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가귀감

한국전통사상총서 - 정선 휴정(精選休靜)

수선님 2023. 4. 9. 13:06

한국전통사상총서

정선 휴정(精選休靜)

한국전통사상총서・불교편 03

精選休靜정선휴정・譯註역주

Hyujeong: Selected Works

Collected Works of Korean Buddhism, vol. 3

역주 김영욱 외 조영미.한재상

엮은곳 대한불교조계종 한국전통사상서 간행위원회

주소 서울시 종로구 견지동 45번지

전화・팩스 02)725-0364・02)725-0365

펴낸이 대한불교조계종

펴낸곳 대한불교조계종 한국전통사상서 간행위원회 출판부

등록번호 제 300-2009-5호(2009.1.22)

인쇄일 2010년 03월 05일

발행일 2010년 03월 15일

편집・디자인 아르떼203

인쇄・제책 동화인쇄공사・(주)가원

ISBN 978-89-962509-3-7 94220

ISBN 978-89-962509-0-6 (세트)

이 도서의 국립중앙도서관 출판시도서목록(CIP)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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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P제어번호:CIP 2010000274

ⓒ 2010 by Compilation Committee of Korean Buddhist Thought,

Jogye Order of Korean Buddhism

이 “한국전통사상총서” 간행사업은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으로 이루어졌습니다.

刊行辭 간행사

2000년이 시작되던 몇 년 전, 인류는 21세기를 새 천년 즉 밀레니엄이라 부르며 희망을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살육이 자행되는 분쟁지역의 비극과 경제위기 등 지구촌의 고통은 줄어들지 않고 있습니다. 불교는 이미 세계는 늘 불안정하며, 예측하기 어려운 엄연한 고통의 바다라고 확인시키고 있으니 무상(無常)・고(苦)・무아(無我)의 가르침입니다.

이 불안정한 생명의 바다에, 탐욕과 분노와 사견 즉 삼독이 파도치면, 무한으로 연결된 중생계의 고통은 더없이 가중될 것이며, 이에 반하여 탐욕을 치유하는 인내와 절제의 계학(戒學), 분노를 진정시키는 정학(定學),사견을 정화하는 혜학(慧學) 등 삼학의 활동이 점차 증장될 수 있다면, 인류는 온 생명계를 요익케 하는 제일류(第一流)의 유정(有情)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은 5세기 이후 이미 불교공동체인 승가전통과 대승교학의 수승한 요체를 토착화한 이후 선문(禪門)의 정화를 거쳐 현재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수행승가를 통해 정법유산(正法遺産)을 단절 없이 전승하고 있는 귀중한 불연토(佛緣土)입니다.

자원과 영토 그리고 탐욕의 자본과 사견으로 얼룩진 종교분쟁 등, 삼독의 화염이 치연한 지구촌 그 한가운데서, 무명(無明)의 파도를 진정시킬 정법유산을 전승하고 또 널리 유통하는 일은 실로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대중을 애호하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광대무변한 불법의 교설을 촬약한

‘종요’로서 남긴 원효스님의 대자대비행으로부터, 대승의 광장설과 그 실천규범 등을 널리 유통키 위해 주석 등의 유산을 남긴 동아시아에 빛나는 지성 원측스님과 대각국사 그 외 수많은 선지식들의 활동, 그리고 선문(禪門)을 중흥시켜, 경계 없는 마음의 영토를 계발시켜준 선사들의 어록과 행장 등, 우리불교의 전통으로 전승된 귀중한 유산들은 실로 우리 국민 나아가 인류공익의 위대한 유산들입니다.

이미 수집 출간된 『한국불교전서』 총14책에는 현재 한국고승 등 150여인에 의해 찬술된 320여 종의 문집이 고전 한문의 형태로 수록되어 있습니다. 금번 문집간행불사의 1차 사업은 그 중 대표적인 고승문집 90여 종을 선별, 국역과 영역을 거쳐 각각 13책씩 총26책으로 출간하여 널리 유통하는 대작불사입니다.

근대 이후 우리사회는 서세동점에 급속히 포획되어, 전통의 단절이라는 불행한 역사를 경험했을 뿐 아니라, 서구식 교육을 받은 지식인들과 대중들에게 전통의 위대한 유산들은 열리지 않는 보물창고로 남아버리게 되었습니다. 과거와의 단절은 어떤 생명에게도 불행한 일입니다. 모든 생명은 오래된 과거의 기억들을 바탕으로 현재를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며, 누적된 성찰과 지혜를 바탕으로 미래로 이어지는 무한한 연속성을 감득하고 자기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 개인에게 있어 기억의 상실은 세계 자체를 사라지게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독해하기 어려운 고전한문의 높은 담 안에 갇혀 있는 정법의 유산들을 대중에게 회향하는 일은 그래서 더욱 중차대한 일입니다.

