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전통예절원 강의>
삶과 죽음(2)
이글은 2021년 7월12일 경주전통예절원에서 강의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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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시작하며
2. 바보하인 이야기
3. 나는 누구인가?
4.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5. 죽은 뒤 저 세상은 있는 것인가?
6. 윤회전생에 관한 이야기 한 편(설악산 오세암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7. 윤회전생의 과학적 증명
8. 생사에 자유자재한 스님들
9. 어떻게 살 것인가?(장조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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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작하며
반갑습니다. 방금 원장님으로부터 소개받은 정석준입니다.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경주전통예절원의 강의는 지난해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인 것 같습니다. 원장님께서 저를 이렇게 저를 불러 주셔서 고맙기는 합니다만, 어떻게 하면 여러분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강의를 할까? 저윽히 걱정이 앞서기도 합니다.
저는우리들이 살아가면서 한 번 쯤은 반듯이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인생의 근원적인 문제 즉, ‘삶과 죽음’에 대해서 말씀을 드릴까 합니다.
저는 오늘 될 수 있는 한 옛날이야기를 많이 하려고 합니다. 저도 그동안 강의를 많이 들어보았지만, 나이 탓인지는 몰라도 듣고 나면 기억에 남는 것이 별로 없더라고요. 그런데 옛날 이야기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리고 제가하는 이야기 속에 제가 하고자하는 깊은 뜻이 담겨 있음을 잊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1. 바보하인 이야기
옛날 어떤 마을에 천석이나 하는 큰 부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 부자의 집에는 많은 하인이 있었는데, 그 하인들 가운데 바보하인이 하나 있었습니다. 어느 날 주인이 식전에 바보하인에게 “아침밥을 먹고 시장에 다녀와야 하니 그렇게 알아라.”하고 일렀습니다. 그 바보 하인은 힘이 장사인 까닭에 시장에 데리고 가서 무거운 짐을 가지고 올 심산이었습니다. 주인이 아침밥을 먹고 그 하인을 찾았으나 하인이 도통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집 안팎을 샅샅이 뒤져 보았으나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하인이 점심때가 훨씬 지나서야 빈 지게를 지고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주인이 그 하인에게 물었습니다.
“네가 어디를 갔기에 이제 나타나느냐?”
“아침밥을 먹고 시장을 다녀와야 한다기에 시장을 다녀왔습니다.”
“이 사람아 시장을 가면 무슨 일인가 물어보고 나와 같이 가야지 자네 혼자 갔다 오면 어떻게 한단 말이야.”
“어쩐지 시장을 다 돌아 다녀도 제가 시장에 무엇 때문에 왔는지 몰라서 그냥 왔습니다.”
하인의 대답을 들은 주인은 너무나 기가 막혔습니다. 마침 주위를 살펴보니 조그만 막대기가 하나 있었습니다. 주인은 그것을 집어서 하인에게 주며,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이것은 네가 바보라는 상으로 주는 것이니, 너보다 더 어리석은 바보를 만나거든 전해주고 만나지 못하거든 네가 죽을 때까지 보관하여라.”
바보 하인은 비록 바보였지만 그것이 자랑스러운 막대기가 아닌 줄 알고, 자기보다 더 못난 바보를 찾아보았지만, 그런 사람은 이 세상 어디에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자기 방에 그 막대기를 보관해 두었습니다.
그로부터 몇 해가 지난 어느 날, 주인 방에서 우는 소리가 들려 바보 하인이 들어가 보니, 주인 영감이 방 한가운데 누워서 신음하고 있고, 가족들이 주위에 앉아서 울고 있었습니다.
“왜 집안 식구들이 울고 있고, 주인마님은 앓고 계십니까?”
“내가 멀리 갈 것 같아 이러는 모양이다.”
“마님께서 멀리 가시다니요? 어디로 가십니까, 동쪽으로 가십니까, 서쪽으로 가십니까, 아니면 북쪽으로 가십니까, 남쪽으로 가십니까?”
“어느 곳으로 가는지도 모르고, 어느 쪽으로 가는지도 모른다.”
“무슨 일로 가십니까?”
“무슨 일로 가는지도 모른다.”
“가시는 길이 멉니까? 가깝습니까?”
“먼지 가까운지 그것도 모른다.”
“노자는 얼마나 듭니까?”
“그것도 모른다.”
이 말을 들은 바보는 재빨리 자기 방으로 가서(무엇을 가져왔을 까요?) 단장을 꺼내 주인마님에게 전하면서“이것은 나으리가 가지십시오.”
“이것이 무슨 막대기냐?”
“주인님이 바보상으로 저에게 주신 것이 아닙니까? 주인 마님께서 나보다 더 못난 바보에게 전하라고 하셨으나 아직까지 찾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보니 주인 나으리가 저만 못한 바보이기에 드리는 것입니다. 주인마님은 먼 길을 가신다고 하면서 가는 곳도 모르고, 가는 쪽(방향)도 모르고, 노자가 얼마나 드는 지도 모르고, 무슨 일로 가는지도 모른다 하시니, 저보다 주인마님이 더 바보가 아니십니까?”
이 이야기는 불교 『백유경』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부처님께서 바보하인 이야기를 통하여 우리에게 가르치시고자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이 이야기 속의 바보 하인이나 주인마님만이 바보이고, 나는 바보가 아니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나서 어떻게든 바보하인이나 주인 마님같은 바보는 면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 바보를 면하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누구인가를 알아야 하겠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를 알아보기 전에 왜 나를 알아야 하는지를 알아보는 것이 순서일 것 같습니다.
부처님의 일생을 전하는 불전(佛傳)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마가다국으로 법을 전하러 가시다가 도중에 울창한 숲으로 들어가 큰 나무 아래에서 좌선을 하고 계셨습니다. 바라나시 교외에 있는 그 숲에는 소풍객들이 즐겨 찾았는데, 그날도 상류층 젊은이 서른 명이 놀러 왔습니다. 모두들 아내와 함께 왔지만 한 남자는 미혼이라 기녀(妓女)를 데리고 왔는데, 그 여자가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모두들 놀이에 정신이 팔려 있을 때, 옷가지와 패물들을 훔쳐 도망을 쳐버린 것입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젊은이들은 기녀를 찾기 위해 숲속을 뒤졌고, 나무 그늘에서 좌선을 하고 계신 부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들 중 한사람이 부처님에게 물었습니다.
“부처님, 화장을 짙게 하고, 옷가지와 패물을 들고 가는 여자를 보지 못했습니까?” 지그시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부처님께서는 되물었습니다.
“왜 그 여인을 찾으시오?”
그들은 자초지종을 설명하면서 “그 여자를 꽃 찾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의 말을 들은 부처님께서는 조용하지만 단호한 어조로 물었습니다.
“그대들은 도망친 여자를 찾는 일과 자신을 찾는 일 중에 어느 것이 더 급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합니까?”
“그야 물론 도망간 여자를 찾기 보다는 나 자신을 찾는 일이 더 급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여기 앉아 나의 가르침을 들으시오.”
젊은이들이 자리에 앉자 부처님께서는 참된 자기를 찾는 법을 일러 주셨고, 부처님의 설법을 들은 스믈 아홉 명의 젊은이들은 그 자리에서 모두 출가하여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공자님의언행을 모은 『논어』 에도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제자 한 사람이 공자님께 “선생님! 요사이 저희 마을에서는 이상한 일이 하나가 생겨서 화제 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무엇이 그리도 이상하여 화제가 되고 있단 말이냐?”
