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화경 녹취(문수경전)

법화경 대강좌 1강 - 2 (서품1~13)

수선님 2022. 5. 22. 13:43

법화경 대강좌 1강 - 2 

 

 

  28품을 배대하는데 보면 迹門本門(적문본문)이라고 나오니까 이것을 이야기를 하고 넘어가야 되겠네요.

迹門本門. 迹佛本佛. 迹人本人. 자취로서의 사람. 본래의 사람. 자취로서의 부처님. 본래의 부처님. ←이것을 잘 이해해야 법화경을 이해하는 하나의 열쇠가 됩니다.

迹이라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흔적이고, 눈에 보이는 자취이고 형상이고 역사적인 것이고 그렇습니다. 이야기가 되어지는 것이고 설명되어지는 것이 迹자입니다.

 

  本佛이라고 하는 것은 본래의 부처님입니다.

“본래의 부처님”하면 다 떠오르지요? “개개가 다 부처다.” “사람이 본래 부처다.” 하는 바로 그 부처입니다.

본래의 부처다 이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본래 부처의 역사가 없지요. 역사가 없습니다. 역사가 있으면 迹佛이 됩니다. 석가모니나 아미타불이나 기타 다른 부처님을 迹佛이라고 그럽니다. “흔적이 있는 부처님”이라고 그럽니다. 그러면 그 분은 흔적이 있는 부처님과  “본래의 부처님” 그 양면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쉽게 배대하면 法身佛은 本佛이고, 報身佛과 化身佛은 迹佛이 되는 겁니다. 이것은 부처님을 설명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사람설명하자고 하는 것이고, 세상설명하자고 하는 것이고, 사람이해하고 세상이해하자고 하는 것이지 부처님이해하자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경전은 사람 중심이니까요.

 

  사람을 이끌어다 설명하자고 하면 어떤 것인가 하면, 그래서 迹人本人이라는 말을 씁니다. 자취로서의 사람. 이 모습 이대로가 자취로서의 사람입니다. 흔적이 있지요. 모양이 있지요. 키가 몇 센치고 얼굴은 어떻게 생겼고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고, 이런 흔적이 있는 모습으로서의 사람을 迹人이라고 그럽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디 그것뿐입니까? 그것뿐이 아니잖아요. 진짜는 속에 있잖아요. 사람을 겉 보고 알 수 있나요?

외모 보고 모르는 겁니다. 진짜 위대한 사람은 속에 있습니다.

안 나타납니다. ←이것을 本人이라고 그럽니다. “본래사람.”

 

  본래사람. = 본래불. 같은 말입니다. 본래 흔적으로서의 사람. 밖으로 나타난 사람과 밖으로 나타난 부처님. ←이것도 같은 뜻입니다. 이 관계를 잘 정리하면, 하루하루 인생을 사는데 상당히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 양면을 잘 이해해서 어디에도 치우치지 말고 조화롭게 균형감각을 유지하면서 살 줄 아는 그 삶이 중요합니다. ←이것을 유식한 말로 中道正見(중도정견)이라고 합니다. “중도적인 바른 소견이다.”그럽니다. 보이는 삶과, 보이는 사람과 보이지 않는 사람. ←이것을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고 바르게 균형감각을 유지하면서 이해하고, 내 인생을 그렇게 펼쳐갈 때가 제대로 된 삶이지요. “중도적인 삶”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법화경 공부하는데 迹門本門.

門이라고 하는 것은 그 흔적의 부분을 설명한 부분.

“本門” 하면 본래부처로서의 어떤 내용을 설명한 부분. ←이렇게 迹門本門. 그래서 迹佛本佛. 그 다음에

迹人本人. 요는 迹人本人을 잘 알아야 됩니다.

‘나는 지금 이런 모습이지만 이것만이 아니다. 정말 위대한 나는 나의 본래의 사람 모습은, 밖으로 나타난 것은 만 분의 1도 아니다. 만 분의 1이 될까 말까할 정도다.’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도 안 되는 작은 부분이 흔적으로서 나타났을 뿐이지요. 이것을 하나하나 이해해가는 것입니다. 법화경이 그런 것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창고 저~ 뒤까지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흔적 있는 사람보다도 본래의 사람이 참 중요하고 수억 만 배 더 위대하고 더 크거든요.

