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선 수행의 핵심사상과 원리
선을 하는 이유는 자기 안에 있는 부처님을 만나기 위해서다. 선을 통하지 않고서는 자기 부처를 만날 수 없다. 마음을 닦지 않고서는 존재와 생명의 참 모습을 볼 수 없다. 이 세상 모든 현상들은 모두가 연기에 의해서 나타났다. 진여본성은 상락아정이고 참 나이며 실상이다. 진여본성을 만나는 것이 인생을 참되게 사는 것이며 진여본성을 만나게 해주는 실천법이 선 수행이다.
선은 일체 존재의 실상에 대한 통찰력을 높여준다. 선은 온갖 괴로움에서 자기를 해방시켜준다. 조사선의 기원은 부처님께서 들어올린 한 송이 연꽃과 마하가섭의 미소 사이에서 탄생했다. 부처님은 3곳에서 정법안장 열반묘심을 전하셨다.
3처전심 - 다자탑전분반좌 영산회상상거염화 니련하반곽시쌍부
선의 종류
1.외도선 - 천상에서 태어나기를 바라고 닦는 선
2.범부선 - 천상에 태어나기를 바라지만 인과법을 믿고 그에 따라 수행하는 선
3.소승선 - 아공의 진리를 깨닫고 아집에서 벗어나고자 닦는 선
4.대승선 - 아공.법공의 진리를 깨닫고 아집.법집에서 벗어나고자 닦는 선
5.최상승선 - 식심견성으로 부처 행을 하는 선.
조사선은 최상승선이다. 조사선은 당하즉시의 직관을 통해 참 본성을 깨우치는 수행이다. 조사선은 본래 성불자리를 역대 조사들이 보여준 것이다. 육조 혜능대사는 돈오견성을 천명하셨다. 중국 선종은 조사선이 중심이다.
혜능스님은 불성과 자성에 대한 믿음을 강조하였다. 혜능스님은 분별심을 일으키지 않는 그 마음을 불심이라고 하였다. 혜능스님은 견문각지하는 마음 그대로가 불성이며 자성이라고 하였다. 달마대사의 진성과 진심이 혜능스님에 이르러 자성으로 바뀐 것이다. 정혜일치 사상은 선정과 지혜를 하나로 보는 사상이다. 정혜일치의 근본적 토대는 열반경이다.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는 정과 혜를 함께 하기 때문에 부처의 성품을 밝게 본다. 선정과 지혜가 평등해야 불성을 똑똑히 본다 <열반경>
나의 이 법문은 정과 혜로써 근본을 삼는다. 먼저 혜와 정이 서로 다르다고 그릇 말하지 말라. 정과 혜는 한 몸이어서 둘이 아니다. 곧 정은 혜의 몸이요 혜는 정의 작용이다. 곧 혜의 때에 정이 혜 속에 있고 정의 때에 혜가 정 속에 있나니 이 뜻은 곧 정과 혜가 함께 한다는 뜻이다.
진여본성은 정혜가 함께 한다. 우리의 본성은 정혜가 함께하여서 일체법에 물들지 않는다. 그러므로 3세제불이 3독을 바꾸어서 계정혜로 삼는다. 정혜가 등등하면서 가지도 않고 오지도 않으며 어떤 것에도 물들지 않나니 이는 3세제불의 자성삼매이다 <돈황본 육조단경>
무생을 깨달아 마음이 청정해지면 정혜등등한 자성은 寂而常照하고 조이상적하여 적조쌍류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정혜등등이며 등지라고 한다. 정 가운데 혜가 있고 혜 가운데 정이 있어서 정.혜가 쌍등하므로 쌍수라고 한다 <성철스님 고경>
혜능스님이 강조한 3무 - 무념 무상 무주
무념이란 본래 청정한 진여본성은 번뇌 망념에 물들어 있지 않다는 말이다. 무상은 진여본성은 상에 집착하지 않고 분별심이 없다는 말이다. 무주는 마음의 생각 생각이 한 곳에 지속적으로 머물지 않고 걸림이 없는 청정해진 상태란 말이다. 3무 중 핵심은 무념이다. 무상은 무념의 전제 조건이다. 무주는 무념의 필연적 결과다.
나의 법문은 예부터 무념을 세워 종을 삼고 무상으로 몸을 삼고 무주로 근본을 삼는다 <돈황본 단경 >
혜능스님이 주장하는 무념은 불지무념 내외가 명철한 묘각무념이다. 무념은 진여본성의 청정성을 그대로 표현한 정념이다.
자성이 생각을 일으켜 비록 보고 듣고 느끼고 알지만 만 가지 경계에 물들지 아니하고 항상 자재하나니 유마경에서 이르기를 밖으로 능히 모든 법의 모양을 잘 분별하지만 안으로 제1의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하였다. 또한 이 무념이란 모든 법을 보되 모든 법에 물들거나 매달리지 않으며 모든 곳에 두루하되 모든 곳에 꺼둘리지 않느니라 <돈황본 단경>
혜능스님의 무상 무념 무주의 사상은 정중무상대사에서 삼구사상으로 이어진다. 정중무상스님의 대표적인 선사상은 무억 무념 막망이다. 無憶 무념 莫妄이다. 무억은 과거의 기억들을 떠올리지 않는 것이다. 무념은 현재의 생각과 망념이 사라지고 진여본성이 현전하는 것이다. 무념 상태가 되면 저절로 무억과 막망이 실현된다. 정중무상스님은 무념을 다음과 같이 설한다.
