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의 원류를 찾아서] 22. 칠엽굴의 첫 결집
5백 아라한 경·율 편찬 … 흔적 남아있는 듯
2002년 3월29일 부처님 입적 후 제1차 결집이 이뤄진 라즈기르의 ‘삿타파니 동굴’(칠엽굴)에 올랐다. 아침 9시경 등산을 시작했다. 태양은 뜨거웠다. 칠엽굴 입구엔 자이나교 사원이 떡 버티고 있었다. 불교 사찰이 있어야 될 자리에 자이나교 사원이 위용도 당당하게 서있다니…. 사원 앞을 지나가는데, 흰옷 입은 자이나교 수행자 둘이 우리 뒤를 따라왔다. 계속 말을 붙여왔지만,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듣는 둥 마는 둥 걸어가는 데도 끝까지 따라왔다.
입구에 자이나교 사원
자이나교 사원에서 약간 밑으로 내려가 모퉁이를 돌아가니, 사진에서 많이 보던 칠엽굴이 나타났다. 칠엽굴 위치는 상당히 높았다. 라자가하가 저 아래 보였고, 우리가 묵은 호케호텔도 한참 아래 있었다.
부처님 가르침인 경·율이 처음으로 결집된 이 곳. 막상 앞에 서니, 그렇게 보고 싶었던 칠엽굴에 왔다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만약 여기서 경·율이 결집되지 않았다면, 불교의 운명은 어떻게 됐을까. 아마도 지금과는 상당히 다른 양상을 보였으리라. 마하카삿파 존자의 말처럼 “법 아닌 것이 널리 퍼지고, 율 아닌 것이 널리 퍼졌을” 수도 있다. 결집된 경·율이 불교 발전과 홍포에 얼마나 큰 힘이 됐는지는 이후의 불교사가 증명해 준다.
〈마하파리닛바나 숫탄타〉에 의하면 세간·출세간의 스승인 부처님이 입적하자, 제자들은 한 곳에 모여 스승에 대한 마지막 예를 올렸다. 모임의 장로 마하캇사파 존자는 대중들에게 부처님의 마지막 가르침을 상기시켰다. 다들 슬픔에 빠져 있는데, 늙은 나이에 출가해 가르침을 제대로 받지 못한 수밧다(마지막 제자 수밧다와 다른 사람)만은 슬픈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마하카삿파 존자 결집 주도
수밧다는 오히려 슬퍼하는 대중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만두시오, 여러분! 울면서 슬퍼할 것 없소. 대 사문은 지금까지 ‘이것은 해야만 한다, 저것은 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잔소리만 매우 심했소. 그러나 이제부터 우리들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은 할 수 있고, 하기 싫은 것은 하지 않을 수 있소. 당연히 매우 기뻐해야만 할 일 아니겠소.”
〈선견율비바사〉에 따르면 다비식이 끝난 뒤 수밧다의 폭언을 기억한 마하캇사파 존자는 비구들을 모았다. 그리고 말했다. “존자들이여! 오시오. 모여서 법(法)과 율(律)을 암송합시다. 법 아닌 것이 널리 퍼지기 전에, 법이 사라지기 전에, 율 아닌 것이 널리 퍼지기 전에, 율이 사라지기 전에.” 동의한 비구들은 “라자가하성(왕사성)에만 여러 일들이 두로 갖춰져 있다. 우리들은 라자가하 성안으로 가 석 달을 안거하며, 결집해야겠다”며 마하카삿파 존자에게 건의했다.
안거가 다가옴을 파악한 마하카삿파 존자는 비구들에게 말했다. “떠나가야 할 때가 벌써 됐으니, 라자가하 성으로 갑시다.” 마하카삿파 존자가 250명, 아누룻다(부처님 사촌동생. 아나율) 존자가 250명 비구들을 각각 이끌고 라자가하 성으로 갔다. 그때 아난다 존자는 부처님 가사를 가지고, 쉬라바스티 기원정사에 있다가 안거에 들기 위해 라자가하 성으로 갔다.
깊고 넓은 동굴 2개 존재
라자가하성에 도착해 있던 마하캇사파·아누룻다 존자는 무너진 18개 정사를 수리하고, 아자타삿투왕에게 필요한 것을 요청했다. 마하캇사파 존자는 왕에게 “수리가 끝났습니다. 이제 부처님 가르침인 법(法)과 율(律)을 펴내야겠습니다.” 왕은 “원하는 바를 이룩하십시오. 시키실 일 있으면 시키십시오”라고 말했다. 마하캇사파 존자는 가르침 결집에 필요한 이것저것을 요청했고, 아자타삿투왕은 라자가하 베바라 언덕 ‘삿타파니 동굴’(七葉窟)에서 개최된 제1차 경전편찬회의에 필요한 모든 준비물을 제공했다.
