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기신론

대승기신론 - 원문과 해석 2

수선님 2022. 6. 19. 13:11

대승기신론 【大乘起信論】  -  2  

동봉스님   
   
 
  
ㄴ)생멸인연
다음으로 생멸인연이란 이른바 중생들은 이 마음에 의해 의와 의식이 전변하기 때문이다. 이 뜻이 무엇인가? 아라야식에 의하여 무명이 있나니 불각이 일어나 보고 나타내고 경계를 취하여 망념을 일으켜 서로 이어지기 때문에 ‘의’라고 한다. 이 의는 다시 다섯 가지 이름이 있으니 무엇이 다섯인가? 첫째는 업식이니 무명의 힘으로 불각의 마음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전식이니 움직여진 마음에 의해 능히 볼 수 있는 상이기 때문이다. 셋째는 현식이니 이른바 일체경계를 나타냄이 마치 밝은 거울이 물체의 형상을 나타내는 것과 같다. 현식도 그러하여 그 오진을 따라 대상이 이르면 곧 나타내되 앞뒤가 없다. 왜냐하면 언제든지 임의로 일어나 항상 현전하기 때문이다. 넷째는 지식이니 염법과 정법을 분별한다. 다섯째는 상속식이니 망념이 상응하여 끊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 한량없는 기간 선악업을 간직하여 잃어버리지 않게 하고 또한 현재와 미래의 고락 등 과보를 성숙시켜 어긋남이 없게 하므로 현재 이미 지나간 일을 문득 생각하고 미래의 일을 자신도 모르게 잘못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삼계는 거짓된 것 오직 마음이 지은 것이니 마음을 여의면 육진경계가 없어지는 것이다. 이 뜻이 무엇인가? 일체법이 모두 마음으로부터 일어나 잘못 생각하여 생긴 것이어서 일체분별은 곧 자심을 분별하는 것이니 마음은 마음을 보지 못하여 얻을 만한 상이 없기 때문이다. 세간의 모든 경계는 다 중생의 무명망심에 의해 머물러 있으니 그러므로 일체법은 거울속의 형상과 같아 얻을 만한 실체가 없고 오직 마음일 뿐 허망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마음이 생기면 갖가지 법이 생기고 마음이 없어지면 갖가지 법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의식이란 모든 범부들의 집착이 점점 깊어짐에 따라 곧 이 상속식이 아와 아소를 계탁하여 여러 가지 망집으로 일에 따라 반연하여 육진을 분별하기 때문에 의식이라고 한다. 또한 분리식이라고도 하고 다시 분별사식이라고도 하니 이 식이 견애번뇌의 증장되는 뜻에 의하기 때문이다.
무명의 훈습에 의하여 일어난 식은 범부가 알 수 있는 게 아니며 또한 이승의 지혜로 깨달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는 보살이 처음 바른 믿음에서 발심하고 관찰함으로부터 저 법신을 증득한다면 조금이라도 알게 되며 보살구경지에 이른다 하더라도 다 알 수는 없고 오직 부처님만이 끝까지 다 알게 되는 것을 말한다. 어째서인가? 이 마음이 본래부터 자성이 청정하지만 무명이 있어서 그 무명으로 인해 물들어 그 염심이 있는 것이다. 비록 염심이 있으나 항상 변하지 않는지라 그러므로 이 뜻은 오직 부처님만이 알 수 있다. 이른바 심성이 항상 망념이 없기 때문에 불변이라 하며 하나의 법계임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마음이 상응하지 아니하여 홀연히 망념이 일어나는 것을 무명이라 한다.
염심은 여섯 가지가 있으니 무엇이 여섯 가지인가? 첫째는 집상응염이니 이승으로 해탈한 이와 믿음이 상응하는 경지의 사람에 의해 멀리 여의기 때문이다. 둘째는 부단상응염이니 믿음이 상응한 경지에 의해 방편을 닦고 배워 점점 버려 깨끗한 마음의 경지에 이르러 구경에 여의기 때문이다. 셋째는 분별지상응염이니 계를 갖춘 경지에 의해 점점 여의며 이에 무상방편지에 이르러 마침내 여의기 때문이다. 넷째는 현색불상응염이니 색신이 자재한 경지에 의해 여의기 때문이다. 다섯째는 능견심불상응염이니 마음이 자재한 경지에 의하여 여의기 때문이다. 여섯째는 근본업불상응염이니 보살의 최고경지에 의해 여래지에 들어 여의기 때문이다.
일법계의 뜻을 요달하지 못한다는 것은 신상응지로부터 관찰하여 다스리고 끊음을 배우고 정심지에 들어가 분수에 따라 여의게 되며 여래지에 이르러 마침내 여읠 수 있기 때문이다. 상응의란 심과 염법이 달라 염정에 의해 차별하매 지상과 연상이 같기 때문이며 불상응의란 곧 심과 불각이 항상 다름이 없어서 지상과 연상이 같지 않기 때문이다.
또 염심의 뜻은 번뇌애라 하니 진여의 근본지를 막기 때문이요 무명의 뜻은 지애라 하니 세간의 자연업지를 막기 때문이다. 이 뜻이 무엇인가? 염심에 의하여 볼 수 있으며 나타낼 수 있으며 잘못 경계를 집착하여 평등성을 어기기 때문이며 일체법이 항상 고요하여 일어나는 상이 없으나 무명불각이 망령되이 법과 어긋나기 때문에 세간의 모든 경계에 수순하는 여러 가지 지혜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ㄷ)생멸상
다시 생멸상을 분별한다는 것은 두 가지가 있으니 무엇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추니 마음과 더불어 상응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세니 마음과 더불어 상응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추중의 추는 범부의 경계요 추중의 세와 세중의 추는 보살의 경계며 세중의 세는 부처의 경계다. 이 두 가지 생멸이 무명훈습에 의해 있는 것이니 이른바 인에 의하고 연에 의한 것이다. 인에 의한다는 것은 불각의 뜻이고 연에 의한다는 것은 잘못 경계를 짓는 뜻이기 때문이다. 만약 인이 멸한다면 연이 멸하는 것이니 인이 멸하기 때문에 불상응심이 멸하고 연이 멸하기 때문에 상응심이 멸하는 것이다.
묻는다.
“만약 마음이 멸한다면 어떻게 상속하며 만약 상속한다면 어떻게 마침내 멸해 버린다 할 수 있겠는가?”
답한다.
“멸한다는 것은 오직 심상만 멸하는 것이지 심체가 멸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바람이 바닷물에 의해서 파도를 만드는 것이니 만약 바닷물이 없어지면 풍상이 끊어져 의지할 바가 없지만 바닷물이 없어지지 아니하므로 풍상이 상속하는 것이며 오직 바람이 멸하기 때문에 동상이 따라서 멸하지만 바닷물이 멸하는 것은 아닌 것과 같다. 무명도 또한 그러하여 심체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니 만약 심체가 멸하면 중생이 단절되어 의지할 바가 없지만 심체가 멸하지 않으므로 마음이 상속하는 것이며 오직 무명이 멸하기 때문에 심상이 따라서 멸하지만 심지가 멸하는 것은 아니다.”