무념은 마치 밝은 거울과 같아 맑고 투명하다. 세상의 모든 물건을 비출 수 있으며 여러 법의 실상을 볼 수 있어 본심을 나타낼 수 있고 법의 청정을 지킬 수 있다. 하지만 상념이 일어나는 것은 마치 거울의 뒷면과 같이 어두워서 아무 것도 볼 수 없다. 더욱이 법의 실상을 볼 수 없고 불성의 청정을 지킬 수 없다. 그것은 바로 탐욕과 분노의 근원이다.
무늬 비단은 본래가 명주<실>이다. 무늬<문자> 따위는 있지도 않다. 방직공이 짜는데 따라 무늬가 생겨난다. 다시 풀어 헤치면 도로 본래의 명주<실>로 돌아간다. 명주<실>은 불성이며 무늬<문자>는 망상으로 비유된다.
막망은 안팎의 경계에 꺼둘리지 않고 늘 깨어 있는 상태다. 따라서 무억은 사마타<지>요 막망은 깨어있음<관>이 된다. 무념은 정념이다. 무억 무념 막망의 3구는 과거의 생각이나 상념에 사로잡히지 않고 현재의 시점에서 늘 깨어 있는 자세로 임하는 것이다. 정중무상스님의 3구설법은 달마조사로부터 전해 받은 교법이다. 3구설법의 중심사상은 무념이다. 3구설법은 6조 혜능스님의 念不起를 그 근거로 삼고 있다.
마조도일 스님은 나타난 일체의 현상들이 모두 그대로 진리라고 입처즉진을 강조하였다.
일체의 모든 현상은 불법이며 평등한 것이며 해탈의 모습으로서 진여를 벗어나 있지 않다. 이름이 평등하고 뜻이 평등하며 일체의 모든 법이 모두 평등하여 순일하고 잡스러움이 없다.
일체법은 모두 불법이며 온갖 법이 곧 해탈이다. 해탈이란 곧 진여이며 온갖 법은 진여를 벗어나 있지 않다. 진리를 떠나 입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입처가 곧 진리이며 자기의 체이다. 이처럼 온갖 법이 진여를 벗어나 있지 않기에 일체의 중생 또한 진여를 벗어나 있지 않다 <마조도일선사광록>
마조도일 스님의 평상심시도
만약 도를 곧바로 만나고자 한다면 평상심이 도이다. 무엇을 평상심이라 하는가? 조작이 없고 시비가 없고 취사가 없고 단상이 없고 범속과 성스러움이 없는 것이다 라고 하였다 <마조도일선사광록>
조작이 없다는 말은 금강경의 응무소주 이생기심과 같은 말이다. 평상심은 평과 상 그리고 심이 조합된 복합어다. 평은 평등 不= 상은 항상 심은 진여본성의 의미이다. 따라서 평상심은 제법의 본래 참모습인 진여본성을 말한 것이다. 마조도일 스님이 추구했던 궁극의 도는 중생 모두가 본래 갖추고 있는 진여본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불교 가르침의 핵심은 연기와 무아와 공사상이다. 삼계는 오직 유심이다.
3계는 오직 일심일 뿐이다. 마음 밖에 다른 법이 없다 <60권 화엄경>
보살마하살은 3계가 오직 마음뿐이며 3세가 오직 마음뿐임을 안다. 3계에는 다른 법이 없다. 오직 일심이 만든 것뿐이다 <대방광불화엄경>
모든 현상계는 모두 마음이 지어낸 것이다. 유심은 진여본성을 말한다. 진여본성을 발현하기 위해서는 무념을 실천해야 한다. 아무리 무량한 공덕을 갖고 있더라도 믿음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따라서 반드시 믿음을 일으켜야 한다. 진여본성에 대한 믿음은 스스로를 해탈과 열반의 길로 인도한다. 우리는 무명 업식으로 인해 생사윤회에 헤매고 있다. 윤회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불성에 대한 믿음을 일으켜야 한다. 수행에 있어서 조사들의 사상에 대한 믿음은 중요하다.
믿음은 도의 근원이며 공덕의 어머니다 <화엄경 현수품>
처음 발심했을 때 즉시 정각을 이룬다 <화엄경 범행품>
사량하지 않으면 성은 공적하다. 왜냐하면 사량은 그것 자체가 변화하기 때문이다 <단경>
무념은 진여본성의 정념 모습이다.
마음의 본성은 항상 망념이 없는 무념이기 때문에 변하지 않는다 <대승기신론>
항상 망념이 일어나지 않도록 스스로의 마음을 지켜나가는 염불기가 올바른 수행이다.
6회. 대풍 범각스님. 선수행의 핵심사상과 원리 중에서
[출처] 12.선 수행의 핵심사상과 원리|작성자 Inkf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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