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조(四祖) 도신(道信, 580~651) 대사 이야기>
---간심법문(看心法問)과 수일불이(守一不移)---
중국 선종 제4조 도신(道信) 대사의 속성은 사마(司馬)씨이고, 태어난 곳은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심양현(沁陽縣)이다. 스님은 7살에 출가했다. 그러나 스승의 계행(戒行)이 단정하지 못해, 섬기기는 하나 미진함을 느끼던 중, 14세에 사미의 몸으로 당시 환공산(晥公山-지금의 天柱山)에 은거하고 있던 3조 승찬(僧璨, ?~606) 대사를 찾아가, 절하면서 말했다.
“무엇이 부처입니까?”
“그대는 지금 무슨 마음인가?”
“무심(無心)입니다.”
“그대가 무심이라면 부처님께서는 무슨 마음이었겠느냐?
“화상이시여, 자비를 베풀어 해탈하는 법문을 일러주소서.”
“누가 그대를 속박했다는 말인가?”
“아무도 속박한 이가 없습니다.”
“아무도 속박한 이가 없다면 그대는 이미 해탈한 사람이다. 어찌 다시 해탈을 구하려 하는가.”
도신은 이 한마디에 크게 깨달았으니, 이 같이 도신이 승찬 대사를 찾아와 나눈 대화가 ‘도신해탈법문-신심법문(信心法問)’으로 공안 중 하나로 채택되기도 했다.
이런 일이 있는 후 도신은 스승 승찬 대사가 환공산을 떠날 때까지 9년간 시봉했다. 승찬 대사는 이때 자주 현묘한 법으로 도신을 시험해보다가 인연이 익었음을 간파하고, 달마 스님으로부터 전해 내려온 의발(衣鉢)을 도신에게 건네줌으로써 도신은 중국 선종 제4조가 된 것이다.
승찬의 의발을 이어받은 뒤 도신은 양자강에 맞닿은 기주(蘄州) - 지금의 호북성(湖北省) 황매현(黃梅縣) 쌍봉산(雙峯山)으로 거처를 옮기고, 그 곳에서 30여 년간 주석하면서 중생교화에 힘썼는데, 대중의 수가 500여명에 이르렀고, 도신은 수행에도 철저해서, 이후 60년간을 눕지 않고 장좌불와(長坐不臥)했다고 한다.
도신이 쌍봉산에 터를 잡은 데에는 이에 관련된 일화가 흥미롭다. 새로운 절터를 찾던 도신에게 쌍봉산의 상서로운 기운은 감탄을 금하기 어려울 정도로 대단했다. 그리하여 며칠씩 금식을 하며 불경을 외우고 목어를 두드리니 이를 이상하게 여긴 한 노인이 다가와 그 사연을 물었다.
“스님, 왜 여기서 불경을 외우고 목어를 두드리십니까?”
“가사 한 벌 놓을 만한 땅에 절을 짓고 싶습니다.”
“가사 한 벌의 땅 정도쯤이야, 좋습니다. 내가 시주하겠습니다.”
도신이 던진 ‘가사 한 벌 덮을 땅’이라는 말에 놀랍게도 사방 십 리에 미치는 넓은 땅을 시주받게 됐다. 이렇게 해서 쌍봉산에 사조사(四祖寺)가 건립됐다.
그런데 도신이 법을 편 쌍봉산(雙峰山)과 같은 지역의 황매산(黃梅山)은 5조 홍인(弘忍)이 주석했던 곳이고, 6조 혜능(慧能)이 법을 받은 곳이기도 한데, 2조 혜가(慧可)가 주석했던 사공산(司空山), 3조 승찬(僧璨)이 주석했던 천주산(天柱山-환공산), 이들이 모두 서로 백여 리 간격을 두고 있는 곳이고, 이 지역에서 2, 3, 4, 5, 6조가 100여 년간 선을 중흥시킨 곳이라서 ‘선의 황금 삼각지’로 불린다.
