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元曉) 대사의 깨달음
법륜 스님
원효(元曉)는 신라 귀족 출신이다. 신라는 제일 높은 계급이 왕족이고 육부 촌장들의 후예인 귀족, 평민, 하인(천민)으로 구성되어 있다. 천민이 집단적으로 모여 사는 곳을 ‘부곡’, ‘소’라고 부른다. 원효는 왕족이 아니라 귀족이다. 신라시대에는 고위직은 왕족이 모두 차지했다. 그래서 귀족인 6두품은 일정한 지위 이상 요즘으로 말하면 장관 차관 자리는 오르지 못했다. 그런 한계가 있었다.
부처님도 왕족이지만 인도는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의 4계급으로 구성 되어있고 왕족은 인도에서는 두 번째 계급인 크샤트리아였다. 어느 사회에서든 위대한 선각자는 두 번째 계급에서 생긴다. 최고 계급은 기득권에 빠져서 사물의 진실을 바라보지 못하고 더 하층 계급은 사는 게 힘들어 세상의 진실을 보기 힘들다. 순응하거나 저항하거나 할뿐 사물을 창조적으로 보지 못한다.
원효도 6두품이라 사물을 창조적으로 객관적으로 보는 눈을 가졌을 것이다. 귀족인지라 경제적으로는 풍족했으나 일찍 어머니 아버지를 여의고 할아버지 손에 자람. 청소년 시절에는 화랑도에 전념, 머리 좋고 인물 좋고 건강하고 해서 모든 일에 승승장구 했다. 그 당시는 삼국 통일 전야라서 늘 백제 고구려와 늘 전쟁이 있었고 화랑들은 자발적으로 그런 전쟁에 참여 했다. 전쟁에서 연전연승 하면서 그의 명성이 높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자기와 절친한 친구가 전쟁에서 전사했고 친구의 죽음 앞에서 너무 애통해 했고 친구의 죽음에 원수를 갚고자 친구의 무덤가에서 반드시 너의 원수를 갚아 주리라 맹세하고 그 원수를 생각해보았다. 그랬더니 상상 속에서 그는 아주 기뻐하고 있다. 그는 적장의 목을 베었다고 칭송받고 있다. 그는 지금 승리의 환호성에 기뻐하고 있다.
그때 그는 일순간에 크게 깨달았다.
그렇구나! 승자가 있으니 패자가 있구나. 내가 승리해서 기뻐할 때 저쪽에는 슬픔에 빠진 자가 있었겠구나. 이기고 지는 것은 얼마나 허망한가! 크게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높은 지위를 던져버리고 스스로 머리를 자르고 자기가 살던 집을 절로 고치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귀의하고 출가했다.
첫째 깨달음은 지금까지 나만 보고 살았는데 너를 봤다. 일본만 보고 살았는데 북한의 입장을 보았다. 남편-아내 노동자-사업자의 입장들을 양쪽 다 보았다. 이것이 첫 번째 깨달음. 그를 보는 순간 깨달았다. 나만 보다가 그때 나니 너니 이기니 지니 하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 생각했다.
그런데도 오늘 우리는 아직도 계속 나만 보고 살아간다. 남편은 남편만 아내는 아내만 기업가는 기업가만 노동자는 노동자만 남한은 남한만 북한은 북한만 이걸 보고 우리는 아상이라 한다. 우리는 아상에 사로잡혀있다. 그래서 우리는 진실을 보지 못하고 가려진 이면을 보지 못한다. 실상에 눈을 떴다. 실상에 눈을 뜨고 보니 옳으니 그르니 이기니 지니 하는 꿈에서 깨었다. 꿈에서 깨기까지 우리는 허망한줄 모른다. 이렇게 스스로 상이 허망한줄, 삶이 꿈인 줄 깨달았기 때문에 그는 이 세상에 조금도 미련이 없다. 이걸 모르고 출가하면 출가하고 옳으니 그르니 예쁘니 미우니 하는 것과 명예라는 것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제 원효는 세속이라는 것이 허망하다는 것을 깨닫고 불법의 팔만대장경을 보니 자기보다 한참 전에 부처님이 환하게 깨우쳤다는 것을 알았다. 왜 여기 진수성찬을 차려놨는데 왜 지금까지 쓰레기만 먹었나하는 생각이 들고, 한 번 법에 맛을 들이니 다른 어떤 것에 관심이 없어지고 정진에 정진을 거듭했다. 이렇게 스스로 자발적으로 공부하는 것과 그냥 억지로 공부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렇게 원효는 신라에 있는 책은 다 봤는데 신라에 그 당시 중국-인도의 경전이 다 전해진 게 아니었다.
