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화경 대강좌 1강 - 3
지난 시간까지가 通序. 모든 경전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서문이 끝났고, 지금부터 別序. 법화경에서만 특별하게 거론되는 서문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이런 서문이 다른 경전에는 없지요.
14. 爾時(이시) 世尊(세존) 四衆(사중) 圍繞(위요) 供養恭
敬(공양공경) 尊重讚歎(존중찬탄) 그때에 세존께서 사부사중이 圍繞하여 공양 공경 공 존중과 찬탄하더라. ←이것 좋은 기억해 둬야할 일입니다.
공양도 하고 공경도 하고 존중도 하고 찬탄해야 제대로 섬기는 일입니다. 그래서 이 법화경에는 보면 늘 供養 · 恭敬 · 尊重 · 讚歎. ←이 네 단어가 따라다닙니다.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말로만 귀의해서는 안 됩니다. 공양 올리라고 하세요 供養. 법당에다 공양 좀 올리라고 하세요. 존중하고 찬탄도 하고요.
爲諸菩薩(위제보살) 說(설) 大乘經(대승경) 名(명) 無量義(무량의)
敎(교) 菩薩法(보살법) 佛所護念(불소호념)
모든 보살을 위하여 대승경전을 설하시니, 이름이 무량의경이더라. 무량의경이라고 하는 경전을 설했다. 별서에 보면 此土六瑞(차토육서). 現祥瑞(현상서). 상서를 나타내는 서문 가운데 이 국토에서 여섯 가지 상서. 저 국토에서 여섯 가지 상서. 그 중에 이 국토에서 여섯 가지 상서가 대중이 모인 것도 서문에 해당되는 상서이고, 설법하는 것이 상서인데 그 설법이 뭐냐? 무량의경입니다.
無量義을 설하고 법화경을 설했습니다. 그래서 無量義을 開經(개경)이라고 합니다. 무량의경을 법화경을 열기위한 경전이라고 해서 開經이라고 합니다. 그 다음에
“보현보살행법경”이라고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법화경을 설하시고 나서 그 다음 설하신 경전이 “보현보살행법경”이라고 하는 경인데, 그것은 結經(결경)이라고 합니다. 맺는 경. 결론짓는 경이다. ←이렇게 표현을 합니다. 그럼 本經(본경)은 말할 것도 없이 법화경이 되겠지요. 그래서 이 경전을 설하시고 나서 법화경이 이어지는데, 이 무량의경을 간단하게 설명하시기를 敎菩薩法 佛所護念. 그랬습니다.
법화경에도 끊임없이 敎菩薩法 佛所護念이라는말이 나옵니다.
보살을 가르치는 법이고, 부처님이 護念하는 바다. 이것은 무슨 말인가 하니, 최고 수준에 달한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가르침이다. 보살을 가르치는 법.
佛所護念이라는 것은 부처님이 상당히 아껴두고, 애착을 갖고, 아무에게나 일러주는 그런 것이 아니라, 정말 이것은 가슴속에 품고 있는 경이라는 뜻입니다. 무량의경도 그렇다는 것이지요. 법화경을 지극하게 신봉하는 분들은 이 무량의경 까지 모든 8만대장경 전체를 序論이라고 말하고,
법화경을 本論. 모든 다른 경전들은 법화경을 설하기 위해서 설한 서문에 불과하다고 까지 이야기합니다. 그것도 법화경을 이해하는데 하나의 좋은 힌트가 되기도 합니다.
15. 佛說此經已(불설차경이) 結跏趺坐(결가부좌)
入於無量義處三昧(입어무량의처삼매) 身心不動(신심부동)
부처님이 이 경을 설해 마치고 가부좌를 맺고 앉으시어 무량의처 삼매에 들어서 身心이 不動했다. 이것은 入定瑞(입정서). 설법서. 선정에 들었다. 이것도 상당히 시사하는 바가 있는 것이, 우리는 강의 전에, 설법 전에 삼매에 들지요. 사실은 그것도 중요합니다. 설법 전에 입정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설법 끝나고 한 5분쯤 입정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설법 마치자마자 그냥 후닥닥 일어나서 신 찾기 바쁘고 집에 돌아가기 바쁘고, 그래 가지고 그 동안 그나마 들은 것 가면서 다 흘려버려요.