자이나교 사원에서 칠엽굴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계단을 따라, 굴(窟) 앞 공터로 천천히 내려갔다. 큰 바위 밑에 커다란 동굴 두 개가 보였다. 동굴 앞 넓은 공터에 서서 굴을 살펴보니 ‘여기서 어떻게 500명이 모여 결집을 했을까’는 생각이 들었다. 장소가 협소해 보였다. 입구에서 가까운 쪽 동굴에 먼저 들어갔다. 처음엔 넓더니 점점 좁아졌다. 어느 지점에서 동굴은 둘로 갈라졌다. 계속 들어가니 어두컴컴해지고, 박쥐가 날아 나왔다. 더 이상 들어가기 힘들어 나왔다.
생각 외로 동굴 속은 넓었다. 우리를 따라왔던 자이나교 사람이 ‘뭐라고 뭐라고’ 힌디어로 말했다. “동굴은 산 뒤편 힌두교 사원까지 뚫려있다. 옛날에는 동굴 속에서 거기까지 갈 수 있었으나, 지진이 난 뒤로 굴이 막혔다”는 내용이라고 안내인이 통역해주었다. 그 정도라면 500명이 모여 결집하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구에서 먼 동굴에 들어가 보았다. 첫 번째 동굴과 마찬가지로 중간에서 둘로 갈라졌다. 짹짹거리는 박쥐소리가 들렸다. 굴을 나와 준비해온 과일을 먹으며, 결집 당시를 상상해 보았다.
〈선견율비바사〉에 보면 결집할 곳의 자리를 정렬하는데, 경과 율을 암송할 사람이 앉는 자리는 가장 높은 곳에, 동쪽으로 향하도록 했다. 자리 정렬 뒤 대중 스님들이 아난다 존자에게 말했다. “내일 대중들을 모아 율장을 낼 터인데, 그대는 아직도 아라한에 들어오지 못했다. 수행을 게을리 하지 마라.”
아난다 존자 어렵게 참석
질책을 들은 아난다 존자는 반야의 지혜를 증대시키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다. 밤새도록 명상에 잠겨 있었다. 아침이 돼서야 잠자리에 누웠는데, 발은 땅에 닿고, 머리는 베개에 미치지 못하는 일이 벌어졌다. 바로 그 순간 섬광처럼 어둠이 제거되고 말았다. 아라한 성자가 지니는 기적적인 힘으로 막 편찬회의가 시작하려는 순간 회의장에 나타났다.
편찬회의 전체 의장인 마하캇사파 존자는 승단의 허락 아래 우파리 존자에게 율에 관해 질문했다. 여러 가지 파계(破戒)에 관한 것들이었다. 세부적인 사건, 상황, 관계된 인물, 근본계율, 보충계율 등에 관한 것이었다. 우파리 존자가 암송하면, 마하캇사파 존자가 동의를 구하는 식으로 하나하나 결집됐다. 율장 결집이 끝난 뒤 마하캇사파 존자는 대중들의 허락 아래, 아난다 존자에게 ‘가르침’(經)에 관해 질문했다. 아난다 존자가 암송하면 전체가 동의하고 편찬됐는데, 이렇게 해 경장(經藏)이 성립됐다. 이것이 소위 ‘아함부 경전’의 기원이다.
들어가니 박쥐들이 위협
오늘은 마침 힌두교 달력으로 1월1일, 힌두교 최대의 축제인 ‘홀리’날. 그래서 그런지 들판 저 끝에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칠엽굴 바로 밑 들판에서도 사람들이 모여 흥겹게 놀고 있었다. 서로에게 물감을 뿌리고, 친할수록 많이 뿌린다고 한다. 겨우내 묵었던 때를 몸에 묻은 물감과 함께 씻는 행사인데, 서로에게 물감을 뿌리고 던지는 모습이 보였다.
칠엽굴을 내려갔다. 자이나교 사원에 있는 사람이 따라오며 ‘박시시(헌금)’을 내고 가라고 종용했다. 못들은 척 하고 내려왔다. 산밑에 오니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인도에선 드문 온천이 있는 곳인데, 물감을 온 몸 가득 맞은 사람들이 발가벗고 씻고 있었다. 다투어 몸을 씻는 그들의 얼굴엔 “라즈기르와 칠엽굴이 어떤 의미가 있는 곳인지”를 알고자 하는 표정이 없어 보였다. 대신 이방인들을 쳐다보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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