그래서 모든 법이 중국 장안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어찌 구도자가 장안에 가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그런데 당시 신라가 당나라로 가는데 길이 막혀 있었다. 육로는 고구려에, 배편은 백제에. 그래서 일반인은 가기 힘들었다. 그래서 절친한 도반인 의상과 목숨을 걸고 고구려를 통해 중국에 가는 법을 택해 가다 고구려 수비대에 잡힌다. 신라의 간첩으로 오인된다. 전쟁 중이라 신라인은 간첩이 승려로 위장해 넘어온 것을 생각 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60년대 북한을 넘어 중국으로 가다 잡히면 북한에선 간첩으로 오인되었을 것이다. 근데 마침 그 수비대의 일정한 지위가 있는 자가 불자였다. 그 불자 수비대가 보기에 정말 스님인 것으로 보이더라. 밤에 몰래 도망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탈출을 하도록 문을 살짝 열어두고 자기가 안보는 때 탈출하도록 해서 몰래 도와주데 책임은 면하는 방법으로 그래서 두 스님이 다시 신라로 넘어왔다. 죽을 뻔 했으면 포기해야 하는데 구도적 정열에 포기할 수 없었다.
그러는데 몇 년 후에 신라가 한강 유역을 점령했다. 뱃길이 열린 후 산둥 반도를 통해 당나라에 원군을 요청하고 동맹을 맺었다. 두 번째는 해로를 통해서 당나라로 가겠다고 생각하고 둘은 당항성을 출발해서 항구 근처로 가서 며칠을 기다리다 마침 비가 쏟아져서 비를 피하려 자그만 동굴에 들어갔다.
여기 두 가지 서로 다른 이야기가 전해진다.
한 가지는 목이 말라서 더듬었더니 바가지 같은 게 있어서 물을 떠 맛있게 잘 먹었다. 아침에 그 바가지를 보니 해골이라 구역질이 나서 토했는데 토하는 순간 크게 깨쳤다.
어제는 그렇게 달고 깨끗한 물이었는데 오늘은 왜 구역질이 나는가?
같은 바가지 같은 물인데 더럽고 깨끗한 것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더럽고 깨끗한 것이 마음에 있구나 알고 크게 깨쳐서 원효는 일어나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마음이 일어나니 온갖 법이 일어나고 마음이 사라지니 온갖 법이 사라진다.
진리(眞理)가 다 마음 가운데 있는데 중국에 갈 일이 무엇이 있는가? 그는 안가고 의상은 중국으로 갔다. 의상은 중국 화엄종을 수입해서 중국 화엄종의 신라 초조가 되었고 원효는 신라 화엄조의 초조가 되었다.
다른 이야기는 이 비를 피한 곳이 원래는 무덤이었다는 것이다. 그날 무덤 속에서 잘 잤는데 아침에 일어났더니 동굴이 아니라 무덤이라 다음날은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었다. 온각 귀신이 나오고 잠자리가 불편하여 온갖 번뇌가 일어나는 것을 보고 크게 깨달았다. 어제는 그렇게 숙면을 취했는데 오늘은 이렇게 힘들다니. 그러나 어느 이야기든 이래저래 해도 다 똑 같다.
마음이 일어나니 온갖 법이 일어나고 마음이 사라지니 온갖 법이 사라진다.
(심생즉종종법생 心生則種種法生 심멸즉종종법멸心滅則種種法滅.)”
