가 붙게 되는 것입니까?”
●답|“오직 마음이 생각하는 바를 따라 환상적인 경지를 좋아하게 되면, 천마(天魔)와 귀신이 그 틈을 타서 수행자의 신식(神識)에 붙게 되며 없애기가 어렵다.”
●문|“부처님상이 접인하러 오는 것을 보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어떻습니까?”
●답|“자기의 삼신을 보지 않으면 모두 환상에 속한다. 하지만 자기의 화신(化身)이 접인하면 육신은 변하여 응신(應身)이 된다. 만약 접인하러 오는 (부처)상이 있으면, 어째서 조념(助念)하면 (조념자는) 부처님 모습을 보게 되어도 왕생하지 않는가? (이것은) 왕생하지 않으려는 것인지, 아니면 부처님이 접인하지 않는 것인가? 이것은 바로 왕생자의 화신이 자기를 접인하러 오는 것으로서 조념자로 하여금 환희심을 내게 하기 위해서이다.”
●문|“어떻게 왕생의 때가 이르렀음을 저절로 알게 됩니까?”
●답|“단지 삼신을 보게 되면 뜻에 따라 왕생한다.”
●문|“염불할 때 왜 크게 혼침이 옵니까?”
●답|“기력이 부족하게 되어 숨이 가빠진다. 호흡오음염불의 이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사람으로 하여금 기력이 충만하게 하며, 폐의 기능을 강화시킨다. 그리하여 기분이 상쾌하게 되어 혼침에 빠지지 않게 된다.”
●문|“선(禪)과 정(淨)을 같이 닦을 수 있습니까?”
●답|“선이 있고 정이 있으면 금생에 반드시 인천(人天)의 스승이 된다. 무생법인(無生法忍)에 들어가는 것이 정이며 선이다. 정토는 비록 방편으로 접인하여 무생법인에 들어가지만, 선(禪)은 별도의 근기가 있으면 바로 무생인에 들어간다.”
●문|“은사스님, 스님은 현재 이미 삼세제불과 차이가 없이 화신으로 제 생명을 구했습니다. 스님은 어떻게 삼신불을 보게 되었습니까? 말씀해주십시오.”
●답|“나는 일곱 살 때 부모를 모두 잃고 13세에 출가하였다. 스승이 나를 집 없는 아이로 여겨 받아주었다. 나는 대중들이 오음염불하는 것을 듣고 나도 따라서 염불하였다. 저녁에도 잠자지 않고 불전에서 염불하였다. 염불이 염하지 않아도 저절로 염하게 되었을 때 사방에서 염불하지 않는 곳이 없게 되었다. 불전 위, 공중, 탁자, 의자 등도 모두 염불하는 것을 듣게 된 것이다.
나는 사방에서 염불이 끊이지 않는 것을 듣고 누가 염불하는 것인가 하고 의심하게 되었다. 3일 동안 부처님을 돌면서 염불하는데, 평평한 길에서 미끄러져 넘어졌다. 하지만 넘어진 게 좋은 일이었다. 넘어지면서 바로 한소식 하게 된 것이지. 나는 곧 일어나 말했다. ‘석가모니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한 구(句)도 법을 설하지 않았다고 하셨는데, 정말로 한 구도 설하지 않았군.’”
●문|“스님, 마땅히 하산하여 중생을 널리 제도해야 되지 않습니까?”
●답|“지금은 게으른 자가 너무 많아. 만약 정진하는 자가 있으면 하산할 수 있지. 너희들 당대에 불법이 흥하게 될 것이다. 좋은 수행방법이 있으면 성취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자연 불법이 흥성하게 될 것이다.”
●문|“스님, ‘호흡오음염불’, 이 방법을 대중들에게 알려도 됩니까?”
