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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 윤리 사상의 흐름

수선님 2022. 10. 30. 12:45

윤리와 사상
동서양 윤리 사상의 흐름


동양과 한국 윤리 사상의 흐름 |도표 정리| 02~05

유교와 한국 유교 윤리 사상 06~26
불교 윤리 사상 27~31
도가·도교 윤리 사상 32~39
수능 출제 경향 분석 40~47

서양 윤리 사상의 흐름 |도표 정리| 48~51
경험 중시 흐름 52~67
이성 중시 흐름 68~86
사회 정의,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87~90
수능 출제 경향 분석 91~96






동양 유교 윤리 사상의 흐름

 
춘추 전국
공자   ① 사회 혼란의 원인: 인간의 도덕적 타락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 → 극기복례(克己復禮) 실천을 통한 인(仁)의 회복   ② 예(禮): 외면적인 사회 규범, 인의 외면적 표출  ③ 인과 예의 관계: 인은 예를 통해 실현, 예의 바탕은 인  ④ 정명(正名) 사상: 사회 성원들이 신분과 지위에 따라 맡은 바 역할을 다하는 것   ⑤ 덕치(德治): 도덕과 예의로 교화하는 정치 → 수기안인(修己安人)  ⑥ 대동(大同) 사회: 재화가 고르게 분배되어 모든 사람이 더불어 잘사는 사회맹자   ① 성선설: 양지(良知)와 양능(良能), 사단(四端)과 사덕(四德)   ② 인의(仁義): 사랑의 마음[仁] +옳고 그름을 분명하게 구분하는 사회적 정의[義]  ․배경: 전국 시대의 사회 혼란 → 정의를 밝혀 사회 혼란의 극복 강조  ․이상적인 인간상: 대인, 대장부 → 호연지기(浩然之氣) 함양  ③ 정치사상: 왕도(王道) 정치, 민본주의적 혁명 사상(역성혁명론) 순자   ① 성악설: 인간의 악한 본성 → 사회 혼란의 원인  ② 사회 혼란의 극복 방안: 화성기위(化性起僞) → 악한 본성을 선하게 변화시킴   ③ 예치(禮治): 인간의 악한 본성을 예를 통해 선하게 교화시키는 정치
  부국강병책 중시, 분서갱유 → 유학의 침체
경학과 훈고학의 발달   ① 배경: 한 무제 때 유학의 부활 → 분서갱유 때 없어진 경전의 복원 중시  ② 발달: 경전의 복원(경학), 복원된 경서에 대한 주석(훈고학)
수․당
유교의 국교화, 불교와 도교의 발달
주희의 성리학(주자학)   ① 주자가 맹자의 성선설과 여러 도학자들의 성즉리설 집대성 → 성리학 정립  ② 본성론: 인간의 본성을 이기론에 근거하여 형이상학적 체계를 갖추어 설명  ③ 수양론: 성인․군자가 되기 위한 도덕적 수양과 실천 방법에 대한 이론 → 격물치지, 거경궁리, 존양성찰, 존천리거인욕
왕수인의 양명학  ① 주희의 성즉리설과 격물치지설 비판 → 심즉리설 주장 → 양명학 수립  ② 사상 체계: 심즉리설(心卽理說), 치양지설(致良知說), 지행합일설(知行合一說)
고증학  ① 배경: 성리학과 양명학이 구체적인 현실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고 비판  ② 특징: 실사구시(實事求是)의 방법론, 경전 연구에만 치중하여 이론적인 발전 미비  ③ 발전: 실학으로 계승, 경세치용의 학문 경향 전개




【기타 제자백가】
•고자 : 성무선악설: 식욕과 성욕을 인간의 본성으로 파악, 선악은 후천적인 노력과 환경에 의해 형성

•묵자

  ① 겸애설: “겸상애 교상리”를 통해 남을 자신처럼 사랑하고 이로움을 나눔 → 차별없는 사랑으로 천하의 혼란을 종식

  ② 유가의 존비친소에 따른 차별적 사랑과 사치와 낭비를 일삼는 예악 문화를 비판하고 생산에 힘쓸 것을 주장
•한비자 : 순자의 성악설에 영향을 받아, 인간을 오로지 법과 술로써 조종해야 함을 강조
한국 유교․도교 윤리 및 근대 윤리 사상의 흐름

삼국 시대
최치원: ‘난랑비 서문’ → 유․불․도 삼교를 포함하는 고유 사상인 풍류도 제시
고려 시대
성리학: 고려 말 안향(安珦)이 원나라로부터 들여옴
조선 중기(16세기)의 성리학
이황과 이이구분이황이이 이기론•이(理): 원리적 개념, 절대적으로 선한 것•기(氣): 현상적 개념, 선과 악이 섞인 것•이(理): 보편적인 것, 통하는 것 •기(氣): 특수한 것, 국한된 것이귀기천론(理貴氣賤論)순선한 ‘이’는 귀하고, 선과 악이 섞인 ‘기’는 비천함이통기국론(理通氣局論)‘이’는 통하고 ‘기’는 국한됨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이’와 ‘기’가 본질적으로 다른 것임을 강조기발이승일도설(氣發理乘一途說)‘이’와 ‘기’가 서로 떨어져 있지 않음을 강조“이가 발하면 기가 이를 따르고[이발이기수지(理發而氣隨之)], 기가 발하면 이가 기를 탄다 [기발이이승지(氣發而理乘之)].” “무형무위한 ‘이’는 발할 수 없으며, 기가 발하여 이가 기를 타는 것만이 옳다.”사단 칠정론(四端七情論) •사단과 칠정의 원천이 다름•사단: 이가 발함에 기가 따르는 것•칠정: 기가 발함에 이가 타는 것•사단과 칠정은 부분과 전체의 관계•사단, 칠정: 기가 발하고 이가 그 위에 타는 것 → 칠정 가운데 순선한 것이 사단수양론(修養論)경(敬)의 실천 중시 → 주일무적, 정제엄숙, 상성성 등경(敬)으로 사욕을 제거하여 하늘의 이(理)이자 마음의 본체인 성(誠)에 이를 것을 강조 
조선 시대 도교와 실학
한국의 도교 사상  ① 신선사상, 불로장생설: 무병과 장수를 바라는 백성들이 관심을 가짐 ② 백성들의 삶 속에서 권선징악과 안심입명에 영향을 미침 실학사상  ① 배경: 전란 이후 사회 전반에 걸친 혼란 심화, 기존의 학문적 풍토에 대한 반성  ② 의의: 실증적 연구 자세로 우리의 역사․지리․문헌 등을 재해석 → 자주 정신 고취  ③ 주요 경향: 경세치용(經世致用), 이용후생(利用厚生), 실사구시(實事求是)정약용  ① 인간을 현실적이고 혈기적인 존재로 파악  ② 인간의 존재를 현실성과 개체적 자율성에 근거하여 파악  ② 성기호설(性嗜好說): 인간의 성(性)을 마음의 기호(嗜好)로 이해




한국 근대 윤리 사상

• 강화학파: 양명학을 기반으로 능동적이고 참된 자아를 각성하고 사회문제를 해결하고자 함
• 위정척사 사상

  ① 특징: 서양의 종교와 문물을 이단으로 규정, 척양․척왜의 강력한 의리론 주장
  ② 의의: 유교적 가치관과 민족정신으로 외세 극복 → 민족 주체성과 민족의식의 표출

• 개화사상

 ① 특징: 근대화된 서양 문물의 주체적 수용 강조
  ② 분화: 전통 질서(유교)에 대한 부정적 입장과 동도서기론(東道西器論)의 입장으로 나뉨

• 동학사상

 ① 특징: 인본주의를 기반으로 한 사해 평등주의 표방
  ② 사상: 시천주(侍天主), 인내천(人乃天), 오심즉여심(吾心卽汝心), 사인여천(事人如天)
불교 윤리 사상의 흐름

불교 윤리
초기 불교의 핵심 사상  ① 인연(因緣) 사상: 모든 현상은 무수한 원인[因]과 조건[緣]에 의해 발생 → 연기법   ② 사성제(四聖諦): 석가모니가 깨달은 네 가지 진리 → 고제, 집제, 멸제, 도제   ③ 삼법인(三法印): 불교의 세 가지 근본 교설 → 제행무상, 제법무아, 열반적정(또는 일체개고)불교 사상의 전개  ① 소승 불교와 대승 불교의 발전  구분소승 불교대승 불교성립 배경계율의 해석을 둘러싼 교파의 분열소승 불교의 대중적 기반 상실특징• 사회와는 분리된 엄격한 종교성 강조• 개인의 해탈 강조• 대중의 구원 강조• 이상적 인간상 제시성격개인적․은둔적 불교대중적․사회적 불교  ② 대승 불교의 사상적 배경: “반야경” 출현, 공(空) 사상, 중도(中道) 사상   ․공(空) 사상: 자아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탈피 → 무아(無我)의 인식 강조  ․중도(中道) 사상: 우주의 본질과 현실의 양면을 객관적으로 관찰  ③ 대승 불교의 이상적인 인간상: 보살(菩薩)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구제하는 사람  ․자비로운 마음을 가지고 바라밀을 실천하는 사람중국 불교의 전개  ① 전개: 6, 7세기경 인도의 대승 불교가 중국으로 전래 → 교종과 선종으로 변화 발전  구분교종선종수행 방법교리, 경전에 대한 학습과 지식 축적직관적 종교 체험을 통한 깨달음특징• 경전과 교리 공부 중시• 대표적 종파: 천태종, 화엄종• 돈오(頓悟) 사상 제시• ‘단박에’, ‘갑자기’ 깨닫는 수양법 강조  ② 특징: 노장사상의 개념을 빌어 불교 이해, 인과응보(因果應報)의 윤회 사상 정착  ③ 영향: 사상적․문화적으로 중국 문화의 다변화에 이바지
한국 불교 윤리
원효  ① 화쟁(和諍)의 원리 주장, 불교의 대중화에 이바지  구분일심(一心) 사상화쟁(和諍) 사상주장마음을 통찰하여 모든 대립과 갈등이 하나의 마음으로 돌아가야 함모든 종파, 모든 사상을 보다 높은 차원에서 하나로 통합할 수 있음영향화쟁 사상으로 이어짐교종과 선종을 통합하는 의천과 지눌에 영향의천과 지눌  ① 왕권 강화와 민심 안정을 위한 불교의 국교화, 왕들의 포교 지원  ② 교종과 선종의 균형과 조화를 위한 노력 전개  구분의천지눌입장교종을 중심으로 선종 통합선종을 중심으로 교종 통합수행방법교관겸수(敎觀兼修), 선교합일(禪敎合一): 경전 공부(교) + 마음공부(선)• 돈오점수(頓悟漸修): 깨달음+점진적 수양• 정혜쌍수(定慧雙修): 선정(선)+지혜(교)








도가․도교 윤리 사상의 흐름

춘추 전국
도가 사상의 연원  ① 목표: 무위(無爲)로서의 본래 상태인 자연의 질서 회복  ② 특징: 인위적인 노력의 비판․부정, 자연의 질서에 순응 → 절대 자유의 경지 추구노자  ① 사회 혼란의 원인: 인간의 그릇된 인식과 가치관, 인위적인 사회 제도  ② 도(道): 우주 만물의 근원, 참된 자연의 원리, 형이상학적 진리  ③ 덕(德): 덕은 도를 따르는 것, 도는 곧 자연 → 덕은 자연을 따르는 것  ․상덕(上德): 자연과 합치되는 무위와 무욕(無慾)의 태도 → 소박(素樸)   ․하덕(下德): 목표를 달성하려는 인위적인 노력 → 인․의․예․지  ④ 가치 상대주의: 유가의 예악(禮樂)이 모든 사람에게 선한 가치가 아닐 수도 있음  ⑤ 이상적인 삶: 물이 갖추고 있는 덕과 겸허(謙虛)와 부쟁(不爭)의 덕 강조  ․무위자연(無爲自然): 인위적으로 하지 않고 자연의 본성을 따르는 상태  ․상선약수(上善若水): ‘으뜸이 되는 선은 물과 같다.’ → 가장 이상적인 무위자연  ⑥ 정치사상: 통치자가 백성의 삶에 개입하지 않는 무위 정치의 이상 사회 추구  ․소국과민(小國寡民): ‘작은 나라에 적은 백성’ → 백성들의 평화로운 삶을 중시  ․무위(無爲)의 정치: 강압과 인위가 사라져 통치자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정치장자  ① 사회 혼란의 원인: 시비선악의 분별과 차별, 자기만 옳고 남은 그르다는 이기적인 편견에서 비롯  ② 도(道): 만물에 존재하는 원리, 덕의 근본 → 차별이 없고, 모든 사물에 내재  ․이상적인 삶: 공을 내세우지 않고, 무엇을 하려고 꾀하지 않고, 일이 잘되어도 자만하지 않는 삶  ․만물의 평등성: 도의 차원에서 만물은 모두 평등함 → 만물제동(萬物齊同)  ③ 수양 방법: 심재와 좌망을 통해 소요유(逍遙遊)와 제물(祭物)의 경지에 이름  ․심재(心齋): 마음을 비워서 깨끗이 하는 것  ․좌망(坐忘): 조용히 앉아서 자신을 구속하는 일체의 것을 잊어버리는 것  ④ 이상적 인간상: 지인(至人), 진인(眞人), 신인(神人), 천인(天人) →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에 이른 도가의 이상적 인간상
도교 사상의 연원  ① 성립: 도가 사상 + 민간 신앙적 요소 → 장생을 추구하는 종교적 색채가 강함  ② 목표: 육체적인 한계를 극복하고 수련을 통해 불로불사의 선인(仙人)이 되고자 함황로학파(黃老學派, 한 초기)  ① 신선 사상과 노장 사상이 황로학으로 체계화  ② 무위로써 백성을 다스리는 제왕의 통치술 주장  ③ 청정무위(淸淨無爲)를 바탕으로 한 이상 사회 추구태평도(太平道)  ① 수탈을 일삼는 권력층을 비판함으로써 궁핍한 백성의 마음을 움직임  ②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기도를 통해 복을 추구 → 부적과 맑은 물로써 병을 치료한다고 선전오두미교(五斗米敎, 한 말기)  ① 사회적 혼란기에 탐관오리를 비판하며 교단의 형태를 갖춘 종교로 발전  ② 신선 사상과 노자에 대한 신격화를 바탕으로 삼는 종교  ③ 태평도와 함께 도가 사상을 바탕으로 “태평경”을 신봉
위․진
현학(玄學)   ① 노장 사상을 숭상하고 경학(經學)에 반대하는 사상적 경향  ② 청담(淸談), 죽림칠현(竹林七賢)  ③ 세속적 가치를 넘어서는 철학적․예술적 사유와 가치 중시
 


동양


유교와 한국 유교 윤리 사상
자료 1 중국 최초의 선생님, 공자(孔子)

유교를 정립한 공자의 이름은 구(丘)이고, 자는 중니(仲尼)이며, 기원전 551년 노나라에서 태어나 기원전 479년 73세의 나이로 생을 마쳤다. 공자가 활동한 이 시기는 고대 그리스의 피타고라스(Pythagoras) 시대에 해당한다. 공자는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었으며 곤궁한 집안 살림을 돕고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낮은 직책의 관리가 된 적이 있다. 그는 비록 미관말직이라도 소홀히 여기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소임을 다하여 큰 성과를 거두었다. 공자의 명성이 점차 높아짐에 따라 많은 제자들이 그에게 모여들었다. 그는 많은 제자들을 가르쳤는데, 그 중에서 수십 명의 걸출한 사상가와 학자가 배출되었다. 공자는 매우 영향력 있는 중국 최초의 선생님이었던 것이다. 오늘날 그를 일러‘영원한 선생님의 표상[萬世師表]’라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공자 사상의 진면목은 그의 언행이 기록된 “논어”에 잘 드러나 있다. 여기에서 공자는 제자들이 국가와 사회에서 유용한 인격자가 되기를 원하였고, 그렇기 때문에 제자들에게 여러 경전에 기초한 각종 분야의 지식을 가르쳤다. 공자가 생각하기에 선생님으로서의 기본적 임무는 고대의 문화적 유산을 제자들을 위해 해석하는 것이었다. 그는 스스로 “전달자이지 창작자가 아니다[述而不作].”라고 하였다. 그러나 공자는 단순한 전달자를 넘어서 자신의 도덕적 개념에 기초하여 전통 제도와 사상을 재해석하였다. 가령 “부모님의 상에서 아들은 3년상을 지내야 한다.”라는 전래의 관습을 전달하면서, 그는 어린아이는 생후 3년 동안은 전적으로 부모에게 의존한다. 따라서 부모의 사망에는 감사를 표하기 위해 같은 기간의 상을 지내야 한다며 당시에는 없었던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였다. 이처럼 공자는 전달자 이상의 새로운 어떤 것을 가르쳤다. 이러한 공자의 정신은 그의 제자들에 의해 계승되면서 유교 사상의 특징과 체계가 형성되었고, 유교는 1911년 신해혁명으로 청나라가 무너지는 그날까지 중국을 지배하는 사상이 되었다.







자료 2 도덕성의 완성, 공자의 인(仁)

공자 사상을 관통하는 핵심 범주는 ‘인(仁)’이다. 두 사람 사이의 친함을 의미하는 이 단순한 글자에 대한 공자의 언급은 많지 않지만, “논어”의 482개 단락 중 대략 58개 단락이 ‘인’에 대한 진술로 구성되어 전해 온다.
먼저 공자는 “인(仁)은 곧 인(人)”이라 하여 인간이 마땅히 지녀야 할 가치 표준과 도덕 이상으로써 ‘인’을 제시하였으며, 다시 그것을 ‘애인(愛人)’이라고 정의하였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과 과정을 통하여 자신으로부터 남을 사랑하는 경지까지 도달할 것인가? ’안연이 ‘인’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였을 때 공자는 자신으로부터 시작하여 ‘애인(愛人)’에 이르는 방법과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자신을 이기고 예(禮)로 돌아가는 것이 인을 행하는 것이니, 하루라도 자신을 이겨서 예로 돌아가면 천하가 인에 돌아올 것이니, 인을 하는 것은 자기에게 있는 것이니, 어찌 남에게서 말미암을 것인가? …… 예가 아니면 보지 말며, 예가 아니면 듣지 말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며,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라.             -“논어”, ‘안연 편’-
흔히 ‘극기복례(克己復禮)’로 요약되는 위의 진술은 공자의 ‘인’에 대한 관념을 정면에서 전면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된다. 즉 ‘애인’이 객체와의 문제라면‘, 극기(克己)’는 자신을 절제하는 힘으로써 ‘나’라고 하는 주체와의 문제가 되는 것이며, ‘복례(復禮)’란 외재적 형식으로써 “극기”를 통해 ‘시(視), 청(聽), 언(言), 동(動)’등이 사회 도덕과 규범에 모순됨 없이 실천됨을 의미한다. 그것이 곧 ‘인’인 것이다. 다시 말해, 사람을 사랑하는 행위는 바로 ‘나’를 통해 가시화되는 것이므로 ‘애인’ 역시 ‘극기’를 전제로 해야 한다. 만약 ‘극기’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타인을 사랑하는 것도 있을 수 없다. 오직 자신의 노력에 의지한 수양 과정을 통하여 군자의 표준에 도달하는 것이 곧 인간을 사랑하는 전제 조건이 되는 것이다.
‘예’와 ‘인’의 관계에 있어서 ‘예’는 ‘인’의 종속 관계에 있는 것이며, ‘예’의 본질은 ‘인’이라고 볼 수 있다. 공자는 일찍이 “예를 배우지 아니하여 알지 못하면 몸을 세울 수 없다.”고 하였다. 이것은 ‘예’를 사회적 독립체가 되기 위한 필수 과정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공자는 “사람이 어질지 못하다면[不仁], 예는 해서 무엇 하랴.”라고 하여, ‘인’이 부재한 ‘예’에 대하여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기도 하였다. 이는 ‘인’과 ‘예’는 서로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정체로 파악한 것이며, 인간에게 있어서 ‘인’과 ‘예’ 양자가 조화롭게 체득되어지는 것을 가장 이상적이라고 파악한 것이다.
‘인’의 극치는 곧 성인(聖人)이다. 공자에게 있어서 성인은 첫째, “자신의 몸을 닦아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며[修己以安百姓], ”둘째“, 널리 덕을 베풀어 중생을 구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자신이 서고 싶으면 남을 먼저 세우고 자기가 먼저 도달하고 싶으면 남을 먼저 도달하게 해야” 하며,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은 남에게 시켜서도 안 된다. 여기에서 자신과 타인은 별개가 아닌 하나의 선상, 즉 자신의 마음과 타인의 마음을 일치시키는 ‘서(恕)’입장에서 추기급인(推己及人)의 인간관이 형성되는 것이다.


자료 3 덕(德)으로써 감화하는 공자의 정치사상

공자는 질서 있는 사회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름을 바로잡는 일[正名]”이라고 주장하였다. 즉 실제적 사물의 이름은, 이름이 그들에게 부과한 의미와 일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날 제자가 그에게 그가 만일 국가를 통치하게 되면 무엇을 가장 먼저 할 것인가를 물었을 때 공자는 서슴없이 ‘정명’이라고 말하였다. 또 통치의 바른 원리를 물었을 때도 공자는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는 정명을 제시하였다. 어떤 이름을 갖는 개인은 그에 따른 책임과 의무를 완수해야 한다는 것이 공자 정치사상의 시작이다.
나아가 공자는 덕으로써 백성을 다스리는 덕치주의를 강조하고 법(法)으로써만 백성을 다스리는 법치주의(法治主義)를 배격하였다. 덕으로써 정치를 하면 마치 북극성이 그 자리에 움직이지 않고 있어도 모든 별들이 빙빙 돌면서 북극성을 향하는 것과 같이 백성들은 저절로 군주에게 귀의한다. 또 법제(法制)와 금령(禁令)으로써 인도하고 형벌(刑罰)로써 질서를 바로잡으려 하면 백성들은 그 형벌을 면하는 것에만 급급하고 의롭지 못한 행위를 하고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이와 반대로 덕으로써 백성을 인도하고 예로써 질서를 잡게 되면 백성들은 불선(不善)한 행위를 부끄러워하고 선(善)에 이르게 되는 행위를 하게 된다. 공자는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것이라고 생각하였으며, 국가의 통치자가 자신에게 부여된 책임을 다하며 덕으로써 백성을 이끌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신을 수양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다. 통치자가 바르면[正] 백성은 저절로 바르게 되며, 통치자가 명령하지 않아도 백성들은 행(行)하고, 통치자가 바르지 못하면[不正] 명령할지라도 백성들은 행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즉 통치자 자신의 수양이 먼저 이루어져야 함을 역설하였다.




자료 4 공자를 추앙한 맹자

맹자의 이름은 가(軻)이며, 기원전 372경 전국 시대 추(鄒)나라에서 탄생하여 기원전 289경에 생을 마쳤다. 맹자는 젊은 시절 공자를 존숭(尊崇)하였는데, 늦게 태어난 까닭에 공자의 가르침을 직접 받지 못한 것을 한탄하였다고 한다. 맹자가 활동하던 당시는 열국(列國)이 전쟁을 일삼고 각국이 패도(覇道)를 통한 부국강병에 마음을 두었을 뿐, 도탄에 빠져 있는 백성들의 고통과 괴로움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았던 까닭에 맹자가 주장한 왕도(王道) 사상은 공론으로 여겨지고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맹자는 관리가 되는 것을 단념하고 고향에 돌아와서 문인을 양성하며 공자의 뜻을 밝히기 위하여 “맹자”를 저술하였다. 이 책은 “논어”, “대학”, “중용”과 함께 사서(四書)의 하나로서 유교 경전 중에서 진귀하게 여겨진다. 특히 그의 성선설과 양지·양능선 등은 송·명 시대의 유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으며, 그의 정치사상인 왕도 정치사상과 민본주의적 혁명 사상은 동양 정치 학설의 정화라고 할 수 있다.







자료 5 맹자의 성선설

성선설은 맹자 학문의 근본이다. 맹자는 사람의 성(性)은 본래 선하지만 욕심 때문에 악해진다고 보았다. 가령 우산(牛山)은 본래 울창한 숲을 자랑하는 산이었지만 나무꾼의 벌목 등으로 벌거벗은 산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우산에 본래 초목이 없었던 것이 아니며, 초목이 없는 것이 산의 성(性)이 아닌 것이다. 이처럼 ‘사람의 성이 악(惡)하다.’함은 우산에 초목이 없는 것을 보고 그 산에 본래 초목이 없었다고 규정하는 것과 같이 잘못된 견해라고 보았다. 또한 맹자는 사람은 누구나 남의 불행을 차마 보고 있지 못하는 마음이 있다고 보았다. 예를 들면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고 할 때 어떤 도덕적 추론을 통해 그 아이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도 모르게 아이를 구하게 되는데, 이를 통해 맹자는 누구나 사단(四端)을 지니고 있으므로 사람은 착한 성품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맹자는 성선설의 필연적인 결과로서 양지(良知)와 양능(良能)을 제시하였다. “어린아이가 그 어버이를 사랑할 줄 알고 성장함에 따라 자신의 형을 공경할 줄 아는 것은 양지와 양능이 있기 때문이며, 측은·수오·사양·시비의 마음은 사람의 양심에 고유한 것이므로 양심의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본성에 따라 행하면 백행이 다 선할 것이지만 외물의 유혹에 이끌려 선한 본성이 가려지는 것이다. ”즉 양지와 양능은 선천적인 것으로 사람이 배우지 않아도 능한 것은 양능이고, 생각하지 않아도 아는 것은 양지이다.
맹자는 사람의 본성은 선한 것이지만 악을 행하는 것은 물욕(物慾)에 빠지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이러한 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첫째, 사단을 확충하여야 한다. 사단의 마음을 확충하면 작은 불씨가 큰 불이 되는 것과 같이 혹은 작은 물방울이 모여 도도히 흐르는 큰 강물이 되는 것과 같이 선(善)의 능력이 강대해져서 물욕을 없애고 성인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둘째, 호연지기를 기른다. 호연지기란 굳세고 올곧은 기개로 의와 도를 짝으로 하는 것으로서 선을 쌓고 의를 쌓아감으로써[集義] 이루어진다. 만일 자기 양심에 비추어 만족스럽지 못하거나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면 호연지기를 얻을 수 없다. 맹자는 이러한 호연지기를 가진 사람을 ‘대장부(大丈夫)’라고 불렀다. 인은 사람의 마음이고 의는 사람의 길이다. 그러나 맹자가 보기에 사람들은 그 길을 버리고 가지 아니하며, 그 마음을 방치하고 다시 찾을 줄을 알지 못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기르는 가축이 집을 나가면 찾아보지만 자기의 방심(放心)은 다시 찾을 줄 알지



못한다. 따라서 맹자는 학문의 도는 다른 것이 없으며, 그 잃어버린 마음[放心]을 찾아들이는 것뿐이라고

하였다.




자료 6 맹자의 정치사상

맹자에 의하면, 통치자는 마땅히 ‘차마 어찌하지 못하는 마음[不忍人之心]’으로써 백성을 다스려야 하며, 사람을 죽이는 것을 즐기지 않는 자가 천하를 통일할 수 있다. 백성은 항산(恒産)이 있어야 항심(恒心)이 있게 되므로 농시(農時)를 어겨서는 안 되며, 산업을 장려하여 생활을 넉넉히 하도록 하여 부모를 봉양하고 처자를 양육하는 데 부족함이 없게 해야 한다. 그리고 통치자는 백성의 부모라는 심정을 가져야 한다. 백성을 해하는 자는 군주라고 할 수 없다. 인(仁)을 해하는 자를 적(賊)이라 하고 의를 해하는 자를 잔(殘)이라고 하며, 잔적은 하나의 남자에 불과하다. 주(紂)는 잔적의 행위를 한 사람이기 때문에 주를 죽인 무왕(武王)은 도적을 죽인 것이지 군주를 시해한 것이 아니다. 맹자는 또한 국가에는 백성이 제일 귀(貴)하고 다음은 사직이며 군주는 가장 가볍다고 하였다. 통치자에게 과실이 있으면 간(諫)하고 몇 번이고 간하여도 듣지 않으면 통치자의 자리를 폐(廢)하여도 무방하다고 보았다. 이와 같이 맹자는 인의를 주로 하고 공벌을 배척하였으며, 국가의 기본이 백성이라는 민본 정신에 의거하여 백성을 괴롭히는 군주는 배제해도 무방하다는 역성혁명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자료 7 전국 시대 사상의 집대성자, 순자

순자는 전국 시대 조(趙)나라 출신이다. 이름은 황(況)이며, 자는 경(卿)이다. 순자는 맹자와 마찬가지로 공자의 계승자임을 자칭하였다. 순자는 백가쟁명과 자신의 학술 사상을 총결하여 “순자”라는 책을 남겼는데, 이는 선진 시대의 중국 사상을 집대성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순자는 잡가가 아니며 유가 이외의 다른 학파에는 속하지 않는다. “순자”는 비록 제자백가의 학설을 널리 섭렵하고 종합하였지만, 가장 근본적인 사상은 공자 학설의 계승과 발전이다. 그것은 “순자”의 전편에서 공자의 충실한 계승자임을 자처할 뿐만 아니라, 사상적 특성으로 볼 때 공자 사상의 가장 기본적인 범주인 ‘인(仁)’과 ‘예(禮)’를 강령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맹자가 인의(仁義) 사상을 보다 구체화시켰음에 비해, 순자는 예악(禮樂) 사상을 더욱 구체화시켰다고 평가할 수 있다. 또한 맹자가 내성(內聖)의 측면에 주안점을 두었다고 한다면, 순자는 외왕(外王)의 측면에 주안점을 둔 것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내성외왕(內聖外王)이라는 용어는 “장자”에 처음 등장하는 것이지만, 의미상 본다면 ‘안으로는 성인(도덕), 밖으로는 군주(왕도)를 이룩하는 것’으로, 결국 유학의 종지인 ‘수기치인(修己治人)’과 같은 뜻이다. 맹자는 분명 빛나는 일면을 지니고 있지만 만일 유가가 전적으로 맹자의 노선을 따라 발전해 왔다면 일찍이 신비주의와 종교로 빠져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순자가 강조한 인위(人爲)와 그것으로써 자연을 개조하는 성악설이 맹자가 추구한 선험적 성선론과 선명하게 대립하면서 유가는 인문주의적이고 현실주의적인 경향을 지닐 수 있었다.



자료 8 순자의 화성기위와 ‘예(禮)’

순자는 사람의 본성은 악(惡)하고, 그 선(善)함은 위(僞)하다고 하였다. 성(性)은 하늘로부터 받은바 본질이고, 위(僞)는 인위(人爲)라는 회의 문자의 뜻을 취한 것이다. 이것을 나무에 비유하면 벌목하여 놓은 나무의 상태를 성이라 하고, 톱으로 켜고 대패로 다듬고 여러 도구를 사용하여 꾸민 것을 위라고 한다. 즉 도덕은 인간의 본성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그 본성에 반하여 만들어진 것을 의미하는데 이것이 위이다.
순자가 사람의 성이 하늘에 근원하고 또 범성의 구분이 없이 동일하다고 한 것은 맹자의 주장과 같으나 일반 유학자들은 하늘을 인격적이며 종교적인 의미로 해석하는 데 반하여, 순자는 하늘을 자연 현상으로 보고 과학적으로 해석하였다. 또한 순자는 사람의 본성을 악하다고 보았으나 자신의 노력에 의해 교정될 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 즉 사람의 본성은 비록 악할지라도 사법에 의하여 예의로써 교도하면 선하게 될 수 있다. 가령 어떤 굽은 나무일지라도 도지개로써 교정하면 바르게 펼 수 있고, 어떤 무딘 쇠붙이라도 잘 단련만 하면 예리하게 될 수 있는 것과 같이, 사람의 본성이 비록 악할지라도 예의로써 수양만 하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이 성인이 되지 못하는 것은 적위(積爲)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순자는 인성의 악을 교정하는 데 예의가 필요함을 인정하고 특히 예에 중점을 두었다. 맹자는 예는 인성에 선천적으로 구비되어 있다고 보았으나, 순자는 예는 인성에 구비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성인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보았다. 그렇다면 예를 만든 이유는 무엇인가?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욕구를 가지고 있다. 그 욕구에 도량과 분계가 없으면 싸우지 않을 수 없다. 싸우면 어지러워지고 어지러워지면 궁하게 된다. 선왕은 이와 같은 사회의 혼란을 막기 위해 예를 만들어서 사람들의 욕구를 조절하였다. 즉 선왕이 중정을 세워 사람의 욕구와 물질의 공급이 서로 균형을 이룸으로써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도록 한 것이 예의 기원이라고 할 수 있다.








자료 9 한 대의 훈고학

진(秦)의 시황제는 중국을 통일하고 거대한 제국을 세운 후 일대 개혁을 단행하였다. 특히 유가들은 성현이 남긴 법을 무시한다 하여 유가의 경전을 불사르고 유학자들을 생매장하는 등 법치주의에 의한 우민 정책을 단행하였다. 시황제는 스스로를 황제라 칭하고 자신의 보위를 만세까지 전할 것이라 호언하였으나, 불과 15여년 뒤 진은 멸망하고 말았다. 한(漢)이 다시 중국을 통일하고 12년이 경과한 뒤 사라진 유가의 경전들을 다시 찾기 시작하였다. 이때 진나라 시대에 탄압을 받았던 유학자들은 벽 속에서 죽간(竹簡)을 끌어내기 시작하였고, 각 처에 흩어진 책들을 발견하였으나 온전한 것을 구하기 힘들었다. 어떤 책은 과두 문자(蝌蚪文字)로 적혀 있어 읽는 방법과 의미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따라서 한의 문제에 이르러 한 경전만 전문으로 하는 학풍이 일어났다. 즉 한 대의 오경박사라는 관학 제도는 다섯 경전 가운데 하나의 경전만을 전공하게 하여 경전에 대한 전문성과 완전성을 높이려는 의도로 설립되었다. 이들 박사는 자신이 전공하는 경전에 대한 보완과 편집, 그리고 글자의 뜻을 찾아내는 훈고를 종생의 사업으로 삼았다. 훗날 한의 무제는 사상 통일의 방안으로서 동중서(董仲舒)의 건의를 토대로 유교를 국교로 정하고 적극 장려하는 정책을 펴 나가게 된다.






자료 10 성리학의 집대성자, 주희

주자의 이름은 희(熹), 호는 회암(誨庵)이며, 주돈이·소강절·장횡거·이정을 집대성하여 이학(理學) 일파를 완성하였다. 주희는 어릴 때부터 천체(天體)에 대해 의문을 품었으며 구도(求道)의 마음이 매우 강하였다. 소학에 입학한 주희가 가장 먼저 읽은 책은 “효경”이었으며, 나무 위에 “이(효경)처럼 하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다.”라고 쓰기도 하였다. 송 대를 살았던 주희 및 당시 유학자들의 포부는 ‘성인(聖人)’이 되는 데 있었다. 오늘날도 성공한 사람이란 그 인간성에 남다른 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시대의 성인이 된다는 것은 인간성이 보통 훌륭하다는 의미 이상일 것이다. 즉 어떤 이상형에 접근해 가기 위해 평생 동안 수련해 가는 것이다. 이때의 수련은 오늘날의 세속적 성공을 위한 노력이라기보다 어떤 신성한 종교적 목표를 두고 해 나가는 종교적 수련의 의미가 강하다. 주희는 이러한 감정을 “맹자”를 읽고 가졌다고 한다.
주희가 한 말이나 강의는 문인들이 자세히 기록하여 남겨두었는데, 그것을 정리한 것이 현존하는 “주자어류” 140권이다. 왕수인은 자신이 한 말을 기록하는 것을 싫어했지만 주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더러는 제자의 기록을 보고 검열까지 하였다. 혹 제자가 잘못 기록한 것이 있으면 지적해 주기도 하였다. “주자어류”를 보면 주희의 지도는 매우 엄격하여 태만한 학생에게는 가차 없는 꾸지람을 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또 졸고 있는 학생을 꾸짖은 기록도 보인다. 주희는 죽음에 임하여 제자들에게 “성인의 바른 도의 전통을 나는 아직 잘 모르면서 그대들을 멀리서 잘못 오게 했네.”라고 하였다. 또 생을 마감하기 나흘 전에는 “학문을 하는 요점은 사물 하나하나를 세심히 관찰하여 그 옳음을 구하고, 그 그름을 단호히 제거하는 것이다. 며칠이고 그것을 되풀이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이 이치[理]와 하나가 되며 자연히 발현하여 사심이 없어진다. 성인이 만사에 응하고 천지가 만물을 낳는 것은 ‘정직[直]’일 뿐이다.”라고 하였다.






자료 11 성리학의 마음

성리학에서는 마음을 성(性)과 정(情)으로 구성된 것이라고 말한다. 이를 ‘심통성정(心統性情)’이라 하는데, 이는 마음이 성과 정을 통섭한다는 뜻이다. 성은 인간과 사물이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본성으로서 마음의 본체이며, 정은 마음의 구체적인 작용이다. 오늘날의 용어로 표현하자면, 정은 지·정·의(知情意)를 포함하여 마음의 모든 작용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중국의 유교 사상가들은 전통적으로 ‘성’에 관하여 다양한 논의를 해 왔다. 맹자의 성선설, 순자의 성악설이 그것이다. 맹자는 “물이 아래로 흐르는 속성을 갖고 있듯이, 인간은 본래 선(善)이라는 도덕성을 갖고 태어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므로 인간에게는 도덕 세계와 윤리적 행위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반면에, 순자는 인간의 본성은 악하기 때문에 후천적인 학습과 수양을 통하여 본성을 선하게 교정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성리학은 맹자의 성선설을 비판적으로 수용하였다. 특히 주희는 북송 시대의 유학자 정이천이 주장한 “성이 곧 이이다[性卽理].”라는 명제를 토대로 성선설의 형이상학적 근거를 확립하였다. 즉 인간의 본성은 천리(天理)로서 순수하고 절대적인 선 그 자체라는 뜻이다. ‘성즉리’는 주희 성리학의 제일 명제로서 왕수인의 “마음이 곧 이이다[心卽理]”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학설이다. 주자가 ‘성’을, 왕수인이 ‘심’을 주제로 삼았다면 이황과 이이 등 조선의 유학자들은 ‘정’을 주제화하였다는 점에서 한국과 중국 유학자들의 문제의식이 뚜렷이 구분된다.





자료 12 성리학의 이기론

주희는 세계를 운동하고 변화하는 현상계와 그 형이상학적 근거가 되는 원리의 세계라는 이중 구조로 파악하였다. 인간의 마음은 사물의 자극을 받지 않을 때는 발동하지 않아서 고요하다가, 자극을 받으면 발동하여 움직이고, 다시 고요해지는 반복 운동을 거듭한다. 자연계도 밤과 낮이 순환하며 더위가 가면추위가 오고 추위가 가면 더위가 오는 반복 운동을 계속한다. 이렇듯 인간의 마음과 자연은 동일한 패턴으로 변화한다. 주희는 마음의 작용과 천체의 운동을 관찰하고 역법에 관한 문헌들을 연구하여 이와 같은 움직임이 일어나게 되는 필연적인 이유와 근거를 탐색하였다. 그리하여 순환적으로 운동하여 변화하는 현상계를 ‘기(氣)’로, 그 근거를 ‘이(理)’로 규정하였다.
이와 기의 개념은 사실[fact]과 가치[value]의 두 가지 측면에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사실의 측면에서 보면 이는 자연과 인간의 마음을 포함하여 모든 사물을 존재하게 하고, 그 존재 양식을 규제하는 형이상학적 근거이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자연계는 자연법칙의 지배를 받는다.”고 말하듯이, 이는 사물들이 조화를 이루고 질서 있게 운동하도록 통제하는 법칙이다. 이것을 “시킨다.”, “주재한다.”라고 표현한다. 기는 사물들을 실질적으로 구성하는 질료이며 운동 에너지이다. 즉, 현실 세계를 규정하고 운동·변화하는 모든 것은 기이며, 그 존재 원리와 운동 법칙이 이인 것이다. 가치 측면에서 보면 이는 모든 가치의 근거가 되는 절대 선이며 인간이 마땅히 지켜야 할 당위의 도덕 법칙인 반면에, 기는 무수하게 차이가 있는 상대적인 가치를 갖는다.





자료 13 성리학이 말하는 이와 기의 관계

성리학이 보기에 이와 기는 ‘서로 분리되지 않으면서 동시에 섞이지도 않는 관계[不離而不雜]’에 있다. ‘분리되지 않음’이란 이와 기가 시·공간적으로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치 건축 자재 없이 설계도만으로 집을 지을 수 없고, 설계도 없이 건축 자재만으로도 집을 지을 수 없듯이 이 없는 기는 없고, 기 없는 이는 없다. ‘섞이지 않음’이란 이와 기가 형이상과 형이하, 그리고 절대적 가치와 상대적 가치라는 각각의 독자적 영역을 갖는다는 것이다. 보다 엄밀히 말한다면 기의 상대 가치가 이의 순수한 절대 가치를 침해하지 않는다는 뜻을 내포한다.
이와 같이 이와 기는 상호 의존적인 동시에 존재의 관계를 갖는 한편 형이상과 형이하, 절대 가치와 상대 가치라는 차등적 관계를 갖는다. 전자를 “이와 기는 선후가 없다[理氣無先後].”라고 하며, 후자를 “이가 먼저이고 기가 뒤이다[理先氣後].”라고 표현한다. 이선기후가 물론 시간상의 선후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근거를 주는 자와 근거를 받는 자와의 관계라는 형이상학적 관념이 선후라는 시간적 개념으로 표현된 것이다. 또한 윤리적으로 말한다면, 사실적 존재에 대한 가치가 우선이라는 의미에서 선후라고 할 수 있다. 즉 이와 기는 형이상학적 측면 혹은 가치 측면에서 불평등의 차등 관계를 갖는다.











자료 14 성리학의 기질지성과 본연지성

현실적으로 인간은 선한 정도가 모두 다르며 선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 이 점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주희는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이와 기로 이루어진다는 점을 토대로 설명한다. 성은 이와 기의 합인 마음의 본체이기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든 기와 연계되어야 한다. 그는 일단 이와 기가 결합하여야만 현실적인 사물의 본성이 된다고 보았다. 그런데 이와 기가 결합하면, 기의 맑고 탁한 정도에 따라 그 선함이 구현될 수도 있고 가려질 수도 있다. 99%의 맑은 기와 결합하면 이의 선함이 99% 발휘되며, 기가 아주 탁한 경우에는 이의 선함이 거의 발휘될 수 없다. 이와 같이 현실적으로 기에 의하여 한정을 받는 이를 ‘기질지성(氣質之性)이라고 부른다. 기질지성은 기질의 맑고 혼탁함에 따라 천차만별의 가치를 갖는다.
그러나 기질과 결합되었다고 해도 그 이의 선함이 손상되는 것이 아니다. 그 이를 논리적으로 기와 분리시켜 이만 가리킨 것을 ‘본연지성(本然之性)’이라고 부른다. 본연지성은 절대 선이다. 주희는 맹자가 ‘성선(性善)’이라고 말한 바의 성이 바로 본연지성이라고 말한다. 이와 기의 관계성을 대입시키면, 기질지성은 이와 기가 ‘분리되지 않음’에 해당되며, 본연지성은 ‘섞이지 않음’에 해당된다. 가령, 혼탁한 물이 담긴 컵 속에 다이아몬드가 있다고 가정해 볼 때 이 혼탁한 물에 담긴 다이아몬드가 바로 기질지성이다. 그러나 다이아몬드는 아무리 혼탁한 물속에 잠겨 있다고 해도 본래의 모습과 성질은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눈에 보이는 물을 관념적으로 제거한 다이아몬드 그 자체가 본연지성이다. 그리고 물과 다이아몬드가 담긴 컵은 심(心)이며, 물은 기, 다이아몬드는 이에 해당된다.