어찌 무덤에 들어갔을까? 고구려의 무덤은 북방식 무덤으로 횡렬씩 석실분. 지상이나 약간위에 무덤을 만든다. 그래서 다 도굴된다. 신라의 무덤은 땅을 파고 잔돌을 쌓고 나무를 깔고 흙을 덮어서 도굴하기 힘들다. 이것이 수혈식 석실 고분이다.
이렇게 해서 원효는 신라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와서 온갖 경전을 다시 보니 이해되지 않는 것이 없다. 결국 모든 대승경전이 색즉시공 공즉시색 일체가 다 마음 가운데 있고 마음이 공한 거다. 그래서 그는 많은 주석서를 썼다. 자기가 깨닫고 글을 쓰니 아주 쉽고 아주 풍부하다. 그래서 그 글을 읽은 사람들이 다 탄복하고 좋아했다. 같은 법문이라도 스님마다 다르다. 그래서 원효는 일약 유명해 졌다. 그래서 유명한 스님이 되었다. 그래서 원효는 신라에서 일 이등을 다투는 학승이 되었다. 원효 대사가 밝은 지혜로 유명세를 타면서 선덕여왕의 총애를 받고 분황사의 주지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원효는 외출하다가 돌아와서 대안 대사를 만났다. 대안대사는 떠돌이 객승이다. 신분이 불분명한 사람이다. 왜 대안 대사냐? 탁발을 하면서 늘 대안 대안 외쳐서 대안 대사가 되었다. 크게 편안해라 외치고 돌아다녀서 대안대사라 사람들이 부른 것이다.
신라는 자장율사 이후로 계율이 정리되어 조직체계가 잡히고 스님의 지위가 높았고 왕족 출신의 스님이 많아서 이미 국가가 후원하는 종교가 되어있었다. 자장율사는 특히 왕에 가까운 친척이었다. 자장율사가 중국에서 공부해서 돌아왔을 때 왕이 재상에 임명하려했으나 자장은 은거해서 숨어살고 나오지 않아서 왕이 강제로 나오게 했는데 왕에게 강제로 그러면 죽어버리겠다고 해서 왕이 뜻을 꺾었다. 그래서 그는 해동 제일 율조가 되었다. 이렇게 신라는 불교가 널리 퍼졌지만 한편으로는 점점 기득권화해갔다.
그러면서 세속 권력과 결탁해서 불교의 근본을 잃어버리고 이에 반대하는 신라의 민중불교가 일어났다. 여기에 스님들은 대개 종출신이었다. 그래서 승려가 되어도 지위가 안 올라갔다. 그게 석가모니 부처님과의 차이. 신라에는 스님 간에도 차이가 있다.
대안대사도 그런 비주류 초야에 묻힌 스님이다. 그러나 이분은 워낙 유명해서 사람들이 다 이분이 누구인줄 알았다. 원효대사는 그래도 수행해서 존중해하는 마음이 있었다. 이런 둘이 길에서 마주쳤다. 한쪽은 국가가 공인한 스님 한쪽은 종 출신의 걸승이었다. 이렇게 차이나는 두 사람이지만 만나자 대안대사가 원효대사를 칭찬했다. 당신이 쓴 글을 보니 지혜가 출중하고 논리가 명쾌하다 이야기 좀 하고 싶다고 했다. 대안대사가 나를 따라와라 해서 원효는 따라갔다. 분황사 뒤 북천을 건너 부곡 소로 가더라.
원효대사는 꺼려 졌으나 우선 따라갔다. 대안은 천민 거리 주막으로 갔다. 주모 여기 귀한 손님 오셨으니 잘 차려라? 내가 술을 안 마신다 해도 다른 사람이 보면 오해의 여지가 있겠구나. 그래서 원효가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못 되는구나 해서 거기서 나와서 뒤도 안돌아 보고 가려했다. 막 나가려는 원효의 뒤통수에 대고 대안이 외쳤다.
"이보게, 원효 여기 마땅히 구제해야할 중생을 두고 어디 가서 별도의 중생을 구제한단 말인가?"