나.훈습론
다시 네 가지 법의 훈습하는 뜻이 있으므로 염법과 정법이 일어나 단절하지 않는 것이니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첫째는 정법이니 진여라 하며 둘째는 일체염인이니 무명이라 하며 셋째는 망심이니 업식이라 하며 넷째는 망경계니 이른바 육진이다. 훈습의 뜻이란 세간의 의복이 실제로는 향기가 없지마는 만약 사람이 향으로 훈습하면 그 때문에 곧 향기가 있는 것과 같이 이도 또한 이러하여 진여정법에는 실로 염이 없지만 다만 무명으로 훈습하기 때문에 곧 염상이 있으며 무명염법에는 실로 정업이 없으나 다만 진여로 훈습하기 때문에 정용이 있는 것이다.

ㄱ)염법훈습
어떻게 훈습하고 염법을 일으켜 끊어지지 않게 하는가? 이른바 진여법에 의하므로 무명이 있고 무명염법의 인이 있으므로 곧 진여를 훈습하며 훈습하기 때문에 곧 망심이 있다. 망심이 무명을 훈습하여 진여법을 요달하지 못하므로 불각에서 망념이 일어나 망경계를 나타낸다. 망경계에 염법의 연이 있어 곧 망심을 훈습하여 그로 하여금 염착케 하여 여러 가지 업을 지어 몸과 마음으로 고통을 받게 하는 것이다. 이 망경계훈습의 뜻에 두 가지가 있으니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증장념훈습이요 둘째는 증장취훈습이다. 망심훈습의 뜻에 두 가지가 있으니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업식근본훈습이니 아라한과 벽지불과 일체보살이 생멸고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요 둘째는 증장분별사식훈습이니 범부들이 업계고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무명훈습의 뜻에 두 가지가 있으니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근본훈습이니 업식을 성취할 수 있는 뜻 때문이요 둘째는 소기견애훈습이니 분별사식을 성취할 수 있는 뜻 때문이다.