●답|“알려도 된다. 그러나 지금은 선근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믿음과 원력을 일으키지 않으면 속임을 당할까 두려우며, 결과적으로 시간만 헛되이 소비하게 될 수 있어. 총명한 것이 도리어 지혜를 그르치게 돼. 너는 지금 아직 젊으니 법을 널리 펴는 데 힘쓰지 말고 은거하며 열심히 배향해야 해. 너의 법원(法源)은 뒤에 있으며, 크게 할 일이 있을 것이야. 중생이 어려울 때 반드시 도와야 한다. 중생을 위하여 죽을지언정 자기를 위하여 살면 안 된다. 이번에 하산하면 많은 어려움과 고통이 있더라도 대처해 나가야 해. 사람 가운데 대장부는 바로 그런 것이다. 내 일에 대해 말하지 말라. 가거라. 장원심(長遠心)을 발해야 한다.
위의 내용이 나와 은사스님과의 문답으로 여러분들에게 분명하게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부끄럽습니다. 성스러운 스님은 은거하고 계십니다. 내가 이 밥통을 앞으로 밀며 제멋대로 지껄였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은 주의 깊게 들어주십시오.
먼저 정계(淨戒)를 엄격히 지켜야 합니다. 당신이 무슨 계를 받았든지 잘 지켜야 합니다. 출가하여 계를 지키지 않으면 헛되이 고생만 할 뿐입니다. 재가불자도 계를 지켜야 그 동안의 습기를 끊을 수 있습니다. 계는 무상보리(無上菩提)의 어머니이며, 계는 부처님의 정령(正令), 정법(正法)의 표준입니다.
계가 있어야 비로소 위의가 있게 되며 사람들이 보아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세간에 계가 없으면 부처님이 없는 것입니다. 정계를 지키는 사람은 천마와 귀신도 공경하며, 모든 부처님이 찬탄합니다. 계를 보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적게 말하고 많이 머리를 숙이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계의 덕이 발휘되기 시작하여 마음의 묘응(妙應)이 생길 수 있습니다. 어떤 종파를 막론하고 계를 지켜야 합니다.
두 번째는 인과를 깊이 믿어야 합니다.
우리들이 금생에서 받고 있는 모든 것은 모두 과거 인지(因地)에서 지은 것이며, 지금 과보를 받는 것입니다. 바로 빚을 갚는 것입니다. 운남성(云南省)에 성이 요(姚) 씨인 사람이 나이 들어 아들을 얻어서 매우 기뻐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병이 있었습니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 가산을 모두 탕진하고 마지막에는 단지 알을 낳는 어미 닭 한 마리만 남아 있었습니다. 아들이 말하기를 “나는 빚을 받으러 왔다. 당신들은 아직 나에게 계란 일곱 개를 빚지고 있다. 나는 기다릴 생각이 없다.”
엄마는 아들이 계란을 먹으려고 한다는 말을 듣고 10개를 빌려 삶아 주었는데, 아들은 일곱 개만 먹고 바로 죽었습니다. 아들은 부모에게 정(情)의 빚을 갚고, 부모는 아들에게 금전의 빚을 갚은 것입니다.
여러분! 아들은 바로 정(情)이며 정을 생각하기 때문에 바로 정의 빚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모두가 빚을 갚으러 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부처님은 우리들에게 보시의 마음으로 인과에 대처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대원을 발해야 합니다. 나의 모든 복락과 수명, 재물을 모든 중생에게 널리 베풀고 중생의 모든 고난을 내 한 몸으로 대신 받겠다고 발원해야 합니다. 이렇게 발원하여 당신의 탐욕과 인색, 정감을 모두 없애는 것입니다.
베풀 복이 없으면 무슨 복을 주는가? 이 대원은 여러분들이 간파해야 합니다. 보시는 우리들의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것이지, 복을 구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모든 것을 중생에게 보시하면 중생과 다툴 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중생의 고통은 바로 우리들의 고통입니다.
