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심명 (대승찬 풀이글)

신심명9/유연에 쫓지도 말고 공인에 머물지도 말라

수선님 2023. 3. 5. 12:38

09 막축유연(莫逐有緣) 물주공인(勿住空忍) : 유연에 쫓지도 말고 공인에 머물지도 말라.

그러나 우리들이 살아감에 있어서는 연이 있어야 현상을 유지하기도 하고, 어려움을 극복하기도 하며, 새로운 미래를 개척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연이 있는 것은 우리들의 삶을 위해 필수적인 조건인데도 연을 쫓지 말라고 한 것은, 연이 사리에 어긋나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도덕 불감증이 있는 사람이 연을 쫓는 것을 경계하라는 말이다.

이와같이 유연이 갖는 의미를 생각해 볼 때, 신심명에서 연을 쫓지 말라는 말은 자기 개인의 이익을 위해 연을 쫓는 마음은 남에게 해를 끼칠 가능성이 높아 악업을 지을까 두려워 연을 추구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말고, 되도록이면 모든 사람들이 같이 즐길 수 있는 연을 추구하라는 말로 해석된다.

공인에 머물지 말라는 말은 공에 의지하거나 공에서 무엇을 바라지도 말라는 말이다.

앞 구에서 막축유연, 즉 있는 연을 쫓지 말라고 했으니 연을 쫓지 않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지 않은가?

그리고 또 어차피 모든 것은 항상 존재하는 것도 아니요 연이 다하면 없어지는 것인데 무엇에 연연할 것이 있고 할 일이 있는가?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지 않은가?

또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일어나면 그 생각을 참아서 공에 빠지게 하는 것, 즉 단공에 빠지는 것이 진리에 부합하는가 하는 문제가 생긴다.

반야심경에서도 오온이 공하였다고 하고, 안이비설신의도 없고 색성향미촉법도 없다고 했으니, 과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냐? 라고 하는 질문이 나올 수 있다.

이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고 마음을 먹는 것이 공에 머무는 것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생각이 일어날 때, 그 일어나는 생각조차 꾹 참아 공에 머물게 하는 것이 공인이다.

이러한 공인에 빠지게 되면 허무주의에 빠져서 살 의욕마저 잃게 되는 현상이 있을 수 있으므로 공인에 머물지 말라고 한 것이다. 이것은 불교의 공 사상과 제법무아 법문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한데서 오는 오류를 막기 위한 말이다.

앞에서 유연을 쫓지 말라고 한 것은 사람이 어떤 물건이나 사람에 의지하거나 바라는 것이 있게 되면 그들의 변역 변하여 바꿈에 무지해지고 또 자신의 변이에도 무지해지기 쉬우므로 자기 발전에 장애가 된다.

부모에게 의지하는 마음을 비우게 하고 자신의 발전을 도모하게 하기 위해 부모도 공하였다는 뜻으로 반야심경에서 무색성향미촉법이라 하고, 자신도 공하였다는 뜻으로 무안이비설신의라 하였으니 오온이 공하였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부모를 의지하지도 말고, 자신의 욕망을 의지하지도 말고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라고 했다. 이때, 반야바라밀다는 유식에서 말하는 아뢰야식의 체이고 불생불멸하는 본래의 모습이다.

연을 따르되 때 묻은 마음으로 대하지 말고 깨끗한 마음으로 대하라는 것이 공 도리이다. 즉 공하게 하라는 말은 자신을 공하게 하라는 뜻이 아니라 자신이 알게 모르게 가지고 있는 때를 공하게 하라, 즉 없애버리라는 말로 해석하면 공인에도 머물지 말라는 말씀이 이해될 것이다.

막축유연

물주공인

유연도 좇지 말고

공인에도 머물지 말라.

‘유 ’, 즉 존재하는 것은 전부 인연의 소치에 걸려 있습니다.

공 은 보이지 않습니다.

정말 확고함에도 불구하고 안 보입니다.

그래서 참을 인자를 붙여 놨습니다.

지극히 좋아하는데 좋아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또 지극히 싫어하는데 싫어하는 것도 안 보이지요.

죽을 정도로 고통스러운데 고통스러운 것도 눈에 안보여요.

이것이 인의 뜻입니다. 공의 속성이 그와 같습니다.

공의 됨됨이를 설명하는 것이 인입니다.

그래서 공인 입니다.

유에도 좇아가지 말고 공에도 머물지 말라고 했습니다.

 

유와 공 어느 한쪽에 치우쳐 꺼들리다 보면 끝이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마음을 놓을 수 있나?”

 

이렇게 되야지 하는 마음을 놓고, 저러면 안 되지 하는 마음을 놓고, 이러면 어쩌지 하는 마음을 놓고, 저러면 어쩌지 하는 마음도 놓고, 방하착.