ㄴ)정법훈습
어떻게 훈습하고 정법을 일으켜 끊어지지 않게 하는가? 이른바 진여법이 있기 때문이니 이 진여가 무명을 훈습하며 훈습하는 인연의 힘에 의해 곧 망심으로 하여금 생사고통을 싫어하고 열반 구하기를 좋아하게 한다. 이 망심에 생사고통을 싫어하고 열반 구하기를 좋아하는 인연이 있으므로 곧 진여를 훈습하여 스스로 자기의 본성을 믿어 마음이 부질없이 움직이는 것일 뿐 앞의 경계가 없음을 알아 멀리 여의는 법을 닦는다. 그리하여 앞의 경계가 없음을 여실히 알기 때문에 여러 가지 방편으로 수순행을 일으켜 집착하지도 않고 잘못 생각하지도 않으며 내지 오랫동안 훈습한 힘으로 무명이 곧 멸하게 된다. 무명이 멸하므로 마음에 일어남이 없고 일어남이 없으므로 경계가 따라서 멸한다. 인과 연이 다 멸하므로 심상이 다 없어지니 이를 열반을 얻어 자연업을 이룬다고 한다.
망심훈습의 뜻에 두 가지가 있으니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분별사식훈습이니 모든 범부와 이승 등이 생사고통을 싫어함에 의해 힘닿는 대로 점차 무상도에 나아가기 때문이다. 둘째는 의훈습이니 모든 보살이 발심하여 용맹정진하여 속히 열반에 나아가기 때문이다.
진여훈습의 뜻에 두 가지가 있으니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자체상훈습이며 둘째는 용훈습이다. 자체상훈습이란 무시이래로부터 무루법을 갖추고 부사의업을 갖추며 경계성을 짓는 것이다. 이 두 가지의 뜻에 의해 항상 훈습하고 훈습의 힘이 있으므로 중생으로 하여금 생사고통을 싫어하고 열반을 즐겨 구하여 스스로 자기몸에 진여법이 있는 줄 믿어 발심하여 수행하게 하는 것이다.
묻는다.
“만일 그렇다면 모든 중생에게 다 진여가 있어서 똑같이 훈습해야 할 터인데 어찌하여 믿음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여 한없는 전후차별이 있는 것인가? 모두 동시에 스스로 진여법이 있음을 알아 부지런히 방편을 닦아 똑같이 열반에 들어가야 하지 않겠는가.”
답한다.
“진여는 본래 하나지만 한량없고 가없는 무명이 있어 본래부터 자성이 차별되어 두텁고 얇음이 같지 않다. 그러므로 항하사보다 많은 상번뇌가 무명에 의해 차별을 일으키며 아견애염번뇌가 무명에 의하여 차별을 일으킨다. 이와 같은 일체번뇌가 무명에 의해 일어나 한량없는 전후차별이 있으며 오직 여래만이 이를 알 수 있다. 또 모든 불법에 인이 있고 연이 있는 것이니 인연이 구족해야 법이 이루어질 수 있다. 이는 나무의 화성이 불의 정인이지만 만약 사람이 알지 못하여 방편을 빌리지 못하면 스스로 나무를 태울 수 없는 것과 같이 중생도 그러하여 정인의 훈습하는 힘이 있으나 만약 모든 부처 ? 보살 ? 선지식 등을 만나 그들로 연을 삼지 못한다면 스스로 번뇌를 끊고 열반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만약 외연의 힘은 있으나 내인의 깨끗한 법이 아직 훈습의 힘을 갖지 못한 자라면 또한 구경에 생사고통을 싫어하고 열반을 즐겨 구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인연이 구족한 자라면 이른바 스스로 훈습하는 힘이 있고 또 모든 부처 ? 보살 등의 자비와 원호함을 받으므로 생사고통을 싫어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열반이 있음을 믿어 선근을 닦아 익힌다. 선근을 닦는 일이 성숙하므로 보여 주고 가르쳐 주어 중생을 이롭게 하고 기쁘게 하는 모든 불 ? 보살을 만나 차츰 일을 이루어 나아가 열반도로 향할 수 있는 것이다.”
용훈습이란 곧 중생의 외연의 힘이니 이러한 외연에 한량없는 뜻이 있으나 크게 말하면 두 가지가 있다.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차별연이고 둘째는 평등연이다. 차별연이란 이 사람이 모든 부처와 보살 등에 의해 처음 뜻을 발해 구도할 때로부터 부처가 되기까지 그 가운데 혹은 부처를 보기도 하고 혹은 생략하기도 함에 있어 어떤 경우는 권속 ? 부모 ? 어른이 되며 어떤 경우는 급사가 되며 어떤 경우는 벗이 되며 어떤 경우는 원수가 되며 어떤 경우는 사섭을 일으키며 내지 일체 일으키는 한량없는 행위의 연이 되는 것이니 이는 대비로 훈습하는 힘을 일으켜 중생으로 하여금 선근을 증장케 하여 혹은 보거나 혹은 들어서 이익을 얻게 하기 때문이다. 이 연에 두 가지가 있으니 무엇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근연이니 빨리 도탈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원연이니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도탈하기 때문이다. 이 근원의 두 연을 분별하면 다시 두 가지가 있으니 무엇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증장행연이고 둘째는 수도연이다. ‘평등연’이란 일체 모든 부처와 보살이 일체 중생을 도탈시키고자 자연히 이들을 훈습하여 항상 버리지 않는 것이다. 이는 동체지력으로써 중생의 견문에 따라 응하여 업용을 나타내는 것이니 이른바 중생이 삼매에 의해 비로소 평등하게 모든 부처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체용의 훈습을 분별함에 다시 두 가지가 있으니 무엇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미상응이니 범부와 이승과 초발의보살 등은 의와 의식의 훈습으로 신력에 의해 잘 수행하지만 아직 무분별심이 체와 더불어 상응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며 아직 자재업의 수행이 용과 더불어 상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이상응이니 법신보살이 무분별심을 얻어 모든 부처의 지혜 ? 용맹과 더불어 상응하여 오직 법력에 의해 저절로 수행하게 되어 진여를 훈습하여 무명을 멸하기 때문이다. 또한 염법은 무시이래로부터 훈습하여 단절되지 않다가 부처가 된 후에는 곧 끊어짐이 있으나 정법훈습은 곧 끊어짐이 없어서 미래에까지 다하는 것이니 이 뜻이 무엇인가? 진여법이 항상 훈습하기 때문에 망심이 곧 멸하고 법신이 밝게 나타나 용의 훈습을 일으키므로 끊어짐이 없는 것이다.