이 말은 바로 옛사람이 “걱정할 일이 없으니 바로 인간의 호시절이며, 매일 마음이 탕탕하여 머무는 바가 없으니 진실의 모습이 크게 드러나네.”라고 말한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영가(永嘉) 대사께서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무위의 한가한 도인은 망상을 제거하지도 않고 참됨을 구하지도 않네. 무명의 진실한 성품[實性]이 불성(佛性)이며, 거짓으로 이루어진 텅 빈 몸이 법신이네. 법신은 한 가지 물건도 없음을 깨닫고, 본원 자성이 천진불(天眞佛)이네.”라고 말한 바와 같습니다.
모든 것을 다 중생에게 주면 시방(十方)이 오고 시방으로 귀의하면 크게 자유롭습니다. 본래 과보의 땅[果地]에서 받는 고통을 행원(行願)으로 바꾸면, 업력을 원력으로 변화시켜 모든 중생과 원융하게 되면 어디에 중생의 과실이 있겠습니까? 원수를 변화시켜 부모로 삼고 도반으로 삼으면 바야흐로 아집(我執)을 놓을 수 있습니다. 반드시 보시를 잘 인식하여 바른 견해를 일으키면 헛되이 바쁘지 않을 것입니다.
보살의 길은 육바라밀을 닦는 것이며, 오직 염불할 줄 아는 것이 보살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길이 밝지 않으면 이치가 통하지 않습니다. 아미타불은 참된 경(經)입니다. 염불하는 사람은 많으나 즐겨 듣지 않으려 합니다. 가는 길이 피곤하면 멀다고 합니다.
고인이 이르기를 “어떤 수행의 문을 가야 할지 수행의 문을 결정해야 합니다. 어떤 법의 문으로도 모두 성불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장원심(長遠心 : 꾸준한 마음)입니다.”
모두들 알았습니까? 며칠 동안 한 가지를 지속하기는 쉬워도 장원심을 발하기는 어렵습니다.
오늘 저의 수행문을 소개하겠습니다.
호흡오음염불, 일천만 번을 채우면 반드시 인간과 하늘세계의 스승이 됩니다. 염불할 때 내쉬고 멈춘 후 들이 쉽니다. 처음 할 때는 소리를 내어 염불할 것이며, 소리를 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은거 화상이 말씀하시기를 호흡염불은 폐의 기능을 강화시키며, 우리들로 하여금 기력이 충족하게 하여 혼침에 빠지지 않게 한다고 합니다. 정·기·신(精氣神)이 충만할 때 앉아도 안정되며 일어서도 편안하고 피로하지 않고 숨이 차지 않아 비로소 정(定)이 생길 수 있습니다. 믿어지지 않으시면 자기의 기력으로 얼마동안 앉을 수 있는지를 보시고 염불이 피로한 지 안 한 지를 보십시오.
사람이 병이 생기는 까닭은 기혈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실천해보면 인정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우리들은 정·기·신(精氣神)이 모두 충족한 상태에서 바야흐로 염불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향상할 수 있겠습니까? 오음염불은 이렇게 염합니다. 여러분은 유통되고 있는 녹음테이프를 찾아 배워도 됩니다.
빠르게 하지 말고 느리게 염해야 급한 성미를 변화시켜 정에 들 수 있습니다. 눈을 뜨고 소리를 또렷또렷하게 내어 염해야 합니다. 지명염불을 계수(計數)하는 공책은 이렇게 만듭니다.
황색의 종이에 가로 20cm, 세로 26cm의 크기에 흑색의 선으로 0.8×2cm의 장방형 격자를 만듭니다. 염불할 때 장방형 격자 내에 일성 불호(佛號)에 한 획을 그립니다. 매 격자 내에 사선으로 5획을 그립니다.
다음은 대원(大願)을 발해야 합니다. 염불 일천만 성으로 아미타불에게 공양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공양하는가? 몸으로 한 획 한 획 그려서 공양하며, 입으로 송하여 공양하며, 뜻으로 생각하여 공양하는 것입니다. 몸과 입과 뜻으로 부처님께 공양 올리며 공불(供佛)의 원을 이루면 몸은 살생, 도둑질, 음란함이 없어지며, 입은 자연히 악구(惡口), 망어(妄語), 양설(兩舌), 기어(綺語)가 없어지며, 뜻은 자연히 탐욕, 성냄, 어리석음이 없어집니다.