그리고 현지에서 도신은 ‘서산(西山) 4조’ 스님으로 불린다. 스님이 주석했던 쌍봉산이 황매산 서쪽에 있기 때문이다. 5조 홍인(弘忍)은 황매산 동쪽에 주석했다 해서 ‘동산(東山) 스님’으로 불린다.
도신이 쌍봉산에 터를 잡았을 당시는 잦은 전란으로 인심이 황폐해진 수(隋)나라 말엽으로 500여명의 수도자가 한 스승의 문하에서 수행생활을 했다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신 대사는 당시 훼불과 전란으로 그 명맥이 쇠약해진 선종 교단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은 인물이었다 할 수 있다.
그리하여 도신 대사는 쌍봉산 자락에 사조사를 짓고 농토를 개간해 농사를 짓고 불법을 전파해 크게 선종의 문을 열었는데, 대사는 참선과 노동은 하나라는 선농일여(禪農一如), 선논일치(禪農一致)를 주장했다. 요즘 말로 하면 생활선(生活禪)을 했다는 말이다.
그리하여 선사는 몸소 농사와 참선을 병행하는 농선쌍수(農禪雙修)를 실천하기 위해 탁발에 의존하던 종래의 공양방식을 지양하고 사조사 주변의 농토를 개량해 자급자족하는 선풍을 확립했다.
그렇게 해서 스님들의 건전한 정신과 신체를 단련시켰고, 관(官)의 도움이나 백성들의 시주 없이 대중 살림이 가능해졌다.
대사는 한 승려가 먹을거리를 얻어 평생 굶주림을 면하려면 좌선을 근본으로 수행하되 15년은 노동을 병행해야만 된다고 했으며, 이는 훗날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말라’고 한 백장(百丈懷海, 720~814) 선사의 가르침[백장청규(百丈淸規)]보다 백년이나 앞선 선지식의 지혜였다.
그리고 수(隋)의 대업(大業) 13년 때의 일이다. 무리를 이끌고 길주(吉州)로 가는 길에 도적 때를 만났는데 성을 둘러싸고 79일을 풀지 않으니, 성내의 우물마저 모두 말라버려서, 성안 백성들이 모두 죽게 될 지경에 이르렀다.
대중이 모두 겁에 질리니 대사가 가엾게 여겨 ‘마하반야바라밀’을 외우게 했다,
이때 도적들이 누망 위를 바라보니 신병(神兵)이 서있는 것이 보이므로 서로 말하기를 이 성안에 반드시 이상한 사람이 있으니 공격 하지 말자고 하고, 겁이 나서 슬금슬금 도망쳐 버렸다. 그 뿐 아니라 그때까지 말라있던 성안의 우물에서 다시 물이 솟아 넘쳤다고 한다. 이 일화를 통해서 우리는 도신의 법력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도신은 중국 선종교단을 형성 체계화함으로써 중국 선종의 실질적 창시자로 여겨지는 선승이다.
도신의 선법인 염불선(念佛禪)은 초기불교의 염불관을 계승 발전시킨 형태로서 부처님의 존재를 우주원리이자 생명의 근본인 법신불(法身佛) 관점에서 인식하고 닦는 수행법이었다.
그리하여 청화(淸華, 1924~2003) 스님은 염불선의 효시를 제4조 도신이라 진단했다.
도신의 선사상은 그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은 신라 승 법랑(法朗, 632~?)에 의해 한반도로 전해졌다. 법랑은 사조(四祖)로부터 깨달음을 인가 받고 신라에 돌아와 처음으로 한반도에 달마 선(達磨禪)을 전했다. 신라 말 구산선문 중 유일하게 희양산문 봉암사는 바로 사조의 법을 이은 법랑의 법맥인 지증(智證, 824~882) 국사에 의해 881년에 창건됐다.
그런데 도신 선사의 출가에는 또 다른 일화가 전한다.
삼조 승찬(僧璨) 대사는 늘 산중에서 수행정진하면서 법을 전하려 기다렸다.
그 때 하루는 나이가 80여세나 돼 보이는 노인이 찾아와서 삼조께 절하며,
“큰스님께 출가해 불법을 깨닫고 싶으니 받아 주십시오. 저가 스님의 법을 잇겠습니다.” 하는 것이다.
