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화경 대강좌 2강 - 2
70. 爾時 文殊師利 - 於 大衆中 欲重宣此義 而說偈言
이시 문수사리 어 대중중 욕중선차의 이설게언
그 때 문수사리가 대중 가운데서 欲重宣此義하사 而說偈言하사대 이제 지금까지를 총정리를 해서 게송으로 이야기 합니다.
71. 我念過去世 無量無數劫 有佛人中尊 號日月燈明
아념과거세 무량무수겁 유불인중존 호일월등명
내가 기억해보니 과거세 無量無數劫에 부처님=人中尊이 계셨는데 이름이 일월등명이시라.
世尊演說法 度無量衆生 無數億菩薩 令入佛智慧
세존연설법 도무량중생 무수억보살 영입불지혜
세존이 演說法하사 법을 연설하사 한량없는 중생과 無數億菩薩을 제도하사 부처의 지혜에 들어가게 하시니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부처의 지혜”이것이 과연 뭐냐? 결국은 법화경도 “불 지견” 지견이라는 말도 쓰고 지혜라는 말도 쓰는데, 같은 뜻입니다. 佛智慧. 우리가 자나 깨나 갖고 싶은 보물이 이것 아니겠습니까? 부처님의 깨달으신 그와 같은 지혜를 저도 가졌으면 인생을 보는데, 또 세상을 보는데 얼마나 속 시원하고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佛未出家時 所生八王子 見大聖出家 亦隨修梵行
불미출가시 소생팔왕자 견대성출가 역수수범행
佛未出家時에 부처님이 아직 출가하기 전에, 이것은 최후 한 부처님이야기이고, 저 앞에는 최초 일불이고, 이것은 최후 부처님이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내용이 그렇습니다. 최후 부처님이 아직 출가하기 전에, 여덟 왕자가 있었다. 大聖이 출가한 것을 보고, (앞에서는 아버지가 출가한 것을 듣고, 그랬지요?) 또한 따라서 범행을 닦았으며,
72. 時佛說大乘 經名無量義 於諸大衆中 而爲廣分別
시불설대승 경명무량의 어제대중중 이위광분별
그때에 부처님이 大乘을 설하시니 이름이 無量義경이었다. 여러 대중 가운데서 위하여 널리 분별하시니라.
佛說此經已 卽於法座上 跏趺坐三昧 名無量義處
불설차경이 즉어법좌상 가부좌삼매 명무량의처
부처님이 이 경 다 설해 마치시고 곧 법좌에서 가부좌를 맺고 삼매에 드시니 이름이 量義處三昧 였었다. 다시 거론합니다. 지난 시간에 참석 못하셔도 여기 그대로 반복이 되고 있습니다.
73. 天雨曼陀華 天鼓自然鳴 諸天龍鬼神 供養人中尊
천우만다화 천고자연명 제천룡귀신 공양인중존.
하늘에서는 만다라 꽃비가 내리고, 하늘에서는 북이 저절로 울리고, 천신과 용과 귀신들이 人中尊. 부처님께 공양하며
一切諸佛土 卽時大震動 佛放眉間光 現諸希有事
일체제불토 즉시대진동 불방미간광 현제희유사
일체의 모든 불토가 즉시에 크게 진동했다. 그리고 부처님은 미간에서 광명을 놓아서 여러 가지 희유한 일을 나타내시며
74. 此光照東方 萬八千佛土 示一切衆生 生死業報處
차광조동방 만팔천불토 시일체중생 생사업보처
이 광명이 동쪽으로 18000 불토를 비추사, “불토” “불토” 이렇게 하는데 꼭 부처님국토라고 볼 필요가 없지요. 그냥 세계라고 봐도 좋습니다. 그냥 “국토” “세계” ←이렇게 봐도 상관없습니다. 경전에서는 늘 세계라고 하기보다 불토라는 말을 잘 써서 그렇지요. 그리고 一切衆生 生死業報處를 보이시니
有見諸佛土 以衆寶莊嚴 琉璃頗梨色 斯由佛光照
유견제불토 이중보장엄 유리파리색 사유불광조
어떤 이는 여러 불 국토에서 여러 가지 보배로써 장엄했으되, 琉璃와 頗梨色이라. 이는 부처님광명의 빛을 말미암은 것이며,
及見諸天人 龍神夜叉衆 乾闥緊那羅 各供養其佛
급견제천인 용신야차중 건달긴나라 각공양기불
또 여러 천인들과 용신 야차대중과 건달바와 긴나라가 그 부처님께 공양하는 것을 다 본다는 말입니다.
