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에서 본각(本覺)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의 한역은 진제(眞諦, Pramārtha, 499∼569)가 553년에 번역한 1권본과 실차난타(實叉難陀, 652∼710)가 695∼704년간에 번역한 2권본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금강경(金剛經)』·『원각경(圓覺經)』·『능엄경(楞嚴經)』 등과 함께 불교전문강원의 사교과(四敎科) 과목으로 예로부터 학습되어 왔던 논서(論書)이다.
저자 마명(馬鳴)은 생존연대가 불확실하고, 그의 다른 저술의 성격과 비교할 때 이 논은 현격한 차이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중국에서 만들어진 일종의 위작(僞作)이라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다.
이 논은 불교문학상으로 볼 때 최대 걸작 중 하나이며, 그 구성의 치밀성과 정확하고 간결한 문체, 독창적인 철학체계는 모든 불교학자들의 찬탄과 함께 뛰어난 명작으로 평가받아 우리나라에서도 일찍부터 그 연구가 활발하였다. 원전인 산스크리트 원본은 발견되지 않고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진제(眞諦)의 한역본이 널리 유통되고 있다.
여기서는 첨부파일과 같이 『대승기신론』에서 본각(本覺)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Ⅰ.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의 의미(意味)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Awakening of Mah āyāna Faith)』은 대승불교의 논서이다. 줄여서 『기신론(起信論)』이라고도 한다. “대승기신론”의 문자 그대로의 의미는 “대승(큰 수레) 또는 대승불교에 대한 믿음을 일으키는 또는 일으키기 위한 논서”이다.
대승기신론은 전통적으로 인도의 마명 보살(馬鳴菩薩, 아슈바고샤, Aśvaghoṣa: c. 100-160)➀이 기원후 2세기에 저술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현대의 많은 학자들이 저자와 성립 시기에 대해 전통적인 견해와는 의견을 달리하고 있다. 대승기신론은 산스크리트어 원본이나 티베트어 역본 없이 중국 양(梁)나라 진제(眞諦, Paramārtha: 499-569)②와 당(唐)나라 실차난타(實叉難陀, Śikṣānanda: 652-710)③의 2종의 한역본만 존재한다. 대승기신론이 인도에서 성립된 것인지에 대해서도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대승기신론은 크게 서분(序分)정종분(正宗分)유통분(流通分)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중에서 논의 본문인 정종분은 다시 인연분(因緣分)입의분(立義分)해석분(解釋分) 수행신심분(修行信心分)권수이익분(勸修利益分)의 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은 일심(一心One Mind)이문(二門Two Aspects)삼대(三大Three Greatnesses)사신(四信 · Four Faiths)④오행(五行Five Practices)으로 요약된다. 대승기신론은 이론과 실천 양면에 있어서 여러 교리사상을 받아들여 작은 책 속에 대승불교의 진수를 요약해 놓은 것으로서 높이 평가되고 있으며 중국한국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 불교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전체의 내용을 살펴보면 먼저 귀경술의(歸敬述意:삼보에 귀의하고 논을 쓴 뜻.)의 게송이 서두에 설해져 있고 본론에 해당되는 정립논체(正立論體)의 대목이 있으며 마지막에 총결회향(總結廻向)의 부분으로 전문이 구성되어 있다. 정립논체의 대목이 다시 논을 지은 이유를 밝힌 인연분(因緣分)과 논의 주제를 제시하는 입의분(立義分), 제시된 주제를 자세히 풀이하는 해석분(解釋分), 어떻게 믿는 마음을 내어 수행할 것인가를 밝힌 수행신심분(修行信心分), 그리고 수행을 권하고 그 이익을 말하는 권수이익분(勸修利益分)으로 나누어진다.
이 논이 함축하고 있는 내용은 매우 심오하면서도 포괄적이다. 불교사상의 양대 조류라 할 수 있는 중관사상(中觀思想)⑤과 유식사상(唯識思想)⑥이 포함되어 있고 여래장사상(如來藏思想)까지 조화되어 있다. 논이란 대개의 경우 특정 경전에 대한 논술이라는 일반적인 경향을 가지고 있지만 『기신론』의 경우는 어느 특정한 경전에 국한시켜 논해 놓은 내용이 아니고 대승의 요지를 두루 포괄적으로 논했다 할 수 있다. 물론 『능가경(楞伽經)』의 내용을 많이 인용하여 능가경의 별신서(別伸書)라는 말이 있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대승의 대의를 독특한 논리를 전개하여 종합적으로 논했다는 것이다. 일심을 의지하여 두 문을 열어 대승의 법(法)과 의(義)를 설명한 것이 『기신론』의 대의이다. 예로부터 이것을 의일심 개이문(依一心開二門)이라 하였다.
고래로 이 논에 대한 주석서(註釋書)가 많이 나와 중세까지 나온 것이 무려 190여 종에 달하고 있다. 중국과 우리나라 그리고 일본의 삼국에서 역대로 수많은 주소가(註疏家)들이 나왔는데 이 중 일본에서 나온 주석서가 150여 종에 달한다. 그러나 예로부터 가장 많이 읽혀온 주석서로 우리나라 신라 때 원효(元曉, 617∼686) 스님이 쓴 『기신론소(起信論疏, 일명 해동소(海東疏)』와 중국 당나라 때의 현수 법장(賢首法藏, 643∼712) 스님이 저술한 『기신론의기(起信論義記)』와 또 중국 수나라 때의 정영 혜원(淨影慧遠, 523∼592) 스님의 『기신론의소(起信論義疏)』가 있다. 이를 3대 소라 한다. 일본 학자들의 손에 의하여 영역(英譯)이 되어 서양에도 소개되었는데 스즈키 다이세쓰의 영역본과 요시토 하케다의 영역본 『The Awakening of Faith』가 있다.