부처님께 공양하면 부처님도 매일 당신을 보살피며, 한번 탐심이 일어나면 곧 거두어들입니다. 부처님께 공양하는 데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겁내지 말고 단지 깨달음이 늦어짐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생각 생각 자각하며 자기를 바라보게 되면 몸과 입과 마음이 청정하게 되어 오염될 수 없습니다.
어떻게 부처님께 더러워진 몸, 입, 마음을 공양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부처님께 매우 불경스러운 것이 되지요. 모든 습기는 자연히 바뀌어 집니다. 그러니 다시 수행을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수행을 말하면 고인은 향판으로 때리려고 할 것입니다. 임종 시 당신은 전도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생각 생각이 부처님께 공양하기 때문입니다. 설사 임종할 때 염불에 공부가 없더라도 명명백백하게 떠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당신의 원력이 있는 까닭입니다.
『법화경』에서 말하기를 용녀(龍女)가 그 생에서 성불한 것은 바로 여의주를 공양한 까닭입니다. 용녀가 공양한 것은 자기의 목숨이며, 청정한 몸과 입과 마음이었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성불한 것입니다. 우리들이 해야 할 것은 몸으로 염불의 획을, 그리고 입으로 소리 내어 불호를 일천만 번 염하는 것입니다. 그 때 우리들의 몸과 입과 마음은 청정하게 되며, 또한 용녀와 같이 그 자리에서 성불하여 용녀와 다른 모습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나이가 많아 서원을 완수하지 못할까 걱정하여 감히 발원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알아야 합니다. 당신이 몸과 입과 뜻으로 부처님께 공양하여 숫자를 다 채우지 못했는데 수명을 주관하는 귀왕(鬼王)이 어떻게 감히 당신을 저승으로 데리고 가겠습니까? 원력이 있으면 반드시 완성할 수 있습니다. 겁내지 말아야 합니다. 체면을 놓아버리고 밝고 당당하게 염해야 합니다. 큰 소리로 염하면 큰 부처님을 봅니다. 나는 지금 이런 사실을 여러분들에게 일러드립니다. 왕생은 염불 일천만 성 이내에 있다고 은거 화상께서 말씀하였습니다.
지명염불(指名念佛)을 할 것이며, 관상(觀像)하거나 관상(觀想)하지 마시고 착실하게 염불 수를 그려나가십시오. 하나의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일천만 번 염불로 부처님께 공양하면서 모든 경계를 만나도 마음이 움직이지 말아야 합니다. 부처가 와도 참하고 마(魔)가 와도 참해야 합니다. 공양을 완성하지 못하면 왕생하지 않는다는 각오로 이를 악물고 염불에 전념하면 당신의 업력은 원력에 의하여 바뀌어 집니다.
어떤 사람은 매일 부처를 보려고 해도 보지 못하며, 우리들은 만나게 되어도 가지 않습니다. 나는 명백하게 여러분에게 말씀드립니다. 당신이 이 방법으로 공부하면 마왕이 와서 우리들을 해치려고 합니다. 믿어지지 않으시면 당신은 이 방법으로 몇 개월 하면 곧 부처님 모습이 출현하게 되는데, 하지만 그것을 따라가면 안 됩니다. 그것은 환상의 모습이기 때문에 따라가게 되면 귀신, 요괴가 달라붙게 됩니다. 모두들 생각해 보십시오. 눈으로 부처님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은 당신은 아직 육근을 수섭(收攝)하지 못했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육근을 수섭(收攝)하지 못하면 어떻게 왕생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당신이 꿈속에서 부처를 보아도 당신을 접인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경계를 만나도 따라가면 안 됩니다. 경계는 귀신이 장난치는 것이며, 곧 자기의 모습입니다.