75. 又見諸如來 自然成佛道 身色如金山 端嚴甚微妙
우견제여래 자연성불도 신색여금산 단엄심미묘
또 보니 여러 여래는 저절로 불도를 이루사 색신이 금산과 같으며 단엄하기가 심히 미묘하더라.
如淨琉璃中 內現眞金像 世尊在大衆 敷演深法義
여정유리중 내현진금상 세존재대중 부연심법의
깨끗하기가 유리 가운데서 眞金像을 안에서 나타내는 것과 같으며, 世尊이 대중가운데서 아주 깊은 법의 도리를부연해서 설명하시는데,
一一諸佛土 聲聞衆無數 因佛光所照 悉見彼大衆
일일제불토 성문중무수 인불광소조 실견피대중
낱낱 부처님국토에서 무수한 성문대중이 부처님의 광명 비추는 바를 인해서 다 저 대중들을 보았느니라.
76. 或有諸比丘 在於山林中 精進持淨戒 猶如護明珠
혹유제비구 재어산림중 정진지정계 유여호명주
혹은 어떤 여러 비구들은 산림가운데 있어서 정진하고 계를 청정하게 가진 것이 마치 밝은 구슬을 보호하듯이 한다.
又見諸菩薩 行施忍辱等 其數如恒沙 斯由佛光照
우견제보살 행시인욕등 기수여항사 사유불광조
또 보니 어떤 보살들은 보시를 행하고 인욕을 행하되, 그 수가 항하강의 모래수와 같은 것은, 이것은 다 부처님이 광명을 비춘 것을 말미암아서 여기서 다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듯이 보게 되었다. 하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又見諸菩薩 深入諸禪定 身心寂不動 以求無上道
우견제보살 심입제선정 신심적부동 이구무상도
또 광명을 통해서 보는데 여러 보살들은 깊이 선정 들어가서 몸과 마음이 고요해서 동하지 아니하므로 그래서 그것으로서 無上道를 구하는 겁니다. 최상의 도를 구하며,
又見諸菩薩 知法寂滅相 各於其國土 說法求佛道
우견제보살 지법적멸상 각어기국토 설법구불도
또 보니 어떤 여러 보살들은 법의 적멸한 모습을 알아서는 각각 그 국토에서 說法求佛道하며, 법을 설해서 불도를 구하며, 여기 “무상도” “불도” 표현이 달라서 그렇지 다 앞에서 말한 “부처님의 지혜”라고 보면 됩니다.
爾時四部衆 見日月燈佛 現大神通力 其心皆歡喜
이시사부중 견일월등불 현대신통력 기심개환희
各各自相問 是事何因緣(각각자상문 시사하인연)
그 때에 사부대중은 일월등명불의 큰 신통 나타내심을 보고 그 마음이 크게 환희해서 각각 스스로 묻되 ‘이것이 무슨 인연인가?’ 라고 하더니
78. 天人所奉尊 適從三昧起 讚妙光菩薩 汝爲世間眼
천인소봉존 적종삼매기 찬묘광보살 여위세간안
一切所歸信 能奉持法藏 如我所說法 唯汝能證知
일체소귀신 능봉지법장 여아소설법 유여능증지
천인들이 다 공경하는바 마침 삼매로 부터 일어나서 묘광보살을 찬탄하되, 그대는 世間眼이라. 一切所歸信이라. 모든 사람들이 다 귀의하고 믿을 바라. 능히 法藏을 받들어 가지되 如我所說法은 내가 설한 법은 唯汝能證知다. 오직 그대만이 능히 증득해서 안다.
世尊旣讚歎 令妙光歡喜(세존기찬탄 영묘광환희)하사 세존이 이미 찬탄하사 묘광으로 하여금 환희케 하시고,
79. 說是法華經 滿六十所劫 不起於此座 所說上妙法
설시법화경 만육십소겁 불기어차좌 소설상묘법
이 법화경을 60소겁이 가득할 때까지 설했는데 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아니 하시고, 所說上妙法 최상의 아름다운 법을, (아름다운 이치지요.)
是妙光法師 悉皆能受持(시묘광법사 실개능수지)
이 묘광보살법사가 悉皆能受持하였느니라. 받아 受持하였느니라.
