禪과 華嚴사상을 중심으로 儒禪基를 회통한 탄허스님의 사상.
탄허스님의 화엄사상에 앞서 대한불교 조계종의 소의경전인 金剛經을 알아보자. 금강경은 空사상이 핵심이다. 탄허스님이 번역한 금강경 책도 있다. 금강경 오가해와 함허 득통스님의 금강경 說誼에 자신의 주석까지 실어 모두 七家解가 되었다. 금강경의 핵심사상은 無我相 無人相 無衆生相 無壽者相 4相이다.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모든 상을 상이 아니라고 보면 여래를 본다. 我相은 나라는 생각이다. 我相은 이해가 간다. 그런데 人相 나는 사람이라는 생각 壽者相 나는 오래 산다는 생각?
自我 個我 衆生 靈魂
산스크리트어<Atman Pudgala Sattva Jiva> 구마라집<我相 人相 衆生相 壽者相> 현장<我想 補特伽羅想 有情想 命者想>
永遠不滅한 실체로서의 自我 아뜨만. 부처님이 설하신 無我는 나라는 영원한 실체가 없다는 뜻이다. 부처님은 실체가 있는 내가 윤회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부정하셨다. 그런데 불교의 한 부파인 犢子部는 무아이긴 한 데 남과 구별되는 개별적인 나는 조금 있지 않는가? 주장하며 Pudgala개념을 가지고 설명했다. 衆生相<Sattva>은 각자 살아서 존재하는 생명체<衆生>가 있다는 생각이다. 壽者相<Jiva>는 생사를 초월해 자기 同一性을 갖고 존속하는 목숨<靈魂>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많은 종교에서 영혼 영생을 이야기한다. 4相은 결국 我相의 다른 표현이다.
금강경의 핵심은 無사상=無我=無自性=空=般若이다.
유교 논어의 克己復禮/ 도교 장자의 至人無己/ 불교 금강경의 無我相 諸法無我 모든 것은 我가 없다.
金剛은 반야다. 금강경=벽력경. 般若<空>=能斷 잘라낸다. 그런데 금강경엔 空이라는 단어가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無我로 空을 설명한다. 그래서 성리학자들은 불교는 虛無寂滅之導라 했다. 허무를 조장한다고 불교를 잘못 이해한 것이다. 눈 앞에 보이는 허공만 空이 아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이 空이다. 분명히 있는데 空하다고?
緣起 – 無自性 – 空
세상 모든 것은 있기는 있어도 緣起로 있다는 뜻이다. 4大가 因緣화합에 의해 있지만 영원한 것은 아니다. 우리 몸도 100년 못 가지만 분명히 있다 말한다. 그런데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연 따라 잠시 假有로 존재하는 것이다. 無自性은 실체가 없다는 뜻이다. 고정불변의 형태로 존재하는 自性은 없다. 결국 영원히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空이다. 마음은 찰나생 찰나멸이다. 몸도 10년 전과 다르다.
우리는 名相 이름과 모양에 속고 있다. 10년 전 내 이름과 지금 내 이름은 같지만 모양은 많이 다르다. 즉 緣起가 바뀌어 있다. 固定不變하는 실체로 있었던 것이 아니고 名相으로만 존재했었기 때문에 空이라 말하는 것이다. 이치로는 空이지만 현상은 있다. 그래서 色卽是空 空卽是色 有와 空을 같이 이야기할 수밖에 없고 부처님은 永遠不變의 형태로써의 我相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렇게 금강경은 空을 한 번도 사용하지 않고 空사상을 설파한다. 金剛經은 금강과도 같은 반야<空>의 지혜를 말한다.
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大<마하>智<반야>道<바라밀다>心經.
金剛經이 금강으로 반야를 수식했다면 般若心經은 마하<大>로 반야를 수식한다. 心經의 心은 마음이란 뜻이 아니고 핵심이라는 뜻이다. 용수보살의 大智度論처럼 經을 論으로 바꿔 마하반야바라밀다론으로 해도 된다. 원효대사의 大慧度經宗要의 혜는 반야를 바꾼 말이다. 600부 반야는 전부 空을 설한 경이다. 空을 설하는 핵심은 無我다. 불교의 4성제 8정도 12연기 6바라밀 배우면 정확히 아는데 空이나 禪으로 넘어오면 대답을 못한다. 있다 해도 30방 없다 해도 30방 어떻게 하겠나?