여기에 경전 설하고 나서 “삼매에 들었다.” 이것은 무슨 말인가 하니, 경전 설하신 것을 내속에 새기고 소화하고 음미하고, 그래서 완전히 내 것으로서 만드는 그런 의미가 여기에 담겨있습니다. 이것이 참 중요한 것입니다. 큰 스님 말씀 듣고 후닥닥 일어나서 어디 쫓아가 버리면, 들은 것 다 잊어버리지요. 천천히... 화두 들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방선 죽비 쳤다고 후닥닥 일어나 버리면 그 화두가 남아 있겠습니까? 다 흘려버리지. 그와 똑 같은 겁니다. 그래 이 법화경에서 이런 것을 우리가 배울 필요가 있지요. 그 다음에 우화서라고 해서 하늘에서 꽃비가 내리는 그런 상서가 있습니다.
16. 是時(시시) 天雨曼陀羅華(천우만다라화)
摩訶曼陀羅華(마하만다라화) 曼殊沙華(만수사화)
摩訶曼殊沙華(마하만수사화) 而散佛上(이산불상) 及諸大衆(급제대중)
이때에 하늘에서 꽃비가 내리는데 만다라화. 큰 만다라화. 만수사화. 큰 만수사화 이런 네 가지, 천우 4화라고 해서 유명한 말이지요. 하늘에서 이런 꽃비가 내려서 부처님위에도 흩고 대중들 위에도 흩었다. 그리고 지동서라. 땅이 진동한다.
普佛世界(보불세계) 온 세계가, “불 세계” “불 세계”할 때 부처님의 세계라고 보면 자꾸 거리감이 생깁니다. 그냥 “세계” ←이렇게 아십시오.
불교에서는 세계마다 “부처님이 계신다.”해서 의례히 “불 세계” “불 세계” ←이렇게 하는데 사실은 그냥 “세계”라는 뜻입니다.
六種震動(육종진동)하니 부처님이 지금하늘에서 꽃비가 내리는 상서를 놓는데 온 세계가 六種震動 하더라. 얼마나 근사한 법이 설해지려고 하늘에서는 꽃비. 땅에서는 진동. 이런 상서가 나타나느냐 이겁니다.
六種震動이라는 이 六자는 제가 알지요. 우리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 뭐지요? 六根이지요. 六識이지요. 六塵입니다. 이 六입니다. 이 六이 뭔가 요동을 치고, 가만히 있지만 뭔가 마음에 아주 감전된 듯한 느낌을 받는 것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주 멋진 표현입니다.
내가 감전된 듯한 환희심과 희열과 법희선열을 맛볼 때 세계가 움직이는 것 보다 더 크게 움직이는 것이지요. 땅이 울리는 것보다도 주체인 내가 움직일 때, 내 마음이 움직일 때 더 크게 움직이는 것입니다.
여기서 六種震動이라는 것은 그런 뜻입니다. 이것은 옛날 해석도 있습니다.
17. 爾時會中(이시회중) 그 때에 대중들이
比丘比丘尼(비구비구니) 優婆塞 優婆夷(우바새우바이)
天龍夜叉(천룡야차) 乾闥婆(건달바) 阿修羅(아수라) 迦樓羅(가루라)
緊那羅(긴나라) 摩睺羅伽(마후라가) 人非人(인비인) 등과
及諸小王(급제소왕) 모든 작은 왕들. 그리고 轉輪聖王(전륜성왕)
是諸大衆(시제대중) 이 모든 대중들이 得(득) 未曾有(미증유) 미증유를 얻고 歡喜合掌(환희합장) 환희하고 합장하고 一心觀佛(일심관불)하더라.
기쁜 마음으로 일심으로 부처님을 멍하니 쳐다보더라. 어떻게 해서 이런 큰 상서가, 듣도 보도 못한 未曾有. 지금까지는 듣도 보도 못한 이런 상서로운 일이 있는가? 하늘에서는 꽃비가 내리고, 땅은 6종으로 진동하고, 지진이 7도 지진만 일어나도 건물이 남아나지를 못하는데 실지로 땅이 움직였다면 이것이 될 일입니까? 말도 안 되는 일이지요.
그러니까 경전이 어렵다는 것이 이런 상징성 때문에 어렵습니다.
도대체 이것이 무슨 뜻인가? 이것은 그야말로 “6종진동” 할 때는 의례히 “6종십팔상진동”이라는 말도 나옵니다. 6종십팔상은 뻔 한것 아닙니까?