우리가 “묘법연화경” 그러는데 늘 여러 번 말씀드리지만, 이치는 알고 보면 참 無上甚深微妙法입니다. 이치가 본래 무상심심미묘법입니다. 그런데 그 이치를 꿰뚫어 보고 설법하신 설법내용도 역시 이치와 같이 무상심심미묘법입니다. 그래서 가르침도 무상심심미묘법이라고 하고, 본래 이치도 무상심심미묘법입니다.
우리가 이 꽃 한송이만 가지고 이야기 하더라도 얼마나 불가사의 합니까?
정말 無上甚深微妙法입니다. 이 속에 포함되어 있는 그 기기묘묘한 이치. 저절로 그럴 수밖에 없는 이치. 그런 것을 생각한다면 그냥 무심히 넘겨서 그렇지, 정말 그 이치는 미묘하기 이를 데 없고 또 알고 보면 아름답기 이를 데 없다. 그래서 “묘법연화”라고 하는 것이지요. 연꽃처럼 아름답고 미묘한 진리의 가르침.
80. 佛說是法華 令衆歡喜已 尋卽於是日 告於天人衆
불설시법화 영중환희이 심즉어시일 고어천인중
부처님이 이 법화를 설 하사 중생들로 하여금 환희케 하고 곧 그 날 바로 천인들과 대중에게 고하시되
諸法實相義 已爲汝等說 我今於中夜 當入於涅槃
제법실상의 이위여등설 아금어중야 당입어열반
諸法實相義 뜻을 이미 그대들을 위해서 설 했으니 내가 지금 한 밤중에 열반에 마땅히 들리라.
汝一心精進 當離於放逸 諸佛甚難値 億劫時一遇
여일심정진 당리어방일 제불심난치 억겁시일우
그대들은 일심으로 정진해서 마땅히 방일을 떠나라. 방일하지 말라. 부처님이 제자들에게 그런 말 남긴 것이 도처에서 나오지요. 특히 유교경 같은데 보면 방일하는 것을 아주 금했습니다. 부지런해야 됩니다. 게으름 피우면 그 한정된 우리 인생을 막 그냥 낭비해 버리는 것이거든요. 부처님은 그것을 제일 안타까워했습니다. 정말 우리가 출가해서 가장 큰 혜택이, 많은 시간을 가지고 있다는 것. 세상 사람들은 생업에 열중하느라고 시간이 없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24시간 통째로 내시간입니다.
그래 그 시간을 유효적절하게 잘 활용하면 엄청난 공부를 할 수가 있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니 부처님이 當離於放逸. “마땅히 방일을 떠나라. 절대 방일하지 말고 부지런히 공부하라.”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는 것입니다. 유교경에 아주 누차 나오지요.
諸佛甚難値니라. 정말 깨달은 사람 만나기는 참으로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盲龜遇木”이라고 그러지요. 우리가 흔히 식은 죽 먹듯이 쓰는 말. 人生難得이요, 佛法難逢이라. 億劫時一遇라. 억 겁 동안에 한 번 만난다.
世尊諸子等 聞佛入涅槃 各各懷悲惱 佛滅一何速
세존제자등 문불입열반 각각회비뇌 불멸일하속
세존의 여러 제자들이 부처님이 열반에 든다는 소리를 듣고는 각각 悲惱를 품어. 아주 슬퍼하고 근심하고 그냥 괴로워하는 마음을 품으며 佛滅一何速고. 부처님의 열반이 어찌 이리 빠른가? 그래서 열반경에 “어찌하여 한 겁도 채우지 못하시는가? 우리에게 반 겁만 설법하시고 이렇게 가시는가?” ←이런 말이 있게 된 것이지요.
81. 聖主法之王 安慰無量衆 我若滅道時 汝等勿憂怖
성주법지왕 안위무량중 아약멸도시 여등물우포
聖主法之王이 성인의 주인이여, 법 가운데 왕이
安慰無量衆하사대 한량없는 대중들을 安慰하사되,
我若滅道時에 내가 만약 滅道할 때에 그대들은 근심하거나 두려워하지 말지니라.
是德藏菩薩 於無漏實相 心已得通達 其次當作佛
시덕장보살 어무루실상 심이득통달 기차당작불
號曰爲淨身 亦度無量衆(호왈위정신 역도무량중)
덕장보살이 無漏實相해서 心已得通達이라. 마음이 이미 통달했다. 저 앞에서 덕장보살에게 수기하는 이야기가 있었지요? 이 사람이 대신할 것이니까 其次當作佛하리니 다음에 부처를 이룰 것이니 號曰爲淨身. 정신이라 하리라. 亦度無量衆하리라. 또한 한량없는 중생들을 제도할 것이다.