어떤 공안(公案)에서 이야기하기를 어떤 도반이 수행에 정진할 때 매일 한 마리의 거미가 보여서 스승에게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스승이 말했습니다. “연필로 십자를 그려라.” 그날 저녁 또 거미가 보이기에 그는 곧 십자를 그렸습니다. 다음날 스승에게 갔더니 스승이 그에게 상의를 벗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자기의 살 위에 열십 자가 그려져 있는 것을 보았던 것입니다. 우리들이 정좌하여 공부하게 되면 자기의 모습이 은밀히 드러나게 되는데 그것은 환상이기 때문에 마음이 움직여서는 안 됩니다.
오늘 여기 앉아 계신 묘혜(妙慧) 스님이 나에게 말씀하시기를, 스님이 일찍이 공중에 하나의 태양과 달을 보고는 환희심이 생겨 나중에 허튼 소리를 지껄이게 되었는데, 바로 주화입마(走火入魔)가 된 것입니다.
내가 관찰해보니 스님이 오두막 토굴에 머물 때 어떤 여신도가 스님의 도반이 되었는데, 그녀의 남편이 몇 차례 그녀를 불러도 돌아오지 않자 나중에 남편이 그녀를 죽인 것입니다. 이 여신도는 묘혜 스님께 목숨의 빚을 요구하게 되었으며, 스님은 몇 년 동안 옳은 수행길에 오르지 못하였습니다. 묘혜 스님이 태양과 달이 함께 있는 것을 보고 환희심을 낸 기회를 이용하여 (그 여신도는) 스님의 몸에 붙게 되었으며, 따라서 묘혜 스님은 매일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들 공부인이 만약 마음을 강철벽과 같이 하면 귀신과 요괴가 당신을 어찌할 방법이 없을 것입니다.
매일 매일 공책에 염불 수를 그려나가는 것은 당연히 피곤하고 번거로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해나가면 인욕을 닦는 데 아주 적합하며, 시간이 오래되면 자연히 성질을 부리지 않게 되며, 다른 사람이 무슨 말을 해도 모두 좋게 들리게 될 것입니다. 보살의 육바라밀 중 인욕은 이와 같이 공책에 그려나가는 과정에서 저절로 수행이 되는 것입니다.
매일 ‘일천만불 공양’의 대원에 섭취되어 자연히 육근도 수습되며 정념이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선정이 생겨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되면 마음은 입을 보고, 입은 손을 보며 줄곧 그려나가게 됩니다. 손이 어지럽지 않으면 마음이 어지럽지 않으며 입이 어지럽지 않아 몸과 입과 마음이 타성일편이 됩니다.
단지 독두의식(獨頭意識)이 생기게 되면 (즉 염불일념이 되면) 산하대지, 탁자, 의자 등이 염불하는 것을 듣게 되며, 시방이 염불하지 않는 곳이 없게 됩니다. 귀로 듣는 것은 청(聽)이며, 마음으로 듣는 것은 문(聞)입니다. 이와 같은 경계에 왔을 때에는 공부를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쇠는 달구어졌을 때 재빨리 두들겨야 합니다. 멈추어 공적(空寂)함을 기다려서는 안 됩니다. 이때는 여러 해의 수행을 통하여 편안하고 상쾌함을 느껴 나아가지 않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능엄경』 「염불원통장(念佛圓通章)」에서 말하기를 염불심으로 무생인(無生忍)에 들어간다고 하였습니다. 무생인에 들어가면 비로소 정토 가운데서 독두의식의 이 염불소리를 듣게 되는 것입니다.
『능엄경』에서 말하기를 “돌이켜 들으면 자성을 듣게 되며(反聞聞自性) 자성이 무상도를 이룬다.”고 하였습니다.
생사의 단단한 관문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때가 되면 탁자가 당신과 한 어조로 염하는 것을 듣게 될 것입니다. ‘탁자가 어떻게 염불할 수 있는가? 이상하군?’ 의문이 일어나게 됩니다.