이 말이 원효에게 엄청난 충격을 준다. 대승불교는 중생 구제 사상이자 불이 공사상(不二 空思想)이다. 그런데 이곳은 천민동네다 이곳은 주막이다 이곳은 부정한 곳이다. 그러니까 아직 세속적으로 이 사람은 천민이다. 하는 것은 사실 도하고는 전혀 맞지 않는다. 이렇게 팔만대장경을 다 알아도 경계에 부딪혀서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 내가 경계에 부딪히니 제법이 공하다는 법을 다 깨달았는데 상에 사로잡히는구나!
그가 너무 충격을 받아서 돌아와서 자신을 보니 너무 한심했다. 그래서 그는 분황사 주지직을 버리고 변복을 하고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그는 변복을 하고 신분을 감추고 수백 명이 있는 절의 불목하니로 들어갔다. 불목하니는 천민.
부처님은 모든 계급을 다 타파했는데 신라 불교의 스님은 모두 귀족. 그래서 스님은 일을 안했다. 스님들은 정권과 친분을 맺고 정권은 노비를 절에 배치해서 스님은 일을 안했다. 우리가 아는 고승들도 다 그러해. 아무리 유명한 승려도 그 사회의 유지되는 신분제 사회를 벗어나지 못했다.
오늘로 생각하면 우리도 자본주의 사회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절도 월급을 주고 노동자를 고용해서 절을 유지한다. 먼 미래의 사회에서 보면 우리도 자본주의의 한계 속에 갇혀 있다. 부처님은 그런 신분제 사회에서 계급제도 바깥에서 있었다. 세상을 다 못 바꾸어도 적어도 자신의 승가에서는 남녀 신부의 차이를 부정하고 이것이 그 사회에 끼친 영향력이 컸다. 그래서 브라만 계급의 반감을 샀다. 요즘 말로 하면 사회 전복 세력이다.
붓다의 위대함은 다른 고승들과는 비교할 수 없다. 아무리 위대한 고승도 그 사회의 체제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데도 원효는 소위 노비의 신분이 되어서 그 스님들을 공양하는 노비의 신분이 되었다. 군대 가면 장교가 아니라 선임병이 무섭듯이 불목하니로 들어가니 먼저 들어간 불목하니의 강짜가 대단해.
원효는 보살행을 위해 들어가서 불목하니의 괴롭힘을 다 이기고 오히려 불쌍히 생각하고 그 모든 과보를 다 이겨내고 정진을 계속했다. 원효가 그곳에서 마당도 쓸고 밥도 하고 하는데 수백 명의 스님들이 공부를 하는데 처음 출가한 사람은 원효가 쓴 책을 공부하고 감동해서 원효에 대한 공경이 커지고 만나고 싶어 한다. 그런데 정작 원효를 보면 그를 구박하는 꼴이었다. 그들의 눈에는 원효가 보이지 않지만 원효의 눈에는 그들의 공부 수준이 보여.
어느 날 마루를 닦고 있는데 그 마루에서 선배 학승들이 모여 대승기신론을 가지고 토론을 하며 갑론을박을 하는데 원효대사가 보니 우습지도 않게 엉뚱한 소리를 하길래 자기도 모르게 끼어들어 그거 이런 뜻입니다. 하고 알려줬다. 스님들이 보니 노비가 끼어드니 스님이 난리가 나더라. 원효는 자기가 알아차려 사과하고 사정을 했다. 공부하다가 노비가 끼어들고 판이 깨져 아무리 의논해도 몰라서 그들은 스승을 보고 물어보니 스승이 원효가 쓴 대승기신론소를 주니 내용이 명확하고 의문이 명쾌하게 풀리더라.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까 불목하니가 한 말이 딱 이 이야기였다. 다시 생각해보니 평소에도 종 치고는 좀 특이한 사람 같아. 이거 내일 확인 해야겠다. 어쩌면 원효대사일지도 모르겠다. 라고 생각했다.