82. 佛此夜滅度 如薪盡火滅 分布諸舍利 而起無量塔
불차야멸도 여신진화멸 분포제사리 이기무량탑
比丘比丘尼 其數如恒沙 倍復加精進 以求無上道
비구비구니 기수여항사 배부가정진 이구무상도
佛此夜滅度하시대 부처님이 그날 밤 滅度. 열반에 드시니 如薪盡火滅이라. 마치 나무가 다 타고 불기운마저 싸늘하게 식어버린 것과 같다. ←이렇게 열반이라는 낱말을 해석하지요. 사전적인 해석이 如薪盡火滅입니다. 나무를 태울 때 나무가 다 타고 불기운마저 싸늘하게 식은 상태.
分布諸舍利하여, 여러 사리들을 나누어서 한량없는 탑을 세우며, 비구비구니와 그 숫자가 항하강의 모래수와 같더라. 다시 더 倍復加精進해 가지고서 無上道를 구하니라.
83. 是妙光法師 奉持佛法藏 八十所劫中 廣宣法華經
시묘광법사 봉지불법장 팔십소겁중 광선법화경
是諸八王子 妙光所開化 堅固無上道 當見無數佛
시제팔왕자 묘광소개화 견고무상도 당견무수불
이 묘광법사보살이 佛法藏을 奉持해서 80소겁 가운데서 법화경을 널리 선포하시거늘 여덟 왕자는 묘광이 開化한바로 묘광보살이 가르쳤다는 말입니다. 가르친 바로서 無上道에 아주 堅固해져서 無數佛을 마땅히 친견하고,
供養諸佛已 隨順行大道 相繼得成佛 轉次而授記
공양제불이 수순행대도 상계득성불 전차이수기
最後天中天 號曰然燈佛 諸仙之道師 度脫無量衆
최후천중천 호왈연등불 제선지도사 도탈무량중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고 나서 隨順해서 大道를 행하고, 相繼得成佛하사 8왕자가 상속해서 성불 한다 이겁니다. 차례차례로 성불해서 점차로 수기하시며, 最後天中天은 號曰然燈佛이라. 이 “연등불”할 때도 “然” ←이렇게 써놓고 “연등불” “연등불”하는데 이것은 통용이지요. “燃” ←이것하고 통용입니다. 그래서 상관없습니다.
諸仙之道師로서 여러 신선가운데 도사로서 한량없는 중생을 제도하시니라.
84. 是妙光法師 是有一弟子 心常懷懈怠 貪着於名利
시묘광법사 시유일제자 심상회해태 탐착어명리
求名利無厭 多遊族姓家 棄捨所習誦 廢忘不通利
구명리무염 다유족성가 기사소습송 폐망불통리
이 묘광법사에게 是有一弟子. 그때 한 제자가 있었는데 心常懷懈怠하야 해태함을 마음에 항상 품고 名利를 탐착했으며 名利를 구해서 싫어할 줄을 몰라. 끊임없이 명성과 이익만을 쫓아다닌다 이겁니다.
그러고 보니까 요즘 우리가 전부 미륵의 과거 같고, 그러므로 해서 미륵도 보통 우리였었는데, 우리처럼 탐착심. 명예. 이익. ←이런 것만 쫓아다니던 분이었었는데, 우리의 희망인 미래의 부처님이 되었잖아요.
미륵보살! 그래서 미륵보살만 부르는... 요즘은 그런 스님들을 잘 못 보겠는데 옛날 우리 어릴 때는 미륵보살을 부르는 “미륵불” “미륵불” 그랬어요. 미륵불을 부르는 그런 노장스님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미륵불이 下生 했을 때 같이 태어나서 그 부처님에게 바로 직접 가르침을 듣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그렇게 미륵불을 부르는 이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것 참, 이 미륵불이 정말 우리에게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위로가 되고 또 희망이 되고 그렇습니다. 그냥 미륵불이 아닙니다. 미륵불이 이런 분 아닙니까?