B.의장문을 해석함
a.체상이대
또한 진여자체상이란 일체 범부 ? 성문 ? 연각 ? 보살 ? 제불에게 증감됨이 없으며 앞서 난 것도 아니요 나중에 멸하는 것도 아닌지라 필경에 늘 변함이 없이 본래부터 성품이 스스로 일체공덕을 가득 채운 것이다. 이른바 자체에 대지혜광명의 뜻이 있는 까닭이며 법계를 두루 비치는 뜻이 있는 까닭이며 진실하게 아는 뜻이 있는 까닭이며 자성청정심의 뜻이 있는 까닭이며 상 ? 락 ? 아 ? 정의 뜻이 있는 가닭이며 청량하고 불변하고 자재한 뜻이 있까닭이다. 이와 같이 항하사보다 많은 불리 ? 부단 ? 불이 ? 부사의한 불법을 구족하고 내지 만족하여 부족한 바가 없는 뜻이므로 여래장이라 하며 또한 여래법신이라 하는 것이다.
묻는다.
“위에서 진여는 그 체가 평등하여 일체상을 여의었다고 하였는데 어찌하여 다시 진여체에 이와 같은 여러 가지 공덕이 있다 말하는가?”
답한다.
“실로 이러한 모든 공덕의 뜻이 있으나 차별상이 없어 똑같은 일미이며 오직 하나의 진여다. 이 뜻이 무엇인가? 무분별로 분별상을 여의니 그러므로 둘이 없는 것이다. 또한 무슨 뜻으로 차별을 말할 수 있는가? 업식의 생멸상에 의하여 나타나는 것이다. 이것이 어떻게 나타나는가? 일체법이 본래 오직 마음뿐인지라 실로 망념이 없지만 망심이 있어서 깨닫지 못하고 망념을 일으켜 모든 경계를 보기 때문에 무명이라 하는 것이니 심성에 망념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곧 대지혜광명의 뜻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마음이 견을 일으키면 보지 못하는 상이 있으니 심성이 견을 여의면 바로 이것이 법계를 두루 비추는 뜻이기 때문이다. 만약 마음에 움직임이 있으면 참으로 아는 것이 아니며 자성이 없게 되며 상도 아니고 낙도 아니며 아도 아니고 정도 아니다. 그리하여 열뇌하며 쇠변하면 자재하지 못하며 이에 항하사보다 많은 망염의 뜻을 갖게 되는 것이니 이러한 뜻에 대하여 심성이 움직임이 없으면 항하사보다 많은 모든 깨끗한 공덕상의 뜻을 가져 나타낸다. 만약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 있어 다시 앞서 법의 생각할 만한 것을 본다면 모자라는 바가 있을 터이지만 이러한 정법의 무량한 공덕은 바로 일심이며 다시 생각할 것이 없으므로 만족한 것이니 법신 ? 여래장이라 하는 것이다.”