고인이 말하기를 “크게 의심하면 크게 깨치고, 작게 의심하면 작게 깨치며, 의심하지 않으면 깨치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반문(反聞)은 청(聽)이 되며 탁자가 염불하는 것에 대하여 의심을 해야 됩니다. ‘누가 그 곳에서 염불하는가?’ 줄곧 끊임없이 의심해야 합니다. 고봉(高峰) 스님께서 말하기를 “(이러한 단계에서는) 삼일, 오일, 칠일 간을 정진하면 깨친다. 그래도 안 되면 그만 두어도 좋다. 내가 만약 큰 거짓말을 범하면 영원히 발설지옥에 떨어질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은거 화상이 말하기를 3일의 노력으로 석가모니 본사께서 설한 것이 없다고 하신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반야(般若)의 지혜이며, 한번 지혜가 생기면 만년의 어리석음을 없애는 것이며 자비로 남김없이 제도하는 것입니다.
최근 양쪽을 다 좋게 하는 사람이 있는데, 어쨌든 모두 일리가 있습니다. 도반들에게 묻겠습니다. 우리가 도심을 발한 것은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설마 단지 입으로만 공부하려는 것은 아니겠죠?
세월은 빠르며 무덤에 들어가는 것은 노소를 가리지 않습니다. 말법의 중생들이 가련합니다. 당신들은 아주 뛰어난 초인의 무슨 계책이라도 가지고 있습니까? 자기의 좋은 시절을 그르치지 말아야 하며 아무리 큰 체면이 있더라도 놓아버려야 합니다. 길은 우리 손에 있습니다. 일천만 성을 그리세요. 어렵지 않습니다. 어렵지 않아요.
시방의 불타여! 제자 묘림의 고심을 아는 사람이 있습니까?
낮에 고생스럽게 생각하고 밤에 갈고 닦으면
지름길을 찾아 애욕의 강을 건너며
돌이켜 들으며 돌이켜 물어 미타를 그리면
일천만 성 안에 화택(火宅)을 벗어나네.
오늘 나는 여러분 모두 절을 짓는 데 분주한 것을 보고 깊이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보아하니 대중들 모두 매우 바쁜데 정작 밥을 빌어먹는 나는 한가하니 나도 긴말을 짧게 해야겠습니다.
근래 나에게 의지스승이 되어달라고 청하는 사람이 있는데 매우 난처합니다. 옛날 사람들은 신체가 좋아 병도 가벼웠으나 지금 사람은 몸이 옛날 사람에 미치지 못하며 병도 무겁습니다. 약을 많이 쓰면 먹어도 소화시키지 못하고 약을 적게 쓰면 병을 치료하지도 못합니다. 나는 정말 난처하여 결국 이런 결정을 내렸습니다.
매일 호흡염불 일만 성, 절 일천 배, 이와 같이 하루 17시간을 공부하고 7시간을 휴식하고 이와 같이 할 것에 동의한다면 의지스승이 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사람은 몇 년의 공을 들이지 않아도 곧 한소식 할 것임을 보증합니다. 장원심을 발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이롭지 않은 고통을 받지 않기 위해서도 나에게 의지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으면 어찌 견성을 걱정하겠습니까? 그러면 이렇게 한가롭습니다.
달마 대사가 동쪽으로 와서 혜능 대사까지는 오직 견성만 말하고 수행(방편)을 빌어 (견성)을 얻는 것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한탄스럽습니다. 지금 사람은 옛날 사람에 미치지 못하여 부득이 염불방편을 빌어 왕생하게 하는 것입니다. 일 구의 불호를 산란하고 어지러운 우리의 마음에 던져 넣는 것입니다. 독을 독으로 공격하는 방법을 사용하여 우리들로 하여금 한곳에 마음을 집중하게 하여 비로소 안주하게 하는 것입니다.
나는 10년의 고생스런 노력과 또 진령에서 생사의 고비를 겪고 나서야 비로소 은사를 만나 호흡오음염불에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행운이 있습니다. 하마터면 금생을 그르칠 뻔하였는데 호흡염불법을 알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나는 의심없이 줄곧 염하여 왔는데 매우 공부하기 편하다는 것을 깊이 느낍니다.
