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간에 부처는 한놈도 없다"
신흥사 조실 설악무산 스님 동안거 해제 법문
2012년 02월 06일 (월) 11:50:28 | 조동섭 기자 cetana@gmail.com |
“대장경 속에서 부처님이 어떻다더냐. 그것을 버리는 날이 해제 날이다. 절간은 스님들 숙소이지, 절간에 부처는 한놈도 없다. 삶의 스승이 내 주위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내가 늘상 만나는 사람들이 나의 스승이고 선지식이다. 그들의 삶이 살아있는 팔만대장경이다.”
법상에 오른 무산 스님은 “내가 박근혜ㆍ안철수 등 대통령 후보도 아닌데 오늘 왜 이렇게 기자선생들이 많이 왔느냐. 기자들이 이렇게 많이 올 줄 알았다면 시국선언이라도 해야 했다”며 법문을 시작했다.
스님은 “해제법문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해야 한다. 세상을 놀라게 하는 것이 기쁘게 하는 것인데, 내 이야기는 노망난 늙은이 말이라고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이 없다”라고 말했다.
무산 스님은 “요즘은 방송 신문 인터넷 등 미디어마다 저마다 진리라고 떠들어 진리가 시끄러운 소리가 됐다. 그래서 명상하는 사람들은 설법을 듣기보다 새 울음이나 바위 밑 물소리, 해조음을 듣고 싶어 한다. 그래서 십 수년 전부터 해제법어는 종정법어를 대신 읽어왔다”고 말했다.
무산 스님은 “80 노인의 소리를 누가 듣고 싶어 하겠는가? 내가 했던 이야기를 또 한다고 나보고 노망이 났다는데 그래도 오늘은 노망난 이야기를 좀 하려고 한다. 오늘 법문은 법문이 아니다. 노망난 늙은이의 이야기이다”라고 말했다.
스님은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하는 이유는 80 평생을 절간에 앉아 불경 밖에 배운 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똑같은 것을 반복해 배웠으니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겠냐는 말이다.
#“스님, 살아가는 의미가 뭡니까?
무산 스님은 한 스님이 포교당을 개원법회라고 불러 가기 싫은 것을 억지로 간 일이 있다며 한 노파와의 대화를 소개했다.
“한 늙은 할망구가 다가와 내 손을 꼭 잡더니 나를 빼꼼빼꼼 쳐다보더라. 그러더니 ‘스님은 늙지도 죽지도 않는 줄 알았는데, 스님도 파삭파삭 늙었네요. 그건 그렇고 우리 사는 의미가 뭡니까? 어떻게 하면 잘사는 겁니까?’라고 물었다.”
스님은 그 질문 끝에 바로 말문이 막혔다고 회고 했다.
“80년을 살면서도 어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인지 나는 몰랐다. 여러분은 그 의미를 아는가?” (좌중이 고요했다.)
무산 스님은 “여러분도 모르니 얼마나 다행인가. 아는 이가 한사람이라도 있었다면 나는 쫓겨날 뻔 했다”라고 말했다.
스님은 “무문관서 개구멍으로 밥 한술 넣어주는 것만으로 3개월 징역살이를 하거나, 40~50이 선원 큰방서 매일 같은 반찬을 먹으며 불편을 감수하고 지내는 이유가 여기 있다. 돈ㆍ명예도 아니고 어떻게 하면 잘 사는 것인지를 구하려 앉아있던 것이다”라고 말했다.
무산 스님은 “오늘이 해제인데, 해제는 해방이 아니다. 산중에 가부좌 틀고 앉아있던 것보다 더 큰 고행이 기다리는 것이 해제이다”라며 “해제하면 53선지식 친견을 위해 길을 나섰던 선재동자처럼 여러분도 산문을 나가 선지식을 찾아가야 한다. 선지식에게서 내 공부가 제대로 됐는지 점검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산 스님은 “나도 젊었을 때는 선지식이 명산대찰, 천년고찰, 산중 수행처, 백운 유수처에 있는 줄 알았다. 공자는 ‘50세면 안다(知天命)’고 했는데 나는 50세 까지도 몰랐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보니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라고 말을 이어갔다.