자료 15 성리학의 ‘경(敬)’ 사상

아무리 탁한 물도 정수기를 통과하면 맑게 정화된다. 다시 말해 탁한 기도 맑게 정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성리학에서 말하는 수양이다. 그리고 정수기에 해당하는 것, 즉 수양의 매개가 예·음악, 경서 등이며, 교육 및 넓은 의미의 정치 행위도 여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므로 유학에서는 현실적으로 아무리 악한 인간도 본성 자체는 선하기 때문에 수양을 통하여 본래의 선한 본성을 실현시켜 성인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성리학의 수양 이론 중 특기할 만한 것은 ‘경(敬) 사상’이다. 진순(陳淳)은 “마음은 한 몸의 주재이다.”라고 하였으며, “경(敬)은 한 마음의 주재요, 만사의 근본이다.”라고 하여 경이 마음을 주재하고 마음이 몸을 주재하는 관계의 질서를 제시하였다. 여기서 경은 마음과 분리되어 마음 바깥에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경은 마음이 스스로 자신을 통제하여 응집시키는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경은 인간의 마음을 거두어들이고 통제하는 마음 자체의 구심점이며, 마음을 최고의 상태로 각성시키고 통일시키는 중심축으로 이해할 수 있다.
경의 기본적인 실천 방법으로는 정이천(程伊川)이 말한 “하나를 주장으로 삼아 다른 것에 분산되지 않는다.”는 ‘주일무적(主一無適)’과 “몸가짐을 단하고 가지런히 하며 마음을 엄숙하게 한다.”는 ‘정제엄숙(整齊嚴肅)’의 과제가 있고, 또 윤순(尹淳)이 말한 “그 마음을 수렴한다.”는 ‘기심수렴(其心收斂)’의 방법과 사양좌(謝良佐)가 언급한 “항상 깨어 있는 방법”인 ‘상성성법(常惺惺法)’을 들 수 있다. 여기서 ‘주일무적’은 마음의 집중된 상태를 말하고‘, 기심수렴’과 ‘상성성법’은 마음이 각성된 상태를 가리키며‘, 정제엄숙’은 마음과 거동의 안팎으로 함께 드러나는 태도를 보여 주는 것이다.






자료 16 양명학을 세운 왕수인

왕수인은 원 왕조와 청 왕조를 잇는 명 왕조 시대의 거의 중간 시기를 살면서 활약한 사람이다. 왕수인은 5세가 되어서도 말을 하지 않았다. 어느 날 운(雲, 왕수인의 첫 이름)이 근처 어린아이들과 어울려 놀고 있을 때 스님이 지나가면서 그 모습을 보고 “이 아이는 좋은 아이인데 도파(道破)를 했구나!”라고 말했다. 도파란 “입 밖으로 발설했다.”는 의미이다. 즉 태몽을 누설해서는 안 되는데 ‘운’이란 이름을 지어서 사람들에게 그 비밀을 밝혀 버렸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듣고 조부가 이름을 ‘수인’이라 고치자 말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왕수인은 27세가 되자, “엄숙한 상태에서 뜻을 간직하는 것이 독서를 하는 근본이고, 차례에 따라 정미함을 이루는 것이 독서하는 방법이다.”라는 주희의 독서 방법에 충실하려고 하였으나 여기서도 그는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하고, “사물의 이치와 나의 마음이 끝내 둘로 분리되어 통일되지 않는다.”는 철학적인 고뇌를 하게 된다. 이러한 자각은 이전에 주자학 공부를 하다가 그것을 실천하는 방도로 대나무를 앞에 두고 심사숙고하며 부딪힌 문제의 핵심을 보다 명료하게 만든 셈이다. 이것은“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에도 모두 이치가 있다.”, “일과 일, 것과 것에는 모두 일정한 이치가 있다.”는 주희의 이른바 정리론(定理論)을 정면에서 회의해 보는 중요한 일이었다. 이로 인해 그는 침울해졌고 신경이 쇠약해졌다. 왕수인은 자신이 성현이 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고, 도교의 도사가 양생(養生)을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는 마침내 세상을 버리고 입산할 뜻을 품었다. 왕수인은 신경 쇠약과 같은 심신상의 문제 그리고 학문적 고뇌 때문에 도가의 양생술(養生術)과 마음의 평정을 구하기 위해 불교에 심취하기도 하였다.






자료 17 왕수인의 격물치지(格物致知)

어느 날 밤 왕수인은 가르침을 구하려고 맹자를 만나러 가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그 꿈속에서 맹자는 왕수인을 위해 간절하고도 정중하게 ‘양지’ 부분을 강의했고, 여기서 왕수인은 성리학에서 말하는 ‘격물치지’의 참뜻을 깨달았다고 한다. 왕수인은 ‘격물’을 “사물을 바로잡는다[正].”라고 읽었다. 즉 격물은 자기 마음속의 올바르지 못함[不正]을 바로잡는 것이다. ‘치지’란 맹자가 말하는 ‘양지(良知)’를 발휘하는 것이다. 왕수인은 이런 사실을 깨달았을 때 너무 기뻐서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를 질러 주위의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왕수인은“성인의 도리는 나의 본성만으로 충분하며, 이전에 바깥의 사물에서 이치를 구한 것은 잘못이라는 것을 비로소 알았다.”라고 하였다. 이것이 바로 “내 마음이 곧 이치이다.”라는 심즉리(心卽理)의 근본이다. 예컨대 지난날처럼 ‘대나무에 이르러(=격물)’‘, 대나무의 이치를 궁구하는 (=궁리)’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그대로 이치이다.’라는 자각으로 인해 하나의 커다란 사상적 전환점을 마련한 것이다. 여기서 주희의 이론은 부정되며, 주자학과 결정적으로 대립하게 된다.





자료 18 왕수인의 양지(陽地)
왕수인에 의하면, 양지란 맹자가 말한 시비지심(是非之心)으로 사람은 누구나 그것을 가지고 있다. 그





것은 숙고하지 않아도 알 수 있고 배우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이는 바로 하늘이 명한 성(性)이며, 내 마음의 본체이다. 왕수인은 양지(良知)를 모든 사람의 마음에 선천적으로 주어진 것으로, 천리에 대한 명석한 영적 각성으로 여겼다. 천리에 대한 영각으로서 양지는 천지 만물에 대한 인류애적 감정, 시비(是非)의 분별력, 효도나 공경, 측은과 같은 도덕적 의무 및 감정 등이다. 또한 이러한 양지는 만 가지 이치의 근거가 되고, 행위의 옳고 그름의 평가 기준이 된다. 따라서 양지는 도덕적 행위를 위한 주관적 준칙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왕수인에 의하면 양지는 그 자체로 목적이고 본질적인 선이며, 다른 것을 위한 수단적·조건적 선이 아니다. 마치 자나 저울이 온갖 사물의 장단과 경중을 잴 수 있듯이, 양지는 온갖 선악을 평가하고 시비를 판단하며, 자신의 덕성을 밝히고 백성을 친애하게 하는 궁극적이며 주관적인 준칙이다. 따라서 모든 사물의 이치와 행위의 시비는 양지에 비추어 결정된다. 양지, 인(仁) 등은 천지의 생성, 조화의 존재론적 원리로서 그 자체가 무한한 창조적 기능을 하고 있으며 스스로 작용한다. 따라서 그로부터 무한한 개별적 이치와 시비가 분별되고, 천지만물을 일체로 삼는 인심(人心)이 다양한 형태로 구현된다.




자료 19 고자의 성무선악설

“맹자”에는 고자의 인성론에 대해서 언급되어 있는데, 여기서 고자는 인간의 성(性)에는 선도 악도 없다[性無善惡]고 주장하며, 식욕과 성욕의 생리적 욕망이 인간의 성품이라고 보았다. 고자에 의하면, 인간의 본성은 마치 갇힌 물과 같아서 터주는 쪽으로 흘러가게 되며, 버드나무로 바구니를 만들 때 버드나무 속에 바구니가 들어 있지 않은 것과 같이 인간의 성(性)에는 인이나 의와 같은 것이 들어 있지 않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므로 악해질 수 있는 인성의 교화가 필요하며, 교화를 할 때는 버드나무를 뒤틀어 바구니를 만드는 것과 같이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나아가 그는 인(仁)은 내적인 것이며, 의는 외적인 것이라고 주장하였다[仁內義外說]. 그에 의하면 “내 동생이면 사랑하고, 남의 동생이면 사랑하지 않는 일이 있으니 이는 사랑한다는 것이 나의 마음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은 내 마음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초나라의 어른도 어른으로 받들고, 내 어른도 어른으로 받드는 것은 받든다는 것이 어른이라는 것에서 나왔기 때문에 의(義)는 외부에 있다는 것이다.”라고 주장하였다. 즉 인과 의는 선천적으로 인간에게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형성되는 덕목으로 본 것이다. 가령 사람이 연장자를 존경할 수 있는 것은 사람들로부터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듣고 배움으로써 연장자는 존경을 받아야 한다는 도덕관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고자의 주장에 대해 맹자는 사람 중에 선하지 않은 사람이 없는 것과 같이 아래로 흘러가지 않는 물이 없으며, 버드나무에 휘는 성질이 없다면 어떻게 바구니를 만들 수 있겠느냐며 반론을 제기하였다. 또 맹자는 인과 의 같은 덕목에 대해서도“진나라 사람이 구운 고기를 즐기는 것이나 내가 구운 고기를 즐기는 것이나 즐기는 것에는 다를 바가 없다. 그렇다면 구운 고기를 즐기는 마음도 역시 외재적인 것이냐?”고 반문하며 고자를 비판하였다. 맹자는 인과 의는 인간이 태생적으로 지닌 것으로 사람은 누구나 양지(良知)와 양능(良能)으로 인하여 부모를 섬길 줄 알며 연장자를 존경하는 것도 일정한 연령에 도달하면 자연히 알게 된다고 보았다.
성이란 선, 악, 무선무악, 유선유악 등으로 명확하게 구분하여 논증될 수 없는 형이상의 문제이다. 어떤 학설이 옳은지도 명확하게 주장하기 어렵다. 다만 고자 역시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맹자와 다르지 않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자료 20 차별 없는 사랑을 강조한 묵자

묵자(기원전 476~기원전 390)는 춘추 시대 말~전국 시대 초를 풍미했던 사상가로서, 당시 사회가 지닌 많은 문제점을 제자(諸子)들과는 또 다른 관점에서 진단하고 그것을 치유하기 위한 혁신적 이론들을 제기하였다. 묵자는 당시 사회에 큰 파란을 일으켰으나, 진한(秦漢) 이후 그의 이론은 합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였다. 묵자는 “강자가 약자를 짓밟고, 부유한 자가 빈곤한 자를 업신여기며, 귀한 자가 천한 자를 유린하며, 교활한 자가 어리석은 자를 농락하는” 사회적 현실과 “지친 자는 쉬지 못하고, 주린 자가 배를 채우지 못하며, 추운 자가 옷을 입지 못하는” 개인적 불행이 발생한 근본적인 이유로 “서로 사랑하며, 이익을 나누려는” 정신이 결핍되어 실천되지 못한 것이라 지적하였다. 그리고 나와 남을 구별하지 않는 ‘겸애(兼愛)’로써 개인과 개인, 개인과 사회, 사회와 사회가 지닌 모순과 대립을 극복하여 도덕적이고 평화로운 질서를 되찾고자 하였다. 또한 묵자는 생산과 생산력의 중요성을 가장 먼저 인식한 중국 사상가로서, 물질적 조건이 인간의 윤리적 삶과 사회 제도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다고 보았다. 따라서 묵자는 통치자들의 사치와 낭비를 통렬하게 비판하고, 그것이 국가와 사회, 백성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속속들이 밝혀냈다. 특히 유가의 사치스러운 예(禮)와 악(樂)을 피함으로써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제도를 갖추고자 하였으며, 사회적 재화와 백성의 노동력을 보호하고자 하였다.







자료 21    묵자의 절용(節用) 사상

 

묵자는 옛날의 성왕(聖王)들은 항상 검소하고 절약하였으며, 항상 백성의 이익이 되는 것에만 관심을 두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백성의 이익을 배로 증대시키는 길은 절약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리하여 재물을 낭비하게 하는 유가의 성대한 의식을 비판하였다.
옛날의 왕과 성인(聖人)이 천하의 왕이 되고 제후들의 수장이 된 이유는 백성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두터이 이롭게 하고, 충성과 믿음을 서로 연결시키고, 또 그들에게 이익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평생토록 싫어하는 자가 없었고 후세에도 싫증을 내는 사람이 없었다. 옛날에 밝은 왕과 성인이 나라를 다스리고 제후들을 바로잡은 방법은 바로 이것이었다.
…(중략)…
옛날 성왕(聖王)들은 먹고 마시는 법칙을 제정하여 말하기를 “배고픔을 채우고 기운을 돋우며 팔다리를 강하게 하고 귀와 눈을 밝게 하는 정도에서 그친다. 다섯 가지 맛과 향기의 조화를 다하지 않고, 먼 나라의 진귀하고 특이한 물건을 쓰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묵자”, ‘절용’






자료 22 유가의 애인(愛人)과 묵가의 겸애(兼愛)

전국 시대 유가와 묵가는 현학(顯學)으로 병칭되었다. 양가 학술의 주된 요지는 당시 사람들에게 “공자는 인(仁)을 귀하게 여기고, 묵자는 겸(兼)을 중시한다.”로 귀납되었다. 공자는 “사람을 사랑할 것[愛人]”을, 묵자는 천하가 “서로 사랑할 것[兼相愛]”을 주장하였다. 얼핏 보면 양 학파의 주장은 매우 흡사하다. 그러나 자세히 분석해 보면 양자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유가의 ‘애인(愛人)’설은 “사랑에는 차등이 있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인 데 반해, 묵가의 ‘겸애(兼愛)’설은 “사랑에는 차등이 없음”을 주장하는 것이다. 공자는 “널리 사람을 사랑하되 어진 이를 친히 여겨라.”고 말했지만, 그것이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사랑하라는 것은 아니었다. 공자와 맹자는 사랑에는 차등이 있음을 주장하였는데, 즉 자신을 기점으로 하여 다른 사람에게 미루어 나가는 것으로[推己及人], 가까운 곳에서부터 먼 곳으로 점점 확대해 나가는 것이었다. 사랑의 선후, 정도의 멀고 가까움에 따라 사랑에는 차등이 있게 마련이었다. 예를 들면 자신의 부모에 대한 사랑과 타인의 부모에 대한 사랑에는 선후, 친소, 후박(厚薄)의 구분이 있다. 이런 것은 유가에게 있어 뒤바뀔 수 없는 것이고, 완전히 예에 부합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묵자의 ‘겸애’는 원근, 친소를 구분하지 않는다. 그는 말하기를 “남의 나라 보기를 자신의 나라를 보는 것처럼 하고, 다른 집안 보기를 자신의 집안을 보는 것처럼 하며, 다른 사람의 몸을 보는 것을 자신의 몸을 보는 것처럼 한다.”고 하였다. 그는 또한 자신과 다른 사람의 부모를 대하는 것을 예로 들며 말하기를 “반드시 내가 먼저 다른 사람의 어버이를 사랑하고 이롭게 하는 일에 종사한 연후에 다른 사람도 나의 부모를 이롭게 하고 사랑하는 일로써 나에게 보답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유가는 찬성할 수 없었으며, 이는 “근본을 두 개로 설정하는 것”, 즉 두 부모를 승인하는 것과 같다고 배척하였다.





자료 23 한비자의 주요 사상

한비자는 당시 사회를 구제하는 데 있어 유가나 도가의 주장으로는 도저히 될 수 없고 오직 법치주의로써만 가능하다고 확신하였다. 그것은 인간의 이기적 근성의 일면을 본 순자의 성악설을 계승하였기 때문이다. 한비자는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고 규정하였으므로 그 악을 제거하는 데는 공자의 인이나 맹자의 인의, 순자의 예 등의 윤리적 제재보다는 법률적 제재를 가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보았다. 그는 인간이 남을 위해 봉사하고 희생하는 그 자체도 이기심에서 기인한다고 보았다. 또한 백성이 범법 행위를 하는 것은 형벌이 가볍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작은 물건이 길 위에 떨어져 있다면 누구나 그것을 주우려 할 것이다. 그러나 빨갛게 타고 있는 백량의 황금이 있다면 화상이 두려워 어떤 도둑이라도 손을 대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이 해를 받을 염려가 없으면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그것을 취하는 데 주저하지 않으나, 해를 받을 것을 알면 어떠한 대금이라도 줍지 않을 것이다.
한비자는 법과 술을 겸하여 나라를 다스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 법이 제정되면 군주와 법관은 오직 그 법을 주저 없이 집행해야 하며 그 어떤 정황도 고려해서는 안 된다. 군신 간에는 전혀 사의(思義)가 없고, 법에 의한 이해와 상벌만이 있을 뿐이다. 통치자가 신하를 제어하는 통치술로써 신하는 반드시 악한 것이고 군주의 지위를 탐한다는 점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아무리 작은 죄라 할지라도 반드시 벌해야 한다고 보았다.






자료 24  인간은 이해(利害)를 따져 행동하는 이기적 존재!

•사람은 이기적 목적으로 주고받는다. 이해관계가 맞으면 낯선 사람이라 할지라도 서로 화목하게 살 것이고, 이해가 충돌한다면, 아비와 자식이라도 서로 충돌할 것이다.
•수레 만드는 기술자는 사람들이 모두 부귀해지기를 바라고, 관을 짜는 기술자는 사람들이 일찍 죽기만을 기다린다. 수레 만드는 사람이 더 착하고 관 만드는 사람이 더 악해서가 아니다. 사람들이 부자가 되지 않으면 수레가 팔리지 않고, 사람들이 죽지 않으면, 관이 안 팔린다. 종사하는 일의 업종에 따라 이해타산이 다르다. 이해 때문에 결과적으로 사람이 선해질 수도 악해질 수도 있다.
•뱀장어는 뱀을 닮았고, 누에는 송충이와 흡사하다. 사람들은 뱀을 보면 깜짝 놀라고, 송충이를 보면 소름이 오싹 끼치지만, 고기잡이는 뱀장어를 손으로 주무르고, 여자들은 누에를 손으로 만진다. 이득이 생기기만 하면 사람은 누구나 최고의 용사가 되는 것이다.                               -“한비자”-








자료 25 풍류도

한국 사상사는 유·불·도 삼교를 주도로 하여 전개되어 왔다. 그러나 심층에는 외래 사상을 수용하기 이전, 한민족 고유의 원초적 사유가 작동하고 있었다. 신라 말의 대표적인 지식인 최치원은 ‘난랑비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현묘한 도가 있으니, 이를 풍류(風流)라고 한다. 이 풍류 사상은 유교와 불교, 도교를 포함한 것으로, 많은 사람들을 교화하였다. 가정에서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고 나라에 충성을 다하는 것은 공자의 가르침과 같으며, 모든 일을 순리에 따라 묵묵히 실행하는 것은 노자의 가르침과 같고, 악한 행동을 하지 않고 착한 행실만을 신봉하면서 열심히 살아가는 것은 석가모니의 가르침과 같다.
최치원에 의하면, 풍류도에는 유·불·도 삼교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고유 사상과 외래 사상을 엄격히 구분하는 측면에서 보자면, 유․불․도 삼교를 우리 고유의 것으로 단언하기는 어렵겠지만, 유·불·도는 우리 민족 본유의 정신과 괴리되지 않는 전통 사상이라고 하여도 무방하다. 다시 말해 위의 글에서 ‘현묘한 도’라고 표현된 한민족의 원초적 사유가 없었다면 우리는 한국 사상의 정체성을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사상이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사상은 ‘시대의 산물’로 하나의 사상 체계는 그 시대가 제기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창조적으로 구축된다. 풍류도와 같은 한민족의 원초적 사유와 역사적 경험이야말로 중국에서 발원한 유교와 도교, 그리고 인도에서 시작되어 중국을 경유하여 전래된 불교를 ‘한국의 사상’으로 정립시킨 기제들이라고 할 수 있다.






자료 26 한국 성리학의 수용과 전개

성리학의 한국적 수용과 발전 과정을 살펴보면 고려 말 안향이 중국 연경에 이르러 주희의 저술을 보고 이를 베껴 가지고 돌아온 것이 주자서(朱子書) 전래의 처음이라고 한다. 안향은 성리학이 오륜(五倫)의 도리를 밝히고 불교를 배척한 것을 극구 찬양하면서, 불교가 어버이를 버리고 출가하는 것을 인륜을 저버리는 행위라고 하여 매섭게 비난하였다. 이후 조광조에 이르러 성리학은 윤리적 측면에서 발전하여 도학(道學)으로까지 심화되었다. 도학은 단순한 윤리 사상이나 의(義)와 이(利)를 상대적으로 분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본심 내부에 있어 순일(純一)하고 무잡(無雜)한 내면에서 성찰(省察)하고 존양(存養)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때의 성리학은 윤리적 차원을 넘어 신성한 종교적 차원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조광조는 도학 사상으로 윤리를 넘어 생사(生死)를 초월한 경건한 태도로 의리를 높이고 권세를 천하게 보며 도심(道心)을 높이고 인욕을 제거하여 성인(聖人)의 도를 따르고자 하였다. 구한말 의병들이 활동할 때 그 격문을 보면 이러한 조광조의 정신을 준거로 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조광조 이후 이황과 이이가 등장한 16세기는 성리학의 전성기를 이루었고, 한국 유학계의 군현(群賢)을 배출한 황금 시대라고 할 수 있다. 그 심원한 철학 사상과 정신세계는 세계 철학 정신사에 있어서도 불멸의 업적을 남겼다고 할 것이다. 이중에서도 이황과 이이는 절정기의 쌍봉으로 후기 한국 사상계에 주벽(主壁)을 이룬 것이라 하겠다. 뿐만 아니라 이들의 사상은 해외로까지 전파되었으며, 이황의 성리학은 일본에 전래되어 일본의 학술 사상과 정치 교육의 교학 사상으로 연원을 이루게 하였고, 일본 문화를 순화하였다. 이이의 철학 사상은 그가 생존하던 당시부터 그 명성을 중국에까지 드날려 동방의 천재적 철인으로 그 빛을 발하게 하였다.








자료 27 이황의 생애

이황이 출생하기 3년 전에 무오사화가 일어났고, 4살이 되던 해 갑자사화가 일어나 많은 선비들이 희생되었다. 또 19살 때에는 기묘사화, 45세 때에는 을사사화가 일어나 전국의 사람들이 화를 입게 되었다. 이처럼 이황은 생애 대부분을 사화 속에서 보내게 되었다. 50세 이후 말년에 이황이 은퇴하게 된 동기는 소극적으로 현실을 버렸다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혼탁한 정쟁의 와중에서 섞이지 않고, 겸선(兼善)이 되지 않는다면 차라리 독선(獨善)을 취하며, 나아가 인재를 교육하고 의(義)와 이(利)가 혼돈된 사회 풍조에 있어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를 분명히 하여 학술적으로 진리를 밝히며 가치 체계를 잃지 않으려는 적극적 의지와 견고한 각오였다고 평가해야 할 것이다. 그는 서울에서 벼슬을 하고 있을 때에도 항상 고향에 돌아가고자 하였고, 고향에 돌아가면 다시 나라에 대한 걱정이 든다고 하였다. 군자가 은거하는 것은 범인이 은거하는 것과는 다른 뜻이 있으며, 들어와 은퇴하였다 하더라도 숨은 공부가 있어야 한다고 제자들과 문답한 바도 있다. 이 숨은 공부에는 다름 아닌 적극적으로 학문과 교육, 교화를 통해서 진리의 표준을 높이 드러내고 사회를 바로잡겠다는 의지가 내포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황의 사상과 저술들은 이 같은 상황에서 이를 치유하고 바로잡고자 하는 철학 정신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라 하겠다.








자료 28 이황의 사단칠정론

사단칠정론은 조선 최대의 학술 논쟁으로서 조선 성리학을 성립시키고 이른바 영남학파와 기호학파라는 학파가 형성되는 계기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조선 후기 학파(學派)와 정파(政派)가 일치하게 됨에 따라 성리학적 이상 정치의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는 학설로서 기능하게 되었다. 당시 조선 사회가 제기한 문제를 이론 체계에 의하여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성리학이 창조적으로 재해석됨으로써 조선의 성리학으로 토착화되는 기초가 마련된 것이다.
이황은 1553년 정지운이 “천명도설”에서 “사단은 이에서 발하고, 칠정은 기에서 발한다.”라고 말한 구절을 “사단은 이가 발한 것이고, 칠정은 기가 발한 것이다.”로 수정하였는데, 1558년 기대승의 지적을 받은 후 “사단의 발은 순수한 이이기 때문에 선하지 않음이 없고, 칠정의 발은 이와 기를 겸하기 때문에 선악이 있다.”라고 다시 수정하였다. 이에 대하여 기대승이 비판의 글을 보내오자, 이것으로 사단·칠정 논쟁이 시작된다. 기대승은 이황이 사단과 칠정을 대립시키는데, 그 근거를 각각 이와 기에 둠으로써 이기를 두 개의 존재로 나누어 인식하는 오류를 범했다고 비판하였다. 이에 대해 이황은 이기는 분리될 수 없으나 본연지성은 이기가 부여되어 있는 가운데 나아가 이의 ‘원두본연처(源頭本然處)’를 가리켜 말한 것이다. 따라서 가리키는 바가 이에 있음으로 ‘본연지성은 이’라고 하여 순수선성을 확보한 것과 같은 논리로, 사단은 이발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하였다. 또한 사단은 인·의·예·지의 성에서 발현되어 나오는 것이며, 칠정은 외물에 촉발되어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사단과 칠정은 모두 이기를 벗어나지 않지만, 그 근원처를 근거로 하여 각각 그 주로 하는 바와 중요하게 여기는 바를 가리켜서 말한다면 ‘사단은 이, 칠정은 기’라고 말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하였다. 이황은 다시 “사단은 이가 발함에 기가 따르는 것이고 칠정은 기가 발함에 이가 타고 있는 것이다.”라고 자신의 주장을 수정하였으나, 근본 입장이 바뀐 것은 아니다. 사단은 이와 기가 함께 있는 가운데에 이를 주로 말한 것이며, 칠정은 기를 주로 하여 말한 것으로서, 이와 기가 현실적으로 분리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말하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양자를 엄밀히 구분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자료 29 이이의 생애

이이는 49세에 세상을 떠났지만, 정확하게 계산해 보면 47년하고 21일간의 짧은 생을 살았다. 소년기에는 배움을 닦아 가던 시기로 일찍부터 그의 천재성이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청년기는 불교에 깊이 빠져 금강산에 입산하였다가 도학(道學)으로 돌아와 학문 연마에 정진하였고, 이황을 찾아가 학문의 길을 물었던 탐색의 시기로 이 시기에 과거 시험에 장원으로 합격하기도 하였다. 중년기는 그의 생애에서 가장 빛나던 활동의 시기로 조정에서 정치를 논하는 중심에 자리 잡았고, 해주에 내려가 제자들을 가르치는 강학 활동을 하였는데, 그의 중요 저서들도 대부분 이 시기에 저술되었다.
그의 일생 가운데 가장 특기할 만한 것은 그가 23세 되던 해에 이황을 방문한 사실이다. 당시 이황은 58세로 당대에 가장 명망 높은 원로 석학이었고, 이이는 일찍부터 천재로 이름을 떨치던 청년이었다. 이이
는 이황을 일부러 찾아간 것이 아니라, 지나가던 길에 다소 가벼운 마음으로 방문했는지 모르지만, 이황

은 이이의 영민한 재주와 학식에 감탄하고 무척 반겼던 모양이다. 이 자리에서 이황은 수양론의 중심 주제인 ‘한결같음을 주장으로 삼아 모든 변화에 대응한다.’의 뜻을 묻기도 하고, ‘다리 살을 베어 어버이의 병을 치료하는 일’이 중용의 도에 맞는지 여부를 토론하기도 했다. 또한 이이는 이황을 만난 자리에서 자신이 불교에 빠져 금강산에 입산했었던 사실까지 솔직히 털어 놓으면서, 그 과오를 깨닫고 유교의 가르침으로 돌아왔음을 밝혔으며, 이황에게 학문의 길을 물었다.

자료 30 이이의 사단칠정론

이이는 ‘사단’과 ‘칠정’의 관계를 두 방향으로 갈라져 나간 대립적 감정이 아니라 칠정 가운데서 인간의 도덕적 평가에 따라 선한 감정만을 표출시킨 것을 ‘사단’으로 파악하였다. 이처럼 이이의 사단과 칠정의 관계에 대한 인식은 이 감정들이 하나의 근원에서 발생되어 나온 것으로, 본래 같은 차원이요 동일한 위상을 차지하는 것이라고 본 것이다. 다만 선악의 도덕성에 따른 평가에서 차이를 드러내는 것으로 구별하고 있을 뿐이다.
이황에 의하면, “사단은 이가 발함에 기가 따르고, 칠정은 기가 발함에 이가 탄다.”고 하였는데, 기가 발함에 이가 탄다는 주장은 옳다. 그러나 칠정만 그런 것이 아니다. 사단도 기가 발함에 이가 타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는 것을 본 뒤에야 측은한 마음을 발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보고 측은히 여기는 것은 기이므로 기발이라는 것이고, 측은한마음의 근본은 인(仁)이므로 이것을 이발이라고 한다.
이이는 사단과 칠정이 각각 부분적인 정과 전체적인 정이 있는데, 부분과 전체를 대비하는 것이 잘못이고, 또 대비할 수 있다 하더라도 이발이라고 한 것은 더욱 잘못이라는 것이다. 정은 기발에서 작용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보기에 정이 발할 때 발하는 것은 기요 발하는 까닭은 이다. 기가 아니면 발할 수 없고, 이가 아니면 발할 까닭이 없다. 따라서 이이는 ‘기발이승일도설(氣發理乘一途說)’만을 인정하게 된다. 그는 이러한 그의 생각에 대해 성인이 다시 나오더라도 바꿀 수 없다는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도 하였다.













자료 31 조선 성리학자들의 도가 철학에 대한 인식

‘숭유억불(崇儒抑)’과 ‘사문난적(斯文亂賊)’이란 말이 상징하듯이, 거칠게 말하면 조선 시대 500년은 전반적으로 주자학이 지배했고, 상대적으로 도가 사상과 불가 사상은 이단(異端)으로 여겨져 배척당했다. 하지만 정조(正祖)는 “노·불(老佛)을 이단이라고 하는 것은 진실로 그 말류의 폐단을 말하는 것이지 처음 입각처에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여 이단에 대한 개방적 태도를 보였다. 더 나아가 노·불은 유학과 함께 풍속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권면하는 공통적인 공효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등 시대가 변함에 따라 조선 초부터 이어져 내려 온 도가 사상이나 불가 사상에 대한 벽이단적 사유는 변하게 된다. 도가 사상에 대한 조선 성리학자들의 태도는 대체로 세 가지로 나누어 고찰할 수 있다.
먼저, ‘유가 우월주의 입장에서의 벽이단적 사유’이다. 즉 성리학의 이기론적 차원에서 이(理)의 우월주의를 강조하면서, 도가 사상을 기(氣)적 측면에서 이해하고 이단시하는 입장이다. 조선 초 정도전을 비롯하여 이황 등이 이런 입장을 취했다. 이들 비판의 특징은 주로 도가 사상이 우주론과 윤리론의 측면에서 유가와 ‘차이점’을 보이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다음은 ‘유가적 입장에서 노장을 포용하는 입장’이다. 이들은 주로 유가와 도가와의 차이점보다는 ‘같은 점’에 주목한다. 이런 입장은 흔히 유가 입장에서 ‘노자’를 이해한다는 ‘이유석노(以儒釋老)’의 입장에 속한다. 물론 ‘이유석노’의 입장에서도 도가를 비판하는 입장이 있지만 주로 포용하는 측면이 많다. 율곡 이이가 대표적이며, 그는 일정한 주제를 설정하고 그것에 맞는 내용을 “도덕경” 81장에서 뽑아 그것을 자신의 철학 체계 속에서 새롭게 장을 나눈 “순언”을 집필하였다. 이것은 조선 시대의 유학 이외의 학문은 곧 이단이라는 사회적 금기와 학문적 폐쇄성을 깨고 노자 사상의 효용성을 긍정하는 입장이다.
끝으로 ‘객관적으로 도가 사상을 이해하는 입장’이다. 박세당, 홍석주 등이 이런 입장에 속한다. 이들은 객관적인 입장에서 유가 사상과 노자 사상의 동이점을 분명하게 드러내고자 한다. 이런 입장에서도 유가 우월적 사유가 있기는 하지만, 이전에 비해 도가 사상을 이해하는 데 있어 최대한 객관성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특히 박세당은 조선 시대에 유일하게 “도덕경”과 “장자”를 주석한 인물이다. 그는 “노자의 도는 비록 성인의 법에 맞지 않으나, 노자의 뜻은 유가와 같이 ‘수신치인’하는 데 있었다.”고 말하여“도덕경”에 담긴 ‘수기치인’적 요소를 강조하였다.







자료 32 한국의 양명학

양명학이 우리나라에 전래된 시기는 대체로 양명학의 창시자인 왕수인이 생존해 있던 1521년 전후로 추정된다. 당시 조선 시대는 세조의 왕위 찬탈 사건을 위시하여 계속되는 사화(士禍) 등으로 통치자의 도덕성 문제가 중요한 정치적 과제로 등장하였으며,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이황을 중심으로 한 성리학자들은 통치자의 도덕성을 바탕으로 하는 도학 정치를 제도적으로 정착시켜 정치적 안정을 꾀하고 있었다. 따라서 성리학을 반대하는 양명학이 전래 초부터 성리학자들에 의해 핍박을 받은 것은 당시 조선의 시대적 상황으로 보아 당연한 결과였다. 이로 말미암아 중국이나 일본과는 달리 우리나라에는 양명학이 뿌리를 내릴 수 없었으며, 양명을 공부하는 학자들조차 양주음왕(陽朱陰王)의 형태로 숨어들게 되었다.
양주음양은 겉으로는 성리학자이지만, 속으로는 양명학자라는 뜻인데, 성리학자를 표방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었던 시대의 반영이었다. 그러나 성리학의 핍박에도 굴하지 않고 조선 시대의 양명학자들은 때로는 국정에 참여하여 자신의 뜻을 피력하기도 하였고, 때로는 사회 현실에 뛰어들어 당시의 직면한 문제들을 해소하고자 노력하기도 하였다.
가령 정제두의 경우, 내실(內實) 사상에 입각하여 현실의 문제에 있어 농업 정책의 모순에 대한 개선책이나 사회적 노비 제도의 개선 등을 제시하여 백성들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자 노력하였다. 조선의 양명학에 대한 연구가 급물살을 타기 시작한 것은 일제 강점기인 1930년대에 와서 정인보(鄭寅普)와 이능화(李能和)에 의해서였다. 그들의 연구는 조선 시대의 양명학파에 대한 최초의 연구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며, 이를 계기로 조선 시대의 양명학자들에 대한 연구가 점차 활성화되기 시작하여 1950년대 이후에는 그동안 가려져 있던 조선 시대 양명학의 실상이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자료 33 실학사상

성리학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한자 문화권에 있어서 하나의 보편성을 가지다시피 하였다. 말하자면 성리학은 동양에 있어서 중세적 세계주의를 이루고 있었다. 이러한 바탕 위에 우리나라 봉건 교학의 절대적 권위주의가 구축되고 있었다. 이에 대해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주체적 자각이 절실히 요망되었고, 이에 따라 현실성을 상실한 학문을 바로잡고 자아의 각성으로 우리의 현실에 입각한 실제적인 사고를 세우기 위해서 새로운 학풍, 즉 실학이 일어나게 된 것은 역사를 통한 우리 민족의 예지의 발휘로서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그 여러 갈래의 유파 가운데 경세치용을 중시하는 것을 실학이라 하고, 혹은 이용후생의 학, 구체적으로 농업과 공업, 상업에 관학 학문을 실학이라 하고, 또는 실사구시의 금석과 고증학을 실학이라고 생각하는 등 제각기 학문 분야를 달리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념과 방법에 있어서 모두 당시의 성리학적 세계주의 속에 매몰되지 않고 새로운 차원을 지향해서 실용·실증을 창도했다는 점에 일치하고 있다.
이러한 신학풍을 실학으로 인식하고 그 의의를 높이 평가하기 시작한 것은 애국 계몽기의 선각자들에 의해서였는데, 애국적 선각자들은 학문적 관점에서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애국적 정치·문화 활동에 있어서도 이 신학풍을 하나의 정신적 자원으로 동원하였던 것이다. 다시 말해 실학자들이 남긴 명제들을 보면 근대화 과정에 필수적인 토지 제도, 상공업, 그 밖에 생산 기술의 개혁과 향상에 관한 것, 그리고 생활과 사상에 있어서의 실용·실증적 정신의 보급에 관한 것들이 모두 진지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이것은 애국 계몽기의 선각자들에게 현실적인 학문으로 받아들여졌으며, 따라서 그것들을 실학으로 여겼던 것이다.





자료 34 정약용의 생애

정약용은 1762년 서울 근교 마현(馬峴)에서 태어났다. 이 해는 루소가 “사회 계약론”을 출간하여 프랑스 대혁명의 이념적 씨앗을 뿌려 놓은 해이기도 하다. 정약용은 16세 때 실학자 이익의 “유고”를 읽고 실학에 심취하게 되었으며, 박지원과 박제가 등과 접촉하면서부터 그들의 영향을 받았다. 정약용은 23세 때 천주교의 서적과 서양 근대의 천문학, 수학, 지도, 시계, 망원경 등의 기물을 보았는데, 이러한 경험은 그로 하여금 부패하고 타락한 유학의 유해성을 깨닫게 하고, 중국 중심의 협소한 세계관을 수정하게 하였으며, 새로운 과학 지식과 기술의 학습으로 관심을 돌리게 하였다. 그것은 자신의 선진적인 실학사상을 한층 높은 단계로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33세의 젊은 나이에 경기도 암행어사에 임명된 그는 각 지방을 순찰하면서 극도로 피폐한 백성들의 처절한 궁핍성과 지방 행정의 부패와 난맥상을 생생하게 목격하였다. 훗날 그가 백성을 위한 진보적인 정치와 경제 개혁안을 구상하여 발표하게 된 기틀이 실로 이때 다져졌던 것이다. 강직한 성격을 타고난 정약용은 탐관오리를 발견하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색출하여 처단하였다. 이로 인해 정약용은 백성들로부터는 사랑과 존경을 받았으나 반대파들로부터는 시기와 불평을 샀다. 그의 18년에 걸친 유배 생활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유배 생활 과정에서 실학사상을 집대성하게 된다. 그는 집권자와의 타협을 거부하고, 자신의 모든 정열과 노력을 백성들의 고단한 삶을 해결할 수 있는 실학을 위해 쏟아 부었던 것이다.







자료 35 정약용의 성기호설

성리학자들은 인간의 본성을 본연의 성과 기질의 성으로 나눈다. 본연의 성은 인간이 태어날 적에 하늘로부터 타고난 천리로 순선한 것이며, 인·의·예·지의 사덕이 곧 그것이다. 또한 본연의 성은 인간과 동물 간에 차이가 없고 인간 상호 간에도 차별이 있을 수 없다. 다만 인간 상호 간 또는 인간과 다른 생물 간에 현우(賢愚)와 귀천(貴賤) 등의 차이가 있는 것은 기(氣)의 차이에 연유하는 것이다. 이것이 주희의‘성동기이론(性同氣異論)’이다. 이에 대하여 정약용은 인간만이 도의(道義)의 성과 기질의 성을 겸비하고, 동물은 오직 기질의 성만을 타고난다고 보아, 인(人)과 물(物)의 성이 본래부터 다르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도의의 성과 기질의 성은 모든 인간이 똑같이 타고나는 것이므로 인간은 선천적으로 현자와 우자, 성인과 범인의 차별이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도의의 성이란 선(善)을 좋아하고 악(惡)을 미워하는 마음으로서 인간의 마음속에 깃들어 있는 상제(上帝)의 작용에 의한 것이다. 이렇듯 인간의 선천적인 인성은 만인이 평등한 것이지만 후천적인 태도에 따라 군자와 소인의 차이가 나타난다. 즉 스스로 기질의 성을 억제하고 도의의 성을 따르는 자는 현인이나 군자가 되고, 반대로 스스로 기질의 성만을 따르는 자는 수인이나 우자가 된다. 따라서 정약용은 인간의 주체적인 도덕적 수양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정약용은 인간의 성은 선으로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마음의 경향성과 같은 것이라는 성기호설을 주장하였다. 따라서 그는 맹자가 말했던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라는 말의 참뜻은 인간이 원래 선한 것을 좋아한다는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성은 기호이다. 하늘은 사람에게 선을 하려 하면 선을 할 수 있고, 악을 하려 하면 악을 할 수 있는 자유 의지를 주었다. 그 권능이 자기에게 있어 금수의 정해진 마음과 같지 않다. 그러므로 선을 하면 자신의 공이 되고, 악을 하면 자신의 죄가 된다.
성(性)이란 마음의 기호일 뿐이다. 채소가 똥거름을 즐기고 연꽃이 물을 즐기는 것과 같이 사람의 본성은 선을 즐긴다. 지난날의 선배들이 본성을 말한 것은 모두 맹자의 본뜻과 다르다.
정약용에 의하면, 인간에게는 두 가지 기호가 있다. 하나는 영지(靈知)의 기호, 즉 영성적 또는 지성적으로 즐기고 좋아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형구(形軀)의 기호, 즉 육체적 또는 감각적으로 즐기고 좋아하는 것이다. 영지의 기호란 우리가 선을 즐거워하고 악을 미워하며, 덕행을 좋아하고 더러움을 부끄럽게 여기는 마음이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성이며, 하늘이 명한 성품이다. 이처럼 정약용의 인성론은 주희의 그것과는 다른 매우 독창적인 것이다.
인·의·예·지의 명칭은 실천이 있은 다음에 성립하는 것이다. 사람을 사랑함으로써 비로소 인(仁)이라고 할 수 있으며, 사람을 사랑하기 전에는 인이란 성립되지 않는다.
위의 진술은 성리학의 인성론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서 실천을 중시하는 정약용의 성기호설의 특징을 잘 보여 준다. 나아가 그는 “성리학은 도를 알고 자기를 인식하며 실천에 진력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성리학을 하는 사람들이 이(理)니 기(氣)니, 성(性)이니 정(情)이니, 체(體)니 용(用)이니, 본연이니 기질이니, 이발(理發)이니 기발(氣發)이니 하여 서로 조롱하고 투쟁하며 자기의 주장만 옳다고 내세워 비실용적이고 실천적인 개념의 유희(遊戱)만을 일삼아 온 폐단을 통렬히 비판하였다.







