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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교가 미신이된 가장 큰 이유

수선님 2022. 10. 30. 12:33

무교가 미신의 굴레에서 벗아날 수 없었던 데에는 권력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불교나 유교가 한반도에 수입되기전까지 무교가 미신으로 천대받은 적은 없다.

무교는 당시 보편 신앙이었다.

그러나 불교나 유교 같은 수입종교가 권력과 결탁되어 세력을 형성하면서 무교는 미신이라는 비난을

피해갈 수 없었다.

원래 종교적 신념에 관한 한 진리라는 것이 따로 있는게 아니다.

권력을 잡은 많은 사람들이 힘으로 밀면 그것이 진리가 되는 것이다.

예수가 신이라 믿어진 것도 313년 니케아 공의회 권력에 의한 결정이었다.

그리고 이 교리는 2천년 동안 한번도 의심을 받아 본적도 또 의심해서도 안되는 진리가 되어 버렸다.

즉 교리의 정통여부는 어떤 확실한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라 힘의 소지 여부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더 많다.

무교가 조직적인 힘을 형성할 수 없었던 것은 무당들 마다 모시는 신령도 다르고

또 신들끼리도 위계질서가 정확하기 않으며 선악의 개념도 불분명해  일원화 할 수 있는 큰 구도를 만들 수 없는 신앙형태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조직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집단은 성원이 아무리 많아도 힘을 가질수 없다.

경전이 있는 것도 아니고 교리가 있는 것도 아니니 무당들과 신도들의 중앙집권적인 체제가 나올 수 없는 것이다.

조직이 없다는 것은 힘이 없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한국 무당들은 모래알 같은 존재라 결집된 힘을 가질 수 없었다.

사람들에게 진리란 오랜 숙고와 성찰속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센 사람이나 숫자상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진리가 자신의 진리가 된다.

보편적인 교리뿐만 아니라 조직과 정치적인 힘이 가세되지 않는다면 세계종교는 될 수 없다.

불교는 기원전 3세기 북인도를 통일한 아쇼카왕의 정치적 힘에 의해 기독교는 4세기 콘스탄티노플에 의해 국교가 된 이후 교세가 확장되었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한국 무교가 지금까지 계속 미신으로 지탄받는 것은 정치적 권력과 결탁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행한 악의 규모로 보면 세계의 거대종교가 지은 악이 훨씬 더 컸음에도  이들은 권력이 있었기에 미신으로 매도되지 않았다.

목사가 아무리 잘못해도 목사의 개인적인 잘못으로 생각하지 기독교 자체가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치 않다.

하지만 무교는 다르다.

무당이 사기를 치거나 사람을 상하게 하면 무당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무교 전체가 도매급으로 넘아가 혹독한 비판과 매도를 당하는 것이 현실이다.

같은 잘못을 해도 사회에서 이 두 종교인을 대하는 태도는 극명하게 다르다.

이것이 바로 그 사회를 이루고 있는 권력의 차이다.

서유럽 종교재판으로 사람을 200만명이나 기독교는 죽였지만 미신으로 매도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들이 아직도 이세계의 권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신도는 우리의 무교와 다를 것이 없지만 그들은 정치적 권력과 결탁되어 있기에

미신으로 매도되지 않는다.

일본인들은 신도를 그들의 정통 신앙으로 인정해 체제 안으로 끌어들여왔기 때문이다.

한국의 무교도 일본 신도 만큼이나 헌대에 제조명해야 할 것들이 많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자기들의 근본 신앙으로 무교를 인정하지 않는다.

한국인들이 자신의 문화나 정신을 타자의 시선으로 본 그 세월이 너무 길기 때문이다.

앞으로 한국인들이 이런 피식민 백성의 근성을 탈피할 수 있을지 순전히 한국인 자신들에게 달려있다.

 

우리의 무교안에는 엄청난 문화적이고 인류학적인 보고가 담겨져 있다.

서사문학을 하는 사람들은 한국의 굿을 문화의 보고라고 생각한다.

남도의 시나위 굿판에서 태동한 시나위 음악은 한국 민속 음악의 백미 아닌가?

이렇게 뛰어난 음악이 나왔다면 그 의례의 종교성도 뛰어난 것임을 방증해주는 것이다.

이런 무교에 큰 자신감을 가져도 시원치 않을 판에 한국인들은 미신이라고 즉을 힘을 다해 외면하고 부정하려 한다.

굿판에서 벌어지는 춤은 또 어떠한가 시나위 음악에 맞춰서 추던 춤이 바로 세계적인 춤인 살풀이다.

이매방의 살풀이를 본 프랑스 예술담당자들은 시쳇말로 완전히 뻑이갔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자신의 민족 예술을 읽어 낼 수 있는 코드는 다 잃어버리고 그것을 잃은 줄도 모른다.

굿판의 음식이나 복식도 빼놓을 수 없는 자산이다.

그런가 하면 굿판은 한마디로 즉흥 연극판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한국적인 연극을 연구하는 사람에게는 굿판이야 말로 매력적인 자료가 아닐 수 없다.

이렇듯 무교를 연구할 수 있는 시각은 다양하다.

한국의 무교는 모든 면에서 풍부하다.

한국인들이 지금처럼 종교제국주의에 빠져 자신들의 전통을 외래의 시각으로 폄하하고 부정하는 것을 하루빨리 청산하고 열린 마음으로 문화적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

이것은 어느 외국인도 할 수 없다.

바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다.

수년 전에 세계적인 사회철학자인 하버마스가 한국을 왔다 가면서 이런 취지의 이야기를 남겼다.

" 왜 한국인들은 내 철학을 연구하는가? 한국인들은 그네들의 철한인 불교와 유교를 더 연구해야 하지 않는가."

여기에 하나를 더 붙혀야 한다면 그것은 우리 민족신앙의 대표인 무교이다.

 

- 최준식 교수의 무교 내용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