스님은 “(80의) 내가 보는 세상과 (젊은) 여러분이 보는 세상은 다르다. 나는 대학도 안나왔고, 운전도 못한다. 여러분이 나보다 더 잘하는 게 많다. 나는 할 줄 모르는 것이 많지만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세계가 있다는 것만은 안다. 여러분도 자신이 아는 세계 보다 모르는 세계가 무진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산 스님은 우연한 기회에 삶의 스승이 내 주변에 있었음을 알았다고 했다.
“50~60대 우연히 깨달았다. 내 주변에 있던 내게 밥해주던 공양주보살, 군불 때주던 부목처사가 선지식이었다. 산문을 나서서는 주막의 주모가 선지식이었고 어부 대장장이, 서울시청앞 노숙자가 내 삶의 선지식이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내 스승이었다. 그들의 삶이 경전이고 팔만대장경이었다.”
#“지옥ㆍ극락이 있기는 합니까?”
스님은 예전에 만난 늙은 염장이와의 대화로 법문을 이어갔다. 스님은 “그 염장이영감은 시신을 자기 마누라 다루듯 소중히 염을 했다. 마지막 관뚜껑을 덮을 때까지 정성을 다하는 모습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부부가 같이 살을 맞대고 살다가도 죽으면 무섭다며 곁에도 안가는데 저 염장이는 어찌 저럴 수 있는가 궁금해서 염장이영감에게 물어봤다. 얼마나 염을 했냐고 물으니 40년 했다고 답했다. 다른 사람들도 이처럼 정성을 들여 하느냐고 물었다.”
염장이영감은 스님의 질문에 “산사람은 남녀노소 등 구별이 있지만 죽은 사람은 남녀노소ㆍ지위고하 구분 없이 시비가 끊어진다. 산사람이 무섭지 죽은사람은 하나도 무섭지 않다. 시신을 보면 마치 내 자신의 지신을 보는 것 같다”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스님에게 되묻기를,
“스님들이 죽은 사람에게 먼 곳에 불국토가 있다며 그 곳에 나라고 기도하던데 참말로 지옥ㆍ극락이 있습니까?”
무산 스님은 “염장이영감의 질문 끝에 동서남북 사방이 캄캄했다”고 말했다. 스님은 “그동안 법문하면서 10만억 유순 떨어진 저 멀리 극락정토가 있다고도 했고, 마음이 극락이라고도 했다. 그 질문에는 멍하니 은산철벽에 갇힌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염장이영감은 스님에게 시신을 보면 세상을 후덕하게 살았는지, 남에게 못할 짓을 하며 살았는지,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죽었는지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는 “잘 살다 죽은 시신은 대충 염해도 마음에 걸림이 없다. 잘 살지 못했던 시신과 대화해보면 ‘남들처럼 내 가족 호강시켜 주려고 했다. 다른사람 자꾸 울리면 내 울화통 터져 극락못갑니다’라고 하더라. 그러니 내 자신ㆍ엄마ㆍ형제ㆍ친구 같은 그들에게 정성을 쏟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설명했다.
염장이영감은 “나는 내 마음이 편하려고 최선을 다해 그들을 염을 해왔는데 스님 눈에는 시신에게 정성을 다하는 것처럼 보였다니 부끄럽다. 나는 아직도 멀었다”라고 말했다.
무산 스님은 “‘나는 아직도 멀었습니다’라는 염장이영감의 말에 내가 더 부끄러웠다. 염장이영감이 선지식이고 그의 이야기가 대장경이다. 생노병사ㆍ제행무상ㆍ화엄ㆍ법화ㆍ조사문답과 어록 등이 모두 염장이영감의 말 속에 들어 있었다”라고 말했다.