『대승기신론』은 불교의 논장에 들어 있는 책이지만 인간의 마음을 설명하는 철학 내지 심리학이라 할 수 있는 책이다. 마음이 어떤 것인가, 그 정체를 『기신론』처럼 자세하게 설명해 놓은 책은 없다. ‘마음 없는 사람이 없다’는 경전 속에 나오는 구절처럼 마음을 가지고 인생을 살고 세상을 살면서도 마음을 모르는 것이 중생이라 한다. 기원 1세기를 전후하여 마음에 대하여 논리 정연하게 분석을 한 『기신론』의 내용을 보고 감탄한 서양 학자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수행의 요지를 간명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설해서 수행의 지침을 명쾌하게 밝혀놓았다.
Ⅱ.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에서 본각(本覺)이란
본각(本覺, origianal enlightenment)은 불교철학, 특히 대승불교철학과 원효철학의 궁극적 관심을 반영하는 개념이다. 본각에 대한 독법에는 두 가지 상이한 사유방식이 혼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 하나는, 본각이라 부르는 ‘불변의 참된 것/온전한 것’이 이미 인간 내면이나 존재의 이면에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사유방식으로서, 형이상학적 유형이다. 다른 하나는, 본각이라 부르는 ‘참됨/온전함’, 달리 말해 ‘온전한 경험지평’ 혹은 ‘궁극적 이로움을 누리는 경험지평’은, 아직 경험되지 않았으며 그래서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이제부터 확보하는 능력에 의해 비로소 경험하게 되고 또 존재하게 되는 것이라 보는 사유방식으로서, 경험주의적 유형이다.
‘불변의 참된 것/온전한 것’의 내면적/이면적 선재(先在)를 설정하는 형이상학적 사유방식과, ‘참됨 및 온전함’의 경험적/역동적 후현(後顯)을 주장하는 경험주의적 사유방식의 차이인 것이다. 형이상학적 사유방식으로 보면, 본각이라 할 ‘불변의 참된 것/온전한 것’은 언어와 분별망상에 가려 드러나지 않다가 언어를 초월하고 분별의 베일을 거두면 환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경험주의적 사유방식으로 보면, 존재나 삶의 ‘참됨/온전함’은 마음이나 내면에 이미 있지만 가려져 있던 것을 마치 보물 캐내듯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인지능력의 전의(轉依)적 향상을 통해 비로소 그 지평에 눈떠 경험으로 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참됨/온전함을 경험하기 위한 마음/인지 능력의 향상은, 언어와 사유의 퇴행적 폐기가 아니라 ‘언어와 사유’ 능력의 전진적 차원 향상에 의해 이루어진다.
여기서는 본각(本覺)에서 불각(不覺)과 시각(始覺)이 있으니 이 세 가지의 상호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본래 깨어있음[본각(本覺)]은 애초 괴로움이 없음을 말하고, 깨어있지 못함[불각(不覺)]은 꿈속에서 헤매는 괴로움의 대명사이며, 깨어나기 시작함[시각(始覺)]은 괴로움을 제거해 가면서 깨어 가는 마음을 말한다.
그런데 본래 깨어있다면[본각(本覺)] 깨어 있지 못한 불각(不覺)이 있을 수 없으며 불각(不覺)에서 깨어나기 시작하는 시각(始覺) 또한 필요 없을 것이다. 역설적으로 고통[불각(不覺)]이라는 현실에 본각이 있음을 증명해 준다. 깨어있지 못하기 때문에 육체적 고통 정신적 괴로움을 느끼는 것이고 관(觀)해 보면 고(苦)란 고정되어 있지 않고 변하여 주체가 없는 것임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자각이 바로 고(苦)에서 벗어나 마음이 깨어나기 시작하는 시각(始覺)이다. 주체가 없는 고(苦)와 번뇌란 본래 존재하지 않음을 깨닫기 시작하면 이는 본래 깨어있음과 다르지 않다.
본각에 의지한 시각과 불각의 삼자 관계는 세 가지 의미를 가진다. 첫째는 현실의 괴로움 때문에 삼자가 각기 다른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이다. 둘째, 서로 의지하는 연기(緣起)의 모습이지만 그 개체는 자성이 없어 공(空)하기에 본각을 의지한 불각의 괴로움이 발생하는 한편 괴로움이 소멸하는 시각(始覺)의 길을 보여준다.
셋째, 삼자관계가 자성이 없는 공(空)이므로 평등일성(平等一性)이며 이 평등일성을 깨치고 보면 본래 무각(無覺)이요 닦아 도달해 보면 무수(無修)요 증득하고 보면 무증(無證)임을 말한다. 본각에는 두 가지 뜻이 있으니 하나는 깨달음이 번뇌에 가려있기 때문에 본각이라고 했고, 다른 하나는 불각(不覺)과 시각(始覺)에 상대하여 세운 말이다. 이것은 괴로움을 전제로 한 것이기에 처음부터 본각, 시각, 불각이라 하여 세울 것 없는 무차별의 차별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삼자의 관계는 중생이 괴로움을 일으킴과 괴로움에서 벗어나 대자유인이 될 수 있는 희망을 주는 근본원리를 보여주고 있다.