 

막축유연, 인연을 쫓아 가지도 말고, 물주공인, 빈 마음에도 머물지 말라.

 

여기서 말하는 인연이란 유위의 존재를 말하는 것으로서, 즉, 분별심을 의미한다. 분별심에 대해서는 누차 설명했듯이, 이것이 생기면 저것이 동시에 생기게 되는 것이므로, 취할 것이 생기면 버릴 것도 생긴다는 취사분별을 말한다.

 

그러니 태어남은 곧 죽음이 생기게 되고, 즐거움이 생기면 괴로움도 같이 생기는 것이므로, 하나를 경험하면 정반대의 다른 하나도 경험하게 되는 것을 분별 인과라 한다. 따라서 좋은 것을 얻으려 하지 않아야 좋지 않은 것도 생기지 않게 된다는 것이니, 이를 중도라 이름하고, 불자는 자고로 분별심을 떠나 중도를 지향해야 한다.

 

물주공인 즉, 빈 마음에도 머물지 말라는 뜻이니, 이 또한 막축유연과 같은 의미이다. 공이란 비어서 걸림이 없다는 뜻으로, 중도심과 같은 분별없는 상태를 말한다. 그러나 비었다는 것이 생기는 동시에, 비지 않았다는 것 또한 동시에 생기게 되는 것이므로, 이 역시 분별을 떠날 수 없는 것이어서, 비었다,

 

또는 빈 것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아야 진정코 빈 것이 된다. 무생법인 즉, 생기지 않는 것이 진정한 법인이라는 의미와 같다.

 

이제는 배우고 생각하는 것, 이상의 업그레이드를 통해, 일상의 생활을 하면서 실질적으로 마음을 어떻게 먹어야 하는가의 차원으로 넘어가야한다. 업을 쉽게 지울 수는 없으나 꾸준한 노력과 정진의 힘으로 이를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 아는 것이 많다 하더라도 몸에 배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따라서 마음을 놓고 분별하지 않는 습을 무조건 길러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순간순간 일어나는 걱정과 근심을 내려놓아야 한다. 이러한 연습과 습관이 몸에 베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걱정 근심은 욕심의 산물이다. 욕심은 반드시 고락의 인과를 낳는다.

 

그러므로 고락 인과의 윤회고를 겪지 않으려면 욕심을 버려야 하고, 욕심을 버리려면 분별하는 마음을 놓아야 한다. 분별하는 마음을 놓으려면 순간순간 방하착이라는 화두에만 몰두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렇게 되던 저렇게 되던 무조건 방하착해야 한다. 그러다 잘못되면 어떡하지 하는 마음까지 놓아야 한다.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으면 고락 인과에 대한 굳은 신심을 가져야 한다. 힘쓰지 말아야 한다. 힘을 써야 일이 성취되지 않느냐는 생각까지 놓아야 한다.

 

‘그러다가 잘못되어 더 큰일이 일어나면 어떡하지’ 하는 마음까지 놓아야 한다. 백척간두에서 두발을 떼야 한다. ‘그래도 다음 일을 걱정해야 잘못되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생각은 얼마든지 하되 걱정하는 마음을 놓으라는 말이다. 고락의 인과는 얻은 만큼 잃게 되는 것이 만고의 법칙인 즉, 이같이 분별하는 마음이 원인이 되어, 고락이라는 결과로 인해 괴로움의 과보를 받게 된다는 것을 항상 잊지 말고 분별하는 마음을 놓아야 한다.

 

어차피 삶이란 인과 그 자체이니, 한번 얻었으면 한번 잃는 과보가 남게 되어, 언젠가는 잃게 되는 일이 다가올 것이고, 좋은 일이 한번 생겼으면 그 과보로 인해 언젠가는 나쁜 일이 하나 발생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바라는 마음이 없으면 절대로 일어나는 일도 없을 것인 즉,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생긴다면, 그것은 순전히 바라는 욕심을 버리지 못했다는 증거이다.

 

이미 차를 같이 타고 가는데 어떡하면 다른 사람보다 내가 더 빨리 갈 수 있을까? 이렇게 어리석은 궁리를 하지 말라는 말이다. 목적지라는 결과가 이미 정해져 있는데 걱정한다고 결과가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매사의 일에 일희일비 하지 않음은 물론이요, 원하거나 원하지 않는 생각, 이런 감정, 저런 감정 모두를 놓고 또 놓고 또 놓아야 한다.

 

그러므로 놓고 또 놓고, 놓는다는 마음까지 놓아버리면 그것이 바로 견성이요, 해탈이다. 그래도 잘 되지 않으면 기도와 참선, 보시, 정진을 함께 병행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