“한 사람이 저희 마을에 살다가 이사를 갔는데, 이사 갈 때 자기 아내를 데리고 가는 것을 잊어버리고, 저만 혼자 가버렸데요. 이사 간다는 말만하고 주소도 가르쳐 주지 아니하여 그 아내가 찾아 갈 수가 없어서 울고만 있답니다. 그러니 그렇게 정신 빠진 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동네 사람들 가운데 화제 거리가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 그리 우습단 말이냐, 이 세상 사람은 대개 자기 처는커녕 자기 자신도 잊어버리고 있지 아니하냐. 그러면서 남이 아내를 잊어버리고 혼자 간 것이 뭐가 그리 우습단 말이냐?”라고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맹자님의 말씀 중에도 “사람들은 해가 저물면 집을 나간 개나 닭은 찾을 줄 알아도 자기의 마음을 찾을 줄은 모른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소크라테스라 철학자는 아테네의 길거리에서 “너 자신을 알아라.”라고 했다지만, 정작 알아야 할 것은 너 자신이 아니고 나 자신입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모르고, 어디로 가는지를 모른다면 설사 백년을 산다 해도 이는 마치 목동이 남의 소를 헤아리는 것과 같이 헛된 삶을 사는 것일 뿐입니다.
그럼 지금부터 무엇이 참 나인지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육신이 나 인줄 알고, 이름이 나 인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확하게 말한다면 이 육신은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며, 부모님의 지극한 사랑과 보살핌 속에 오늘의 내가 있게 된 것입니다.
만약 육신이 나라면, 눈 내, 귀 내, 코 내, 입 내, 몸 내라고 말해야 옳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눈 내, 귀 내, 코 내, 입 내, 몸 내라고 말하지 않고, 내 눈, 내 귀, 내 코, 내 입, 내 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육신이 참 나(眞我)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이름이 또한 나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름 또한 부모님이 지어 주신 것입니다. 만약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했다는 의적 홍길동을 그 아버지가 홍갑동이라고 지었으면 홍길동이가 홍갑동이가 되었을 것입니다.
또 국회의원, 시장, 군수, 서장 등 높은 자리에 있었던 사람 중에는 지위가 자기인줄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퇴직 후에도 자기를 의원님, 시장님, 군수님, 서장님이라고 안 불러 주면 인상을 찌그립니다. 간혹 동네 이장을 지낸 사람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아직도 꿈에서 깨어나지 못한 사람입니다. 직위란 잠시 내가 그 직을 맡아 있을 뿐 영원히 그것이 내 것이 아닙니다.
이름도 내가 아니고, 이 몸뚱이도 내가 아니고, 직위도 내가 아니라면 무엇이 참 나일까요?
중국 당나라 때 회양선사(南嶽懷讓: 677~744)란 분이 있었습니다. 일찍이 출가하여 참선수행을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도 자기가 누군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산 넘고 물 건너 수 백리를 걸어 그 당시 선지식으로 유명한 육조(六祖) 혜능대사를 찾아갔습니다. 혜능대사에게 정중히 큰 절을 올리자 대사가 물었습니다.
“어디서 왔는고?”
“숭산(崇山)에서 왔습니다.”
“어떤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그 한마디에 스님은 그만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어떤 물건이 분명 왔기는 왔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 뒤 대사의 문하에서 8년을 보내며참구한 끝에 ‘어떤 물건’이 무엇이지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대사를 찾아가서 말했습니다.
“설사 ‘한 물건’이라 해도 맞지 않습니다.(說似一物卽不中)”
제자의 말을 들은 대사는 회양이 한 소식(깨달음을 얻은 것)한 것을 알고, 인가(認可 :공부가 다 되었다, 깨달음을 얻었다는 증언)를 해 주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말한 한 물건을 서산대사는 『선가귀감(禪家龜鑑)』에서 “여기에 한 물건이 있으니 한없이 신령스러워서, 일찍이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았으며, 무엇이라고 이름 지을 수도 없도다.”라고 표현하였는데, 우리는 이것을 통상, 마음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마음은 눈․ 귀․ 코․ 혀․ 입․ 몸 등 다섯 가지 감각기관을 통하여 보기도 하고, 듣기도 하고, 냄새를 맡기도 하고, 맛을 보기도 하고, 감촉하기도 하지만 이 자리는 찾을 수가 없습니다. 찾을 수가 없는 것은 과거에도 없고, 미래에도 없고, 현재에도 없습니다. 과거나 미래나 현재에 없는 것은 삼세(三世)를 초월해 있습니다. 삼세를 초월한 것은 유(有)도 아니고 무(無)도 아닙니다. 유도 아니고 무도 아닌 것은 생기는 일이 없고, 생기는 일이 없는 것에는 사라지는 일도 없고, 가는 일도 없고 오는 일도 없으며, 죽는 일도 없고 태어나는 일도 없습니다.
이해하기가 좀 어렵지요? 우리 중생의 눈으로 볼 때 분명 생사(나고 죽음)가 있는데, 왜 생사가 없다는 것일까요?
부처님께서 왕궁을 버리고 출가하신 이유는 나고 죽는 문제(생사문제)를 해결하시고자 함이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석가모니 부처님은 한나라의 태자로 태어나신 분입니다. 그 분은 장차 훌륭한 제왕이 되기 위하여 학문과 무예를 열심히 익히 아무도 대적할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동대문을 나섰다가 늙은 사람을 보고, 남대문을 나서서는 병든 사람, 북대문을 나서서는 죽은 사람을 보고 '나고 늙고병들어 마침내 죽는 것이 인간이 처한 한계상황이라면 여기에 무슨 궁극적이 행복이 있을 것인가? 내가 이 문제(生死一大事問題)를해결하여야 겠다'라고 생각하시고 부왕 몰래 왕궁을 나와, 6년 이란 긴 세월 동안 각고의 수행 끝에 마침내 깨달음을 이루시고 이 문제(생사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시고 생노병사(生老病死)의 문제를 해결하셨다면, 부처님은 늙지 않아야 할 것이고, 병들지 않아야 할 것이며, 죽지 않아야 할 것인데, 부처님도 우리들과 다름없이 역시 늙으셨고 병고도 있었고 열반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시고 생사문제를 해결하셨다는 것은 본무생사(本無生死)의 도리 즉 이 육신에는 생사가 있으나 마음에는 생사가 없다는 이치를 깨달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문제는 조금 뒤 불교의 윤회설을 말씀 드릴 때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4.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사람은 태어나자 말자 달려가고 있는 곳이 있는데, 그곳이 어디인가요? 기실(其實)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은, 곧 늙어가고 죽어 간다는 의미입니다. 저를 비롯해서 이 자리에 모이신 분들은 이미 인생의 반환점을 돌아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인생의 종착역이 어디인가요? 그것은 제가 새삼스럽게 말할 필요도 없는 말이기에 하지 않겠습니다.