마음의 근원을 깨달았기 때문에 구경각(究竟覺)이라고 말한 것은 마음의 근원을 가리고 있는 무명불각(無明不覺)을 깨트려 가는 것이 시각(始覺)이 도달하는 최종단계임을 말한다. 따라서 여기서부터는 시각의 4단계를 기술하여 중생이 온갓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과정을 보여준다.
마음에는 네 가지 층이 있다. 시각・청각・미각・후각・촉각 등 감각과 의식(意識)과 말나식(末那識;자아의식)⑦과 비롯함이 없는 때로부터 보고 듣는 등 모든 경험을 유실하지 않고 함장하여 나타내는 아리야식(阿梨耶識)⑧이 있다. 이것을 정념(正念)으로 차례로 관(觀)하여 심층으로 들어가면 망념(妄念)은 生・住・異・滅의 네 가지 모습[사상(四相)]⑨을 보이고 있으며 거친 번뇌[망념(妄念)]에서 점차 미세한 번뇌[망념(妄念)]에 이르러 최종 무념(無念)의 구경각을 이루는 것이다.
깨달아가는 과정[시각(始覺)]을 긴 꿈에서 깨어나는 과정으로 비유할 수 있다. 원효스님의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과 『대승육정참회(大乘六情懺悔)』에서는 망념의 네 가지 모습[생주이멸(生住異滅)]을 꿈속의 생각[망념(妄念):몽념(夢念)]으로 비유한다. 그래서 망념의 사상(四相)을 차례로 깨쳐 소멸해 나가는 과정을 꿈을 꾸다가 꿈에서 깨어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와 같이 인생이라는 긴 꿈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몽관(夢觀)이라 하고, 괴로움의 꿈에서 깨어나는 네 단계인 범부각(凡夫覺)⑩・상사각(相似覺)⑪・수분각(隨分覺)⑫・구경각(究竟覺)⑬은 마음이 처음으로 꿈에서 깨어나기 시작하는 시각(始覺)에 비유하고 있다.
원효(元曉)는 그의 『금강삼매경론』에서 본각(本覺)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모든 중생[유정(有情)]은 오랜 과거로부터 무명(無明)의 긴 밤에 들어가 망상의 큰 꿈을 꾸니, 보살이 관법(觀法)을 수행하여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성취할 때 중생이 본래 적정(寂靜)하여 오직 본각일 뿐이라는 것을 통찰하여 평등한 진여의 침상에 누워 이 본각의 이익으로써 중생을 이롭게 한다.
무생법인을 증득한 보살은 본각의 이익으로써 중생의 허망한 분별식을 전변시켜 암마라식(唵摩羅識, amala-vijnana)에 들어가게 한다. 암마라는 무구식(無垢識), 혹은 청정식(淸淨識)으로서 아리야식의 미혹을 떠나 본래 청정한 자리를 회복한 의식이다. 그러므로 이 식은 바뀌거나 변하지 않고 언제나 여여(如如)한 본각(本覺)에 다름 아니다. 본각에 들어갈 때 팔식이 본래 적멸함을 깨닫고, 깨달음이 완전해졌으므로 모든 분별의식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 주석(註釋)
➀ 마명 보살(馬鳴菩薩, 아슈바고샤, Aśvaghoṣa: c.100-160) : (요약) 고대 인도의 불교 시인. 초기 대승불교 학자로, 불교를 소재로 한 산스크리트의 미문체 문학을 창작하여 인도 문학사상 불후의 업적을 남겼다. 대표작으로 『불소행찬(佛所行讚)』, 『손타리난타시(孫陀利難陀詩)』 등이 있다.
인도의 학승으로 산스크리트어 범명(梵名)은 아슈바고샤(Aśvaghoṣa)이다. 쿠샨 왕조 제3대 카니시카제(帝)와 같은 시대의 사람으로 북인도의 바라문 가문 출신이다. 아슈바고샤라는 말의 뜻을 번역하여 한역 경전에서는 마명(馬鳴)으로 불린다. 『불소행찬(佛所行讚)』과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의 저자로 유명하다.
그러나 근대에 들어, 전통적으로 알려져 온 것과는 달리, 『대승기신론』은 인도에서 찬술된 문헌이 아닌 중국에서 찬술된 위경일 것이라는 주장이 불교학자들에 의해 제기되면서 마명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많은 논란이 발생하였다. 논란의 핵심은 『대승기신론』은 전통적으로 알려져 온 것과는 달리 이 인도의 마명(馬鳴, Asvaghosa)보살이 아닌, 중국에서 활동한 인도의 역경승이나 중국인에 의해 처음부터 중국어로 씌어진 저술이라는 것이다.
