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관련

[2019년 5,6월호] 템플스테이로 유명한 해남 미황사 금강 스님 / 전현자

수선님 2022. 8. 28. 11:26

금강스님 (사진 by 권혁재)

플스테이로 유명한 해남 미황사

금강 스님

 

취재 | 전현자 (미주현대불교 한국주재기자)
 

기자: 스님! 인터뷰 매우 고맙습니다. 뵙고 인터뷰 하는 곳이 중앙승가대학입니다. 이곳에서 무엇을 가르치십니까?

 

스님: 승가대학은 스님들 대학입니다. 오래된 스님들의 대학이죠. 옛날 인도의 나라난타 대학처럼 스님들만을 위한 불교학 및 포교에 적용 할 수 있는 상담학 그리고 사회복지학등 여러 가지를 공부하는 대학입니다. 한국불교에 출가한 스님들이 4년 동안 기본교육과정을 공부하는데, 저는 3학년 스님들을 위해 ‘참선포교방법론’이라는 과목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오후에는 대학원 스님들을 위해 대승불교상담학을 강의합니다.

 

기자: 참선포교방법론을 가르치신다고 하시는데, 스님께서 참선수행을 하셨겠습니다?

스님: 네, 참선수행은 일상이지요. 1997년, 백양사에 서옹큰스님이라는 근대 최고의 선지식이 계셨는데요, 스님께서 저를 불러서 ‘참사람 운동’을 해야 되겠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어느 시대나 욕망이 있었지만 현대에 와서는 그 욕망에 과학이 접목되어지고 서양의 인간중심주의 철학이 함께하게 되면서 욕망이 극대화되어졌다. 그래서 환경은 무분별하게 파괴되고, 인류를 위협하는 핵무기까지 개발되었다. 이런 결과로 인류는 역사상 가장 위험한 세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런 욕망의 환경이 계속 가다가는 스스로 인류가 자멸하게 될 것이다. 자유로움과 평화로움과 행복함을 추구를 하는 것은 사람들의 가장 근본적인 속성이다. 그러나 이것을 밖으로 찾으니까 인류가 위기의 상황으로 치닫게 된 것이다. 이것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은 2600년 전에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이나 조사스님들의 가르침에서 찾을 수 있다. 자유로움과 평화로움과 행복함이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이미 우리 안에 그런 조건들이 다 갖추어져 있다. 무념(無念)한 마음은 번뇌와 망상이 없는 평화로운 마음이고, 무주(無住)한 마음은 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자유로운 마음인데 이것은 나, 내가 했다고 하는 행위에 대한 머무름이 없는 마음이다. 그리고 무상(無相)한 마음인데 이것은 고정된 생각이 없는 마음이다. 그래서 이 마음은 매 순간 살아있는 마음이며, 모든 순간순간에 행복을 가져다주는 마음이다. 이미 우리 안에 자유로움과 평화로움과 행복한 마음이 갖추어져 있는데, 그 마음을 찾아서 쓰지 아니하고, 밖으로 찾아서 이렇게 된 거다. 그래서 안으로 찾는 참사람 운동을 해야겠다. 그래야 인류가 바르게 회복할 수 있다. 그런 회복하는 방법은 한국의 전통적인 간화선, 참선 수행을 통해서 할 수 있다. 그래서 수행운동을 해야 한다.” 저에게 이런 숙제를 주셨죠!. 그때부터 백양사에서 서옹 대종사님을 모시고 3년동안 ‘참사람 수행 결사’라고 하는 참선수행포교를 시작 했지요. 그리고 또 1998년 IMF 외환외기 때에는 ‘IMF실직자를 위한 단기출가수련회’도 5개월 동안 진행 했습니다. 그러다가 2000년도부터 미황사 주지를 맡아서 살면서 여건조성을 한 후에 2005년도부터 7박 8일 동안의 참선수행, 한국불교의 간화선 전통 수행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지금까지 115회 했습니다.

금강스님

기자: 스님! 훌륭하십니다. 스님 가르침을 듣다 보니 두 가지 질문 드릴 게 떠올랐습니다. ‘무주한 마음이다’ 라는 것을 설명해주실 때에 ‘내가 한 바가 없다’ 라고 가르침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다들 뭔가를 하고 그걸 자기가 했다고 생각하는데 그 가르침이 훌륭하다고 할 수 있지만 보통의 사람들이 뭔가를 하고서, 지혜롭지 못해서 남을 해롭게 한다거나 할 때에 위험성이 있는 거 같습니다.
두 번째 질문은 ‘참나’하고 ‘무주’하고는 엇갈리는 것 같습니다. 참나가 있다는 것의 전제하에 또 내가 한 바가 없다고하는 것을 일반인들이 이해하기가 쉬울런지요?