지난 가을 친구 몇 명과 함께 남산 등산을 갔다가 팔각정에서 10년 만에 한 동기생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 동기생이 대뜸 한다는 말이 “야, 니 와 이리 늙었노?”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속으로 내가 보니 니가 더 늙었구만?”하는 생각이 일순간 뇌리를 스쳐 지나갔습니다.(웃음)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늙어가는 것은 잘 모릅니다. 남은 늙어도 자기는 안 늙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친구의 모습에서 내 모습을 보아야 하는데, 친구는 늙어도 자기는 안 늙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착각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요즈음 100세 시대, 100세 시대 하니까 모두들 100세까지 사는 줄 알고 있는데, 80세까지 사는 것도 대단한 행운이요 축복인 것 같습니다. 한국인이 70세까지 생존할 확률은 86%, 75세까지 생존할 확률은 54%, 80세까지 생존할 확률은 30%, 85세까지 생존할 확률은 15%, 90세까지 생존할 확률은 생존할 확률은 5%라고 합니다. 즉, 90세가 되면 100명 중 95명은 다 저 세상으로 가고, 5명만 살아남는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99세까지 생존한 사람은 648명뿐이라고 하는데, 너나없이 100세까지 산다는 착각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남자의 평균 수명은 79세, 여자의 평균 수명은 85세라고 합니다. 여자가 남자보다 6년이나 오래 사는 것은 전문가들은 남자가 여자보다 사회생활이 길고 경쟁이 심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며 또한 여자가 남자보다 스트레스 대처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자의 경우 괴로우면 울기도 하고 남편에게 바가지도 긁고, 맘껏 감정을 표출해 스트레스를 풀지만 남자의 경우는 괴로워도 참는 경우가 많아 스트레스가 쌓이게 되고, 또 이를 해결하기 위해 흡연이나 과음을 하기 때문에 여자가 오래 산다는 것입니다.
오늘 보아하니 전통예절원 여자분 수강생들은 한 분도 남편에게 바가지를 긁는 분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바가지를 긁으면 여자들은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되지만 남자들은 성인군자가 아닌 한,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이때 스트레스를 해결하는 방법은 없을까요? 있습니다. 남자 분들만 들으세요.
부인하고 싸워서 이길 생각은 아예 마세요. 여자는 남자보다 좌우뇌 활성화가 남자보다 우월하여 말을 하면서도 다음 말을 생각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말로 해서는 절대 부인에게 못 당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길 자신이 없으면 자리를 피해 버리든지, 아니면 생각을 고쳐먹으라는 것입니다. 전 대한불교조계종 신도회장 박완일 법사의 말씀인즉, 아내가 바가지를 긁으면 “그래 니가 내 마누라구나? 내 마누라기에 내게 바가지를 긁지 누가 내게 바가지를 긁을까?” 이렇게 마음을 고쳐먹으면 아내의 바가지가 자장가처럼 들린다는 것입니다. 저도 이 말 따라 해 봤더니 자장가처럼은 안 들려도 조금은 약효가 있었습니다.(웃음)
이것은 웃자고 한 소리이고요, 젊었을 때는 세월이 더디게만 가더니 60고개를 넘어서니 세월이 왜 그리 빨리도 가는지요? 눈 뜨면 아침이고, 돌아서면 저녁이고, 월요일인가 하면 벌써 주말이고, 월초인가 하면 월말이 되어 있고, 새해를 맞이 한지가 엊그제 같은데, 금년 한 해도 이제 절반이 훌쩍 지나고 말았습니다. 세월이 빠른 건지 내 마음이 급한 건지…거울 속을 들여다보면 내가 아닌 왠 늙은이가 들어 앉아 있어 거울조차 보기가 싫어졌습니다. 일모도원(日暮途遠)이라,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먼데 미리 해놓은 것은 별로 없는 것이 저나 여러분이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습니다.
발명왕 에디슨이 “시간은 돈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지만 시간은 곧 생명입니다. 하루가 지났다는 것은 내 생명이 하루 단축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나이를 한 살 더 먹었다는 것은 내 생명이 일 년 단축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흐르는 시간은 멈추지 않습니다. 잠시 잠깐이 하루가 되고 한 달이 되고 일 년이 됩니다. 그러는 사이 해가 거듭되면 병들어 결국은 길기만 한 것 같은 인생은 끝나게 되는 것입니다.
젊은 날 서산대사의 「선가귀감」에 나오는 “꿈만 꿈이 아니라 인생이 한바탕 꿈이다.”라는 구절을 읽고, 꿈은 꿈이고, 인생은 인생이지 왜 인생을 꿈과 같다고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더니, 인생 70고개를 넘고 보니 이제 그 말이 조금은 이해가 되는 것 같습니다.
어느 철학자가 “이 세상에 확실한 두 가지가 있다. 그 하나는 현재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내가 현재 살아 있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도 부인할 수없는 사실입니다. 그러함에도 사람들은 나와 내 가족의 죽음은 쉽사리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회자정리(會者定離)요 생자필멸(生者必滅)’이라는 옛 말이 있듯이, 사람은 만나면 반드시 헤어지고, 나면 반드시 죽게 마련입니다. 이것은 만고불변(萬古不變)의 진리이며,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숙명입니다.
노인들에게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한결같이 “잠자듯이 죽는 것”이라고 대답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잠자듯이 편안하게 죽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늘그막에 암이나 뇌출혈로 쓸어 진다면 본인의 고통은 말할 것도 없고, 간병하는 가족들이 겪는 고통도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50대 중반 이후 종교를 찾는 경향이 부쩍 늘어난다고 하는데, 그 이유를 심리학자들은 마음의 평안 또는 사후에 대한 불안감 때문인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느 철학자가 “인간은 삶이 두려워 사회를 만들고, 죽음이 두려워 종교를 만들었다.”고 말했지만, 나이가 들수록 죽음이 불안으로 다가오는 것은 유한한 삶을 사는 인간의 한계인지도 모릅니다.
5.죽은 뒤의 저 세상은 있는 것인가?
육신의 죽음은 생(生)의 끝인가. 또 다른 생의 연속인가? 저 세상-천당과 지옥은 정말 있는 것인가? 윤회한다는 것이 사실인가? 죽은 사람은 말이 없으니 이 문제는 정말 난제(어려운 문제)요 수수께끼요 아포리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결국 형이상학적인 문제로써, 과거에는 철학과 종교에서 다루었으나 18세기 독일의 철학자인 칸트라는 사람이 사후의 문제는 논증할 수 없는 것이라 하여 철학에서 제외시켜 버림으로서 오늘날에는 종교의 영역에서만 이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내세가 있기는 뭐가 있어? 나쁜 일 하지 말고 착한 일 하라고 공연히 지어낸 이야기이지…”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많이 있는데, 하루살이가 어떻게 내일이 있음을 알겠으며, 가을 한철 사는 메뚜기가 어떻게 이듬해 봄이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까? 인간은 그 알량한 지식으로 죽으면 그만 이라고 속단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세계 4대 성인 가운데 공자님을 제외한 석가ㆍ예수ㆍ소크라테스를 비롯하여, 도교의 장자 같은 성인들은 한결같이 내세를 말하고 있는데, 문제는 내세에 대한 견해가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공자님은 살아 계실 때, 십대제자의 한 사람인 자로가 하루는 공자에게 “우리가 살다가 죽으면 어떻게 됩니까?”하고 물으니, 공자께서 대답하기를 “금생의 일도 다 모르는 데, 내생의 일을 어찌 알겠느냐.”라고 말했습니다. 공자는 죽음을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공자는 중병을 앓았을 때 기도해 보자는 자로의 청을 한마디로 거절했습니다. 공자에게는 이 현실 사회에 도(道)를 실현하면 될 뿐, 죽음이나 죽은 다음의 존속 여부같은 것은 처음부터 문제 밖이었습니다. 공자가 보인 관심은예에 맞게 죽고 묻히는 일이지영혼의 문제 같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것을 통해 볼 때 유교는 매우 현실적입니다. 과거나 미래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유교의 한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교에는 내세관이 없기 때문에 유교를 종교라고 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지금까지 늘 논란이 되어 왔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신을 섬기지 않고 젊은이들을 타락 시켰다는 이유로 사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흔히들 소크라테스가 죽을 때,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알고 있는데, 이는 일제가 조선인을 식민지 통치를 합리화하기 위해 지어낸 말이라고 합니다.
