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영지(空寂靈知)
공적영지(空寂靈知)는 진공묘유(眞空妙有)와 더불어 불교진리의 본질적 속성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깨달음을 잘 드러내는 멋진 표현이다. 텅 비우고 알아차릴 때 지혜가 드러난다는 말이다.
여기서 텅 비움은 공적(空寂)이요 알아차림은 영지(靈知)라고 할 수 있다. 신령스런 알아차림
그것을 곧 영지라고 표현하고, 텅 비우고 알아차리는 것은 곧 지혜요 전지전능(全知全能)이다.
이와 같이 ‘공적(空寂)’은 텅 비어서 고요한 상태를 묘사한 말인데, 적적(寂寂)ㆍ적정(寂靜) 등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리고 ‘영지(靈知)’는 문자 그대로 신령스러운 지혜광명을 표현한 말이다.
따라서 공적영지(空寂靈知)란 텅 비고 고요해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 밝고 신령스럽게
나타나는 지혜의 작용을 말한다.
이는 진리의 본체를 설명하는 말이다. 그리하여 <육조단경>에서는 정혜일체(定慧一體)라고 정리했다.
고요함은 정(定)이고 신령스럽게 아는 앎은 혜(慧)이다.
그런데 교학(敎學)에서 말하는 공적영지(空寂靈知)를 선종(禪宗)에서는 성성적적(惺惺寂寂)이라고 하고,
원효 대사는 성자신해(性自神解-성품이 스스로 신비롭게 풀리다)라 했으며, <단경>에서는
정혜일체(定慧一體) 또는 무념(無念)이라고 했다.
그리고 고려시대 보조국사 지눌(普照國師知訥, 1158∼1210)은 그의 저서 <수심결(修心訣)>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도(道)는 알고 모르는데 있지 않다. 사람들은 어리석어 깨닫기를 기다리니 그 마음을 버리고 내 말을 들으라.
모든 법은 꿈과 같고 허깨비와 같으므로 번뇌 망상은 본래 고요하고 티끌세상도 본래 공 한 것이다.
모든 법이 다 비어 고요한 곳[空寂]에서는 신령스러운 앎[靈知]이 어둡지 않다.
그러므로 텅 비어 고요하고 신령스럽게 아는 마음이 바로 그대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이며,
또한 삼세의 모든 부처님과 역대의 조사들과 천하 선지식이 은밀히 서로 전수한 법인(法印)이다.
이 마음만 깨달으면 단계를 밟지 않고 바로 부처의 경지에 올라 걸음걸음이 삼계를 뛰어넘고
본집에 돌아가 단박 의심을 끊는다. 그리하여 인간과 천상의 스승이 되고, 자비와 지혜가
서로 도와 자리(自利) 이타(利他)를 갖추고 인간과 천상의 공양을 받을 만하다. 사람들이
이와 같으면 진짜 대장부이니 평생에 할 일을 마친 것이다.”
모든 법이 다 공한 곳은 모든 개별적 사물이나 개체의식의 경계가 사라진 곳을 뜻한다.
모든 개체의 경계를 넘어선 무한과 공이 그것이다. 불교는 이 공이 추상적인 빈 공간이어서,
순수 질료와 같은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신령한 앎인 영지(靈知)가 빛나고 있다는 것,
그 점에서 마음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공(空)은 영지(靈知)의 마음이다.
이처럼 무한의 공이 ‘스스로를 신령스럽게 아는 것’을 원효는 ‘성자신해(性自神解)’라고 하고,
지눌은 ‘공적영지(空寂靈知)’라고 했다. 그러니 공적영지가 온전치 못하면 불안이 싹트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공적(空寂)과 영지(靈知)에, 어느 쪽 하나라도 결하면 온전하다 할 수 없다.
봄이 오면 꽃이 피고 새들은 아름다운 목소리로 지저귄다. 망울 튼 버들가지는 싱그럽고
시냇물은 졸졸 소리를 내면서 흘러간다. 농부는 밭을 갈고 아낙네들은 봄나물을 뜯고 있다.
한 폭의 수채화 같은 이런 광경을 순수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빈 마음으로 보라는 말이다.
물이 있으면 물을 보고 꽃이 있으면 꽃을 본다는 것. 이게 바로 공적영지(空寂靈知)이다.
텅 비어 고요하되 신령스러운 앎의 이 자리가 본심(本心)의 자리인 참 마음, 본래면목(本來面目)이다.
불교에 있어 공은 추상적 허공, 단순한 없음이 아니라, 비어있되 그 자체가 신령한 앎을 지녀
어둡지 않은 허령불매(虛靈不昧)이며, 이 허령불매의 성자신해가 바로 일체 중생의 진면목이고 마음의 본성이다.
그리고 고려시대 보조국사 지눌(普照國師知訥)도 원효가 강조한 일심의 성자신해,
마음 자체의 자기활동성에 주목했다. 마음의 체는 고요한 비어 있음인 공적이며,
그 본래적 용은 신령한 앎인 영지이다. 이와 같이 일체의 개념과 말, 망념을 떠나 존재하는
마음의 본래적 자기 활동성을 '공적영지(空寂靈知)'라고 했다. 즉, 그는 일체의 망념과 차별상을 떠나
그 자체 고요히 비어 있되 자기 자신을 자각하는 신령한 앎이 작용하고 있음을 주장했다.
공적영지는 경험적 차원의 주관적 의식과 객관적 존재, 정신과 물질, 나와 너, 나와 세계의 이분법을 넘어선
절대평등의 무분별지이다. 능소분별을 넘어선 무분별이고, 이분법적 상대성을 넘어선 절대이며,
상대적 차별성을 벗어난 평등인 것이다. 모든 개체의 경계를 넘어선 무한과 공(空)이 그것이다.
공(空)은 영지(靈知)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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