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바라문이여, 나는 열심히 노력하고 정진하여 권태로움이 없었고 새김을 확립하여 미혹에 떨어지지 않았고 몸이 고요하여 격정이 없었고 마음은 집중되어 통일되었습니다.
1) 바라문이여, 나는 감각적 쾌락의 욕망을 여의고 악하고 불건전한 상태를 떠난 뒤, 사유와 숙고를 갖추고 멀리 여림에서 생겨나는 희열과 행복을 갖춘 첫 번째 선정에 들었습니다.
2) 바라문이여, 나는 사유와 숙고가 멈추어진 뒤, 내적인 평온과 마음의 통일을 이루고, 사유와 숙고를 여의어, 삼매에서 생겨나는 희열과 행복을 갖춘 두 번째 선정에 들었습니다.
3) 바라문이여, 나는 희열이 사라진 뒤, 평정하고 새김이 있고 올바로 알아차리며 신체적으로 행복을 느끼며 고귀한 님들이 평정하고 새김이 있고 행복하다고 표현하는 세 번째 선정에 들었습니다.
4) 바라문이여, 나는 행복과 고통이 버려지고 만족과 불만도 사라진 뒤, 괴로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는, 평정하고 세김이 있고 청정한 네 번째 선정에 들었습니다.
15. 이와 같이 맑아지고 청정해지고 더러움이 없고 번뇌가 사라져, 부드럽고 유연하고 확립되고 흔들림 없고 집중된 마음으로 나는 전생의 삶을 새기는 궁극적인 앎에 마음을 기울였습니다. 바라문이여, 나는 전생의 여러 가지 삶의 형태를 기억했습니다. 예를 들어 '한번 태어나고 두 번 태어나고 세 번 태어나고 네 번 태어나고 다섯 번 태어나고 열 번 태어나고 스무 번 태어나고 서른 번 태어나고 마흔 번 태어나고 쉰 번 태어나고 백 번 태어나고 천 번 태어나고 십만 번 태어나고 수많은 세계 파괴의 겁을 지나고 수많은 세계 발생의 겁을 지나고 수많은 세계 파괴와 세계 발생의 겁을 지나면서, 당시에 나는 이러한 이름과 이러한 성을 지니고 이러한 용모를 지니고 이러한 음식을 먹고 이러한 괴로움과 즐거움을 맛보고 이러한 목숨을 지녔고, 나는 그곳에서 죽은 뒤에 다른 곳에 태어났는데, 거기서 나는 이러한 이름과 이러한 성을 지니고 이러한 용모를 지니고 이러한 음식을 먹고 이러한 괴로움과 즐거움을 맛보고 이러한 목숨을 지녔었다. 그곳에서 죽은 뒤에 여기에 태어났다. 라고 이와 같이 나는 나 자신의 전생의 여러 가지 삶의 형태를 구체적으로 상세히 기억했습니다. 바라문이여, 방일 하지 않고 열심히 정진한 자에게 그렇듯이, 나에게 한 밤의 초야에 첫 번째 밝음을 얻자 무명이 부서지고 명지가 생겨나고 어둠이 부서지고 광명이 생겨났습니다. 바라문이여, 이것이 병아리가 알껍질을 깨고 나오는 것과 같은 나의 첫 번째 깨고 나옴이었습니다.