 

스님: 무주(無住)는 머무는 마음이 없다고 하는 마음이거든요. 내가 한 바가 없다보다 이미 나의 행위는 누구에게 어떤 착한 일을 했으면 그 바로 하는 순간이거든요. 나중에 다시 내가 저 사람에게 도움을 줬어, 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바로 그 마음을 이야기 하는 겁니다.


기자: 그런 마음이군요. 그 마음은 아름다움이네요.

미황사 (사진 by 김성철)

스님: 숭산 스님께서 말씀하셨던 “오직 할 뿐”. 그런 마음이기도 하고 부처님이 [금강경]에서 설하신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 응당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이기도 하지요. 한 행위만 있을 뿐이고, 바로 그 때 완성된 것이지요. 그 다음에 내가 도와줬다, 내가 했다, 이렇게 머무르게 되면, 그 다음 반응에 대해서 자꾸 집착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상대방의 반응에 따라서 화가 나기도 하고, 후회하기도 하는 그런 감정이 일어나게 되지요. 내가 한 행위에 머물게 되면 갖가지 감정이 일어나요. 좋아하고 싫어하는 감정이 일어나게 되어서 그 감정으로 인해서 휩싸이게 되면 지혜를 잃게 되니까요. 머무르지 마라. 이런 것은 바로 모든 부처님들이 하신 말씀이고, 모든 깨달음을 이룬 선지식들이 하신 말씀이죠.


기자: 가르침 고맙습니다.
참나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그리고 초기불교에서는 ‘참나’라는 의미를 쓰지 않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스님: 그렇다고 알고 있습니다. 초기 불교도 그렇고, 대승불교도 마찬가지고 ‘참나’라고 표현을 하지는 않고요. 어떤 고정된 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연기적 관계 속에서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 본성, 성품, 성질은 한 순간도 머무름이 없는 거죠. 그 관계 속에서 있는 성품이라고 하는 것은. 본래의 나가 있다 그렇게 되면 고정된 나가 있다 이렇게 보니까 그래서 그렇게 바라보진 않습니다.


기자: 그리고, 참선이라셨는데, 그것에 대한 한 가지 질문만 더 드려보겠습니다. 참선수행법이 어렵다고 생각한 면들이 있는 것과, 명상으로 불리는 수행으로 참선 하는 사람들이 더 줄어들지 않았나 생각하게 됩니다. 스님께서는 참선을 어떻게 가르치시는지요?

스님: 참선하는 사람들이 줄어들었다는 말에는 동의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참선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다고 생각합니다. 참선은 그 동안 출가한 스님들 중심으로 참선을 해왔거든요. 그러다가 서양으로도 전달이 되고, 현대사회의 필요에 의해서 일반인들에게까지 선수행이 확대되었지요.
둘째로 명상과 참선은 어떻게 다른가 하는 것인데요. 명상은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방법이지요. 고요함을 통해서 자기를 살피는 그러한 방법이라고 한다면, 참선은 깨달음을 이루는 방법이고, 해탈을 이루는 방법이지요. 고에서의 해탈, 완전한 해탈이죠. 번뇌를 제거하는 방법이죠. 단순하게 물결을 가라앉힌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아예 가라앉아 있는 그 찌꺼기마저 완전 소멸한다고 할까요. 그런 방법이죠. 명상의 방법은 아주 중요하죠. 사람들의 대립으로 인한 갈등과 욕망으로 인한 갈애의 마음을, 명상을 통하여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마음으로 전환시켜주니까 굉장히 참선에 있어서는 아주 중요한 대목입니다. 자기 자신의 미세하게 일어나는 번뇌들과 ‘나’라고 하는 속에서 나타나는 생각과 감정들을 무아(無我)로 전환시켜주는 것이 참선이거든요. 그러기 때문에 그 깊이에 차이가 있죠. 일반인들은 명상으로도 훌륭한 그런 방법이겠지만, 불교에서는 완전한 깨달음, 번뇌를 완전히 없애는 깨달음의 수행을 해야합니다. 다시는 반복된 윤회가 없는 수행을 해야 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 중에도 여러 번 그런 가르침이 있습니다. 다시는 윤회하지 않는, 윤회에서 벗어나는 방법 그것이야말로 깨달음의 방법이다. 모든 고통을 끊고 모든 괴로움을 끊고 모든 번뇌를 끊고 다시는 태중에 들어가지 않는 그런 방법이 무의식을 투과하는 참선 수행이지요.