그 빛을 감추어 머금고 있는 한국불교의 전통유산은 한국사회에서뿐 아니라, 세계인류에게 있어서도 생명계의 의내명주(衣內明珠)와 같다고 하겠습니다. 구슬을 꺼내 갈고 닦아 빛을 회복하는 일이 바로 우리들이 하고 있는 번역간행불사입니다. 위대한 유산의 전승은 그 인과(因果)를 아울러 수행할 때 원만히 성취될 수 있습니다. 체용(體用)이 상응하고 성상(性相)이 불유(不謬)해야 명실상부할 수 있으니, 모양은 그 쓰임의 결과로 빛나고 쓰임은 모양을 빌어 비로소 충실해지기 때문입니다.

금번 번역사업은 불교문헌번역의 오래된 전범인 다자번역전통(多者飜譯傳統)을 원칙으로 수행하도록 하였는데, 이는 삼장전승에 있어서 중요한 핵심전통이기 때문입니다. 삼장은 처음부터 합송(合誦)으로 결집(結集)되고 역장설치(譯場設置)를 통해 번역되는 등 다자가 참여하는 공동작업에 의해 전승되었습니다. 범어삼장을 중국어로 번역하는 경우 역장에는 범어를 이해하는 자와 한문을 받아쓸 수 있는 사람 외의 역할을 달리하여 협력한 주인공들이 있었습니다. 9인의 역관(譯官)으로 구성된 역장에는 범본삼장을 읽고 풀이하는 역주(譯主), 역주의 좌측에서 역주와 함께 그 뜻을 꼼꼼히 살피는 증의(證義), 역주의 우측에 자리하여 문장의 정밀함을 살피는 증문(證文), 출발어인 범문을 자세히 살피는 범학승(梵學僧), 현지어로 받아쓰는 필수(筆受), 번역된 글을 한자문법에 맞게 구문을 구성하는 철문(綴文), 범문과 한문을 대조하여 오류가 없도록 참교(參校)하는 참역(參譯), 산만한 문장을 다듬고 정리하는 간정(刊定), 역주와 마주하여 번역된 문장을 다듬어 아름답게 하는 윤문(潤文) 등이 협력하여 번역하였습니다. 다자들의 합송에 의한 결집으로 전승된 삼장은 다시 이렇듯 다자에 의한 협동으로 번역되어 전승되었고, 한국승가의 강원에서 수행되고 있는 논강(論講) 또한 이러한 전통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전독해와 전통이해 그리고 다양한 불교술어를 번역할 수 있는 연구자인프라가 매우 취약하고, 국고지원이 갖는 시간적 한계 등 매우 어려운 여건에서 시작한 불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교전통의 다자번역 전통이라는 의미 있는 작업까지 아우르는 고난도 작업에 열성을 다하고 있는 간행위 여러분들과 국내외 번역자들 그리고 간행위 사무처 관계자등에게 심심한 감사의 뜻을 표합니다.

이 불사의 원만회향을 부처님께 기원드리며 간행사에 대신합니다.

불기 2553(2009)년 10월 10일

제32대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한국전통사상서 간행위원회 위원장

가산지관 적음

完刊辭 완간사

한국전통사상총서 불교편 한글 완간본(完刊本)을 모든 불자들과 함께 삼보전(三寶前)에 봉정(奉呈)하옵니다.

전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이시며, 한국전통사상서 간행위원회 위원장이셨던 가산지관(伽山智冠) 큰스님의 크신 원력(願力)이 한글역 완간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한글역과 함께 영역본도 간행위원분들과 영역, 교정, 편집을 담당한 분들의 노고에 의해 간행됩니다.

이번에 13책으로 완간하게 된 한국전통사상총서 불교편은 삼국시대 이후 한국에서 꽃피운 1700년 불교역사의 정수(精髓)이자, 한국사상의 토대와 대들보입니다. 화쟁국사(和諍國師) 원효(元曉) 스님의 사상, 교육을 통한 후학 양성의 모범을 보이신 화엄(華嚴)의 대가 의상(義湘) 스님, 청렴한 결사운동(結社運動)으로 한국 선불교(禪佛敎)를 중천(重闡)하신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 스님, 어려운 국난을 이겨내시고 한국불교 교육과 수행 전통을 정비하신 서산대사(西山大師) 휴정(休靜) 스님을 축으로 하여, 삼국, 고려, 조선으로 면면히 이어진 한국불교의 핵심 사상을 이번에 완간한 전통사상총서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전통사상총서 불교편에는 화엄(華嚴), 유식(唯識), 정토(淨土), 대승계(大乘戒), 선불교(禪佛敎), 구도여행기, 삼국유사의 불교문화, 고승의 비문(碑文)이 정선(精選)되어 자세한 학술적인 역주와 함께 소개되어 있습니다.