b.용대
또한 진여의 용이란 이른바 모든 부처와 여래가 본래 인지에서 대자비를 일으켜 모든 바라밀을 닦아 중생을 섭화하며 크나큰 서원을 세워 일체중생계를 모두 도탈시키고자 겁수를 한정하지 않고 미래제까지 다하는 것이니 모든 중생 돌보기를 제 몸과 같이하는 까닭이다. 그러면서도 중생상을 취하지 않는다. 이는 무슨 뜻에 의해서인가? 일체 중생과 및 제 몸이 진여로서 평등하여 다름이 없는 것인 줄 여실히 알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대방편지가 있으므로 무명을 제멸하고 본래의 법신을 보아 자연히 부사의업의 여러 가지 작용을 갖는 것이니 곧 진여와 똑같이 모든 곳에 두루하며 또한 그러면서도 얻을 만한 작용의 모양도 없다. 왜 그런가? 말하자면 모든 부처와 여래는 오직 법신 ? 지상신이며 제일의제로서 세제의 경계가 없는 것이어서 시작을 떠난 것이나 다만 중생의 견문에 따라 이롭기 때문에 용이라 한 것이다. 이 용에 두 가지가 있으니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첫째는 분별사식에 의한 것으로 범부와 이승의 마음으로 보는 것을 응신이라 하니 이는 전식의 나타냄인 줄 알지 못하여 밖에서 온 것이라 보고 색의 분제를 취하여 다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업식에 의한 것이니 이는 모든 보살이 초발의로부터 보살구경지에 이르기까지 마음으로 본 것을 보신이라 하는 것이다. 그 몸에 무량한 색이 있고 색에 무량한 상이 있고 상에 무량한 호가 있으며 머무는 의지처와 결과도 무량한 여러 가지 장엄이 있다. 곳에 따라 나타냄이 곧 가없고 궁진할 수 없어 분제상을 여의었지만 그 응하는 바에 따라 항상 머물러 있어 훼손되지도 않고 잃지도 않는다. 이러한 공덕은 모두 모든 바라밀 등 무루의 행훈 및 부사의훈에 의하여 성취된 것이니 이러한 한량없는 낙상을 구족하였기 때문에 보신이라 하는 것이다. 또 범부에게 보여지는 것은 추색이니 육도에 따라서 각각 보는 것이 같지 아니하여 여러 가지 이류며 낙상을 받는 것이 아니므로 응신이라 한다. 다음 초발의보살 등이 보는 것은 진여법을 깊이 믿기 때문에 적은 부분으로나마 보신을 보아 저 보신의 색상과 장엄 등 일이 오는 것도 없고 가는 것도 없어 분제를 떠났으며 오직 마음에 의하여 나타날 뿐 진여를 떠나지 않음을 아는 것이다. 그러나 이 보살은 아직 스스로를 분별하고 있으니 이는 아직 법신의 자리에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약 정심을 얻으면 보는 바가 미묘하여 그 작용이 점점 수승하며 이리하여 보살지진에 이르러 보신을 보는 일이 구경하게 되거니와 만약 업식을 여의면 보는 상이 없어지는 것이니 모든 부처의 법신은 피차의 색상을 서로 보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묻는다.
“만약 모든 부처님의 법신이 색상을 여의었다면 어떻게 색상을 나타낼 수 있겠는가?”
답한다.
“곧 이 법신은 색의 체이기 때문에 색을 나타낼 수 있는 것이다. 이른바 본래부터 색과 심은 둘이 아닌 것이니 왜냐하면 색의 본성은 곧 지혜이므로 색의 체에 형체가 없는 것을 지신이라 하며 지성은 곧 색이므로 법신이 모든 곳에 두루한다고 하는 것이다. 나타낸 색이 분제가 없으니 중생의 마음을 따라 시방세계에 무량한 보살과 무량한 보신과 무량한 장엄을 나타냄에 각각 차별이 되지만 모두 분제가 없어서 서로 방해되지 않는다. 이는 심식의 분별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진여의 자재한 용의 뜻이기 때문이다.”