그럼 소크라테스가 죽을 때 무어라고 말 했느냐?, 플라톤이 지은 『수크라테스의 변론』을 보면, 그의 친구 클라톤이 소크라테스를 찾아가 해외 망명을 위한 모든 준비를 마쳐놓았으니 탈옥할 것을 권유하자 “부정의(不正義)를 부정의로 갚아서는 안된다.(정의롭지 못한 것을 정의롭지 못한 방법으로 갚아서는 안 된다)”고 말하면서 “자신이 이승에서 아테네 국법을 어겼다는 것을 하데스 국법(저승국법)이 알게 된다면 저승에서도 저승국법이 자신에게 호의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기꺼이 독배를 마셨다고 하며, 죽기 직전 제자들에게 “슬퍼하지 마말라. 나는 이제 육체의 감옥으로부터 벗어나 영원히 자유로워 질 것이다.”라고 말하며 운명 하였다고 합니다. 이로써 볼 때 소크라테스는 저승이 있다는 것을 확신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인간을 신의 피조물로 보았습니다. 영혼뿐만 아니라 육체까지도 하느님이 만들었다고 보았기 때문에, 사람이 죽어서 하늘나라에 갈 때에도 남자는 남자의 육체, 여자는 여자의 육체, 그리고 유아로서 죽은 사람은 성인의 육체를 가지고 하는나라에 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천당에 가기도 하고 지옥에 떨어지기도 하지만, 이때에 그렇게 가는 것은 영혼뿐만 아니라 육체도 따라서 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지옥에 떨어지지 않고 천당에 갈 수 있는가? 그 선결조건은 철저한 믿음, 무조건적인 믿음입니다.
그럼 기독교에서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그것은 기독교인들이 예배 때 마다 독송하고 있는 「주 기도문」에 잘 나타나 있는데, 하나님이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것을 믿어야 하고, 예수님이 구세주(救世主)임을 믿어야 하고, 성령이 동정녀 마리아에게 잉태하여 태어난 것을 믿어야 하고, 죽은 지 3일 만에 다시 부활하신 것과 하늘로 승천하신 것, 그리고 이 세상에 다시 심판하러 오시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것을 믿으면 기독교인이 되는 것이고, 이걸 믿지 못하면 기독교인이 못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믿으면 구원 받는다.”고들 말하지만, 구원의 문제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 가톨릭과 개신교의 입장이 사뭇 다르고, 개신교 내에서도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천주교)에서는 전통적으로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함께 선행을 실천해야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쳐 왔습니다. 그런데루터는 “인간은 선행에 의해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신앙)으로만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하였고, 칼뱅은 “인간의 구제 여부는 전지전능한 신의 자의에 의하여 미리 예정되어 있다."는 ‘예정설(豫定說)’을 내세웠습니다. 16세기 초, 교황의 면죄부 판매에 대한 반발을 계기로 벌어진 이 논쟁은, 가톨릭과 개신교가 갈라서게 된 종교전쟁의 불씨가 되었으며, 개신교 간에도 분열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칼뱅이 예정설을 내세운 이유는 하나님을 믿기만 하면, 무조건 천당에 간다면, 이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위를 주장하는 기독교의 교리와 모순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컨데 수능 350점을 받으면 서울대학교에서는 그 학생을 불합격시키고 싶어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을 믿기만 하면, 하나님도 어쩔 도리가 없이 그 사람을 천당에 보내 주어야 하는 자기모순에 빠지기 때문에, 칼뱅은 천당에 가고 못 가고는 오직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으며, 그것은 이미 예정되어 있다는 예정설을 내세웠던 것입니다.
우리나라 개신교의 80% 이상이 칼뱅신학 계통의 장로교파이며,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칼뱅은 예정설을 주장하였는데, 구원의 문제만큼은 ‘하나님을 믿기만 하면 천당간다’는 루터교파의 주장을 따르고 있는 것 같아(?) 이해가 잘 안됩니다.
부활, 전쟁과 평화, 안나 까레리나 등, 걸작을 많이 남긴 세계적 대문호 톨스토이는 한 때, 기독교에 심취하여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악마는 유혹하지만 신은 참고 견딘다」 등, 복음적인 내용의 문학작품을 많이 발표하였습니다. 그러나 만년에는 기독교 신앙에 회의를 느끼고 진리의 길을 찾아 집을 나섰다가 어느 시골 조그만 역사에서 객사하고 말았는데, 그가 마지막 숨을 거두며 남긴 말은 ‘나는 진리를 사랑한다…많이…’였다고 합니다. 이 말 속에 그가 얼마나 참된 진리를 갈구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가 남긴 명언중에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신을 믿는 사람이다. 그 다음 행복한 사람은 신이 있는 지 없는 지, 생각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다. 가장 불행한 사람은 신이 있는 지 없는 지 따지는 사람이다. 행복하게 살고 싶은 사람은 신을 믿으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톨스토이자신은더 이상 신을 믿지 않았다고 합니다.
도교는 노장사상(노자와 장자의 사상)이 근간이 되고 있는데, 장자는 그의 처가 죽자 토기대야를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문상을 간 혜자가 이를 보고 “한 평생 동고동락(同苦同樂)한 처가 죽었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하자, 장자는 “그렇지 않다.내 처가 죽은 것이 이것이 처음이라면 어찌 처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본디 근본을 생각하면 본래 죽음이란 없는 것이다. 그러하니 내 어찌 소동을 피우며 통곡하고 슬퍼하겠는가? 그런 짓은 사리를 분별치 못한 행위이니, 이 때문에 곡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장자의 사후관은 불교의 생사관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삶과 죽음을 불일불이(不一不異),같은 것도 아니고, 또한 다른 것도 아니며, 생사일여(生死一如), 삶이 있기 때문에 죽음이 있고, 죽음이 있기 때문에, 삶과 죽음은 하나라고 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마음과 육신은 같은 것은 아니지만 또한 다른 것도 아니며, 마음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 육신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육신에는 생노병사(生老病死)가 있기 때문에, 그 육신으로써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을 경우에 마음은 그 육신을 떠나는데, 이것이 죽음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예컨대, 우리가 집을 짓고 살다가 그 집이 허물어져 더 이상 살 수 없게 되었을 때, 새 집을 지어 이사를 가는 것처럼, 마음이 육신이라는 집에 살다가 그 육신이 더 이상 쓸모가 없게 되었을 때 그 육신을 떠나는 것이 죽음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떠나가는 마음은 육체로부터 해방되어 완전한 자유를 되찾아 그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육신이 생전에 지은 업(業)의 전부를 고스란히 지닌 채 자신의 업에 맞는 새로운 몸을 받는다고 합니다. 이것이 이른바 불교의 윤회설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법화경(法華經)』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욕지전생사(欲知前生事) 전생의 일을 알고자 하는가
금생수자시(今生受者是) 금생에 받은 것이 그것이다.
