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유체양변(唯滯兩邊) 영지일종(寧知一種) : 오직 양변에 빠지기만 하면 어찌 일종임을 알리요.
유체양변이란 오직 양변에 빠지기만 하면인데,
있는 것만 알고 없는 것은 모르는 것, 없는 것만 알고 있는 것을 모르는 것, 받기만 하고 줄 줄 모르는 것, 움직일 줄만 알고 멈출 줄 모르는 것, 멈추어 있기만 하고 움직이지 않는 것 등이 양변에 빠지는 예이다.
유체양변 영지일종이란 두 변 중에 한쪽에만 빠져 있으면 어찌 두 변이 한 종자인 것을 알겠는가? 라고 한 것이다.
여기에서 한 종자라고 한 것은 같은 뿌리, 혹은 성질에서 나온 것을 알겠는가? 라는 뜻이다.
있는 사람은 없을 수 있는 성질을 가지고 있고, 없는 사람은 있을 수 있는 성질이 있으며, 착한 일과 나쁜 일도 같은 성질에서 나오는 것이니 자기가 원하는 대로 될 수 있다는 말도 된다. 실패한 사람이 성공할 수 있는 성질도 가지고 있고, 성공한 사람이 실패할 수 있는 성질도 가지고 있다는 말이 일종의 원리인데, 한쪽으로 치우치는 성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이것이 같은 종자라는 것을 알 수 없다는 말이다.
양변에 치우치는 사람이 되지 말고 좋을 때나 나쁠 때나 한 쪽에 치우치지 말고 중도를 찾아 침착하게 대치하라는 성품을 기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인생에 있어서의 나의 몫은 얼마나 되나?”
네가 화가 나서 기분이 나쁘구나./ 화가 나서 기분이 나쁜 것은 너의 몫./ 내가 기분이 좋아 매우 즐겁구나./ 기분이 좋아 즐거운 것은 나의 업
유체양변 즉 오직 양쪽에 머물러 있다면, 영지일종 즉 어찌 한결같음을 알겠는가. 양변이란 양쪽을 의미한다. 이것이 생기니 저것도 생긴다는 것이니, 곧 분별을 말한다. 이러한 생각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관념에서 나오는 것이니, 생각과 감정이 여기에 해당이 된다.
무엇이던 있는 그대로 보면 양변의 분별이 생기지 않는다. 그러나 ‘있다’고 생각하는 즉시 ‘없다’는 것이 동시에 생기는 것이므로, ‘좋다’라고 생각하면 ‘싫다’ 또는 ‘나쁘다’라는 것이 생겨나고, ‘즐겁다’라고 느끼는 동시 ‘괴롭다’라는 느낌도 생겨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한쪽의 업이 생기면 다른 한쪽의 업도 생겨나서, 한때는 이쪽의 업이 발생하고, 한때는 다른 쪽의 업이 발생하게 되니, 이를 시절인연이라 했다. 따라서 좋은 업이 발생할 때가 되면 좋은 일이 생기게 되고, 나쁜 업이 발생할 때가 되면 나쁜 일이 나타나게 되는데, 이 두 가지 서로 반대되는 업이 상대적으로 나타나게 되는 시간을 인연의 때라 하고, 그 업이 나타나는 장소를 인연이 닿는 장소라고 한다.
만약 기분 좋은 인연 즉, 일이 잘 풀린다 거나, 좋은 사람을 만난다 거나, 시험에 합격을 한다거나, 횡재를 한다 거나, 주식이 대박을 친다 거나, 병이 낫는다 거나, 등등의 기분 좋은 일이 생기는 것은 좋은 업이 나타나는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기분 좋은 업이 생겨났으므로 그에 따른 인과로 인하여 반대되는 기분 좋지 않은 인연 또한 반드시 겪어야 하는 것인데, 고통스럽다 거나, 괴로운 일이 생겨난다 거나, 사고를 당한다 거나, 죽음에 이른다 거나, 일이 실패한다거나, 시험에 낙방한다 거나, 병이 생긴다 거나, 싸운다 거나, 등등의 기분 좋지 않은 일이 생기는 것은 나쁜 업이 생길 때가 되었기 때문에 좋지 않은 일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좋지 않은 일이 생기는 것은 좋은 일을 경험한 인과의 과보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서, 기분 좋지 않은 감정을 또 다시 드러내지 않아야 하느니, 기분 좋지 않은 감정을 드러내게 되면, 이 업이 쌓였다가 다음에 반드시 똑 같은 경험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이런 일이 나타날 때도, 저런 일이 나타날 때도, 마음을 놓고 또 놓아 방하착해야 하느니, 왜냐하면 분별로 인하여 괴로운 과보를 받지 않기 위함이다.
영지일종 즉, 일종이란 한결같음을 뜻하는 고로, 한결같음 이란, 바로 위에서 말한 방하착을 가리키는 것으로, 좋은 것을 놓고 또 놓음으로 하여, 나쁜 과보가 생기지 않기 위함이고, 나쁜 것을 놓고 또 놓음으로 하여, 다음에 또 다시 나쁜 업을 받지 않기 위함이다.
하여, 상대가 누구든, 어떤 말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행동을 하던 그것은 상대의 업이자, 상대의 몫이며, 내가 어떤 말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행동을 하던 그 또한 나의 업이고 나의 몫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달마대사의 제자가 된 혜가대사가 스스로 팔을 자르며 달마의 제자가 되겠다는 의지를 보이자, 달마는 “너의 마음을 가져오너라. 그럼 내가 이제 너를 편히 해주겠다.”라고 말한다. 달마는 달마 스스로 불편한 마음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말을 한 것이고, 혜가는 스스로 불편함을 안고 있기 때문에, 달마는 바로 스스로 마음을 편히 하는 방법은 내가 만드는 것이라고 하는 것을 가르쳐 준 것이다.
손자와 할아버지가 서로 장난을 치는데 손자는 애가 타서 울고불고 하지만, 그 모습을 보는 할아버지 마음은 손주가 귀여울 따름인 것과 같이, 스스로 불편한 사람은 속이 타지만, 스스로 편안한 사람은 불편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분별하는 마음을 항상 내려놓아야 하느니, 이를 “양변을 따른다.”라고 하는 것이고, 분별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항상 방하착하니, 한없이 편안한 마음이 되므로, 이를 일종 즉, 한결같다고 하는 것이다.
기도와 참선, 보시와 정진은 분별하지 않는 마음, 한결 같은 마음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행동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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