저는 전통사상총서 완간의 의미를 1700년 한국불교의 사상과 수행 전통을 오늘날의 문제해결을 위한 지혜의 등불로 삼아가는 중요한 노력의 한 결실이라고 봅니다. 2600년 전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이 동아시아의 한반도에 전해져 무수한 중생의 삶을 진리로 이끌었습니다. 이처럼 부처님의 지혜(智慧)와 자비(慈悲)가 한반도에서 실현된 결실의 일부가 이 전통사상총서에 담겨 있습니다.

이 전통사상총서 속에서 우리는 바로 조계종단 집행부의 원력을 확인하고 동력을 얻을 수 있으며, 소통(疏通)과 화합(和合)으로 함께하는 불교의 모습을 원효스님, 의상스님, 지눌스님, 휴정스님 등의 사상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국불교의 수행종풍(修行宗風) 선양, 교육과 포교를 통한 불교중흥은 바로 선현(先賢)들의 지혜와 자비가 담긴 고전(古典)을 우리말로 제대로 번역하는 역경(譯經) 불사(佛事)에서 비롯됩니다. 번역된 우리말 경전을 교육과 포교에 활용한다면 사회적 소통과 공동선(共同善) 실현을 위한 나침반이 될 것입니다.

한국전통사상총서는 영역(英譯)으로도 13책이 간행됩니다. 세계의 한국불교 전문가들이 각자의 전공 분야를 맡아 한글역을 대조해가면서 영역을 담당하였습니다. 한국불교의 고전이 영어로 단편적으로 소개된 예는 몇 차례 있었지만, 이와 같이 한국불교 사상의 정수를 모아서 영역되는 것은 처음이며, 한글역자와 영역자간의 다자간(多者間) 상호 검증체계를 통한 번역의 엄밀성을 시도한 것도 처음입니다.

영역된 한국전통사상총서는 분명히 이제까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한국불교교학전통과 수행전통의 진면목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 초석이 될 것입니다. 아울러 국제포교 네트워크화와 한국전통사찰체험, 템플스테이를 통한 한국불교 국제화의 기초자료이자 사상적, 실천적 토대가 될 것입니다.

전통사상총서는 한글본 영역본 모두 세계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도록 전자출판 형태로 공개합니다. 보시 가운데 가장 수승한 법보시(法布施)를 통해 한국불교의 지혜와 자비, 소통과 화합의 정신을 온 세계와 공유하고자 합니다.

한국불교는 지금까지 중흥의 기틀을 다져왔고 이제 웅비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완간되는 전통사상총서는 한국불교의 정체성 확립과 미래의 나아갈 방향의 등불이 될 것입니다.

그 동안 번역과 교정 그리고 제작을 위해 노고를 아끼지 않으신 간행위원, 연구원, 영역자, 교정자, 편집자, 제작자 그리고 사무처의 모든 분들께 격려와 감사의 말을 전하며, 가산 지관 큰스님의 간행 원력에 수희(隨喜)찬탄(讚嘆)합니다.

이 대작불사(大作佛事)의 공덕(功德)을 제불보살(諸佛菩薩)님과 무량중생(無量衆生)에게 회향(回向)하며 완간사를 가름하고자 합니다.

불기 2554(2010)년 1월 20일

제33대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한국전통사상서 간행위원회 위원장

해봉 자승(海峰 慈乘)

總目次총목차

淸虛堂行狀 청허당행장

禪家龜鑑 선가귀감

心法要抄 심법요초

禪敎釋 선교석

禪敎訣 선교결

淸虛集 청허집

凡例 일러두기

1. 이 책은 대한불교조계종에서 한국불교 전통사상의 선양·유통을 위하여 기획한 한국전통사상총 서 제3권 [휴정편]이다.

2. 이 책의 번역과 관련한 제반 사항은 한국전통사상서 간행위원회의 번역 지침에 따랐다.

3. 서산대사(西山大師) 청허휴정(淸虛休靜)의 선(禪)사상에 대한 관점이 온축되어 있는『선가귀감(禪家龜鑑)』과 여타의 문집에서『선가귀감』의 선법과 상응하는 단편들을 발췌하여 엮은 것이다.