이름이 재송(裁松)이라는 이 노인은 신선공부를 하던 분이었는데, 승찬 대사의 저서 <신심명(信心銘)>을 읽다가 발심해 승려가 되기 위해 승찬 대사를 찾아와 출가의 뜻을 밝힌 것이다.
이에 승찬 대사께서 말했다.
“당신이 법을 받을 수 있나 한 번 일러보라.” 하니, 노인이 말했다.
“쥐가 고양이 밥을 먹었습니다.”
삼조께서 “다시 한 번 일러보라.” 하니,
“밥그릇이 이미 깨졌습니다.” 했다.
그만하면 법기(法器)로서 손색이 없어 보이나 나이가 너무 많았다. 그래서 승찬 대사가 말했다.
“그대의 생각은 가상하나, 나이가 그토록 많은데 언제 삼장을 배우고 불법을 닦아 불은에 보답하겠는가, 신선공부가 장한 것 같으니 몸을 바꾸어 젊은 몸으로 다시 오라.“고 했다.
이에 노인은 “몸을 바꾸어 다시 오겠습니다.” 하고, 일어나 걸망지고 하산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산자락에 신표로 소나무 한 그루를 심어 놓고 내려갔다.
그래서 재송 도인이 마을에 들어서니, 때마침 우물가에서 물 깃는 처녀가 있어 말했다.
“낭자! 소청 하나 들어주시오. 해가 저문 노인이 잘 곳이 없구려.“ 하자,
“그러시다면 동네 가운데 큰 기와집이 저의 집이니 그리로 오십시오. 아버님께 말씀드려 놓겠습니다.“ 했다.
노인은 고맙다고 하더니, 그 자리에 선 자세 그대로 목숨을 거두고 마는 것이었다. 처녀는 집으로 돌아와 아버님에게 자초지종을 말씀드리자 사람들을 동원해 그 노인을 장사지내 주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있은 뒤 처녀의 배가 불러오기 시작해 집안이 온통 난리가 났다. 처녀는 모진 목숨 끊지도 못하고 급기야는 만삭이 돼 10개월 후에 남자 아이를 낳게 됐다. 부모는 가문의 수치라며 몰래 아이를 이불에 싸서 흐르는 물에 떠내려 보냈다.
그러나 처녀는 모성애가 있어 이튼 날 개울가에 가보니 아이가 계천가로 밀려와 죽지 않고 손발을 움직이며 칭얼대고 있었다. 그래서 산 생명을 버릴 수 없어 데리다가 길렀더니 잘 생기고 영특해 14세가 되던 해 어느 날,
“어머님 저는 굳게 약속한 분이 있어 승려가 돼야 하오니 허락해 주소서“
의젓하고도 당당하며 투철하고도 명백한 의사표시를 하는 것이다. 올 것이 또 온 것이라, 어미도 아무 말 못하고 끄덕이니, 소년은 어머니의 승낙을 얻자 절을 하고 곧장 삼조 대사를 찾아 나섰다. 그리하여 산으로 가는데 산 입구에서 한 그루 소나무를 보는 순간 전생사가 기억나서 다음과 같이 한시를 지어 노래 불렀다.
삼삼백발하청산(參參白髮下靑山) - 삼삼한 백발이 청산에서 내려와
팔십년내 환구언(八十年來換舊顔) - 팔십년 내의 옛 얼굴을 바꾸었도다.
인간소년송자노(人間少年松自老) - 사람은 소년이 되고, 나무는 늙었으니
시지종차환인간(始知從此還人間) - 비로소 인간 세상에 다시 온 것을 알겠구나.
이런 노래를 부르면서 산으로 올라가던 중 절에서 내려오시던 승찬 대사와 마주치게 됐다.
“어디서 오는 소년인가? 하고 대사가 묻자,
“주처(住處)가 없이 오는 아이옵니다.”
“성은 뭐고 이름은 뭔가?”