우리하고 똑 같은, 지금현재 우리하고 똑 같은 분이었어요. 그런데 오늘 날 그 훌륭한 미륵불이 되었다. 우리는 얼마나 위안이 됩니까? 또 용기를 갖게 되고요. 희망을 갖게 되고요. 이 사람보세요. 多遊族姓家입니다. 아주 명성 높은 장관이나, 族姓家라고 하는 것은 명성이 높은 사람들 집에 출입하기 좋아하고, 속빈 어떤 중들은 보면 “아~, 내가 정치계 누구하고 안다고...” 그저 입만 벌리면 그 소리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것이 인간의 한 심리를 말하는 것인데 우스운 일 같으면서도 보통 사람들의 심리입니다. 어쩔 수 없는 것이지요. “누구하고 안다고...” 알고 보니 별로 알지도 못하면서 안다고 그렇게... 허허허
棄捨所習誦. 자기가 외웠던 것. 어쩌다, 어쩌다 경전 좀 외우고 염불 좀 외운 것 다 까먹어 버리지요. 앉아서 그것만 전문으로해도 될까 말까 한 것이 공부인데 族姓家나 쫓아다니고 명성이나 좋아하면 그것이 남아있을 리가 있겠습니까? 廢忘不通利입니다. 다 잊어버리고는 통달하지를 못했을새.
以是因緣故 號之爲求名 亦行衆善業 得見無數佛
이시인연고 호지위구명 역행중선업 득견무수불
供養於諸佛 隨順行大道 求六波羅密 今見釋師子
공양어제불 수순행대도 구육바라밀 금견석사자
이러한 인연으로 이름 해서 구명이라 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또한 여러 가지 선업을 행해서 한량없는 부처님을 친견하여 여러 부처님께 공양하고, 큰 도를 隨順해서 행했으며 6바라밀을 갖추었을새. 그래서 지금 釋師子를 뵙고, 부처님이지요. 부처님을 뵙고
其後當作佛 號名曰彌勒 廣度諸衆生 其數無有量
기후당작불 호명왈미륵 광도제중생 기수무유량
그 후 마땅히 부처를 지으리니 號曰彌勒이라. 여기는 미륵불이 될 것이라는 말까지 분명히 나타나지요? 미륵경이 이런데 근거를 해서 생긴 것이기도 하고요. 어느 것이 먼저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런 이야기가 여러 경전에 등장을 합니다. 여러 중생들을 널리 제도하되 그 수가 한량이 없으리라.
85. 彼佛滅度後 懈怠者汝是 妙光法師者 今則我身是
피불멸도후 해태자여시 묘광법사자 금즉아신시
彼佛滅度後에 그 부처님이 멸도한 후에 懈怠했던 사람이, 게을렀던 사람이 바로 그대요, 또 묘광법사라고 하는 것은 我卽是身이라. 그 때 모든 사람을 가르쳤던, 그 많은 부처의 스승노릇을 했던 묘광보살은 바로 내다. 이 말입니다.
我見燈明佛 本光瑞如此 以是知今佛 欲說法華經
아견등명불 본광서여차 이시지금불 욕설법화경
我見燈明佛 = 일월등명불입니다. 내가 燈明佛의 本光瑞如此일세. 본래 그 광명의 상서가 이와 같은 것을 보았을 새. 以是知今佛이, 이로서 지금 부처님이 법화경을 설하고자 하는 것을 분명히 알 수가 있다는 말 이지요. 이것이 眞理는 同道다. 진리는 古今에 동일하다는 뜻입니다. 사실은 이런 것이 그런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과거 일월등명부처님이 정말 진리의 가르침인 “묘법연화경”을 설했다는 것은 오늘 날 석가모니부처님이 설하신 그것이 정말 이것이 어떻게 보면 청천벽력 같은 소리인데, 정말 파격적인, 그 당시 불교에서는 이것은 정말 놀랄만한, 그래서 이것을 그 당시 불교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대승불교 운동의 선언서다. ←이렇게 표현을 하거든요.
대승불교 운동의 선언서입니다. 이 법화경을 들고 바로 대승불교 운동을 펼친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혁명서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틀렸다고 부정하는 사람이 그 당시 너무 많거든요. 그러나 이것은 근거가 있는 것이고, 과거 부처님도 이렇게 했고, 오늘 부처님이 이렇게 한 것은 옛날 부처님과 너무 잘 맞아 떨어지기 때문에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만고에 불변의 진리다. ←이렇게 증명하는 것입니다. 저 뒤에 방편품에 가면 5불장이 나오는데 과거부처님이 그렇고 현재부처님이 그렇고 미래부처님이 그렇고 석가모니부처님이 그렇고 그리고 모든 부처님이 그렇다. ←이렇게 다섯 부처님을 등장 시킵니다. 그것이 5불장이라고 하는 이야기인데, 여기는 일월등명불과 석가모니부처님은 동일하다고 살짝 언급을 해놓고 뒤에 가서는 다섯 부처님도 역시 동일하다. 이렇게까지 발전을 합니다. 다음 편에 나오면 확 발전해버려요. 이 법화경이 구성된 치밀성. 그 구성의 치밀성을 우리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서 그렇지, 좀 심사숙고 하면서 이런 것을 살펴보면 아주 기가 막힙니다.