 

  부처님도 마찬 가지입니다. 부처님도 밖으로 드러난 부처님보다 본래부처님이 수억 만 배 더 위대하고 더 크거든요. ←이것을 잘 이해함으로 해서 내 자신의 眞面目(진면목). 내 자신의 眞面目을 이해하게 되고, 따라서 다른 사람의 진면목을 이해하게 되고, 그러면 아! 나도 훌륭한 사람이고 남도 훌륭한 사람이다. ←이것을 아! 나도 부처이고 남도 부처구나. 이렇게 해서 남을 부처님으로 이해해줄 때, 그 때 진정한 행복과 평화가 보장이 되는 것이지, 그 외에는 어떤 조건 가지고도 행복이 채워지지 않습니다. 절대 평화가 채워지지 않습니다. 이것이 확실한 것이고, 여기에 대한 확신을 스님들, 특히 불자들은 확신을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문제해결을 다른데서 하려고 하는 것은 도대체 되지 않습니다. 이것이 대체적인 서론으로서의 말씀입니다.

 

  화엄경이 7처 9회 39품. 그러는데 법화경도 2처 3회. 그럽니다. 두 곳에서 세 번에 걸쳐서 법회가 열렸습니다. 지상에서 두 번 설해졌고, 하늘에서, 공중에서 한 번 설해졌습니다. 이것도 배대를 하면 참 재미있는 배대입니다. 처음에 여기 보면, 如是我聞(여시아문)하오니 一時(일시)에 佛(불)이 在(재) 王舍城(왕사성) 耆闍崛山中(기사굴산중)하사 왕사성 영축산에 가 보신 분들 많지요? 바로 거기서 설했습니다. 저는 거기서 ‘이 좁은데서 어떻게 설했는가?’ 가만히 내려다보니까 어마어마한 광장이 그 밑에 있더라고요. 올라서서 저~밑에 광장이 있는 모습을 보고 드넓은 광장 밑에, 지금은 가시넝쿨로 뒤덮였지만 그 넓은광장을 보고 ‘이런 법화경이 결집 될 수 있었겠구나.’ 그랬습니다.

 

  그 영축산 꼭대기에 한 200명 올라가면 비좁아요. 그런데 여기에 보면 어마어마한 숫자가 등장을 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 밑에는 넓은광장이, 얼마나 넓은지 끝이 안 보일 정도로 넓은광장이 있더라고요. 그것이 땅, 地上입니다. 처음에 땅에서 설해집니다. 그리고는 나중에 하늘로 대중을 데리고 올라갑니다. 부처님도 올라가고 하늘로 데리고 올라가서 하늘에서 한번 설해집니다. 거기서 적당히 설하고는 다시 땅으로 내려옵니다. 그래서 2處 3會. 지상과 허공. 세 번에 걸쳐서 說해진다. 2處 3會도 외워 두셔야할 내용입니다.

 

  그것을 간단하게 표현하면 지상에서 설해지는 것은 현실입니다.

우리가 처음에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그러지요? 그 다음에 허공에 올라간 것은 한 차원 달라진 것입니다. “산은 산이 아니요 물은 물이 아니다.” 일체 것을 다 부정한 차원 높은 경지입니다. 다시 내려온 것은 다시 현실로 되돌아 온 것이지요. 산은 다만 산이고 물은 다만 물이다. ←이렇게 표현되는 겁니다. 불교 참 멋있지요. 펼쳐 놓으면 8만대장경 이지만 간추리면 그렇게 간단합니다. 그 보다 더 간단한 것은 주장자도 있고 할도 그 속에도 그런 의미가 다 포함되어 있는 것이지요.

 

  그렇게 2처 3회 설했다 하고, 서품은 그대로 품 이름대로 서문에 해당됩니다. 또 서론에도 해당되고요.

序品科目(서품과목)에는 通序(통서)와 別序(별서)가 있습니다.

通序라고 하는 것은 모든 경전에 공통된 서문입니다. 공통된 서론이예요.

別序라고 하는 것은 특별히 오직 법화경에만 있는 서문입니다.

 

  通序는 6성취라고 해서 信(신) · 聞(문) · 時(시) · 主(주) · 處(처) · 衆成就(중성취) 가 있고, 衆成就에는 聲聞衆(성문중) · 菩薩衆(보살중) · 雜衆(잡중)이 있다.

여기에 오늘은 사부대중이 다 모였는데, 이 법화경에는 별별 神(신)을 섬기는 대중. 별별 종교를 가진 대중. 별별 사람. 나쁜 사람 선량한 사람, 온갖 사람들이 다 모입니다.

이 법화경회상에는 그런 사람들이 다 동참을 해요.

그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금강경에는 어떻습니까? 1250명이지요. 순수 출가대중만 되어 있습니다.     