욕지래생사(欲知來生事) 내생의 일을 알고자 하는가
금생작자시(今生作者是) 금생에 짓는 그대로이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지, 콩 심은데 팥 나고 팥 심은데 콩 날리 없는 것처럼, 인과(因果)란 한 치의 어긋남이 없는 것입니다. 전생에 지은대로 금생에 그 과보를 받고, 금생에 지은대로 그 과보를 다음 생에 받고…이와 같이 전생을 거슬러 보아도 전생이 끝이 없고, 내생 또한 끝이 없는 것입니다. 이른 바 무시무종(無始無終)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를 탓할 것인가? 모두가 내 업보요 내 책임입니다.(10분간 휴식)
7. 윤회전생에 얽힌 이야기한 편(설악산 오세암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강원도 설악산에는 신흥사, 백담사, 오세암 등, 절이 많이 있는데, 오세암 대웅전에 조그만 현판이 하나 걸려 있다고 합니다. 혹시 오세암에 갔다 오신 분 있으세요? 저는 신흥사와 백담사는 갔다 왔는데, 오세암에는 가보지 못했습니다. 현판에 세긴 글은 다음과 같습니다. 물론 한문으로 쓰여진 것을 우리말로 풀이하여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발로 한번 걷어찬 것이 볼 귀 세대로 돌아왔고
떡한 개 준 것이 3년 양식으로 돌아왔네
이와 같은 사실이 명백할 진데
불자여 모름지기 인과를 한 치도 의심하지 말게나.
이 시가 쓰여진 내력은 다음과 같습니다. 조선시대 강원도 설악산은 인제군수의 관할이었습니다. 지금부터 한 400여 년 전, 인제군수가 새로 부임하여 초도순시 차 오세암을 찾았습니다. 마침 점심때가 되었는지라 주지 스님이 점심상을 차려왔는데, 워낙 가난한 절이라 달리 대접 할 것도 없고 하여 보리밥 한 그릇에 된장과 꼬치 몇 개를 내어 왔더니, 인제 군수가 벌컥 화를 내고 점심상을 뒤엎으며“이걸 나더러 먹으란 말이냐?”하면서 볼기를 3대 때리는 것이었습니다. 엉겁결에 볼기를 맞은 노승이 저만큼 나가 덜어지자 무슨 마음이 들었던지 손을 내밀어 일으켜 주며, 수행하고 있던 아전에게“앞으로 이 절(오세암)에 3년 먹을 양식을 대 주라.”고 분부하고는 훵하니 가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볼기를 맞은 노승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볼기를 때릴 때는 언제이거, 3년 먹을 양식을 주라는 것은 또 무슨 연유인가?
‘볼기3대 3년 양식, 볼기3대 3년 양식’
노승은 이것이 화두가 되었습니다. 이 문제를 가지고 몇날 며칠을 씨름 하던 어느 날, 노승의 눈앞에 전생이 훤히 보였습니다.
옛날 어느 마을에 백석이나 하는 시골부자 살았습니다. 섣달 그믐날 점심 때 쯤, 새해 차례에 올릴 떡을 빚어서, 하녀가 쟁반에 담아 주인마님에게 드리려고 가지고 오는데, 집에 기르던 개가 그 떡을 낚아채려고 뛰어오르니, 마루에 앉자있던 주인이 벌떡 일어나서 개의 목을 걷어찼습니다. 그러자 개가 ‘깨갱갱’하며 저만큼 나가 떨어졌습니다. 그러자 주인이 무슨 맘이 들었던지 떡 한 조각을 떼어서 개에게 던져주니 개는 덥석 그 떡을 받아먹었습니다.
그러니까 전생의 부자는 죽어서 노승이 되었고, 개는 죽어서 인제 군수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과가 한 치도 어김없이 명명백백한 것을 깨달은 노승은 후세 사람들을 깨우쳐주기 위해 글을 지어(발로 한번 걷어찬 것이 볼 귀 세대로 돌아왔고 떡한 개 준 것이 3년 양식으로 돌아왔네. 이와 같은 사실이 명백할 진데, 불자여 모름지기 인과를 한치도 의심하지 말게나) 법당에 달아 두었는데, 그것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10분 휴식)
6. 윤회전생의 과학적 증명
근대에 와서 과학문명만이 아니라 정신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영혼이 있다는 것이, 윤회가 있다는 것이 그리고 인과가 분명하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사람이죽으면윤회한다는 것이 오늘날에 와서과학적으로증명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첫째는 전생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전생을 기억하는 경우는 대개 두서너 살 되는 어린 아이들에게 나타나는데, 아이들이 말을 배우면서 전생의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곧 “나는 어느 곳에 살던 누구인데, 이러이러한 생활을 했다”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합니다. 그 말을 따라서 조사를 해보면 모두 사실과 맞다는 것입니다.
흔히 천재니 신동이니 생이지지(生而知之, 태어날 때부터 아는 것) 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태어난 뒤로 한 번도 글을 배운 일이 없는데 글자를 다 아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이런 것을 생이지지라고 합니다.
1993년(벌써 30여년이 지났네요), 4월16일 아침 8시 MBC TV에 부산에 사는 13살 된 정연득이란 아이가 출연하였는데, 일어로 물으면 일어로 대답하고, 영어로 물으면 영어로 대답하고, 중국어 러시아어 불란서어로 물으면 중국어 러시아어 불란서어로 대답하는 등, 5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였습니다. 아나운서가 “누구한테 배웠느냐?”고 물으니 “아무한테도 배운지 않았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자기는 한국에 태어나기 전에 일본에서 태어났는데, 1968년 일본에서 개최한 동경올림픽경기를 직접 참관하였다고 하며, 그때 상황을 이야기하는데, 사실과 똑 같았습니다. 그 장면을 텔레비전에서 내 눈으로 직접 보았는데, 그때 그걸 보신 분이 있는지 모르겠네요?
그때 TV에서 본 정연득군의 얼굴색은 마치 병자처럼 노랗게 보였고, 몸이 허약하여 초등학교 4학년까지 다니다가 중퇴하였다고 했는데(5개 국어를 하는데, 학교에 다닐 필요도 없겠지만), 작년 봄에 정연득이 TV에 또 한 번 출연 하였습니다. 정연득군은 이제 어엿한 40대 중반의 모습이었고, 몸이 뚱뚱한 사람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지금 대구에서 살고 있는데, 텔레비전에 나온 이후 기자들이 하도 찾아 와서 숨어 지냈다고 하며, 이제는 보통사람과 다름없는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또 몇 년 전 KBS 방송에 경북 안동에 사는 초등학교 1학년생인 여자아이가 출연하여 피아노를 치는데, 아나운서가 “피아노 누구한테 배웠어요?”하고 물으니 “그냥 쳐요."라고 답변하는 것이었습니다.
정연득 군이나, 안동에 사는 여자 아이는 배우지 않고 알고 있으니, 다 전생의 기억(전생에서 배운 것)을 그대로 가지고 온 것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달리 설명할 방법이 있으면 말해 보세요?.
이러한 전생기억에 대해 누구보다도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연구를 한 사람은 미국 버지니아 대학의 이안 스티븐슨 교수입니다. 이안 스티븐슨 교수는 전생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으면 직접 찾아가서 사실을 조사하고 확인하거나 다른 학자들을 보내어 조사토록 했는데, 1973년까지 2,000여건의 전생기억을 가진 사례를 조사하여 학계에 보고하고, 그중 대표적인 사례를 뽑아서 「윤회를 나타내는 20가지 사례」라는 책으로 출판하였는데, 어떤 사람이든 반대의견을 제시하기 어려운 책입니다.
