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비구(五比丘)
최초로 석가에게 귀의한 다섯 명의 비구.
콘단냐(Kondanna:倧蓮如)·아사지(Assaji:阿說示)·마하나마(Mahanama:摩訶男)·밧디야
(Bhaddhiya:婆提)·바파(Vappa:婆頗)의 다섯 비구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들은 석가가 성도하
기 전 함께 수행하였고, 성도 후에는 초전법륜(初轉法輪)을 듣고 최초로 석가에게 귀의했다.
이들은 본래 우다카(Uddaka) 교단의 수행자였다. 태자 시절의 석가가 우다카 라마푸타라는
스승을 찾아가 가르침을 청하였다가 만족하지 못하여 떠날 때 석가를 따라 네란자라강[尼連禪
河]까지 와서 같이 수행을 하였다. 석가는 5년 간의 고행을 마치고 얼마 동안 수자타라는 비구
니가 우유와 꿀에 쌀을 넣고 끓인 우유죽을 받아 먹었다. 덕분에 석가는 기력을 회복하였으나
그를 따라 수도하던 다섯 비구는 태자가 타락하였다며 실망하여 바라나시[波羅奈] 교외의 녹
야원(鹿野苑)으로 떠나버렸다.
그 후 석가는 보리수 아래에서 선정에 들어 마침내 깨달음을 얻었다. 석가의 곁을 떠난 다섯
비구뿐 아니라 당시의 모든 수행자들은 고행을 최고의 수행 방법으로 여겼는데, 석가의 첫
깨달음은 극단적인 수행 방법을 부정하는 고락중도설에 의한 것이었다.
깨달음을 얻은 석가는 함께 수행하던 콘단냐 등 다섯 사람을 먼저 제도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녹야원으로 갔다. 멀리서 석가를 본 이들은 모른 체 하기로 약속하였으나 석가가 다가가자
일어나 자리를 권하고 공손히 인사하였다.
석가는 이들에게 쾌락만을 좇거나 고행만을 추구하는 양 극단을 뛰어넘어 중도(中道)를 배우
라 일렀다. 그리고 생로병사의 고통(苦)과 그 고통의 원인(集), 이를 벗어난 평화(滅)와 그에
이르는 방법(道), 즉 사제(四諦:四聖諦)와 그 수행 방법으로서의 여덟 가지 성스러운 길, 즉
팔정도(八正道)를 설하였다. 이것이 이른바 초전법륜이다. 다섯 비구는 석가의 설법을 듣고
는 곧 깨달아 아라한과를 얻은 뒤 석가에게 귀의하여 처음으로 불교 교단을 형성하였다.
안나콘단냐<阿若驕陳如>
녹야원(鹿野苑)에서 석가의 초전법륜을 듣고 가장 먼저 깨달음을 얻은 인도의 비구이다. 그 자리에서 그는 아라한(阿羅漢)이 되었다.
원어명: Anna-Kondanna
별칭: 콘단냐, 아야교진여, 교진여
국적: 고대 인도
출생지: 북인도
오비구 중의 한 명으로 바라나시(波羅奈) 북쪽에 있는 녹야원(鹿野苑)에서 석가의 초전법륜을 듣고 가장 먼저 깨달음을 얻은 비구이다. 석가는 출가후 라자그리하(王舍城:현재의 비하르주 라지기르) 서남쪽 네란자라강[尼連禪河] 유역에 있는 고행림(苦行林)에서 콘단냐(驕陳如)를 비롯한 다섯 비구과 함께 고행하였다. 고행중 석가가 수자타(善生女)에게 우유죽을 얻어 마시자 다섯 비구는 석가가 타락하였다며 실망하여 녹야원으로 떠났다.