법화경은 아닙니다. 별별 邪道(사도). 外道(외도). 온갖 신을 섬기는 사람들이 다 동참하고 있다는 것.

 

  別序에 가서는 衆集序(중집서)라고 해서 대중이 모인 서문이 있고, 상서를 나타내는 서문이 있는데 상서를 나타내는 데는 이 국토에서 여섯 가지 상서. 저 국토에서 여섯 가지 상서.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보고는 미륵보살이 그냥 있을 수 없어서 의심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도대체 무슨 소식인가?’

그래서 彌勒疑念(미륵의념). 大衆疑念(대중의념)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미륵이 의심을 하고, 대중들도 ‘이것이 무슨 소식인가?’  ‘어쩌려고 부처님이 이러는가?’ 똑 같이 대중들도 의심을 합니다. 그 다음에 그 의심을 풀어야 되겠지요. 해결해야 됩니다. 그것이 發問序(발문서)입니다. 질문을 한다고요.

 

  ‘누구에게 질문해야 할 것인가?’하고 생각하다가 천불의 스승. 문수보살이 회중에 있는 겁니다. ‘옳다 됐다. 이 사람이 경험도 많고, 천불의 스승이니까 이 사람만이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해서 문수보살에게 그 회답을 듣게 됩니다. 그것을 答問序(답문서)라 해서 물음에 답하는 서문이 쭉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서품은 전체가 서문에 해당됩니다. 그런데 요는 통서보다도 별서. 법화경에만 있는 특별한 서문이 좀 장황합니다.

 

 

         妙法蓮華經 第一卷

 

          序品 第一

 

1.  如是我聞(여시아문)하오니 이와 같이 내가 들으니

2. 一時(일시)에 佛(불)이 어느 날 부처님께서

住(주) 王舍城(왕사성) 耆闍崛山中(기사굴산중)에 머무셨는데 與大比丘衆(여대비구중) 萬二千人(만이천인) 俱(구)함께 있었다. 금강경에서 1200명의 10배로 벌써 불었지요?

皆是阿羅漢(개시아라한)이라 그들은 다 아라한이다.

諸漏(제루) 已盡(이진)하야 모든 번뇌가 다 없어졌고, 또無復煩惱(무부번뇌)하며 다시 더 이상의 번뇌는 없으며, 逮得己利(체득기리)라 자기의 이로울 것을 얻은 사람이다. 자기가 이로울 것.

 

  우리는 진정 뭐가 참으로 나에게 이로운가? 이런 구절에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라한의 덕을 칭송하는데, 逮得己利 ←이런 표현. 참 특이한 겁니다. 자기의 이로울 것. 12000 아라한들. 잘난 사람 천지인데, 어찌 이런 말로서 그 분의 덕을 칭송했는가? 이거 중요한 것이지요. 진정 자기에게 이로울 것이 무엇인가? 불공 좀 하고, 재 지내는데 시장 좀 소홀히 보는 것이 마음에 걸리는가? 아니면 그것저것 다 잊어버리고 법화경 한 구절이라도 야무지게 내가 마음에 새기자는 것이 나에게 이로운가? 뭐가 실지로 이로운가? ←이런 것들도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盡諸有結(진제유결) 모든 속박으로부터 다 벗어났다. 속박은 무엇 때문에 있지요? 있음으로부터 있는 것입니다. 존재의 결박이라. = 有結. 이런 표현도 참 절묘합니다. 이 법화경이요. 문학적으로 철학적으로 종교적으로 이보다 더 우수한 경은 없다고 그럽니다. 이보다 더 우수한 작품은 없다는 겁니다. 이런 구절 하나하나가 己利 有結이니 이런 글자. 단 두 글자인데 얼마나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까? 우리의 속박은 전부 있다고 하는데 있습니다. 있다고 하는 문제 때문에 속박이 되어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분들은 다 없어졌다. 그리고

心得自在(심득자재)라 마음이 自在했다.

 

  모두가 다 한 가닥씩 하시는 스님들이 모이셨는데 이름을 다 불러드리면 좋겠지만, 생략을 했습니다.

여기는 一文一字是眞佛. ←이래 놓고 이름을 생략하기가 좀 미안합니다.