두 번째, 차시환생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이 죽어서 다시 태어나는 것이 아니고, 내 몸뚱이는 아주 죽어 버리고, 남의 송장을 의지해서 다시 살아나는 경우입니다. 1916년 2월26일자 중국 신주일보에 보도된 기사입니다.
중국 산동성에 최천선이란 사람이 살았는데, 무식한 석공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서른 두 살 되든 해에 그만 병이 들어 죽었습니다. 죽은 뒤 3일 후에 장사를 지내려고 하는데, 관속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 부랴부랴 곽을 열고 보니 죽은 사람이 살아나 멀뚱멀뚱한 눈으로 쳐다보는 것입니다.
“우리 아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 “우리 아빠가 살았다.”, “아이구 여보.”하며, 그 부모, 자식, 부인들이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 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식구들을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무엇이라고 말을 하는데, 무슨 말인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죽었다가 깨어나더니 정신착란이 되어서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수일이 지났습니다. 그 동안에 기운을 차리고 건강이 많이 회복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식구들을 못 알아보고, 또 말을 하는데,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마침 주위에 붓과 벼루가 있는 것을 보더니 종위 위에 글을 쓰는데, 본시 최천선이라는 사람은 일자 무식꾼인데 글을 아주 잘 쓰는 것입니다. 그 글의 내용인 즉 ‘자기는 월남에 사는 유건중이라는 사람인데, 병이 들어서 치료하기 위해 어머니가 땀을 낸다고 두꺼운 이불을 씌워 땀을 내다가 그만 꼬박 잠이 들었는데, 깨어보니 여기 이렇게 와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월남에서도 우리나라와 같이 한자문화권으로, 말은 다르지만 한자를 쓰면 통합니다.
월남 사는 유건중의 육신은 죽어버리고 혼만 중국 산동성에 사는 최천선의 몸을 빌어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그가 기력을 완전히 회복한 후, 중국말을 조금씩 가르쳐서 어느 정도 할 수 있게 되었는데, 자꾸 전생에 살던 곳으로 갈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꾸 소문이 나서 중국 북경대학에서 데리고 가서 정신감정을 해 보았는데, 정신은 조금도 이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말한 월남에 유건중이라는 사람이 살다가 죽었는지 조회를 해보니 모두 다 사실이었습니다. 이런 일은 참으로 희귀한 일이라 하여 중국 정부에서 이 사람에게 죽을 때까지 연금을 주었습니다. 이것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건이 되었습니다.
세 번째 최면을 걸어 전생을 알아내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 분야에 유명한 사람은 영국의 케논 박사입니다. 몇 해 전 우리나라 텔레비전에서도 몇 년 전에 연예인을 대상으로 최면을 걸어 전생을 알아보는 프로를 방영한 일이 있었는데, 가령 마흔 살이 된 사람을 최면을 걸어서 열 살 때로 돌아가면 그때의 말이나 행동을 하며, 세 살 때로 돌아가면 세 살 먹은 어린 아이의 말과 행동을 합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기 50년 전에 어디 있었느냐고 최면을 걸면 성명이나 주소가 완전히 바뀌어 버리고 맙니다. 그것을 조사하여 사실과 맞춰보면 모두 일치하는 것입니다.
케논은 1,382명에 대한 전생사례를 수집하여 학계에 보고하고, 1952년에 「인간의 잠재력」이라는 책을 출판하였는데, 「케논 보고서」에 의하면 환자를 아무리 치료해도 병이 낫지 않아 최면을 걸어 전생회귀(前生回歸)를 해 보니, 그 병이 전생에서 넘어 온 것을 알고, 그 전생의 발병원인에 의거해서 치료하여, 병을 고친 사례가 많이 있습니다. 이것이 유명한 전생요법인데,이 전생요법은 요즘 세계적으로 크게 유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김영우라는 정신과 의사(의학박사)가 전생요법으로 정신병자를 많이 고치고 있다고 소문이 나 있습니다.
네 번째, 전생투시(前生透視, 불교에서 말하는 숙명통과 유사함)를 통하여 전생을 알아내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 분야에 유명한 사람은 미국의 에드가 케이시인데, 에드가 케이시는 사람을 딱보면-사진만 보아도-전생을 알아내는 사람이어서, 사람들은 그를 기적을 행하는 사람이라하여 ‘기적인’이라고 불렀습니다. 에드가 케이시는 2,500명의 전생을 조사하여 「초능력의 비밀」,, 「윤회의 비밀」 이란 책을 출판하였는데, 이 책은 세계 거의 모든 국가에서 번역되었을 정도로 유명한 책입니다.
그러면 죽은 뒤에 다음 생이 있고, 윤회를 한다고 할 때 어떤 법칙에 의해서 윤회를 하는가? 내가 내 마음대로 천당을 가고 지옥을 가고 남자가 되고 여자가 되는가? 「에드가 케이시의 보고서」에 의거해서 살펴보아도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것과 같이 내가 지은대로 받는다는 인과법칙(因果法則)의 적용을 받는다는 것이 판명되었습니다.
내가 아주 오래 전에 불교학생회 법회에서 윤회에 대한 이야기를 했더니, 한 학생이 일어나서 “방금 법사님께서는 윤회를 말씀을 하셨는데, 윤회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을 하였습니다. “왜 윤회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라고 물으니까, 그 학생이 “죽고 나면 끝이라고 하면 무엇이든지 내 마음대로 하겠는데, 내생이 있고 인과가 있다고 하니 겁이 납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윤회도 없고, 인과도 없으면 저도 좋겠습니다. 그러나 윤회가 있고, 인과가 있다니 어떻게 합니까? 이는 마치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해를, 서쪽에서 떠서 동쪽으로 지게 할 수 없는 것처럼, 그것은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8. 생사에 자유자재한 스님들
이와 같이 우리 중생들은 자기가 지은 업에 따라 끝없이 나고 죽고, 나고 죽는 생사윤회를 되풀이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견성성불(見性成佛)한 이에게 죽음은 생사의 속박에서 벗어난 해탈이요, 번뇌의 적멸이며, 법신(法身)의 탄생입니다.
근대 한국불교를 새롭게 일으킨 스님으로 방한암 스님의 경우를 보겠습니다. 그 스님이 나이 겨우 아홉 살에 시골 서당에서 『사략(史略)』을 읽고 있었습니다.
“태고(太古)에 천황씨(天皇氏)가 있었다.”
첫 대목을 읽던 소년은 훈장님을 향하여 물었습니다.
“태고에 천황씨가 있었다고 하였는데, 그러면 천황씨 이전에는 누가 있었습니까?”
당돌한 물음에 선생은 당황했습니다.
