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식

여섯 문(六門)이 모두 주인이구나 - 설정 스님

수선님 2022. 10. 9. 13:23

여섯 문(六門)이 모두 주인이구나

 

무심하여 자유로운데 누구와 함께하랴.

 

겨울 동안 정진들 하시느라 고생들 하였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결제와 해제를 통해서 연마(硏磨)를 거듭해 왔습니다.

물론 정진하여 득력(得力)을 하신 분들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못한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구경(究竟)을 성취(成就)하여

생사명근(生死命根)이 끊어질 때까지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무시겁(無始劫)으로 익혀온 탁습(濁習)이 정진할 때는 잦아드는 듯하다가도

조금만 방심(放心)하면 또다시 오욕(五慾)의 불꽃이 일어나

정진력(精進力)을 소멸시키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고 정진합시다.

자성(自性)이 드러나서 임운등등(任運騰騰)하고 등등임운(騰騰任運)하여 본래로부터 밝고,

본래로부터 당당하고, 본래로부터 지혜로워 만법(萬法)이 일여(一如)하고

원융무애(圓融無碍)한 그 자리에 도달할 때까지 정진합시다.

 

고인(古人)이 말하기를

금생미명심(今生未明心)하면 적수야난소(滴水也難消)

[금생에 마음을 밝히지 못하면 한 방울의 물도 소화하기 어렵다.]

라 했습니다. 참으로 무서운 말입니다.

 

절집에 살면서 애써 정진하지 않고 산다는 것은 삼보(三寶)의 은혜를 등지는 일이고,

시주의 소중한 염원을 저버리는 것이며, 중생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입니다.

 

중으로써 자신의 사명(使命)을 망각하는 것이요,

자신의 책임(責任)을 놔버리는 행위입니다.

지난날 만공선사(滿空禪師) 회상(會上)에 어떤 납자(納子)가 선사에게 물었습니다.

 

“불법(佛法)은 어디 있습니까?”

“네 눈앞에 있느니라.”

“눈앞에 있다면 저에게는 왜 보이지 않습니까?”

“너에게는 너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니라.”

“스님께서는 보셨습니까?”

“너만 있어도 안 보이는데 나까지 있다면 보이겠느냐.”

“나도 없고 스님도 없다면 볼 수 있습니까?”

 

이에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도 없고 너도 없는데 보려고 하는 자는 누구냐?”

 

참으로 좋은 법문입니다.

여기에서 척 한번 돌이킬 수 있다면 진리는 항상 눈앞에 있고,

불법은 코앞에 있어서 그것은 없는 곳이 없습니다.

마음의 눈이 열리면 문자 그대로 만목청산(滿目靑山)이요 수류화개(水流花開)의 유토피아입니다.

그러기에 경허선사(鏡虛禪師) 오도가(悟道歌)에

 

산색(山色)은 그대로 문수(文殊)의 눈이요,

흐르는 물소리 관음보살의 귀더라,

소치고 말 부리는 이들 보현보살이요,

농사짓고 장사하는 이들 그대로 비로자나 부처가 아닌가.

 

조사니, 부처니, 선(禪)이다, 교(敎)다, 하면서 특별히 분별할 게 무엇인가?

이름도 공(空)하고 상(相) 또한 공(空) 하여 비고 적멸한 곳에 항상 광명이어라.

솔바람 차가운데 사면(四面)이 청산(靑山)이요, 온 하늘 맑고 푸른데 가을 달 밝기만 하여라.

두두물물(頭頭物物)이 그대로 대용(大用)으로 나타나지 않음이 없다.

한량없는 부처와 조사(祖師)가 항상 나타나니

풀, 나무, 돌 그대로 화엄의 세계요 법화의 세계여라.

백천법문(百千法門)과 무량묘의(無量妙意)가 다 흡사 연꽃이 피는 듯하니

이제(二際)와 삼제(三際)를 어느 곳에서 찾을 것인가?

시방세계(十方世界)가 그대로 큰 광명(光明)이어라.

 

任運騰騰誰與同 임운등등수여동

歷劫分明若太虛 억겁분명약태허

刹刹塵塵出妙音 찰찰진진출묘음

六窓都是主人翁 육창도시주인옹

 

무심하여 자유로운데 누구와 함께하랴.

억겁토록 분명하기가 허공과 같구나

티끌 세상마다 묘한 소리 드러냄이여

육창이 모두 주인이구나.

 

[수덕사 방장 설정 스님] - 계사년 동안거 해제 법어

 

 

 

 

 

 

 

 

 

여섯 문(六門)이 모두 주인이구나. - 설정 스님 -

  여섯 문(六門)이 모두 주인이구나 무심하여 자유로운데 누구와 함께하랴. 겨울 동안 정진들 하시느라 고생들 하였습니다.우리는 그동안 결제와 해제를 통해서 연마(硏磨)를 거듭해 왔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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