모두들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당신이 어떻게 염하든지 간에 염하지 않아도 저절로 염해지는 때가 되면, 반드시 ‘누가 염불하는가’ 하고 반문해야 합니다. 그러면 3일, 5일, 7일의 공으로 바로 자성의 삼신불을 보게 됩니다. 왕생하려 할 때는 자기의 화신 아미타불이 자기를 접인하러 오며, 육신을 응신으로 변화시킵니다. 대중들은 아미타불이 오는 것을 한번 보게 되면 조념자도 아미타불을 보게 됩니다.
어떤 사람이 묻기를 “왜 아미타불을 따라 왕생하지 않습니까? 당신은 무엇을 기다립니까? 잠시 후 아미타불이 보이지 않으면 매우 애석하지 않습니까?”라고 하더군요.
모두가 아미타부처님을 보게 되지만 왕생하는 사람은 단지 한 사람입니다. 무엇 때문인가? 이 아미타불은 왕생자의 화신불이며 자기를 접인하러 오신 것입니다.
『인왕반야경(仁王般若經)』을 보면 한번 무생인에 들어가면 바로 칠지(七地), 팔지(八地), 구지(九地) 보살입니다. 은거 화상이 말하기를 한 사람이 깨달아 한 가지 모습에 들어간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도의 입문을 말하는 것으로 한 사람이 한 가지 모습입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한 가지 의심하지 않는 방법을 일러주고자 합니다. 당신이 대원을 발하여 호흡오음염불 일천만 성을 부처님께 공양하고자 결심하고 공책에 그려나갈 때 만약 무엇이 나타나더라도 관여하지 말고 단지 한 가지 신념, 즉 일천만 그림을 완성하는 것만 가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미타불을 마음에 담고 공양하는 것입니다. 때가 되면 7, 8백만 혹은 2, 3백만 성에 곧 자기의 삼신불을 보게 됩니다. 그 때 당신은 걸식하는 나의 고심을 알게 될 것입니다. 만약 칠백만 성을 그렸는데 탁자가 염불하지 않고, 팔백만 성을 그렸는데도 안 되면, 구백만 어쨌든 일천만 성을 하기 전에는 왕생합니다.
모두들 잘 들으세요. 사람마다 모두 왕생할 수 있습니다. 10년의 공을 들이지 않고도 왕생은 이루어집니다. 모두들 무엇을 의심하십니까? 나도 힘을 들여 그리고 있습니다. 당신들이 왕생하지 않아도 나는 왕생합니다.
지금 사람들은 채무가 많아 번뇌가 많으며 매일 매일 바쁩니다. 과거엔 어머니를 낭(娘)이라 불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마(綾)라고 부릅니다. 마(綾)자는 말 마(馬)자 변입니다. 모두들 주의해야 합니다. 아들 손자들은 자기들의 복을 타고 나니 아들, 손자에게 소나 말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반드시 자기 자신을 위하여 무엇인가 해야 합니다. 대원을 발하여 일천만 성 불호로 부처님께 공양하세요. 시간, 장소에 관계없이 음식 만들고 아침에 일어나고 저녁에 잠자는 것에 관계없이 언제든지 그릴 수 있으며 일이 바쁘면 일을 마치고 시간을 내어 그릴 수 있으며, 집을 나갈 때는 공책을 가지고 가면 됩니다. 모두 환희심을 갖고 하십시오. 다만 믿음이 있으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이 다 그린 공책은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는데, 만약 정말로 일천만 성 그림을 완성하였다면 그 공책은 공경의 대상이고, 그 사람은 범부로부터 등각의 보살지위에 오르게 될 것입니다. 신통, 지혜를 막론하고 모든 것이 자재로울 것입니다. 그 때 당신이 그린 공책은 바로 당신의 육신이며, 사리(舍利)이며, 대중들의 예배와 배움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정말로 부모를 위하여 떳떳한 것이 되며, 아미타불을 위하여 공을 세우는 것입니다. 시방의 모든 부처님이 찬탄하며 천인(天人)이 당신에게 예배할 것이며, 귀신이 공경할 것입니다. 한 범부가 매우 짧은 시간에 자기의 삼신불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남녀의 형상이 있지만 마음에는 남녀의 구분이 없으며 법은 평등한 것입니다. 단지 발심하기만 하면 모두 대장부의 상이 되는 것입니다.