“그렇지, 천황씨 이전에는 반고씨가 있었지. ”소년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반고씨 이전에는 누가 있었습니까?” 스승은 답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유학의 어느 경전에도 그에 대한 해답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국조는 단군왕검이시죠? 그럼 단군 왕금을 낳은 분은 누구입니까? 일연스님이 쓴 『삼국유사』에 의하면 단군의 아버지가 환웅(桓雄)이며, 환웅의 아버지가 환인(桓因)인데, 아들〔환웅〕이 자주 천하에 뜻을 두고 인간세상을 욕심내는 것을 알고는 “널리 인간세상을 이롭게 하라(弘益人間)”고 하며, 천부인(天符印) 3개를 주어 태백산 신단수(神檀樹) 아래로 내려 보냈다고 합니다. 그럼 환인을 낳은 분은? 이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인간의 시조를 아담이라고 말합니다. 그럼 아담은 누가 만들었느냐? 의 의문이 생기는데, 『창세기』 2장 7절을 보면 ‘하나님이 흙으로 인류의 시조인 아담을 만들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또 하나의 문제 즉, 하나님은 누가 만들었냐?의 문제가 남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은 자존자(自存者) 즉 스스로 존재한 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20세기 최대의 석학자로 손꼽히는 버트란트 러셀은 「나는 왜 기독교이 아닌가?」 라는 주제의 강연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이 세상 만물들은 다 원인이 있으며, 이 원인의 고리를 더듬어 올라가면 마침내 제1원인에 도달한다. 이 제1원인을 하나님이라고 부른다.…모든 것에 원인이 있어야 한다고 하면, 하나님도 원인이 있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처럼 원인이 없이 어떤 것이 있을 수 있다면, 세계도 원인이 없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여, 서구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킨 바가 있습니다.
이야기가 좀 엇길로 나간 것 같습니다만, 한암스님은 어릴 때부터 우주와 인간의 근원에 대해서 이렇게 회의하였으며, 어떤 것이든 해답을 얻지 않고는 못 배기는 성미였습니다. 그는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22세 되든 해, 금강산에 있는 유점사에 찾아 들어가 머리를 깍고 스님이 되었습니다.
그 후 그는 한국불교의 중흥조라 일컬어지는 경허화상을 만나 가르침을 청하였는데, 화상은 금강경에 있는 한 구절을 일러 주었습니다.
범소유상(凡所有相)-무릇 형상이 있는 것은
개시허망(皆是虛妄)-다 허망한 것이니
약견 제상비상(若見 諸相非相)-만약 형상있는 것에서 형상없는 것을 알면
즉견여래(諸相非相 卽見如來)-곧 부처를 보리라.
한암은 이 구절을 듣자 안광이 홀연이 열리면서 한 눈에 우주전체가 환히 들여다 보였습니다. 아홉살 때 서당에서 처음 가진 회의(반고 이전에 누가 있었느냐?)는 비로소 아침 안개 걷히듯이 풀렸습니다. 이때 그의 나이 24세, 입산하여 3년째 되는 가을이었습니다.
도를 깨달은 한암스님은 바람따라 구름따라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인연 있는 스님과 중생들을 제도하다가 50세 되든 해, 오대산에 들어갔습니다. 그 후 27년 동안 그는 동구 밖에 나오지 않은 채 76세의 나이로 일생을 거기서 마쳤습니다. 그는 오대산에 처음 들어올 때 소지했던 단풍나무 지팡이를 중대(中臺) 적멸보궁(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곳을 적멸보궁이라 합니다) 뜰 앞에 꽂았습니다. 일영(日影, 해그림자)를 재어보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지팡이에서 잎사귀가 돋아 나와서 하나의 훌륭한 정자나무가 되었습니다. 지금 오대산 중대 앞에 서 있는 정자나무가 바로 스님의 지팡이였다고 합니다.
영주 부석사에는 의상대사가 꽂았다는 지팡이가 살아 있고, 순천 송광사에는 보조국사가 꽂았다는 지팡이가 살아 지금도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런데 신라 고승 의상의 지팡이와, 고려 보조국사의 지팡이와, 오대산 중대에 서 있는 지팡이나무는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오대산하면 방한암 스님, 방한암하면 오대산이라고 할 만큼 오대산과 방한암 사이에는 끊으래야 끊을 수 없는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오대산에 있는 사찰과 암자와 적멸보궁의 주변에는 한암의 면목을 전하여 주는 이야기가 많이 숨어있습니다.
1.4후퇴 때였습니다. 오대산 내의 모든 승려는 남쪽으로 피난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한암만은 시자 두명과 함께 상원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1.4후퇴 직전 월정사와 상원사를 포함한 오대산 내의 모든 사암과 민가들이 우리 국군의 작전상 소각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적군이 머무를 수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야밤에 대원들을 이끌고 찾아온 장교는 절을 소각한다고 알렸습니다. 한암은 기다리라고 이르고 방에 들어가 가사와 장삼으로 갈아입고 나와, 법당으로 들어가 불상 앞에 정좌하고 난 뒤 합장하며, 장교에게 “이제 불을 질러도 좋다.”고 말하였습니다.
장교는 놀라면서 “스님 이러시면 어떡합니까?"라고 말하자, 한암은 “나는 부처님의 제자요, 부처님은 이런 경우 이렇게 하라고 말씀하셨소. 당신은 어서 불을 지르시오."라며 조금도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았습니다. 그 장교는 한암의 인격과 거룩한 모습에 압도되고 감동 되어 한참을 생각하다가 결단을 내렸습니다. 그는 부하에게 명령하여 법당의 문짝만을 떼어내 마당에서 불사르게 하고는 그대로 돌아가 버린 것입니다. 이로 인해 상원사는 소실을 면했고 가장 오래된 동종인 국보 36호인 상원사 동종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1.4후퇴로 모두 피난을 떠난 지 두 달쯤 지난 1951년 3월 초, 한암은 가벼운 병에 걸렸습니다. 병이 난 지 7일이 되는 날 아침, 죽 한 그릇과 차 한 잔을 마시고는 손가락을 꼽으며 “오늘이 음력으로 2월 14일이지."라고 말한 후 사시(오전 10시) 에 이르러 가사와 장삼을 찾아서 입고 선상(禪床)에 단정히 앉아서 태연한 자세를 갖추고 입적하였습니다.
옛날부터 득도한 분들이 모두 생사에 자재(自在)함은 그 경지가 이미 생사를 초월했기 때문입니다. 3조 승찬대사는 법회를 마치고 방에서 쉬다가 떠날 때가 됐음을 알고 바깥으로 나서 뜰을 거닐다가 나뭇가지를 잡은 채 임종했습니다. 경통은 스스로 장작더미에 올라앉자 불을 붙이고 소신(燒身)공양을 했습니다. 당나라 등은봉 선사는 어느 날 제자에게 “내가 앉아서 돌아가신 스님은 많이 보았다. 서서 돌아가신 스님도 있더냐?”하고 물었습니다. 제자가 “서서 돌아가신 스님도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자 “그러면 거꾸로 서서 돌아가신 스님도 있더냐?”하고 되물었습니다. 제자가 “그런 스님은 아직 못 보았습니다.”하고 대답하자 “그르면 나는 거꾸로 서서 입적해야겠다.”라고 하면서 물구나무서기 한 채로 입적했습니다.
고려시대 대각국사 의천스님은 법상에 올라가 백문백답(제자들이 의심나는 것을 묻고 스님께서 대답을 하시고)을 마친 뒤 “나 그만 갈란다."고 하시며 열반하셨습니다. 20여년 전에 돌아가신 성철스님을 화장을 하니 사리가 130여과가 나왔을 뿐만 아니라, 화장하던 날, 한 밤중에 성철스님이 머무르고 계시던 백련암에는 오색 무지개가 나타나, 당시 여성동아 등 잡지에서 특집으로 보도한 바 있는데, 이러한 현상은 아직까지 괴학적으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몇 해 전에는 백양사 방장 서옹스님이 가부좌한 채 웃는 모습으로 열반에 든 모습이 메스콤을 통해 공개되어 세인들로 하여금 경탄을 자아내게 하였습니다.