자료 36 위정척사와 이항로

서양 오랑캐가 우리나라에 잠입하여 사설(邪說)을 전파함이 어찌 다른 목적이 있어서이겠는가? 자기와 같은 무리를 심어 안과 밖이 서로 응하여 우리의 허실을 정탐하고 군대를 이끌고 오려는 것이다.                   -이항로-
이항로(李恒老)는 위정척사 사상의 거두로서 기정진, 최익현 등과 함께 이(理)를 중심으로 하는 철학을 주도한 사상가이다. 그는 “주자의 말이 아니면 감히 듣지 않을 것이며 주자의 뜻이 아니면 감히 따르지 말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철저한 주자학의 신봉자였으며 이존기비(理尊氣碑)의 주창자였다. 그의 위정척사사상은 주자를 존숭하는 존주 사상(尊朱思想)이나 이존기비론에 기반을 둔 것으로, 그 사상의 입장에 의하여 무엇이 ‘정(正)’이며 무엇이 ‘사(邪)’인가를 분별하였고, 어떻게 정을 지키고 사를 물리칠 것인가를 제기하였다. 그는 또한 일상생활에 있어서 ‘의(義)’와 ‘이(利)’의 구분을 철저히 하여 의를 실행하고 멸륜(滅倫)의 화를 불러들이는 ‘이’를 억제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는데, 그것은 ‘이’를 성명(性命)에서 근원하는 천리와 형기(形氣)에서 발원하는 사욕(私慾)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항로는 ‘이’, 즉 인욕 가운데서 가장 폐단이 큰 것으로 통화(通貨)와 통색(通色)을 들었으며, 이것은 멸륜의 화를 자초하고 인간을 금수로 떨어지게 하는 지름길이라고 하여 배척하였다. 그리고 통화와 통색을 서구인들의 전유물로 보고 위정척사에 앞장섰던 것이다. “양적(洋賊)을 격퇴하자는 것은 우리의 편이요, 양적과 화의하자는 것은 적의 편”이라고 했던 이항로의 척사론은, 그의 문인인 최익현에게 이어져 척양척왜 사상으로 발전하고, 을사보호 조약으로 국권이 상실될 때‘오도(吾道)’의 보존과 민족의 방위라는 민족주의 사상으로 발전해 나갔다.













자료 37 개화사상

처음 개화사상을 주창하고 이에 호응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1876년 한·일 간에 수호 조약을 체결한 이른바 개항 이후로는 세계의 정세에 대한 지식이 넓어짐에 따라 척사론이 비등하는 분위기 속에 심한 반발을 받으면서도 개화사상은 양반 관리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당시의 개화 운동은 크게 두 계파로 구분된다. 하나는 청에 사대적 관계를 유지하며 그 원조에 의하여 개화를 실시하려는 계파이며, 다른 하나는 보다 적극적인 정책을 실시하여 급진적으로 개화하여 청의 간섭을 배격하고, 참된 독립 국가의 건설을 목표로 개혁할 것을 주장한 일파이다. 흔히 전자를 온건 개화파, 후자를 급진 개화파라고 구별하는 데 온건 개화파는 중국의 양무 운동과 같은 동도서기적인 개화 방식을 따르려고 한 데 비해, 급진 개화파는 일본의 메이지 유신과 같이 변법적 개화를 모델로 삼으려고 하였다. 그렇지만 초기의 개화 세력은 모두 위정척사론자인 유림 세력에 대립적이었으므로 개화파라고 불렸다. 개화사상의 분화나 그것을 바탕으로 한 개화파의 분화 문제는 어디까지나 사상 관계이니 만큼, 사상적 내용이 그 구분 기준이 되어야 할 것이다. 가령 계파의 기본 정신이 자주독립을 더 중시하였는가, 서양의 과학 기술의 수용에 더 역점을 두었는가, 혹은 온건·급진 개화사상의 기본 정신이 체제내적 개량인가, 체제 변혁을 위한 개혁인가 하는 것 등이다.






자료 38 동학

동학은 최제우가 창시한 한국의 민중 종교이다. 동학이란 이름은 서양으로부터 중국을 거쳐 전래된 서학(西學), 즉 외래 종교와 학문에 대항하여 동쪽 나라인 우리나라의 도(道)와 학문을 일으켜 세운다는 뜻에서 최제우가 붙인 이름이다. 여기에는 동학 혁명의 전 과정에서 일관되게 나타난 척왜양의 반외세 사상이 소박하게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동학의 창시자인 최제우는 자신이 거느리고 있던 두 명의 여자종을 해방하여 한 사람은 며느리로, 다른 한 사람은 수양딸로 삼음으로써 모든 사람은 자기 안에 ‘하늘님’을 모시고 있다는 ‘시천주(侍天主)’사상을 몸소 실천하였다. 또 그는 보국안민(輔國安民)을 제창하면서 잘못된 나라를 바로잡고 도탄에 빠져 있는 백성들을 널리 구제하여 편안하게 만들고자 하였으며, 갑자년을 시작으로 낡은 선천(先天) 5만 년이 끝나고, 이상적인 세상, 즉 후천(後天)의 5만 년이 새로 열린다는‘후천 개벽 사상’을 제기하기도 하였다. 아울러 부자와 가난한 사람, 지식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서로 돕고 아껴야 한다는 ‘유무상자(有無相資)’사상을 제기하기도 하였다. 최제우가 처형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동학은 그의 수제자 최시형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전국 각지로 퍼져 나갔다. 그는 ‘시천주’ 사상에 근거한 평등사상의 실천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가령, 그는 “사람이 곧 하늘이니 사람 섬기기를 하늘 섬기듯 하라[人卽天, 事人如天].”고 가르치면서, 특히 어린아이들과 여성들, 노비들도 모두 ‘하늘님’으로 대접할 것을 역설하였다. 나아가 “사람뿐만 아니라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벌레 한 마리 모두 하늘님 아님이 없으니[天地萬物, 莫非侍天主].”, 하늘과 사람, 만물을 두루 공경하라는 삼경 사상을 골자로 하는 만물 평등사상을 확립하였다.
이처럼 동학사상은 조선 백성들이 절실하게 소망하던 바를 풍부하게 반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의 백성들에게서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예를 들어 모든 사람은 누구나 자기 안에 ‘하늘님’을 모시고 있기 때문에 귀천이 따로 없다는 초기 동학의 가르침은, 양반 제도라는 신분제 아래 신음하던 조선 백성들에 게 평등 의식을 일깨워 주었고, 머지않은 장래에 새 세상이 올 것이라는 후천 개벽의 가르침은 백성들에게 새 세상을 향한 희망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넉넉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이 서로 돕고 아끼라는 유무상자의 가르침은 거듭되는 자연재해와 탐학(貪虐)한 지방 관리들의 불법 수탈 때문에 굶주림에 시달리던 수많은 백성들을 동학에 입교하도록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선생이 일찍이 “사람은 한울이니라, 그러므로 사람 섬기기를 한울같이 하라.”하셨도다. 내 비록 부인과 어린아이의 말이라도 이를 배우노라.
•사람은 한울이라 평등이요 차별이 없나니 사람이 인위로 귀천을 분별함은 곧 하늘의 뜻을 어기는 것이니, 제군은 일체 귀천의 분별을 철폐하여 선사(先師)의 뜻을 잇기로 맹서하라.
•부모님께 효를 극진히 하오며, 남편을 극진히 공경하오며, 내 자식과 며느리를 극진히 사랑하오며, 하인을 내 자식과 같이 여기며, 가축이라도 다 아끼며, 나무라도 생순을 꺾지 말며, 부모님 분노하시거든 성품을 거슬리지 말며 웃고, 어린 자식 치지 말고 울리지 마옵소서. 어린아이도 한울님을 모셨으니 아이 치는 것은 곧 한울님을 치는 것이오니, 천리를 모르고 일행 아이를 치면 그 아이가 곧 죽을 것이니 부디 집안에 큰 소리를 내지 말고 화순하기만 힘쓰옵소서. 이같이 한울님을 공경하고 효성하오면 한울님이 좋아하시고 복을 주시나니, 부디 한울님을 극진히 공경하옵소서.                                                                        - 최시형의 가르침 중에서 -








불교 윤리 사상


자료 39 불교의 연기법

불교에서는 우주만물과 현상이 원인에서 생기며[諸法從緣起], 또한 원인에 의해 소멸된다고 주장하고 있다[彼法因緣盡].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此有故彼有],
이것이 생기기 때문에 저것이 생긴다[此起故彼起].
이것이 없기 때문에 저것이 없고[此無故彼無],
이것이 사라지기 때문에 저것이 사라진다[此滅故彼滅].  -“잡아함경”-

위의 글은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다.”와“이것이 생기기 때문에 저것이 생긴다.”라는 구절로써 존재의 발생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없기 때문에 저것이 없다.”와 “이것이 사라지기 때문에 저것이 사라진다.”라는 구절로써 존재의 소멸을 설명하고 있다. 모든 존재는 그것을 형성시키는 원인과 조건에 의해서만이, 그리고 상호 관계에 의해서만이 존재하기도 하고 소멸하기도 한다는 것을 이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결국 연기법이란 존재의 ‘관계성’을 말하는 것이다.
연기법을 경전의 다른 곳에서는 ‘상의성’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경전의 비유를 살펴보면 A, B, C라는 3개의 갈대 가운데서 어느 한 갈대가 서 있을 수 있는 것은 다른 2개의 갈대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서 있을 수 있는 것이다. 3개의 갈대 가운데서 1개의 갈대라도 없어지게 되면, 다른 2개의 갈대도 서 있을 수 없게 된다. 이것이 없기 때문에 저것이 서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불교 연기법은 불교 모든 교리들의 사상적·이론적 근거가 된다. 불교의 가르침은 그 설명이나 형태가 어떠하든 간에 모두 연기의 원리를 바탕으로 해서 만들어진 응용 이론들이다.





자료 40 ‘천상천하 유아독존’

부처의 탄생 게(偈):부처의 공덕이나 가르침을 기리는 것)에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는 노래가 있다. 태어나자마자 갓난아이가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걸으며 한 손으로는 하늘을 가리키고 다른 한 손으로는 땅을 가리키면서 “천상천하 유아독존” 하고 말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후세에 부처를 신격화한 데에서 온 말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깊은 불교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이를 현대적인 용어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하늘과 땅 사이에 살아 있는 것은 다 존귀하다.”
이 세상에 귀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는 뜻으로 생명의 존엄성을 선언한 말이다.
                                                                            -법정, “일기일회”-











자료 41 사성제와 삼법인설

4성제에서 ‘제’란 ‘진리’ 또는 ‘진실’을 의미한다. 따라서 4성제란‘ 4가지의 성스러운 진리’라는 말이다. 이것은 고성제·집성제·멸성제·도성제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간단하게 ‘고·집·멸·도’라고도 한다. 4성제를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고’와‘ 고의 원인’, 그리고 ‘고의 소멸’과 ‘고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 4성제는 석가모니가 녹야원에서 5명의 제자들에게 처음으로 법을 설했을 때부터 열반에 들 때까지 45년 동안 가장 많이 설한 가르침이다. 4성제의 가르침은 불교의 궁극 목표인 ‘고(苦)에서의 해탈’을 위해 만들어진 가장 구체적이면서도 간단한 교리이다. 석가모니는 의사가 병을 진단하듯이 인생의 실상인 ‘고’를 말하고[고성제], 병의 원인을 찾아내듯 고의 원인을 규명했다[집성제]. 그리고 병의 치료 후 건강 상태를 말하듯이 고가 소멸된 상태, 즉 열반을 설명했고[멸성제], 마지막으로 병의 치료 방법을 말하는 것처럼 열반에 이르는 길을 제시했다[도성제]. “중아함경”에서는 4성제의 중요성을 코끼리의 발자국에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다. 코끼리의 발자국이 넓고 커서 모든 짐승의 발자국 가운데서 제일인 것처럼, 4성제도 ‘한량없이 좋은 법’이 모두 그 가운데로 들어오기 때문에 ‘일체법(一切法) 가운데서 제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한편, 3법인은 불교의 특징을 가장 단적으로 잘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불교의 깃발’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것은 불교를 다른 종교나 사상을 구별하기 위한 하나의 기준이 된다. 3법인과 일치하는 사상이면 불교이고 그 반대이면 불교가 아니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3법인은 제행무상, 제법무아, 일체개고의 형식으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무상과 무아의 개념 속에 논리적으로 고(苦)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일체개고 대신에 열반적정을 넣어‘제행무상, 제법무아, 열반적정’의 형식을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3법인은 각 법인을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연결된 하나의 실천 이론으로 볼 수도 있다. 제행이 ‘무상’하다는 사실을 바로 이해하면 제법이 ‘무아’하다는 것도 알게 된다. 제행이 무상하고 제법이 무아하다는 것을 확실히 이해하면, 우리는 욕망과 집착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모든 욕망과 번뇌를 떠날 때 우리는 열반에 이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자료 42 혜능(慧能)

혜능(638~713)은 당나라(618~907) 시대의 선승으로서, 선종(禪宗)의 제6조이자 남종선(南宗禪)의 시조이다. 일반적으로 6조 대사 또는 조계 대사(曹溪大師)라고 한다. 대감 선사(大鑑禪師)라고 시호되었다.
혜능은 신주(新州: 광둥 성)에서 태어나 3살 때 부친을 잃고 가난하게 자랐다. 어느 날, 나무를 짊어지고 팔러 다녔는데, “금강경(金剛經)” 외는 소리를 듣고 출가할 결심을 하게 되었다. 24세 때에 기주 황매산(黃梅山: 후베이 성)의 동선원(東禪院)에 있던 선종의 제5조 홍인(弘忍, 601~674)을 찾아가 가르침을 받고, 나중에는 홍인에게서 선법(禪法)을 물려받아 선종의 제6조가 되었다.
혜능은 소주(韶州) 조계(曹溪)의 보림사(寶林寺), 대범사(大梵寺)에 머물면서 신도들의 귀의를 크게 얻었다. 대범사에서 혜능이 설한 설법을 중심으로 편찬된 문헌이 “육조법보단경(六祖法寶壇經)” 또는 “육조단경(六祖壇經)”이라는 이름의 선종 경전으로 후세에 전해졌다.
혜능의 제자는 43명을 헤아렸고, 중국의 선종은 이때부터 융성하게 되었다. 그의 계통의 선을 남종(南宗) 또는 남종선(南宗禪)이라 하여 신수(神秀: ?~706) 계통의 북종(北宗) 또는 북종선(北宗禪)과 대립하다가, 당나라 말 이후에는 남종만이 번영하였다. 남종은 돈오(頓悟)를, 북종은 점오(漸悟)를 주장하였다. 후대에 이 양자의 선풍의 차이를 남돈북점(南頓北漸)이라 하였다.




자료 43 소승 불교의 이상적 인간상, 아라한(阿羅漢)

나한(羅漢)이란 산스크리트 어 ‘아르핫(Arhat)’을 중국식으로 소리 나는 대로 풀어 쓴 아라한(阿羅漢)을 줄여서 이르는 호칭이다. 소승 불교에서는 부처를 포함하여 일정 수준의 높은 성취인 해탈을 이룬 존재를 가리킨다. 따라서 석가모니 부처는 소승 불교에서 최초의 아라한으로 여겨지며, 아라한은 수행자들이 도달하는 가장 이상적인 존재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소승 불교에서 수행자 본인의 해탈이 최고의 목표인 것과 달리, 대승(大乘) 불교에서는 중생 구제를 위한 완전한 힘을 얻을 수 있는 최고 깨달음의 단계인 성불(成佛)이 지고의 목표가 된다. 이러한 대승 불교의 이상적 인간상은 보살이라고 한다. 따라서 대승 불교에서의 나한은 깨달음의 위계에 있어 부처보다 하위의 존재로 구별된다. 그러나 성인으로서 최고의 단계에 들기 때문에 대승 불교에서도 신앙의 대상이 되어 왔다. 우리나라에서 나한에 대한 신앙은 현재까지 성행하고 있어 십육 나한이나 오백 나한 등을 모신 사찰이 매우 많다.







자료 44 공(空)

‘공(空)’이란 개념은 불교 사상의 근본 개념을 나타내는 말로, 특히 “반야경”을 비롯한 대승 경전에서 강조되고 있다. 대승 불교에서 공은 ‘자성(自性)’, ‘실체(實體)’, ‘본성(本性)’, ‘자아(自我)’ 등과 같이 인간이 궁극적으로 간주하는 본질적인 것들이 실제로는 없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책상이라는 사물을 생각하는 경우, 그 책상에는 본질적으로 책상이라고 하는 자성이란 없다고 하는 것을‘공’이란 말로 나타내는 것이다. 책상이란 나무 등으로 만들어져 사람이 그곳에서 책을 보거나 글을 쓰게 하는 물건이지만, 실제 그 책상은 나무와 못 등이 서로 결합되어 만들어 졌을 뿐 그 책상에 사람이 앉게 되면 그 때는 의자로서 사용하는 것이지 책상이 아닌 것이다. 그런 까닭에 불교 사상가들은‘책상의 자성’이라는 영원한 성격에 집착되어 있는 것은 ‘책상’이라는 말에 사로잡혀 함부로 가치 판단을 하는 인간 내면의 본성에 그 원인이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와 같은 집착을 일으키는 원인으로서 잘못된 분별을 없앨 것을 역설하였다. 특히 자아와 같이 인간 내면의 본질로 간주되는 것에 대해서도 그와 같은 본질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오히려 자아라는 말에 집착되어 있는 인간의 잘못된 생각을 경계하고자 하였다.











자료 45 불교의 이상적 인간상, 보살(菩薩)

소승 불교가 아라한의 불교라면 대승 불교는 보살의 불교이다. 대승의 경전은 오로지 보살의 이념과 실천에 대해 설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보살이란 ‘위로는 깨달음을 추구하고[上求菩提], 아래로는 중생을 구제[下化衆生]하고자 노력하는 사람’으로 설명된다. 대승 불교에 의하면, 중생의 구제와 불도의 성취는 각기 개별적인 것이 아니다. 즉 중생 구제는 바로 깨달음을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킬 때 세운 서원의 실현이며, 자비행은 깨달음의 결과를 중생에게로 돌리는 실천이기 때문에 중생 구제의 이타행과 불도의 성취는 보살의 서원으로서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나아가 범부의 이타행은 연민의 분별심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차별적이고 상대적이지만, 보살의 이타행은 보리(菩提), 즉 반야의 자작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절대적이고 무차별적이다. 여기서 말하는 반야란 “반야경”의 중심 사상으로, 그것은 바로 무차별, 무분별의 지혜를 말한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언어적 개념을 통해 세계를 분별함으로써 어떠한 사물에 대해 다른 것과는 차별되는 그 자신의 고유한 본성이 실재한다고 생각하고 그것에 집착한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사유 분별을 통해 그렇게 드러난 것일 뿐, 실상은 어떠한 차별도 없으며 고유한 본성도 존재하지 않는다. 또 보살은 반드시 출가자에 한정되지 않는다. “자따까(본생담)”에 등장하는 석가보살 역시 가지각색의 신분으로 출현한다. 출가는 물론이거니와 어떤 때에는 국왕이나 태자, 대신, 상인, 나그네 등의 재가자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며, 심지어 사슴이나 원숭이, 토끼 등 여러 유형의 동물로 나타나기도 한다.







자료 46 선(禪) 불교의 사상

선불교의 사상적 골격은 대승 불교의 실천적인 정신의 핵심인 불성(佛性) 사상과 공 (空)사상의 실천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불성을 깨닫도록 강조하고 있는 것은 만법(萬法)의 근원인 인간 각자의 주체를 깨닫는 것이며, 그 자각된 각자의 불성[本來心]으로 일체의 경계에 집착되지 않는 공(空)의 실천을 전개하여 반야(般若)의 지혜로 무애(無碍)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너희들은 모두 각자 자기의 마음이 바로 부처이며, 이 마음이 부처임을 확신하라. 달마대사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온 것은 오직 이 법을 전하여 너희들이 각자 깨닫게 하기 위함이다.                             -“속장경”-
불교의 경전이나 어록에서 한결같이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일체의 모든 법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이처럼 일체 만법의 근원이 각자의 마음에 있으므로 마음의 법을 깨닫는 것은 곧 일체의 만법을 깨닫는 것과 같다. 선 불교에서 각자의 불성을 자각하는 견성(見性)의 주장은 각자 스스로 만법의 근원을 자기의 마음[佛性]으로 깨닫고 한 법(法)도 일어나지 않는 근원적인 본래심을 깨달아 각자 부처와 똑같은 지혜를 빠짐없이 갖추어 참된 진리의 삶을 살 것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선 불교에서는 경전의 주장을 문자상의 이해로 끝내지 않고 직접 선의 수행으로 깨달아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료 47 원효의 화쟁 사상

원효는 전래한 불교의 여러 종파적 사상을 더 높은 차원에서 하나로 합치고, 이것을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살림으로써 한국 불교 발전의 기초를 확립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리하여 때로는 기적적인 요소까지 결부시켜 신비화를 꾀하는 사람조차 있을 정도로 그의 역사적 의의는 크다고 하겠다.
일심이란 무엇인가? 깨끗함과 더러움은 그 성품이 둘이 아니고, 참과 거짓 또한 서로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하나[一]라고 한다. 그러나 이 둘이 없는 자리에 모든 법의 실다움이 허공과는 달라 스스로 신령스럽게 아는 성품이니, 이를 마음[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미 둘이 없는데 어찌 하나가 있으며, 하나가 없는데 무엇을 일러 마음이라 하겠는가? 이 같은 마음의 도리는 말을 여의고 생각을 초월했으니 무엇이라고 지목할 바를 몰라 억지로 이름 하여 하나인 마음[一心]이라고 한다.                                                                  -“대승기신론소”-
석가 생존 시에는 그의 설법을 중생들이 직접 들어 진의를 깨우칠 수 있었던 만큼 별로 이론(異論)이라고 할 것이 없었다. 그러나 이미 오랜 세월이 경과하고 또 널리 전파됨에 따라 서로 다른 이론들이 속출하여 혹은 내가 옳고 다른 사람은 옳지 못하다고 하는가 하면, 혹은 나는 그렇지만 다른 사람은 그렇지 않다고 하여 드디어 무수한 논란을 형성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오랫동안 모순상쟁(矛盾相爭)할 때 원효는 쟁론(爭論)이란 집착에서 생기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여러 종파의 이쟁(異諍)을 화합하여 서로 다른 견해를 귀일 시킨 것이 바로 원효 사상의 가장 기본적인 특색이다.



  
자료 48 의천의 교관겸수

불교의 어느 교파에서나 수행 방법으로서의 선(禪)을 중요시하여 왔다. 특히 화엄종이나 천태종에서는 선의 수행을 관(觀) 또는 지관(止觀)이라고 하여 그들의 종지(宗旨) 속에서 적극적으로 일으키려고 하였다. 원효 역시 화쟁의 논리적 추구와 지관수행의 뗄 수 없는 관계를 역설하며 좌선(坐禪)한 것이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불립문자(不立文字), 이심전심(以心傳心)의 교외별전(敎外別傳)으로써 이른바 종지로 하는 선종(禪宗)이 전래되어 구산(九山)에 있어서 각기 종풍(宗風)을 진작함에 이르러 교(敎)와 선(禪)은 마치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게 되었다. 이러한 시기에 교관겸수의 가치를 선명하게 드러내어 한국 불교의 전통적인 화쟁 정신을 중흥 선양한 승려가 바로 의천(義天)이다. 의천에 의하면, 세상에는 완전한 재능을 지닌 사람이 적은 까닭에 교(敎)를 공부하는 사람은 내적인 것을 버리고 외적인 것을 구하는 일이 많고, 선(禪)을 익히는 사람은 외적인 것을 잊고 내적으로 밝히기를 좋아한다. 그 둘이 다 집착인 것이요 경계에 구속되는 것이다. 이는 마치 있지도 않은 토끼의 뿔을 두고 장단을 재려고 다투는 꼴이다. 따라서 교와 선이 상보하여 내외겸전(內外兼全)하여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나아가 의천은 옛날의 선과 당시에 유행하는 선에는 차이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옛날의 선은 교에 의거하여 선을 익히는 것이어서 사유를 따져 뜻을 얻을 수 있었지만, 당시에 유행하는 선은 교를 떠나 선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명목에 집착하여 그 실을 잃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자료 49 지눌의 정혜쌍수

고려의 의천은 교관겸수의 입장에서 원효를 성자(聖者)로 추앙하였으며, 지눌 역시 자기 사상의 중요한 대목을 밝힘에 있어서 원효의 설을 인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눌에 의하면, 범부가 자신의 본성이 부처와 다름없음을 깨우쳤다 하더라도 자신의 그릇된 습관을 갑자기 버린다는 것은 힘든 일이므로 계속된 수행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마치 어린아이가 태어날 때 사지를 갖추었지만 그 힘이 차지 못하다가 세월이 지난 뒤에 비로소 사람 구실을 하는 것과 같은데, 이를‘돈오점수’라고 한다. 여기서 ‘돈’은 태양의 빛과 같이 단박에 만법이 밝아지는 것이며, ‘수’는 거울을 닦는 것과 같이 차츰 맑아지고 밝아지는 것이다. 그는 얼어붙은 연못이 물임을 깨달았다고 얼음이 금방 물로 변하는 것이 아니듯, 태양의 기운을 빌려야 비로소 물이 녹는 이치와도 같다고 하였다. 또한 지눌은 깨달음 이후의 수행은 ‘정(定)’과 ‘혜(慧)’의 두 문 밖에 없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정’은 자기 마음의 체(體)요, ‘혜’는 자기 마음의 용(用)이니, 체와 용은 하나도 아니요 다른 것도 아닌 까닭에 체는 용을 떠나지 않고 용은 체를 떠날 수 없으니 이 정혜의 두 문을 함께 닦는 것이 수행의 요체라고 하였다. 이를 ‘정혜쌍수’라고 한다.


도가․도교 윤리 사상


자료 50 노자와 “도덕경”

노자는 그 실존 여부가 불명확한 인물이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주나라 왕실의 문서를 관리하던 노자가 쇠퇴한 주나라를 떠날 때 문을 지키던 문지기 윤희(尹喜)의 부탁으로 “도덕경”을 지었다고 했고, 또 공자가 예(禮)에 대해 물었을 때 한 수 가르침을 주고 나서 교만과 욕심을 버리라고 훈계한 인물로 그려 놓았다. 오늘날 대부분의 학자들은 노자라는 사람은 없었고, 다만 어떤 사람들이 노자라는 이름을 빌려 “도덕경”을 지은 것이라고 본다. “도덕경”은 5천자 남짓, 200자 원고지로 25매 정도에 불과하며, 전체가 81장으로 간결하면서도 풍부한 은유와 무한한 함축을 지니고 있다. 그 가운데 ‘도(道)’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되는 1장부터 37장까지를 ‘도경’이라 부르고, 덕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38장부터 81장까지를 ‘덕경’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최근 마왕퇴 고분에서 발굴된 비단에 쓰인 ‘백서 노자’는 ‘덕경’이 앞으로 나와 있다. 그 뒤 “도덕경”은 도교와 불교가 성행하던 위·진 남북조 시대에 “장자”, “주역”과 더불어 ‘삼현(三玄)’으로 높여졌고, 특히 민간 도교의 경전이 되기도 하였다. 우리가 의식하든 그러지 못하든 “도덕경”에 나타난 사상이 우리의 의식 심저(心底)를 움직이고 있고, 그것은 중국, 한국, 일본 등 동양 삼국의 종교, 예술, 정치의 밑바닥을 흐르고 있다. 공자의 윤리적이고 현실주의적인 사상이 우리 생활에서 양(陽)적인 외면 세계에 영향을 주었다면, 노자의 형이상학적이고 신비주의적인 사상은 우리 생활에서 음(陰)적인 내면세계를 움직였다고 할 수 있다.













자료 51 노자의 도(道)

“도덕경”은 “도라고 할 수 있는 도는 참다운 도가 아니다. 무엇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름은 참다운 이름이 아니다.”는 말로 시작된다. 여기서 노자가 말하는 도(道)는 유교의 도덕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유교의 도덕은 인간의 윤리를 말한 것이지만, 노자의 도는 자연의 도로서 우주의 본체를 말하는 것이다. 도는 천지(天地)보다 먼저 생겨났으며, 어떤 사물의 지배도 받지 않고 우리의 오관으로는 지각할 수 없다. 세간에서 말하는 도라는 것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변할 수 있는 상대적인 도이므로 영구불변의 상도(常道)는 될 수 없다. 우주 간에 있는 만물의 명(名)은 인간이 사회생활을 하는 데 편리하도록 지은 것에 불과하므로 그것은 영구불변의 상명(常名)이 아니다. 이 말은 언어와 같은 사회적 약속이나 도덕규범까지도 절대적인 것은 없음을 의미한다.
노자는 인간의 참모습을 억압하는 불합리한 구조와 이념은 모두 허구이며, 이는 힘 있는 지배자가 제멋대로 규정한 가치일 뿐 또 다른 질곡을 만들어 낸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영구불변의 도와 명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주의 본체가 되는 자연의 도이다. 우주의 본체는 명이 없으며 또 명을 붙일 수도 없다. 따라서 무명(無名)은 천지(天地)의 시작이다. 그리고 우리가 위에 있는 것을 천(天)이라 하고, 아래에 있는 것을 지(地)라고 하는 유명(有名)의 존재는 만물을 낳으므로 천지를 ‘만물의 어머니’라고 한다. 이렇듯 우주의 본체가 되는 도는 그 어떤 욕망도 없는 자연이므로 인간도 항상 무욕(無慾)하여야 우주 본체의 묘용(妙用)을 볼 수 있고, 사심이나 욕망으로는 본체를 깨달을 수 없다. 욕망을 가진 마음으로는 오직 본체의 형상으로 나타난 경계(境界)를 보는 데 지나지 않는다. 유(有)는 형상으로 나타난 천지(天地)이고, 무(無)는 나타나지 않은 본체이다. 유와 무는 비록 그 이름은 다르지만 동일한 데서 나온 것이며, 삼라만상을 생성하는 본원으로서 지극히 현묘한 작용을 한다.






자료 52 노자의 무위자연(無爲自然)

노자의 사상은 세간을 떠나는 경향이 있으므로 그의 윤리론도 우리의 생활 경험이나 상식으로 수긍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먼저 노자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상대적임을 강조하기 위하여 역설의 논리를 펼쳤다. 강함보다 약함을, 굳셈보다 부드러움을, 높음보다 낮음을, 많음보다 적음을, 큼보다 작음을, 남자보다 여자를, 받기보다 주기를, 유창함보다 어눌함을, 나아감보다 물러섬을 강조하는 것이 노자의 논리이다. 자벌레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뒤로 꿈틀하고 물러선다. 나아가기 위해 오히려 뒤로 물러서는 자벌레의 움직임을 노자는 높이 산다. 노자는 도를 깨닫기 위해서는 감각·지식·행위 모두를 버리라고 한다. 노자가 말한‘무위자연’은 아무것도 덧붙이지 말고 자연을 자연 그대로 두라는 뜻이다. 노자는 아무것도 아닌 것,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의 가치를 안 사람이다. 방이 방 구실을 할 수 있는 까닭은 벽이나 문 때문이 아니라 가운데 있는 빈 공간 때문이며, 밥그릇도빈 공간 때문에 밥을 담을 수 있다.
“도덕경”에서 말하는 덕은 이 같은 도의 실현이며, 그 덕은 다듬지 않은 통나무처럼 순박한 그대로의 상태이다. 통나무는 하잘것없어 보이지만 책상이니 의자니 어떤 것이든 만들어 낼 수가 있다. 마찬가지로 노자는 사람의 인생은 유약한 것이 그 본래의 모습이라고 생각하여 가장 이상적인 사람은 물처럼 사는 사람이라고 보았다. 물은 언제나 낮은 곳부터 채워 간다. 만들어 내고도 자기만이 가지려고 하지 않고, 애쓰고서도 공로를 자랑하지 않으며, 윗자리에 있으면서도 마음대로 간섭하지 않는 사람이 노자가 바라던 사람이었다. 이를 위해 노자는 분명한 행동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여성적이고 수동적이며, 방어적이고 소극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역설을 통해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보이려고 한 것이다.







자료 53 노자의 정치사상

노자는 공자와 마찬가지로 혼란한 세상을 바로잡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그러나 유가의 주장과 같이 정치 교육으로는 천하의 안정을 도모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그의 본체론에 의거하여 무위자연의 정치를 펼쳐 나갔다. 그는 백성은 지혜가 있으면 명예나 이로움 등에 미혹되기 쉽고 우매하면 천하가 잘 다스려진다고 보았다. 따라서 백성을 통치하기 어려운 까닭은 백성에게 지혜가 많기 때문이며, 지혜로써 나라를 다스리면 나라에 해(害)가 되고 지혜로써 나라를 다스리지 않으면 복(福)이 된다고 주장하였다.
성(聖)을 끊고 지(智)를 버리면 백성의 이로움은 백 배가 되고, 인(仁)을 끊고 의(義)를 버리면 백성은 효성스럽고 자애롭게 되며, 교[巧]를 끊고 이(利)를 버리면 도둑이 없어진다.                                 -“도덕경”19장 -

 

또한 노자는 백성이 이기(利器)를 좋아하면 세상은 더욱 어지러워지고 백성이 기교가 많으면 기묘한 물건들이 많아지고 법령이 많으면 도둑이 늘어난다고 보았다. 통치자가 무위(無爲)로써 다스리면 백성은 자연히 다스려지고 통치자가 정(靜)을 좋아하면 백성들은 자연히 바르게 된다고 생각하였다. 더불어 나라를 다스림에는 작은 물고기를 삶는 것과 같이 하여 결코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무위의 통치가 실현된 이상 사회를 노자는 ‘소국과민’이라고 하였다. 이 사회는 사람들이 살아있음을 고맙게 여기며 하루하루를 즐기면서 사는 사회, 그래서 구태여 위험을 무릅쓰고 더 나은 삶을 찾겠다고 떠나는 일이 없는 사회이다. 심지어 다스리는 자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정도로 정치와 무관한 사회이기도 하다.









자료 51 장자의 생애

장자의 이름은 주(周), 자는 자휴(子休)이며, 맹자와 같이 전국 시대 초에 활동한 사상가였으나 서로 만나지는 못하였다. 그는 해박한 지식을 토대로 노자의 사상을 밝히고자 하였으며 유교의 가르침을 비판하였다. 사마천의 “사기”에 의하면, 초나라 왕이 사신을 보내 장자를 모셔가려 했을 때 “당신 나라에 신주로 모셔둔 신령스러운 거북이 있지요? 그 거북은 죽어서 영원히 신주처럼 모셔지는 것을 바랐겠소, 아니면 제가 살던 물에서 자유롭게 삶을 즐기고 싶었겠소? 나는 진흙탕에서 꼬리를 흔들며 자유로이 살겠소.”라며 거절했다고 한다. 장자가 남긴 10만 자로 된“장자”의 풍부한 우화 속에는 장자와 그를 따르던 사람들의 사상이 담겨 있다. 장자는 평생 동안 성공을 바라며 애쓰는 인간, 지친 몸을 끌면서 가는 곳이 어딘지도 모르는 인간, 얕은 지혜를 부리며 살아가는 어리석은 인간, 죽으면 없어질 신체에 얽매인 인간, 물욕의 노예가 되어 명예나 감각적인 것을 탐닉하는 인간에 대해 그러한 삶과 다른 세속의 모든 구속을 벗어난 참다운 자유를 추구하고자 하였다.








자료 55 장자의 도(道)

장자 역시 노자와 같이 도(道)를 자신의 사상 체계 속에서 가장 중시하였으며, 명백하고 정밀하게 설명하고 있다. 도는 우주의 어떤 사물이든지 존재하므로 우리 앞에 전개되는 모든 현상은 모두 도의 현상이다. 도의 발현이 만물이므로 도는 만물을 생성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도는 차별이 없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며 스스로 본(本)이 되고 스스로 근(根)이 된다. 어느 날 동곽자가 도가 어디 있느냐고 묻자 장자는 “도란 어디든 없는 곳이 없다.”라고 하였다. 막연하게 느낀 동곽자가 어디 있는지 구체적으로 명시해 달라고 하였다. 이때 장자는 “개미 속에 있다.”고 대답하였다. 어떻게 그렇게 보잘것없는 곤충에 도가 있냐고 반문하자 “잡초 속에도 있고, 깨진 기왓장 속에도 있으며 똥오줌 속에도 있다.”라고 대답하였다. 이것은 결국 도가 만물 속에 있다는 말이다. 개미든, 잡초든, 깨진 기왓장이든, 똥오줌이든 모든 것은 다 변한다. 도란 바로 이러한 변화일 뿐이며, 따라서 모든 만물에는 모두 도가 들어있는 셈이다.
장자는 도를 따르는 일은 자연을 따르는 일이라고 한다. 오리의 다리가 짧다고 더 붙여 주면 도리어 괴로워할 것이고, 학의 다리가 길다고 절단하면 얼마나 아파할 것인가? 그러므로 선천적으로 긴 것은 끊을 것이 아니고 선천적으로 짧은 것은 이어 줄 필요가 없다. 인위(人爲)의 목적은 ‘절장보단(切長補斷)’하여 자연을 개조하는 데 있으나, 인위를 행하는 순간 자연으로부터 오는 행복은 끊어진다. 그러므로 인위로써 자연을 해하거나 작위로써 자연을 위반하는 것은 옳지 않다. 또한 도를 따르는 삶은 가치 판단에 얽매이지 않고 나와 남을 구분 짓지 않으며, 만물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사람은 습지에서 자면 병에 걸리나 미꾸라지는 그렇지 않고, 사람은 고목에 오르면 떨리나 원숭이는 이와 다르다. 그렇다면 사람과 미꾸라지, 원숭이 중에서 어느 것이 가장 옳은 거주 방법을 안다고 하겠는가? 이와 같이 천하의 사물은 어떤 일방적 표준에 의하여 그 정당성을 고집할 수 없다. 우리들의 사물에 대한 판단은 극히 주관적이므로 불확실하다. 가령 사물의 대소와 시간의 장단은 우리가 비교하여 보는 데서 생기는 개념에 불과하고 사물이나 시간 그 자체는 대소나 장단이 있을 수 없다. 크다는 것은 더 큰 것에 비교하면 작고, 길다는 것은 더 긴 것에 비교하면 짧은 것이다.
장자의 사상은 그 뒤 문학과 예술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 중국에서 선 불교가 발전하는 데 큰 바탕이 되었다. 또 한편으로는 사회 비판적인 측면이 농민 봉기를 통해 혁명 정신으로 나타나기도 했고, 불로장생과 신선 세계를 꿈꾸는 신비주의적 사상으로 발전하기도 하였다.






자료 56 장자의 인생관

장자는 노자의 사상을 계승하였으므로 선악을 분명하게 구분 짓는 유가의 입장과 다르다. 선악을 구분짓는 것은 구속일 뿐이며 자유로울 수 없게 만드는 그릇된 생각이다. 따라서 장자는 가치 판단을 버리고 모든 것을 상대화하여 풀어 헤치는 방법을 제시하였다. 이것이 만물제등(萬物齊等)의 철학이다. 만물은 환경이나 조건이 달라지면 그에 대한 평가도 달라진다. 그렇기 때문에 장자는 하나의 획일화된 기준을 두지 않았다. 엄청난 미인이 물고기나 새들에게 가까이 가면 물고기나 새들이 놀라서 달아난다. 그렇다면 누가 참다운 아름다움을 아는 것인가? 사람은 나무에 매달려 자거나 진흙탕 속에서 잘 수 없지만, 원숭이는 나무에 매달려 자고 미꾸라지는 진흙탕 속에서 잔다. 그렇다면 누가 편안한 잠자리를 아는 것인가? 결국 이런 판단은 인간이 만든 것에 불과하다.
장자는 인생을 일장의 꿈으로 보았다. 사람이 죽는 것은 꿈을 꾸던 자가 깨는 것과 같다. 죽는 것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화(化)하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에 대하여 공포를 느낀다. 그것은 마치 어린 시절 고향을 떠난 사람과 같다. 어린 시절 고향을 떠난 사람은 타향을 고향으로 알고 자신의 본래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인간의 죽음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으므로 공포를 느낄 필요가 없다. 장자는 부인이 죽었을 때 시체를 깔고 앉아 항아리를 두들기며 노래했다. 마침 조문하러 온 친구 혜시가 그 꼴을 보고 놀라자, 장자는 “나도 처음엔 슬펐다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슬퍼할 일이 아니었네. 집사람이 태어나기 전에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자연에서 와서 자연으로 돌아간 것뿐인데 슬퍼할 까닭이 없지 않겠는가?”라고 답하였다. 장자는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장자는 제자들에게 자기가 죽거든 들에 버리라고 하였다. 깜짝 놀란 제자들이“아닙니다. 좋은 땅에 잘 묻어 드리렵니다.”라고 하자, “땅에 묻으면 굼뱅이나 벌레가 파먹고, 들에 버리면 날짐승과 길짐승이 뜯어 먹겠지. 들에 버리면 하늘과 땅이 내 관이고, 해와 달과 별이 내 관 속에 들어 있는 장식품이 아니겠는가?”라고 하였다. 이처럼 장자는 생사마저도 하나로 보았다[死生一如].



자료 57 비단옷을 벗고 더러운 돼지가 되고 싶소!

재상을 청하는 초나라 위왕이 보낸 사자에게 장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대는 제사상에 오른 돼지를 못 보았는가? 몇 년을 잘 먹여 기른 다음에는 아름다운 비단옷을 입혀 태묘(중국에서 황제의 선조를 제사 지내는 종묘)로 끌고 가기 마련이다. 이때야 비로소 한 마리 더러운 돼지가 되고 싶어 한들 될 뻔이나 하겠는가? 그대는 빨리 돌아가라. 나를 더럽히지 말라. 내 차라리 더러운 진흙탕 속에서 노닐며 스스로 유쾌하게 지낼지언정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에게 얽매이지는 않겠소. 죽는 날까지 벼슬하지 않고 내 뜻을 편안하게 지켜 나가겠소.
…… 
세상의 부귀는 권력자의 엉덩이에 난 치질을 빨아내는 짓과 같은 정신의 굴욕으로 얻게 마련이다.”                                                                                          -“장자”-



자료 58 도대체 누가 옳다고 할 수 있을까?

나와 당신이 논쟁을 했다고 합시다. 당신이 나를 이기고, 내가 당신에게 졌다면 당신이 옳고 내가 틀렸을까요? 내가 당신을 이기고 당신이 내게 졌다면 내가 옳고 당신이 틀린 걸까요? 그 한 쪽이 옳고 다른 쪽이 틀렸을까요, 아니면 두 쪽 모두 옳은 걸까요? 두 쪽 모두 다 틀린 걸까요? 이러한 일은 나도 당신도 알 수 없소. 그렇다면 제3자도 물론 판단을 내릴 수가 없게 되오. 우리는 누구를 시켜서 이를 판단하면 좋겠소?
당신과 입장이 같은 사람에게 판단을 내리게 한다면, 그는 당신과 같으니까 공정한 판단을 내릴 수가 없소. 나와 입장이 같은 사람에게 판단을 내리게 한다면, 그는 (이번에는) 나와 같으므로 공정한 판단을 할 수 없게 되오. 나와도 당신과도 입장이 다른 사람에게 판단을 내리게 한다면, 그는 나와도 당신과도 다르므로 역시 공정한 판단을 할 수가 없소. 나와 당신과도 입장이 같은 사람에게 판단을 내리게 한다면, 그는 나와도 당신과도 입장이 같으므로 또한 공정한 판단을 할 수 없소. 그렇다면 나도 당신도, 그리고 제3자도 모두 (옳다, 옳지 않다)의 판단을 할 수가 없는 거요. 그런데 누구에게 기대하란 말이오?                                                                                          -“장자”-









자료 59 죽음을 슬퍼하지 말라! 자연의 순리에 따를 뿐이다.

