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결을 잊고 물을 경험하라
불법은 애써 공부할 것이 없다.
다만 평상(平常)하고 일 없으면 될 뿐이다.
똥누고 오줌누며, 옷 입고 밥 먹으며, 피곤하면 누워 쉰다.
어리석은 사람은 나를 비웃겠지만 지혜로운 자라면 알 것이다.
옛 사람이 말하기를,
"밖을 향하여 공부하는 자들은 모두가 어리석고 미련한
놈들이다"라고 하였다.
그대가 이르는 곳마다 주인이 되고 서 있는 그 자리가 모두
참이라면, 어떠한 경계가 다가와도 흔들리지 않으니,
비록 익혀온 습기(習氣)가 오무간업(五無間業)을 이루더라도
저절로 해탈의 큰바다가 된다.
똥누는 것은 무엇이며, 옷 입는 것은 무엇이며,
밥 먹는 것은 무엇이며, 누워서 쉬는 것은 무엇인가?
음식물이 소화되어 대장을 통과하여 항문을 통하여 나오는
것이 똥누는 것이며, 아랫도리와 윗도리에 팔다리를 끼워넣고
단추를 채우는 것이 옷 입는 것이며, 밥그릇의 밥을 숟가락에
떠서 입에 가져다 넣는 것이 밥 먹는 것이며, 방바닥에 등을
기대고 누워서 온몸에 힘을 빼고 편안히 있는 것이 누워서 쉬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것은 범부 중생의 뒤집어진 견해이다.
범부 중생의 견해가 뒤집어져 있다는 것은,
그 견해가 전부 모양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보이는 모양, 들리는 모양, 느껴지는 모양, 부딪히는 모양,
생각되는 모양을 따라서 의식(意識)하고 말하는 것이 바로 범부
중생의 견해이다.
왜냐하면 모양은 의식 위에서 순간 순간 생멸하며 스쳐 지나가는
현상으로서 확고부동하게 머물러 의지할 수가 없는 무상(無常)하고
허망(虛妄)한 것이기 때문이다.
순간 순간 스쳐지나가는 무상한 모양을 의식 위에서
허상(虛相)으로서 고정하여 집착하기 때문에 온갖 부조리와
번뇌가 생겨난다.
그러면 바른 견해는 어떤 것인가?
바른 견해에는 어떤 고정된 내용이 없다.
다만 순간 순간 나타나는 인연의 허망한 모양에 따라가지 않고,
그렇게 나타나는 인연이 무엇인지 저절로 알고 저절로 응하는
것이다.
비유컨대 모양있는 인연이 물결과 같다고 하면, 바른 견해는
물결의 허망한 모양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그저 일렁이는 물의
입장에서 인연따라 일렁이고 있을 뿐이다.
물결의 모양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면, 일렁이는 물은 곧
일렁이지 않는 것이다.
일렁이는 물결의 입장에서 보면 물도 일렁이는 것이지만,
물결을 떠난 물의 입장에서는 물은 그냥 물일 뿐 일렁임과는
상관이 없다.
즉 인연을 따라 일렁이는 모양으로 나타나는 물결에 매이지 않고
오직 물의 입장에서 있다면, 물결이 일렁이든 일렁이지 않든
물은 항상 그대로 물일 뿐으로서 아무런 변화가 없다.
그런데 물결이 일렁이지 않는다면 물결도 없지만 물의 존재를
알 수도 없다.
물결의 일렁임을 통하여 물의 존재도 알려지는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바로 지금 여기 의식(意識)에서 보이고 들리고 생각되고 경험
되는 것으로 나타나는 각각의 인연들도 그 모양을 따라서 본다면
모두 무상하게 변화하는 허망한 것들이다.
그러나 모양과 상관 없이 인연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의식의
움직임을 통하여 법성(法性)의 존재가 알려진다.
즉 법성의 체험은 의식의 움직임 속에서 미묘하게 이루어진다.
그런데 이 체험은 의식 위에서 알려지는 모양을 갖춘 알음알이
가 아니다.
이 체험은 물결의 표면에서 문득 물 속으로 잠입해 들어가 물결
을 잊고 물의 존재를 경험하듯이, 의식의 표면에서 문득 의식의
내면으로 잠입해 들어가 의식의 모양을 잊고 의식의 바탕인
법성을 경험하는 것이다.
- 임제 의현(臨濟 義玄) -
임제[臨濟 ? ~ 867 ]
* 중국 당나라 때의 선승(禪僧)으로 임제종의 개조(開祖).
* 속성은 형(邢)씨. 이름은 의현(義玄)
* 법호는 임제(臨濟)
* 시호는 혜조선사(慧照禪師)
* 출가후 황벽(黃檗)의 제자가 되어 황벽의 법맥을 이었다. 그가
창시한 임제종은 중국 선종 오가(五家)의 하나로 종풍을 크게 떨쳤다.
* [임제록]에서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立處皆眞):
어디서 든지 주인이 되면, 네가 서 있는 모두 진실이다>
그곳이 바로 불국토.
수처(隨處)는 조건과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환경,
작주(作主)는 인생의 주인공이 되어 주체적으로 살라는 사상과
불법을 공부하는 사람이 득도하는 방법을 밝히고 있다.
*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殺佛殺祖]
부모일지라고 죽이고[殺父殺母]친척 권속이라도 죽여라.
그래야만 해탈하여 무엇에도 구속받지 않고 자유로울수 있다.
@ 禪詩 [선시]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로다
是是非非都不關 [시시비비도부관] 옳다 그르다 따지지 말고
山山水水任自閑 [산산수수임자한] 산산 물물이 스스로 한가하네
莫問西天安養國 [막문서천안양국] 서방극락세계 어디냐고 묻지 말게
白雲斷處有靑山 [백운단처유청산] 흰구름 걷히면 그대로 청산인 것을.
* 산산수수임자한[山山水水任自閑]이라는 말은 수처작주 입처개진
[隨處作主入處皆眞]과 같은 뜻의 다른 표현으로, 머무는 곳, 가는 곳
마다 ‘내가 주인이고, 내가 잘났다’라고 주장하는 말이 아니라, 물과
같이 산과 같이 머무는 바 없이 머물라는 말이며, 흔적을 남기지 말라
는 말이다.세상이 변해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 변해가는 것
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涅槃頌 [열반송]
沿流不止問如何 [연유부지문여하] 어찌해야 도의 흐름 그치지 않게하리
眞照無邊說似他 [진조무변설사타] 진여 비춤 끝없음을 중생에게 설하네
離相離名如不稟 [이상이명여불품] 실상도 없고 천품이 없는 것을
吹毛用了急須磨 [취모용료급수마] 취모검도 쓰고 나선 급히 갈아주어야 하리
* 연유(沿流): 물을 따라 흘러가듯.
* 진여(眞如): 사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우주 만유의 본체인
평등하고 차별이 없는 절대의 진리를 이르는 말.
* 실상(實相): 실제 모양이나 상태. <불교>모든 것의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 진여실상(眞如實相):진여의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 동체이명으로서의
진여와 실상을 아울러 이르는 말.
* 여하(如何): 그 형편이나 정도가 어떠한가의 뜻을 나타내는 말.
* 천품(天稟): 타고난 기품(氣稟). 천성(天性).
* 취모검(吹毛劍): 날 위에 터럭을 얹고 입김으로 불어날리면 그것만으로도
잘릴 정도로 예리한 칼로, 모든 번뇌와 망상을 베어버리지만, 잘 못쓰면
자신도 베일 수 있음을 가슴속에 새기라는 뜻.
@ 無事是貴人 [무사시귀인] 있는 그대로가 귀하니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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