서안(西安)에 있을 때 운거산(雲居山)에서 온 두 분의 비구니스님이 많은 절을 찾아다니면서 나를 찾는다고 들었습니다. 나중에 흥교사(興敎寺)에 와서 “묘림 스님이 있습니까? 그분이 공책에 염불 횟수를 그리며 하는 염불을 제창하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하지만 모두들 알지 못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배향하며 줄곧 은거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차를 타고서도 물어보곤 하였는데 후(候)거사가 나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비구니스님들을 모시고 나에게로 왔습니다. 그들이 물었습니다.
“10년 동안 『법화경』 예참을 했는데, 봄에 관음보살이 나타나 말하시기를 서안에 가서 묘림 스님을 찾아 공책에 그리는 염불을 배우라고 하였습니다.”
모두들 보십시오. 그들은 10년을 절한 후 비로소 이 방법을 얻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합니다. 이 방법을 얻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지를! 얻는 것이 쉬우면 버리는 것도 빠릅니다.
유 거사라는 분이 염불하며 공책에 그리기를 며칠 했는데 번뇌가 밀려와 그리기를 그만 두었습니다. 저녁에 관세음보살이 공중에 모습을 드러내며 말씀하시기를 “어째서 공책에 그리지 않느냐?” 하였습니다. 이 유 거사는 이 말을 한번 듣고 다시는 그만두지 않았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직언하고자 합니다. 선(禪)과 정(淨)을 함께 닦으면 왕생의 품위가 극히 높아집니다. 달마 대사께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모든 중생은 동일한 진성(眞性)을 가지고 있지만 객진 망상으로 덮여있어 드러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만약 망상을 쉬고 참됨으로 돌아가 벽관(壁觀)으로 정신을 집중하면 자타가 없어지며 범부와 성인이 같아집니다.
우리도 좌선하는 사람이며 공책은 벽과 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줄곧 공책에 그리며 염불하면 바로 면벽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계속하여 그리며 염불을 지속하면 무슨 객진번뇌, 무슨 망상이든지 한꺼번에 전부 쓸어버립니다. 이때 비로소 알게 됩니다. 방편을 빌리지 않고서도 본지풍광에 들어갑니다. 한 획은 한 서방(西方)이며 한 페이지는 극락이며 한 권은 한 세계입니다.
염하지 않아도 저절로 아미타불이 염해지면,
돌이켜 듣고 누가 염불하는가 하고 의심을 하여야 하네.
의정(疑情)은 사대가 공하고 자기가 없으며
무아의 경지 때 또 누구인가?
한적하게 공적함을 지키지 말고
시간을 다잡아 반문하면 견고한 관문을 깰 수 있네.
오음의 망상경계는 환화(幻化)이며
욕망과 비정은 물거품에 속하네.
경계가 나타나면 성스러운 것도 아니니 좋아하지 말고
독두의식 홀연히 적정(寂靜)이 생기며 생각[念]이 쉬어지네.
돈오점수(頓悟漸修)와 선정쌍수(禪淨雙修)로
객진번뇌는 염불로 변화되네.
~~~ 이상은 오대산 노스님과 인과 이야기 일부 글입니다
전문은 아래에 소개된 출판사에서 간행된 도서를 구입하여 보시기를 ~~
[오대산 노스님과 인과 이야기]에서
저자 과경.각산/ 번역 정원규 / 불광출판사 간행
구입처 불광출판사☎ (02-420-3200)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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