#“골동품 아닌 살아있는 경전을 찾아라”
무산 스님은 “해인사 팔만대장경은 골동품일 뿐이다. 좋게 말해야 문화재이다. 대장경 속에 억만 창생이 빠져 죽었다. 그 속에서는 건질 것이 없다. 건져도 건져내도 견져지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2500년 불교사에서 대장경을 읽고 그 속에 빠져 죽은 중생이 얼마나 많은가. 이것이 진리이다. 대장경에서는 부처님이 어떻고, 어떻고…. 도대체 부처님이 어떻다는 것이냐. 이것을 버리는 날이 해제날이다.”
스님은 “법회가 끝나면 여러분은 선지식을 찾아 나선다. 세상 속 중생의 삶 속으로 들어가 선지식을 찾고 가르침을 구하라. 사람들이 살아온 이야기와 살아가고자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세상 속에서 문수의 지혜를 배우고 보현의 행원을 배워야한다”고 강조했다.
무산 스님은 당장 스님들과 가까이 있는 공양주보살ㆍ부목처사부터 선지식 대하듯 하라고 했다.
“절간에 부처가 있나? 절간은 스님들 숙소이지 부처는 한 놈도 없다. 여러분이 못하는 일을 공양주가 하고, 처사가 한다. 그들을 선지식으로 받들어 모셔라. 여러분이 하지 못하는 하찮은 일을 하는 그들이 문수고 보현이야.”
스님은 “전강 스님은 30대에 깨달음을 얻었다. 경허 스님은 한 철 만에 깨달았고, 만해는 선방에 들어가지도 않고 깨달았다.
그런데 여러분은 왜 천 년 전 중국의 육조ㆍ조주ㆍ백장ㆍ남전 등 할 일 없는 늙은이들의 넋두리에 코가 꿰어 사는가?”라고 물었다.
무산 스님은 “‘차나 한잔 들고 가게나(喫茶去)’를 비롯해 법이 있느냐,
개에게 불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무(無)’라고 답한 것 모두 조주 늙은이가 친 그물이다.
삼처전심 분반좌 어쩌고 하는데 지금은 초고속인터넷 세상이고, 스마트폰을 쓰는 시대다. 자신을 옭죈 고삐를 풀고 대자유인이 되라”고 말했다.
#“더 솔직하게 진정성 키워라”
스님은 수행자의 덕목으로 대신심(大信心) 대의정(大疑情) 대분심(大憤心)을 강조했다.
대신심은 선방에서 안거를 나고, 수행자로 평생을 살려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지 않고서는 어렵다는 말이다. 그리고 화두 등에 투철한 의심을 해야 하고, 남이 아닌 수행에 진척이 없는 자신에 분노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산 스님은 “80을 산 나는 잘못 살아왔다. 일찍이 사람을 믿고 스승 밑에서 바르게 공부했어야 했는데, 어려서부터 의심이 많아 사람을 못 믿는데다가 게으름이 있어 여지껏 나는 살아가는 이유를 모른다”라고 말했다.
스님은 “바른 사람이 삿된 법을 설하면 삿된 법도 정법처럼 되고, 삿된 사람이 정법을 설하면 정법은 모두 삿된 법이 된다(正人說邪法 邪法悉歸正 邪人說正法 正法悉歸邪)”는 <금강경오가해> 중 야부송을 소개하며, “좀 더 솔직하게 진정성을 갖고 수행하라”고 강조했다.
무산 스님은 “로케트도 달나라에 가려면 3단씩 로켓을 분리한다. 출가자라면 우선 육신을 벗어나는 출가를 해야 하고 이어 오온(五蘊)과 법계를 벗어나는 출가를 해야한다. 끝내는 깨달음까지도 벗어버려야 대자유인이 된다”라고 말했다.
“신흥사 석축을 쌓은 것은 석수장이이고, 법당을 지은 것은 목수장이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돌담을 누가 쌓았냐’고 물으면 ‘무산이가 쌓았다’라고 하고, ‘법당을 누가 지었냐’라는 물음에는 ‘무산이가 지었다’라고 답한다. 무산이로서는 부끄러운 일이다. 진실이 뭔가. 제대로 봐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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