② 진여문에 들어감
다음은 생멸문으로부터 곧 진여문에 들어가는 것을 나타내었다. 이른바 오음의 색과 심을 추구해 보건대 육진경계가 필경 생각할 만한 모양이 없으며 또한 마음에는 형상이 없어서 시방으로 찾아보아도 끝내 얻을 수가 없으니 마치 사람이 방향을 모르기 때문에 동쪽을 서쪽이라고 하지만 방향 자체는 실로 바귄 것이 없는 것과 같다. 중생도 그러하여 무명으로 혼미하여 마음을 망념이라 하지만 마음은 실로 움직이지 않는 것이며 만약 관찰하여 마음에 망념이 없는 줄 알면 곧 수순하게 되어 진여문에 들어가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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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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復次生滅因緣者。所謂衆生依心意意識轉故。
此義云何。以依阿梨耶識說有無明。
不覺而起。能見能現。能取境界。起念相續。故說爲意。此意復有五種名。云何爲五。一者名爲業識謂無明力不覺心動故。二者名爲轉識。依於動心能見相故。三者名爲現識。所謂能現一切境界。猶如明鏡現於色像。現識亦爾。隨其五塵對至卽現無有前後。以一切時任運而起常在前故。四者名爲智識謂分別染淨法故。五者名爲相續識。以念相應不斷故。住持過去無量世等善惡之業令不失故。復能成熟現在未來苦樂等報。無差違故。能令現在已經之事忽然而念。未來之事不覺妄慮。是故三界虛僞唯心所作。離心則無六塵境界。此義云何。以一切法皆從心起妄念而生。一切分別卽分別自心。心不見心無相可得。當知世間一切境界。皆依衆生無明妄心而得住持。是故一切法。如鏡中像無體可得。唯心虛妄。以心生則種種法生。心滅則種種法滅故。
復次言意識者。卽此相續識。依諸凡夫取著轉深計我我所。種種妄執隨事攀緣。分別六塵名爲意識。亦名分離識。又復說名分別事識。此識依見愛煩惱增長義故。
依無明熏習所起識者。非凡夫能知。亦非二乘智慧所覺。謂依菩薩。從初正信發心觀察。若證法身得少分知。乃至菩薩究竟地不能知盡。唯佛窮了。何以故。是心從本已來自性淸淨。而有無明。爲無明所染。有其染心。雖有染心而常恒不變。是故此義唯佛能知。
所謂心性常無念。故名爲不變。
以不達一法界故心不相應忽然念起名爲無明。
染心者有六種。云何爲六。一者執相應染。依二乘解脫及信相應地遠離故。二者不斷相應染。依信相應地修學方便漸漸能捨。得淨心地究竟離故。三者分別智相應染。依具戒地漸離。乃至無相方便地究竟離故。四者現色不相應染依色自在地能離故。五者能見心不相應染。依心自在地能離故。六者根本業不相應染。依菩薩盡地得入如來地能離故。
不了一法界義者。從信相應地觀察學斷。入淨心地隨分得離。乃至如來地能究竟離故。
言相應義者。謂心念法異。依染淨差別。而知相緣相同故。不相應義者。謂卽心不覺常無別異。不同知相緣相故。
又染心義者。名爲煩惱?。能障眞如根本智故。無明義者。名爲智?。能障世間自然業智故。此義云何。以依染心能見能現。妄取境界違平等性故。以一切法常靜無有起相。無明不覺妄與法違故。不能得隨順世間一切境界種種智故。
復次分別生滅相者有二種。云何爲二。一者?。與心相應故。二者細。與心不相應故。又?中之?凡夫境界。?中之細及細中之?菩薩境界。細中之細是佛境界。