“성은 불성(佛性)이고, 이름은 불명(佛名)입니다” 하자,
“요놈 이상한 말만 하는구나 그런 말은 어디서 배웠느냐?”
“예, 바로 스님한테 배웠습니다.” 그러면서 재송이 “약속한대로 몸을 바꿔 다시 왔습니다." 하고 말씀드리자,
“그렇다면 14년 전에 찾아왔던 신선 공부를 한다던 재송이란 늙은이인가? “
“예 소동의 전생 이름이 재송이었습니다. 이제 스님께서 약속하셨던 대로 받아 주십시오.“
이 말을 들은 승찬 대사는 두말 않고 법당으로 대려가 머리를 깎고 계를 주어 제자로 삼아 도를 깨닫게 했으니, 이 분이 바로 4조 도신(道信, 580~651)이다.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 아니면 뛰어난 선지식이어서 그런 일화가 생겨난 것인지 알 수 없어나 위인에 걸맞은 일화라 하겠다. 그런 도신(道信) 대사의 선사상(禪思想)을 검토해보자.
• 간심법문(看心法問)
간심법문(看心法問)은 도신 대사가 편 법문이다.
간심(看心)이란 마음을 조용히 살피는 것을 말한다. 이때 살핀다는 것은 단지 ‘본다’는 것이 아니라, 본래 허공과 같이 넓고 끝없는 청정한 마음으로 공적(空寂)한 경계를 보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자ㆍ타(自他)와 범ㆍ성(凡聖), 그리고 염ㆍ정(染淨)의 분별이 없는 절대 평등의 마음으로 보는 것이다.
그리하여 간심법문에서는 마음의 본체를 알고, 마음의 작용을 안 다음, 마음이 항상 깨어 있도록 하며, 신체가 공적(空寂)함을 관찰하면서, 하나를 지켜 흔들림이 없게 한다면 마음의 실체를 볼 수 있다는 법문이다.
그리고 좌선간심(坐禪看心)이란 좌선을 해서 마음을 본다는 말이다.
처음 좌선 간심을 닦을 때에는 홀로 한 곳에 앉아 먼저 몸을 단정히 정좌하고, 옷과 허리띠를 느슨하게 풀고 나서 몸을 이리저리 풀며 스스로 안마를 7~8번 해서 뱃속의 탁기를 모두 토해내면 신심이 물 흐르듯 해 본연의 성품을 얻게 되고, 청허하고 편안하며 고요하게 된다.
몸과 마음이 조화를 이루어 편안해지면 능히 마음을 안정케 하니 그윽하고 유현(幽玄)해 기식(氣息)이 청랭해지며 서서히 마음이 거두어지고, 정신이 맑고 예리하게 되며, 심지(心地)가 밝고 깨끗해진다.
관찰함이 분명해지고 내외가 고요해지면 곧 심성이 적멸이라, 그와 같이 적멸해지면 성심(聖心: 佛心)이 드러난다. 심성은 비록 형상이 없으나 지절(志節-지조와 절개)은 항상 있다.
그리하여 유현하고 신령스러움이 다하지 아니하고 항상 있어 저절로 밝으니 이를 이름 하여 불성(佛性)이라 한다. 불성을 본 자는 영원히 생사를 떠나니 이름 하여 출세한 사람이라 한다.
도신 대사는 초심자가 좌선으로 마음을 보게 하는 수행(坐禪看心)을 할 때에 먼저 천태종 좌선의(坐禪儀)에서 설하고 있는 ‘조심(調心), 조신(調身), 조식(調息)’의 방법을 사용하라고 가르친다.
이른바 조신, 조식, 조심이란 몸의 조화, 호흡의 조화, 마음의 조화를 말하는 것인데, 이 세 가지의 조화가 좌선수행의 기본이 되는 것이다.
좌선(坐禪)하여 간심(看心)함으로써 불성(佛性)을 본다는 이 글은 도신의 수인증관(修因證觀)을 말하는 것이다.
