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연기, 연기법

[스크랩] 연기법

수선님 2017. 11. 5. 12:46

연기법.

 

 석가모니께서는 생. 노 병. 사의 의문을 깨닫고 해탈하기 위해 출가를 하였다. 그리고 당시의 최고 수행자로 추앙 받던 박가바선인 아라다선인 등을 찾아가 그 방법을 물었고 . 그들이 가르쳐 주는 대로 선정과 고행으 닦고 마침내 그들과 같은 경지에 이르렀다. 하지만 생. 노. 병. 사에 대한 해탈을 얻을 수는 없었다. 마침내 석가모니는 욕망과 번뇌를 잠재우기 위한 치열한 고행을 다시 시작했다.

 

 그 고행은 숲 속에서 고요히 선정을 닦되 . 하루 쌀 한 숟가락 과 참깨 한 웅큼을 먹거나. 쌀 한 낱과 깨 한 알만을 입에 물고 동요됨이 없는 마음으로 앉아 있었다. 베옷 한 벌로 몸을 겨우 가리고, 몸을 씻거나 머리를 깍지도 않았다.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거나 여름이나 겨울이나 한 모양으로 자리를 뜨지 않았고 이렇게 한 해 두 해를 지나다 보니 종이 장 같은 살갗이 뼈를 싸놓은 인형처럼 되어서, 손으로 배를 만지면 문득 등뼈가 나져졌고, 손으로 먼지를 털려고 하면 몸의 털이 말라 떨어졌다.

 마른 나무토막이 되어 앉아 있노라면, 아이들이 쑥대로 콧구멍도 찔러보고, 입과 귀도 찔러보고. 흙을 끼얹기도 하였지만 석가모니께서는 죽은 듯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심지어 새가 머리 위에 등지를 틀어 알을 까기도 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6년 동안 고행을 한 다음 다시 우루벨라 연못가로 옮겨 고행을 했다. 그러나 혹독한 고행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바라는 고의해탈은 얻을 수가 없었다. 때로는 해탈의 삼매경에 잠기기도 하였지만 생. 노. 병. 사를 넘어설 수 있는 깨달음은 오지 않았고, 삼매에서 깨어나면 다시 현실의 고통이 피와 살을 파고들었다.

 

 지나친 고행으로 마침내 석가모니께서는 오장이 마르고 기력이 다하여 땅에 쓰러졌다. 그리고 극단까지 몰고 간 고행에 의해서는 고를 해탈할 수 있는 최고의 깨달음에 도달할  수 없음을 알게 됐다. 육체를 괴롭히는 고행으로는 고(생.노.병.사)를 해결할 수 없다는 확신을 갖고 6년 동안 목숨 걸고 닦아오던 고행을 버린다.
 마침내 길가든 수자타의 유미죽을 먹고 기운을 차려 붓다가야의 보리수 아래에서 무엇을 했는지는 『대석가모니구담경』에 짧게 기록되어 있다.   
 
       "비구들이여, 나는 정념(正念)을 하여 이렇게 생각했다.
        참으로 세상은 괴로움에 빠져있다.
        태어나고 늙고 쇠퇴하고 죽어서는 다시 태어난다.
        그러면서도 이 괴로움부터 떠날 줄을 모르고 이 노사에서 떠날 줄을 모른

         다.     
       

        언제가 되어야 이 노사로부터 떠날 수 있는 방법을 알 수 있을 것인가?"
        비구들이여, 근대 나는 이렇게 생각했었다.
        무엇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노사가 있는 것일까?'
        비구들이여, 그때 바른 사유와 지혜에 의해 해결법이 생겨났느니라 .
        생이 있으므로 말미암아 노사가 있다. 노사는 생으로부터 말미암는다.   

 

 이어서 석가모니는 생이 무엇 때문에 있게 되는 지를 관찰하고, 더 깊은 근원으로 끊임없이 파고 들어갔다. 그리고 무명이라는 근원에 도달하여 그 무명이 저절로 소멸되었을 때   대 진리가 스스로 다가와 '생노병사'라는 행고를 완전히 해탈한 부처님이 되셨다. 무 생사의 대자유인이 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 깨달은 경지를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오직 부처님께서는 수수로 다음과 같이 감탄을 하셨다.
 
       "아! 기특하도다. 모든 중생이 다 이와 같은 지혜와 덕 상을 갖추었건만,
        무명에서 비롯된 집착들 때문에 스스로 체득하지 못하는 구나.
        만일 무명에서 비롯된 집착을 여윈다면 .
        곧바로 일체지(一切智) 자연지(自然智) 무사지(無師智)를 얻게 되는 것

        을!"
 
 그때가 12월 8일 새벽. 동쪽 하늘에 샛별이 유난히 반짝일 때였다. 그날부터 부처님께서는 보리수 아래에서 해탈의 황홀함을 즐기고 계시다가. 7일 후부터 '깨달음의 내용'을 점검하고 정리하셨다. 그리하여 최초로 정리를 한 것이 인연의 법이다. 남방불교의 『우다나. udana』경에서는 이때의 상황이 비교적 상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부처님께서는 먼저 짧은 노래를 들려주신다.