緣起 無自性 空이다. 연기로 잠시 있다 사라지니 공이다. 地水火風 4대가 모인 우리 몸도 죽으면 서서히 기운도 빠지고 체온도 떨어지며 물이 빠져나오며 급기야 부패해 흙으로 돌아간다. 그래도 이해를 못하니 부파불교는 남과 구별되는 Pudgala가 있지 않겠느냐고 잘못 생각하게 된 것이다. 輪廻와 無我는 함께 병립할 수 있는가? 내가 없는데 어떻게 윤회를 한단 말인가? 내가 없는데 무엇이 몸을 받아 온단 말인가?
有業報而無作者 <잡아함경>
업보는 있으나 작자는 없다. 나라는 영원한 실체는 없지만 내가 지은 업보는 있다. 有我로 윤회를 하는 것이 아니라 無我로 윤회한다는 말이다. 영혼이 있어 이 놈이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다. 나라고 하는 실체는 없다. 그러나 내가 지은 업보가 남아 윤회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은 있는데 ~은 없다. 이러니 어렵다. 그래서 空은 먼저 교학적으로 이해한 다음 수행해서 체득해야 한다. 그래서 禪에 無 자 화두가 있는 것이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그래서 있다와 없다는 말이 어려운 것이다. 萬法歸一 둘이 아닌 것을 어떻게 깨달을 것인가?
10년 전 나는 그때도 있었고 지금도 있지만 똑같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다 바뀌어 있다. 그러나 10년 전 지어 놓은 내 업은 분명히 있다. 유교 논어의 克己復禮는 내 망상을 극복하고 근본 이치로 돌아가는 것이다. 禮는 天理의 節文이다. 克己가 극공이다.
도교 장자의 至人無記 지극한 사람은 내가 없다. 신인이나 성인보다 더 높은 경지가 지인이다. 유교의 克己가 최고의 경지가 되면 無記가 된다. 불교의 我空 法空이 無記다. 실체가 없다는 진리다. 그런데 진리 자체도 없다. 세상 끝까지 없다는 空으로 부정한다. 2가지 空을 다 갖춰야 空을 확실히 이해한 것이다.
儒佛仙 3교는 다 내가 없다는 無我를 말하고 있다. 천국은 실체가 가는 것이 아니다. 탄허스님은 가만히 있다고 空을 아는 것이 아니니 유교처럼 내 마음을 이겨낼 때 無記가 되고 無我가 된다고 말씀하셨다. 실제는 無我이지만 우리는 我相에 끄달려 집착하고 사니 금강도의 지혜로 잘라내야 한다. 空은 몸으로 증득해야 한다. 결코 쉽지 않다. 그래서 반복해서 금강경을 외우고 독송하는 것이다. 사람은 죽고나서 내 몸을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몸과 인연에 집착한다. 이런 것이 번뇌의 근원이 된다. 세상 모든 것에 영원불변한 것은 없다.
구마라집의 我相<서로 상>과 현장스님의 我想<생각 상>
1.相 省視也 從目 從木
相은 자세히 본다<省視也>는 의미로 會意字임. 나무를 눈이 일방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 일차적 의미로 왕유 시의 구절 明月來相照 밝은 달이 와서 비춘다와 相思病이라는 용례가 남아 있다.
明月來相照 – 밝은 달이 와서 비춘다. 서로라는 말을 쓸 수 없다. 일방적으로 쏘고 있다.
相思病 – 일방적으로 향하는 생각이지 서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아직까지 원래의 뜻을 충실하게 간직하고 있는 단어다.
서로 모양 돕다 정승의 의미는 후대에 부가된 의미이다. 相 조선의 관직 領相 左相은 돕다는 뜻이다. 木을 일방적으로 보고 있으면 能<주관>이 되고 所<객관>가 된다. 그러다 나중에 서로 주고받는 互相 互相간의 형태가 된다. 후에 마음 心을 추가하여 생각의 의미인 想으로도 쓰기 시작했다. 그래서 아상은 일방적인 나의 생각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단순하게 생각이라 하지 않고 相 자를 쓴 것은 탁월한 번역이다. 원래 相은 마음 心 자가 들어간 생각 想의 의미로도 쓰고 있었다.
2.想 기사야<冀思也> 從心 相聲
想은 간절히 바라는 사념이란 뜻으로 形聲字임. 소리만 가져왔다. <이상 說文解字의 설명>
9회. 광문스님. 금강경의 핵심 공 중에서
[출처] 794.금강경의 핵심 공|작성자 Inkf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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