『대승기신론』은 동북아 불교에서 아주 중요한 문헌이므로 이러한 위찬(僞撰)의 논쟁은 끊이지 않고 있다. 전통적 기록에 의하면 그는 코살라(kosala) 혹은 마가다(magada)국 태생으로서 정통바라문 출신이었으나 불교 승려인 부나야사(富那夜奢, Punyayasas), 혹은 협존자(脇尊者, Parsva)와의 대론에서 패배하여 그의 제자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후에 카니시카왕에 의해 간다라에 가서 그의 위호 아래 불법을 크게 선양하였다고 한다. 『불소행찬(佛所行讚, Buddhacarita)』은 석가모니의 행적을 기술한 책으로 붓다의 출생부터 입적 후 사리를 여러 국가로 나누는 부분까지를 내용에 담고 있다. 붓다의 생애와 가르침을 알수있는 중요한 문헌으로 한역본 뿐만 아니라 산스크리트어 원전도 일부 존재한다.
② 진제(眞諦, Pramārtha, 499∼569) : (요약) 인도의 불교학자로 경전 한역에 힘을 기울여 『섭대승론(攝大乘論)』등 30본의 역본이 현존한다. 그의 계통에서 섭론종(攝論宗)이 생겼다.
산스크리트어로 파라마르타(Paramārtha)의 한역(漢譯)명이다. 인도 우자인의 바라문 출생. 주로 중기 대승불교의 유식사상(唯識思想)을 배우고, 546년 중국 양(梁)나라 무제(武帝)의 초청으로 많은 경전을 가지고 바닷길로 남방을 경유하여 난징[남경(南京)]으로 갔다. 때마침 국난을 만나 양나라가 멸망하였으므로, 중국 각지를 전전하며 귀국을 꾀하였으나 폭풍우를 만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남해(南海)에서 죽었다. 그는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홀로 경전 한역에 노력하여 그 역본이 대소 70부에 이르렀다 하나, 현존하는 것은 30부뿐이다.
특히 유식 계통의 것을 정확하게 번역하여 『섭대승론(攝大乘論)』 『금광명경(金光明經)』 『구사론(俱舍論)』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등이 있는데, 오늘날 불교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그의 계통에서 섭론종(攝論宗)이 생겼는데, 후에 현장(玄奘)에게 비판을 받고 그 법상종(法相宗)으로 이어졌지만, 오늘날에는 현장의 것보다 오랜 설을 전하는 것이라 하여 존중되고 있다.
③ 실차난타(實叉難陀, Śiksānanda, 652∼710) : (요약) 당나라때의 승려로 『신역(新譯)화엄경』 『대승입능가경(大乘入楞伽經)』등을 한역하였다.
산스크리트명 Śiksānanda(시크샤난다)의 음역(音譯). 우전(于闐) 출생. 695년 『화엄경(華嚴經)』의 산스크리트본을 뤄양[낙양(洛陽)]으로 가져다가 보리류지(普提流志), 인도 여행을 한 의정(義淨) 등과 함께 『신역(新譯)화엄경』(80권)을 완역하고, 그 밖에 『대승입능가경(大乘入楞伽經)』 『문수수기경(文殊授記經)』 등 19부도 한역하였다. 704년에 일단 귀국했었으나, 화엄종의 대성자(大成者) 법장(法藏) 및 의정 등과 친교가 두터워, 708년 다시 중국으로 왔다. 그가 번역한 『화엄경』에는 측천무후(則天武后)가 서문을 썼다.
④ 사신(四信) :
근본에 대한 믿음은 진여가 믿음의 바탕이자 모든 행의 근원임을 믿는 것이고, 삼보[부처, 법, 승가]에 대한 믿음은 진여의 내인(內因)과 삼보의 외연(外緣)을 더함으로써 수행의 인과 연을 원만하게 하는 것이다.
첫째는 근본을 믿는 것이니, 소위 진여법을 즐겨 생각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부처에게 한량없는 공덕이 있다고 믿어서 항상 부처를 가까이하고 공양하고 공경하여 선근을 일으켜 일체지(一切智)를 구하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법에 큰 이익이 있음을 믿어서, 항상 모든 바라밀을 수행할 것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네 번째는 사문이 바르게 수행하여 자리(自利)·이타(利他)할 것을 믿어서 항상 모든 보살들을 즐겨 친근히 하여 여실한 수행을 배우려고 하기 때문이다.
⑤ 중관사상(中觀思想) : (요약) 중관학파는 용수(150경~250경)로부터 시작되었다. 용수는 불교의 핵심을 모든 존재는 타자와 관계를 맺으며 존재한다는 연기로 파악했으며 그렇기 때문에 ‘공’이라고 설파했다. '공한 존재는 고정불변한 실체가 없고, 모든 언어는 고정적인 대상을 가지므로 공한 세계는 언어적인 개념으로 표현할 수 없다. 다만 필요에 의해 그런 이름으로 부르고 있을 따름이다'라며 비판했다. 용수의 이러한 비판방식을 귀류법이라 하는데, 이는 어떤 이론의 전제조건을 이루는 논리를 그 논리의 힘으로 무너뜨려 해당 이론을 내부적으로 파괴하는 방법이다. 중관철학은 중국에서 삼론종의 성립을 가져왔다. 고구려 승려인 승랑의 학설을 이어받아 삼론종을 확립한 길장(549~623)은 중관철학의 성격을 '잘못된 것을 타파하여 올바른 것을 드러내는 것'으로 규정했다.