3. 其名曰(기명왈) 阿若憍陳如(아야교진여) 摩訶迦葉(마하가섭) 優樓頻螺迦葉(우루빈나가섭) 伽耶迦葉(가야가섭) 那提迦葉(나제가섭) 舍利弗(사리불) 大目犍連(대목건련) 摩訶迦旃延(마하가전연) 阿누樓馱(아누루타) 劫賓那(겁빈나) 僑梵波提(교범바제) 離婆多(이바다) 畢陵伽姿踐(필릉가바차) 薄拘羅(박구라) 摩訶俱絺羅(마하구치라) 難陀(난타) 孫陀羅難陀(손타라난타) 富樓那彌多羅尼子(부루나미다라니자) 須菩提(수보리) 阿難(아난) 羅睺羅(라후라). 아주 친한 사람들 꽤 있지요? 여러분들하고 친한 분들도 꽤 여럿이 있습니다.

如是衆所知識(여시중소지식) 이와 같은 衆所知識. 많은 사람들이 이미 다 알고 있는 大阿羅漢等(대아라한등)들이었다.

 

 4. 復有學無學二千人(부유학무학이천인) 다시 또 지금 공부하고 있는 사람과 공부 다 한 사람이 2000명이 있었는데 예컨데, 摩訶波閣波提比丘尼(마하파사파제비구니)는  眷屬6000人俱(권속육천인구) 그들의 권속 6000명, 대단 하지요? 6000명의 권속들로 더불어 함께했고.

라후라의 어머니 耶輸陀羅比丘尼(야수다라비구니) 亦與眷屬俱(역여권속구) 또한 그들의 권속과 함께했다. 제가 이 구절을 보고 탄복을 했습니다.

 

  “라후라의 어머니 야수다라”그랬어요. “석가모니부처님의 거시기” ←이렇게 표현 아니 하고,  차~ㅁ 절묘하잖아요.

“라후라의 어머니 야수다라” 아~~ 이것은 법화경을 결집한 사람이 우리를 가지고 놀아요. 독자를 완전히 주물럭주물럭 하는 겁니다. 독자의 마음을 다 읽는 겁니다.

우리들 머리에 “야수다라”하면 ‘으 응 그 사람이지.’ 그냥 머릿속에 다 와 있어요. 아니다 이 겁니다. “제발 좀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 라후라의 어머니 야수다라”다. 이런 것을 구석구석 다 이렇게 느끼고 음미하고 씹고 넘어가려면 한이 없습니다.

 

 5. 菩薩摩訶薩(보살마하살) 八萬人(팔만인)이 皆於阿耨多羅三藐三菩提(개어아뇩다라삼먁삼보리) 모두가 無上正等正覺(무상정등정각)에서 不退轉(불퇴전). 退轉하지 아니해서, 이거 덕을 찬탄하는 것입니다. 저 앞에 아라한들이 덕을 찬탄했듯이... 皆得陀羅尼(개득다라니) 또 다라니를 얻었다. 이럴 때는 기억력 좋다고 봐 버리면 좋습니다. 陀羅尼 = 摠持(총지)니까요. 한번 들으면 그냥 다 외운다. 

  樂說辯才(요설변재). 설법도 잘해요. 轉(전) 不退轉法輪(불퇴전법륜)입니다. 樂說辯才갖췄으니까 법문도 잘하는데, 한 번 딱 법문 들었으면 더 이상 그 사람이 신심이 떨어지거나 불교에서 물러서거나 하지를 않습니다. 그렇게 좀 감동을 줘야 되는데 제가 늘 부족해 하는 면이 그것입니다. 이거 뭐 들을 때뿐이지 그 다음 날 보면 없습니다. 이 不退轉法輪을 굴려야 되는데, 신도도 한 번 절에 오면 더 이상 다른 절에 기웃거리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 있으면 좋을 텐데... 그것이 안 됩니다. 不退轉法輪을 얻어야 됩니다. 

 

  供養無量百千諸佛(공양무량백천제불) 無量百千만 부처님께 공양하사 於諸佛所(어제불소) 모든 처소에서 植(식) 衆德本(중덕본) 온갖 덕의 근본을 심어서 常爲諸佛(상위제불) 항상 모든 부처님이 之所稱歎(지소칭탄)하는 바 다.

以慈修身(이자수신) 善入佛慧(선입불혜) 참 좋지요.

以慈修身 善入佛慧. 자비로서 몸을 무장하고 있습니다. 몸을 닦았다고 할 필요 없습니다. 자비로서 무장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善入佛慧입니다. 부처님의 지혜에 잘 들어가 있습니다. 그리고 通達大智(통달대지)입니다. 큰 지혜에도 통달 해있습니다. 