六根 · 六塵 · 六識. 18계지요. 나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나와, 나의 것들의 정말 어떤 전율. 감전과 같은 그런 정도로 환희심과 법락을 맛볼 때 오는 감동을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경전 표현이 정말 참 아름답고 멋있지요.
18. 爾時(이시) 佛(불) 그 때에 부처님이
放(방) 眉間白毫相光(미간백호상광) 미간백호상에서 광명을 놓았다.
그리고 照(조) 東方萬八千世界(동방만팔천세계) 동방 18000세계를 비췄다. 이 18000도 18계로 보면 좋습니다. 사람, 사람, 사람들이 모두가 18계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六根 · 六塵 · 六識. ←이렇게 18계를 가지고 있으니까 이 많고 많은 개개인의 18계를 전부 다 포함하는 의미에서 18000세계. 우리의 세계는 결국 18계니까요. 六根 · 六塵 · 六識 뿐이니까요.
그걸 가지고 우리의세계라고 하니까 이것은 틀림없는 해석이라고 저는 아주 확신하고 있습니다.
백호상에서 광명을 놓는데 동방으로, 동방이라고 하는 것도 해가 뜨는 곳 아닙니까? 왜 하필 동방입니까? 그런데 요행히도 한국과 중국과 일본에서, 이 법화경이 상당히 성하고 있다는 것. 다른 나라에서는 법화경 신봉을 거의 안 하거든요. 이런 것도 뭔가 암시하는 바가 있었지 않았나?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그러나 그것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靡不周遍(미불주편) 下至阿鼻地獄(하지아비지옥)
上至阿迦尼吒天(상지아가니타천) 於此世界(어차세계)
盡見彼土(진견피토) 六趣衆生(육취중생) 그 광명이 18000세계를 두루두루 비추는데 阿鼻地獄도 비추고, 저 하늘에는 阿迦尼吒天이라고 유정천까지 비추고, 또 이 세계에 있으면서 저~ 세계의 六趣衆生.
다른 세계에 있는 六趣衆生들이 살아가는 모습들을 전부 환하게 손에 잡힐 듯이 보였다.
又見彼土(우견피토) 現在諸佛(현재제불) 及聞諸佛(급문제불)
所說經法(소설경법) 또 보니, 우리들이 현실을 둘러보는 것하고 똑 같습니다. 지금 옆에 있는 사람보고 책보고 얼굴 보고 하는 것 하고 똑 같은 현상입니다. 그 국토에 부처님이 나타나 계시고, 그리고 부처님이 경을 설하시는 것을 듣고,
19. 幷見(병견) 彼諸比丘比丘尼(피제비구비구니)
優婆塞 優婆夷(우바새우바이) 諸修行(제수행) 得道者(득도자)
아울러 저 모든 비구 비구니와 우바새우바이가 모든 수행해서 도를 얻는 것들을 다 볼 수 있다.
復見諸菩薩摩訶薩(부견제보살마하살) 種種因緣(종종인연)
種種信解(종종신해) 種種相貌(종종상모) 行(행) 菩薩道(보살도)
또 모든 보살마하살들이 가지가지 인연과 가지가지로 믿고 이해하는 것과 가지가지의 모습으로 보살도를 행하는 것들도 다 볼 수 있게 되고,
復見諸佛(부견제불) 般涅槃者(반열반자) 復見諸佛(부견제불)
般涅槃後(반열반후) 以(이) 佛舍利(불사리) 起七寶塔(기칠보탑) 또 보니, 모든 부처님이 열반에 들고, 또 보니, 열반에 들어가신 후에 부처님이 사리로써 七寶塔을 세우는 것도 다 볼 수 있더라. 그러니까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한 5~600년 내지 700년까지 걸어온 모든 불교적 상황들을 다 그려 놓은 것입니다. 그 역사. 또 직접 경험한 것들이 여기에 다 표현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부처님이 70세쯤 됐을 때 이 “법화경을 설했다.” 70세부터 80세까지 설한 것으로 아함12 방등8. 이 위치에다 비추어 본다면 그렇게 되어 있지요. 그렇지만 언제 탑을 세울지 사리가 나올지 안 나올지 그것을 어떻게 알고 이런 말을 썼겠습니까?