※중국 수나라 시대 천태 지의(天台智顗, 538-597) 대사는 선 수행에 들어가기 전에 미리 읽어보고 실천해야 할 항목을 크게 5가지 제시했다. 그 다섯 가지 항목 중 하나가 조오사(調五事)로서 식(食) ․ 면(眠) ․ 신(身) ․ 식(息) ․ 심(心)을 잘 조절하라는 말인데, 이것을 조심(調心), 조신(調身), 조식(調息), 조면(調眠), 조식(調食)으로 표현한다.
① 조심(調心)이란 마음을 컨트롤 하는 것. 마음이 조급해 들뜨지 않게 조절하고 잡념을 없애고, 심신을 고르게 하는 것이다.
② 조신(調身)은 몸을 조화롭게 함을 말한다. 몸을 편안하고 고요히 유지하는 것이다. 선정에 들지 않은 때라도 걷거나 머물거나 나아가거나 멈출 때를 자세히 살펴야 한다. 만일 하는 일이 거칠면 호흡도 따라서 거칠어지고 호흡이 거칠면 마음이 산란해 단속하기 어려워서 좌선할 때에 이르러서도 편안하지 못하다.
③ 조식(調息)은 불교의 호흡법을 말한다. 좌선하는 데는 반드시 좌선의 기초법을 따라야 한다. 그렇지 아니할 때 상기(上氣), 및 기타 신체상의 장애가 생겨 공부에 지장을 받을 때가 많다. 불교의 호흡법은 자연 호흡법이다. 인위적으로 단전호흡을 하려고 몸에 힘을 줘가면서 애쓸 필요가 없고, 일부러 숨을 길게 쉬려고 숨을 참거나 멈출 필요가 없다.
※수인증과(修因證果)---수인증과는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으로 일정 기간 동안 어떤 정해진 과정을 실천한다는 의미이다. 일종의 깨달음을 성취하는 점수법(漸修法)으로서 그 구체적인 수행법은 좌선간심(坐禪看心)이다.
그런데 요즈음 선수행자들은 이러한 기초적 단련이 없이 바로 화두를 들어 참구하는 간화선으로 바로 들어감으로 해서 부작용 또한 많다고 한다.
호흡을 떠난 몸이 있을 수 없고, 몸을 여읜 마음이 없으니, 몸과 마음, 그리고 호흡이 조화를 이루어야 올바른 좌선을 수행할 수 있고, 좌선 수행을 통해서 마음을 바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좌선간심하려는 초학자는 반드시 좌선의 기본인 조신, 조식, 조심의 도리를 알고 행해야 조도(助道)를 바로 세우는 길이 된다. 조도를 잘 행한 연후에야 마음의 성품이 적멸함을 깨달아 영원히 생사해탈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진정한 수행자는 좌선간심하는 자요, 진실로 출세한 사람은 생사해탈한 자유인이다. 세간에서는 부와 명예를 이룬 이를 출세한 사람이라 하지만, 출세간에서는 견성 해탈한 이를 출세한 사람이라 한다.
• 수일불이(守一不移)
‘수일불이(守一不移)’란 지킬 수(守), 하나 일(一), 아니 불(不), 옮길 이(移), 그래서 하나를 지켜서 옮겨가지 않는다. 하나를 지켜서 절대 흔들림이 없다. 이런 말이다.
“수일불이(守一不移)라는 것은 훤하고 깨끗한 눈으로 정신을 가다듬어 한 물건을 들여다보고 밤낮의 구별 없이, 힘닿는 데까지 노력해 언제고 움직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대 마음이 흐트러질 듯할 때는 지체 없이 다시 가다듬어서 마치 새의 발을 묶어놓고 날아가려 하면 도로 잡아당기고 또 날아가려 하면 도로 제자리로 잡아당기듯이 온종일 지켜보기를 그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은 사라지고 저절로 마음이 안정될 것이다.”라고 했다.
결국 도신 대사의 선사상은 ‘수일불이(守一不移)’ 한 마디로 집약된다 하겠다.