장자는 아내가 죽자 슬퍼하기는커녕 항아리를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친구 혜시가 이유를 묻자 다음과 같이 그는 대답하였다.
“아내가 방금 세상을 떠났을 때 나라고 어찌 슬퍼하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그 시초를 살펴보니 본래 생명이 없었다. 인간의 생명이란 춘하추동 4계절과 똑같이 운행되는 것이다. 내 아내는 우주를 거실로 삼아서 평안히 누워 잠자고 있는데, 내가 큰 소리를 내어 통곡을 한다면, 내 스스로 운명을 통달하지 못한 것 같아 울음을 그쳤다네.”




자료 60 황로 사상

진나라 때 법가로부터 가장 소외당한 학파가 유가와 도가였다. 그리하여 이에 대한 반발로써 이 두 학파가 다시 일어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한나라 초 유가는 주로 외형적인 제도에 영향을 주었다면, 도가의 새로운 형태인 황로학은 의식 형태를 지배하면서 한 동안 많은 영향을 끼쳤다. 문제(文帝)는 황로학을 신봉하였으며, 이를 통해 백성의 생활을 안정시키고 사회 질서를 유지하고자 하였다. 당시의 대부분의 학자들도 선진 시대의 여러 학파 가운데 도가를 최상위에 두고 존중하였다. 도가의 정치 철학에 의하면, 훌륭한 통치자는 많은 일을 처리하는 데 있지 않고, 될 수 있는 대로 일거리를 만들지 않는 데 있다고 한다. 이를 무위(無爲)의 통치라고 한다. 또한 성군(聖君)이 나라를 통치하면 그는 전임자의 실책으로 인하여 생긴 나쁜 결과를 회복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한나라 초의 통치자들은 진나라는 과도하게 통치하여 문제가 발생하였고, 그리하여 신속하게 멸망했다고 생각하였다. 이에 한나라의 시조인 고조(高祖)는 승리의 혁명군을 장안(長安)으로 이끌고 가서 백성들에게 말했다. “살인자는 사형에 처하고, 도적은 그 값에 해당하는 벌을 받는다. 그러니 이러한 규정 이외의 모든 진나라의 법은 폐지한다.” 이렇게 한나라의 고조는 무의식 속에서 황로학을 실천하고 있었다. 황로학은 한나라 초 통치자들의 의도와 일치하였으며, 시황제가 벌여 놓은 각종 정책들을 되돌리고 오랫동안 전쟁에 시달리던 백성들에게 원기를 회복시켜 줄 기회를 주었다.















자료 61 태평도와 오두미교

한나라 말 부패한 조정과 탐관오리의 횡포로 인하여 백성의 삶은 피폐해지고 있었다. 또한 촌락공동체의 붕괴로 인하여 새로운 신앙과 공동체가 필요하였고, 이에 부응하여 태평도와 오두미교가 성립하였다.
태(太)란 큰 것이다. 그 쌓인 크기가 하늘과 같은 것을 말한다. 어떤 것도 하늘보다 큰 것은 없다. 평이란 평등하게 다스려진 것을 말한다. 모든 일이 잘 다스려지면 공평하지 못한 일은 더 이상 없다.
태평도는 공평하고 균등한 이상 사회를 구현하기 위한 백성들의 정치·사회적 염원을 담고 있으며, 백성들의 고난에 대한 동정, 조정의 부패에 대한 공격, 이상 세계에 대한 동경 등의 표현은 당시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의지를 보인 것이다. 태평도는 인간이 행한 죄업을 해소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였고, 노장의 관념으로부터 빌려 온 형이상적 체계와는 또 다른 독특한 종교학적 체계를 구축하면서 백성들에게 희망이 되고자 하였다.
이러한 점은 오두미교도 마찬가지이다. 오두미교는 치병(治病)을 중심으로 하는 민간 신앙으로 태평도(太平道)와 함께 도교(道敎)의 원류(源流)가 된다. 그 교문(敎門)에 들어갈 때 5두(斗)의 쌀을 바친다고 하여 오두미교라 불리게 되었다. 나중에는 천사도(天師道)라고 했으며, 13세기부터는 정일교(正一敎)라고 불렀다. 이들은 마침내 교단을 형성하였는데, 이 교단을 ‘미적(米賊)’이라고도 하였다. 오두미교는 모든 질병은 자신이 행한 죄(罪)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이 죄를 씻고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병자에게 부수(符水)를 마시게 한 다음, 자기의 죄과를 3통(通)의 서류[三官書]에 쓰게 한 뒤, 이를 천·지·수(天地水)의 신에게 바치고 다시는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맹세해야 병이 치유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의식은 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평소에 죄를 지어서는 안 된다는 마음을 가지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또한 백성들에게 선(善)을 행하면 신선이 될 수 있다는 이상을 심어 줌으로써 삶의 희망이 되기도 하였다. 진 대(晉代) 이후에는 지식층이나 귀족 중에도 오두미교를 믿는 자가 많았다.







자료 62 왕필과 청담

도가의 사상은 위․진 남북조 시대에 ‘현학(玄學)’으로 일컬어지며 더욱 흥성했다. 당시 현학자인 육운(陸運)은 현학을 몰랐는데, 어느 날 밤에 길을 잃고 어떤 집에 들어가 묵게 되었다. 여기서 한 소년을 만나 함께 “도덕경”을 논했는데, 대화가 심원한 데까지 이르렀고, 새벽에 이르러서야 자신이 묵은 곳이 바로 왕필(王弼)의 집이었음을 알았다고 한다. 이후 “도덕경”이 매우 활발하게 논의되기 시작하였는데, 다음의 대화는 왕필과 배휘(裵徽)가 나눈 청담의 일단이다.
배휘: 무릇 무(無)란 진실로 만물의 원천인데, 성인(공자)은 그것을 언급하지 않았던 반면, 노자는 끊임없이 강론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왕필: 성인은 무를 체득했고 게다가 무는 말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논의가 항상 유(有)에 미쳤지만, 노장(老莊)은 유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항상 자신들이 부족한 면, 즉 무에 대해서 강론했던 것입니다.
왕필은 어려서부터 총명하였으며, 나이 10세 때 “도덕경”을 좋아하여 그 사상을 정연한 논리로 토론하였다. 당시 이부상서였던 하안은 왕필을 매우 기특하게 여기며 “성인이 후생가외(後生可畏)라고 하셨거니와 바로 이 사람이라면 천인지제(天人之際)를 논할 수 있겠다.”고 경탄하였다고 한다. 하안(何晏)은 성인은 희로애락의 정감이 없다고 여겼는데 논의가 아주 치밀하여 모든 사람들이 감복하였다. 그러나 왕필은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성인이 보통 사람보다 풍부한 면은 지혜이고, 보통 사람과 같은 점은 정감이다. 성인은 지혜가 풍부하기 때문에 천지 조화의 기(氣)를 체득하고 무(無)에 통한다. 정감이 뭇사람과 똑같기 때문에 애락(哀樂)을 지니고 사물에 반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성인의 정감은 사물에 응하지만, 사물에 얽매이지 않는다. 이제 성인이 사물에 얽매이지 않는 점을 들어 사물에 반응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것은 큰 잘못이다.”고 하였다.






자료 63 풍류와 청담을 즐기던 죽림칠현(竹林七賢)

유희경이 편찬한 “세설신어(世說新語)”에 청담을 즐겼던 현학자들의 삶과 사상이 담겨 있다. 간결한 문체로 이루어지는 청담을 위해서는 매우 높은 지적 수준을 필요로 했으며, 그들 모두 자여노가 하나가 되는 풍류를 즐겼다. 풍류는 자유분방한 삶의 모습을 의미한다. 죽림칠현에 속하는 유영(劉伶)과 완적(阮籍)의 일화는 다음과 같다.
유영은 방에서 완전히 발가벗고 사는 버릇으로 인해 사람들에게서 빈축을 샀다. 이에 대해 그는 “나는 하늘과 땅을 집으로 삼고 방을 나의 옷으로 삼는다. 그들은 왜 나의 옷 속으로 들어왔는가?”라고 응수하였다.
완적과 그의 조카 완씨 일가들은 모두 술을 썩 잘 마셨다. 그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였을 때는 보통의 술잔으로 술을 따라 마시는 것이 아니라, 큰 동이에 술을 담고 둘러앉아 서로 큰 술잔으로 퍼 마셨다. 때로 돼지 떼가 마시러 오면 그들과 함께 마셨다고 한다.                -풍우란, “중국 철학사”-





자료 64 위․진 현학의 전개

왕필이 전개한 본말의 형이상학은 ‘귀무론(貴無論)’이라고 불렸다. 노자의 사상에서 무(無)에 해당하는 뿌리[本]를 강조하기 때문이다. 현실 지향적 중국인들에게 지나치게 허무하고 신비적인 논의였던지, 배위(裵頠)라는 사상가가 등장하여 ‘숭유론(崇有論)’을 주장했을 정도였다. 배위는 무언가가 있어야[有]만 없다[無]고 할 수 있기 때문에 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그 후 등장한 곽상(郭象) 역시 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왕필의 세계관을 극복하기 위하여 ‘독화론(獨化論)’을 제시한다. 이에 따르면, “장자”의 순망치한(脣亡齒寒)에서 입술과 이가 조화로운 관계에 놓이도록 만들어졌다고 한 것과 같이, 가지[末]에 해당하는 개별자들은 다른 것을 위해 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변하지만, 이런 변화는 세계와 정합(整合: 이론의 내부에 모순이 없음.)된 방식을 띤다는 것이다.









자료 65 도교와 민속의 융합 - 풍수지리(風水地理) 사상

풍수지리란, 땅에 만물을 화생하는 생활력이 있으므로 땅의 활력 여하에 따라 국가나 국토, 인간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는 사상이다. 이러한 풍수지리 사상은 오래 전부터 있어 왔는데, 그것을 집약해 정리한 이는 신라 말의 도선(道詵)이었다. 기록에 의하면 도선은 왕건이 왕위에 오를 것을 예언하였고, 왕건의 국가 운영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그는 한반도 전역을 답사한 경험을 통하여 단순한 이론의 습득이 아닌 국토 공간에 대한 경험적 풍수 이론을 제시하였으며, 한반도 산천의 형세를 유기적으로 파악하였다.
도선에 의해 체계화된 풍수지리 사상은, 개경을 수도로 삼는 데 영향을 주었으며, 태조 왕건이 국가를 경영하는 데 크게 참고하였다. 이후 고려의 중요한 시책을 결정하는 데 미친 영향력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사찰을 건립하는 데나 천도 문제를 논의하는 데, 마을의 입지를 선택하거나 주택을 짓는 데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풍수지리설은 때때로 도참사상(圖讖思想)과 결합하여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도참사상은 그림이나 도식을 보고 앞날을 예언하거나 소문, 유언을 퍼뜨려 미래를 예견하는 것이다. 도참사상이 인간생활의 길흉화복(吉凶禍福), 흥망성쇠(興亡盛衰)에 대한 예언 혹은 징조를 이르는 것이기에, 이 도참사상은 정치적·사회적 혼란이 극심한 때에 주로 나타났다. 묘청(妙淸)의 서경 천도 운동(고려의 승려 묘청 등이 금나라 정벌과 서경 천도를 주장하면서 일으킨 반란)은 풍수지리설과 도참설이 결합되어 전개된 대표적인 사건이었다.




수능 출제 경향 분석
Ⅰ. 동양과 한국 윤리 사상 수능 출제 경향 분석

가. 난이도 예상과 예상 출제 문항 수
- 2013학년도 난이도와 유사할 것으로 보이며, 한국 윤리 사상 부분에서 고난도 문항이 출제될 가능성이 높다.
- 영역별 예상 출제 문항 수(8~10)와 난이도 분포도

영역
유가(순자 포함)
도가
제자백가(묵가, 법가)
불교
한국 성리학
정약용 및 한국 근대 사상
예상 문항 수
2
2
1
1
1~2
1~2
출제 가능성
중간
높음
중간
낮음
높음
중간


나. 평가원 모의고사를 통해 본 출제진 성향

2013학년도 수능을 분석해 보면 출제 위원들의 개별적 성향이 제자백가와 정약용, 한국 근대 사상을 중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한 중국 윤리 사상 및 한국 윤리 사상은 평소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기출 제시문이나 답지가 많이 활용되었다. 따라서 이미 출제된 제시문이나 답지를 재확인하며 심화해야 한다.

1. 중국 윤리 사상
● 도가의 인간관과 유가의 인간관, 이상적인 삶의 특징을 비교하여 정리한다.
● 각 문항의 특징은 난이도는 낮지만 답지의 언어적 기교에서 오는 함정에 곧잘 빠진다.
● 동양의 정치·사회사상은 출제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공자의 덕치, 맹자의 왕도 정치사상, 순자의 예치, 도가의 인간관 및 묵가와 법가의 정치사상 등을 중심으로 제자백가의 정치사상을 집중 정리해야 하며, 유가와 묵가, 유가와 도가, 순자와 한비자 등의 상이점과 공통점을 중심으로 이들의 관계를 잘 파악해 두어야 한다.
● 주자와 왕양명의 차이점과 공통점은 반드시 출제되는 부분이다.
● 노자, 장자는 2문항 이상 출제될 가능성이 높고, 제자백가의 경우 묵가와 법가를 중심으로 정리해야 한다.
2. 불교 윤리 사상
● 근본 불교, 중국 불교: 불교의 교리, 즉 사성제, 삼법인설, 윤회, 삼독, 연기, 중도, 공, 보살, 무주상보시 등 불교의 기본 이론에 충실해야 하며, 선종의 사상적 특성을 중심으로 교종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 한국의 교종·선종을 원효를 중심으로 공부하되, 의천과 지눌의 사상을 병행하여 이해해야 한다.
3. 한국 윤리 사상
● 한국 성리학의 이황, 이이를 비교하여 정리하고, 정약용의 주장을 성리학의 관점과 비교하여 파악해야 한다.
● 한국 근·현대 사상에서 위정척사, 동학, 개화사상(동도서기론)의 이론적 특징과 상호 간의 공통점을 정리해 둘 필요가 있다.
Ⅱ. 최근 6년간 제시문과 답지를 통해 본 유가 사상
1. 공자

● 자신의 인격을 먼저 닦고 남을 다스린다. 수기(修己) 이후 안인(安人) → 수기치인의 학. 임금이 임금답고 신하가 신하답고 아버지가 아버지답고 자식이 자식다우면 바른 정치(政治)가 이루어진다. 정명(正名)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백성이 손 둘 곳이 없다. 재화의 많고 적음보다 고른 분배를 중시한다. 천자에 의해 예악이 만들어지고 정벌이 행해져도 도(道)가 행해진다. 어질고 능력 있는 자를 등용하여 덕치(德治)를 구현한다. 도(道)가 시행되
는 것도 하늘의 명(命)이며 도가 없어지는 것도 하늘의 명이다. 하늘이 명한 것[天命]이 사회 제도와 규범의 근원이다. 하늘을 위민·민본을 권장하는 주재자로 생각한다. 인(仁)은 자신의 사욕을 극복하여 예를 회복하는 것이다. “사람이 어질지 못하면 예(禮)는 무엇 하자는 것이며 악(樂)은 무엇하자는 것이냐?” 자기 처지로 남의 처지를 이해하는 것[推己及人, 恕]이 인(仁)을 행하는 방법이다. 천명(天命)이 자신의 본성임을 자각해야 한다.
● 주희가 언급한 공자의 인(仁):“ 천지가 만물을 생성하게 하는 마음이며, 사람은 인을 얻어 마음으로 삼는다. 인(仁)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그 도리를 다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용서해 주는 것은 인(仁)을 베푸는 것이요, 사물을 알고 깨닫는 것은 인(仁)을 아는 것이다.”
2. 맹자

옳은 행위를 계속 실천[集義]하여야 지극히 크고 굳세며 올곧은 기개를 갖게 된다[浩然之氣].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社稷)이 그 다음이며, 군주는 가볍다. 군주가 여민동락(與民同樂)하지 않으면 역성혁명(易姓革命)을 일으켜야 한다. 인정(仁政) 혹은 왕도 정치(王道政治)를 위해 의(義)를 중시한다. 의(義)를 위주로 하고 이(利)를 부차적인 것으로 여긴다. 사단(四端)을 확충하여 선행을 실천한다. 사람은 배우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양능(良能)과 생각하지 않고서도 아는 양지(良知)가 있다.
이로움을 생각하기보다 의로움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마음이 똑같다고 여기는 것은 이(理)와 의(義)이다. 성인은 우리가 똑같이 여기는 것을 먼저 터득했을 뿐이다. 사람이 배우지 않고도 할 수 있는 것은 타고난 능력이고, 사려(思慮)하지 않아도 아는 것은 타고난 앎이다.(주희와 왕수인에게 영향 → “사물의 이치에 대한 탐구가 덕성 함양에 필요하다고 본다(주희).”, “마음의 선천적 능력에 의해 선악을 알 수 있다고 본다(왕수인).” 의(義)는 나이 많은 어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어른을 공경하는 내 마음에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고자는 “어른을 나는 어른으로 대접한다(저것이 희기 때문에 내가 그것을 희다고 한다). 어른은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니므로 의(義)는 외부에 있는 것이다.”고 반박하였다. 자연스러운 친애(親愛)에 기초한 인간 된 도리 강조, 묵자의 겸애 사상은 자신의 부모를 부정하고 있다. 인의를 훼손한 걸(桀)과 주(紂)는 도적이나 강도와 같다.


3. 순자(인성론은 한비자에게 영향을 줌)

예(禮)에 의한 교화(敎化)를 중시한다. 서로 양보하는 것은 이로움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에 위배된다. 외적 규범의 중요성을 인식하였다. 욕망을 조절하기 위해 교화의 필요성을 주장하였다. “전설적인 말[馬]들도 처음부터 하루에 천 리(千里)를 달리지 못했다.” 패도(覇道)를 인정하지 않았다. 서인(庶人)이라 할지라도 예에 능하다면 등용해야 한다. 군주의 권위, 예, 형벌 등에 의해 백성들을 교화해야 한다. 본성을 선하게 변화시키도록 통치해야 한다. 도덕의 실현이 통치의 목적이다. 인간의 이기적 욕망이 인간에게 주어진 성(性)이다. 본성대로 행동하면 쟁탈이 생기고 사양하지 않는다. 따라서 배움(학문)을 쌓아 예법으로 행위를 규제해야 한다. 도공이 그릇을 만들면 그릇은 도공의 성(性)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이렇듯 성인은 사려(思慮)와 인위(人爲)를 거듭하여 예의와 법도를 일으킨다. 타고난 성정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생(生) 그 자체가 성(性)이다. 교육에 의해 인간이 의(義)를 지니게 된다. 성인은 생각을 쌓고 작위(作爲)를 익혀 예의와 법도를 만든다. 악한 본성을 교화하여 인의를 실현하고자 했다. 순자, 맹자, 고자는 모두가 선(善)하게 살기 위해 후천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4. 주자학(성리학)
● 이기론: 만물은 이와 기로 구성된다. 양자는 불상잡(不相雜)하고, 불상리(不相離)한다. 이는 형이상의 도(道)이며 사물을 낳는 근본이고, 기는 형이하의 기(器)이며 사물을 낳는 도구이며 우주 만물의 질료이다. 사람은 이(理)를 타고나 성(性)으로 삼고, 기(氣)를 타고나 육체(形)를 갖춘다. 인의예지, 즉 4덕은 성(性)이다. 마음[心]은 성(性)과 정(情)을 통섭한다. 성(性)이 곧 이(理), 마음에 있으면 성(性)이고 사물에 있으면 이(理)이다. 나의 앎을 지극히 하려면 사물의 이치를 탐구해야 한다.

● 인의예지(仁義禮智)가 성(性)이다. 거경궁리(居敬窮理)를 통해 성인이 되려 한다. 학습을 통한 후천적 지식도 중요하다. 존천리, 거인욕 → 사욕을 극복하고 인간의 본성을 유지해야 한다. 구용(九容)의 실천 → 바른 몸가짐을 중시. 자신을 포함한 사물의 이치를 궁구한다. 하늘이 음양오행으로 만물을 형성할 때 이(理)가 동시에 부여된다. 모든 것은 탄생과 함께 부여받은 이(理)를 덕(德)으로 삼는데 그것이 본성이다. 도덕적 실천도 이론적 탐구도 모두 중시. 사람의 마음은 신령스러워서 앎을 지니고 있고 천하의 사물은 이치를 지니고 있다. 참된 앎은 후천적 노력에 의해 얻어진다. 사람은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다. 사물의 이치를 파악하여 만물의 화육(化育)을 도모한다. 배운다는 것은 기질(氣質)을 변화시켜 선한 본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덕성을 기르고 앎을 지극하게 하려면 각각의 사물에 접하여 그 이치를 연구해야 한다.

인간의 본성과 우주 만물의 이치를 동일시. “사람과 만물의 이치는 같다. 하지만 사람은 기운의 통(통함)·정(바름)을 얻어 사람이 되고, 사물은 기운의 색(막힘)·편(치우침)을 얻어 사물이 된다. ”이(理) 자체는 수양할 수 없다. 하늘이 만물을 화생(化生)함에 기(氣)로 형상을 이루고 이(理)를 부여하였다. 사람은 이(理)로 인하여 오상(五常)의 덕을 굳게 따르니 이른바 성(性)이다. 미인을 보고 좋아하는 것은 배우지 않아도 되지만 선한 것을 좋아하는 것은 배워야 한다. 배우지 않으면 착한 것을 보고도 착한 줄을 알지 못하고 마음으로 좋아하지 않는 다. 남에게 보여 주기 위한 “위인지학”이 아닌 자신의 수양을 위한 “위기지학”을 중시하였다. 덕을 선험적인 것으로 보았다.
수양에 있어서 ‘경(敬)’을 중시, 이 점은 이황과 이이 등 한국 성리학에 큰 영향을 주었다. 마음을 오로지 하나로 하여 움직이지 않게 하여 사물의 변화를 주의 깊게 본다(주일무적). 잠시라도 마음을 놓지 말아야 사사로운 욕심을 버릴 수 있다(정제엄숙). 항상 깨어 있어 또렷한 정신 상태를 유지한다(상성성). 수양은 놓아버린 마음을 되찾는 것이다.


5. 양명학

학문은 성인(聖人)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마음 밖의 일은 없고 마음 밖의 이치도 없다. 마음의 양지를 실현하는 것이 격물치지(格物致知)이다. 치양지가 치지이다. 지와 행은 본래 하나이다. 마음과 이치[理]가 본래 하나이다. 격물은 내 마음의 천리(天理)를 사물에 실현하는 과정이다. “부모에게 효도하려는 마음이 있으면 곧 효의 이(理)가 있는 것이다. 효도하려는 마음이 없으면 효의 이가 없는 것이다.” 마음은 바로 뜻, 즉 의(意)이며 행위의 시작이다. 음식 맛의 좋고 나쁨은 먹어 본 뒤에 알 수 있듯이 부모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있어야 효의 이(理)가 있는 것이다. 마음이 사욕에 가려지지 않은 것이 바로 천리(天理)이다. 참된 앎은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사사로운 지혜를 이용하여 마음 밖 사물에 이치가 있다고 잘못 생각한다. 안다는 것은 바르지 못한 행위를 바로잡아 선을 행하는 것이다. 성인이란 선을 알면 곧바로 행하여 천리를 능하게 할 뿐이다. 양지를 실현해야 지선(至善)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6. 성리학과 양명학 비교

 
구분
성리학
양명학
주안점
성(性)
심(心)
지식관
지행병진
지행합일(행함이 앎의 완성
격물치지
격물은 단지 하나의 사물에 나아가 그 사물의 이(理)를 극진히  궁구하는 것이고, 치지는 단지 사물의 이(理)를 궁구하여 얻는 것이다.
격물이란 “대인은 임금의 마음을 바로잡는다.”는 맹자의 말에서 “바로잡는다.”라는 말뜻과 같으며, 그 마음의 바르지 못함을 없애 본체의 바름을 온전하게 하는 것이다.
공통점
성인이 되고자 함, 도덕적 인간 추구, 맹자의 인성론 계승, 현실 문제보다 형이상적(도덕) 문제에 집착, ‘존천리 거인욕’을 통해 사욕을 극복하고 인간의 본성을 유지할 것 강조


7. 이황의 이기론

이는 귀하고 기는 천하다. 이는 장군이고 기는 졸병이다[理貴氣賤].“ 이발기수지(理發氣隨之)”이가 발하면 기가 이를 따른다. 이가 발한다. “기발이승지(氣發理乘之)” 기가 발하면 이가 기를 탄다. 기도 발한다. 4단과 7정은 근원이 다르다[理氣不相雜]에 주안점을 둔다. 사단(四端)은 이가 발하면 기가 따른 것, 칠정(七情)은 기가 발하면 이가 타는 것. 도덕에서 배우지 않으면 제대로 알지 못한다. 사덕(四德)은 선천적으로 부여받은 것이다. 이와 기 모두 운동성을 가진다.
수양에서 심기(心氣)의 병은 이(理)를 투철하게 살피지 못해 생긴다. 사단은 이가 발(發)해 기가 이를 따르며 항상 선(善)으로 귀결된다. 정(情)에 사단과 칠정의 분별이 있는 것처럼 성(性)에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의 분별이 있다.
주자가 일찍이 “이에 동정(動靜)이 있어서 기에도 동정이 있다. 만약 이에 동정이 없다면 기가 어떻게 동정하겠는가?” 하고 말하였다. 이가 움직이면 기가 따라서 생기며, 기가 움직이면 이가 따라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사단은 언제나 선이기 때문에 사단을 따르는 사람은 군자. 칠정은 선일 수도 악일 수도 있기 때문에 이를 따르는 사람은 소인. 만약 사단과 칠정이 모두 기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결국 군자와 소인을 구분할 수 없다.
이는 기의 주재자로서 기를 부릴 뿐 기에 구속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와 기를 섞어 일물이라고 할 수 없다.
이황의 성학십도는 우주론, 심성론, 수양론을 글과 그림으로 압축하여 정리하였는데 ‘경’ 사상으로 일관되어 있다. “마음을 하나로 모아 움직이지 않게 하고, 몸가짐을 단정히 하고 마음을 엄숙히 한다. 항상 깨어 있어 정신을 뚜렷이 한다. 얼음 위를 걷는 것처럼 신중할 것.”
이황은 당시 학계의 화두였던 사단칠정에 관한 이기론적 해석을 통해 주자 성리학을 조선 성리학으로 토착화시키는 토대 구축을 하였다. 주자학에 대한 창조적 재해석을 하였다.


8. 이이의 이기론

이는 보편적이고 기는 특수한 것이므로 이는 통하고 기는 국한된다. 이와 기는 관념으로만 구분되며, 실제로는 상호 의존적이다[理氣不相離에 주안점을 둠]. 기가 발하면 이가 기를 탄다는 명제는 맞지만 이가 발하면 기가 이를 따른 다는 주장은 틀렸다. 이는 발하는 근거이지 그 자체가 발할 수는 없다. 기만 발함 → 기를 맑게 하여 천리를 보존하고 인욕(사악한 욕구)을 제거해야 한다. 7정만이 존재하며 4단은 7정의 선한 부분을 가리킨다. 즉 4단과 7정은 모두 기가 발함에 이가 올라탄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기가 서로 떨어지지 아니하여 일물(一物)인 것 같으나 그 구별되는 바는 이는 무형이고 기는 유형입니다. 이는 무위이고 기는 유위입니다. 무형무위로서 유형 유위의 주(主)가 되는 것은 이요, 유형유의로서 무형무위의 기(器)가 되는 것은 기입니다. 이는 무형이요 기는 유형이므로 통하고, 기는 국한됩니다. 이는 무위요 기는 유위이므로 기가 발함에 이가 탑니다.
발하는 것은 기이며, 발하는 소이(所以)는 이로서, 이기는 선후도 없고 이합도 없다. 그러므로 사단 칠정은 모두 기가 발동하는 데 이가 그 위에 타고 있을 뿐이다.
기가 흐리면 이도 흐리게 보이며 기가 맑으면 이도 맑게 보인다. 이의청탁은 기의 청탁이 반영된 것일 뿐이다.
이일분수(理一分殊)는 정이가 “서명(西銘)”에 관한 양시의 의문에 답변하던 과정에서 제기된 명제이다. 정이가 답변 과정에서 제시한 명제, 정이는 현실 세계에서 삼라만상의 차별이 생기는 것은 하나의 이가 만 가지로 달라지기 때문이라고 보았으며, 이일분수(理一分殊)라는 개념을 통하여 우주 만물의 근원적 동일성과 현상적인 다양성을 이(理) 중심으로 설명하였던 것이다. 이를 계승한 주희는 이동기이(理同氣異)의 개념을 들어, 이는 같고 기는 다
르다고 설명하기도 하였다. 이이의 이통기국도 같은 맥락에서 고찰할 수 있다.

칠정(七情)은 사단(四端)을 포함한다. 이는 기의 활동 근거가 되어 사단으로 표출되고, 기는 칠정으로 나타난다. 그릇의 모양이 다르더라도 담긴 물은 모두 같은 물이다. 흰 그릇에 담긴 물은 희게 보이고 푸른 그릇에 담긴 물은 푸르게 보인다. 기만 운동성을 가진다. 선(善)한 정(情)은 기가 발해 나타난 것이다. 각각의 사물에 이와 기가 항상 같이 있다. 이에서 보면 인간이나 사물은 동일하다. 기질지성은 본연지성을 겸한다. 수양은 기를 단속하여 기의 본연을 회복하는 것이다. 성인의 기질은 맑아서 인심이 도심이 된다. 사단은 기가 발하고 이가 올라탄 감정이다. 인간과 사물의 특성이 제각기 다른 것은 기(氣)의 국한성 때문이다. 이 자체는 수양할 수 없다. 마음에는 기뿐만 아니라 이도 있다.
서로 다른 특성 속에는 본체로서의 이(理)가 내재되어 있다. 기질의 병폐를 바로잡아야 본성이 실현된다. 이(理)는 모든 현실 변화의 근거이다. 인간의 감정, 즉 정(情) - 사단과 칠정은 기의 움직임에서 나온다. 이(理)는 움직일 수 없는 것이다. 칠정 가운데 선한 것을 가리키는 것이 사단이다. 기질의 선함과 본연의 선함은 같은 것이다. 인심(人心)은 기(氣)가 주(主)가 되고, 도심은 이(理)가 주가 된다. 그러나 사단과 칠정은 어떤 것이 주(主)가 된다고 말할 수 없다. 굳이 사단이 이(理)가 주(主)가 된다고 할 수는 있지만, 칠정(七情)이 기(氣)가 주(主)가 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칠정이 사단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의 본연은 맑지만 변화 속에서 흐려지기도 한다. 기가 맑으면 천리가 드러나고 기가 탁하면 천리가 가려져 인욕이 드러난다.
진실하고 거짓이 없는 성(誠)은 하늘의 이치이며 마음의 본체이다. 성(誠)을 보존해야 격물(格物)할 수 있고, 기질을 변화시킬 수 있다. 주자의 경(敬)을 통해 “성”에 도달한다. “성”이란 하늘의 진실한 이(理)이자 마음의 본체이다. “경”으로 주재하여 사특함을 제거하면 본체가 온전해질 수 있다. “성실한 것은 하늘의 길이고, 성실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사람의 길이다.”


9. 이황과 이이의 공통점

이 없는 기 없고, 기 없는 이 없다. 이는 본연지성이고 기는 기질지성이다. 4단은 순선무악하지만 7정은 선악이 혼재한다. 기가 탁한 자가 수양하지 않으면 욕(慾)이 성하여 도심도 인심이 된다. 칠정이 발하기 이전 마음의 본체가 성(性)이다. 사단과 칠정은 모두 정(情)이다. 칠정은 기가 발(發)해 이가 타는 것이며 선일 수도 악일 수도 있다. 사단은 오직 선이고 칠정은 선과 악을 포함하고 있다. 칠정은 이가 아니라 기에서 유래한 감정이다. 칠정이 발하기 이전 마음의 본체가 성(性)이다. 사덕은 인간의 감정으로 드러난다. 기를 맑게 하면 천리가 보존되고 인욕이 제거된다(존천리 거인욕).


10. 정약용의 인성론
● 성기호설: 인간의 성이란 선을 좋아하고 악을 싫어하는 마음의 기호이다.
● 덕론: “인의예지”라는 덕은 인간의 본성에 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 실천할 때 형성(효를 실천해야 효자가 되는 것) → 맹자를 재해석하여 성리학과는 다른 현실성과 자율성을 강조하였다.

마음은 본래 덕을 가지고 있지 않고 오직 곧은 본성만 있다. 나의 곧은 마음을 능히 행하는 것을 일러 덕이라 하였으니, 선을 행한 다음에 덕의 이름이 성립하는 것이다.
우주의 기(氣)와 인간의 혈기를 구분하고 인간을 혈기적인 존재로 보았다. 성리학의 형이상학적 체계를 지양하고 선진 유학의 근본 정신, 즉 일상생활에서 인륜을 구현하려 하였다. 사슴의 성(性)은 숲을 좋아하는 것이다. 이렇듯 성은 다만 호오(好惡)를 말한 것이다. 인간 존재의 현실성과 개체적 자율성을 강조한다. 하늘은 인간에게 권능을 부여하여 선을 하고자 하면 선을 행하고 악을 행하고자 하면 악을 행하게 하였다. 덕을 선험적인 것이 아니라 경험적인 것으로 보았다. 인의예지의 사덕은 일을 행한 이후에 이루어진다. 인간의 본성에 인의(仁義)가 들어 있

는 것은 아니다(고자와 공통점). 사람을 사랑한 후에 인(仁)하다고 한다. 천도(天道)와 구별되는 인간의 주체성과 삶의 원동력으로서 사람의 욕구를 인정하였다. “마음이 담박하여 욕구가 없는 사람은 선도 악도 문학도 산업도 못하였다. 사람이 어찌 욕구가 없을 수 있겠는가?”
인간은 본성상 선악에 대해 좋아함이나 싫어함이 있다. 욕구도 바른 이치를 따르면 선을 행하는 데 방해되지 않는다. 인간은 자유 의지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동물과 다르다. 인(仁)을 행해야 인(仁)을 이룰 수 있다. 그저 천지가 만물을 낳는 마음이 인이라 하여 앉아 있기만 한다면 인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덕은 경험적 행위를 통해 달성된다. 태극을 헛되이 존숭하고 이(理)를 하늘로 삼는 것은 어질다고 할 수 없다. 상제(上帝)로부터 인간은 동물과 달리 자주지권을 부여받았다. 사덕이 실천을 통해 형성된다고 본다.



Ⅲ. 최근 6년간 제시문과 답지를 통해 본 도가 및 기타 사상
1. 노자

도는 인간의 인식을 초월하고 시간과 공간 밖에 존재하며 억지로 도라고 한다. 모든 사물은 소박한 덕을 지닌다. 후덕한 덕을 지닌 것은 어린아이와 같다. 사람의 힘이 더해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가 이상적인 상태이다. 으뜸 되는 선(善)은 물과 같다. 물은 도와 가장 가까우므로 항상 물처럼 산다. 도(道)를 잃은 후에 덕(德)이 소용되고 덕을 잃은 후에 인(仁)이 일어나고 인을 잃은 후에 의(義)가 들어나고 의를 잃은 후에 예(禮)가 나타난다. 성인은 만물이 스스로 그러함을 도와줄 뿐 감히 작위하지 않는다. 만족할 줄 알면 치욕을 당하지 않으며 머무를 곳을 알면 위태롭지 않다. 자연은 인간의 욕구나 의지와 무관하다. 다스림이 없이 백성을 다스린다.
하늘의 도(道)는 겨루지 않고도 이기고 부르지 않아도 저절로 찾아온다. 하늘은 인위적인 선악과 관계없는 자연 그 자체이다. 하늘은 인간의 길흉화복과는 관계없는 자연 그 자체이다. 하늘은 인격을 지니고 있지 않다. 인간의 생활과는 무관한 “짚으로 만든 개”로 여긴다.
도(道)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자연 만물의 근원이다. 인간은 땅을 본받고, 땅은 천을 본받고, 천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 성인 군주는 함이 없어도 백성들은 저절로 교화되고 아무 일도 벌이지 않아도 백성들은 순박해진다. 성인의 다스림은 백성들이 지식과 욕심을 갖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백성은 작은 생선을 굽듯 해야 한다. 지자(知者)라는 사람들을 감히 설치지 못하게 하여야 한다. 인의를 버리고 다투지 않는 삶을 지향한다. 인의는 도가 무너져 나타난 규범이다. 통치자는 자연을 법칙 삼아 다스림이 없이 백성을 다스린다. 무지하고 무욕한 백성들이 사는 사회를 지향한다.


2. 장자

좌망(坐忘)과 심재(心齋)를 통한 정신적 자유를 추구한다. 마음을 비우고 깨끗이 하여 상대적 분별에서 벗어나 소요(逍遙)를 추구한다.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아 하나의 입장만 고집하는 교리에 매어 있는 사람은 도(道)를 모른다. 오감(五感)에 의한 지식은 관계적이고 상대적이다.
일체의 사유를 정지하고 사물의 변화에 임해야 한다. 도(道)에는 한계가 없고 언어는 항구성이 없다. 언어는 뜻을 표현하는 도구이므로 뜻만 알면 잊어버려야 한다. 나를 구속하는 일체를 잊으면 큰 지혜를 깨닫게 된다. 생과 사를 같은 것으로 본다면 우리에게 또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 하늘이 하는 일을 아는 사람은 하늘처럼 살아간다. 인간의 지식은 그 기준이 고정되어 있지 않아 한계가 있다. 상대적인 지식의 경계를 넘어 도(道)와 합치해야 한다. 즉 자연이 하는 일과 인간이 하는 일을 굳이 구분하려 하는 것도 인간의 하찮은 지식이다. 만물이 평등하다는 것을 자각한다. 성인은 상대적인 시비에 따르지 않고 하늘의 관점에서 본다. 지혜를 감추면 미혹됨이 없어지고 덕을 감추면 간사함이 없어진다. 밖으로 덕을 내세우는 자들은 천하를 어지럽히는 자들이다. 허심(虛心)을 통해 세속적 가치를 초월하여 물아일체의 경지에 이른다.


3. 묵자

묵가는 체험을 근본으로 하여 사물의 본질을 추구하는 논리적 사고를 추구한다. 낭비를 제거하는 것은 성왕(聖王)의 도(道)이다. 남을 사랑하면 남도 사랑할 것이며 남을 이롭게 하면 남도 이롭게 할 것이다. 검소와 절약을 통한 상호 간의 이익을 중시한다. 예를 지나치게 숭상하는 것은 낭비이다. 3년상은 노동력의 상실을 초래하여 생산을 저하시킨다. 과도한 욕망을 줄이고 세속적 이로움을 함께 나눈다. 남의 몸을 내 몸처럼 여기면 누가 훔치겠는가? 남의 나라를 내 나라처럼 여기면 누가 공격하겠는가? 백성의 이익 증진이 사랑의 실천이다. 이로움을 나눌 때 비로소 의(義)가 가능하다. 서로 차별 없이 사랑하고 서로 이로움을 나누면 하늘의 상을 받는다. 세속적 군자는 개 한 마리를 훔치면 불인(不仁)하다고 하고 한 나라를 훔치면 의롭다고 한다. 하지만 의(義)란 천하를 이롭게 하는 데에 있다. 군주는 하늘의 법도에 의해 번잡한 예(禮)와 악(樂)을 고치고 천하의 이로움을 일으켜야 한다.


4. 법가(한비자)

통치에 강력한 법과 부하를 다루는 술(術)이 필요하다. 법은 군주가 정하는 규범, 술은 법을 행하는 수단이다. 법가의 술의 핵심은 명(군주)과 형(신하의 실적)의 일치, 불일치에 따른 시비 판단이라고 본다. 법가는 법의 엄중한 이행을 통해 부국강병을 달성하고 전제적 군주제를 확립하고자 하였다. 인정(人情)에 따라야 한다. 인정에는 좋아함과 싫어함이 있으므로 상과 벌을 쓸 수 있다. 도덕보다 권력이 통치의 핵심이다. 까마귀를 훈련시킬 때 깃털을 자르듯이 군주는 신하를 길들여야 한다. 백성들이 하기 어려운 일은 백성을 감화시킬 때 생긴다.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은 수주대토(守株待兎)와 같은 사람이다. 덕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인간의 타고난 본성이 이기적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백성들이 하기 쉬운 일을 시켜야 한다. 백성들은 이익을 좋아하고 손해를 싫어한다. 사람들은 이익을 추구하고 상하(上下)의 이익에는 차이가 있어 적절히 조종해야 한다. 성인은 남들이 자신을 위해 일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하는 수단을 지니고 있다. 순자의 “성악설”에 영향을 받았지만, 인의(仁義)에 의한 교화를 강조한 순자의 사상은 수용하지 않았다.


기타
● 음양 사상에 입각한 동양의 남녀관: 남녀는 상호 보완적 관계를 유지하며, 남녀의 차이를 차별하지 않는다.
● 동학, 위정척사, 동도서기 사상 정리

구분
동학
위정척사
동도서기
착안점
신분 질서를 개혁하여 인간 존엄성을 실현하려 함
성리학을 바탕으로 인의(仁義)가 실현되는 사회 구현
서양의 과학 기술 도입에 긍정적으로 봄
공통점
외세를 물리쳐 국가 존망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함
 
 
서양 종교의 확산에 부정적 입장을 취함
서양 학문에 의한 정신문화 개혁에 반대함


Ⅳ. 최근 6년간 제시문과 답지를 통해 본 불교 사상

모든 현상은 무수한 원인과 조건이 상호 작용하여 생겨나므로 원인과 조건이 없으면 결과도 없다. 완전한 무(無)도 영원불멸의 유(有)도 없다. 중도(中道)와 팔정도(八正道)의 수행을 통해 해탈을 지향한다. 개체들의 상관성에 대한 깨달음을 강조한다. 무명(無明)은 미혹의 근원, 집착은 해독(害毒)의 저장소, 무명과 집착은 번뇌와 고통의 원인이다. 연기(緣起)의 자각으로 자비를 실천한다. 내 것을 주고도 주었다는 생각을 버린다. ‘나’라는 의식을 벗어버리면 집착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 ‘빈 마음’으로 청정한 본성을 드러내면 참된 생각과 굳은 의지를 창출한다. 쾌락과 고행의 양 극단에 빠져들지 않는다. 모든 것은 내 마음이 만들어 낸 것이라 여긴다. 세속과 진리의 세계
를 구분하지 않는다. 일체의 감각이나 사유 활동을 넘어선 무아(無我)의 경지를 지향한다. 마음의 활동이 늘 덧없는 근심과 번뇌로 핍박받는 것을 고(苦), 마음이 업(業)과 상응하여 생사의 괴로움을 불러 모은다면 그것은 집(集), 업(業)에 얽매임이 다하여 생사의 근심과 번뇌가 없어지면 멸(滅)이다. 정도(定道)와 조도(助道)가 서로 도와 능히 열반에 이르게 하는 것을 도(道)라고 한다.
인식의 주체와 대상을 구별하지 않고 수행을 통해 만물의 무상(無常)함을 깨닫는다. 실체는 없다. 현상과 진리는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이다. 욕망으로 인해 인식이 생기고 생멸의 영원한 바퀴가 구르기 시작한다. 마음을 비워야 한다. 오온(五蘊)으로 된 아(我)에 대한 집착이 탐욕을 만든다. 청정한 본성을 되찾기 위해 무지와 탐욕에서 벗어나야 한다. 원인과 조건이 없으면 결과도 없다는 자각이 필요하다. 만물의 상호 의존성에 대한 자각이 자비(慈悲)를 일으킨다. 분별적 지식에 얽매이지 않도록 경계한다. 집착에서 비롯된 차별 의식을 버린다. 타인과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모든 것은 변화하며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없다(초월적 신 거부).
나라는 것도 오온(五蘊)이 연관되어 모임으로써 만들어진다. 유쾌하거나 불쾌하거나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지 않으니 탐욕, 성냄, 어리석음이 사라져 깨달음에 이른다. 고통, 윤회에서 벗어나기 위해 집착을 버린다. 모든 사상은 일(一)이면서 다(多)이고, 다이면서 일의 관계이다. 있다고 하자니 한결같이 텅 비어 있고, 없다고 하자니 만물이 이것으로부터 나온다. 이름 붙이기 어려워 대승(大乘)이라 한 것이다. 무(無)는 글자 그대로 ‘없는 것’이 아니다. 한 마음이 일어나면 만 가지 법이 일어나고, 한 마음이 없어지면 만 가지 법이 사라진다. 공이란 공허한 “없음”이 아니라 집착을 끊은(자신마저도 없는) 상태이며 공을 자각하여 아집(我執)을 버린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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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孫中原, “墨學通論”, 遼寧敎育出版社, 1995.