죽음이 범인들에게 있어서는 가장 큰 공포와 괴로움이 되고 있으나 보조국사나 한안선사같이 생사를 초월한 경지에서는 아무런 거리낌이 되지 못합니다. 그들은 언제 어디서 죽음을 만나더라도 밤이 잠이 들듯 아주 태연하게 죽을 수 있습니다.
9. 어떻게 살 것인가?(장조류 이야기)
옛날에 장조류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장조류의 소꼽친구 중에 도인 스님이 있었는데, 그 스님이 선정 삼매에 들어보니 장조류의 명(命)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장조류를 찾아가서 권했습니다.
"여보게 친구, 자네도 이제 염불도 좀 하고 참선공부도 좀 하게."
"나도 그럴 생각이라네, 그런데 다음의 세 가지를 다 이루고 난 뒤 그렇게 하겠네."
"그 세 가지가 뭔가?"
"첫째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좀 더하여 돈을 벌이는 것이고, 둘째는 아들, 딸 시집 장가보내는 일이고, 셋째는 아들딸들이 잘 사는 것을 보는 일이라네."
오늘 여기 계시는 분들에게 누가 이런 권유를 해 온다면(인생 공부 좀 하라고 한다면), 아마 장조류와 별반 다름없는 대답을 할 것입니다.
장조류의 첫 번째 대답은 아직은 돈을 좀 더 벌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글의 내용으로 보아서는 장조류가 농사꾼인지, 장사꾼인지는 알 수가 없으나, 그 아직-돈을 더 벌어야 한다는 생각-은 죽을 때까지 놓지 못하고 있는 것은 장조류나 우리들이나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부모님들은 대게 입을 것 안 입고, 먹을 것 안 먹고 한 푼이라도 더 벌어서 자식들에게 물려주려고 애를 씁니다. 그런데 자식들은 이러한 부모님들의 마음을 알기나 할까요? 그리고 그렇게 알뜰살뜰 모아서 자식에게 물려준다고 한들 그 재산이 얼마나 오래 갈지도 의문입니다. “머니(돈), 머니해도 머니가 제일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 돈이라고 하는데, 왜 돈을 돈이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돌고 도는 것이 돈이라고 해서 돈이라고 한답니다.
저승에서 현대 정주영회장이 삼성의 이병철 회장을 만났는데, 정주영 회장이 이병철 회장에게 “형님 버스비가 없어서 그러니 1,300원만 빌려 주세요?”하더랍니다.(참고로 경주 시내버스 요금이 1,300원입니다) 그러니까 이병철 회장이 무엇이라고 대답 했겠습니까? 자네도 이승 올 때(죽은 뒤에는 저승이 이승이 되고 이승이 저승이 됩니다), 돈 한 푼 못 가지고 왔나? 나도 한 푼도 못 가지고 와서 무일푼이라네.”라고 하더랍니다.
옛말에 3대가는 부자가 없다는 말이 있는데, 재물이란 내가 잠시 보관하고 있을 뿐 영원히 내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저승 갈 때 한 푼도 가져 갈수 없는 것이 또한 재물입니다. 그래서 죽은 사람이 입는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지 않습니까?.
진정으로 자식에게 물려줄 재산은 돈이 아니라 자식들에게 올바른 생각, 올바른 인생관과 가치관을 심어주는 일일 것입니다. 즉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있게 지내고, 웃어른을 공경할 줄 알고,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따뜻한 마음씨를 심어주는 것이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 줄 참된 유산이 아닐까요?.
장조류의 두 번째 대답은,아들 딸 시집 장가는 보내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부모로써 당연한 의무이자 책무라고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식들도 반드시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을까요?
우리 때에는 결혼이란 무조건 해야 되는 것인 줄 알았지만, 요즈음 젊은이들은 결혼이란 필수조건이 아니라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사항이며, 좋은 사람(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하고, 없으면 혼자 살지 억지로는 결혼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찌할 것입니까? 자식도 품안에 자식이라고 했습니다. 다 큰 자식을 이래라 저래라 할 수도 없고, 또 해서도 안 됩니다.
장조류의 세 번째 대답은아들 딸 들이 결혼하여 잘 사는 것 보는 것이라고 했는데, 이것도 모든 부모님들의 공통된 바램 일 것입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결혼을 시켜놓아도 걱정이 태산입니다. 왜냐고요? 요즈음 걸핏하면 보띠리르 싸들고 친정으로 와서 결혼을 시켜 놓아도 의좋게 잘 살지 첫 손자 볼 때까지는 항상 걱정이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래저래 부모들은 자식들 일로 한시도 마음이 편할 날이 없습니다. ‘무자식 상팔자’란 옛말이 허튼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도인 스님은 친구인 장조류에게 아무리 권해도 소용이 없음을 알고 그냥 절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장조류가 사망했다는 부고장이 날아왔습니다. 스님은 문상을 가서 조문하기를,
나의 친구 장조류여! 내가 참선, 염불을 하라고 했지
그러니까 친구는 세가지를 다 이룬 뒤에 한다고 했지
염라대왕 그 양반 분수가 어지간히 없네.
세가지 일을 마치기도 전에 갈고리로 끌고 가다니.
스님의 조문은 염라대왕을 나무라는 듯이 지었지만, 세상일에 매달리다 보면, 인생 공부를 할 시간이 없고, 그러다 보면 어느 날 불시에 저승사자가 밀어 닥칩니다. 그리고 그때서야 후다닥 정신을 차리고 지나온 자신의 인생이 너무 잘못 투성이였고, 나쁜 일 투성이였고, 후회 투성이였음을 알고 다시는 나쁜 일 않겠다고 애걸복걸 해 보아도 저승사자가 직접 나에게 다가온 후에야 무슨 소용이 있을 것입니까?
내일은 기약이 없습니다. 내일 일은 아무도 모릅니다. 천년만년 살 것처럼 발부둥치며 살다 예고도 없이 부르면 모든 것 다 내려놓고 가야만 합니다.
오늘 못한 것은 내일 해야지, 내일 못하면 다음에 하면 되지, 기회는 무한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바쁘게 살다보니 부모와 자식의 도리, 인간 도리를 제대로 못했는데, 앞으로는 잘 해야겠다고 다짐도 하고, 앞만 보고 열심히 살다보니 삶을 즐기지 못해, 이제 친구들과 어울려 즐기고, 가보지 못한 곳 여행도 하면서 즐겁게 살려는데, 어느 날 갑자기 떠나야 할 운명이 오면 갈 수 박에 없습니다. 이제 살만 하니 떠난다고 아쉬워하는 것이 우리들의 인생입니다.
과거는 지나 버렸고 미래는 오지 않았습니다. 오직 존재하는 것은 오늘, 현재, 이 시간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을 천금(千金)같이 귀하게 여기고 알뜰살뜰 살아야 합니다. 장조류처럼 세상일에 너무 매달려 살지 말고, 가끔은 푸른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도 바라보고 물소리ㆍ솔바람 소리ㆍ새소리도 들어보고 인생 공부도 좀 해 가며, 유유자적(悠悠自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이 내 생애 마지막 날이라 생각하고, 하루하루의 삶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이상으로 저의 강의를 마치겠습니다. 끝까지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강의를 듣고 하나라도 여러분의 마음속에 새겨들을 것이 있었다면 그것으로 저는 보람으로 삼고자 합니다. 코로나가 다시금 기승을 부리고 있고, 장마가 끝나면 본격작인 무더워가 시작될 텐데, 아무쪼록 늘 건강에 유의하시고 나날이 좋은날 되시길 빕니다.
(2021.7.12.19:00~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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