용수(籠樹 Nāgār-juna, 150경~250경)의 을 소의론전으로 삼아 공(空)사상을 강조한 학파로 유가행파(瑜伽行派)와 함께 인도 대승불교철학의 양대산맥을 이룬다. 중관학파의 사상을 용수의 을 통해 간단히 살펴보자. 세계의 모든 존재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성(自性)이 없기 때문에 공한 것이다. 그러나 공은 결코 무(無)가 아니며 다만 자성이 없이 조건적으로 생기(生起)하고 있는 현상 세계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 것일 뿐이다. 따라서 공이란 비유비무(非有非無)이며 중도인 것이다. 이것은 모든 존재가 연기로 이루어졌으며 그것이 서로 조건적이며 상대적이기 때문에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자성을 결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존재가 이와 같이 자성을 결여했으면서도 이름을 가지고 존재하고 있는 것을 진공묘유(眞空妙有)라고 한다.
현실 세계의 사람들은 모든 것이 연기로 존재함을 알지 못하고 현상적 차별 세계를 절대적으로 실재하는 것으로 오인하여 유(有). 무(貿)의 견해에 빠지게 된다. 용수는 이러한 잘못된 견해를 타파하여 실재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나타내려고 한 것이다. 용수에 의하면 우리 중생이 세계의 실제 모습인 공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사회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언어와 개념들의 성격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한다. 우리는 이 일상 언어를 통하여 모든 존재가 고정된 본질을 가지고 있으며 실재한다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용수는 의 첫 머리 에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생(生). 멸(滅). 상(常). 단(斷) 등의 개념을 비판. 분석함으로써 진리를 드러내고자 했다. 이를 중관학파에서는 파사현정(破邪顯正)이라고 한다. 중도(中道)를 지향하는 인도 대승불교의 중요한 학파. 용수(龍樹)의 『중론(中論)』(중관론의 약칭)을 근저로 하여 반야 공관(般若空觀)을 선양한 학파로서 후에 유식(唯識)을 설하는 유가행파(瑜伽行派)와 함께 인도 대승불교의 2대 사상이 되었다. 『중론』의 설은 모든 존재가 연기성(緣起性)이기 때문에 그 자체의 고유한 자성(自性)이 없으므로 공(空)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공은 유·무의 극단이 없는 것이므로 중도라는 것을 올바르게 관찰하는 데에 깨달음이 있다고 한다.
용수의 제자 제바(提婆)는 『백론(百論)』 등을 저술하여 외도(外道)와 소승의 교의를 논파하고, 제바의 제자 나후라발타라(羅羅跋陀羅)는 『중론』의 팔불(八不)의 의의를 주석하였다. 그러나 중관파가 학파로서 명확한 형태를 취한 것은 불호(佛護) 시대부터인데, 고학의 근본은 무에 집착하는 일이 없는 공의 입장이다. 불호 이후 공의 인식방법에 대한 의견이 엇갈려 2파로 나뉘었는데, 불호의 계통인 필과성공파(必過性空派) 또는 귀류논증파(歸謬論證派)와 청변(淸辨)으로 대표되는 자립논증파(自立論證派)이다.
전자로부터는 월칭(月稱)이 나와 중론의 주석서 『Prasannapada』를 쓰고, 『중관에의 입문』을 저술하였는데, 그의 사상은 티베트에 널리 유포되었다. 후자에는 같은 시기에 관서(觀誓)가 나오고, 또한 이어서 적천(寂天)도 『대승집보살학론(大乘集菩薩學論)』·『입보리행론(入菩提行論)』 등의 중요한 논서를 저술하였다. 8세기에는 적호(寂護), 연화계(蓮華戒)가 중관파와 유가행파를 종합한 입장에서 중관파를 발전시켰다. 또한 그 계통은 티베트로 전파되어 번영하였는데, 그 대표자가 아티샤(982∼1055)이고, 중국에서는 용수의 『중론』·『십이문론(十二門論)』, 제바의 『백론』을 소의(所依)로 하는 삼론종(三論宗)이 발전하였다.
⑥ 유식사상(唯識思想) :
소승불교의 부족한 교리를 보충하고 용수의 공사상이 후세에 지나치게 공허한 사상으로 치우쳐 가는 것을 바로 잡아 주고자 나타난 유식사상은 미륵(A.D 270~350), 무착(A.D 310~390)과 세친(A.D 320~420)등에 의하여 성립되었고, 중요한 경론으로는 해심밀경, 유가사지론, 섭대승론, 유식삽십송, 성유식론등을 들수 있다. 유식이란 말은 인간을 중심한 정신과 물질 등 내외의 모든 것은 오직 심식(心 識)에 의하여 창조되며 심식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다는 뜻이다. 즉 정신과 객관세계가 따로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평등하게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정신이 주가 되어 나타난 객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신의 소유자는 만법의 주가 되고 선악의 모든 법을 능히 창조할 수 있다는 순전한 정신주의 핵심을 밝혀 주는 것이다. 유식사상의 성립 석존(釋尊)의 교설 자체는 변함없는 진리이다. 그러나 불교의 교의(敎義) 체계는 역사적으로 시대상황에 맞추어 중관학(中觀學)·유식학(唯識學)·밀교학(密敎學) 등 몇 번 새로운 방법론으로 전개되었다. 그 양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공통점을 지닌다. 첫째, 선구적인 수행자들의 체험적인 자각이 원동력으로 작용하였다. 둘째, 새 이론을 전개함에 있어서 근 본 전제 내지 방향이 어디까지나 깨달음[자각가타(自覺覺他)]을 위한 수행의 이론적 토대였다. 인도 유가유식학파(瑜伽唯識學派)의 선구적인 유가사(瑜伽師, 요가 수행자)의 선정에서의 지각인 유식(唯識)에 바탕을 둔 현상계의 모든 것은 오직 표상식(表象識)일 뿐이다(sarvam vijnaptimatram).라는 명제는 이 학파 학설의 바탕을 이룬다.