경험 중시 흐름

고대 그리스
소피스트① 실제 경험과 관찰 결과 중시  •다양한 견문을 바탕으로 인간의 생활 방식과 윤리에 대해 구체적으로 다룸  •철학의 주제를 자연에서 인간과 사회로 전환  •유용성 중시    - 아테네 시민들에게 성공과 출세에 유용한 수사학과 변론술을 가르침    - 아테네 인들의 문화적 관심 충족, 정치적 문제에 대한 이론적 근거 제공 ② 프로타고라스  •특징: 상대론적 진리관 → 윤리는 상대적, 주관적인 것    - 윤리적 가치는 인간의 주관적 산물 → 보편타당한 윤리의 존재 부정    - 만물 척도론: “인간은 만물의 척도이다.” → 모든 판단의 기준은 개인과 그들의 경험 → 윤리적 가치는 개인이 처한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강조  •문제점: 아테네 사회의 혼란 초래    - 특정 사회나 국가의 관습, 윤리에 대한 평가가 불가능 → 명백한 잘못도 비난할 수 없음    - 개인행동의 옳고 그름에 대한 객관적 판단이 불가능 → 주관적 행동을 비난할 수 없음 ③ 고르기아스  •보편적 가치에 대한 회의주의적 입장: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한다 해도 이해되지 않는다. 이해된다고 해도 남에게 전달할 수 없다.” → 보편적․절대적 진리가 불가능하다고 주장  •세속적 가치 중시: 정신적 가치보다 부와 명예 등의 가치 중시
헬레니즘
에피쿠로스학파① 개인주의적 쾌락주의  •감각적 경험과 쾌락 중시     - 쾌락 중시: 쾌락은 유일하게 좋고 가치 있는 것 → ‘쾌락은 유일한 선, 고통은 유일한 악’     - 선악: 어떤 행위가 쾌락을 가져오는가, 아니면 고통을 가져오는가에 따라 선악이 결정됨     - 도덕적 행위의 기준: 행위의 결과가 쾌락을 가져와야 함     - 소극적 쾌락주의: 적극적으로 쾌락을 추구하기보다는 고통과 근심을 멀리하는 데 관심을 기울임  •은둔자적 개인주의     - 자연적이며 필수적인 욕구를 최소한으로 충족, 조용히 개인적인 평안함 추구     - ‘정원의 철학자’들로서 자신만의 행복 추구 → 공적인 삶은 정신적․육체적 고통 초래  •문제점: 자신만의 행복을 쾌락에서 추구 → 세계 시민의 윤리 실천에 소극적② 정신적 쾌락의 추구  •참된 쾌락: 필연적인 욕구의 충족을 통해 고통을 없애는 데서 생기는 정신적 쾌락   •아타락시아(ataraxia, 평정심): 고통과 불안에서 벗어난 영혼의 절대적 평온 상태  •‘쾌락주의의 역설’: 순간적․감각적인 쾌락 추구하면 오히려 쾌락을 얻을 기회 감소  •정신적․지속적 쾌락 추구 방법: 절제하고 검소한 삶 추구③ 에피쿠로스학파의 영향  •근대의 경험론: 베이컨, 홉스, 흄  •공리주의: 밀의 쾌락주의적 공리주의
근대
경험주의
베이컨 ① 경험의 중시    •‘아는 것이 힘이다.’: 과학적 지식의 유용성 강조, 과학적 방법을 통한 지식의 혁신 추구    •귀납법 제시: 관찰과 실험을 통해 수집된 경험적 사실을 바탕으로 일반적 원리 추론 ① 우상(偶像)의 타파    •우상: 자연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을 방해하는 선입견과 편견    •우상의 타파: 종족․동굴․시장․극장의 우상을 타파하여 객관적인 진리 추구

 

근대
경험주의
홉스 ① 이기주의적 인간관    •자연 상태: 인간의 자기 보존의 욕구 → 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자신의 생존과 이익만을 추구 →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    •문제점: 인간의 정신적 차원과 사회적 본성 경시 → 도덕적 근거 위협  ② 사회 계약론    •목적: 각자의 생존을 위협하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 극복    •방법: 사람들이 사회 계약을 맺어 국가를 수립하고 통치자에게 절대권 부여로크 ① 경험의 중시   •백지설: ‘백지(白紙)’ 상태인 인간의 마음에 경험이 관념을 새겨 넣음 → 지식의 원천은 경험   •자연 상태: 모든 인간이 생명, 자유, 재산에 대한 권리를 가지는 평등한 상태 ② 사회 계약론   •목적과 방법: 분쟁 해결과 기본권 보호를 위해 자신의 권리를 대표자에게 위임   •영향: 인간의 자유 중시, 사회적 본성 인정 → 근대 시민 윤리의 기반 마련흄 ① 감정의 중시: 감정이 행위를 유발 → 도덕적 판단과 행위의 중요한 요인 ② 공감의 윤리: 타인의 행복과 불행을 함께 느끼는 공감의 능력이 도덕성의 기초 → 선(善)이란 공감을 통해 쾌감을 느끼는 것 → 공리주의에 영향
공리주의
벤담의 양적 공리주의  ① 쾌락의 중시: 쾌락은 행복, 고통은 불행을 초래  ② 도덕과 입법의 원리 제시: 사익과 공익의 조화 추구 →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③ 쾌락 계산법 제시: 쾌락과 고통의 양을 계산할 수 있는 구체적인 기준 제시밀의 질적 공리주의  ① 쾌락의 중시: 행복을 삶의 궁극적인 목표로 제시  ② 질적 쾌락주의 강조: 쾌락이란 질적인 차이가 있으며, 양적인 평가 불가능  ③ 고상한 쾌락 강조: 감각적 쾌락 < 정신적 쾌락 → “배부른 돼지가 되기보다는 배고픈 인간이 되는 편이 낫고, 배부른 바보가 되기보다는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는 편이 낫다.”현대의 규칙 공리주의  ① 배경: 행위의 결과가 지닌 유용성만을 도덕적 대상으로 삼는 행위 공리주의 비판  ② 특징: 유용성의 원리를 행위가 아닌 행위의 규칙에 적용
현대
실용주의 ① 실용주의(프래그머티즘)의 등장  •시기: 미국이 산업 사회, 시민 사회, 과학적 세계관으로 변화하는 19세기 말 등장  •특징: 미국의 고유한 사상   -  근면함, 검소함, 이웃에 대한 사랑과 같은 프로테스탄트적인 가치 보존   -산업 사회에서 요구되는 개척 정신과 실험 정신 반영  •의의: 지성적인 방식으로 우리의 삶을 개선하고자 하는 철학   - 절대적 진리를 부정함으로써 가치의 다양성 옹호   - 문제 상황에서 융통성 있고 유연한 대응 가능② 듀이의 실용주의 사상  •도구주의: 지식은 인간의 생존을 위한 환경에의 적응 도구   - 진리는 삶의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형성   - 지식은 실천을 위해 유용할 때에만 의미가 있음  •개선주의적 세계관: 절대적이고 고정적인 가치는 존재하지 않음   - 도덕과 윤리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화하고 성장하는 것   - 지성을 최대한 발휘하여 나와 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는 윤리적 판단과 행위 중시


이성 중시 흐름

고대 그리스
소크라테스의 윤리 사상① 주지주의  •‘너 자신을 알라.’ → 무지의 자각 강조  •영혼의 수련을 통한 참된 앎 강조   - 지덕복합일설: 참된 앎을 통해 덕을 쌓아야 행복을 누릴 수 있음   - 지행합일설: 선을 아는 사람은 반드시 행함 → 그릇된 행위는 무지에서 비롯됨② 절대주의  •보편적․절대적인 윤리 중시: 인간이라면 누구나 따라야 하는 이상적인 삶의 방식 존재  •반성적 성찰 중시: 이성적․논리적 대화를 통해 바람직한 삶의 방식 모색플라톤의 윤리 사상① 이데아론  •현상의 세계: 감각적인 경험의 세계  •이데아의 세계: 이성을 통해 파악할 수 있는 참된 실재의 세계     - 세상 만물은 각각의 이데아가 있으며, 만물은 이데아에 부분적으로 관여     - 선(善)의 이데아: 이성에 의해서만 도달 가능한 최고의 이데아 → ‘동굴의 비유’로 설명② 이상 국가론: 국가는 각각 절제, 용기, 지혜를 갖춘 통치 계급, 수호 계급, 생산 계급으로 구성 → 이상 국가는 지혜를 갖춘 철인(哲人)이 통치자가 되고,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자기 본분에 해당하는 덕을 발휘하여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룬 국가아리스토텔레스① 절대론적 윤리관: 소크라테스, 플라톤의 기본 관점 계승② 목적론적 존재론: 존재하는 모든 것은 어떤 목적을 가지며 인간의 궁극적 목적은 행복③ 중용의 덕 ④ 윤리관: 주지주의+주의주의⑤ 개인 윤리와 사회 및 국가 윤리 결부
헬레니즘
스토아학파① 금욕주의  •기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성주의 철학  •이성 중시: 우주 만물의 본성 → 자연, 신, 우주와 인간이 이성에 의해 연결  •아파테이아(apatheia, 부동심) 추구    - 욕구를 비롯한 일체의 정념으로부터 벗어난 마음의 상태    - 방법: 참된 자유의 획득, 비이성적이고 비자연적인 정념의 제거② 세계 시민주의: 세계 시민으로서의 공동선 추구③ 자연법사상: 최고의 선(善)은 이성에 따르는 삶, 자연법에 따르는 삶④ 영향: 칸트의 윤리론, 스피노자의 범신론, 로마의 만민법, 근대 자연법사상
중세
아우구스티누스의 교부 철학① 플라톤 철학을 신학에 접목  •계승․발전: 신은 이성적 인식의 대상이 아닌 실존적으로 만나야 할 인격적 존재  •행복론    -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대답    - 인간 삶의 목적: 행복 → 완전한 선, 즉 ‘최고선’을 사랑하는 데에서 성립② 완전한 선: 신(神) → 악은 인간의 타락한 본성으로 인해 선이 결여된 상태③ 인간의 구원: 아담의 원죄로 인한 인간의 본성 타락 → 신의 은총으로만 구원 가능④ 의의: 그리스 철학을 그리스도교와 융합시키는 데 결정적으로 공헌아퀴나스의 스콜라 철학①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수용: 그리스도교 교리의 철학적 논증, 합리적 설명 시도  •사상: 신앙과 이성, 신학과 철학의 조화 추구 → 신 존재의 이성적 증명 시도  •계승․발전: 내세에 최고선인 신과 하나 됨을 통해 진정한 행복에 도달 가능② 행복론: 행복은 오직 신의 은총과 종교적 덕을 실천하여 얻을 수 있음③ 의의: 신앙과 이성의 조화라는 스콜라 철학의 목표 달성

 

근대
이성주의
데카르트 ① 이성의 중시    •이성은 확실한 인식을 가능하게 하며, 도덕적으로 선한 행위도 이성적 통찰에서 시작    •이성적인 추론을 통해 얻는 지식의 중요성 강조 ② 연역법 제시: 이성을 통해 얻은 확실한 인식으로부터 다른 인식들을 논리적으로 추론 ③ 방법적 회의(懷疑): 모든 것을 다 의심하여도 의심하는 사유 행위 자체만은 부정할 수 없다는 사실 발견 →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④ 윤리적 의의: 인간의 사유 능력인 이성에 대한 신뢰스피노자 ① 기계론적 세계관    •범신론: ‘신은 곧 자연’    •우주에 대한 인식: 우주는 수학적 질서에 따라 움직이는 하나의 거대한 기계      → 인과 법칙에 따른 필연적 질서에 따라 유기적으로 구성 ② 자유 의지의 부정    •진정한 자유: 자연의 필연적 질서에 대한 이성적인 통찰을 통해 가능    •이성적인 관조: 자연의 모든 사물들이 인과 법칙에 의해 결정되어 있음을 깨닫는 것    •최고의 선: 모든 것을 이성적으로 관조하는 데서 오는 평온한 행복 
관념론
칸트 ① 도덕 법칙의 중시    •도덕 법칙: 우리의 실천 이성이 세운 것 → 스스로 명령하고 따르는 것이 진정한 자유   •정언 명령: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명령 → 명령이자 의무     - 제1 정언 명령: “네 의지의 격률이 언제나 동시에 보편적 입법의 원리가 될 수 있도록 행위를 하라.” → 자기중심적 태도 극복 위한 도덕적 원리의 보편타당성 중시     - 제 2 정언 명령: “너 자신과 다른 모든 사람의 인격을 결코 단순히 수단으로 취급하지 말고, 언제나 그리고 동시에 목적으로 대우하도록 행위를 하라.” → 인간 존엄성 중시  ② 동기론: 도덕의 관점은 행위의 결과보다 행위의 동기   •행위의 동기 중시: 행위를 유발하는 동기인 의지를 통해 도덕적 행위를 평가   •선의지 중시: 도덕 법칙을 따르려는 의지 → 정언 명령에 따를 것을 강조
현대
실존주의  ① 배경: 제1, 2차 세계 대전 → 이성에 대한 믿음 상실, 객관성․보편성에 대한 절망  ② 특징: 주체성의 회복 강조, 인간의 실존 문제 중시, 개인의 개별성과 개성 중시  •현대 과학 기술 문명과 전쟁 속에서 비인간화되어 가는 인간의 현실 고발  •각 개인의 자율저인 결단과 주체적 선택의 중요성 강조, 현재의 ‘나’ 중시  ③ 키르케고르의 유신론적 실존주의  •실존 문제 중시: ‘이것이냐, 저것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구체적 상황에 처한 개인  •개인의 주체성 강조: 주체성이 진리 → 진리는 주관적이라고 주장  ④ 사르트르의 무신론적 실존주의  •사물: 만들어지기 전에 형태나 목적이 이미 정해져 있음 → 본질이 실존에 우선  •인간: 먼저 실존한 후에 자신의 본질을 만들어가는 존재 → 실존에 본질에 우선   - 인간은 자기 결정성이 있는 존재: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 인간은 자유롭게 선택하고 결과에 책임을 지는 주체적 존재 → ‘실존적 휴머니즘’  ⑤ 하이데거의 무신론적 실존주의  •인간은 죽음에 이르는 존재: 인간은 유일하게 자신의 존재 의미를 묻는 존재자   - 실존: ‘현존재(Dasein)’ → 늘 불안과 염려 속에서 살아가는 이 세계 속의 존재   - 불안: 자신이 죽음에 이르는 됨을 아는 계기, 진정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  •인간은 능동적 존재: 현존재의 의미를 물음으로써 스스로의 삶 창조  ⑥ 야스퍼스의 유신론적 실존주의: 단독자로서의 인간은 ‘한계 상황’에 직면해 절망하고 좌절함 → 이를 통해 인간은 신과 같은 절대자로의 초월에 이를 수 있음


  
경험 중시 흐름
자료 1 소피스트

만일 소피스트에 대하여 탐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고대 그리스 사회에 대하여 별로 아는 것이 없게 될 것이다. 소피스트에 속하는 인물들은 여러 도시 국가들을 떠돌면서 돈을 받고 자신들이 소유한 기술을 가르치는 교사들이었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기술이 도시 국가 안에서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여러 문제들, 특히 정치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매우 유용할 것이라고 선전하였다. 기원전 5세기경 민주정이 등장하면서 그들의 기술은 민회에서 연설을 하거나 많은 시민들 앞에서 자신의 주장을 펴 나갈 필요가 있는 시민들에게 매우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특히 수사학의 기술이 필요하였기 때문에 많은 소피스트들은 자신들을 수사학자라고 광고하였다. 수사학이란, 실제로 소피스트들이 그렇게 하였듯이, 말과 글을 더욱 설득력 있게 만드는 기술이며, 수사학의 목표는 진실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성공을 거두는 것이다. 다른 소피스트들은 경쟁자나 논적(論敵)을 꺾고 승리하는 기술을 가르쳤는데, 이 경우에 있어서도 기술의 목표는 정의가 아니라 성공이었다. …(중략)… 그러나 이런 통속화된 소피스트들의 모습이 그들의 전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소피스트들은 철학적 견해를 지니고 있었으므로 자신들의 활동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철학적 신념들을 동원하기도 하였다. 사실상 소피스트들의 철학적 주장들 중 일부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특히 자신들이 여러 문제에 대하여‘상대주의적’인 입장을 취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당연히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만한 주장들로 구성되어 있다.









자료 2 프로타고라스의 ‘인간은 만물의 척도이다.’

“진리에 관하여(on truth)”라는 프로타고라스 저술의 첫 문장은 다음과 같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이다. 존재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것이 존재하는 척도이며,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척도이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이다.”라는 명제는 프로타고라스의 상대주의를 전형적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무엇보다도 초기 프로타고라스 주석가들의 주장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실재를 판단하는 것, 즉 어떤 것이 존재하며 다른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리는 것은 각 개인이라는 점이다. 두 번째로 이 개인이 존재함과 존재하지 않음에 대한 척도, 즉 기준이나 표준이 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척도는 어떤 것이 존재하는지(또는 그렇지 않은지를) 보여 주는 것이며, 또한 그것이 어떻게 존재하는지를, 즉 어떤 성질을 지니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프로타고라스에 따르면, 한 개인이 경험하는 바에 따라서 그가 믿게 되는 바가 어떤 것이 존재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만일 존재한다면 어떻게 존재하는지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개인적인 경험과 신념은 그것을 결정하는 기준이 된다. 자신의 경험이나 신념과는 전혀 무관하게 어떤 것이 존재함과 존재하지 않음을 결정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리고 이러한 기준에 의해서 ‘측정된’ 것이 아닌 다른 어떤 실재를 인식할 수 있는 사람 또한 아무도 없다.





자료 3 고르기아스의 불가지론(不可知論)

여러 소피스트들은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상대주의를 발전시켰다. 상대주의는 방종한 개인주의가 되어 버릴 수도 있었을 것이요, 혹은 관습에 의해서 억제당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고르기아스는 프로타고라스와 같은 시대의 소피스트로서, 위에 말한 두 가지 길 가운데에서 전자 쪽으로 치우쳤다고 볼 수 있다. 그는 다음과 같은 기발한 주장을 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첫째로,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둘째로, 어떤 것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알 수가 없다. 셋째로, 어떤 것을 알 수 있다 하더라도 그 지식은 전달될 수가 없다.”
이 야릇한 주장의 진정한 의미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이 주장은 아마도 다음과 같은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된다. 첫째로 어떠한 것도 어떤 관찰자에게 그것이 나타나는 현상보다 앞서서 그 현상으로부터 독립해 있는 대상으로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둘째로 이러한 대상이 설령 존재한다 하더라도, 사람은 오로지 자신의 관찰에만 의지할 수밖에 없는 만큼 그것을 알 수가 없다는 것, 셋째로 설령 우연히 어떤 사람이 현상으로부터 독립해 있는 대상에 대하여 어떤 지식을 얻었다 하더라도 타인이 그 사람과 꼭 같은 관찰을 할 수가 없는 만큼 그러한 자식을 타인에게 전달할 수 없으리라는 것이다.













자료 4 윤리적 상대주의

모든 도덕 규범은 문화권에 따라 상대적이라는 견해는 윤리학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견해 중 하나로 한 사회에서 적용되는 행위의 규칙은 다른 사회에 있는 사람들의 행위에 적용될 수 없다는 것이 이 견해의 핵심 주장이다. 각 사회는 자체의 규범을 가지고 있으므로 도덕은 전적으로 각각의 문화권에서 받아들여지는 표준과 규칙을 따르는 문제이다. 간단히 말해 옳다는 것은 나의 사회가 인정하는 것이고 그르다는 것은 나의 사회가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는 규범 윤리학의 모든 탐구 활동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왜냐하면 만약 옳고 그름이 어떤 개별적인 시간과 장소에 존재하는 도덕률에 의해 전적으로 결정되고, 또 도덕 규범이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다르다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 수 있는 이상적 도덕 체계를 세울 수 있는 불변의 범문화적인 원리가 없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규범 윤리학의 목적이 바로 이러한 보편적 원리의 체계를 세우고, 또 변호하는 것이므로 도덕 규범의 상대성을 믿는다는 것은 바로 규범 윤리학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먼저 윤리적 상대주의의 이론을 검토하는 것이 중요하다.
윤리적 상대주의가 제기하는 질문은 다음과 같이 표현될 수 있다. “도덕적 가치는 절대적인가, 상대적인가?” 이러한 질문은 “모든 인류에게 적용되는 보편적인 도덕 규범이나 행위의 규칙이 있는가, 또는 도덕적 표준이나 행위 규칙은 문화권에 제한되어 있는가”를 묻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러한 질문에 모든 도덕적 가치는 상대적이거나 문화권에 제한되어 있다는 주장을 가지고 대답하는 사람들은 다음 세 가지 관념 가운데서 어느 하나를 말하고 있다. 첫째, 그들은 상대적임을 경험적 혹은 사실적인 주장을 근거로 내세운다. 둘째, 규범적 주장을 할 수도 있다. 셋째, 분석 윤리학적인 원리를 말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윤리적 상대주의라는 말은 이상과 같은 세 가지 입장의 전부나 혹은 그 중의 하나를 지시하는 것으로 사용되고 있다.








자료 5 에피쿠로스학파의 ‘고통으로부터의 해방’

기원전 330년경 이래로 그리스 도시 국가는 점차 쇠퇴하게 되었고, 이와 함께 이제까지 국가를 지탱해 왔던 중류층이 빈민화되었다. 에피쿠로스는 이러한 역경 속에서 행복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밝히고자 하였다. 다시 말해 에피쿠로스에게 있어서 철학의 목적은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이다. 그는 고통을 초래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피하고자 했기 때문에 심지어 기존의 교육이나 공적인 일까지도 거부했고, 개개인이 오로지 자기 자신과 공동체만을 의지해서 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람들은 흔히 에피쿠로스를 쾌락주의라고 말하지만, 에피쿠로스가 추구한 쾌락은 사실 ‘모든 정신적·육체적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이었다. 특히 순간적이고 육체적인 쾌락(동적 쾌락)을 추구했던 키레네학파와는 달리, 에피쿠로스는 지속적이고 정적인 쾌락을 추구하였다. ‘아타락시아’란 바로 ‘마음이 동요되지 않고 평안한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에피쿠로스에 따르면, 우리 모두는 욕망을 가진다. 하지만 어떤 욕망(가령 사욕)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반면, 어떤 다른 욕망(가령 사치품에 대한 욕망)은 오히려 고통만도 못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욕망을 선택하고 어떤 욕망을 피해야 하는가? 이에 대하여 에피쿠로스는 우리가 최소한의 의식주에 만족해야 한다고 답한다. 왜냐하면 배고픔을 면하게 해 준다는 점은 싸구려 음식이나 사치스러운 음식이나 마찬가지이며, 사치스럽지 않고 검소한 음식에 길들여지는 것은 우리에게 완전한 건강을 주기 때문이다. 결국 삶을 즐겁게 만드는 것은 계속해서 술을 마시고 흥청거리는 일도 아니고, 성적 욕구를 만족시키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어떤 욕망을 선택하고 어떤 욕망을 기피해야 하는지 잘 계산하는 일이다. 이 때문에 에피쿠로스는 “사려 깊음(phronesis)은 심지어 철학보다도 소중하다.”라고 말하였다.









자료 6 쾌락주의, 에피쿠로스학파

에피쿠로스는 인생의 목적을 ‘행복’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소크라테스를 비롯한 대부분의 철학자들도 동의하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무엇이 행복이며, 인간이 어느 때 행복하냐에 따라 그 주장이 달라진다. 가령 스토아학파는 덕을 실현할 때 행복하다고 했다. 그러나 에피쿠로스는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쾌락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즐거울 때 행복하다. 가령 개그 프로그램을 보거나 즐거운 놀이를 할 때 우리는 행복을 느낀다. 이와 반대로 벌을 받고 있거나 몸이 아플 때, 또는 기분이 우울할 때에는 인생이 불행하다고 느껴진다. 즉 모든 행복은 즐거움과 관계되어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인생의 목적인 행복에 이바지하는 쾌락(즐거움)은 우리에게 좋은 것(선)이 되고, 불행을 가져오는 불쾌는
우리에게 나쁜 것(악)이 될 수밖에 없다. 즉쾌락은 선이고 불쾌는 악이다.
여기에서 감각적인 개념인 쾌락과 불쾌가 어느새 도덕적 개념인 선악으로 바뀌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고통을 피하고 쾌락을 얻고자 하는 것은 모든 생명체의 본능적 특성이자 인간의 본성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결국 우리에게 쾌감을 가져다주는 것은 선이 되고, 고통과 불쾌를 가져다주는 것은 악이 된다. 이렇게 보면 학문도 인류에게 고통보다는 즐거움을 안겨 주는 것이어야 하고, 도덕이라는 것도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한 수단이어야 한다. 종교 또한 사람들에게 마음의 평안과 위로를 가져다줄지언정, 공포감을 조성하거나 협박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정치와 경제, 문화와 예술 역시 궁극적으로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에피쿠로스가 무조건 눈앞의 쾌락을 추구하라고 주장한 것은 아니다. 과연 무엇이 진정한 쾌락을 가져다주느냐를 잘 살펴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키레네학파와는 달리, 그는 쾌락에도 질적 차이가 있음을 인정한다. 가령 성관계, 음주, 마약처럼 육체적 욕망을 채우는 데서 얻어지는 강하고 순간적인 쾌락이 있는가 하면, 문화와 예술을 감상하는 등 정신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에서 오는 약하고 지속적인 쾌락이 있다. 대체로 육체적 쾌락은 강력한 반면 짧고, 정신적 쾌락은 약한 대신에 길다.
만약 쾌락이 인생의 최고선이자 목표라고 한다면 우리가 사는 동안 되도록 많은 쾌락을 누리는 것이 상책일 것이다. 만약 우리가 하루살이라고 한다면 길게 볼 것도 없이 그저 하루 동안 짧고 강한 쾌락을 누리며 살면 된다. 하루살이에게‘내일’을 말하는 것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보통 몇 십 년 이상을 살기 때문에 인생의 모든 기간을 통해 쾌락의 양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 되도록 쾌락의 양이 고통의 양보다 많도록 해야 하는데, 흔히 우리가 경험하듯 육체적 쾌락 뒤에는 더 큰 불쾌가 따라오기 마련이다. 실컷 술을 마시고 난 다음날 후회한다든가, 한꺼번에 돈을 다 써버리고 욕을 먹는다든가 하는 일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러므로 강하고 짧은 육체적 쾌락보다는 차라리 약하고 지속적인 정신적 쾌락을 선택하는 편이 더 현명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우리에게는 지속적인 행복을 위해 크고 작은 고통을 참아야 할 때가 있는가 하면, 먼 훗날의 큰 행복을 위해 지금의 작은 쾌락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생기는 것이다.
…(중략)… 인간은 정신적 동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적 쾌락의 강도는 육체적 쾌락보다 더 강하다. 인간은 정신력으로 육체적인 고통을 제압할 수도 있다. 그래서 에피쿠로스는 “나에게 빵과 물만 있다면, 나의 행복을 제우스 신의 그것과 견주리라.”라고 말했던 것이다. 가난과 질병 가운데에서도 행복을 느낄
줄 아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스토아학파와 에피쿠로스학파의 윤리학은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다. 이 두 학파는 모두 인생의 목적을 행복에서 찾는다. 그러나 키니코스학파(견유 학파)의 영향을 받은 스토아학파가 행복을 ‘덕스러운 생활’에 있다고 봄으로써 금욕주의의 입장에 섰던 반면, 키레네학파의 전통을 이어온 에피쿠로스학파는 “행복이란 곧 쾌락에 있다.”라고 주장함으로써 쾌락주의적 입장에 섰다.
그런데도 선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에서 두 학파는 일치한다. 즉 스토아학파는 아파테이아(부동심)를, 에피쿠로스는 아타락시아(평정심)를 주장하였는데, 결국 이것들은 비슷한 의미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다만 스토아학파가 도덕의 사회성을 강조한 데 비해, 에피쿠로스학파는 매우 개인주의적이어서 보편적 법칙에 대한 존중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자료 7 헬레니즘 시대의 쾌락주의

쾌락주의는 좋은 삶이 무엇인가에 대해 비교적 단순한 견해를 보인다. 즉 쾌락주의는 행복을 쾌락의 획득 및 고통의 회피와 동일시한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두 그러한 삶의 철학이 부적합한 것임을 여러 차례 강조하였으며, 어떤 쾌락은 좋은 것이지만 다른 어떤 쾌락은 나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쾌락주의는 수많은 추종자들을 얻게 되었다. 헬레니즘 시대의 가장 중요한 쾌락주의자인 에피쿠로스는 아테네에 ‘에피쿠로스의 정원’이라는 이름의 학교를 개설하였는데, 이 학교는 플라톤의 아카데미아와 아리스토텔레스의 리케이온과 대등한 정도의 영향력을 지니게 되었으며, 그 후 500년 동안이나 굳건히 유지되었다.
…(중략)…알렉산드로스 이후에는 도시 국가들이 권위를 잃게 되었고, 군주의 권력이 그러한 권위를 집중적으로 소유하게 되었다. 이러한 정치적 변화는 그리스인들의 개인적인 삶의 양식에도 마찬가지로 큰 변화가 일어났음을 함축한다. 알렉산드로스가 등장하기 이전까지 인간의
삶과 성공, 행동 등에 대한 그리스인들의 기본적인 생각은 도시 국가라는 정치적 질서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다. 그들의 삶이 전개되고 또 의미를 지니는 것은 철저히 도시 국가라는 단위 안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 이후에 도시 국가는 사실상 해체되었고, 그리스인들은 소외감, 소속감의 상실, 삶의 무의미함 등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러한 험난한 환경에 대응하는 방법 중의 하나는 평화와 안락함을 필요로 하는 관조의 삶을 포기하고, 단지 도시 국가 안에서의 성공적인 삶에나 어울리는 덕들을 잊어버리고 더욱 절실한 문제들을 생각하는 것이었다. ‘우리의 삶은 짧고 미래는 불확실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합리적으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오직 자신을 위하여 가능한 한 최대한의 삶을 움켜잡는 것뿐이다. 그리고 많은 그리스인들은 여기서 ‘최대한의 삶’이 곧 ‘최대한의 쾌락’이라고 생각하였다. “개인의 쾌락을 극대화하라. 가능한 한 강한 쾌락을 추구하라. 그리고 그 순간을 마음껏 즐겨라.” 바로 이러한 충고들이 가장 현실적인 것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자료 8 쾌락주의의 문제점

쾌락주의를 무시하거나 제거하지 않고도 우리는 얼마든지 그것을 비판할 수 있으며 또 그렇게 하여야만 한다. 키레네학파의 철학이 우리 일상적인 삶의 경험들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큰 수고가 필요하지 않다. 우리 대부분에게는(또는 거의 항상) 내일이 찾아온다. 우리 대부분에게는 미래가 있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는 아리스티포스가 권하는 방탕한 삶을 살면 그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점을 바로 알게 된다. …(중략)… 그런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는 항상 쾌락을 얻을 수 있는 기회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쾌락에 방해가 되는 모든 것들을 제거하기 위하여 신경을 써야 하며, 고통을 주는 결과를 피하기 위하여 민첩하게 움직여야 한다. 결국 이렇게 항상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삶은 쾌락주의가 권하는 태평스럽고 즐거운 삶과는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 더욱이 키레네학파의 철학은 “쾌락주의의 역설”이라고 불리는, 즉 우리가 쾌락을 추구하면 할수록 쾌락을 얻을 기회는 더욱 줄어든다는 역설에 빠지는 것처럼 보인다. 쾌락이 가득 찬 삶을 사는 사람은 대체로 쾌락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이 설정한 목표와 가치들을 성실하게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결국 이들은 자신의 가치를 헌신적으로 추구함으로써 성공하게 되며 그 결과 쾌락을 경험하게 된다.





자료 9 개인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에피쿠로스학파와 스토아학파의 차이

한 개인이 사회 및 정치와 관련해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놓고 에피쿠로스학파와 스토아학파는 완전히 상반되는 입장을 드러낸다. 에피쿠로스학파는 사회로부터 벗어나 서로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끼리의 소규모 집단을 이루어 살아갈 것을 권하면서 정치적인 삶을 감옥에 비유하였다. 그러나 스토아학파는 이 문제에 대해 다른 입장을 취하면서 “어떤 현명한 사람도 결코 고독하게 혼자 살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간은 본성상 사회를 만들고 그 안에서 행위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한다. 이처럼 스토아학파에서는 인간을 사회적 존재로 보면서, 누구나 인류의 구성원이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키케로가 지적했듯이, “우리가 공통적인 인간상을 지니고 있다는 단순한 사실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유사한 인간으로서 친밀감을 느낄 것을 요구한다. ”이와 같이 인류에 대한 동료 의식은 스토아학파가 세계 시민주의 사상을 전개한 이유를 잘 설명해 준다.







자료 10 영국의 경험주의

르네상스를 지나 17, 18세기에 이르러 유럽 대륙에서는 합리주의 사상이 발달함과 동시에 영국을 중심으로 경험주의(empiricism) 사상이 발달한다. 경험주의와 합리주의(이성주의)의 진리 탐구 방식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합리주의적인 사고에 따르는 인식은 이성의 사유에 의존한다는 것이고, 경험주의적인 사고에 따르는 인식은 감각적인 경험과 관찰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이성적인 사유에 따른 진리는 합리적 이성이 직관적으로 확실하다고 파악된 진리를 근거로 해서, 이것으로부터 필연적이고 논리적인 방법에 따라 연역적으로서 추리해 감으로써 얻어내는 것인 반면에, 경험적 사유에 따른 진리는 우리의 감각 기관을 통해서 들어오는 경험적인 사실을 근거로 해서, 이것으로부터 귀납적으로 추리해 감으로써 확실한 진리 체계를 세우는 것이다. 그러므로 합리적인 인식 이론은 선천적으로 주어지는 이성을 존중하고, 이
성의 논리적이고 연역적인 추리에 의존하기 때문에 보편적이고 객관적이며, 절대적이고 필연적인 진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경험론적인 인식 이론은 후천적으로 주어지는 개별적인 감각을 중시하고, 경험의실험·관찰과 귀납 추리에 의존하기 때문에 언제나 구체적이고 주관적이며, 상대적이고 개연적인 진리가 된다. 따라서 합리론자들은 본유적인 것을 내용으로 하는 논리적인 사변 철학을 형성하는 반면에, 경험론자들은 후천적인 감각적 관찰을 내용으로 하는 심리적인 감성의 철학을 형성한다.
경험론은 인간의 지각이 어떻게 현실을 받아들이는가 하는 감각적인 사실로부터 출발한다. 경험적인 사실은 객관적인 대상들로부터 감각의 참여로 이루어진다. 인간의 지성은 감각 기관을 통해서 정신 밖에 주어지는 사실들과 사물들에 대한 정보를 얻어 낼 수 있다. 그래서 경험론자들은 “일차적으로 감각 속에 존재하지 않는 것은 어떤 것도 지성 속에 없다.”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사상적인 주류는 고대 그리스의 소피스트나 키레네학파, 스토아학파, 에피쿠로스학파 그리고 중세의 유명론자들과 토마스주의자들에게서 나타난다. 그러나 경험주의 철학이 본격적으로 체계화되는 것은 근대 영국의 경험자들에 의해서이다. 경험주의 철학은 주로 베이컨으로부터 시작하여 로크에 의해 체계적으로 확립되고, 이후에 버클리에 이르러 극단적인 관념론으로 빠지다가 흄에 이르러 회의론에 접어든다.







자료 11 베이컨

베이컨(Bacon, F., 1561~1626)의 철학에 불충분한 면이 많다고 해도, 베이컨은 근대 귀납법의 창시자이자, 과학적 탐구 절차를 논리적으로 체계화하려 노력한 선구자로서 영원히 기억할 만하다. …(중략)… 법관이었던 베이컨은 그의 선배인 토머스 모어처럼 대단히 훌륭한 도덕성을 겸비한 인물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사악한 인물도 아니었다. 베이컨은 도덕성 측면에서 볼 때 당대의 다른 법관들보다 더 낫지도 더 나쁘지도 않은 평범한 인물이었다. 그는 5년간 은퇴 생활 끝에, 닭 속에 눈을 가득 채워 넣어 냉장하는 실험을 하다 독감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학문의 진보”는 베이컨의 가장 중요한 저작으로, 여러 면에서 근대적인 특징이 드러나기 때문에 주목을 받는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격언은 베이컨이 처음 한 말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사실 이전 세대에 살았던 사람들이 말했을 가능성이 높다. 어쨌든 베이컨은 그 격언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그의 철학 전체를 꿰뚫는 기본 정신은 실제 생활에 도움을 주는 것, 과학적 발견과 발명을 수단으로 인류에게 자연을 지배할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그는 철학은 신학과 분리되어야 하며, 특히 스콜라 철학의 경우처럼 철학과 신학이 분리되지 않은 상태로 뒤섞여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는 정통 종교를 인정했으며, 종교적인 문제로 정부와 다툼을 벌일 인물은 아니었다.




















자료 12 베이컨의 우상론

베이컨 철학에서 가장 유명한 대목은 우상의 목록표이다. 우상(偶像, idols)이라 함은, 그것을 그대로 내버려 두면 사람을 거짓으로 말려들게 하는 마음의 모든 경향을 일컫는다. 베이컨은 그러한 우상을 네 가지로 구별하고 정의하는 동시에, 각각에 독창적이고 재미있는 이름을 붙였다.
‘종족의 우상(The idol of the tribe)’은 인류의 온 종족에 고유한 것으로서 사람을 오류로 이끄는 위험한 충동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베이컨에 의하면, 인간의 오성(悟性)은 항상 감정과 의지로 말미암아 자칫하면 그릇된 판단으로 이끌려가기 쉽다. 가령 단순함을 좋아하는 성질 때문에 사람들은 유성(遊星)들의 궤도가 원형이라고 믿게 된다. 또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목적을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로 미루어 자연도 궁극의 목적을 추구하고 있는 것처럼 믿으며, 자신들의 소원과 공포심이 강한 탓으로 자신들의 기도가 효과를 보고 대답을 얻을 것이라고 믿는다.
‘동굴의 우상(The idol of the cave)’은 어느 정도 각 개인의 특수성에서 오는 오류의 특별한 경향을 말한다. 베이컨의 설명에 의하면, 모든 사람은 자기의 고유한 동굴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사람이 자기의 동굴에 들어박힐 때에는 자연의 광명이 비쳐 들어가기는 하겠지만, 그 광명은 일정한 모양으로 변색하기 쉽다. 베이컨이 지적한 바와 같이, 이 우상에 관해서는 일률적인 원칙을 말할 수가 없다. 사람이란 각각 자기가 속한 당파가 있고, 읽는 책이 다르며, 또 취미도 다양하다. 각자는 자기 자신을 연구하고 자기 자신의 주관적 경향을 삭제해야 한다.
‘시장의 우상(The idol of the market)’은 우리가 언어에 의해서 기만당하기 쉬운 경향을 말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시장에 가서 물건을 사고팔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주고받고 잡담을 일삼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람이란 모든 언어와 일치하는 실재가 있다고 믿기 쉽다. 그래서 사람들은 때로는‘운명의 여신’을 실재하는 신으로 숭배하고, ‘제일 질료(第一質料)’니 ‘부동(不動)하는 동자(動者)’니 하는 것에  관한 쓸데없는 공론(空論)의 체계를 세우며, 또 공허한 논쟁을 일삼곤 한다.
‘극장의 우상(The idol of the theater)’은 사람의 판단을 잘못되게 하고 사람을 편당적(偏黨的) 인물로 만들기 일쑤인 역사적 전통에 대한 충성을 가리킨다. 아마 베이컨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나오는 왕과 귀족들이 무대 위를 거니는 것을 보았을 것이며, 그 광경을 염두에 두고 ‘극장의 우상’이라는 표현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 “일반이 승인하고 있는 체계들은 모두 무대 연극에 불과하며, 사실과는 관계없이 연극적으로 꾸며진 작가 자신들의 창작 세계에 해당하는 것들이다.”라고 베이컨은 서술하고 있다. 극장의 우상의 가장 나쁜 예로 종교적 미신과 신학이 인간의 판단에 미치는 영향을 들 수 있다. 다른 예로는 모든 철학적 분파(分派)에서 오는 비슷한 영향을 들 수 있다.















자료 13 홉스의 “리바이어던”

토머스 홉스의 “리바이어던”은 인간 본성에 대한 예리한 통찰 아래 자연 상태에서의 인간은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데에서 출발한다. 이는 자기 보호를 위해 사회 계약론의 기초 위에 근대 국가를 세운다는 근대 국가론을 주장한 저서이다.
“리바이어던” 원서 표지에 나오는 거인(괴물)의 오른손에는 검(정치권력), 왼손에는 지팡이(교회 권력)를 들고 있고, 그의 몸은 수많은 사람들로 이루어져 묘사되어 있다. ‘리바이어던’은 “구약성서”, ‘욥기’에 나오는 괴물 이름에서 유래되었으며, 인간의 집합이면서 인간의 힘을 월등히 뛰어넘는 ‘괴물=인공 인간=국가’를 풍자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자료 14 홉스가 보는 ‘인간의 자연 상태’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평등하다.