 

기자: 스님께서는 미황사 주지 스님을 오랫동안 해오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특히, 어린이, 청소년들을 절에 많이 오게 하는 것을 하셨다는데 그렇게 하신 동기와 어떤 방법을 쓰셨는지 매우 궁금합니다.

스님: 저는 어린이들 교육에 오래전부터 경험이 있었습니다.
1986년에 광주 원각사에서 초, 중, 고등학생들을 위한 법회를 맡아서 한 적이 있었고요. 1991년에는 3년 동안 서울의 능인선원에서 어린이 법회를 맡아서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 경험이 어린이들 교육에 많은 관심이 있었죠. 그리고 제가 또 친숙하게 잘 하는 것 중에 하나구요. 2000년에 미황사 주지를 맡게 되었어요. 마당이 아주 넓고 산은 굉장히 아름답고, 1270년이나 된 그런 역사적인 깊이가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이 넓은 마당에서 아이들이 뛰어 놀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했어요. 자연이 가득한 산속은 하루도 빠짐없이 끝없는 변화가 느껴지거든요. 이 봄에 새싹이 돋는가 하면 꽃이 피고, 열매가 맺고, 새들이 날아오르고요, 푸르름과 단풍, 낙엽, 그런 변화가 끝도 없이 이어지거든요. 이런 살아 있는 변화가 가득한 공간에서 아이들이 자연의 감각을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파트에서 잠자고, 콘크리트로 지어진 학교에 가고, 방과 후에는 학원에 가는 이런 메마른 반복적인 생활이 이어지는 도시 아이들의 모습을 안타깝게 보았던 때가 생각이 났지요. 그래서 방학 때 만큼이라도 산중에 초대를 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오래된 제자 한 사람이 결혼을 해서 아이들과 찾아왔습니다. 아이들은 초등학교 3,4학년 이었습니다. 방학때는 뭘 하는지 궁금해서 물었더니 지리산 청학동의 한문 서당에서 2년째 공부한다는 거예요. 아, 그래? 한문교육은 내가 잘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한문 교재와 시간표를 살펴보면서 스님들의 강원 공부 체계를 적용시켜 어린이 강원 형태인 한문학당을 만들면 좋은 프로그램이 되겠다는 생각했습니다. 그 해 여름방학부터 7박 8일 일정으로 시작했습니다. 미황사는 땅끝 마을이기 때문에 거리상으로 굉장히 멀고 알려지지 않은 절이었지요. 그래서 홈페이지를 만들어 접수를 받았습니다. 홈페이지는 먼 거리를 가깝게 했습니다. 그리고 신뢰도 주었지요. 전국에서 4,5,6학년을 대상으로 30명을 모집하였는데 70명 정도가 신청을 했습니다. 처음부터 경쟁률이 높았습니다. 심사해서 31명을 선발했습니다. 학생들 반응이 좋았습니다. 올 때는 부모님들의 설득으로 왔는데, 갈 때는 겨울에도 또 올 거라고 다짐을 하고 갔습니다. 겨울방학 기간에는 경험자를 대상으로 하는 재심자 과정을 했습니다. 지난 여름에 참석했던 학생들 31명 중에서 29명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오히려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오는 그런 한문 학당이 된 거에요. 그래서 계속하게 됐지요. 매년 여름 두 차례, 겨울한 차례. 올해가 20년 됐습니다.

 

기자: 대단하십니다.


스님: 인원도 이제 여름에 45명씩 두 차례 90명, 겨울에는 40명이 정원입니다. 시설도 좋아졌지요.

 

기자: 스님께서 직접 가르치시고요?


스님: 예전에는 직접 가르쳤는데 한문은 상좌에게 제자에게 가르치게 하고요. 생활 지도는 아직도 제가 하고 있습니다.

 

지역 포교의 대가 금강 스님


기자: 스님! 지역민들하고 소통 내지 공감, 활동을 많이 펼치셔서 땅끝 마을 먼 미황사가 서울에까지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혼밥이라는 용어가 공공연하게 사용되는 일상이 된 요즘 어떻게 하셨길래 지역민과 소통에 성공을 이루셨는지요?