이들이 떠난 뒤 석가는 네란자라강가의 보리수 아래 금강좌에서 마침내 성불하였다. 깨달음을 얻은 석가는 이들 다섯에게 진리를 전하기 위하여 부다가야에서 바라나시까지 긴 여행을 하였다. 석가가 녹야원에 도착하였을 때 이들은 절을 하지 말자고 미리 약속하였으나 멀리서 오는 석가의 위엄에 압도되어 자리에서 일어나 예배하였다.
석가는 이들에게 중도(中道)의 이치를 가르치고 팔정도(八正道)와 사제(四諦:四聖諦)를 설명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초전법륜이다. 설법을 들은 이들은 곧 석가에게 귀의하였으며, 콘단냐는 그 자리에서 깨달음을 얻어 아라한(阿羅漢)이 되었다.
초기 불교 교단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나 후일 라자그리하 근교 출신 사리풋다(舍利弗)와 목갈라나(目連尊子)가 250명이나 되는 수행자들을 데리고 귀의하자, 석가에게 간청하여 히말라야산 찬단타 숲의 만다키니 호숫가로 물러나 여생을 보냈다. 그가 죽자 그에게 먹을 것을 날라주던 코끼리들이 장례를 치렀다고 한다.
마하나마<摩訶男>
고대 인도 가비라위성(카필라성)의 왕으로 석가모니의 사촌동생이다. 출가는 하지 않았으나 샤카족으로서의 자긍심이 강하여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생활화하였다. 코살라국의 비루다카가 침략하여 가비라위성을 함락되고, 마하나마는 포로로 잡혀 죽었다.
원어명: Mahanama(산)
별칭: 마하남
국적: 고대 인도
활동분야: 국왕, 석가의 제자
출생지: 북인도 가비라위성
정반왕(淨飯王:Suddhodana)에 이은 가비라위성의 왕으로, 석가모니의 사촌동생이다. 석가모니와 샤카족 출신 왕족 아난다·난다·라훌라 등이 모두 출가하자 왕위를 물려받았다. 출가는 하지 않았으나 샤카족으로서의 자긍심이 강하여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생활화하였다.
당시 가비라위성의 종주국이었던 코살라국의 왕 파세나디[波斯匿王]는 석가모니를 존경하여 샤카족 출신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고자 마하나마에게 왕녀를 보내줄 것을 청하였다. 그러나 자부심 강한 마하나마는 샤카족의 혈통을 보존한다는 명목으로 자신과 하녀 사이에 태어난 여자를 왕족이라 속여서 보냈고 이 하녀와 파세나디 사이에 왕자 비루다카(Virudhaka)가 태어났다.
비루다카가 성장하여 외가인 가비라위성을 방문하자 샤카족 사람들은 그가 하녀의 자식이라 하여 수모를 주었다. 이 일이 원인이 되어 비루다카는 파세나디왕을 라자그리하(王舍城:현재의 비하르주 라지기르)로 쫓아내고 왕위를 찬탈한 뒤 스스로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되려는 야심을 품고 북인도 통일에 나서 가비라위성을 그 첫번째 목표로 삼았다.
비루다카의 침략 소식을 전해 들은 석가모니는 두 번이나 비루다카를 설득하여 돌려보냈으나, 세번째는 말리지 못하였다. 침략군이 가비라위성에 이르렀을 때 마하나마는 촉 없는 화살을 쏘아 전쟁할 의사가 없음을 알렸으나 원한에 찬 비루다카는 오히려 공격을 강화하여 가비라위성을 함락시키고 마하나마를 포로로 잡았다.
마하나마는 비루다카에게 자신이 연못 속에 잠겨 있을 테니 그 동안만이라도 성문을 열어 백성들이 도망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하였다. 오만한 비루다카는 이를 수락하였다. 그러나 연못에 들어간 마하나마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나오지 않았다.
비루다카가 사람을 시켜 연못 속을 뒤지니 마하나마는 물푸레나무에 머리카락을 묶은 채 죽어 있었다. 자신이 죽어도 시체가 떠오르지 않게 하여 노예로 끌려갈 백성을 한 명이라도 더 구하려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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