자연은 인간을 육체적·정신적 능력에서 평등하게 창조했다. 따라서 남보다 더 강한 육체적 능력을 지닌 사람도 이따금 있고 두뇌 회전이 남보다 빠른 경우도 더러 있지만, 이러한 능력을 모두 종합해 보면, 인간들 사이의 능력 차이는 거의 없다. 있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편리와 이익을 주장할 수 있을 만큼 두드러지지는 않다. 육체적으로 아무리 약한 사람이라도 음모를 꾸미거나 같은 위험에 처해 있는 약자들끼리 공모하면 아무리 강한 사람도 충분히 쓰러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중략)…

•평등에서 불신이 생긴다.

이러한 능력의 평등에서 목적 달성에 대한 희망의 평등이 생긴다. 즉 누구든지 똑같은 수준의 기대와 희망을 품고 목적을 설정하며,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두 사람이 서로 같은 것을 원하지만 그것을 똑같이 누릴 수 없다면 그 둘은 서로 적이 되어 상대편을 무너뜨리거나 굴복시키려고 하게 된다. 파괴와 정복을 피할 수 없게 만드는 경쟁의 주된 목적은 자기 보존과 때로는 파괴의 정복에서 오는 쾌감 그 자체이다. 그리하여 다음과 같이 일이 일어난다. 침입자가 타인 단독의 힘 이외에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 누군가 농사를 짓거나 안락한 거처를 마련해 놓으면 다른 사람들이 몰려와서 그를 쫓아내고 노동의 열매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생명이나 자유까지 빼앗을 가능성을 예상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침략자 역시 다른 침략자에 의해 같은 위험에 놓이게 된다.

•불신에서 전쟁이 발생한다.

이와 같이 서로 불신하는 상황에서 누구나 닥쳐올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안전하게 보존하려면 선수를 치는 것 외에는 타당한 방법이 없다. 곧 폭력이나 계략을 써서 되도록 모든 사람들을 오랫동안 지배하여 더 이상 자신을 위협하지 못하도록 무력화하는 일이다. 이것은 오로지 자신을 보호하는 데 필요한 범위를 넘어서지 않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허용되어 있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안전에 필요한 범위를 넘어선 정복 행위를 통하여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고 쾌감을 느끼기 때문에, 안전하기만 하다면 일정한 범위 안에서 만족하려는 사람들조차도 힘을 증대시키지 않고 수비만 해서는 생존이 보장되지 않는다. 따라서 선량한 사람들조차도 침략을 통해 권력 부풀리기에 나서는 것이다. 이처럼 타인의 지배를 위해 힘을 키우는 것은 자기 보호를 위해 필요한 일이므로 누구에게나 허용되어야 한다.

•정치 국가들 외부에는 언제나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전쟁이 존재한다.

이로써 다음 사실이 분명해진다. 인간은 그들 모두를 위압하는 공통 권력이 없이 살아갈 때는 전쟁 상태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이 전쟁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전쟁이다. 즉 전쟁은 단순히 전투 또는 투쟁 행위의 존재 유무만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일정한 기간에 걸쳐 전투 의지가 존재하는 것이 확실하다면, 그 기간 동안은 전쟁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다. …(중략)…

•그와 같은 전쟁의 여러 가지 불편함

따라서 만인이 만인에 대한 적(敵)인 상태, 즉 전쟁 상태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자기 자신의 힘과 노력 이외에는 어떠한 안전 대책도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도 똑같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런 상태에서는 노동에 대한 결과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땀을 흘려 일한 것에 대한 보상이 불투명하다. 따라서 토지의 경작이나 항해, 해상 무역, 편리한 건축물, 이동을 위한 도구 및 무거운 물건을 운반하는 기계, 지표에 대한 지식, 시간의 계산도 없고, 예술이나 학문도 없으며, 사회도 없다. 그리고 가장 나쁜 것은 끊임없는 두려움과 폭력에 의한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인간의 삶은 외롭고, 가난하고, 비참하고, 잔인하고, 짧다는 것이다. …(중략)…

•이러한 전쟁에서는 어떤 것도 부당하지 않다.

모든 사람이 모든 사람에 대하여 전쟁을 하는 상황에서는 그 어떤 것도 부당한 것이 될 수 없다. 옳고 그름의 관념, 정의와 불의의 관념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공통 권력이 없는 곳에는 법도 존재하지 않으며, 법이 없는 곳에는 불의도 존재하지 않는다. 전쟁에서 요구되는 덕은 오로지 폭력과 속임이다. 정의·불의는 육체 또는 정신의 어떤 능력에도 속하지 않는다. …(중략)…

•사람들을 평화로 향하게 하는 정념들

인간을 평화로 향하게 하는 정념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 쾌적한 생활에 필요한 각종 생활용품에 대한 욕망, 그런 생활용품을 자신의 노력으로 얻을 수 있다는 희망 등이다. 그리고 이성은 인간들이 서로 협정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적절한 평화의 조항들을 시사한다.








자료 15 홉스의 ‘사회 계약’

홉스는 오늘날에도 충분한 생명력을 발휘하는 윤리설 중의 하나를 제시하고 발전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사회 계약론’으로 알려져 있는 윤리설의 창시자인데, 이 이론에 따르면 우리의 도덕적(정치적) 의무들은 인간이 자신의 생존을 유지하고 더욱 만족스러운 삶에 도달하기 위하여 상호 간에 맺은 계약으로부터 생겨난다. 홉스에 따르면, 이성은 우리에게 우리의 무제한적인 자유를 포기하고 중앙 집권
적인 권력의 지배를 받아들이는 계약을 맺을 것을 충고한다. 이러한 계약을 맺은 후에 우리는 이 계약을 준수해야 한다는 의무를 지니게 된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도덕성의 근거가 놓여 있다. 의무는 우리가 자발적인 계약을 통해 만들어 낸 일종의 구속이다.
홉스에 있어서 도덕적 의무와 도덕 규칙들은 이런 것들이 없을 경우에 생겨나는 참혹한 결과를 피하기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수단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이들은 그 자체만으로 그리고 자연적으로 바람직한 것은 결코 아니다. 홉스는 “의무는 일종의 속박”이라고 하였으며, 그의 도덕 철학의 대부분은 왜 우리가 이러한 속박이라는 그리 달갑지 않은 것을 자발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가를 보이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은 본질적으로 우리가 의무의 구속을 받아들임으로써 두 개의 악 중에 덜 악한 것을 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의무의 구속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즉 계약과 도덕 법칙의 제약이 없는 상태에서의 삶은 “고독하고, 곤궁하며, 험악하고, 무자비하고, 짧다.” 도덕적인 삶은 도덕이 우리에게 부과하는 의무들 때문에 제한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에게 생존을 허락할 뿐만이 아니라 더욱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최선의 기회를 제공한다. 도덕성은 단지 더욱 나은 거래일 뿐이다.







자료 16 로크의 ‘자연 상태’

정치권력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그것의 기원을 밝혀내기 위해 우리는 모든 사람들이 자연적으로는 대체 어떤 상태에 놓여 있는가를 고찰해 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그것은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이다. 즉 그것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허가(許可)를 얻는다든가 또는 다른 사람의 의지에 의존하는 일이 없는, 자연법(自然法)의 범위 내에서 스스로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대로 자신의 행동을 규율하며, 또한 그 소유물과 신체를 처리할 수 있는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인 것이다.
그것은 또한 평등한 상태이기도 하다. 그곳에서는 일체의 권력과 권한(지배권)은 상호적인 것이며,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것을 갖는 일은 없다. 왜냐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이 너무나 명백하기 때문이다. 즉 똑같은 종류와 똑같은 등급의 피조물은 태어나면서부터 아무런 차별도 없이, 모두 똑같이 자연의 혜택을 누리며 또한 똑같은 능력을 행사할 수 있으므로—적어도 일체의 피조물의 주(主)이시며 지배자이신 하나님께서, 어떤 한 사람을 특별히 지명하시어, 그에게 의심의 여지가 없는 명확한 지배권과 주권(主權)을 부여하시지 않는 한—사람들은 누구나 남에게 종속 또는 복종되는 일이 없이 모두 평등해야 한다는 사실은 너무나 명백하기 때문이다.







자료 17 로크의 인식론

로크는 ‘인간의 지식의 기원과 확실성, 그리고 정도에 관한 탐구’에 착수했다. 그는 만일 지식이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또 어떻게 그것이 획득되는가를 알 수 있다면 지식의 한계를 결정할 수도 있고 지적인 확실성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도 알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가 도달한 결론은 지식이란 관념들(ideas), 즉 플라톤의 이데아나 형상이 아닌 우리가 경험하는 대상들에 의해 생성되는 관념들에 국한되어 있다는 것이다. 관념의 기원은 경험이며, 경험은 두 가지의 형태를 띠는데 그것은 감각(sensation)과 반성(reflection)이다. 우리의 관념들은 예외 없이 감각 기관을 통해 우리에게 들어오게 되며, 우리는 감각 기관에 의해 외부의 세계를 경험하게 되고, 이 관념들에 대한 반성을 통해 우리 내부 경험에 이른다. 로크가 명확하게 하고자 했던 것은 우리가 감각의 경험을 얻을 때까지는 반성의 경험을 이룰 수 없다는 점이었다. 왜냐하면 반성은 단순히 정신이 그 자신의 작품들을 이해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신 작용은 관념들이 공급되었을 때 시작하며 이 관념들은 감각 기관을 통하여 외부에서 오게 된다. 이것은 곧 각 개인의 정신이 처음에는 빈 종이(a blank sheet of paper)와 같아서 경험만이 그 위에 지식을 써넣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로크는 이러한 결론들을 다듬기 이전에 계속되어 오던 생득 관념론을, 즉 어떤 식으로든 이미 정신 속에 만들어진 표준적인 관념들의 다발을 가지고 세상에 나오게 된다는 생각을 멈추게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자료 18 사회 계약설

사회 계약설이 정부 구성의 원리 또는 정치적 권위의 정당화 근거로서 자리 잡게 되는 것은 17세기 근대 이후이다. 홉스, 로크, 루소 등이 대표적인 주창자들이며, 사회 계약설은 자연 상태, 개인주의 그리고 자유주의라는 용어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인간은 독립적이고 주체성을 지닌 존재자이며, 자연이 부여한 절대적 자유와 권리(자연권)를 소유한 존재자라는 점에는 이 세 철학자가 모두 동의하지만, 사회 계약의 존재 이유와 형식에서는 서로 차이를 보인다. 홉스는 자기 생명을 보장해 줄 절대 권력자를 세우고 자연 상태(전쟁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한 절차로 사회 계약을 이해한 반면, 로크는 정부를 세우되 권력의 집중을 막기 위해 권력 분립을 주장하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절차로 사회 계약을 이해한다. 생명과 사유 재산의 궁극적 권리는 개인에게 있기 때문에 양도가 불가능하며, 시민은 이를 위반하는 부당한 권력자에게 저항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루소는 국가를 자유로운 시민들의 일반 의지를 구체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인공적인 산물로 이해하는데, 국가를 지탱하는 원리가 곧 자유로운 시민들 간의 사회 계약이다. 루소는 인간은 완전한 이상 사회인 자연 상태로 돌아가야 한다고 하였지만 현실은 사회·제도·국가 등 사회 계약의 산물들로 구성되어 있다.







자료 19 흄, “이성은 감정의 노예다.”

흄은 이성을 통해 우리가 사물들의 관계를 인식할 수 있는 반면, 행동의 원동력은 욕구라고 생각했다. 이성은 우리에게 목적을 정해 줄 수 없고, 다만 우리가 이미 욕구하는 것을 달성하는 방법을 가르쳐 줄 수 있기 때문에, 그는 이성을 ‘감정의 노예(the slave of the passion)’라고 주장했다. 그는 실천 이성의 개념을 완전히 부정했으며, 일반적 의미에 비해 ‘이성’을 협소하게 그리고 ‘감정’을 폭넓게 정의했다. 이성에 관한 이러한 흄의 견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와 크게 다르다. 우리의 선호는 고정되어 있어서 이성이나 사회적 압력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흄은 믿었다. 이것은 정치학이 인간의 본성 때문에 빚어지는 문제들에 대한 하나의 답변으로서만 가능하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정치가는 결코 새로운 세계를 창출하기를 희망할 수 없으며, 이성이 상대적으로 무기력하기 때문에 우리는 본능과 욕구를 이해해야 한다. 이러한 입장은 모종의 보수주의와 연관된다. ‘관습은 인생의 위대한 안내자’라고 흄은 단정한다. 이러한 관습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는 흄이 지적하듯이, 불이나 눈을 보기기만 해도 뜨거울 것이라든가 차가울 것이라고 기대하는 데서 잘 드러난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에 놓일 때 어떤 특정의 믿음을 가질 수밖에 없다.






자료 20 흄의 공감의 윤리설

이타적 관심이 적어지면 적어질수록, 타인들이 우리에게서 더욱더 멀어진다는 이유에서 도덕은 이타적 관심을 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흄은 도덕이 그러한 관심을 지나치게 많이 요구할 가능성이 있음을 지적한다.
이러한 문제는 인간의 감정에 기초한, 인간의 이성이 아니라 인간의 공감(共感)에 기초한 도덕 이론에 서 생기지 않을 수 없는 문제이다. 흄은 ‘공감의 원리(the principle of sympathy)’를 중시하면서, 그것을  ‘도덕적 특질의 주요 원천’이라고 부른다. 공감은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사태를 파악하려는 경향을 의미하며, 우리와 가까운 사람들과의 사이에서 더 쉽게 발휘될 수 있다고 흄은 생각하였다. 자기 자식을 다른 사람의 자식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실제로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그것은 모르는 사람을 도와주어야 하는가의 문제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내가 도와주고 싶은 사람과 내가 도와주어야 하는 사람이 언제나 동일 인물일 수는 없다. 이처럼 도덕의 보편적 요청과 우리의 특수한 공감 사이에는 간격이 있는 것이다. 흄은 “도덕의 제 원리에 관한 연구”에서 “인간 오성론”의 견해를 한층 더 일반화한 형태로 제시한다. 그는 우리가 특별히 선호하는 사람에 대한 선의보다는 인류 전체로 확장되는 선의를 강조한다. ‘이성’과 ‘감성’을 구별하면서도, 그는 ‘인류의 행복에 대한 감정과 인류의 불행에 대한 분노’를 적절한 감정으로 정의한다. 18세기의 많은 철학자로부터 각광받던 ‘도덕감(moral sense)’의 형태에 흄이 호소되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으며, 이것은 제한된 공감과 자기 이익에 토대를 둔 도덕적 관점에서 크게 벗어난 것이다. 그의 저작 전체를 살펴볼 때, 인간에게 인류 전체를 목적으로 하는 타인에 대한 사랑을 얼마나 기대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 대단히 모호하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흄은 도덕이 이성에 의해 수립되지 않았음을 주장한 점에서는 한결같고 철저하며 일관된다. 우리가 선의를 베푸는 범위가 넓든 좁든 간에 도덕은 인간에게 내려지는 명령이나 요구가 아니라 인간의 근본적 특성의 결과일 뿐이다. 흄에 있어서 도덕은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성립될 수 없다. 도덕은 인간 본성의 표출이기 때문이다.







자료 21 벤담의 도덕과 입법의 원리

자연은 인류를 고통과 쾌락이라는 두 주인에게서 지배받도록 만들었다. 우리가 무엇을 할까 결정하는 일은 물론이요, 무엇을 행해야 할까 짚어 내는 일은 오로지 이 두 주인을 위한 것이다. 한편으로는 옳음(right)과 그름(wrong)의 기준이, 또 한편으로는 원인과 결과의 사슬이 두 주인의 왕좌에 고정되어 있다. 이들은 우리가 행하는 모든 행위와 우리가 말하는 모든 말에서,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사고에서 우리를 지배한다. 우리가 복종하는 일을 팽개쳐 버리려고 노력을 기울일지라도 끝내는 오히려 그런 복종심을 끌어내고 확인하게 될 뿐이다. 말로는 그 주인들의 제국을 내팽개쳐 버리는 척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끝끝내 거기에 붙잡혀 남아 있게 될 것이다. 공리성의 원리는 복종 관계를 인식시켜 주고, 또한 이성과 법률의 손길로 행복의 틀을 짜는 목적을 지닌 체계의 기초로서 이러한 복종 관계를 가정하고 있다. 공리성의 원리에 의문을 제기하고자 하는 체계가 있다면 그것은 감각 대신에 소리를, 이성 대신에 변덕스러움을, 빛 대신에 어둠을 중시하는 것이다.




자료 22 벤담의 양적 공리주의

벤담은 빈곤층을 대상으로 스스로 자금을 조달하는 구빈원을 세워 ‘극빈자 관리’를 개선하는 방안을 내놓기도 하였다. 거리에서 거지를 줄일 목적으로 나온 이 계획은 공리주의 논리를 생생히 보여 준다. 벤담은 우선, 거지와 마주치면 두 가지 측면에서 행복(쾌락)이 줄어든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정이 많은 사람이라면 동정심이라는 고통이, 정이 없는 사람이라면 혐오감이라는 고통이 생긴다는 것이다. 어떤 경우든 거지와 마주치게 되면 일반적으로 사람들의 공리가 줄어들게 된다. 따라서 벤담은 거지를 구빈원으로 몰아넣자고 제안했다. ……결국 구빈원으로 끌려가는 거지들이 어떤 불행을 느끼든, 그러지 않을 경우 일반 대중이 겪는 고통의 합이 그보다 크다는 것이 벤담의 결론이다. ……벤담은 구빈원에서 방을 배정할 때도 공리주의 논리를 적용해 수용된 사람들이 주위 사람들에게서 느끼는 불쾌감을 최소화하려고 했다. “남에게 조금이라도 폐를 끼친다고 판단되는 사람이 있을 경우, 옆방에는 그러한 행위에 둔감한 사람을 배정한다.” 예를 들어 “미쳐 날뛰는 정신 이상자나 방탕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 바로 옆에는 농아를 배정한다. ……창녀나 헤픈 여자들 옆에는 나이든 여자를 배정한다.” 그는 또 ‘충격적으로 기형인 사람들’은 장님 옆에 두자고 제안했다. 벤담의 제안은 언뜻 가혹해 보이지만, 그의 목적은 벌을 주려는 것이 아니다. 그는 단지 사회의 공리를 줄이는 문제를 해결해 다수의 행복에 기여하려고 했을 뿐이다.                                                             -마이클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









자료 23 행위 공리주의와 규칙 공리주의

행위 공리주의는 각각의 개별적인 행위가 그들이 산출하는 쾌락과 고통(행복과 불행)의 전체 값에 따라 평가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도덕 이론이다. 따라서 옳은 행위는 어떤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행위들 중 최대한의 유용성을 지닌 행위이다. 반면에 규칙 공리주의는 평가 대상이 되는 것은 개별적인 행위들이 아니라 어떤 종류의 행위를 요구하는 규칙 또는 관행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따르면, 우리는 어떤 규칙이나 관행이 정당화될 수 있는지를 결정하여야 하는데, 그런 규칙이나 관행을 따랐을 경우 생기는 결과를 검토함으로써 이러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만일 그 관행이나 규칙에 일반적으로 따르는 것이 관행이나 규칙이 없는 경우보다 더욱 큰 쾌락과 행복을 산출한다면 또는 다른 어떤 규칙에 일반적으로 따르는 것보다 더욱 큰 행복을 산출한다면 그 관행이나 규칙은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규칙 공리주의자에게 있어 어떤 개별적 행위가 옳은 경우는 그 행위가 최대한의 유용성을 지닌 것으로 평가되어 이미 도덕적으로 정당화된 규칙이나 관행에 따른 경우이다.
규칙 공리주의의 지지자들은 몇 가지 근거를 들어 자신들의 이론을 옹호하며 행위 공리주의를 비판한다. 첫째, 그들은 개별적인 행위들의 결과를 측정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여러 관행들의 유용성을 평가하는 것이 더욱 적절하다고 주장한다. 즉 모든 사람들이 (어떤 규칙에 따라) 어떤 방식으로 행위를 하는 것의 결과를 평가하기가 각 개인이 이런 방식으로 행위를 하는 것의 결과를 평가하기보다 훨씬 쉽다는 것이다. 둘째, 규칙 공리주의들은 어쩌면 행위 공리주의자들이 어떤 특수한 상황에서는 약속을 파기하거나 거짓말을 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도 있다고 본다. 즉 어떤 상황에서는 약속의 파기나 거짓말이 그렇게 하지 않는 것보다 더욱 큰 유용성을 지닌다는 사실을 보임으로써 주장한다.






자료 24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원리의 난점

벤담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원리만이 도덕의 궁극적인 원리라고 생각했다. 평등이 좋은가 나쁜가 하는 것도 이 원리로 판단한다면, 일부 사람의 희생으로 전체 사람이 이익을 얻는 것이 공리주의 입장에서는 정의에 일치하는 것이 된다. 여기에 민주주의라는 조건이 문제가 된다. 다수결의 원리와 공리주의 원리를 함께 사용하면 다수가 소수를 희생시키는 것이 언제나 정당화될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열 사람이 에이즈에 걸렸는데, 그 병을 고칠 수 있는 특효약이 한 사람분밖에 없다고 하자. 물론 한 사람의 약을 열 사람에게 사용하면 아무런 효과가 없다. 어떻게 해서든 한 사람을 뽑아야 할 필요가 있다.
① 제비뽑기로 정한다. ② 사회에 가장 많이 공헌할 수 있는 사람, 예를 들면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에게 준다. ③ 가장 높은 금액을 지불할 사람, 예를 들면 미국의 자동차 사장에게 판다. ④ 도덕적으로 가장 적당한 사람, 예를 들면 강간으로 에이즈에 걸린 소녀에게 준다. ⑤ 모두 죽어도 상관없으니 균등하게 나눈다. ⑥ 최대 효율(efficiency)을 발휘시킬 수 있도록 분배한다.
어떤 방법을 따라야 평등하다고 할 수 있을까? ① 제비뽑기와 ② 균등 분할이라면 평등하다고 생각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먼저 제비뽑기를 해 본 결과 강간범이 당첨되었다고 하자. 이 경우 강간범은 목숨을 구하고 피해자는 죽어야 한다. 이것을 공평하고 평등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남는 것은 ⑤의 균등 분배이다.
다른 각도에서 문제를 살펴보자. ‘최대 다수의 최대 생존’이라는 원리에 비추어 볼 때 가장 올바른 선택은 무엇일까? 이 경우에 살아남을 가능성은 한 사람분밖에 없으므로 누군가 한 사람이 살아남는다면  ‘최대 다수의 최대 생존’이라는 조건은 충족되게 된다. 이 조건을 충족시키는 데 ① 제비뽑기, ② 공적주
의, ③ 자유 시장, ④ 도덕적 근거, 이네 가지는 타당하지만 ⑤ 균등 분할은 타당하지 않다.
평등 원리를 우선시할 경우 올바른 선택은 ⑤ 균등 분할이며, ‘최대 다수의 최대 생존’을 우선시할 경우 올바른 선택은 ⑤ 균등 분할을 제외한 나머지 것이 된다. 이렇게 되면 평등 원리와 ‘최대 다수의 최대 생존’의 원리는 일치하지 않게 된다.







자료 25 공리주의의 도덕성

공리주의의 도덕성은 다른 사람들의 선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최대 선까지도 희생할 수 있는 힘이 인간에게 있다고 인정한다. 공리주의는 행복의 총량을 증대시키지 않는 희생이나 증대시키려는 경향을 갖지 않는 희생은 무용지물(無用之物)로 간주한다. 다만 인류 전체나 그 범위 안에 있는 개인의 행복 또는 행복의 수단인 어떤 것에 대한 헌신은 인정한다.
공리주의는 행위자 자신의 행복이 아니라 관계된 모든 사람의 행복을 정당한 행위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행위자 자신의 행복과 다른 사람들의 행복 사이에서 선택해야 할 때, 공리주의는 행위자에게 전혀 이해관계가 없고 자비로운 제3자처럼 엄정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점을 요구한다. 그리스도의 황금률 가운데서 우리는 공리주의 윤리의 완전한 정신을 찾아낼 수 있다. 스스로 해 주기를 바라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베풀고,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것은 공리주의 도덕의 이상을 나타내는 극치이다.

-밀, “공리주의”-










자료 26 밀, 개인의 이익과 전체 이익의 조화

공리주의를 공격하는 사람들은 인간 행동의 옳고 그름에 관한 공리주의적 판단 기준의 관건이 되는 행복이 행위자 자신뿐만 아니라 관련되는 모든 사람을 포함한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당사자 본인의 행복과 다른 사람들의 행복 중에서 하나를 골라야 하는 상황이라면, 공리주의는 그 사람에게 사심 없는 선의의 구경꾼만큼이나 엄격하게 중립적인 자세를 취하도록 요구한다. 우리는 예수의 황금률에서 바로 그러한 공리주의 윤리의 정수를 발견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다른 사람이 해 주었으면 하는 바를 너 스스로 해라.” 그리고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고 하는 가르침이야말로 공리주의 도덕의 완벽한 이상을 담고 있다. 이런 이상에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공리주의는 다음과 같은 원리를 담고 있어야 한다. 첫째, 모든 개인의 행복 또는 이익이 전체의 이익과 가능하면 최대한 조화를 이루도록 법과 사회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둘째, 교육과 여론은 사람의 성격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만큼 모든 개인이 자신의 행복과 전체의 이익 사이에, 특히 보편적 행복을 달성하기 위해 요구되는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행동 방식과 자신의 행복이 서로 끊을 수 없는 관계임을 분명히 깨닫게 해 주어야 한다.                                                                     -밀, “공리주의”-








자료 27 실용주의

실용주의는 영국의 경험론, 밀의 공리주의, 니체와 베르그송의 생철학, 사회 다원주의 등의 영향을 받아 미국의 역사적·사회적 현실에 대응하도록 만들어진 미국의 독자적인 철학으로, 19세기 말에 퍼스(Peirce, C. S., 1839~1914)에 의하여 제창되고 제임스(James, W., 1824~1910), 듀이(Dewey, J. 1859~1952)에 의해서 전개되었다.
‘실용주의(pragmatism)’라는 말은 ‘프래그마(pragma)’라는 그리스 어로부터 나왔다. 프래그마는 본래 실행을 의미한다. 따라서 실천 혹은 실재적인 것을 뜻한다. 이를 통해 볼 때 실용주의는 행동과 실천을 중요시하는 철학임을 알 수 있다. ‘실용주의’라는 말을 미국에서 최초로 사용한 사람은 퍼스이다. 그는 칸트 철학에서 힌트를 얻어 프래그머티즘이라고 이름 붙였다고 한다. 칸트는 “실천 이성 비판”에서 실천 이성의 명령을 선천적이며 정언적인 ‘실천적(praktisch)인 것’과 경험적이며 가언적인 ‘실용적(pragmatisch)인 것’으로 구분했다. 그런데 퍼스는 자신의 철학에는 실용적이라는 명칭을 붙이는 것이 보다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실천적’이라는 말은 경험적인 확고한 기반을 가지지 못함으로써 사상의 영역에 속하는 ‘도덕적’이라는 뜻이고‘, 실용적’이라는 것은 확고한 인간적인 목적과의 관계를 표현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실용주의는 그것을 주장하는 사람에 따라 그 내용과 경향이 서로 다르지만 그 근본 입장은 실생활을 존중하고, 지식은 실생활에 유용한 것이어야 하며, 검증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입장에서 실용주의자들은 종래의 형이상학적 문제, 즉 세계의 근원이 정신인가 물질인가, 자유인가 필연인가 하는 문제는 무의미한 문제로서 거부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논쟁은 어느 쪽이 진리이든 실제적인 결과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실용주의는 형이상학에 대해서 적대적이다. 그러나 실용주의는 가치, 종교의 문제에 있어서 종래의 경험주의 철학과 차이를 보이고 있다. 경험주의 철학은 일반적으로 과학적 인식만을 중요시하고 사실에 대한 인식만이 학문적이라고 보는 데 반해, 실용주의는 과학적 인식과 가치의 인식을 중요시하며, 더 나아가 종교를 인정한다.








자료 28 듀이의 도구주의

듀이는 자신의 이론을 도구주의(instrumentalism)라고 명명했으며, 그것은 문제를 해결할 때 사유가 항상 도구적임을 강조하고자 한 것이다. 정신은 단순히 개별 사물을 인식하지 않는다. 그것은 유기체로서 인간과 그의 환경 사이의 매개자로서 작용한다. 사물들은 인간의 욕망, 회의, 위험 등과 관계가 있기 때문에 정신은 그것들의 영역 전반에 걸쳐 퍼져 있다. 인식은 인식 행위, 즉 정신 내의 활동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인식을 자세하게 기술하려면 그 인식 행위를 야기한 문제나 상황의 환경적 요인을 고려해야 한다. 이와 같이 도구주의는 경험론이나 이성론과 다르다. 후자의 두 인식론은 사유와 행위를 분리시키는 반면, 도구주의는 반성적 사유는 실제 상황을 변환시킬 때 항상 포함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사유는 마치 진리가 사물에 내재하는 정적이고 영원한 성질과 같은 진리의 탐구가 아니다. 사유는 인간과 그의 환경 간의 조정을 이루고자 하는 행위이다. 듀이의 말에 의하면, 철학의 가치를 판단하는 최선의 방법은 다음과 같이 묻는 것이다. “일상생활의 경험과 그것의 상황에 비추어 볼 때 그것이 가지게 되는 결론에 의해 경험과 상황이 우리에게 좀 더 유효하고 분명하게 될 수 있으며, 또한 우리가 그것들을 다룰 때 더 이로운 결과를 가질 수 있는가?” 이로 미루어 볼 때 듀이의 도구주의는 일종의 문제 해결식 인식론이라고 할 수 있다.






자료 29 듀이의 가치론

듀이는 자연 과학에 있어서 성공적이었던 탐구 방법들을 도덕 문제와 사회 문제에 확대하고 싶어 하였다. 이 확대를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 그는 대부분의 현대 철학적 저술에 반대하여 두 가지 주장을 내세울 수밖에 없었다. 이 주장들 가운데 하나는 도덕적 판단들이 경험적 사실들에 관한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도덕적 판단들이 실험적으로 확증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도덕적 판단들이 사실 문제에 관한 판단이라고 하는 주장을 옹호하기 위해서 듀이는 먼저 가치란 것이 자연 안에서 객관적으로 일어나는 것임을 주장하지 않으면 안 되었기 때문에 그는 꾸준히 또 열심히 이를 주장하였다. 가치는 빛깔, 무게, 크기나 모양과 마찬가지 정도로 객관적인 자연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물론, 어떤 고전적 자연 이론은 자연으로부터 감각적 성질들을 제거하였고, 또 근대의 여러 세기의 이론들은 이와 비슷하게 자연으로부터 미적(美的) 및 도덕적 특성들을 제거하였다. 그러나 듀이는 언제나 이와 같은 추방 선고에 동의하기를 거부하였다. 경험적으로 고찰할 때, 사물들은 매섭고 비극적이며, 선하고 악하며, 아름답고 추하며 하는 등의 성질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그는 주장하였다.



이성 중시 흐름
자료 30 소크라테스의 대화법(=문답법, 산파술)

나는 이 분이 인간의 영혼을 만지는 영혼 조각의 대가라고 단언하네. 소크라테스, 이 양반이 빚어대는 조각품을 쪼개 열어 보면 그 안에는 영혼의 신상(神像)이 들어 있지. 페리클레스처럼 이름난 연설가의 웅변을 들으면, 저 분 참 말 잘한다 생각되지만, 소크라테스와 나누는 대화에서 받는 영혼의 떨림은 없지. 소크라테스, 이 분으로 인해 나는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으로 더 이상 살아서는 안 되겠다, 새로운 삶을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여러 번 했어.
이 분의 말을 듣노라면 내가 참으로 모자라는 존재임을 절감해. 그래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각오를 하게 되지. 솔직히 고백하네. 나는 마치 오디세우스가 귀를 틀어막고 요정 세이렌의 노랫소리를 피하려 했듯이 소크라테스에게서 도망치려 한 적도 있었다네. 도망치려 할수록 수치심을 느꼈고 말이야. 이 분을 피해 도망 다니다가 우연히 이분과 마주치지. 그럴 때면 정말 죽고 싶은 수치심을 느낀다네. 어떨 때는 이 분이 아테네에서 사라져 주었으면 하는 마음까지 들더군. 소크라테스 이 분은 독사야. 이 분과 철학적 대화를 하다 한 방 물리는 날엔 죽는 거지. 자신 있게 전개해 나가던 나의 논리가 뒤죽박죽되어 버릴 때, 정신이 혼미하고 횡설수설하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될 때, 이때처럼 비참한 순간이 있을까? 철학적 대화를 할 때 드러나는 이 분의 광기에 가까운 정열을 당신들은 보았는가?

-플라톤, “향연”, 알키비아데스의 말-














자료 31 소크라테스 이전의 윤리적 사고: 그리스적 사고의 세 가지 기준

자신의 윤리적 사고를 펼쳐 나감에 있어 소크라테스는 기원전 5세기 당시의 그리스에 널리 퍼져 있었던 도덕적 관념들에 대하여 크게 반발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먼저 이러한 도덕적 관념들 중에는 당시의 통속적 문화를 알려 주는 것들이 있는데, 이들 대부분은 오늘날까지도 영향을 미치는 호모(Homer)의 신화로부터 생겨난 것이다. 또한 소크라테스가 살았던 기원전 5세기의 아테네에는 그리스의 정치적 발전으로부터 시작된 관념들이 있었다. 이러한 정치적·도덕적 관념들은 아테네에서 일찍부터‘민주정’이라는 통치 형태가 발전함에 따라 더욱 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간접적이기는 하지만, 이런 관념들은 아낙시만드로스와 엠페도클레스와 같은 소크라테스 이전의 자연 철학자들의 저술에 근원을 두고 있는데, 이들은 인간의 운명이 올림포스 산에 사는 신들의 변덕스럽고 즉흥적인 결정에 의해서 좌우된다는 생각을 거부하고, 모든 것을 포괄하는 이성적이고 지적인 자연의 질서에 따라 사건들이 발생한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철학적 발전은 이성적 질서 또한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는 생각을 낳게 하였다. 마지막으로 기원전 5세기의 아테네에는 이른바 소피스트라고 불린 한 무리의 철학자들이 주장한 인간 행위에 관한 상당히 특징적인 일련의 관념들이 있었다. 소피스트는 그리스 도시 국가 안의 여러 곳을 떠돌아다니면서 보수를 받고 정치적 성공의 기술을 가르치는 교사들이었다. 대부분의 소피스트에 있어 최고의 가치를 지니는 것은 실제적 유용성, 성공, 적합성 등이었지만 그들 중 몇몇은 덕은 가르쳐질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이성적인 윤리적 논의가 가능하다는 견해를 펴기도 하였다. 하지만 다른 소피스트 중에는 부도덕한 자기 탐닉을 찬양하는 극단적인 주장을 전파한 인물도 있었다.








자료 32 소크라테스의 인식론

소크라테스는 믿을 만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지적인 산파술인 변증술, 즉 숙련된 대화의 방법을 통해서라고 믿었다. 변증술은 항상 어떤 문제의 다양한 측면을 논의함으로써 시작된다. 소크라테스는 대화의 과정을 통하여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할 수밖에 없게 되고, 마침내 대화의 최종 결과로서 당초 의도했던 것을 명료하게 진술하게 된다고 믿었다. 그 기술은 간단해 보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의 반어법에 대해 불쾌감과 함께 그 기술의 강한 엄격성을 느끼게 되었다. “에우티프론”에서 이 방법을 처음 사용한 예를 보면, 소크라테스는 어떤 주제에 대해 무지를 가장하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그 주제에 관한 가장 충실한 지식을 유도해 내고 있다. 그는 이 변증술의 방법을 일종의 지적 산파술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가정에 따르면, 산파술은 어떤 사람이 불완전하고 그릇된 생각을 갖고 있을 때 그것을 점차 교정해 줌으로써 그 자신이 스스로 진리를 이끌어 낼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는 단지 영혼의 영원한 구조에, 다시 말해 숨어 있는 모순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인간의 능력에 의존하고 있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인간의 정신이 대상을 인식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소크라테스는 이 주장 역시 증명해야 한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그는 되는 대로 사는 삶이 살 가치가 없는 것처럼 심사숙고하지 않은 생각 역시 소유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대화에는 결론이 없이 끝나기도 하였다. 이는 소크라테스가 듣는 이에게 독단적인 관념을 불어넣기보다는 그를 질서정연한 사유 과정을 통해 확실한 지식으로 인도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자료 33 소크라테스 도덕 철학의 기본 구성 요소

소크라테스의 도덕 철학의 일반적 주제는 플라톤의 “대화편”에 등장한다. 다음의 내용은 그의 도덕 철학의 기본 구성 요소들이다.
1. 검토되지 않은 삶은 인간으로서 살아갈 만한 가치가 없다는 주장
2. 한 개인에게 있어 가장 적절하며 중요한 활동은 자신의 영혼을 돌보는 것이라는 주장
3. 소크라테스 자신이 지식을 지니고 있음을 부정함(이른바 ‘소크라테스의 무지’)
4. 소크라테스의 역설

(a) 덕은 곧 지식이다.
(b) 모든 덕은 하나이다(여러 덕들의 통일).
(c) 각 개인은 자발적으로 그릇된 행위를 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그릇된 행위를 하는 것은 무지의 결과이다.
(d) 어떤 것도 덕이 있는 사람에게 해를 입힐 수는 없다.




자료 34 소크라테스의 죽음

소크라테스의 친구들은 마지막까지 그가 탈출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결코 도망치려고 하지 않았다. 그의 아내와 어린자식들에게 관심을 쏠리게 하여 배심원들의 마음을 움직여 보자는 의견을 거부해 온 소크라테스는 이번에도 그의 어린자식들을 생각해야 한다는 크리톤의 간청에도 동요하지 않았다. 어떻게 그가 자신이 몸소 가르쳤던 것들을 위배할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그가 진리 앞에서 갈팡질팡해서는 안 된다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소크라테스는 탈출이란 아테네와 아테네의 법률 절차를 거역하는 것이며, 그것을 해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법률은 그의 재판과 판결에 아무 책임도 없다. 잘못된 사람들은 바로 그를 고발한 사람들, 즉 아니토스와 멜레토스일 뿐이다. 그러므로 그는 법정의 선고에 순응함으로써 법률과 그 절차에 대한 자신의 경외심을 확인했다.
독배를 마신 후 소크라테스의 임종 순간을 플라톤은 “파이돈”에서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몸을 한 번 더 만져 보고서 약 기운이 심장까지 오면 그때 떠나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그의 몸은 점점 식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씀하셨다. ‘아, 크리톤!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를 빚지고 있다네, 꼭 갚아 주게나.’ 이것이 최후였다. 이것이 우리의 친구, 우리가 그때까지 알아온 사람들 가운데 가장 훌륭했고 지혜로웠으며 정의로웠던 한 인간의 최후였다.”
















자료 35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

상식적 차원에서 자주 발생하는 환상을 꿰뚫어보기 위해서는 철학적 반성이 필요하다는 플라톤의 신념은 “국가” 중 가장 널리 알려진 부분인 ‘동굴의 비유’를 통해 매우 효과적이고 극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플라톤은 자신의 생각을 비유의 형태로 표현하고 있는데, 그 까닭은 우리 인간이 처해 있는 도덕적·인식적·형이상학적 입장을 그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보다 생생하고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특징적으로 제시하기 위해서이다.
우선 그는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볼 것을 제안한다. 매일의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평생 동안 계속 동굴 안에 묶여 있는 죄수와 같아서 오직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동굴의 벽면만을 쳐다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죄수들 뒤에 있는 담 위로 사람들과 여러 동물들의 상이 지나가게 되어 벽면에는 그들의 그림자가 비치게 되며, 담의 뒤쪽에는 빛의 근원이 되는 불이 타오르고 있다. 벽면의 그림자 외의 다른 어떤 것도 보지 못하고 그림자가 비치게 되는 체계를 전혀 알지 못하는 죄수들은 그림자가 진정한 사람과 동물들이라고 굳게 믿을 것이다. 죄수들은 거듭해서 떠오르는 그림자들을 확인하고 파악한 후 마치 그것들이 진정한 것인 양 그것에 대하여 이야기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몇몇 죄수들이 고개를 돌려 타오르는 불과 여러 가지 상(象)들을 직접 보게 된다면 ‘어떤 일이날 것인가?’라고 플라톤은 묻는다(플라톤은 이미 제한된 세계에 길들여져 있는 죄수들이 처음에는 고개를 돌리지 않으려고 저항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불 때문에 순간적으로 아무것도 보지 못하던 죄수들은 점차 시력을 회복하고 난 후, 처음에는 담 위로 지나가는 여러 상들이 진정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잠시 후 그들은 그런 상들이 벽에 비치는 그림자보다 더욱 큰 실재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될 것이다. 또한 만일 죄수들이 동굴 밖으로 빠져 나오게 된다면(“만일 누군가가 그들을 강제로 동굴 밖으로 끌어내어 거칠고 가파른 길을 가게 된다면”) 그들은 다시 한 번 태양의 빛 때문에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될 것이고, 처음에는 그들이 동굴 밖에서 마주치는 대상들이—사람과 동물들이—진정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이러한 대상들이 사실상 가장 진정한 것이며, 동굴 안에서 보았던 여러 상들이나 벽면에 비친 그림자는 단지 커다란 실재성을 지니고 있는 것의 모사 또는 반영일 뿐이라는 점을 깨닫게 될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실재성의 정도 그리고 지식이나 이해의 정도, 즉 진리성의 정도가 존재한다는 점을 알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여전히 사슬에 묶여 있는 다른 죄수들을 계몽하기 위하여 반드시 안으로 돌아오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동굴 밖의 세계를 경험한 계몽된 죄수들, 즉 진리를 깨달은 자들이 동굴 안에 남아 있던 죄수들로부터 진심으로 환영받는 것은 아니다. 동굴 안에 있던 죄수들은 돌아온 죄수들을 허풍쟁이라고 생각할 것이며, 그들이 거짓말을 하거나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꾸며대고 있다고 비난할 것이다. 동굴 안에 있던 죄수들도 사슬에서 풀려나서 가파른 경사의 동굴로부터 벗어나 진정한 세계를 경험할 경우에만 그들의 이야기를 믿게 될 것이다.
이러한 동굴의 비유는 많은 것을 상징하고 있으며, 플라톤이 우리에게 전하려는 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 동굴의 비유는 우리의 계몽된 견해가 아직 어둠 속에 머무르고 있는 다른 많은 개인들로부터 거부당할지도 모른다는 점을 경고하고 있다. 그런 사람들은 마치 아테네 시민들이 소크라테스를 비난하고 사형에 처하였듯이 우리를 비난하고 처벌하려고 할 것이다.