현상세계는 인식의 주체인 식(識)이 대상의 모습을 띠고 나타난 표상식으로 존재할 뿐이고, 대상세계는 결코 식을 떠나서는 존재하지 않으며, 지각된 그대로 외계에 실재하지 않는다는 이론을 유식무경설(唯識無境說)이라고 한다. 진실로 각자(覺者)의 눈으로 보면 이 세계는 식의 사현(似現)이고 표상일 뿐 실재하지 않으며 꿈과 같은 환상이다. 그러나 무명(無明)에 싸여 주관과 객관의 대립 속에 사는 일반인들은 이 세계가 지각되는 그대로 실재한다고 믿는다. 유식사상은 이러한 아집과 법집을 타파하고, 업식(業識)을 반야의 지혜로 전환하고자 한다. 이처럼 업식 반야의 무분별지혜, 즉 전식득지(轉識得智)가 바로 유식학의 근본 취지[대의(大意)]이다.
⑦ 말나식(末那識, Manas;자아의식):
범어 manas의 음역으로 의(意)라고 의역하며 사량(思量)한다는 의미다. 말나식은 8식 중의 하나로서 제7식이라 하고 사량을 본질로 삼는다. 제6의식(mano – vijnana)과의 혼란을 피하기 위해 말나식이라 음역하여 쓴다. 말나식은 아치(我 痴)·아견(我見)·아만(我慢)·아애(我愛)의 4가지 번뇌와 상응하고, 제8아뢰야식을 항상 심사(審思)하여 아 아소라 집착하는 성격이 있다. 아집의 근본이 되므로 염오의(染汚意)라 하며, 사량식사량능변식이라 하는데 구역에선 집착식이란 의미에서 아타나식이라고 한다. 무시 이래 미세하게 상속하며 힘들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일어나므로 유부무기성이라 했다. 에 의하면 말나식의 존재는 두 가지 교설과 여섯 가지 이론으로 증명된다[이교육리(二敎六理)]. 두 가지 교설은 권9의 장식을 마음이라 하고 사량하는 설질을 의(意)라 하며 모든 경계의 대상을 능히 인식 요별하는 식이라 한다는 설과 의 염오는 항시 제혹(諸惑)과 함께 생멸한다는 설을 가리킨다. 여섯 가지 이론은 다음과 같다.
➀ 불공무명증(不共無明證) : 제6식의 작용에는 늘 끊임이 있는데 범부는 불공무명이 끊임없이 상속되므로 말나식이 없으면 안된다. ② 육이연증(六二緣證) : 전5식은 전5근을 소의로 삼고 전5경을 소연(所緣)으로 삼듯이 제6식도 소의처인 의근 즉 말나식이 없으면 안 된다. ③ 의명증(意明證) : 말나 즉 의라는 이름은 항심사량이므로 말나식이 상존하지 않으면 안 된다. ④ 이정차별증(二定差別證) : 성자가 들어가는 멸진정과 외도가 들어가는 무상정에는 말나식이 있어야만 한다. ⑤ 무상유염증(無想有染證) : 무상정을 닦아서 얻은 무상천에는 제6의식이 없지만 아집이 있기 때문에 말나식이 있어야 한다. ⑥ 유정아불성증(有情我不成證) : 범부가 보시 등의 선행을 베풀어도 무루(無漏)가 되지 않고, 아집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는 말나식이 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법상종은 말나식을 수행의 단계에 응용해서 말나식의 3위를 주장한다.
⑧ 아리야식(阿梨耶識) : (요약) 불교의 유심론(唯心論)에서 말하는 인간의 근본 의식(意識).
불교의 인간관에 의하면 인간은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의 여섯 가지 감각적 기관으로 이루어진 존재이다. 앞의 다섯 가지를 전5식(前五識)이라 하고, 여섯번째의 식(識)을 제6 의식이라고 한다.
전5식은 자체로서 판단·유추·비판의 능력이 있을 수 없다. 그것은 다만 ‘나’라는 주관이 외부의 객관과 교통할 수 있는 통로일 따름이다. 전5식은 제6 의식에 의하여 통괄되며, 자신이 수집한 갖가지의 정보를 이 제6 의식에 보고하는 기능을 가졌다.
제6 의식은 흔히 ‘마음’이라고 부르는 존재인데, 그 단계는 다음과 같은 셋으로 나누어진다. 첫째가 제6 의식, 둘째가 제7 마나스식(Manas 識), 셋째가 제8 아뢰야식이다. 현대심리학에서의 구분방법에 따르면 제6식은 의식의 세계이며, 제7식과 제8식은 무의식의 세계에 비견될 수 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근원적인 마음을 아뢰야식이라고 보았다.