그리하여 중국 선종사에서 도신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다대하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수일불이’의 구체적인 실천법이 좌선행이고, 이것이 뒤에는 화두로 바뀐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좌선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항목들을 제시함을 통해서, 불교 본래의 가치인 수행력을 회복하게 했다는 점과, 이를 통해서 선종이 비로소 중국화 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두 가지 점을 특별하게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기도를 하거나 참선을 하거나 할 때는 그 하나를 지켜야 된다.
그리하여 정신을 가다듬어서 밤낮으로 노력해 마음을 흐트러지지 않게 하는 것이 수일불이(守一不移)이다.
하나를 지켜서 흔들림 없이 나아가라, 온종일 끊임없이 관하면 고요하여 마음이 스스로 정(定)에 들게 된다. 그렇게 해서 안정(安定)을 얻어야 한다는 말이다.
<유마경>에서는, ‘마음을 거둬들이는 섭심(攝心)이 도량이다.’ 라고 했다. 이것이 마음을 거두어들이는 섭심법(攝心法)이다.
이와 같이 4조 도신 대사의 가르침 가운데 정수는 하나를 지켜 움직임이 없는 수일불이(守一不移)이며, 이는 곧 중생과 제불이 둘이 아닌 중도일미(中道一味 : 中道佛性)를 잘 지켜서 움직임이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동정 가운데 한결같아(動靜一如) 능히 수행자로 하여금 불성을 밝게 보려고 빨리 선정에 들게 하기 위해서는 수일불이의 좌선관심을 닦으라고 했다.
그 이유를 <관무량수경>의 ‘시심시불(是心是佛), 시심작불(是心作佛)’의 법문을 인용해 설명하고 있다.
“모든 부처님의 법신이 모든 중생의 심상(心想: 마음)에 들어가니, 이 마음이 부처요(是心是佛), 이 마음이 부처를 만든다(是心作佛).” 했으니,
마땅히 부처가 마음이라, 마음 밖에 따로 부처가 없음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 마음이 부처요, 이 마음이 부처를 짓기 때문에 이 마음을 떠나서는 부처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이 마음을 모아 선정을 통해 해탈하는 것이다.
그리고 수일불이의 수증방법론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바로 “밤낮으로 간단없이 이어가며”와 “온종일 끊임없이 관하면”에 등장하는 ‘간단없이’, ‘끊임없이’라는 말이다.
이러한 수일불이(守一不移)를 다른 말로 일행삼매(一行三昧)라고도 한다. 그리하여 도신 대사의 선법 특징을 나타내는 말에는 수일불이(守一不移)와 간심(看心), 섭심(攝心), 일행삼매(一行三昧) 등이 있다.
일행삼매(一行三昧) 역시 4조 도신 대사에 의해 중시됐는데, 좌선만이 선의 능사가 아니라 모든 활동영역에서 선이 실천되는 경우를 두고 한 말이다.
당시 많은 수행자들이 집단생활을 하면서 신도의 보시만으로는 교단을 유지할 수 없어 자급자족의 경제체제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경작과 잡역에 종사하면서 불법의 대의를 얻으려 했고, 거기서 선을 체험적, 정신적으로 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입장은 마침내 선을 출가자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개방해 일상생활에 전개시키는 계기가 됐으며, 집단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선원 생활의 규범인 청규(淸規)를 형성하려는 기운이 나타나게 됐다.
일행삼매(一行三昧)란 어느 곳에서나 행주좌와(行住坐臥)에 항상 한결같은 곧은 마음을 행하는 것이다. 즉, 일행삼매(一行三昧)란 가고 멈추고 앉고 눕고 간에 항상 곧은 마음을 쓰는 일이다.
도신 대사의 ‘수일불이’의 법문은 뒷날 그의 제자인 5조 홍인(弘忍)에 계승돼서 수본진심(守本眞心)의 사상으로 전개됐다.
------------------------------------------------------------------------------------성불하십시오. 작성자 아미산(이덕호)
※이 글을 작성함에 많은 분들의 글을 참조하고 인용했음을 밝혀둡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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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사조(四祖) 도신(道信, 580~651) 대사 이야기>|작성자 아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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