그러니까 후대에 그런 모든 경험이 축적된 뒤에 경전이 제대로 결집이 됐다고 하는 것입니다. 정말 부처님의 체취가 묻어있는 말씀은 아함부 경전이지요. 또 그 당시로서는 이렇게 논리적이고 문학적이고 철학적인 이런 경전은 필요치 않았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이런 것 필요치도 않았고, 또 이런 것이 있었다손 치더라도 제대로 소화도 못 했습니다. 그것 중요한 이야기지요.
광명이야기가 나왔는데요. 광명은 두고두고 이야기할 문제입니다만, 광명이 뭐냐? 부처님의 깨달음이고, 또 우리의 깨달음이고, 눈을 뜨는 것이고, 지혜가 열리는 것이다. ←이렇게 표현하면 됩니다. 그렇게 알아야 돼요.
이 광명이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습니다. 뒤에 곧 나오는데 최초의 부처님인 日月燈明佛이 나옵니다. 日이뭡니까? 태양이지요.
月이뭡니까? 달이지요. 밤도 낮도 다 비춰주는 밝은 것입니다. 그것도 저것도 안 될 때는 등불이라도 켜서 비춘다고 해서 日· 月 · 燈 · 明. ←이렇게까지 되어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부처님의 깨달음의 지혜라고 하는 것이 불교의 모든 것이다. 불교는 지혜의 종교다. 지혜의 가르침이다. 이것을 법화경에서는 극구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물론 자비도 사이사이에 말하고 있지만, 자비보다는 지혜를 훨씬 더 강조하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알 수가 있습니다.
백호상에서 광명을 놓다. 하는 이것은 지혜의 가르침입니다. 지혜가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니까요.
그래서 이 지혜로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모습들을 다 볼 수 있다.
어떤 이치로 돌아가고 있는가? 어떤 원인과 어떤 조건과 어떤 결과와 어떤 과보를 받는가? ←이런 것들을 소상하게 알 수 있는 것. 그것을 내 살림살이로 만들 수 있는 것은 지혜밖에 없는 겁니다. 그러므로 법화경은 지혜의 종교이고 불교 지혜의 가르침이라고 말씀드릴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뒤에도 자주 등장하지요.
20. 爾時(이시) 彌勒菩薩(미륵보살) 作是念(작시념)
그 때에 미륵보살이 이런 생각을 합니다. 미륵보살의 疑念序라는 말이 있었지요? 의심 한다 이겁니다.
今者世尊(금자세존) 現神變相(현신변상) 以何因緣(이하인연)
而有此瑞(이유차서) 今佛世尊(금불세존) 入于三昧(입우삼매)
是不可思議(시불가사의) 現希有事(현희유사) 當以問誰(당이문수)
誰能答者(수능답자)
지금 세존께서 신통 변화의 모습을 나투시니 무슨 인연으로 이러한 상서가 있으시며, 지금 부처님 세존이 삼매에 들어가셨는데 참 불가사의하고 희유한 일이다. 마땅히 누구에게 물어야 하고 누가 이 사실을 답할 수 있겠는가?
왜 하필 미륵이냐? ←이런 질문을 여기서 우리가 던져야 됩니다. 공부하려면 자꾸 질문을 많이 던져야 됩니다. 경을 읽으면서 스스로 자꾸 질문을 많이 던져야 됩니다.
유태인들은 교육 잘 시킨다고 우리가 하는데, 부모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학교에 가서 부모님 말씀을 잘 들으라.”고 하는데, 유태인들은 “선생님께 질문 많이 하라.”고 아이들에게 당부한답니다. 그래서 경제의 도시, 뉴욕의 웰가를 유태인들이 다 지배하고 있고, 노벨상 받은 사람의 3분의 1이 유태인입니다. 놀라운 사실입니다. 어려서부터 교육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요.
여기서 왜 미륵보살인가? 우리가 아는 상식대로 자비와 희망의 상징이지요. 慈心교육이지요. 자비의 발동입니다.
이윤을 깨뜨려서 사람들에게 이익을 줘야 되겠다는 것이지요. 또 미륵보살은 우리의 희망이잖아요. 미륵보살이 이 일을 해결하지 아니하면 누가 해결합니까?
“자비와 희망의 상징” 멋있잖아요. 그러니까 미륵이 등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용을 알고 보면 인물 배치가 참 절묘합니다. 어찌 미륵을 여기다 딱 배치해 놨는가? 그리고 왜? 뒤에 문수가 나오지요.