원효대사는 신분이 노출된 줄 짐작하고 야반도주를 하는데 여기 스님 중에 신체장애 있는 꼽추스님이 있는데 이분은 신체장애뿐만 아니라 밥 때 지나서 밥 달라 해서 불목하니들도 구박을 해. 원효 대사는 그 스님도 불쌍히 여겨서 그 스님을 극진히 보살펴 주었다. 밥도 따로 챙겨주고 .이 스님은 이름도 없어. 방울차고 다녀서 방울 스님이라 는 별명만 있었다.
원효가 밤에 다 자는데 문을 열고 조용히 나가는데 이 방울스님이 문을 열고 “원효 잘 가게” 그러더라. 이때 원효가 크게 깨쳤다. 원효는 방울 스님을 못 보았는데 방울 스님은 다 봤다. 원효의 일거수일투족을 보살행 한다고 하는 짓을 다 보고 있었다. 크게 깨쳤다. 대안대사의 말을 다 알았다고 생각 했는데 사실 잘못 알아.
원효는 깨끗함과 더러움이 둘이 아니라고 하면서 천민을 외면하고 어찌 구제 하냐 이렇게 알아들었는데 지금 깨달은 것은 더럽고 깨끗함이 없는 것도 마음 밖에서 찾았다. 대안 대사가 말한 것은 내가 여기 오면 안 되는데 하는 분별심을 일으키는 것이 중생이다. 지금 자기가 중생심을 일으키고 있다. 자신이 움켜진 중생심을 보지 않고 어떻게 마음을 일으키나? 지금 내가 일으키고 있는 중생심을 보지 않고 어디서 마음을 보는가?
원효가 방울 스님을 보고 불쌍한 중생을 잘 보살펴 주었는데 사실 방울 스님은 불쌍한 중생이 아니었다. 중생이 아닌 것을 중생으로 놓고 그런 중생을 누가 구제하나? 내가 구제한다. 이건 중요한 소식이다.그래서 그는 확연히 깨쳤다 생각하고 이제야 말로 완전한 자유를 얻었다. 그래서 그는 천민이 사는 부곡과 소로 거침없이 갈 수 있었다. 왜 그들을 구제하러? 아니 중생은 내 마음에 있는 거야. 그들을 구제하러 갔나? 아니 배우려고 겸손한 마음으로 배우려고 갔다.
그런데 또 난관에 부딪혔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과 친구가 되려고 갔는데 그들이 야 위대한 원효대사 오셨다. 하고 떠받들어 버렸다. 그들이 나를 떠받들어도 친구가 될 수 없어. 전에는 내 상이 문제였는데 이제 그들이 만든 상이 일체유심조가 아니야. 이것도 내 문제로 삼는다. 전에는 내 생각을 버려야 했는데 이젠 내 생각만 버려서는 안 돼. 원효는 이미 자유인이 되어서 문제를 꿰뚫어봤다.
저 ‘유명한 원효’가 문제야
그래서 나 유명한 원효 아니야 한다고 해결이 되나? 그럼 더 유명해져. 그래서 원효가 공개적으로 스캔들을 일으켜 버려 요석공주랑 술 먹고 놀아버려 이제까지 원효를 떠받들던 사람은 다 나쁜 사람이라 그랬다. 그래서 원효는 스스로 난 대사가 아니라 소승이라 그랬다. 본인은 소승거사라 해서 승려의 지위를 버렸다. 천하가 중이 그럴 수 있냐 그래서 천하의 밟힘을 당했다. 천민들이 봐도 원효가 불쌍해. 원효가 비로소 그들과 친구가 되어 뱀 잡는 아낙네 거지들과 노래하고 춤추고 바가지 뚜드리며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
원효가 평소 자기가 설법을 하면 다들 자는데, 광대가 노래하고 춤추면 다들 한 사람도 조는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 불경을 노래하며 춤추며 설했다. 이것이 무애무 무애가 걸림이 없는 노래, 걸림이 없는 춤이다.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 전해지는 불교, 백성하고 아무 상관없는 불교가 누구나 다 아는 불교가 되었다. 글자를 알던 모르던 나무아비타불만 알면 아는 불교가 되었다.