此二種生滅。依於無明熏習而有。所謂依因依緣。依因者。不覺義故。依緣者。妄作境界義故。若因滅則緣滅。因滅故不相應心滅。緣滅故相應心滅。
問曰。若心滅者云何相續。若相續者云何說究竟滅。
答曰。所言滅者。唯心相滅非心體滅。如風依水而有動相。若水滅者。則風相斷絶無所依止。以水不滅風相相續。唯風滅故動相隨滅非是水滅。無明亦爾。依心體而動。若心體滅。則衆生斷絶無所依止。以體不滅心得相續。唯癡滅故心相隨滅非心智滅。
復次有四種法熏習義故。染法淨法起不斷絶。云何爲四。一者淨法。名爲眞如。二者一切染因。名爲無明。三者妄心。名爲業識。四者妄境界。所謂六塵。
熏習義者。如世間衣服實無於香。若人以香而熏習故則有香氣。此亦如是。眞如淨法實無於染。但以無明而熏習故則有染相。無明染法實無淨業。但以眞如而熏習故則有淨用。
云何熏習起染法不斷。所謂以依眞如法故有於無明。以有無明染法因故卽熏習眞如。以熏習故則有妄心。以有妄心卽熏習無明。不了眞如法故不覺念起現妄境界。以有妄境界染法緣故卽熏習妄心。令其念著造種種業。受於一切身心等苦。此妄境界熏習義則有二種。云何爲二。一者增長念熏習。二者增長取熏習。妄心熏習義則有二種。云何爲二。一者業識根本熏習。能受阿羅漢?支佛一切菩薩生滅苦故。二者增長分別事識熏習。能受凡夫業繫苦故。無明熏習義有二種。云何爲二。一者根本熏習。以能成就業識義故。二者所起見愛熏習。以能成就分別事識義故。
云何熏習起淨法不斷。所謂以有眞如法故能熏習無明。以熏習因緣力故。則令妄心厭生死苦樂求涅槃。以此妄心有厭求因緣故卽熏習眞如。自信己性。知心妄動無前境界。修遠離法。以如實知無前境界故。種種方便起隨順行不取不念。乃至久遠熏習力故無明則滅。以無明滅故心無有起。以無起故境界隨滅。以因緣俱滅故心相皆盡。名得涅槃成自然業。
妄心熏習義有二種。云何爲二。一者分別事識熏習。依諸凡夫二乘人等。厭生死苦隨力所能。以漸趣向無上道故。二者意熏習。謂諸菩薩發心勇猛速趣涅槃故。
眞如熏習義有二種。云何爲二。一者自體相熏習。二者用熏習。自體相熏習者。從無始世來具無漏法。備有不思議業。作境界之性。依此二義恒常熏習。以有力故能令衆生厭生死苦樂求涅槃。自信己身有眞如法發心修行。
問曰。若如是義者。一切衆生悉有眞如等皆熏習。云何有信無信。無量前後差別。皆應一時自知有眞如法。勤修方便等入涅槃。
答曰。眞如本一。而有無量無邊無明。從本已來自性差別厚薄不同故。過恒沙等上煩惱依無明起差別。我見愛染煩惱依無明起差別。如是一切煩惱。依於無明所起。前後無量差別。唯如來能知故。又諸佛法有因有緣。因緣具足乃得成辦。如木中火性是火正因。若無人知不假方便能自燒木。無有是處。衆生亦爾。雖有正因熏習之力。若不値遇諸佛菩薩善知識等以之爲緣。能自斷煩惱入涅槃者。則無是處。若雖有外緣之力。而內淨法未有熏習力者。亦不能究竟厭生死苦樂求涅槃。若因緣具足者。所謂自有熏習之力。又爲諸佛菩薩等慈悲願護故。能起厭苦之心。信有涅槃修習善根。以修善根成熟故。則値諸佛菩薩示敎利喜。乃能進趣。向涅槃道。
用熏習者。卽是衆生外緣之力。如是外緣有無量義。略說二種。云何爲二。一者差別緣。二者平等緣。差別緣者。此人依於諸佛菩薩等。從初發意始求道時乃至得佛。於中若見若念。或爲眷屬父母諸親。或爲給使。或爲知友。或爲怨家。或起四攝乃至一切所作無量行緣。以起大悲熏習之力。能令衆生增長善根。若見若聞得利益故。此緣有二種。云何爲二。一者近緣。速得度故。二者遠緣。久遠得度故。是近遠二緣。分別復有二種。云何爲二。一者增長行緣。二者受道緣。平等緣者。一切諸佛菩薩。皆願度脫一切衆生。自然熏習恒常不捨。以同體智力故。隨應見聞而現作業。所謂衆生依於三昧。乃得平等見諸佛故。