21. 復作此念(부작차념) 是(시) 文殊師利法王之子(문수사리법왕지자)
已曾親近供養過去無量諸佛(이증친근공양과거무량제불)
다시 이런 생각을 했다. ‘이 문수사리 법왕자는 이미 과거의 무량 모든 諸佛들을 친견하고 공양했다.’ 그래 “천불의 스승”이라고 그러지 않습니까?
여기도 왜 하필이면 문수냐? 두 말할 나위없지요. 천불의 스승이고 지혜가 제일이고요. 지혜가 최고로 출중한 사람이라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런 경험이 있는 사람이니까,
必應見此(필응견차) 希有之相(희유지상) 我今當間(아금당문)
‘반드시 응당히 이러한 희유한 모습을 일찍이 보셨을 것이다. 내가 마땅히 그에게 물을 것이다.’ 이래서 인물 배치가 또 뛰어 나지요. 지혜의 가르침이기 때문에 문수가 이렇게 딱 등장하고, 뒤에 사리불이 또 제자로서는 제일 먼저 등장합니다. 그것을 보더라도 중첩된 지혜의 가르침입니다. 이것은 첩첩의 지혜라고요. 나중에 보현보살권발품이 뒤에 나옵니다. 보현의 행으로 귀결하게, 결론을 딱 내리도록 법화경이 그렇게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문수보살이 처음에 등장하고, 마지막에는 보현보살이 등장을 해서 보현행으로서 회향을 하도록 합니다.
여기는 미륵보살이 의심을 했고, 대중도 이런 의심을 합니다.
22. 爾時(이시) 이때에
比丘比丘尼(비구비구니)와 優婆塞優婆夷(우바새우바이)와
及諸天龍鬼神等(급제천룡귀신등)이 咸作此念(함작차념)
다 이런 생각을 하되,
是佛光明神通之相(시불광명신통지상) 今當問誰(금당문수)
부처님의 광명신통을 지금 누구에게 물어야 할 것인가?
23. 爾時(이시) 彌勒菩薩(미륵보살) 欲自決疑(욕자결의)
又觀四衆(우관사중) 그 때에 미륵보살이 스스로의 의심도 해결하고,
또 사중 대중
比丘比丘尼(비구비구니) 優婆塞優婆夷(우바새우바이)
及諸天龍鬼神等(급제천룡귀신등) 衆會之心(중회지심)
대중들의 마음도 해결하고, 그런 두 가지 의미에서
而問文殊師利言(이문문수사리언) 문수사리에게 물어서 말하기를,
以何因緣(이하인연) 而有此瑞(이유차서) 神通之相(신통지상)
放大光明(방대광명) 照于東方(조우동방) 萬八千土(만팔천토)
悉見彼佛(실견피불) 國界莊嚴(국계장엄)
무슨 인연으로 이러한 상서와 신통의 모습이 있으시며, 큰 광명을 놓아서 동방으로 18000 국토를 비추시며, 또 그 광명 안에 저 부처님 세계의 莊嚴이 우리 여기 앉아서 손으로 잡을 수 있듯이 다 환하게 볼 수 있습니까?
이렇게 간단하게 물었습니다. 문수보살에게 이렇게 간단하게 물었지만, 이것이 얼마나 중대한 일이라고 이렇게 묻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관광차에 스님을 태우고 가면서 “스님, 심심하니까 법문 좀 하시지요.” ←이런 예가 아직도 많다고요. 법문을 그렇게 청하면 됩니까?
이 보십시오. 질문하는데 이렇게 간단하게 서론 형식으로 질문해 놓고, 아주 장시로서 장황한 시로서 멋있게 노래를 불러가면서 이제 다시 정리를 하면서 질문을 합니다. 이렇게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이런 것들도 우리가 본받아야 됩니다. 경전에 근거를 해서 모든 것의 불사가 이루어져야 되고,
불교행사가 진행이 되어야 됩니다. 그리고 대중들이 모였을 때
말씀 난 김에, 어떤 불교행사에 가면 내빈소개를 끝에 가서 하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그것 참 잘못 된 겁니다. 내빈소개는 정식으로 식에 들어가기 전에 해야 됩니다. 여기 경전에 보십시오. 동참 대중들의 소개를 맨 먼저 하잖아요. 그래야 다른 사람들이 아, 누구도 왔고, 누구도 왔고 그래서 우쭐할 수도 있고, 마음이 놓일 수도 있고, 기분 나쁠 수도 있고, 그렇게 알고 행사에 임하는 것입니다. 행사에 임하는 자세를 우리가 바로 잡아주기 위해서도 모인 대중들 소개를 먼저 하는 겁니다. 내빈소개를 먼저 해야 됩니다. 그런데 그것을 뒤에 한다고요.