그래서 그는 원효라고 불릴 만한 성품이 없어졌다. 스님이 청소를 하고 농사를 짓는 게 아니고 청소부가 되고 농민이 된다. 불수자성 수연성(不守自性隨緣成), 원효라 할 수 있는 고정된 성품이 없어졌어. 이것이 바로 천백억 화신 그래서 원효대사가 얼마나 무애행(無碍行)을 했는지 우리나라 어디 가도 원효대사가 지었다 첨 지었다. 하는 발자취가 많아. 원효는 사라지고 원효 아닌 게 없어 온갖 군데 원효는 나타나고 원효는 없다.
뱀 잡는 땅꾼 친구가 어머니가 돌아가서 장례 치르자고 하여 둘이 땅에 묻으며 자네는 중노릇했으니 어머니를 위해 염불하나 해라했다. 원효 아주 짧게 '죽지 말지어다 다시 태어나는 것은 괴로움이다. 다시 태어나지 말지어다. 죽는 것은 괴로움이다' 했다. 그러자 땅꾼은 먹물아 더 짧게 해라해서 ‘생사고’ ‘사는 것도 죽는 것도 괴롭다’하자 땅꾼이 만족했다. 이것이 원효 한 토막.
말년에 원효는 유사에 한 번 더 드러났다. 궁중에 공주가 병이 들어 백약이 무효해 중국에 사신을 보내 약을 구하는데 바다가 갈라지며 용신이 나타나 경을 하나 주며 공주의 병은 업병이라 이경을 읽어주라 했는데 이것이 순서가 마구 섞여있는 지라. 순서는 대안대사에게 설법을 원효에게 하라 했다. 여러 스님들이 둘을 무시하고 자기 끼리 하려 했으나 순서를 맞추는 것도 하다 못해서 결국 대안대사를 찾았다. 대안대사가 순서를 맞추고 해동에 이걸 설할 사람은 원효밖에 없다 라고 했으나, 스님들은 다시 자기들끼리 하려하다 또 실패하고, 결국 왕의 명령으로 국가에서 원효를 찾았다.
상주지역에서 왕명으로 오라 해서 원효가 자유인이라 해도 당시엔 왕이 오라 하니 올 수 밖에, 또 사연이 사연 인지라 사람이 죽어가 다급해서, 원래 스님들은 수레를 타지 못하지만 소 수레를 타고 오면서, 소의 두 뿔에 비유를 들어가며 현상과 본질의 세계로 비유하며 다섯 권을 썼는데, 전날 누가 책을 없애버려 다시 여유를 달라하여 삼일 만에 다시 세권을 써서 백고좌 법회에서 설법을 했다.
이 법회는 국왕대신을 모아놓고 가장 유명한 백 명의 고승이 돌아가며 법회를 하는 것. 대안이나 원효는 백고좌 법회의 일원이 아니라 원효는 처음 하는데, 경이 너무 쉽고 재미있어 공주가 바로 병에서 나았다. 그래서 환호를 해서 원효가 한마디를 했다 한다.
옛날에 서까래 백 개를 구할 때는 내가 필요치 않더니 오늘 대들보 하나 구하니 나밖에 없구나. 스님들이 부끄러워 했다. 사실 이것은 뒷날 지어진 이야기 일거다. 원효는 이미 깨달았기에 이렇게 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이것이 원효의 삶.
● 가장 많은 저술을 남기고 해동에 태어난 붓다야.
● 자신의 계급을 뛰어넘었다. 불교 이천년 사에 가장 존경받는 자가 원효대사.
● 그는 국사도 아니고 그런 칭호도 못 받고 훗날 중국사람 들이 보고 원효의 글을 보고 “론”자를 부쳤다. 론은 원래 보살의 말씀에 부치는 것인데 원효는 보살이다. 그런데 중국에서 인정을 받았고, 고려의 대각국사 의천의 건의로 원효에게 임금이 “화쟁국사” 칭호를 내리고 분황사에 화쟁국사비를 건립했다.
■ 이것을 다른 관점에서 정리해보자.
● 사법계(事法界) : 부귀영화를 쫒는 삶.