여기과거 일월등명부처님하고 부처님하고 딱 “같은 진리를 설했다.” 해놓고는 뒤에 가면 바로 아닙니다. 다섯 부처님도 역시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므로 “진리는 같은 것이다.” 그러니 이유를 달지 말라 이겁니다. “법화경에 대해서 이유 달지 말라.” 그렇게 딱 못 박는 겁니다. 그래서 진리라고 하는 것과 비진리라고 하는 것을 생각할 때,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부처님 당시 때부터 우리가 지금 이 시대에 살아오기까지 경전 상에 표현된 것이 얼마나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 많습니까? 무용지물이 된 것이 너무 많다고요. 특히 계율 문제에 더욱 더 그런 겁니다. 정신은 틀림없는 것이지만 그 지엽적인 형식을 이야기하기로 하면 무용지물이 된 것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면 그런 말도 부처님말씀이니까 진리라야 되지 않느냐? 예를 들어서 탁발을 해왔는데, 한 마디의 그림자가 넘어가면 못 먹는다 이겁니다. 정오가 넘었으니까요. “손가락 한 마디의 그림자가 넘어가면 못 먹는다.” ←이렇게 정해 놨으면 탁발해서 돌아왔을 때 시간이 넘을 수도 있는데, 그런데 실컷 탁발해 와서 못 먹고 버립니까? 어쩝니까? 버리면 또 죄가 아닌가요? 그것을 가지고 얼마나 많은 시비를 했는지 몰라요. 그것을 지키려고 버려야 된다는 겁니다. 제가 보기엔 버리는 것이 더 죄인데요. 오후에 먹지 말라고 했지만, 먹는 것 보다는 버리는 것이 사실은 더 죄입니다. 그럼에도 그것을 버려야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은 겁니다.
예를 들어서 소금도 얻어올 수가 있다고요. “음식을 남겨놓지 말라.” “쌓아두지 말라.” ←이렇게 하면 소금은 남겨둬도 쌓아둬도 변하지도 않는 것인데 그것쯤이야 쌓아두면 어떠냐 이겁니다. 조금 발전된 생각을 하는 사람은 그랬어요. 그래도 아주 고집불통 율사는 안 된다는 겁니다. 소금도 다 먹어야 된다는 겁니다. 그것을 어떻게 다 먹을 수 있겠습니까? 버리면 시주 물을 버리는 것이 되니까 죄가 되잖아요. 이것은 한 예지만 이런 경우는 진리와 비 진리를 어떻게 분별하면 좋겠는가? 하나의 기준이 있습니다.
시대에 따라서, 또 민족에 따라서, 또 어떤 상황에 따라서 불가피하게 변화할 수밖에 없는 것은 전부 방편입니다. 이것은 전부 비 진리입니다. 그것은 전부 임시방편입니다. 우리가 밥 해먹게 되어 있나요? 우리 전부 절에서 다 해먹잖아요. 못 해먹게 되어 있어요. 그러나 우리는 해먹어야만 되게 되어 있어요. 그래 이런 것은 전부 그 상황에 맞추어서 우리가 고치기도 하고, 새로 만들기도 하고, 옛날 것을 버리기도 하고, 이런 것은 굳이 그렇게 고집부릴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런 것은 비 진리입니다.
그런데, 동서고금 흑백 어느 시대 어느 민족 어느 국가에 상관없이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연기의 문제라든지 공성의 문제라든지 모든 것이 인연으로 되었다고 하는 그 이치는 부처님이 발견한 아주 기가 막힌 원리입니다. 그런 것은 어느 나라 어느 시대 어느 민족에게도, 공산주의 국가나 민주주의 국가나, 저~기 아프리카나 서양이나 똑 같이 적용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옛날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미래도 마찬가지지요. 이런 것은 진리입니다. 그래서 진리와 비 진리를 나눌 때 어떤 민족과 어떤 시대에서도 변하지 않는 이치는 진리이고, 상황에 따라서 달라져야 할 수 밖에 없는 그런 것은 방편이니까 그것은 융통성을 가지고 우리가 수용을 해야 된다고 이해하면 그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렇게 알아야지요.