경을 기준으로 아니 하고, 또 경을 안 보거나 봤어도 경을 기준으로 삼지 아니해서 그런 것입니다. 그래 이제 법문을 청하는 것도 이런 것들을 다 본받을 수는 없지만, 이런 것들이 ‘야~, 과연 법화경이 근사한 법을 설하려고 하는 것이구나.’ ‘참으로 무게 있는 경전이구나.’ ‘경중의 왕이구나.’ ‘청하는데 이렇게도 근사한 절차를 밟아가면서 청하는구나.’ ←이런 것을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24. 於是(어시) 彌勒菩薩(미륵보살) 欲(욕) 重宣此義(중선차의)
以偈問曰(이게문왈)
이에 미륵보살이 거듭 이 뜻을 펴시고자 하시어 게송으로써 말하기를,
重頌(중송) 이라고 해서 산문에 있는 것을 반복해서 설하는 게송은 생략할까? 생각을 했는데 보니까, 이 산문 속에 있는 것 보다 몇 배 양이 많고,
더 자세해서 도저히... 제가 언제까지 하든지 간에 생략하지 말고 하나하나 그야말로 一文一字가 是眞佛이니까 하나하나 빠뜨리지 말고 하는 것이 옳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25. 文殊師利(문수사리) 導師何故(도사하고)
眉間白毫(미간백호) 大光普照(대광보조)
문수사리시여, 도사는 무슨 까닭으로 眉間白毫에서 큰 광명을 놓아서 널리 비추시며,
雨曼陀羅(우만다라) 曼殊沙華(만수사화)
栴檀香風(전단향풍) 悅可衆心(열가중심) 하늘에서 만다라화와 만수사화를 비 내리시며 또 전단향 풍이 대중들의 마음을 이렇게 기쁘게 하시고,
以是因緣(이시인연) 地皆嚴淨(지개엄정)
而此世界(이차세계) 六種震動(육종진동)
무슨 인연으로 땅은 다 嚴淨되며, 이 세계가 6종으로 진동하니,
時四部衆(시사부중) 咸皆歡喜(함개환희)
身意快然(신의쾌연) 得未曾有(득미증유) 그때에 대중들은 다 환희하고 몸과 마음은 쾌할 해서 未曾有를 얻게 되었습니까?
그 다음에 他土六瑞(타토육서)입니다. 彼土(피토).
26. 眉間光明(미간광명) 照于東方(조우동방)
萬八千土(만팔천토) 皆如金色(개여금색)
眉間光明이 동쪽으로 18000 나라를 비추시니 금색처럼 반짝반짝 빛나게 비추시며
從阿鼻獄(종아비옥) 上至有頂(상지유정)
諸世界中(제세계중) 六道衆生(육도중생) 아비지옥에서부터 저 유정천에 이르기 까지 모든 세계 가운데 육도중생들이
生死所趣(생사소취) 善惡業緣(선악업연)
受報好醜(수보호추) 於此悉見(어차실견) 태어나서 죽고 나아가는 곳과, 惡業업의 인연과 좋은 과고 나쁜 과보를 받는 것들을 여기에서 눈앞에서 보듯이 다 볼 수 있으며,
27. 又覩諸佛(우도제불) 聖主師子(성주사자)
演說經典(연설경전) 微妙第一(미묘제일)
또 모든 부처님. 聖主師子의 경전을 연설하는데 그 경전이 미묘 제일이라,
其聲淸淨(기성청정) 出柔軟音(출유연음)
敎諸菩薩(교제보살) 無數億萬(무수억만) 그 소리는 淸淨해서 아주 미묘한 소리를 내며, 無數億萬의 보살들을 가르치시며,
梵音深妙(범음심묘) 令人樂聞(영인락문) 梵音이 깊고 미묘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즐겨듣게 하는 것을 보며,
28. 各於世界(각어세계) 講說正法(강설정법)
각각 세계에서 正法을 강설하시며, 이 正法을 강설해야 되지요.
가능하면, 가능하면 正法을 강설해야 됩니다.