此體用熏習。分別復有二種。云何爲二。一者未相應。謂凡夫二乘初發意菩薩等。以意意識熏習。依信力故而能修行。未得無分別心與體相應故。未得自在業修行與用相應故。二者已相應。謂法身菩薩得無分別心。與諸佛智用相應。唯依法力自然修行。熏習眞如滅無明故。
復次染法從無始已來熏習不斷。乃至得佛後則有斷。淨法熏習則無有斷盡於未來。此義云何。以眞如法常熏習故。妄心則滅法身顯現。起用熏習故無有斷。
復次眞如自體相者。一切凡夫聲聞緣覺菩薩諸佛無有增減。非前際生非後際滅。畢竟常恒。從本已來性自滿足一切功德。所謂自體有大智慧光明義故。遍照法界義故。眞實識知義故。自性淸淨心義故。常樂我淨義故。淸?不變自在義故。具足如是過於恒沙不離不斷不異不思議佛法。乃至滿足無有所少義故。名爲如來藏。亦名如來法身
問曰。上說眞如其體平等離一切相。云何復說體有如是種種功德
答曰。雖實有此諸功德義。而無差別之相。等同一味唯一眞如。此義云何。以無分別離分別相。是故無二。復以何義得說差別。以依業識生滅相示。此云何示。以一切法本來唯心實無於念。而有妄心不覺起念見諸境界故說無明。心性不起卽是大智慧光明義故。若心起見則有不見之相。心性離見卽是遍照法界義故。若心有動非眞識知無有自性。非常非樂非我非淨。熱惱衰變則不自在。乃至具有過恒沙等妄染之義。對此義故。心性無動則有過恒沙等諸淨功德相義示現。若心有起。更見前法可念者則有所少。如是淨法無量功德。卽是一心更無所念。是故滿足名爲法身如來之藏。
復次眞如用者。所謂諸佛如來。本在因地發大慈悲。修諸波羅蜜攝化衆生。立大誓願盡欲度脫等衆生界。亦不限劫數盡於未來。以取一切衆生如己身故。而亦不取衆生相。此以何義。謂如實知一切衆生及與己身眞如平等無別異故。以有如是大方便智。除滅無明見本法身。自然而有不思議業種種之用。卽與眞如等遍一切處。又亦無有用相可得。何以故。謂諸佛如來唯是法身智相之身。第一義諦無有世諦境界。離於施作。但隨衆生見聞得益故說爲用。
此用有二種。云何爲二。一者依分別事識。凡夫二乘心所見者。名爲應身。以不知轉識現故見從外來。取色分齊不能盡知故。二者依於業識。謂諸菩薩從初發意。乃至菩薩究竟地心所見者。名爲報身。身有無量色。色有無量相。相有無量好。所住依果亦有無量種種莊嚴隨所示現卽無有邊不可窮盡離分齊相。隨其所應常能住持不毁不失。如是功德皆因諸波羅蜜等無漏行熏。及不思議熏之所成就。具足無量樂相故。說爲報身。又爲凡夫所見者是其?色。隨於六道各見不同。種種異類非受樂相故。說爲應身復次初發意菩薩等所見者。以深信眞如法故少分而見。知彼色相莊嚴等事。無來無去離於分齊。唯依心現不離眞如。然此菩薩猶自分別。以未入法身位故。若得淨心所見微妙其用轉勝。乃至菩薩地盡見之究竟。若離業識則無見相。以諸佛法身無有彼此色相迭相見故。
問曰。若諸佛法身離於色相者。云何能現色相。
答曰。卽此法身是色體故能現於色。所謂從本已來色心不二。以色性卽智故色體無形。說名智身。以智性卽色故。說名法身遍一切處。所現之色無有分齊。隨心能示十方世界。無量菩薩無量報身。無量莊嚴各各差別。皆無分齊而不相妨。此非心識分別能知。以眞如自在用義故。
復次顯示從生滅門卽入眞如門。所謂推求五陰色之與心。六塵境界畢竟無念。以心無形相十方求之終不可得。如人迷故謂東爲西方實不轉。衆生亦爾。無明迷故謂心爲念心實不動。若能觀察知心無念。卽得隨順入眞如門故。

 

 

 

 

 

 

 

 

 

 

대승기신론 -원문과 해석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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