그래서 여기에 옛날 일월등명불하고 석가모니불과 이렇게 맞추어서 묘법연화경 “제법실상에 대한 이치는 영원히 변치 않는 진리다.” ←이렇게 일단 살짝 언급을 합니다. 왜 이런 말이 여기에 꼭 이렇게 증거를 대가면서 이런 경전이 성립되어야 되는가? 그것은 이 법화경은 아까 이야기했듯이 대승불교 운동의 선언서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반발이 너무 거셌습니다. 이것은 완전히 외도라고 취급받고 지금도, 지금도 소승불교를 익힌 사람은 소승불교라고 아니 하지요. 상좌부 불교만 공부한 사람들은 부처님의 행적. 인도 성지를 여행하면서 영축산에 가지를 않는 사람을 봤어요. 안 갑니다. 왜냐?
영축산에 가면 법화경이야기를 해야 되고, 법화경이야기를 하게 되면 대승불교를 인정하는 것이 되어버려요. 그래서 안 올라갑니다. 누구냐고 이름 대라면 자신 있게 이름 댈 수도 있습니다. 같이 가서 경험한 일이니까요. 그러면서 신도들을 못 가게, 2시간 걸린다고 그러더라고요. 시간이 안 맞으니까 못 올라간다고 그랬어요. 그러면 “몇 분 안에 돌아올 수 있도록 하겠다.” 제가 그렇게 해서 올라가면서 시간을 재어보니까 15분밖에 안 걸려요. 여러분들 가 봤지요? 15분이면 올라가는 겁니다. 빠른 걸음이면 10분이면 올라갑니다. 내려올 때는 5분이면 내려옵니다. 거기를 2시간 이상 걸린다고 못 올라가게 하더라니까요.
사람의 소견이 그렇게 집착이 딱 되어 놓으면요? 소견이 콱 오그려 들어 놓으면 그렇게 된다고요. 거기에 가면 법화경이야기를 해야 되고 법화경이야기를 하게 되면 대승불교를 인정하게 되는 것이니까 이것이 그냥 자기 생명이 왔다 갔다 하는 겁니다. 자기 공부와 자기 재산이 하루아침에 와르르 무너지니까 도저히 못하는 겁니다. 그래 자기는 안 올라갑니다. 안 올라가고 제가 올라가면서 시간을 재어보니까 15분밖에 안 걸리더라고요. 그래 실컷 참배하고 내려와도 3~40분이면 끝나요. 그렇게 거짓말을 하면서 그 거짓말은 죄가 되는지 안 되는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면서 대승불교를 언급하기를 그렇게도 싫어합니다. 법화경언급하기를 그렇게 싫어한다고요. 그러니 그런 상황에서 지금도 그러는데, 옛날 그런 고집불통. 아주 미개한 시대에 그 상황에서 이러한 정말 툭 터진 법화경 같은 것을 세상에 내 놨을 때, 얼마나 반발이 심했고 모함이 심했겠습니까? 여기에 그런 표현이 뒤에 가면 나옵니다. 사이사이에 그런 예가 많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것을 드러내서 현장에 제가 사실은 있었는지도 모르지요. 있었던 듯이 말하지만, 경전에 보면 그런 상황들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니까,
일월등명불을 등장시키고 석가모니부처님의 이 학설이. 이 가르침이 “틀림없다.” “진리다.” 그러면서 뒤에 가면 바로 다섯 부처님을 등장시켜 가지고 “제불. 과거불. 현재불. 미래불. 석가불.” ←이렇게까지 해서 증거를 세운다고요. 그 분들이 증명을 하도록 그렇게 되어 있어요. 그것이 “진리다.” 이 말입니다. 그렇게 아니 했어도 우리가 지금 같이 이렇게 밝은 세상에는 진리와 비 진리를 앞서 약간 언급했듯이 그런 기준을 가지고, 이해하면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사실 진리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이 발견을 했을 뿐이지, 비로소 만들어 놓은 것은 아니잖아요. 이미 있는 것이지요. 사실 진리는 부처님하고 관계없는 것입니다.