자료 36 플라톤의 이데아론

플라톤의 형상론(이데아론)은 그의 가장 중요한 철학적 공헌이다. 근본적으로 형상이나 이데아는 불변적이고 영원하며 비물질적인 본질로서 우리가 보고 있는 현실적·시각적 대상들은 단지 그것의 조잡한 모사(模寫)에 불과할 뿐이다. 삼각형이라는 형상이 있고 우리가 보고 있는 모든 삼각형은 단지 그 형상의 모사에 불과하다.
비물질적인 실재로서의 형상에 대한 이러한 표현은 플라톤의 이론에 있어 매우 새로운 면을 이미 보여 주고 있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이 실재를 몇 가지 종류의 물질적 재료로 생각했던 반면에, 플라톤은 비물질적인 형상이나 이데아를 참된 실재로 내세웠다. 이와 마찬가지로 소피스트는 물질적인 질서가 항상 유동하고 변화한다는 이유에서 지식을 상대적이라고 생각했던 반면에, 플라톤은 지식을 절대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사유의 참된 대상은 물질적 질서가 아니라 변화하지 않고 영원한 이데아의 질서이기 때문이다. 비록 개별적인 선을 판단할 수 있게 하는 하나의 절대적인 선이 존재한다는 소크라테스의 주장이 이러한 견해를 예견하기는 했지만, 플라톤은 그 최고선의 개념에 형이상학의 이론, 즉 실재의 모든 구조에 대한 설명과 그 속에서의 도덕적 위치에 대한 설명을 부가함으로써 소크라테스의 윤리학적 관심을 뛰어넘었다. 더욱이 플라톤은 이 형상론을 통해 일자와 다자간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설명을 할 수 있었는데, 이는 만물은 일자라는 파르메니데스의 결론과 만물은 유전한다는 헤라클레이토스의 결론을 우회한 것이었다. 그는 수학에서 유래된 피타고라스적인 형상의 개념으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결국 플라톤의 이데아론은 새로운 어떤 것이었고, 그의 모든 철학에서 중심 개념이 되었다.




자료 37 철인에 의한 통치가 필요한 이유

국가를 수립할 때 우리가 관심을 두는 것은 어느 한 집단을 특히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시민 전체가 최대한 행복해지도록 하는 것이다. 그것이 올바름에 가장 잘 부합하기 때문이다. 행복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소수의 사람들을 따로 분리하는 것은 이들만을 행복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들이 시민 전체를 행복으로 이끌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저마다 타고난 성향에 따라 각각 한 가지 일에 대해 그것에 해당하는 개인을 배치해야 한다는 것은 명확하다. 이렇게 함으로써 나라 전체는 여럿이 아닌 ‘하나의 나라’가 된다. ……철학자들이 나라를 통치하지 않는 한, 또는 현재의 최고 권력자들이 진실로 그리고 충분히 철학을 하게 되지 않는 한, 그리하여 철학과 정치권력이 하나로 결합하지 않는 한 나쁜 것들은 끝나지 않는다.                                                         -플라톤, “국가”-





자료 38 철인왕

전사들 중에서 재능이 가장 뛰어난 자를 선발하여 20~30세가 될 때까지 알맞은 신체적인 단련과 더불어 학문적인 교육을 시킨다. 이때 다시 가장 뛰어난 자를 골라내어 제3의 신분, 즉 완전한 수호자의 신분에 들게 한다. 여기서 플라톤의 국가의 본래적인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즉 이 완전한 수호자들은 완전한 철인(哲人)이 되어, 플라톤의 국가를 진리와 이상이라고 하는 토대 위에 올려 세워야 한다. 그래서 이들은 우선 다시 5년간 철학, 수학, 점성술, 미술을 연구하고, 특별히 세계의 모든 법칙과 진리와 가치들에 통달하기 위해 철학적인 변증법을 연구해야만 한다. 그 뒤에는 15년간 세상과 삶을 실제로 배우기 위해 높은 관직에 종사한다. 그리고 이 선택받은 자(엘리트)들은 50세가 되면 물러나서 선(善) 자체를 직관하는 생활만 하면서 국가를 이끌어 나갈 위대한 생각들을 내놓는다. “철인이 왕이 되거나, 왕이 철인이 되지 않고서는 백성들의 불행은 그칠 날이 없을 것이다. ”‘정의란 무엇인가?’ 하는 것이 “국가”의 주제였다. 대답은 다음과 같다. 정의란 올바름이다. 즉 국가, 인간, 법률 및 제도 등에 포함되어 있는 모든 것들이 참이어야 하고, 이상적인 질서에 알맞은 것이어야만 한다는 뜻이다. 사람들이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해야 할 것이 행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을 공식화한 것이 “자기의 책임을 다하라.”고 하는 것이다. 진리, 지혜 및 순수한 윤리적인 의지가 이 정치학의 기초가 되며, 따라서 ‘가장 선한 자’가 통치하는 귀족 제도의 국가가 플라톤이 생각하고 있던 국가였다.
플라톤도 생각했던 바와 같이, 국가의 꼭대기에 가장 선한 자로서 올라서는 사람이 꼭 한 사람일 뿐일 때는, 이것을 우리는‘군주제’라고 한다. 이 사람은 전능한 자일 것이다. 그 이유는 그가 가장 큰 세력을 쥐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의 지혜와 윤리적인 의지를 통해 완전히 정의를 옹호하는 사람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료 39 플라톤의 국가와 개인

플라톤에 따르면, 국가는 하나의 자연적인 제도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 본성의 구조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의 기원은 인간의 경제적 욕구의 반영이라고 플라톤은 주장한다. 즉‘어떤 개인도 스스로를 충족시킬 수 없기 때문에, 즉 우리 모두는 많은 욕구들을 소유하기 때문에 국가가 발생하게 되었다. ’우리의 많은 욕구들은 많은 기술을 요구하며, 어느 누구도 의식주에 필요한 모든 기술을 소유할 수는 없다. 그 밖의 다양한 기술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므로 노동의 분화도 필수적이다. …(중략)…
개인과 국가의 관계는 이제 명백해진다. 왜냐하면 국가 내의 세 계층은 영혼의 세 부분의 연장이기 때문이다. 기술자나 장인 계층은 영혼의 가장 낮은 부분, 즉 욕망을 나타내며, 전사는 영혼의 기개 부분을 나타내고 있다. 또한 최상의 계층인 통치자는 이성적 요소를 나타낸다. 이러한 분석은 논리적 엄격성을 갖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다음과 같은 관련성을 쉽게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① 개인의 욕망과 이 욕망을 충족시키는 노동 계층 사이의 관계, ② 인간의 기개의 요소와 그 역동적 힘을 거대한 규모로 변형한 군대 조직 사이의 관계, ③이성적 요소와 지배자의 영도력이라는 특수한 기능 간의 관계가 그것이다.




자료 40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

모든 기술과 탐구, 또 모든 행동은 어떤 선(善)을 목표로 한다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선이란 모든 것이 목표로 삼는 것이라고 한 주장은 옳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그런데 행동, 기술, 학문에는 여러 가지가 있기 때문에 목적 또한 여러 가지로 많다. 가령 의술의 목적은 건강이요, 조선의 목적은 배요, 병법의 목적은 승리요, 경제학의 목적은 부(富)이다. ……목적은 다양하고, 이 목적들 가운데 어떤 것은 다른 어떤 것 때문에 선택되기 때문에, 모든 목적이 다 같이 궁극적인 목적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러나 최고의 선은 분명히 궁극적인 목적이다. 따라서 만일 오직 하나의 궁극적인 목적이 있다고 하면,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구하고 있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자료 41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인생의 궁극 목적 ‘행복’

“모든 기능과 모든 탐구, 그리고 모든 종류의 고의적 활동은 어떤 좋은 것의 달성을 목표로 삼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좋은 것[善]’이란 모든 것이 목표로 삼고 바라는 견해에 동의해도 좋을 것이다.”라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의 첫 구절은 아리스토텔레스 윤리설의 전체적 방향을 암시하는 중요한 구절이다.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은 그것이 고의적인 경우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개별적 행위의 목적은 그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보다 높은 목적을 위한 수단이다. 예컨대 잉크의 병마개를 여는 것은 펜에 잉크를 묻히기 위해서요, 잉크를 묻히는 것은 글씨를 쓰기 위해서이며, 또 글씨를 쓰는 것은 다른 무엇을 위한 수단이듯이 목적과 수단의 관계는 상대적인 것이다. 그러나 이 수단과 목적의 계열을 연달아 거슬러 올라가면 마침내 그 이상 더 올라갈 수 없는 단계, 즉 그 자체를 위해서 그것이 소망되는 무엇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이 마지막 무엇이 바로 인생의 ‘궁극 목적’이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추리한다. 그리고 ‘그 자체를 위하여 소망되는 것’이 곧 인생의 최고선(最高善)이 아닐 수 없다고 그는 단정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서 ‘궁극 목적’은 행위의 가치를 재는 기본 척도인 까닭에, 그것의 발견은 윤리학 전체를 위한 관건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 인생의 궁극 목적은 무엇일까? ‘궁극 목적’이라는 개념 자체의 분석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궁극 목적이 갖추어야 할 두 가지 성질을 제시한다. 그 두 가지 성질이란 ① 궁극성, 즉 그것이 다른 무엇의 수단이 될 수 없다는 뜻으로서의 자기 목적성과, ② 완전성, 즉 그 이상 아무것도 보탤 필요가 없다는 뜻으로서의 자족성(自足性)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의 성질을 갖춘 것은 바로 ‘행복(eudaimonia)’일 것이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단정한다.



자료 42 아리스토텔레스의‘행복’이 아닌 것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이란 다른 무엇을 위한 수단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이상 다른 것을 보탤 필요 없이 그것만으로 충분한 것이기 때문이다. ‘행복’이 최고의 선이라는 견해에 대해 일반인은 언어상으로, 즉 ‘그 명칭에 관해서는 대체로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이 바로 행복이냐는 문제에 이르러서는 사람들의 의견이 다양할 수 있다. 따라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다음 과제는 행복이 무엇이냐를 밝히는 일이다. 인생의 궁극 목적이 행복이라고만 대답하고, 그 ‘행복’이 무엇인지 밝히지 못한다면 실질적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행복이냐는 물음에 스스로 대답하기를 꾀하기 전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선 다른 사람들의 견해를 비판적으로 음미한다. 사람들이 추구하는 생활 태도로 미루어, 일반인이 행복이라고 믿기 쉬운 것에는 네 가지 있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생각한다. 첫째, ‘쾌락’이 곧 행복이라는 의견이다. 그러나 속된 대중이 찬동하기 쉬운 이 견해에 대하여 아리스토텔레스는 동의하지 않는다. 쾌락이 노예나 짐승의 목적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나 이성적 존재로서 인간의 목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둘째, ‘명예’가 곧 행복이라는 의견이다. 그러나 주로 ‘신사 계급’이 갖기 쉬운 이 견해에 대해서도 아리스토텔레스는 찬동하지 않는다. 명예란 그것을 받는 사람보다도 주는 이에게 달려 있는데, 그와 같이 피동적이요 우연적인 것을 행복, 즉 인생의 목표로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셋째, ‘덕(arete)’이 곧 행복이라는 의견이다. 식견 있는 사람이라면 덕이 쾌락이나 명예보다는 행복에 가까움을 인정할 것이다. 그러나 덕도 그 자체로 행복이 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① 덕이란 한갓 능력으로서 전혀 발휘됨이 없이 잠잘 수도 있으며, ② 덕을 많이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참한 생애를 보내는 예가 드물지 않기 때문이다. 넷째, ‘재산’을 행복과 동일시하는 실업가의 견해에도 찬동할 수 없다. 재물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다른 것을 위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선의 이데아(idea)를 인생 최고의 목적이라고 보는 플라톤의 견해에도 아리스토텔레스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 이유로서는 아리스토텔레스는 ① ‘선’이라는 말이 경우에 따라 여러 가지 의미로 쓰이고 있다는 사실, ② 현실적인 좋은 것들을 떠나서 ‘좋음’그 자체라든가 좋음의 원형(元型)이라는 것이 따로 없다는 것, ③ 설령 ‘선의 이데아’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이 지상에 있어서의 실천 생활에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들고 있다.











자료 43 아리스토텔레스가 규정하는 ‘행복’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을 무엇이라고 규정하는 것일까? 행복을 어떤 정지된 상태로 보지 않고 활동하는 과정 그 자체라고 믿는 까닭에, 그의 행복론은 우리를 독특한 결론으로 이끌어 간다. 행복하다는 것은 쉬운 말로 ‘잘산다.’는 뜻이요, ‘잘산다.’는 것은 ‘잘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각 순간에 있어 행동을 잘하면 그것이 합해져 잘된 삶을 형성할 것이요, 유감없이 잘살면 그것이 곧 행복이 아니냐는 생각인 것 같다. 그렇다면 ‘잘한다.’는 것은 어떻게 함을 가리킬까? ‘노래를 잘한다.‘, ’요리를 잘한다.’ 등의 말로 알 수 있듯이 ‘잘한다.’는 것은 행위자가 자기의 기능을 잘 발휘함을 가리킨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생각한다. 각자는 그 처지와 직책에 따라 그 기능이 다르다. 재단사는 재단사로서의 기능을 잘 발휘함이 그 기술자로서 잘하는 것이요, 운전사는 차를 잘 모는 것이 운전사로서 잘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재단사나 운전사이기 전에 인간이다. 따라서 인간으로서 잘살기 위해서는 어떤 특수한 기술을 잘 발휘하기보다도 인간으로서의 기능을 잘 발휘해야 할 것이며, 그 인간으로서의 기능이 잘 발휘되는 곳에 인간으로서의 행복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 인간으로서의 기능이란 어떠한 것일까? 아리스토텔레스는 오직 이성과 사유만을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참된 기능으로 인정한다. 그러므로 사유를 본질로 삼는 이성의 기능을 유감없이 잘 발휘함이 인간으로서의 좋은 삶이요, 그것이 곧 인간의 행복이자 궁극 목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러나 이성의 일시적인 발휘만으로는 행복이 될 수 없다. “한 마리의 제비가 왔다고 해서 여름이 온 것이 아니며, 하루의 맑은 날씨가 여름을 부르지 못하듯이 ”일생을 통하여 이성이 한결같이 발휘될 때 비로소 행복이 실현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성을 항상 발휘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하는 경향 또는 습성이 필요하다. 이 습성이 곧 ‘덕’이라고 불리는 것이니, 덕은 그 자체가 행복이 되는 것이 아니지만, 행복을 위하여 불가결한 바탕이 되는 것이다.





자료 44 아리스토텔레스의‘중용’

덕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지성의 덕과 품성의 덕이 그것이다. 지성의 덕은 대체로 교육에 의해 형성된다. 그러므로 그것은 경험과 시간을 필요로 한다. 한편 품성의 덕은 습관의 결과로 생긴다. 이런 까닭에 ‘에티케(도덕적, 윤리적)’라는 말은 ‘에토스(습관)’라는 말을 조금 고쳐서 만든 것이다. 이것으로 미루어 볼 때, 도덕적인 것은 그 어느 것이나 본성적으로 우리가 타고난 것이 아니라는 것이 분명하다. 본성적으로 존재하는 것을 우리가 반복적인 학습을 통해 그 본성에 반대되는 것으로 변화시킬 수는 없다. 예를 들어 돌은 본래적으로 던지면 아래로 떨어지게 되어 있기 때문에 아무리 천 번, 만 번을 던져 그것을 위로 향하도록 훈련시키고자 해도 그렇게는 도저히 할 수 없다. 또 불을 훈련시켜 불꽃이 아래로 향하도록 습관화시킬 수 없다. 그 어떤 것이나 본성에 어긋나게 움직이도록 훈련시킬 수 없는 것이다. 오히려 우리는 사물의 본성을 받아들여야 하고, 또 그것들은 습관에 의해 보다 더 완전하게 되는 것이다. 또 본성적으로 우리에게 생기는 모든 것에 있어서 우리는 먼저 능력을 얻고 그 후에 활동을 전개한다. 이것은 감각들을 살펴보면 명백하게 드러난다. 우리는 자주 보거나 자주 들음으로써 시각이나 청각을 가지게 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와 반대로, 이런 감감을 사용하기 이전에 이미 그것들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즉 그것들을 활용함으로써 그것들을 가지게 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덕의 경우에는 우리가 먼저 그것을 실천함으로써 비로소 덕을 얻게 된다. 여러 기술의 경우에 있어서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먼저 그것을 함으로써 비로소 배워서 알게 되는 것이다. 예컨대 집을 지어 봄으로써 건축가가 되고, 악기를 연주함으로써 악기를 타는 악사가 되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옳은 행위를 함으로써 옳게 되고, 절제 있는 행위를 함으로써 절제 있게 되며, 용기 있는 행위를 함으로써 용감하게 되는 것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자료 45 스토아학파

스토아학파가 적절한 행위를 장려하는 까닭은 바로 그런 행위가 이성을 더욱 발전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성이 삶 전체를 조망할 수 있게 되면, 즉 단지 자연적 충동에 따른 목표들에 도달하는 좁은 관점에서가 아니라 자연 전체를 폭넓은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되면 우리는 어떤 수준에 도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수준에서 우리는 예를 들면, 죽음도 삶과 마찬가지로 자연스러운 것임을—죽음도 삶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알게 된다. 따라서 죽음을 피하려는 자연적 충동의 수준에서 벗어나 자연과 하나가 되어 죽음까지도 평온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이성이 완전하게 발전하게 되면, 우리는 도덕적으로 행위를 할 능력, 즉 단지 자신의 개인적인 관점에 따라 자신에게 유리한(적절한) 것을 행하기보다는 옳은 것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된다.
도덕적인 삶은 이성을 필요로 하는데, 우선 전체로서의 자연에 대한 지식을 얻기 위하여 이성이 필요하며, 그 다음에는 이러한 지식과 일치하는 행위의 원리들을 채택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타락한 상태에서의 정념들은 비이성적이다. 또한 이들은 동요의 원인이 되기 때문에 정신의 방해물이 되기도 한다. 과도한 충동은 비이성적이고 부자연스러운 것으로서, 이성에 의해 인도되는 느낌들이 아니다. 어떤 경우든 정념들은 우리에게 주어진 사실들과 사실들을 지배하는 법칙에 비추어 볼 때 부적절한 느낌이라는 점이 밝혀진다. 스토아학파는 자주 정념에 빠지는 것을 비난하는 자신들의 입장을 매우 강경한 용어를 사용하여 표현한다. 즉 정념의 희생물이 되는 것은 일종의‘질병’에 감염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따라서 철학자는 ‘영혼을 치료하는 의사’가 되어서 사람들에게 정념이라는 타락이 지닌 해악(害惡)을 알리고, 또 사람들이 정념들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부동심(apatheia)의 상태에 이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료 46 중세의 윤리설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그리스도교 사상가로 꼽히는 두 사람, 즉 4~5세기에 걸쳐 활동하였던 아우구스티누스와 12세기에 등장하였던 토마스 아퀴나스는 그리스도교가 전달하려는 바와(또는 그리스도교에 대한 자신들의 해석과) 그리스 철학을 종합하려는 시도를 함으로써 자신들의 신학과 철학을 발전시켜 나갔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주로 플라톤과 그의 뒤를 잇는 플라톤주의자들로부터 영향을 받았는데, 특히 신플라톤주의 철학자였던 플로티누스로부터 매우 큰 영향을 받았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부활시켰으며, 여기에 자신의 사상을 더하여 아리스토텔레스주의와 그리스도교 신앙이 합쳐진 탁월한 혼합물을 만들어 냈다. 중세의 모든 철학자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고대 그리스에 근원을 둔 문제를 다루지 않을 수 없었다. 아우구스티누스와 아퀴나스뿐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중세의 사상가들의 철학을 구성하는 중요하고 기본적인 요소들은 당연히 그리스도교의 교리, 즉 세계와 인간을 창조한 유일하고 영원한 신이 존재하며, 인간을 사랑한 신이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 주었으며, 신은 심판자로서 인간들이 지상에 잠시 머무르면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판정하여 천국이나 지옥으로 보낸다는 등의(또한 여기에는 신의 은총도 당연히 포함되는데) 교리였다. 플라톤주의와 아리스토텔레스주의의 여러 개념들은 이런 교리들을 정교하게 만들고, 또 상세히 해석하는 데 사용되었다. 또한 이런 개념들은 그리스도교가 보편적으로 넓은 영역에 영향을 미치도록 만들었다. 아우구스티누스와 아퀴나스, 그리고 다른 중세의 사상가들은 자신들의 철학이 인류 전체에 대한 일반적인 진리를 제공한다고 생각하였다.




자료 47 아우구스티누스의 교부 철학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연스러운 사유의 과정을 통해 신의 가장 보편적인 본질 규정들에 대한 인식을 넘어 더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특별한 인식 방법이 필요하다. 이런 인식 방법을 그는 유추(Analogie, 비교 대상의 비슷한 점을 찾아 비슷한 결론을 이끌어 내는 간접 추리의 방법. 그리스도교의 신 존재 증명에 자주 쓰임)를 통한 통찰이라 부르고, 그것을 처음으로 상당히 큰 규모로 발전시켰다. 이런 방법에서도 그는 인간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인간이 자신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자신을 창조된 존재로 여기게 되며, 그것은 그리스도교 전통이 가르치는 대로, 신의 모습과 똑같은 모습으로 창조된 존재이다. 신에 대한 사유로부터 다른 모든 현실 존재도 창조된 것들이라고 이해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듯 창조된 것들은 창조자의 흔적들을 지닌다고 아우구스티누스는 생각했다. 그래서 모든 현실에서 특히 인간에게서 이 모든 것을 있게 만든 그분을 알려 주는 표지들을 찾아내려고 하였으며, 그런 흔적들이 찾아지면 인간과 세계, 즉 신의 창조 작품들로부터 창조를 한 존재가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고 생각하였다.












자료 48 아퀴나스의 스콜라 철학과 신학

아퀴나스는 그리스도교 신자로서 사유하며 글을 썼다. 무엇보다도 그는 신학자였다. 동시에 그는 신학적인 저서를 저술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 깊이 의존했다. 그가 철학과 신학을 함께 취했다고 해서 두 원리를 혼동하고 있었다는 뜻은 아니다. 인간의 진리 추구에서 철학과 신학은 상보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었다. 그가 이 두 입장을 결합시키려고 했다는 사실은 13세기 사상에서 종교적 성향이 지배적이었음을 반영하는 것으로, 이 시기에는 신학의 중요성이 결정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신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 절실하게 요구되었던 것은 이러한 지식에 대한 약간의 오류로 인해 인간의 삶의 방향이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인 신에게서 멀어질 수도 있고 그에게로 향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철학과 신학은 인간의 목적과 결부되어 고찰되었으며, 그것들은 인간에게 신에 대한 지식을 주는 방식의 차이로 구별되었다. 철학은 인간의 이성에 의해 발견된 원리에서 출발하는 반면, 신학은 무조건의 계시로부터 받아 신앙의 문제로 돌리는 원리들을 이성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따라서 아퀴나스의 철학은 대부분이 자연 신학의 영역에 속하며, 아퀴나스도 자신의 신학을 이성적으로 논증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겼다.








자료 49 데카르트의 방법론

데카르트는 참과 거짓을 구별하는 능력, 즉 올바르게 판단하는 능력인 ‘이성’을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소유하고 있다고 확신했다. 이는 진리에 이르는 길이 모두에게 열려 있다는 것이다. 이 신념은 오직 이성만이 우리를 진리로 이끌어 줄 수 있다는 독단적인 입장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중략)…당시의 학문적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어느 하나 확실한 지식은 찾아볼 수 없었다. 서로 갈등하는 의견들만이 만연했고, 이런 상태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어떤 방법도 제시되지 않았다. 그런 위기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회의론으로 빠져들었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이런 시대적 위기의 원인을 인간 정신의 본성, 특히 이성 그 자체의 결함에서 찾지 않았다. 대신 그 책임을 이성의 잘못된 사용에서 찾았다. 이는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이성을 소유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성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성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방법론이란 이성의 올바른 사용을 위해 지켜야 할 규칙을 가리킨다. 데카르트는 “방법서설”에서 자신의 방법론적 규칙을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요약한 바 있다.
첫째, 명증하게 참이라고 인식한 것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참된 것으로 받아들이지 말 것. 즉 속단과 편견을 신중히 피하고, 조금도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명석·판명하게 내 정신에 나타나는 것 외에는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판단을 내리지 말 것.
둘째, 검토할 문제들을 잘 해결할 수 있도록 각각의 대상을 가능한 한 작은 부분으로 나눌 것.
셋째, 내 생각들을 순서에 따라 이끌어 나아갈 것. 즉 가장 단순하고 알기 쉬운 대상에서 출발하여 마치 계단을 올라가듯 조금씩 올라가 가장 복잡한 것의 인식에까지 이를 것. 그리고 본래 전후 순서가 없는 것에서도 순서를 상정하여 나아갈 것.
넷째, 아무것도 빠뜨리지 않았다고 확신할 정도로 완벽하게 열거하고 전반적으로 검토할 것.












자료 50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

데카르트는 우리의 지식을 이루기 위한 절대적이고 확실한 출발점을 찾기 위해 회의의 방법을 사용했다. 그는 우리가 약간의 의심이라도 가는 어떠한 것도 결코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이제‘나는 전적으로 진리를 탐구하려고 하기 때문에 나에게 조금이라도 의심이 가는 모든 것을 거짓이라고 거부해야만 한다.’며 모든 것에 대해 회의를 품었다.
내가 나의 육체의 존재나 내가 깨어 있다는 사실 또는 내가 기만당하고 있다는 사실, 다시 말해 모두가 환상이거나 거짓이라는 사실을 회의한다고 해도 내가 전혀 회의를 가질 수 없는 한 가지 사실이 남게 된다. 즉 ‘나는 존재한다.’는 것이다. 회의한다는 것은 사유한다는 것이며, 사유하는 나는 필연적으로 어떤 무엇일 수밖에 없다. 또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이 진리는 너무나 확고부동하고 확실해서 회의주의자의 어떠한 과장된 억측도 그것을 붕괴시킬 수가 없다고 말하는 동안, 나는 그것을 내가 추구했던 철학의 제1원리로 주저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데카르트는 그 자신의 존재에 대한 진리가 매우 확실하므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이 결론은 질서정연하게 사색하는 사람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 중에서 제1이고 가장 확실한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데카르트는 이것을 자아와 사물들, 참된 관념들, 그리고 신에 대한 회의를 발전시키는 근본 진리로 삼고 있다.





자료 51 스피노자‘신은 곧 자연이다.’

‘그 자신에게 존재하는’ 실체는 당연하게도 그 존재를 위한 다른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 완전한 자립적 존재이다. 이 실체와 대조적인 것이 그 존재를 위해 다른 것을 필요로 하는 유한한 존재자이다. 유한자를 다른 것으로부터 한정되는 것이라 본다면 유한자에게 있어 다른 것은 자신을 한정하고, 자신과 대립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즉 유한자의 상호 관계란 서로 대립하고 한정하는 관계의 것이다. 그렇다면 그 존재를 위한 다른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 실체는 어떠한 의미에서도 스스로 대립하지 않는 절대적 존재로 간주된다. 그리스도교 신의 경우 조물주로서의 신은 피조물로서의 세계를 초월한 존재로 보인다. 여기서 신은 세계를 초월하는 것으로 세계와 대립하고 있다. 즉 신과 세계는 피안과 차안처럼 대립하고 있다. 이것은 신이 세계와 대립했다는 의미이므로 일종의 상대적인 것이 되고, 절대적인 것은 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신이 정말 절대적인 것이 되려면 그것이 세계와 대립한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러나 스피노자는 “신은 모든 것의 내재적 원인으로 초월적 원인은 아니다.”라고 말하였다. 신은 그리스도교 신처럼 세계에 초월해서 대립하는 신이 아니라, 내재 신이 된다. 즉 스피노자의 신은 내재 신으로서 세계와 대립하는 일종의 상대성이 있다. 그에 의하면, 신이 정말 절대적이 되려면 내재적이어야 한다. 그래서 ‘신이 유일한 것이라는 것, 바꿔 말하면 자연 중에는 유일한 실체밖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때 자연 중 모든 유한자는 이 실체 중에 존재하게 된다. 신 또는 실체의 유일성, 절대성은 자연과 신과 동일성에 이르게 된다. 유신론 철학에서 혹은 그리스도교 철학에서 자연은 피조물이고 초자연과 대립하지만, 스피노자에 있어서 초자연은 존재하지 않고 자연만이 존재하게 되며 ‘자연=실체=신(神)’ 등식이 성립되어, 신이 바로 자연이라는 그의 철학적 특징을 나타내는 말이 생긴 것이다.






자료 52 스피노자, “자유 의지는 없다. 결정되어 있을 뿐!”

정신 안에는 절대적이거나 자유로운 의지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신은 이것 또는 저것을 의지하도록 어떤 원인에 의해 결정되며, 이 원인 역시 다른 원인으로 인하여 결정되고, 이것은 다시금 다른 원인에 의해 결정되며, 이렇게 무한히 진행된다. ……이처럼 젖먹이는 자유 의지로 젖을 욕구한다고 믿으며, 성난 소년은 자유 의지에 따라 복수를 원한다고 믿고, 겁쟁이는 자유 의지로 도망친다고 믿는다. 술주쟁뱅이는 나중에 술이 깨면 공연히 말했다고 후회할지라도, 그 당시에는 정신의 자유로운 결단에 의해 지껄인다고 믿는다. 마찬가지로 미치광이, 수다쟁이, 어린아이와 이러한 종류의 많은 사람들이 사실은 그들이 갖고 있는 말하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고 지껄이면서도 정신의 자유로운 결단에 의해 말한다고 믿는다.                                                           -스피노자, “에티카”-







자료 53 스피노자의 범신론

우리는 스피노자를 범신론자라고 부른다. 유신론의 신학(즉 대부분의 그리스도교도와 유대교도, 이슬람교도들이 받아들이는)과는 달리 스피노자의 범신론은 한편에는 신이 존재하며, 다른 한편에는 자연의 세계와 인간이 존재하므로 이들은 각각 분리되어 있는, 서로 구별되는 실재라는 주장을 거부한다. 유신론에 따르면, 신은 영원한 존재로서 무로부터 세계와 시간을 창조하였다. 따라서 세계와 시간은 신과 분리되어 존재하는 것이다. 또한 유신론자에 있어서 신은 순전히 정신적인 존재이다. 반면, 신이 창조한 물리적 세계는 물리적이며 인간은 물질과 정신의 혼합체이다. 범신론자로서 스피노자는 신이 순전히 정신적인 존재라는 점을 거부한다. 즉 신은 물리적인 부분도, 즉 세계라는 부분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신은 곧 세계이다. 그러나 신과 세계는 순전히 물리적인 것만은 아니다. 우리는 신을 물리적인 것으로 파악할 수 있는 동시에 영혼을 지닌 것으로도, 또는 스피노자가 즐겨 쓰는 표현을 빌리면 정신적인 것으로도 파악할 수 있다. 신은 연장성을 지닌 물체임과 동시에 정신적인 관념이기도 하다. 연장성과 사고는 우리가 신의 본성을 파악하는 두 가지 방법이다. 연장성과 사고는, 스피노자의 용어를 사용하면, 신의 본질적 특성 또는 속성들 중의 두 가지이다. 신적인 존재는 연장성을 지닌 물체 전체임과 동시에 정신적 관념 전체로 파악될 수 있다. 신과 자연을 동일시한 것을 두고, 어떤 사람들은 스피노자를 신에 도취한 사람이라고 불렀다. 또한 이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스피노자를 무신론자라고 생각하였다.






자료 54 스피노자의 결정론적 세계관

스피노자는 철저히 이성적인 삶을 지향하였다. 그는 우주를 필연적 질서에 따라 움직이는 하나의 거대한 기계로 생각하였고,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원인과 결과로 필연적으로 서로 맺어져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스피노자의 생각은 그의 저서인 “에티카”에 다음과 같이 나타나 있다.
“연역적 관계에서 발견되는 필연성은 인과적 관계에서와 동일한 필연성을 반영한다. 만일 하나의 사건이 다른 사건을 일으킨다면 후자는 전자가 발생하였을 경우에 반드시 발생하여야 한다. 물리적 세계의 인과적 필연성은 관념의 세계에서의 논리적 필연성과 동일하다. ……자연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반드시 그러한 방식으로 일어나고야 만다. 자연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물리적 자연 법칙에 따라 일어나는데, 이 법칙은 결국 원인과 결과 사이의 필연적인 연결을 표현한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라는 점을 떠올려 보자. 어떤 것도 우연히 일어나지 않으며, 일어나는 모든 것은 필연적으로 일어난다. 인간의 육체에 대한 이러한 입장에 정신과 육체가 어떤 상호도 주고받을 수 없다는 주장을 더하면 결국 인간의 육체는 전적으로 자연과 그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인간의 육체는 자연이라는 물리적 기계 전체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으며, 육체의 모든 활동은 이 기계를 지배하는 법칙 그리고 운동에 선행하는 물리적인 조건의 측면에서 남김없이 설명될 수 있다.”
그런데 소피노자에 따르면, 인간은 유한한 존재로서 불충분한 지식밖에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늘 불안하다. 그러나 누군가가 진정으로 이성적이 되어 모든 사물의 궁극적인 원인과 질서를 인식할 수 있다면, 그는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얻어 이웃을 사랑하고 우주와 참된 조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스피노자는 이렇게 모든 것을 이성적으로 관조하는 데서 오는 평온한 행복이야말로 인간에게 가능한 유일한 최고의 선이라고 보았다.










자료 55 칸트는 ‘거짓말도 방편’이라는 데 반대한다.

안네 프랑크가 수색하기 위해 온 나치스에게 “유대인은 없다.”라고 거짓말을 해서 유대인을 지켜 준 일은 폭력으로부터 타인의 권리를 지켜 주기 위한 거짓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철학자 칸트는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라고 주장한다. ‘인간애를 위한 거짓말을 할 권리에 관하여(1797)’라는 논문에서 “우리의 친구를 암살자가 추격해 와 친구를 집 안으로 들이지 않았느냐고 우리에게 물었을 경우, 이 암살자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은 죄가 된다.”라고 말했던 것이다.
이에 대해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정치가인 콩스탕은“권리 없는 곳에 의무는 없다. 진실을 말하는 것은 의무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 의무는 단지 진실에 대한 권리를 가진 인간에 대해서만이다.”라고 하여 칸트를 비판하였다. 이것은 키케로의 “상대가 불성실할 때에는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과 같다.
칸트는 “진실은 소유물처럼 그것에 대한 권리가 갑에게는 승인되고, 을에게는 거부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인과 관계에 있어 칸트는 “없다.”라고 거짓말을 하면 친구가 살 수 있고, “있다.”라고 바른말을 하면 친구가 살해당한다는 식의 관계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없다.”라고 거짓말을 해도 범인이 친구를 찾아내어 살해할지도 모른다. “있다.”라고 진실을 말하여도 친구는 이미 유유히 달아나고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거짓말을 하면 친구가 살 수 있고 진실을 말하면 살해당한다는 식의 인과 관계는 성립되지 않는다.
내가 진실을 말해 친구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할 수 있다 하더라도, 이 일이 ‘내가 친구를 살해했다.’는 것과 같은 의미가 되지는 않는다. 내가 진실을 말하는 행위와 친구가 살해되었다는 결과 간의 관계는 우연적이다. 따라서 친구 쪽에서 내게 거짓말을 해야 한다고 주장할 권리는 발생하지 않는다. 누구에게도 진실을 말할 권리가 있다. 거짓말을 하면 그 결과에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안 되지만, 진실을 말하면 그 우연적인 결과에 책임을 질 필요는 없다.
“성실은 절대적인 의무이므로 계약으로 발생한 모든 의무의 기초로 간주하지 않으면 안 되며, 만약 그것에 조금이라도 예외를 인정해 버린다면 의무의 법칙은 동요되어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따라서 모든 진술에 있어서 성실하다는 것은 신성하며 무조건적으로 명령하는 이성 명령이다. 이 명령은 어떤 경우에도 제약받지 않는다.” 칸트의 주장을 정리하면 대체로 이런 뜻이 된다.












자료 56 칸트의 정언 명령

칸트에 따르면 의무에 대한 모든 언급은 명법 혹은 명령의 언어로 번역될 수 있으며, 도덕적 의무들 자체는 명령의 힘을 가진다고 말할 수 있다. 칸트는 두 가지 종류의 명령을 구분하는데, 가언적인 것과 정언적인 것이 그것이다. 가언 명령의 정식은 다음과 같다. “만약 당신이 A를 원한다면, B를 행하라.” 정언 명령의 정식은 간단하다. “B를 행하라!” 즉 “진실을 말하라.”와 같이 이성이 본질적으로 옳은 것이라고 밝혀 주는 행위를 하라는 것이다. 가언적 명령, 혹은 수단-목적적 명령은 도덕적 행위의 특성을 가지고 있는 종류의 명령이 아니다. 정언적 명령, 혹은 무조건적 명령이 도덕적으로 옳은 종류의 명령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도덕적 책무의 절대적 지위에 대한 적절한 인식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그러한 명령들은 모든 이성적 행위자가 그들의 합리성에 의해 알고 있는 직관적이고, 직접적이며, 절대적인 명령들이다. 칸트는 우리가 도덕적 의무를 오로지 그 자체로 행해야만 한다(“의무를 위한 의무”)고 주장한다. …(중략)…
칸트에 따르면 정언 명령은 단 하나만 있다. 하지만그는 이 정언 명령을 세 가지 정식으로 제시한다.


•자연 법칙의 원리(principle of the law of nature): 마치 너의 행위의 준칙이 너의 의지에 의해 보편적 자연법칙이 되는 것처럼 행위를 하라.
•목적의 원리(principle of ends): 당신 자신의 인격이나 다른 사람의 인격에 있어서 인간성을 언제나 동시에 목적으로 대우하고 결코 단순한 수단으로만 대우하지 않도록 그렇게 행위를 하라.
•자율성의 원리(principle of autonomy): 너의 의지가 그 자체로 동시에 너의 준칙을 통해서 보편적 법칙을 만드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도록 그렇게 행위를 하라.

이러한 모든 정식을 함께 묶는 논제는 보편화 가능성이다. 어떤 개별적 행위의 과정이 그와 같은 종류의 상황에 처한 다른 사람에게도 적용될 수 있을 정도로 보편화될 수 있는가? 칸트에게 있어 준칙이 보편화될 수 있는지 없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가 따르는 정언 명령의 특수한 세 가지 정식에 달려 있다. 하지만 세 가지 정식의 가장 근본적인 노선은 다음과 같다. 즉 우리는 우리의 개인적인 준칙의 밖에 서서, 우리의 준칙이 우리 모두의 삶의 원리로서 적절한 것인지를 불편부당하게 그리고 개인적인 관점을 떠나서 판단한다는 것이다.









자료 57 칸트 “인간의 본성: 도덕성과 타산성은 서로 다른 것인가?”

과연 인간에게 도덕성과 타산성은 서로 구분되는 것일까? 만일 인간 본성이 오로지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이기성에 지나지 않는다면, 자기 이익을 계산하는 타산성을 떠난 도덕성이란 불가능할 것이다. 그 경우에는 도덕적 판단을 포함한 모든 판단이 이기성에 근거한 판단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타산성으로 환원될 수 없는 도덕성이 존재하는가, 아닌가의 물음은 결국 인간의 본성의 물음으로 이어지게 된다. 인간 본성은 오로지 자기 이익 계산의 이기성일 뿐인가, 아니면 그런 이기성 너머의 보편적 도덕성도 함께 하는가?
인간의 본성으로 우리가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것은 이기적 욕망이다. “예기”는 인간이 본성적으로 좋아하는 것은 “음식남녀(飮食男女)”이고, 본성적으로 싫어하는 것은 “사망빈고(死亡貧苦)”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식색지욕이 인간의 본성인 것이다. 그러나 이 욕망이 그대로 도덕적 악인 것은 아니다. 배고프면 먹으려하고, 추우면 따듯한 것을 찾으며, 때가 되면 짝짓기를 하려는 것은 다른 일반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인간에게도 속하는 자연적 본성이다. 자연적인 만큼 욕망 그 자체도 선도 악도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능에 따라 행동하는 동물 또는 그런 동물의 행위를 선 또는 악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우리는 인간이 오직 욕망에 따라서만 행동할 경우 그 행동을 비도덕적이라고 평가한다. 이것은 인간에게는 행동을 위해 고려해야 할 것으로서 욕망 이상의 그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흔히 자연적 욕망을 대하는 양심으로 간주한다. 인간에게는 식색지욕의 욕망 이외에 양심이란 것이 있기 때문에 단지 욕망 충족만을 위해, 자신의 쾌락의 증진만을 향해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양심의 소리도 함께 고려하여 행동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양심은 도덕성을 암시하는 기호일 뿐 그 자체가 도덕성은 아니다. 양심 또는 양심의 소리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곧 그를 도덕적 선으로 만드는 것은 아닌 것이다. 양심의 소리가 있다고 해도 실제 행위를 함에 있어서는 그 양심을 무시하거나 양심에 반해 욕망을 따르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행위를 도덕적 선으로 만드는 것은 욕망 자체도 아니고 양심 자체도 아니며, 바로 그 사이에서 고려하고 결단하고 선택하는 제3자인 것이다.
이 제3자가 바로 행위를 결정하는 도덕적 판단 주체라는 의미에서 ‘실천 이성’이며, 결단과 행위 주체라는 의미에서 ‘의지’이다. 의지는 이기적 욕망과 이기적이지 않은 양심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려하다가 결단을 하고 행위를 수행한다.







자료 58 실존주의

실존 철학은 인간의 존재 성격을 실존이라고 규정하고, 이 실존을 자기 사상의 중심에 놓는 현대 특유의 사상이다. 그것은 불안과 허무에 허덕이는 현대인을 위한 사상인 동시에, 유럽을 면면히 이어온 합리론적 이성주의 전통에 대한 반역의 사상이기도 하다. 실존 철학은 1920년대 후반부터 1930년대에 하이데거와 야스퍼스를 중심으로 독일 철학계에 풍미하였다. 그러나 1933년 독일에 나치 정권이 들어서면서 쇠퇴한 이후,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1945년 9월 사르트르가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라는 강연을 한 이후부터 실존 철학이 아니라, 실존주의라는 이름으로 유럽 전역에 유행하기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실존을 강조하는 철학이 20세기에 와서 대두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현대가 처해 있는 불안한 상황 때문이다. 오늘날 인간은 거대한 기계와 기술 조직 속에서 마치 개성이 없는 한낱 대체 가능한 부품과 같이 평균화되어 비인간화 또는 자기 상실의 소외 현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인간은 조직 속의 일원으로서는 그 기능의 한 단위에 불과하고, 집단 속의 한 사람으로서는 어느 누구라도 괜찮은 어떤 자에 불과하다. 또 우리는 누구나 같은 시간에 같은 방송을 들으며 같은 신문을 읽는다. 이리하여 인간의 평균화, 기계화는 심화되어 가고, 인간성은 상실되어 가고 있다. 현대의 조직화된 사회 속에서 상실되어 가는 인간의 본래성을 회복하기 위하여 인간은 대중 속에 매몰되어 있는 자기 존재에 대하여 눈을 뜨게 되었다. 그 결과 인간은 자기 존재의 존엄성에 대한 각성을 요구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여 출현하게 된 것이 실존 철학이다. 그러나 실존 철학이 세계적으로 유행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현대가 불안의 시대라는 데 있다. 근세의 계몽주의와 그 뒤를 이은 독일 관념 철학은 인간의 이성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인간의 이성을 이용한 과학의 발전을 통하여 인류 사회는 진보하고 향상되어 갈 것이라는 기대는 20세기 두 차례 발생한 세계 대전으로 무참하게 파괴되었다. 전쟁의 참사를 겪음으로써 현대인은 과학과 기술에 의해 인류는 진보할 것이라는 낙관적 기대는 붕괴되었고, 인류의 존속마저도 기대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위기의식을 바탕으로 하여 주체적 존재로서 인간 존재의 본질과 구조를 밝히려는 실존 철학이 대두하게 되었다. 이러한 실존 철학은 키르케고르, 니체를 선구자로, 하이데거, 야스퍼스, 사르트르 등을 대표자로 들 수 있다.