 到於彼岸(도어피안) 피안에 오른 것은 말 할 것도 없고요. 名稱(명칭) 普聞無量世界(보문무량세계) 그 소문이 그냥 온 세상에 파다하다 이 겁니다. 그래서 能度無數百千衆生(능도무수백천중생) 능히 제도 하시니,   

 

 6. 其名曰(기명왈)이름을 열거하다. 文殊師利菩薩(문수사리보살) 觀世音菩薩(관세음보살) 得大勢菩薩(득대세보살) 常精進菩薩(상정진보살) 不休息菩薩(불휴식보살) 寶掌菩薩(보장보살) 藥王菩薩(약왕보살) 勇施菩薩(용시보살) 寶月菩薩(보월보살) 月光菩薩(월광보살) 滿月菩薩(만월보살) 大力菩薩(대력보살) 無量德菩薩(무량력보살) 越三界菩薩(월삼계보살) 跋陀婆羅菩薩(발타파라보살) 彌勒菩薩(미륵보살) 寶積菩薩(보적보살) 導師菩薩(도사보살) 如是等(여시등) 이와 같은 菩薩摩訶薩八萬人(보살마하살팔만인) 俱(구) 함께했더라. 우리가 오늘 법화경 처음 공부하는 이 자리에 정말 성황을 이뤘네요. 정말 많은 스님들이 뭔가 위급 상황을 느끼셨는지, 참으로 많이 모이셨습니다. 이렇게 많이 모인 예는 정말 처음입니다. 그런데 그때 부처님 법화회상에는 우리 여기 모인 수만 배 가까운 이 들입니다.

 

 7. 爾時(이시) 그 때에 釋提桓因(석제환인)이 여기서부터  잡중 입니다. 아까 보살대중은 끝났고요. 잡중이라고 표현하는데 잡중은 욕계중 · 색계중 · 용중 · 긴나라 · 건달바 · 아수라 · 가루라 · 마후라가 · 인왕 ←이런 이들도 다 이 속에 포함됩니다.

與其眷屬(여기권속) 二萬天子(2만천자) 俱(구). 석제환인이 그들 권속 이만 천자와 함께했고, 復有(부유)  月天子(명월천자)와 普香天子(보향천자)와 寶光天子(보광천자) 와 四大天王(사대천왕)이 與其眷屬(여기권속) 萬天子(만천자) 俱(구). 그들 권속 만 천자와 더불어 함께했고, 그 다음은 색계 대중입니다.

 

  自在天子(자재천자)와 大自在天子(대자재천자)- 與其眷屬(여기권속) 三萬天子(3만천자) 俱(구). 그들 권속 만 천자로 함께했고,

娑婆世界主(사바세계주)인 梵天王(범천왕)과 尸棄大梵(시기대범)과 光明大梵等(광명대범등)이 與其眷屬(여기권속) 萬二千天子(만2천자) 俱(구). 그들 권속 만 2천자로 함께했다. 여기서 제가 앞발뒷발 다 들고, 모른다고 하는 것은 왜 하필 이 사람은 만 2천자냐? 왜 저 사람은 하필 3만 천자냐? 이 숫자에도 상당히 의미하는 바가 있을 텐데, 그것은 아직 제가 밝혀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혹 그 숫자가 상징하는 것을 제가 아는 대로만 말씀드리겠습니다만, 그래서 법화경은 보면 볼수록 문제가 자꾸 드러납니다. 문제투성입니다. “모르는 문제투성이”라는 말이지요.

      

8.  有(유). 八龍王(팔용왕)이 있으니 難陀龍王(난타용왕) 跋難陀龍王(발난타용왕) 娑伽羅龍王(사가라용왕) 和修吉龍王(화수길용왕) 德叉迦龍王(덕차가용왕) 阿那婆達多龍王(아나바달다용왕) 摩那斯龍王(마나사용왕) 優鉢羅龍王等(우발라용왕등) 各與若干(각여약간)이 百千眷屬(백천권속)으로 俱(구). 더불어 함께했고,

 

9. 有 四 緊那羅王(긴나라왕)이 있으니 法緊那羅王(법긴나라왕) 妙法緊那羅王(묘법긴나라왕) 大法緊那羅王(대법긴나라왕) 持法緊那羅王(지법긴나라왕)이 各與若干(각여약간)약간 각각 百千眷屬(백천권속)으로 俱. 함께했다.

 

10. 有 四 乾闥婆王(건달바왕)이 있는데 藥乾闥婆王(악건달바왕) 藥音乾闥婆王(악음건달바왕) 이것 건달바는 음악을 좋아하니까 “악”이라고 발음해야 옳습니다.