아뢰야식이라는 무의식의 바다는 모든 종자(種子)를 갖춘 가능성의 바다이다. 『성유식론(成唯識論)』에서는 그 가능성을 능장(能藏)·소장(所藏)·집장(執藏)의 셋으로 요약하였다. 능장은 만물을 인식하는 근본원인을 담아 두었다는 뜻이다. 소장은 다른 일곱 가지 식에 의하여 판단된 모든 정보를 훈습(薰習)한다는 뜻이며, 집장은 오래 전부터 상주하기 때문에 제7 마나스식에 의하여 진실한 자아인 양 집착하고 오도되는 마음이라는 뜻이다.
이 모두가 궁극적 근원으로서의 마음을 가리킨다. 이 마음의 세계를 규명하는 유식종(唯識宗)에서는 불교수행의 과정을 아뢰야식으로부터 비롯되는 세 단계로 설명하였다. 철학적 입장에서 아뢰야식을 가장 잘 분석한 경론으로는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이 있다. 아뢰야식의 자리를 일심(一心)의 진여문(眞如門)으로 보고, 그것이 7식과 6식을 거쳐 전5식으로 나타나는 과정을 생멸문(生滅門)이라고 하였다. 그로 말미암아 전개된 것이 바로 삼라만상이라고 설명하였다.
신라의 고승 원효(元曉)는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와 『별기(別記)』를 통하여 이 아뢰야식의 전변(轉變)과 추이를 철학적으로 논구한 바 있다. 즉 8식은 함장식(含藏識)으로서 선악을 포용하는 거대한 바다와 같다고 보았다. 그러나 7식은 에고(ego)의 의식에 의하여 좌우되는 아만(我慢)의 마음이며, 6식은 탐진치(貪瞋痴)로 나타나게 되는 생멸적 작용(生滅的作用)을 거듭한다고 보았다.
이것을 본시양각(本始兩覺)으로 설명하면, 불각(不覺)이 된다. 그러나 불각에서 깨달음을 추구해 들어가는 과정은 시각(始覺)이 된다고 하였다. 즉, 원효의 기본적 입장은 인간을 가능성의 존재로 파악한 것이며, 그 철학적 기반을 이루는 것이 제8 아뢰야식에 대한 그의 논구(論究)라고 말할 수 있다.
중국 법상종(法相宗)의 경우, 제8 아뢰야식 다음에 제9 말라식(Mala 識)을 인정하는 경우도 있으나, 그 경우는 위에서 설명한 8식이 9식으로 전용(轉用)되는 경우이다. 신라의 원측(圓測)은 이 제8 아뢰야식에 관하여 많은 저술을 남겼으나, 중국사상가들에 의하여 이단시됨으로써 많은 저술들이 인멸되었다.
⑨ 사상(四相) : (요약) 불교에서 인생 일기(一期)의 네 가지 모습, 또는 만물의 변화하는 유위전변(有爲轉變)의 모습을 네 가지로 분류한 것.
① 일기(一期)의 4상 : 생(生)·노(老)·병(病)·사(死)를 말하는데, 과보(果報)사상이라고도 한다.
② 유위(有爲)의 4상 :만물의 변화를 가리키는 4종의 상(相)이다. 유위는 무위(無爲)와 대비되는 것으로 인연의 제화합(諸和合)에 의하여 생멸변화하는 여러 현상을 지칭한다. 이 유위 세계의 변천 과정을 생(生:발생하는 것)·주(住:존재하는 것)·이(異:변화하는 것)·멸(滅:없어지는 것) 등 4가지 모습으로 분류한다. 이를 사유위상(四有爲相)이라고도 한다.
③ 지경(智境)의 4상 : 『금강경(金剛經)』에서 말하는 아상(我相)·인상(人相)·중생상(衆生相)·수명상(壽命相)이다. 『금강경』은 이들이 실체를 가지고 있는 존재가 아니라 가유(假有)의 존재이며, 비록 공(空)이란 용어는 사용되고 있지 않지만, 그 본질이 공임을 말해 준다. 따라서 이에 대한 그릇된 견해와 집착에서 벗어날 것을 가르치고 있다.
한편, 소승불교에서는 사제(四諦:苦·集·滅·道)의 참모습을 관찰·수행하는 덕목으로 제시된 십육행상(十六行相) 중 고제(苦諦)의 관찰에 해당하는 4상을 말하기도 한다.
⑩ 범부각(凡夫覺) :
여기서 말하는 범부는 보살 수행계위 52위 중 제1위에서 제10위까지 십신(十信)의 지위에 있는 이를 가리킨다. 십신의 지위 이전에는 악업을 일으켰으나 이제 십신에 들어서는 그것이 그릇됨을 깨달았고, 그것을 깨달았으므로 다음의 그릇된 생각이 일어나지 않게 한다는 것이다. 비록 그릇된 생각은 일어나지 않지만 여전히 생멸심에 머물러 불생불멸의 불성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불각이라고 한 것이다. 혹은 무명의 공성을 투철히 보지 못하기 때문에 불각이라고도 한다.
범부각의 상태에서는 생각의 멸상(滅相)을 안다고 하는데, 이 뜻은 중생의 분별심은 끊임이 없지만, 앞의 생각이 멸하고 또 다른 생각으로 업을 짓는 것을 보고, 생각의 사라짐을 알아서 그릇된 생각을 끊어 뒤에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할 수 있음을 말한다.