자료 59 키르케고르의 실존의 3단계

키르케고르는 덴마크 사람으로 코펜하겐에서 태어났으며, 사람들에게 괴짜라고 불리는 인생을 살았다. 그에게는 당시 독일의 사상계를 지배하고 있던 헤겔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저서가 많이 있는데, 특히 “철학적 단편”과 “죽음에 이르는 병” 등을 통해 전해지고 있는 사상은 헤겔 등의 독일 관념론을 기본적으로 부정했다.
덴마크 어로 발표된 그의 저서들은 19세기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었다. 그러나 20세기 초반 독일어로 번역되면서 니체와 견줄 만한 사상가로 평가되어 하이데거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치게 된다.
키르케고르는 “인생은 단 한 번, 우연히 태어나서 죽음을 앞에 두고 있는 각각의 인간이며, 어디에도 여분은 없다. 확실한 실존이야 말로 진리이다.”라고 했다. 그리고 인생은 이성에 의하지 않고, 파토스(정열)에 의해 불안이나 절망을 쫓아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주장한 실존의 3 단계 중 실존의 제1단계 ‘미적 실존’은 ‘향락’이다. 돈 주앙은 따분하기 때문에 내키는 대로 쾌락을 추구하지만, 정신을 차려 보니 쾌락의 노예일 뿐이다. 거기서 아이러니(미꼼)를 발견하고, 제2단계 ‘윤리적 실존’이 나타난다. 그것은 양심을 갖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또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성공한 사람은 오만하고, 실패한 사람은 회한에 사로잡혀 있다. 이것을 유머(자신을 떼어놓음)를 통해 초월한 것이 제3단계 ‘종교적 실존’이다.
“구약 성서”의 창세기에 있듯이, 아브라함은 자식인 이삭을 번제(燔祭, 소나 양 등을 신에게 받치는 의식)의 제물로 바치라는 신의 명령을 받고, 고민 끝에 끝까지 순종함으로써 신앙 속에서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그의 사상에는 인간의 정신에 점점 다가오는 무언가가 있다. 게다가 엄숙하다. 상당히 비슷해 보이는 쇼펜하우어의 염세 철학은 그와 비교하면 가벼운 느낌마저 든다.
키르케고르의 사상은 하이데거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하이데거의 저서 “존재와 시간”은 평이한 일상어를 사용해서 한 번 보면 실존에 다가가 있겠지만, 본보기가 된 키르케고르를 생각하면서 읽으면 이해하기가 좀 더 쉬울 것이다.









자료 60 군중 속의 개인

키르케고르는 군중 속에 묻혀 있는 개인의 비참한 상태를 19세기 초 러시아에 있던 농노 취주 악대에 비유하여 설명하였다. 이 악대에서는 20인의 악사가 각각 도, 레, 미 등 자기에게 고유한 소리 하나만을 내도록 되어 있다. 그래서 자기의 음을 낼 순서가 되었을 때, 일정한 길이의 그 소리를 내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이 악사들은 자기 이름이 아니라 각자에게 배당된 음으로 불린다. 예를 들어 ‘어느 지주의 도’, 혹은 ‘어느 지주의 미’라고 불리는 것이다. 결국 이들은 자기에게 배당된 그 하나의 음과 동일하게 취급된다. 키르케고르의 비유를 적용하면, 산업 사회에서 같은 부서에서 같은 조작을 몇 백 번 되풀이하고 있는 노동자는 한 음만 내는 농노와 다름없는 존재인 것이다.







자료 61 실존주의의 선구자 키르케고르

키르케고르는 철학사에서 현대 실존주의의 시조로 꼽힌다. 그는 헤겔 철학에 도무지 공감할 수가 없었다. 헤겔은 거대한 철학적 체계를 구축해 자연과 역사, 국가에 대한 총체적 진리를 세우고자 했다. 그러나 키르케고르가 보기에 이렇게 거대한 건축물에는 중요한 요소 하나가 빠져 있었다. 바로 인간의 실존이다. 실존의 절박성을 몸으로 체험한 키르케고르에게 헤겔 철학은 난센스이며 코미디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헤겔이 강조한 절대 이성의 명성이 빛을 바래지 않은 시대에 그가 새롭게 해명하고자 한 ‘실존’ 개념은 무엇인가? 키르케고르는 “이제 나는 눈초리를 조용히 나 자신에게로 향하게 하고, 내면적으로 행동하려고 노력하고 싶다. 그렇게 해야만 한층 깊은 뜻에서 나를 나라고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고백했다.
우울과 절망 속에서 세속적인 삶에 날카로운 비판의 화살을 돌린 키르케고르는 세속적인 그리스도교가 교회라는 권력을 만들어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것을 목격했다. 그는 거대한 교회 권력과 맞서서 그리스도교적 혁명을 감행할 것을 선언했다. 키르케고르 철학에서 신과의 만남은 개인이 주체적으로 되는 것, 즉 단독자가 되는 사건이다. 그에게 신은 객관적으로 입증되거나 존재하는 대상이 아니다. 신앙은 이성적으로 파악할 수 없는 하나의 역설이다. 신은 이성으로 입증되는 것이 아니라, 이성을 능가하는 비약이다. 이러한 비약을 감행하기 위해 그는 국외자로 남기를 자처했다. 본래적 자아로 돌아가기 위해 끊임없는 비약과 감행의 모험을 시도하는 우울한 사람으로 남았다는 이야기이다.







자료 62 사르트르의 제1 원칙

‘인간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것이 실존주의의 제1원칙이다. 사람들은 이것을 주체성이라고 부른다. 이것이 인간을 돌이나 탁자보다 더 존엄한 것으로 만든다. 인간은 미래를 향해 자신을 던지는 것, 미래 속에 자신을 집어넣는 것을 의식하는 존재이다. 실존주의의 첫걸음은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그 자신의 실존에 대해 주인이 되게 하고 자신의 실존에 대해 전적으로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이다. 사람이 자기 자신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말할 때,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뜻이다.    -사르트르,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자료 63 사르트르의 무신론적 실존주의,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사르트르에 의하면, 인간의 본성은 제조 과정의 한 상품을 묘사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설명될 수 없다. 예를 들어 절지용 칼을 생각해 보자. 누군가가 그것을 만들었을 때 그의 마음속에는 그것에 대한 개념이 선재한다. 우리는 인간의 본성에 관해 사유할 때에도 인간을 하나의 제조자나 창조자나 신의 산물이라고 규정하는 경향이 있다. 사르트르에 의하면, 우리는 대부분의 경우 신을 ‘천상의 장인’이라고 생각하면서 신이 창조할 때 신은 자신이 창조하고 있는 것을 정확하게 인식한다는 가정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다. 이러한 입장에서 볼 때 개인은 신의 오성에 내포되는 한정적인 개념의 실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르트르는 진지하게 무신론을 취함으로써 이러한 주장들을 역전시키고자 했다. 그에 의하면, 만일 신이 없다면 인간의 본성에 대한 개념을 먼저 지니고 있는 존재도 없을 것이므로 인간의 본성에 대한 주어진 개념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단지 실존하고, 그 후에야 본질적인 자아로 된다. 사르트르에 의하면, 실존이 본질에 선행한다는 명제는 인간이란 우선 존재하며 자기 자신과 대면하고 세계 내에 출현하며, 그 뒤에야 자신을 정의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최초에는 단지 한 개인만이 존재한다. 그리고 난 뒤 스스로 만든 우리가 존재할 뿐이다.






자료 64 하이데거의 ‘현존재’

하이데거는 인간이 돌이나 나무처럼 그냥 단순히 여기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계획하는(그쪽을 향해 자신을 던지는) 방향의 가능성들 안에서, 그리고 그 가능성들로부터 산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하이데거는 데카르트 이후 근대 철학이 그래 왔던 것처럼, 인간을 인위적인 고립 속에 그대로 남겨두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모든 인간이 자신의 ‘세계’를 가지며, 그가 다른 존재들 사이에서 다른 인간들과 함께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는 인간이 ‘세계-안에-있음’과 ‘다른 것들과 함께 있음’을 말한다.
실존이란 인간의 벌거벗은 ‘여기 있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며, 인간은 돌이나 나무처럼 그냥 있는 것이 아니다. 실존이란 인간이 정말로 존재 방식으로 있다는 뜻이다. 곧 ‘자기를 넘어 밖에 서기’, 자기를 넘어서 언제나 이미 이해되었던 있음 속으로 넘어가기의 방식으로 있다는 뜻이다. ‘세계-속에-있음’을 실존으로 보고, 그것을 더욱 정교하게 해석하면서 하이데거는 인간의 일상적인 상황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인간은 맨 먼저, 그리고 대부분 자기 자신으로 있지 않고 세계에 추락해 있다. 그는 그 자신이 아니라‘사람들, 그들(man)’일 뿐이다. 그는 사람들에게로 넘겨져 있다. 그의 과제는 이렇게 얽힘에서 벗어나 정말로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다.






자료 65 실존주의의 윤리적 의의

실존주의는 인간의 개성을 긍정적으로 본다. 실존주의는 이성과 같이 모든 사람이 공통으로 지닌 보편적 특성을 통해서는 인간의 삶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다고 본다. 그래서 사람마다 다른 구체성, 즉 개성을 강조한다. 그리고 실존주의는 인간의 주체성을 강조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다른 사물은 그 목적이나 용도 등이 미리 결정되어 있지만, 인간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자신을 주체적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그래서 실존주의는 내가 가진 지금 이 모습, 나의 현재가 가장 중요하며 현재의 내가 미래의 나를 결정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실존주의는 인간의 존엄성을 중요시한다. 실존주의는 인간이라는 보편적 존재의 본질이나 목적을 말하기보다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나의 선택과 결단을 강조한다. 이는 각자가 결코 대상화될 수 없는 유일하고 존엄한 존재라는 것과 연결된다. 이처럼 실존주의는 오늘날 개성과 주체성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에게 삶의 진정한 의미를 반성해 보도록 하고, 나아가 현대 사회에서 자칫 경시되기 쉬운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함으로써 삶의 지침을 제공해 주고 있다.





자료 66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 개념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정의란 사람들에게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주는 것이다. 그런데 무엇이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인가? 능력이나 자격의 근거는 무엇인가? 이는 분배되는 것이 무엇인가에 달렸다. 정의에는 두 가지 요소가 있다. “대상과 그것이 할당될 사람”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우리는 “평등한 사람들에게는 평등한 대상들이 할당되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때 어려운 질문이 생긴다. 어떤 점에서 평등인가? 답은 우리가 무엇을 분배하는가, 그리고 그와 관련한 미덕은 무엇인가에 달렸다.
이를테면 플루트를 분배한다고 해 보자. 누가 최고의 플루트를 가져야 하는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최고의 플루트 연주자가 가져야 한다고 대답한다. 정의는 능력에 따라, 우수성에 따라 차별적으로 적용된다. 플루트의 경우 능력이란 플루트 연주 실력이다. 만약 정의가 부, 타고난 신분, 외적 아름다움, 우연(제비뽑기) 같은 기준에 따라 차별 적용된다면 부당한 일이다.
                                                              -마이클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












자료 67 롤스의 정의론(正義論)

롤스(Rawls, J.)는 사회의 모든 가치, 즉 자유와 기회, 소득과 부, 인간 존엄성 등은 기본적으로 평등하게 배분되어야 하며, 가치의 불평등한 배분은 그것이 사회의 최소 수혜자에게 유리한 경우에만 정의(正義)롭다고 파악한다. 그리고 사회 정의 실현을 위한 사회 구성의 원리로 2가지 원리를 제시하였다. 하나는 ‘평등한 기본적 자유의 원칙’이고, 다른 하나는 '조정의 원리'이다. 전자는 모든 개인은 다른 사람의 유사한 자유와 충돌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기본적인 자유에 대한 평등한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고, 후자는 기본적 자유의 평등 원칙 하에서 발생하는 불평등을 조정하기 위한 원칙으로 공정한 기회 균등의 원칙과 차별의 원칙이 있다.
공정한 기회 균등의 원칙은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은 그 원천이 되는 모든 직무와 직위에 대한 공평한 기회 균등 하에서 발생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며, 차별의 원칙은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은 불평등이 가장 불리한 입장에 있는 사람에게도 이익이 되는 경우에만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롤스는 이 두 가지 원리가 충돌 시 기회 균등의 원칙이 차별의 원칙에 우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한편, 롤스의 정의론은 노직(Nozick, R.)의 권리로서의 정의론과 차이를 보이는데, 롤스는 무지의 베일(합리적 행위자가 사회 내에서의 자기 지위가 무엇이 될 것인지 알지 못하게 하는 장치)이라는 원칙 하에서 사람들은 사회의 빈곤층을 소외시키지 않는 분배 원칙을 선택한다는 공정으로서의 정의를 주장한다. 반면, 노직은 모든 사람들이 자기 소유물에 대해 소유권이 있을 경우, 그 소유권을 존중하는 분배는 정당하다고 전제하는 권한으로서의 정의를 주장했다.
또한 롤스는 취득과 권한이 정당한 재분배의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노직은 재분배는 정당한 취득과 권한의 원리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자료 68 왈처, 다원적 평등의로서의 정의

왈처(Walzer, M.)는 새로운 관점의 정의론을 제시하였다. 그에 따르면, 롤스의 ‘최소 수혜자에게 최대의 이익’을 추구하는 평등은 단순 평등에 불과하며, 노직의 ‘자유 교환으로서의 정의’ 또한 하나의 관점에서만 정의를 논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에 따르면, 사회는 하나의 기준으로 정의로운 상태를 재단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하지 않다.
왈처는 “모든 분배는 한 사회가 공유하는 가치나 선(善)의 의미에 상응하여 정의로운지의 여부가 결정된다.”라고 주장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다원적 평등으로서의 정의’를 제시한다. 다원적 평등으로서의 정의는 사회적 가치들이 그 고유한 기준에 의해 분배될 때 실현된다. 그에 비하면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정의 원칙은 구체적 상황에 적용될 수 있는 현실성이 결여되어 있다. 또 분배의 기준은 가치 그 자체가 아니라 가치의 사회적 속성에 내재해 있다. 그 가치가 어떤 것이고, 그것이 사람들에게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를 이해한다면, 그것이 어떻게, 누구에 의해서, 그리고 어떤 이유에 따라서 분배되어야 하는가를 알 수 있게 된다. 즉 왈처는 분배가 정의로운지의 여부가 가치의 사회적 의미에 의해 상대적으로 결정된다고 보았다.













자료 69 막스 베버,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자본주의의 특징과 프로테스탄티즘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는 막스 베버의 대표작이다.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은 20세기에 출현한 정신 과학의 업적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로 평가받는다. 이 책은 원래 논문으로서 1904년과 1905년 두 차례로 나뉘어 처음 발표되었던 것인데, 베버의 사망 직후에 3권으로 출판된 베버의 ‘종교 사회학 논문집’ 제1권(1920) 첫 부분에 실려 지금과 같은 내용과 형식을 갖게 되었다.
이 책은 논문으로 발표될 때부터 당시 서구의 지성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오늘날까지 자본주의의 발생과 발전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귀중한 고전이 되어 있다. 베버에 따르면, 근대 시민 계급은 종교적인 측면에 있어서 프로테스탄티즘이라는 종교 개혁을 수용한 사람들이었다. 프로테스탄티즘은 금전 추구라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에 윤리적인 통제를 가함으로써 향락, 방탕, 재산을 낭비하는 일을 절제하고 최선을 다해 일하고 금욕하는 것을 윤리적인 것으로 보았으며, 이렇게 얻은 자산의 양은 그의 신앙의 진실성을 나타낸다고 보았다. 이는 재산의 획득을 윤리적으로 정당화하여 결과적으로 자본주의의 발전을 돕게 된다. 이와 같이 신이 내린 직업을 최선을 다해 수행하여야 한다는 청교도적 세계관은 이러한 ‘자본주의 정신’을 더욱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강성화,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자료 70 하이에크(Hayek, F. A.)의 신자유주의

자생적 질서는 인간이 각자 자신의 지식을 동원하여 자신의 목적을 추구하더라도 혼란 상태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간섭 없이 스스로 조정되는 질서이다. 자생적 질서의 대표적인 예는 시장 경제 질서이다. 질서를 잡는 주체가 없어도 시장 경제에서는 이를 구성하는 경제 주체들의 자율적인 행동에 의해 스스로 질서가 형성된다. 겉으로 보기에는 혼란에 빠지고 위기에 빠질 것처럼 보인다 하더라도, 시장 경제에서는 경제 주체들이 자신들의 목적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질서가 생겨난다. 질서를 만들어 가는 보이지 않는 힘은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다.
                                                              -하이에크, “법, 입법, 자유”-













자료 71 마르크스(Marx, K.)의 또 다른 생각

마르크스보다 조금 늦게 등장한 정신 분석학자 프로이트는 마음의 하부 구조로서의 인간의 무의식에 주목하였다. 그에 반해 마르크스는 사회의 하부 구조로서의 경제에 주목하였다고 할 수 있다. 확실히 “사람은 경제적 위치와 수입에 의해 사고방식이 달라진다.”라는 명제는 탁월한 통찰력을 담고 있다. 마르크스가 “자본론”이라는 저서에서 그런 견해를 피력하기 전까지 사람은 누구나 자유롭게 사고하는 존재로서 무엇이든 자신이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마르크스의 이론이 등장한 이후로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동의하기 시작하였다.                                 -사이토 다카시,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





자료 72 “공산당 선언”의 일부 내용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하에서 노동자들이 노예의 생활수준조차 보장받지 못한다고 비판하면서, 이를 벗어나기 위한 필연 과정으로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제시하며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의 단결을 촉구하였다.
•지금까지의 모든 역사는 계급 투쟁의 역사이다.
•모든 사회는 억압하는 계급과 억압받는 계급의 적대 관계에 입각해 있었다. 한 계급을 억압하자면 최소한 억압받는 계급이 적어도 노예적 생존을 유지할 만큼의 조건은 보장되어야 한다. 그런데 현대 노동자는 공업의 발전과 함께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계급적 생존 조건 이하로 더욱 더 떨어지고 있다. 사회는 더 이상 부르주아의 지배 하에서 살아갈 수 없다. 즉 부르주아의 존립은 더 이상 사회와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
•공산주의의 당면 목적은 프롤레타리아를 계급으로 형성시키고, 부르주아의 지배를 뒤엎으며, 프롤레타리아의 손으로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것이다.
•지배 계급들로 하여금 공산주의 혁명 앞에서 벌벌 떨게 하라. 프롤레타리아가 혁명 속에서 잃을 것이라고는 쇠사슬뿐이요, 얻을 것은 세계 전체이다. 전 세계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



자료 73 칼뱅의 직업 소명설과 자본주의의 발전


루터에 의해서 종교 개혁이 발생한 후 칼뱅이 종교 개혁에 성공하였다. 칼뱅의 교리에 있어서 특이한 것은 예정설이었다. 이 교리에 의하면, 구제될 사람과 구제를 받지 못할 사람은 이미 신에 의해 미리 정해져 있다. 이러한 교리는 숙명론적인 것으로 사람들을 무기력하게 만들 것 같으나, 실제에 있어서는 현세에서 신의 뜻을 이루는 성스러운 사업에 매진하게 하였다. 칼뱅 교도들은 현실에 매우 적극적이었으며 세속적인 직업 노동을 중시하였다. 이를 위해 일상생활을 조직하고 합리화하는 동시에, 철저하게 금욕적인 생활을 강조하는 독특한 생활 윤리를 발전시켰다. 베버는 칼뱅 사상의 생활 윤리는 서양 근대 자본주의를 발전시키는 중요한 정신적 지주가 되었으며, 중산 계급의 생활 태도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하였다. 프로테스탄트 교파들의 공통점으로는 교황권의 거부, 성직자의 혼인 인정, 가톨릭교회에서 행하는 여러 가지 의식을 행하지 않는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교회보다 신앙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성경을 이러한 신앙의 가장 중요한 원천으로 삼으며, 모든 ‘신자가 곧 성직자’라고 여기는 점이었다.




자료 74 애덤 스미스(Smith, A.)의 자유방임주의


•우리가 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은 정육점 주인, 양조장 주인, 빵집 주인의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이익에 대한 그들의 관심 때문이다. 우리는 인간성에 호소하지 않고 그들의 이기심에 호소하며, 그들에게 우리 자신의 필요 대신 그들의 이익을 이야기한다. 거지를 제외한다면, 어느 누구도 동료의 자비에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으려 한다.
•사실 그는 공공의 이익을 증진시키려고 한 것도 아니며 그가 얼마나 기여했는지도 알지 못한다. 그가 해외 산업보다 국내 산업의 지원을 선호하는 것은 자신의 이익을 의도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처럼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자신이 전혀 의도하지 않은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 그는 자신의 이익을 추구함으로써 종종 그 자신이 진실로 사회의 이익을 증진하려고 의도하는 경우보다 더욱 효과적으로 이를 달성하게 된다.                                                           -애덤 스미스, “국부론”-




자료 75 케인스(Keynes, J. M.)의 수정 자본주의


개인들이 경제 행위와 관련하여 타고난 ‘자연적 자유’를 갖고 있다는 주장은 진실이 아니며, 소유자나 획득자에게 영속적인 권리를 부여하는 ‘계약’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이 세상은 개인의 이익과 사회적 이익을 항상 조화시키는 방향으로 작동되지도 않으며, 그렇게 관리될 수도 없다. 개인들이 서로 고립된 채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려 노력할수록 사회적 이익의 추구는 희미해지거나 무시될 수밖에 없다.









수능 출제 경향 분석
Ⅰ. 서양 윤리 사상 수능 출제 경향 분석

가. 난이도 예상과 예상 출제 문항 수
- 2013학년도 난이도와 유사할 것으로 보이며, 특히 근대 윤리 사상에서 고난도 문항이 출제될 가능성이 높다.
- 영역별 예상 출제 문항 수(7~8)와 난이도 분포도

영역
고대 그리스 윤리 사상
헬레니즘 시대
중세 윤리 사상
근대 윤리 사상
현대 윤리 사상
예상 문항 수
2
1
1
2
1~2
출제 가능성
중간
높음
중간
낮음
높음


나. 평가원 모의고사를 통해 본 출제진 성향

2013학년도 수능을 분석해 보면 출제 위원들의 일반적인 경향은 고대 그리스와 근대 윤리 사상을 강조하는 경향이 보인다. 제시문들은 기출된 제시문이나 답지가 많이 활용되었지만, 교과서 외 윤리학 개론서나 원문을 편집하는 경우도 종종 눈에 띈다. 하지만 핵심 개념이 제시되고 있으므로 이미 출제된 제시문과 원문, 핵심 개념 익히기 등을 병행하여 공부해 두는 것이 필요하다.

1. 고대 그리스 윤리 사상
● 감각과 경험에 근거한 소피스트의 인간관과 이성적 사유를 중심으로 한 소크라테스, 플라톤의 인간관, 이상적인 삶의 특징을 비교하여 정리한다.
● 각 문항의 특징은 난도는 비교적 낮지만, 답지의 언어적 기교에서 오는 함정에 빠지기 쉬웠다.
● 플라톤의 사상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이 주로 출제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플라톤의 이데아론, 철인 통치론, 국가론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의 덕, 행복론 등을 중심으로 집중 정리해야 하며, 공통점과 차이점을 중심으로 이들의 관계를 잘 이해해 두어야 한다.
● 소피스트와 소크라테스의 차이점, 이후 서양 윤리 사상의 전개에 미친 영향은 반드시 출제되는 부분이다.
● 고대 그리스의 윤리 사상과 중세, 근대에 이어지는 윤리 사상의 관계를 비교하는 것이 중요하다.
2. 헬레니즘 윤리 사상과 중세 윤리 사상
● 헬레니즘 시대의 윤리 사상인 에피쿠로스학파와 스토아학파의 관련 문제는 반드시 1문제 이상 출제된다.
● 헬레니즘 시대의 윤리 사상인 에피쿠로스학파와 스토아학파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구분해야 하며, 특히 에피쿠로스와 밀의 질적 공리주의와의 상관관계, 에피쿠로스와 플라톤의 비교, 스토아학파와 칸트 윤리 사상의 이성적 사유를 중시하는 삶의 태도의 공통점도 주목해야 한다.
● 교부 철학과 스콜라 철학도 반드시 1문제 정도는 출제된다. 두 사상이 직접 비교되는 문제도 있지만, 신에 대한 해석의 차이를 보이는 스피노자와 키르케고르 등과 병행해서 출제되기도 한다.
3. 근대 및 현대 윤리 사상
● 근대 윤리 사상은 감각과 경험을 중시하는 흐름과 이성적 사유를 중시하는 흐름을 파악하는 문제가 출제되며, 주로 칸트와 공리주의 문제가 빠지지 않고 1~3문제 출제된다.
● 칸트의 선의지와 의무론적 윤리설의 특징과 개념들을 정리해야 하며, 벤담과 밀의 공리주의의 공통점과 차이점도 정리해 둘 필요가 있다.
● 스피노자, 흄은 칸트, 키르케고르와 비교하여 출제되며, 특히 스피노자는 스토아학파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것과 범신론적 신관을 묻는 문제가 출제된다.
● 그 외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 흄의 공감의 의미, 실용주의의 유용성 문제, 롤스의 정의론, 쇼펜하우어의 생철학 등이 종종 출제되고 있다.
Ⅱ. 최근 6년간 제시문과 답지를 통해 본 고대 그리스의 윤리 사상
1. 소피스트, 프로타고라스

각자가 모든 것의 기준이다. 모든 가치는 각자의 의견에 불과할 뿐이다. 추위를 느끼는 사람에게 바람은 차갑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바람은 차갑지 않다. 어떤 것들이 나에게 나타나는 대로 그것들은 나에게는 그렇게 존재하며, 어떤 것들이 당신에게 나타나는 대로 그것들은 당신에게는 그렇게 존재한다. 정의(正義)는 더 강한 자의 이익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똑같은 정의일지라도 어떤 사람에게는 유리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불리하다. 결국 모든 가치 판단은 개인이 처한 상황이나 처지에 따라 달라진다.


2. 소크라테스

만약 어떤 사람이 더 좋은 것을 알고 있다면 지금 행하고 있는 것을 멈추고 더 좋은 것을 행하려고 할 것이다. 그 누구도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을 스스로 행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무지로 인해 해를 입게 되고 지혜를 통해 해로운 것을 물리칠 수 있다. “여러분! 더 이상 지혜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저를 무죄 방면한다 할지라도, 제가 살아가는 동안, 그리고 할 수 있는 한, 지혜를 사랑하는 것도, 여러분의 무지를 자각시키는 일도 결코 그만두지 않을 것입니다. 이 점을 고려하여 저의 무죄 방면 여부를 결정하십시오. 설령 몇 번을 죽인다 할지라도 제가 달리 처신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요.” 정의가 무엇인지 먼저 알아야 그것이 덕인지 아닌지, 그것을 지닌 사람이 행복한지 불행한지를 알 수 있다. 정의는 덕이고 지혜이며, 부정의는 악덕이고 무지이다. 정의가 무엇인지를 알면서도 이를 행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3. 플라톤

각자는 저마다 타고난 성향에 따라 한 가지 일에 배치되어야만 한다. 이는 각자가 자신의 일에 종사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나라 전체가 조화로운 ‘한 나라’로 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이들 세 계층으로 분류된 사람들 사이의 역할 교환은 나라에 대한 최대의 해악이다. 국가는 구성원 각자가 자신의 직분에 충실하면서 서로 조화를 이룰 때 정의롭게 된다. 그리고 사물의 참모습을 인식한 철학자가 통치자가 되어야 한다. 선(善) 그 자체가 모든 가치의 기준이다. 이에 대한 앎이 없다면 결코 실천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따라서 지혜의 덕(德)을 가진 자가 통치자가 되어야 한다. 철학자가 군주가 되거나 현재의 군주가 철학자가 되지 않는 한 인류의 불행은 그치지 않을 것이다. 개인의 영혼과 마찬가지로 국가도 그것을 구성하는 세 부분이 있다. 국가에서는 각 계층의 본성에 알맞게 서로 다른 책임과 사회적 역할이 부여된다. 정의로운 사람과 정의로운 국가는 긴밀한 유관 구조를 갖는다. 왜냐하면 개인의 영혼과 국가는 유사한 점이 있다고 밝혀졌기 때문이다.


4. 아리스토텔레스

도덕적인 덕은 중간을 목표로 한다. 이 목표는 지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 것을 의미하며, 지속적인 습관화를 통해 달성한다. 많은 사람들은 과도함과 부족함 사이의 적절함, 즉 중간을 찾아 반복적으로 행하지 않으면서도 자신들은 덕스러운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의사의 말을 이해하기는 하지만, 의사가 처방한 바를 행하지 않은 환자와 비슷하다. 인간의 궁극적 목적은 행복이다. 행복을 이루기 위해서는 덕을 갖추어야 하며, 덕에는 지적인 덕과 도덕적 덕이 있다. 이 둘의 본성은 아래로 떨어지도록 되어 있어 위로 움직이는 습관을 들이려고 애써도 소용없다. 시각이나 청각은 자주 보고 들어서 생긴 것이 아니라, 그 전부터 이미 있었던 감각이다. 그러나


도덕적 덕은 저절로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실천적 지혜를 통해 중용을 파악하고 실천해야 한다. 어린 시절부터의 지속적인 실천과 노력은 결코 사소한 차이가 아니라 큰 차이를 낳는다. 따라서 나는 활동의 차이에 따라 성품의 차이가 생겨난다고 본다. 어떤 사람은 ‘알면서도 악을 행한다면 그것은 오직 무지 때문에 그런 행위를 한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나는 이러한 견해에 있어서 ‘충동이 참된 앎의 실현을 방해한다는 것을 간과한 입장이다.’라고 생각한다.

Ⅲ. 최근 6년간 제시문과 답지를 통해 본 헬레니즘과 중세 윤리 사상

 

1. 에피쿠로스학파

우리는 옷을 필요로 하지만 그렇다고 화려한 옷을 구하려 하지 말라. 우리의 옷이 검소하다고 해서 어떤 고통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몸에 고통이 없고 마음의 불안이 없는 평온한 상태에서 가장 큰 만족을 누릴 수 있다. 쾌락은 삶의 목적이다. 참된 쾌락은 몸의 고통이나 마음의 혼란으로부터 자유이다. 결핍으로 인한 고통이 제거된다면, 검소한 음식도 우리에게 사치스런 음식과 같은 쾌락을 준다. 감정적 동요나 혼란이 없는 평온한 마음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살아 있을 때는 죽은 것이 아니며 죽었을 때는 감각할 수 없으므로 죽음을 미리 근심하지 말라. 우리가 목적으로 제시하는 쾌락은 방탕한 자의 쾌락이나 육체적 쾌락이 아니라, 마음에 불안이 없고 몸에 고통이 없는 상태를 뜻한다. 쾌락에 휩쓸리지 않도록 해라. 쾌락은 몸의 고통이나 몸의 혼란으로부터의 자유이므로 행복한 인생의 시작이자 끝이다. 그러나 가장 적은 양의 필요를 가진 사람이 가장 큰 기쁨을 느낄 것이다. 삶이 너에게 해를 끼치는 것도 아니고 삶의 부재가 어떤 악도 아니기 때문에 삶에서 도피하지 말라. 쾌락의 추구는 깊은 성찰에 근거해 조심스러워야 한다. 자연은 어떠한 목적도 알려 주지 않는 혼란스러운 곳이다. 그러므로 자신 이외의 어디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마음의 평화에 도달하려면, 삶 속에서 꾸준히 지속되는 즐거움을 추구하고 속된 일에 관여하지 않아야 한다.


2. 스토아학파
보석이 유용하다고 해서 기뻐하거나, 해롭다고 해서 슬퍼하지 마라. 보석이 주는 유용함과 해로움은 우리의 능력 밖에 있으므로 주어지는 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기쁨과 슬픔은 단지 너의 생각에서 비롯되는 것일 뿐이다. 인간을 혼란시키는 것은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사건에 대한 인간의 관념이다. 죽음도 그 자체가 아니라 죽음에 대한 관념이 무서운 것이다. 우주의 법칙에 깨달으면 인간은 어떤 상황에도 동요하지 않는 정신 상태를 갖게 된다. 정념에 흔들리지 않는 평온한 마음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그리하여 문전 박대 당할지라도 만나야 하는 것이 의무라면 가서 일어나는 일을 고스란히 받아들여라. 무슨 일이 생기든지 그것이 일어나기를 네가 원했던 것처럼 행동하라. 신(神)이 정한 질서에 따라 모든 것이 일어난다는 것을 깨달으면, 너는 참된 자유를 얻을 것이다. 쾌락을 즐기고 나서 후회할 때와 멀리하고 나서 누릴 만족을 비교하여 경계한다면 어떤 정념의 자극에도 동요치 않는 정신 상태를 가질 것이다. 너는 작가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배우에 불과하다. 연극의 길고 짧음은 이미 작가에 의해 결정된 것이다. 너는 단지 주어진 역할을 잘 연기해야 한다. 잔칫집에 가서 자리에 앉아 음식을 기다리고 있다고 하자. 음식이 늦게 나온다고 재촉하지 마라. 너를 모욕하는 것은 홀대하는 사람이 아니라 홀대받고 있다는 너의 믿음이다. 누군가 너를 화나게 할 때, 너의 머릿속의 생각이 너를 화나게 하는 것임을 명심하라. 마음의 평온은 너의 바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내적인 통찰에서 오는 것이다.
3. 아우구스티누스
세계에는 신의 나라와 지상의 나라가 있다. 신에 대한 지식은 이성이 아니라 오직 신의 계시를 통해서 주어지는 것이다. 완전한 행복은 오직 신앙을 통해 신에게 귀의함으로서 얻을 수 있다.
4. 아퀴나스

움직이는 모든 것은 항상 다른 것에 의해서 움직여지고 있다. 그러나 운동의 원인에 대한 소급이 무한히 진행될 수는 없다. 따라서 우리는 결국 그 자신은 움직여지지 않으면서 다른 모든 것을 움직이는 최초의 원인을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이성적 논증을 통해 이 최초의 원인을 신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런 방식을 통해 철학은 신학과 조화를 이룰 수 있다. 신앙은 신과 관계에서 자연적 이성은 세계의 현실과 관계한다. 신앙과 이성은 모두 신으로부터 나온 것이므로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다. 영원한 행복을 위해서는 믿음, 소망, 사랑의 실천이 필요하다. 철학과 신학은 대립적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보완적 관계에 있다. 인간은 도덕적 덕이나 일시적 행동에 만족하지 않고 이를 넘어서 종교적 덕과 영원한 행복을 추구하도록 운명지어져 있다.


Ⅳ. 최근 6년간 제시문과 답지를 통해 본 근대 및 현대 윤리 사상
1. 홉스

공공의 권력이 없는 상태는 사실상 전쟁 상태이다. 공공의 권력을 수립하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의 권력과 힘을 한 사람 혹은 하나의 합의체에 양도하는 것이다. 국가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개인들이 계약을 맺어 만든 것이다.


2. 칸트

자연적 필연성은 이성이 없는 존재의 특성이지만 자유는 이성적 존재의 특징이다. 왜 이성적 존재가 자유를 가졌다고 보아야 하는가? 그것은 이성적 존재가 실천 이성으로 타인의 영향과 관계없이 보편적 도덕 법칙에 맞는 자신의 격률을 만들기 때문이다. 이성은 순수한 실천적 법칙들을 규정하는 필연성에 주목할 때, 우리는 그 자체가 목적인 보편적인 도덕 법칙들을 수립할 수 있다. 선행(善行)을 하는 것은 의무이지만, 타인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동정심을 발휘하여 선행을 하는 것은 의무 의식에서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진정한 도덕적 가치를 갖지 못한다. 순수한 실천 이성이 우리에게 요청하는 것은 행복에 대한 모든 요구의 포기가 아니다. 그것은 오직 의무가 문제일 때에 행복을 전혀 고려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성적 존재자는 언제나 보편적 법칙이 되기를 바랄 수 있는 자신의 규칙에 따라 자신의 행위를 평가한다. 감각적 쾌락보다는 내적 교양이 뒷받침된 정신적 쾌락이 더 수준 높은 쾌락이다. 삶의 목적은 영원히 지속되는 성숙의 과정 속에 있다. 만약 어떤 철학이 인간의 가장 고귀한 희망에 역행하거나 실망을 안겨 준다면, 그런 철학은 무의미하다. 즉 그것이 인간 내면의 힘과 취향에 적합하지 않고 실생활, 노동, 자연과 의 대결 등에서 관철될 수 없다면, 인간에 의해 결코 수용되지 못할 것이다. 자신의 행복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행복을 추구하다보면 의무를 위반하려는 유혹에 빠질 수 있다. 따라서 행복만을 추구하는 일은 직접적으로 의무일 수 없으며 의무의 원리일 수는 없다.


3. 벤담

행위의 옳음과 그름을 판정하는 유일한 기준은 그 행위가 산출하는 쾌락과 고통의 양이다. 행위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유일한 기준은 그 행위에 의해 생겨나는 쾌락과 고통의 양이다. 한 행위가 지니는 좋은 성향의 정도와 나쁜 성향의 정도를 모두 더했을 때 쾌락의 양이 크면 클수록 그 행위의 도덕적 가치는 크다.


4. 밀

쾌락의 양이 많고 적음을 사소하게 만들 정도로 질적으로 우월한 쾌락이 존재한다. 어느 누구도 동물적 쾌락을 마음껏 즐기게 해 준다고 해서 동물이 되겠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서로 다른 두 가지 쾌락을 모두 경험한 사람들이 선택한 쾌락이 더 바람직한 쾌락이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품위 있는 삶을 위해 저급한 쾌락보다는 고상한 쾌락
을 선택할 것이다. 어떤 종류의 쾌락이 다른 종류의 쾌락보다 더 가치 있다는 것은 유용성의 윈리와 조금도 어긋나지 않는다. 쾌락의 양만을 고려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5. 흄

도덕의 기초는 타인과 함께 느끼는 공감이다. 그러므로 공감을 통해 쾌감을 느끼게 하는 행위는 선하다. 이성은 감정의 노예이고 노예이어야만 하며, 이성은 감정에 봉사하고 복종하는 일 이외에는 감히 다른 임무를 주장해서는 안 된다. 덕과 부덕의 차이는 그것이 유발하는 인상이나 느낌을 통해서만 확정할 수 있다. 그러므로 도덕성은 판단된다기보다는 느껴진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 어떤 것들에 대한 모든 사실과 그 관계를 규명한 이후에야 비로소 그것의‘좋음’에 대한 승인과 거부가 내려진다. 도덕적 승인과 덕의 현실화는 악기의 한 현(鉉)이 다른 현들을 울리는 것과 같은 인간 사이의 자연스런 느낌에 의해 이루어진다.


6. 스피노자

인간과 자연은 신의 양태이며 우주의 모든 일은 신에 의해 결정된 자연법칙에 따라 발생한다. 모든 사물의 궁극적인 원인과 질서를 이성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면 인간은 마음의 안정과 행복을 얻을 수 있다. 신은 곧 자연이며, 자연은 필연적 질서에 따라 움직이는 하나의 실체이다. 만물의 궁극적 원인과 이 원인으로부터 만물이 발생하는 인과 질서를 인식할 수 있다면, 우리는 최고의 행복을 누릴 것이다. 신은 필연적이며, 무한하고 유일한 실체이다. 세계는 원인과 결과로 결정된 것으로, 의지조차도 신의 의해 강요된 것이다. 사유와 사물은 신이 가진 무한 속성의 양태에 불과하다. 우리의 육체와 정신은 또 다른 모습이다. 따라서 인간은 전적으로 자연이라는 거대한 기계의 필연적인 법칙에 지배를 받는다. 자연의 법칙은 이성의 법칙이므로 자연의 법칙을 인식하고 따를 때 인간은 자유롭게 행복해진다.


7. 실용주의, 듀이

최선의 도구를 찾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선(善)이다. 그러므로 도덕도 성장하고 진보한다. 도덕적 의사의 처방전처럼 적용해야 할 일련의 규칙이 아니다. 도덕적 지식의 가치는 결정되어 있지 않고 당면한 상황을 해결하는지의 여부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도덕적 문제와 악의 소재를 밝히기 위한 특정한 탐구 방법을 개발해야 한다. 도덕은 인간과 사회적 환경과의 상호 작용의 결과이다. 이는 마치 걷는 것이 다리와 물리적 환경과의 상호 작용인 것과 같다. 걷는 것은 다리의 힘과 능력뿐만 아니라 길의 상태에 따라서도 달려진다. 사유과정은 시행착오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 가는 과정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알게 되는 진리, 관념 등은 현실적 활동의 도구이다. 왜냐하면 지성은 영원한 진리를 관조하는 것이 아니라 생에 봉사하는 실제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자연과 삶은 끊임없이 변하고 계속 움직이므로 인간은 어려움을 겪는다. 어려움에 처한 인간에게 사태 해결을 위한 어떠한 도움도 주지 못하는 관념과 지식은 단지 모조품에 불과하다. 인간의 관념과 지식은 망치나 트랙터처럼 도구로서 현실에 얼마만큼의 역할을 하는가에 의해 평가된다.


8. 쇼펜하우어

의지란 걷지 못하는 사람을 짊어지고 뛰어가는 힘센 맹인과 같다. 그는 목적지도 없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그저 힘껏 달려 나갈 뿐이다. 이렇듯 의지는 인간 행동의 실질적인 추진력이다. 눈을 보려는 의지가, 두뇌는 알려는 의지가 현상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렇든 모든 현상은 목적이나 목표가 없이 단지 살고자 하는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세계와 그 모든 현상은 사실상 의지가 외적으로 드러난 것에 불과하다. “삶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직관과 체험이 중요하다네. 그리고 삶의 고통을 피하려면 고통의 원인을 부정하는 금욕적 생활을 해야 하네.” 목적 없는 의지로 인해 생긴 욕구가 모두 충족되는 것은 아니므로 인간은 항상 고통을 겪는다. 신은 이 고통의 세계에 아무런 동정과 책임도 느끼지 않는다.

9. 키르케고르

나에게 진리인 것을 발견하고 내가 목숨을 걸 수 있는 가치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대중의 일원이 아니라 ‘신 앞에 선 단독자’로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만일 신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면 나는 믿지 않을 것이다. 나의 관심은 단순한 앎과 이론이 아니라 단독자인 내가 어떻게 신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가에 있다. 인간은 항상 하나의 살아 있는 존재로서 진리를 추구한다. 처음에는 자기와 이웃의 관계에서 진리를 추구하지만, 결국 인간은 신과 직접 대면한 단독자로서 결단하게 된다.


10. 기타 윤리 사상: 현대 덕 윤리, 길리건의 배려 윤리
● 현대의 덕 윤리: 한 행위의 옳고 그름은 행위자의 성품에 전적으로 의존하기 때문에 그 사람의 행동을 낳게 한 성품을 먼저 살펴보아야 합니다.
● 길리건의 배려 윤리: 나는 남녀의 ‘도덕적 목소리’는 다를 수 있다고 본다. 도덕적 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 우리가 누구이며, 어떤 상황에 있는지, 그리고 타인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어떤 사람들은 도덕성이 자유나 정의 등 보편적 목적을 향해 직설적으로 발달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그들의 주장이 ‘친밀감과 보살핌이 자유나 정의만큼 중요함을 간과하고 있다.’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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