種種因緣(종종인연) 以無量喩(이무량유)
照明佛法(조명불법) 開悟衆生(개오중생)
種種인연과 무량한 비유로써 불법을 밝게 비추고, 중생들을 깨닫게 하시며,
若人遭苦(약인조고) 厭老病死(염로병사)
爲說涅槃(위설열반) 盡諸苦際(진제고제) 만약 어떤 사람이 고통을 만나서 생노병사를 싫어하거든 그를 위하여 열반을 설해서 고통의 경계를 다하게 하며,
若人有福(약인유복) 曾供養佛(증공양불)
志求勝法(지구승법) 爲說緣覺(위설연각) 만약 어떤 사람이 복이 있어서 일찍이 부처님께 공양하고, 마음에 수승한 법을 구하거든 그를 위해서는 연각의 이치를 설하시며,
若有佛子(약유불자) 修種種行(수종종행)
求無上慧(구무상혜) 爲說淨道(위설정도)
만약 어떤 불자가 가지가지로 수행을 해서 無上의 최상의 지혜를 구하거든, 無上이라는것을 “위없는” “위없는” 절대 그렇게 하지마세요.
無上甚深微妙法. 위없는 깊고 깊은 절대 그렇게 해석 하면 안 됩니다.
“가장 높은” 또는 “최상의 지혜” ←이렇게 해석해야 맞습니다.
“위없는” 하면 틀려버리는 말입니다. 爲說淨道하며, 그를 위해서 청정한 도를 설하며,
29. 文殊師利(문수사리) 我住於此(아주어차)
見聞若斯(견문약사 ) 及千億事(급천억사)
如是衆多(여시중다) 今當略說(금당약설)
문수사리시여, 내가 여기에 머물러서 이와 같은 천억 가지의 일들을 보고 들으니 이와 같이 중다한 것을 마땅히 지금 간략히 말하리라. 지금까지 이야기 해 온 것도 상당한데, 지금부터 간략하게 말하겠다는 겁니다.
30. 我見彼土(아견피토) 恒沙菩薩(항사보살)
種種因緣(종종인연) 而求佛道(이구불도)
내가 보니 저 국토의 항하사 강의 모래수와 같은 많은 보살들을 보니, 그 보살들은 가지가지 인연으로서 불도를 구하는데,
或有行施(혹유행시) 金銀珊瑚(금은산호)
眞珠摩尼(진주마니) 硨渠瑪瑙(자거마노)
金剛諸珍(금강제진) 혹 어떤 이는 보기를 행하는데, 금 · 은 · 산호 · 진주 · 마니 · 자거 · 마노 · 금강. 이런 진귀한 것과
奴婢車乘(노비거승) 寶飾輦輿 (보식연여)
歡喜布施(환희보시) 奴 · 婢 · 車 · 乘. 온갖 보물로 장식된 가마. 이런 것으로서 歡喜布施하며,
廻向佛道(회향불도) 불도에 회향하고, 廻向佛道. 보시하는 것도 불도를 위해서 보시한다는 뜻이지요.
願得是乘(원득시승) 여기서 是乘이라고 하는 것은 이 법입니다.
이 법인데 바로 최상승 법이지요. 불승의 법.
三界第一(삼계제일). 그리고
諸佛所歎(제불소탄) 모든 부처님이 찬탄하는바 얻기를 원하며
或有菩薩(혹유보살) 駟馬寶車(사마보거)
欄楯華蓋(난순화개) 軒飾布施(헌식보시) 혹은 어떤 보살들은 네 마리가 끄는 보배수레와 欄楯이 있고, 꽃으로 덮개가 되어 있고 온갖 장식이 되어있는 수레로서 보시하며, (수레를 수식하는 말입니다.)
31. 復見菩薩(부견보살) 身肉手足(신육수족)
及妻子施(급처자시) 求無上道(구무상도)
다시 보니 보살들은 몸. 살. 手足. 妻子이런 것들도 보시해서 無上道.
최상의 도를 구하며,
又見菩薩 頭目身體 欣樂施與 求佛智慧
우견보살 두목신체 혼각시여 구불지혜.
또 보니, 보살들은 頭. 目. 身體. 이런 것들을 기쁘게 보시해서 부처님의 지혜를 구한다. 이 끝에는 無上道. 佛智慧. 佛道. 전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다른 것 목적이 없어요. 다른 것 목적이 없습니다.