범부 정도의 사람은 먼저의 생각에 악이 일어난 것을 알기 때문에 뒤에 일어나는 생각을 그치게 하여 그 악의 생각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니, 이는 또한 각(覺)이라고 이름을 붙이지만 바로 불각이기 때문이다.
⑪ 상사각(相似覺) :
마음의 근원을 깨달아 가는 과정에서, 인간에 변하지 않는 실체가 있다는 견해를 일으키지는 않지만, 모든 현상에는 변하지 않는 실체가 있다는 견해를 일으키는 단계.
‘이승의 관지와 초발의보살’은 소위 삼현(三賢)으로서 성문(聲聞), 연각(緣覺), 처음 발심한 보살을 가리킨다. 보살 52계위 중 제11위에서 제20위까지 십주(十住)의 지위에 머무는 이들이다. ‘생각의 이상(異相)을 깨달았다’는 것은 삼승인(三乘人)[성문, 연각, 초발의보살]이 무아(無我)를 분명히 알았다는 뜻이다. 이것은 “소상(所相)인 심체가 무명에 잠겨 이상(異相)을 꿈꾸어서 모든 번뇌를 일으키다가 이제 점차 지혜와 상응하여 이상의 꿈으로부터 조금 깨닫게 됨을 밝히고자 한 것”(AMFC 159)이다. ‘생각에 이상이 없다’는 것은 이상의 꿈에서 깨어났기 때문에 여섯 가지 이상(異相)[빈, 진, 치, 만, 의, 견(貪, 瞋, 痴, 慢, 疑, 見)]이 사라진 것을 말한다.
이승(二乘)의 관지(觀智)와 초발의보살(初發意菩薩) 등 정도의 사람은 생각의 이상(異相)을 깨달아 생각에 이상(異相)이 없으니, 이는 추분별집착상(麤分別執着相)을 버렸기 때문이며, 따라서 상사각(相似覺)이라 이름한다.
⑫ 수분각(隨分覺) :
‘법신보살 등’이란 보살 52위 중 제41위에서 제50위까지 초지(初地) 이상 십지(十地) 보살을 가리킨다. '생각의 주상(住相)을 깨달았다'는 것은 인공(人空)과 법공(法空)에 통달했음을 말한다. 또한 “심체가 주상(住相)의 꿈에 잠들어 있다가 무분별지(無分別智)와 상응하여 주상의 꿈에서 깨어남”(AMFC 160)을 가리키는 것이다. 분별추념상에서 거침[추(麤)]은 상대적 개념이다. 즉 상사각의 이상(異相)의 미세념보다 미세하나 뒤의 생상(生相)의 미세념(微細念)보다는 거칠기 때문이다.
법신보살(法身菩薩) 등 정도의 사람은 생각의 주상(住相)을 깨달아 생각에 주상이 없으니, 이는 분별추념상(分別麤念相)을 여의었기 때문이며, 따라서 수분각(隨分覺)이라고 이름한다.
⑬ 구경각(究竟覺) :
마음이 세 가지 미세한 번뇌[삼세(三細)]와 여섯 가지 거친 번뇌[육추(六麤)]에 가려지면 근원[심원(心源)]에서 멀어진다. 그러나 번뇌의 사상[생주이멸(生住異滅)]을 차례로 거슬러 모두 소멸하면 마음의 근원에 도달하여 불성이 현현하게 되는데 이를 구경각이라 한다. 그러나 모든 번뇌를 완전히 소멸하지 못하면 마음의 근원에 이르지 못하므로 구경각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보살지가 다한 사람’이란 무구지(無垢地), 혹은 등각(等覺)보살을 말한다. ‘마음이 처음 일어나는 상을 깨닫는다’ 함은 무명에 의한 마음의 생상(生相)이 심체를 미혹하여 생각을 움직이게 하다가 마음의 움직임이 곧 고요함과 다르지 않음을 증득하여 아는 것을 뜻한다. ‘마음에 초상이 없다’는 것은 불각[무명]에 의해 일어나는 마음이 없다는 의미이다. 구경위에서는 무명이 완전히 사라지고 일심의 근원에 돌아가 마음의 움직임이 없으므로 ‘심성을 보아 마음이 상주한다’고 하였다.
심원(心源)을 깨달았기 때문에 구경각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며, 심원(心源)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구경각이 아닌 것이다.
보살지(菩薩地)가 다한 정도의 사람은 방편을 만족시켜서 일념이 상응하고 마음의 처음 일어나는 상을 깨달아 마음에 초상(初相)이 없으니, 이는 미세념(微細念)을 멀리 여의었기 때문이며, 심성(心性)을 보게 되어 마음이 곧 상주하니, 이를 구경각이라고 이름한다. 그러므로 경에서 “만약 어떤 중생이 무념(無念)을 볼 수 있다면 곧 불지(佛智)에 향함이 된다”고 말하였다.
※ 참고문헌(參考文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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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대승기신론』, 서광, 불광출판사,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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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대승기신론 강설』, 이평래, 민족사, 2014
7. 『대승기신론 통석』, 이홍우, 김영사, 2015
8. 『다음(Daum)』, 인터넷
9. 『네이버(NAVER)』, 인터넷
10. 『네이트(NATE)』, 인터넷
11. 『줌(zum)』, 인터넷
12. 『구글(goggle)』, 인터넷
글쓴이 : 효암(孝菴) 박규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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