 

스님: 인류가 지속되는 제일 중요한 부분이 함께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삶이지요. 서로 서로 의지해있는 삶이 가장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처님 경전을 보면서 인류의 모델이 될 만한 지혜와 자비가 가득한 승가 공동체를 만드는 노력에서 감동을 느꼈습니다. 저 또한 그런 공동체에 출가를 해서 지내왔습니다. 승가 공동체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공동체이고 가장 성공한 공동체입니다. 늘 인류의 마중물과도 같은 그런 공동체가 서로를 보완을 해주고 행복하게 해준다는 저의 이 생각에 변함이 없습니다. 미황사는 공간적으로 시골에 위치해 있지요. 그 장소에서 1200년 동안 내려온 곳입니다. 이 공동체가 계속 유지되어 내려오는 것은 거기에서 살아 온 스님들뿐만 아니고 그 주변에 살고 있는 농부들, 어부들과 같은 지역의 민중들이 공동체를 유지하게 만드는 주역이고, 미황사의 주인은 이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대 사회에 와서는 농촌 공동체도 많이 붕괴가 되었습니다. 고령화되고, 학교들도 폐교하거나 작은 학교로 전락하고, 장례도 시내의 장례식장에서 하고, 결혼식도 예식장에서 한지가 오래되었지요. 장터도 대형마트가 대신 하게 되었습니다. 한 지역에 살면서 사람들이 서로 서로 모일 수 있는 계기가 드물어진 것이지요. 안타까움이 있었습니다. 나무가 한 자리에서 60년, 70년 자라면 큰 거목이 되잖아요. 그런 것처럼 사람도 한 곳에서 60년, 70년 이렇게 사는 사람들은 큰 나무와 같다 생각합니다. 초라하게 늙어가는 어른들을 보면서 지역 사람들에게 공동체가 회복할 수 있는 역할을 생각한 것이지요. 설날이 되면 개인들은 절에 와서 1년을 기원하는 기도를 하고, 스님들은 마을에 내려가서 당제라고 하는 것을 지내주지요. 마을의 평안을 기도해주는 아름다운 전통이 매개체가 되지요. 그리고 부처님 오신 날 되면 ‘땅끝해남 어르신 노래자랑’을 해서 마을 어른들이 서로 만날 수 있도록 하지요. 같은 추억을 가진 장소가 절이거든요. 경로잔치처럼 공양도 대접하고, 마을 대표 한 분씩 노래경연도 합니다. 수시로 그런 행사들을 합니다. 절 아랫동네에 학생 수가 줄어들어서 5명 밖에 안 되는 작은학교가 있었습니다. 공동체 추억이 있는 곳이지요. 폐교 직전의 분교 살리기 운동을 하여서 지금은 60명의 학생들이 다니고, 본교로도 승격되었지요. 그런 것들이 지역의 공동체를 회복하는 일이 큰 의미의 사찰 공동체이고, 정신적 의지처로서 수행공동체 이지 않을까 생각한 것입니다. 그게 미황사가 이 시대에 할 일이고 또 제가 거기 사는 동안에는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을 하는 거죠.

 

기자: 생각이 있으시다 하더라도 해내시기는 쉽지 않으실텐데 어디서 그렇게 창의적인 생각들이 생기셨나요?

 

스님: 창의적인 것은 아니고 그곳에 사는 사람의 의무라는 생각이 들어요. 다른 분들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는 역할들을 하고 있지요. 제가 미황사에서 하는 일이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모델이 되어 도움이 된다면 좋지요. 그 옛날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사회변혁을 하기보다는 승가 공동체를 일구어 세계 곳곳에 나라마다의 승가를 이루듯이 저 또한 한 공간을 회복하는 것처럼 또 다른 그런 미황사가 수십 개, 수백 개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합니다.

기자: 미황사는 참 아름다운 절입니다. 스님께서 미주현대불교 독자분들께 미황사를 초대해 주시렵니까?

 

스님: 미황사는 2002년부터 일반인들에게 완전히 개방한 절이에요. 외국인이든 한국인이든 365일 언제든 찾아오면 절에서 일주일 동안 그냥 지낼 수가 있습니다. 한 번의 상담을 거치면 일주일 이상 머물 수도 있습니다. 현재는 1년에 외국인 500명이 템플스테이를 참가하고, 한국인은 약 4000명 정도가 산사 체험을 하고 갑니다.


기자: 네, 미황사를 찾는 모든 분들께 큰 도움이 되겠습니다.


기자: 스님은 누구십니까.


스님: 금강입니다.


달마산 미황사59061
전남 해남군 송지면 미황사 길164
전화 061-533-3521


인터뷰 장소: 중앙승가대학
일시: 2019년 4월 4일

 

 

 

 

 

 

 

 

 

 

 

[2019년 5,6월호] 템플스테이로 유명한 해남 미황사 금강 스님 / 전현자

수행과 포교하는 사부대중 금강스님 (사진 by 권혁재) 템플스테이로 유명한 해남 미황사금강 스님취재 | 전현자 (미주현대불교 한국주재기자)기자: 스님! 인터뷰 매우 고맙습니다. 뵙고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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