● 이법계(理法界) : 현상 이면의 본질의 세계로 나만 보지 않고 그를 보는 순간 본질을 깨쳐 이법계로 들어갔다.
● 이사무애법계(理事無礙法界) : 진리의 세계에 빠져있다. 리사(理事)가 둘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러나 다시 거기를 넘어서서 현상속에 걸림이 없는 현상이 바로 진리임을 깨달았다.
● 사사무애법계(事事無碍法界): 현실의 세계, 진여의 세계, 세간과 출세간이 둘이 아님을 깨달았다. 세속의 세계가 바로 진여임을 깨쳤다.
원효는 세상 속에서 자유롭게 살았다.
사법계(事法界)는 더러움에 물드는 세계 욕하는 사람과 있으면 같이 욕하는 세계
두 번째(理法界) 세계는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 울타리 치고 노는 세계
세 번째(理事無礙法界)는 더러움 가운데서 물들지 않는 세계 진흙 속의 연꽃, 담배 피는 사람 속에서 담배 안 피고
네 번째 (事事無碍法界): 세계는 걸레가 되어 나를 더럽히며 살아 한 송이 연꽃을 피우는 진흙이 되어. 같이 도둑질 하다가 그들이 스스로 도둑질 그만하는 것이 사사무애 세계이다.
■ 다른 비유를 들면
● 사법계(事法界)는 바다에 놀러갔다 배가 뒤집어져 죽게 되거나 행복하려고 결혼했다가 아내 때문에 죽겠다. 그래서 남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사바세계이다.
● 이법계理法界) 배타고 바다 나아가면 풍랑에 휩쓸리니까,방파제 지어놓고 놀아 결혼도 안하고 돈도 벌지 않는 세계. 그런데 큰 눈으로 보면 사법계는 파도사이에 갇혀있고 이법계는 방파제에 갖혀 있는 세계이다.
● 이사무애법계(理事無礙法界)는 배를 크게 만들어서 바람이 풍랑이 불어도 놀고 있는 사람, 파도를 이용해 바람을 이용해 보트를 타고 살아. (큰 배는 원력) 이 세 가지 세계의 공통점을 물에 안 빠지는 것. 근데 여기는 안 빠지는 자유가 없이 사는 세계이다.
● 사사무애법계 (事事無碍法界)는 빠진 김에 진주조개를 잡는다. 가서 큰 배든 작은 배든 타고 놀다가 빠지면, 진주조개를 줍는다. 해녀가 조개 주우러 물에 들어가면 물에 빠졌나 안 빠졌나? 이것이 사사무애 법계 다. 세상 속에서 걸림이 없다. 그를 앎으로 일체유심조를 알았고, 토함으로 일체유심조를 행하는 것을 실패했으나 실패했음을 알아 깨친다.
마지막으로 중생을 구하는 대승보살이 중생 바깥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바깥에 있지 않다. 금강경에서도 일체 중생을 구제한다는 원력을 세우나 실상 한 중생도 구제 한바가 없다.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이 없으므로 분별심을 일으킴에 도가 있다. 분별심 낼 때 내는 줄 알아야. 가만히 산 속에 혼자 있으면 깨달을 기회가 없고, 세상 살면 깨달을 기회가 있어. 주위 사람이 귀신처럼 내 공부 되었는지 알고 잘 건드려 준다. 주위 사람 때문에 화가 나면 그때 내가 경계에 팔렸구나. 그때 딱 알아 차려. 그래서 악처를 만나면 성불한다. 1단계가 그대로 4단계임을 알면 바로 알아야 한다. 물에 빠진 김에 진주조개 줍고, 기왕 결혼한 김에, 이왕 배신당했을 때만, 깨칠 일이 있어!
여러분은 원효의 토함을 수백 번 겪으면서,왜 못 깨우치나. 해골이 없어서? 썩은 물이 없어서?
깨달음 이란 곳은 멀리 있는 게 아니다. 마음이 일어나는 곳마다, 거기에 있다. 그것을 알아차림에 따라, 해탈할 것인가 윤회할 것인가, 알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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