        

               성심성의를 다하여 사유하는 성자에게
               만 법이 그 모습을 나타냈을 때
               의혹들은 하나하나 사라 졌다
               유인(有因)의 법을 알았기 때문이니라
 
 유인법(有因法)은 인이 무엇인지를 아는 법이다. 왜 '이 무엇'인가가 있게 되었는지를 깨달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있게끔 하는 것. 이렇게 되게끔 하는 것. 이렇게 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그것을 깨달았기에 모든 의혹들이 사라졌으며 만 법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나타내었던 것이다.
 
 유인의 법. 이에 대해 『우다나경』에서는 조금 더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있으면 이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면 이것이 생긴다

 

 모두 '이것'이라 하여 참으로 알 듯도 하고 모를 듯도 한 내용이 되었지만. 이것이 인연법에 대한 최초의 표현이다. 이 구절을 한역(韓譯) 경전에서는 '이것으로 인해 이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면 곧바로 생 한다. 인시유시 차생즉생(因是有是 此生則生)'로 번역하고 있다. 그리고 『아함경』의 여러 곳에서는 약간 이해하기 쉽게 바꿔져 있다.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면 저것이 생긴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고
               이것이 멸하면 저것도 멸한다
           차유고피유(此有故彼有) 차생고피생(此生故彼生)
           차무고피무(此無故彼無) 차멸고피멸(此滅故彼滅)
 
이것과 저것은 인과 연의 관계가 있다.
모든 것은 인과 연의 화합 체로, 서로가 인과 연이 되어 생겨나고 존재하게 되며, 인과 연이 흩어질 때 함께 소멸된다는 이 당연한 진리가 인연 법이다.
 그러나 너무나도 간단한 이 진리를 석가모니 부처님 이전에는 그 누구도 깨닫지 못하여 신의 구원을 바라고 고행을 통해 해탈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오늘의 우리도 행고의 괴로움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신중히 새겨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7일 동안의 선정을 통하여 부처님께서는 '깨달음의 내용'을 더욱 점검하셔서 마침내 십이인연법을 정립하셨다.

 

      "무명으로 말미암아 행이 생기고,  행으로 말미암아 식이 생긴다.
       식으로 말미암아 명색이 생기고, 명색으로 말미암아 육입이 생기며,
       육입으로 말미암아 촉이 생긴다. 촉으로 말미암아 수가 생기고,
       수로 말미암아 애가 생기며, 애로 말미암아 취가 생긴다.
       취로 말미암아 유가 생기고 유로 말미암아 생이 생기며,
       생으로 말미암아 노사를 비롯한 수(愁) 비(悲) 고(苦)  우(憂) 뇌(惱)가 생

       긴다. 모든 고의 원인이 이와 같다."

 

 이상의 열두 가지, 곧 '무명→행→식→명색→육입→촉→수→애→취→생→노사'는"이것이 있으면 이것이 있고, 이것이 있으면 이것이 생긴다"는 공식을 적용시켜 얻어진 것으로, 이 열두 가지 조건의 연쇄반응에 의해 괴로움이 생겨난다는 것을 밝힌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십이인연법을 정립하셨지만 처음부터 인연법을 설하시지 않았다. 사람들이 이해하기가 용이하지 않다는 것을 비추어 보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교교단 초기에는 고를 낳게 하는 아주 간략한 인연법부터 일러 주셨다. 아주 간략한 인연법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다.
              
                 1  무명(無明)→ 취(取) → 고(苦)
                 2  혹(惑)    → 업(業) → 고(苦)
 
  1 무명-취 -고는 무명으로 취하니 괴로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어두움을 뜻하는 무명은 진리와 존재와 인간의 진상에 대해 어둡다. 곧 진리와 존재와 인간의 진상에 대해 모르는 무지의 다른 말이다. 모르므로 어둡다는 것이다. 그리고 취는 무슨 일에 집착한다. 는 뜻이다.
 모르기 때문에 무상한 것에 집착을 하고 매달리지만. 무상한 그것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화를 하거나 없어지고 만다. . 따라서 그것에 집착을 하고 매달리는 사람은 결국 괴로움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를 없애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먼저 무명을 없애는 일부터 시작하여야 하며. 무명을 없애려면 모든 존재의 진상과 진리를 올바로 볼 줄 알아야 한다. 무지가 아니라 올바로 볼 수 있는 지가 필요하다. 지혜가 빛나면 무명은 저절로 사라지고, 무명이 없으면 무상한 것에 집착을 하거나 미련을 자지는 일은 저절로 없어지며 , 집착이 없어지면 괴로움도 스스로 자취를 감추게 되는 것이다.  

출처 : 불종사
글쓴이 : 현진스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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