진리는 그런 것인 줄 아는 사람이 있든 없든, 진리는 그 자리에 그렇게 있는 겁니다. 금정산이 그 자리에 그렇게 있는데, 보는 사람이 있든 없든 그것은 관계없이 그 자리에 그렇게 있듯이 법화경에서 밝힌 진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자리에 그렇게 있는 겁니다. 그것이 如是相. 如是性. 十如是라고 금방 나오는데 그렇습니다. 진리라는 것은 그런 것이지요. 누가 가리켜서 비로소 있는 것이 아니지요. 그러니까 단 먼저 발견해서 우리에게 일깨워 줬다. 그런데
“진리에 맞게 살라.” “이치에 맞게 살라.” 제대로 알고 거기에 맞게 산다고 하는 것. ←이것이 물론 쉬운 것은 아닙니다만, 여기서 진리는 고금에 동일하다. 정말 진정한 진리는 고금에 동일하다. 이것을 여기 일월등명부처님과 석가모니부처님 관계에서 우리가 꼭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합니다.
86. 今相如本瑞 是諸佛方便 今佛放光明 助發實相義
금상여본서 시제불방편 금불방광명 조발실상의
今相如本瑞는 지금 모습이 본래의 상서와 같은 것은 是諸佛方便이니라. 모든 부처님의 방편이다 이 말입니다. 방편이라고 했잖아요. 그런 것이 어떤 이치를, 참다운 이치. 진리를 드러내기 위한 방편이지요.
今佛放光明하사 지금 부처님이 광명을 놓으사,
助發實相義라. 실상의 도리를 助發했다. 바로 드러낸 것이 아니고 도와서 드러냈다. 광명을 뭐라고요? 제가 누차 말씀드렸지요? “깨달음의 지혜다.” 그 지혜를 통해서 세상의 어떤 실상을 바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광명을 통해서 바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광명이 助發한다. 正發 = 진리 그 자체. 助發 = 진리 그 자체는 아니지만, 진리를 이해하는데 상당히 도움을 주는 상서가 되겠지요. 그래서 광명이야기를 이렇게 했습니다. 여기 참 제대로 밝혔네요. 이런 것을 좀 깊이 생각하면 법화경의 실상. 진리의 실상이 아니라 법화경의 실상이 어느 정도 드러나지 않겠나? 이런 생각도 합니다.
今佛放光明. 부처님이 수 억만 볼트의 셔터라이트도 아닌데 무슨 광명을 18000토나 그렇게 비출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가 없잖아요. 태양도 그렇게 안 되거든요. 태양도 그렇게 못 비춘다고요. 18000 세계를 태양도 못 비춥니다. 그런데 부처님광명이 18000 국토를 비췄다. 이것이 말하자면 실상의 도리를 助發한 것입니다. 도와서 發해줬다. 이해하도록 뭔가 이런 이야기를 통해서 실상의 도리를 좀 이해하도록 한다. 그러니까 광명에 대해서 아주 깊고 널리 좀 깊이 심사숙고해서 다각도로 분석해보고 이해하고 설명해봄으로 해서 다 드러나는 겁니다. 광명 하나만...
우리가 부처님 앞에 인등을 켜거나 촛불을 켜거나, 등을 밝히거나 하는 것이 전부 그것이지 뭐 다른 것입니까? 바로 그것입니다. 그 빛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빛이 불교라고요. 그 빛을 통해서 불교를 助發하는 것입니다. 초파일 날 등을 켜는 것을 통해서 정말 진리를 이해시키는데 하나의 도움이 되는 것이지요. 조그마한 조건이 됩니다. 그런 조건을 통해서 이해하는 길이 열리니까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사실은 많이 켜야 됩니다. 이런 이치를 알면 등을 많이 켜야 됩니다. 그리고 하나하나에게 그런 이치를 이해시켜 주고요. 이 구절이 참 중요하지 않습니까?
諸人今當知 合掌一心待 佛當雨法雨 充足求道者
제인금당지 합장일심대 불당우법우 충족구도자
諸人今當知하고 지금 여러 사람들은 마땅히 알고, 일심으로 合掌해서 가질지어다. 부처님은 마땅히 법의 비를 쏟아 부어서 구도자들을 충족시킬 것이다.
諸求三乘人 若有疑悔者 佛當爲除斷 令盡無有餘
제구삼승인 약유의회자 불당위제단 영진무유여.
여러 3승을 구하는 사람들이 若有疑悔者면, 만약에 의심스럽거나 뉘우침이 있는 사람이면, 佛當爲除斷하고, 부처님은 마땅히 그들의 의심을 끊어주고, 또 제거해 준다. 제거하고 끊어줄 것이다. 그래서 令盡無有餘. 그 의심이 전혀 남아있지 않도록 부처님은 그렇게 분명히 밝혀줄 것이다. 이렇게 해서 그야말로 서론격인 서품이 끝났고, 다음 품이 본론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비로소 이제 법화경이 시작이 된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 2강-3 으로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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