美乾闥婆王(미건달바왕) 美音乾闥婆王(미음건달바왕) 各與若干(각여약간)약간 각각 百千眷屬(백천권속)으로 俱. 더불어 함께했고,

 

11. 有 四 阿修羅王(아수라왕)이 있으니 婆雉阿修羅王(바치아수라왕) 佉羅騫馱阿修羅王(거라건타아수라왕) 毘摩質多羅阿修羅王(비마질다라아수라왕) 羅睺阿修羅王(라후아수라왕) 各與若干(각여약간)약간 각각 百千眷屬(백천권속)으로 俱. 더불어 함께했다.

 

  교재에다 음을 달아 놓으니까 좋지요? 편하지요? 하하하하하하하 나, 그 속 다 알지요. 그래서 이렇게 음 달린 교재를 만든 겁니다. 저도 한글이 쉽지 한문이 쉽지가 않아요. 외국어 가지고 불교공부 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입니다. 그거 알아야 돼요. 모든 것이 빨리 한글화 되어야합니다. 한글 교재로 된 것을 가지고 공부해야 됩니다. 어느 나라가 외국어 공부하기 위해서 다른 뭘 하면 몰라도, 불교공부 하는데 외국어가지고 공부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입니다. 야~ 이거 신기한 민족입니다. 강원에 가면 전부 그 서툰 외국어가지고 불교공부 하는 겁니다. 불교도 어렵고 한문도 어렵고요.

 

12. 有 四 迦樓羅王(가루라왕)이 있으니 大威德迦樓羅王(대위덕가루라왕) 大身迦樓羅王(대신가루라왕) 大滿迦樓羅王(대만가루라왕) 如意迦樓羅王(여의가루라왕) 各與若干(각여약간)약간 각각 百千眷屬(백천권속)으로 俱. 더불어 함께했다. 그 다음에 인왕중인데,

 

 “위제희자아사세”그랬습니다. 여기도 참 탄복할 대목이 있습니다. 위제희의 아들 아사세입니다. 아사세. 그 사람은 아주 천하에 나쁜 사람 아닙니까? 자기 아버지 왕위를 찬탈하고, 아버지를 옥에다 가두잖아요. 빈비사라왕의 아들이잖아요. 이 사람이 글쎄 아버지를 옥에 가두고 굶기고, 세상에 아주 나쁜 사람입니다. 위제희보살은 세상에 얼마나 선량한 보살입니까? 세상에 둘도 없이 훌륭한 보살이 위제희입니다. 그래 “위제희의 아들 아사세” 차~~암 절묘한 표현입니다. ←이렇게 함으로 해서 아사세가 그냥 살아나는 겁니다. 위제희는 더욱 돋보이고요. 아사세왕 그 나쁜 사람도 여기에 동참 했다는 겁니다. 끝내는 물론 선으로 돌아오긴 했습니다만, 그러나 우리 머리에는 “아사세”하면 죽일 놈입니다. 위제희보살이 어땠습니까?

 

  몸에 풀을 쒀서 바르고 꿀을 발라서 옷을 입고 감옥에 들어가서 빈비사라왕 살리려고, 살에 바른 꿀, 풀을 빨아 먹어서 연명하게한 사람 아닙니까? 그런 사람인데 여기서 아사세를 척 살려 주는데 “위제희의 아들 아사세”다. 그러니까 쎔쎔이다 이겁니다.

그 훌륭한 위제희 보살. 그리고 그 나쁜 놈 아사세. 둘 다 살아나는... 정말 이 법화경은요. 이런 속을 들여다보면 너무 훌륭한 가르침이고 위대한 경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13. 韋提希子阿闍世王(위제희자아사세왕) 與若干百千眷屬(여약간 백천권속) 俱(구) 그도 약간 백천권속과 함께하여 各禮佛足(각례불족) 退坐一面(퇴좌일면) 각각 부처님 발에 예배 하고 물러나 한쪽에 앉았더라.

 

   - 1강-3으로 이어집니다. -

 

 

 

 

 

 

 

 

 

법화경 대강좌 1강 - 2 (서품1~13)

법화경 대강좌 1강 - 2 28품을 배대하는데 보면 迹門ㆍ本門(적문본문)이라고 나오니까 이것을 이야기를 하고 넘어가야 되겠네요. 迹門ㆍ本門. 迹佛ㆍ本佛. 迹人ㆍ本人. 자취로서의 사람. 본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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