16. 이와 같이 맑아지고 청정해지고 더러움이 없고 번뇌가 사라져, 부드럽고 유연하고 확립되고 흔들림 없고 집중된 마음으로 나는 못 삶의 태어남과 죽음에 대한 궁극적인 앎에 마음을 기울였습니다. 바라문이여, 나는 청정하여 인간을 뛰어넘는 하늘눈으로 뭇삶들을 관찰하여 죽거나 다시 태어나거나 천하거나 귀하거나 아름답거나 추하거나 행복하거나 불행하거나 업보에 따른 뭇삶들에 관하여 분명히 알았습니다. 예를 들어 '이 뭇삶들은 신체적으로 악행을 갖추고 언어적으로 악행을 갖추고 정신적으로 악행을 갖추었다. 그들은 고귀한 님들을 비난하고 잘못된 견해를 갖추고 잘못된 견해에 따른 행동을 갖추었다. 그래서 이들은 육체가 파괴된 뒤 죽어서 괴로운 곳, 나쁜 곳, 비참한 곳, 지옥에 태어났다. 그러나 이 뭇삶들은 신체적으로 선행을 갖추고 언어적으로 선행을 갖추고 정신적으로 선행을 갖추었다. 그들은 고귀한 님들을 비난하지 않고 올바른 견해를 지니고 올바른 견해에 따른 행동을 갖추었다. 그래서 이들은 육체가 파괴된 뒤 죽어서 좋은 곳, 하늘나라에 태어났다.' 라고 이와 같이 나는 청정하여 인간을 뛰어넘는 하늘눈으로 뭇삶들을 관찰하여 죽거나 다시 태어나거나 천하거나 귀하거나 아름답거나 추하거나 행복하거나 불행하거나 업보에 따른 뭇삶들에 관하여 분명히 알았습니다. 바라문이여, 방일 하지 않고 열심히 정진한 자에게 그렇듯이, 나에게 한 밤의 중야에 두 번째 밝음을 얻자 무명이 부서지고 명지가 생겨나고 어둠이 부서지고 광명이 생겨났습니다. 바라문이여, 이것이 병아리가 알껍질을 깨고 나오는 것과 같은 나의 두 번째 깨고 나옴이었습니다.
17. 이와 같이 맑아지고 청정해지고 더러움이 없고 번뇌가 사라져, 부드럽고 유연하고 확립되고 흔들림 없고 집중된 마음으로 나는 번뇌의 부숨에 대한 궁극적인 삶에 마음을 기울였습니다. 나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곧바로 알고, '이것이 괴로움의 발생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곧바로 알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곧바로 알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곧바로 알았습니다. 나는 '이것이 번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곧바로 알고, '이것이 번뇌의 발생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곧바로 알고, '이것이 번뇌의 소멸이다.' 라고 있는 그대로 곧바로 알고, '이것이 번뇌의 소멸로 이끄는 길이다.' 라고 있는 그대로 곧바로 알았습니다. 나는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아서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의 번뇌에서 마음을 해탈하고, 존재의 번뇌에서 마음을 해탈하고, 무명의 번뇌에서 마음을 해탈했습니다. 내가 해탈했을 때 '해탈 되었다' 라는 궁극적인 앎이 생겨났습니다. 나는 '태어남은 부서지고, 청정한 삶은 이루어지고, 해야 할 일은 해 마쳤으며, 더 이상 세상에 태어나지 않는다.' 라고 곧바로 알았습니다. 바라문이여, 방일 하지 않고 열심히 정진한 자에게 그렇듯이, 나에게 한밤의 후야에 세 번째 밝음을 얻자 무명이 부서지고 명지가 생겨나고 어둠이 부서지고 광명이 생겨났습니다. 바라문이여, 이것이 병아리가 알껍질을 깨고 나오는 것과 같은 나의 세 번째 깨고 나옴이었습니다.”
- 앙굿따라니까야, 베란자의 경 중에서
이 경의 앞 부분에는 계율의 수지에 관한 내용이라 발췌에는 생략하였습니다.
인용한 이 부분의 구성은 부처님이 깨달으신 과정을 보여줍니다.
마음의 맑음과 청정을 바탕으로 하여
새김(마음챙김) - 사선정(초선, 이선 삼선, 사선) -
(또한 선정을 바탕으로 하여)
- (자신의 모든 전생을 보는) 숙명통
- (중생의 업과 결과를 보는) 천안통
(이런 숙명통과 천안통을 바탕으로)
- 사성제를 깨달으신 누진통을 바탕으로 완전한 깨달음
선정을 통해서 육신통을 얻게 됩니다.
번뇌(탐진치)를 소멸하면 해탈입니다.
선정을 통달하고 번뇌를 소멸하는 것을 양면 해탈이라 하고
어떻게든 번뇌를 소멸하면 혜해탈(마른 해탈) 이라 합니다.
붓다께서 설법하신 내용은 알고 계신 내용 중 중생에게 유익하다 여겨지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숙명통 천안통 등 신통을 얻어야만 해탈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마음을 맑고 청정하게 함은 필수이지요.
일상에서 계행을 잘 수지하고 닦음은 수행의 필수 조건임을 꼭 기억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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