32. 文殊師利 我見諸王 往詣佛所 問無上道
문수사리 아견제왕 왕예불소 문무상도
문수사리시여, 내가 보니, 모든 왕들이 부처님의 처소에 나아가서 위없는 최상의 도를 묻는데,
便捨樂土 宮殿臣妾 剃除鬚髮 而被法服
변사락토 궁전신첩 체제수발 이피법복 樂土. 아주 좋은 국토와 궁전과 신하와 첩을 다 버리고 머리를 깎고 수염을 깎고 법복을 입으며, 왕들이 법복을 척 입어요. (그것은 부처님도 하신 일들이지요.) 그런 것들도 볼 수 있으며,
33. 或見菩薩 而作比丘 獨處閑靜 樂誦經典
혹견보살 이작비구 독처한정 낙송경전
혹 보니 어떤 보살들은 비구가 되어서 한가한 곳에서 조용히 앉아있고,
그러면서 경전독송 하기를 즐겨해.
又見菩薩 勇猛精進 入於深山 思惟佛道
우견보살 용맹정진 입어심산 사유불도
또 보니 어떤 보살들은 용맹하게 정진해서 깊은 산에 들어가서 思惟佛道하고, 불도를 사유하며
又見離欲 常處空閑 深修禪定 得五神通
우견이욕 상처공한 심수선정 득오신통
또 보니 욕심을 떠난 이는 항상 텅 비고 아주 한가한 곳에 있으면서 禪定을 깊이 닦아 5神通을 얻으며
又見菩薩 安禪合掌 以千萬偈 讚諸法王
우견보살 안선합장 이천만게 찬제법왕
또 보니 어떤 보살들은 安禪. 편안하게 선정에 들어서 合掌하고, 천만 가지 게송으로 모든 법왕을, 부처님을 찬탄하며
34. 復見菩薩 智深志固 能問諸佛 聞悉受持
부견보살 지심지고 능문제불 문실수지
또 보니 보살들은 智深志固. 지혜는 깊고 뜻은 견고해서 능히 여러 부처님께 묻고는 듣고 다 받아 가지며,
又見佛子 定慧具足 以無量喩 爲衆講法
우견불자 정혜구족 이무량유 위중강법 또 보니 불자가 定과 慧가 具足하여 한량없는 비유로써 온갖 대중들을 위해서 법을 강연하고,
欣樂說法 化諸菩薩 破魔兵衆 而擊法鼓
흔락설법 화제보살 파마병중 이격법고
즐겨히 법을 설해서 모든 보살들을 교화하며, 마군의 무리들을 깨뜨리고 법의 북을 둥둥 치며,
35. 又見菩薩 寂然宴默 天龍恭敬 不以爲喜
우견보살 적연연묵 천룡공경 불이위희
또 보니 어떤보살들은 寂然宴默이라. 고요하게 묵묵히 있으면서 천신과 용들이 공경하는 것도 별로로 쳐, 크게 기뻐하지 아니하고.
又見菩薩 處林放光 濟地獄苦 令入佛道
우견보살 처림방광 제지옥고 영입불도
또 보니 어떤 보살들은 處林放光. 숲 속을 이렇게 그렇게 자유롭게 거닌다. 이 放光은 자유롭게 거닌다는 뜻입니다. 숲 속에서 자유롭게 거닐며 지옥 고를 받는 중생들을 제도해서 불도에 들어가게 하며,
又見佛子 未嘗睡眠 經行林中 勤求佛道
우견불자 미상수면 경행림중 근구불도
또 보니 불자는 일찍이 잠자지 아니하고 숲 속에서 經行하여 부지런히 불도를 구하며
又見具戒 威儀無缺 淨如寶珠 以求佛道
우견구계 위의무결 정여보주 이구불도
또 보니 계행을 갖춘 이는 威儀가 결손 함이 없으되, 맑기가 寶珠와 같아서 그것으로서 불도를 구하며,
36. 又見佛子 住忍辱力 增上慢人 惡罵捶打 皆悉能忍
우견불자 주인욕력 증상만인 악매추타 개실능인
以求佛道(이구불도)
또 보니 불자가 인욕의 힘에 머물러서 增上慢人이 악한 말로 꾸짖고, 종아리를 치고 몽둥이로 때릴지라도 다 능히 참고 불도를 구하며,
- 1강-4로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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