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윤회하는 삶이 허상임을 일깨우다
선禪으로 본 문화 - 김성우
2010년 09월 343호
“환상에서 벗어난 자체가 깨달음이다”
일체를 꿈ㆍ환상ㆍ그림자로 관하게 하는 훌륭한 방편
“나는 당신을 봅니다(I see you).”
2010년 2월, ‘타이타닉’을 제치고 전 세계 역대 흥행 1위에 올라선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영화 〈아바타〉. 국내에서도 천 만 관객을 동원한 이 영화에서 판도라 행성의 나비족은 상대와 마음이 통할 때 이렇게 말하곤 한다. 이는 물론 ‘나는 당신의 겉모습(현상)이 아니라 당신의 마음(본질)을 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누구나 가진 하나의 본래심本來心을 통해 나와 상대는 물론, 자연 생태계와 물질의 세계까지 그물처럼 연결돼 있는 ‘하나의 생명’임을 암시하는 말이다.
불교와의 연결고리가 곳곳에 숨어있는 영화 〈아바타〉의 스토리는 이렇다. 지구환경이 파괴되고 자원이 고갈되었을 때 인간은 판도라 행성을 발견한다. 그곳에는 인간 욕망의 상징으로서 ‘얻을 수 없는 물질’이란 뜻을 지닌 ‘언옵테이늄(Unobtainum)’이라는 값비싼 광물이 매장되어 있다. 문제는 그것이 나비족이 살고 있는 거대한 나무 밑에 있다는 점. 광물을 얻자면 그들을 이주시키거나 몰아내야만 한다. 협상을 위해 나비족과 인간의 유전자(DNA)를 합성한 ‘아바타’가 만들어졌지만 협상은 더뎠고, 자본의 지배를 받는 용병들은 가공할 무력을 앞세워 나비족을 공격한다. 하지만 판도라의 생명들은 인간의 침략을 막아내고 마침내 생태계의 균형을 지켜낸다는 줄거리다.
불교라는 색안경을 끼고 볼 때, 이 영화는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었다. 우선 ‘아바타(Avatar)’란 제목자체가 의미심장하다. 원래 아바타는 산스크리트 ‘아바따라(avataara)’에서 유래한 말로 ‘내려오다’라는 뜻을 지닌 동사 ‘아바뜨르(ava-tr)’의 명사형으로, 신이 지상에 강림함 또는 지상에 강림한 신의 화신化身을 뜻한다. 불교에서는 현상계를 ‘천백억 화신불’로 상징하기도 한다. 모든 존재의 유일한 본질인 불성佛性이 천백억 화신으로 우리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으로 본다. 결국 눈에 보이는 현상세계(색色)와 보이지 않는 마음의 세계(공空)가 둘도 아니요 하나도 아닌(불이불일不二不一) 동시에, 둘이면서 하나이기도 한 진공묘유(眞空妙有)의 도리를 담고 있다. 영화 〈아바타〉에서 신경망으로 연결된 나무의 뿌리들과 나비족과 교감하는 커다란 말과 새들은 인드라망Indranet으로 연결된 화엄의 세계를 보여주는 듯하다.
‘아바타’라는 말이 컴퓨터에서 쓰이기 시작한 것은 리처드 게리엇의 롤플레잉 게임 시리즈 울티마의 4편인 ‘아바타의 임무(Quest of the Avatar)’(1985)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이 게임은 기존 롤플레잉 게임의 선악구도를 폐기하고 메인 캐릭터의 미덕美德을 완성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이 게임의 영향이 컸기에 이후 나오는 롤 플레잉 게임에서는 주인공 캐릭터를 아바타로 부르는 현상이 보편화되었다. 게다가 90년대 후반, 각종 채팅사이트와 포털 사이트들에서 캐릭터를 치장하는 수익사업을 개시하는데, 이들도 ‘사이버 캐릭터’라는 공식적인 용어 대신 아바타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더욱 일반화되었다.
영화 〈아바타〉의 사이버 캐릭터는 현상세계에서 불성의 화현으로 살아가는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를 상징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을 독립하는 인격체, 즉 개아個我로 여겨 ‘내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붓다가 깨달은 진리는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는 무아無我를 말한다. 사실, 영화속의 아바타는 아집我執과 아상我相을 가진 체 윤회라는 거대한 꿈속에서 살아가는 중생을 가리키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유의지를 가지고 살아간다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업식業識에 끄달려 살아가는 ‘꼭두각시 인형’ 즉, 아바타일 뿐이다.
그렇다면, 업식에 끄달려 사는 아바타인 소아(小我)에서 벗어나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인 대아大我로서 우주와 하나 되어 무심하게, 자재하게 사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윤회’라는 꿈, ‘생사生死가 있다’는 환상에서 벗어나는 방법밖에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매트릭스Matrix라는 가상의 현실, 현실같은 꿈, 환상에서 벗어나야 함을 암시한 영화 〈매트릭스〉(1999년)는 불교적인 메시지를 던지며 불자들의 관심을 받은 영화 중 하나였다. 인공지능 컴퓨터가 지배하는 프로그램화된 가상세계인 매트릭스는 진실을 보지 못하도록 우리 눈을 가린다는 점에서 윤회輪廻라는 관념과 유사하다. 생명을 가진 뭇 존재들은 자신이 지은 업業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윤회를 통해 과보를 받게 되고, 그 과정에서 고통을 느끼면서도 벗어나지 못한다. 불교에서는 이것을 명名과 상相 즉, 개념과 형상으로 이뤄진 사바세계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이 ‘오래된 꿈(현실세계)’에서 깨어날 수 있다면 과연 윤회를 벗어나 대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일까? 놀랍게도 선사들은 “환을 벗어난 자체가 깨달음(이환즉각離幻卽覺)”으로, 여기에는 방편과 순서가 필요 없다며 현실을 꿈이라고 자각하는 순간, 곧바로 대자유를 얻는다고 확언하고 있다. 영명연수선사는 《종경록》에서 “홀연히 잠을 깨니 꿈 속의 모든 일이 사라졌다는 것은 곧 일체가 오직 마음이라는 사실을 깨달아 종경宗鏡에 들어간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을 곧 깨달음이라 하니, 이것은 마치 꿈에서 깨어난 것과 같고, 연꽃이 피어난 것과 같다”고 밝혔다.
《금강경》에서는 보다 구체적으로 꿈과 같은 현실을 자각해 진실의 문을 여는 구체적인 관법觀法을 제시한다. “일체의 있다고 하는 것은 꿈과 같고 환상과 같고 물거품과 같으며 그림자와 같으며 이슬과 같고 또한 번개와 같으니, 응당 이와 같이 관할지니라” 라는 법문이 바로 그것이다. 불자라면 누구나 이 《금강경》 게송을 들었을 것이다. 만약 이것을 구체적인 수행으로 여기지 않고, 선언적인 의미로만 받아들인다면 《금강경》을 수만 독 외운들 공덕이 없다. 한 구 절의 법문이라도 깊이 가슴에 사무칠 때 생사가 본래 없음을 알고, 생사가 본래 없음을 체득해, 생사 없는 본래자리에 계합함으로써, 그 도리를 자유자재로 쓰는 구도의 여정에 들어서는 시작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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