4.「청허당행장(淸虛堂行狀)」,『선가귀감(禪家龜鑑)』,『심법요초(心法要抄)』,『선교석(禪敎釋)』,『선교결(禪敎訣)』등은 완역·역주하였고,『청허집(淸虛集)』은『선가귀감』편집의 대의 와 통하는 글을 위주로 13편을 발췌하여 번역·역주하였다.

5. 이 책에서 저본으로 삼은 판본은 해제에 각 책별로 밝혀 두었다.

6. 이 책의 分章 및 각 장의 제목은 저본의 기본 편제와 내용을 고려하여 역주자가 임의로 가한 것 이며, 단락 역시 독자들이 읽기 편하도록 역주자가 구분한 것이다. 다만, 원전에 제목이 달려 있 는 경우에는 이를 그대로 취하였다.

7. 한 낱말 또는 구절에 주석을 붙일 경우, 본문에 한글과 한자가 병기되어 있을 때는 바로 주석을 하고, 한자가 병기되어 있지 않을 때는 주석에 한자 또는 한자어를 명시하고 주석하는 것을 원칙 으로 하였다.

8. 원문 교감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교감 표시 없이 올바른 글자를 취하여 썼다.

9. 한글 번역문과 한문의 문장 구성상의 특성에 따라 표점이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있음을 밝힌다.

10. 고려대장경(高麗大藏經)은 高로, 한국불교전서(韓國佛敎全書)는 韓으로, 대정신수대장경(大正 新修大藏經)은 大로, 만속장경(卍續藏經)은 卍으로 표시하였다.

11. 산스크리트어는 , 팔리어는 , 티베트어는 로 표시하였다.

解題 해제

1.「청허당행장(淸虛堂行狀)」

2.『선가귀감(禪家龜鑑)』

3.『심법요초(心法要抄)』

4.『선교석(禪敎釋)』

5.『선교결(禪敎訣)』

6.『청허집(淸虛集)』

선사상에 대한 서산대사 청허휴정(淸虛休靜 1520~1604)의 관점이 온축되어 있는『선가귀감』과 여타의 문집에서『선가귀감』의 선법과 상응하는 단편들을 발췌하여 하나의 책으로 엮었다.『선가귀감』을 비롯하여 「청허당행장」·『심법요초』·『선교석』·『선교결』 등은 완역하였고,『청허집』은『선가귀감』편집의 대의와 통하는 글을 위주로 발췌하여 번역했다.「행장」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모두 휴정의 선지(禪旨)가 간결하게 나타나는 부분을 가려내어 그 원문을 번역하고 구절마다 주석을 붙인 것이다. 휴정의 인물과 이력에 대해서는「행장」에 자세하게 나타나므로 별도로 서술하지 않았다.

1.「청허당행장」

제자 편양언기(鞭羊彥機 1581~1644)가 지은 휴정의 일대기이며, 본래 제목은「금강산퇴은 국일도대선사 선교도총섭 사자 부종수교 겸등계 보제대사 청허당행장(金剛山退隱國一都大禪師禪敎都摠攝賜紫扶宗樹敎兼登階普濟大師淸虛堂行狀)」이다.

『한국불교전서』권7『청허집(淸虛集)』의 저본이 되는 1630년(仁祖8) 용복사(龍腹寺)에서 간행한 7권본에는 본래 없지만,「보유편(補遺篇)」에 수록되어 있다. 이것은 간행연대 미상의 묘향장판(妙香藏板) 4권본에 수록되어 있고, 국립중앙도서관·한국학중앙연구원 도서관·동국대학교 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은 두 종류이다.

출생 이전 부친과 조상들의 사회적 지위, 외조부가 연산군에게 죄를 얻어 귀양 가게 된 사연 그리고 모친의 태몽과 출생 등에 관한 이야기가 앞 부분에 소개된다. 그 다음으로 어린 시절, 시와 문장에 뛰어나 한양으로 유학을 가서 과거에 응시하기 위해 공부했으나 좌절하고 말았던 소년기의 이력이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불교서적을 마주치면서 그 동안의 공부가 헛됨을 느끼고 ‘마음을 텅 비우면 급제한다[心空及第]’는 대장부의 뜻을 세워 출가한 인연이 나온다.

그 뒤 30세(1552)에 선교(禪敎) 양종(兩宗)의 판사(判事)를 겸했으나 출가한 본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 금강산으로 들어가 수행한 끝에 본분의 소식을 접한다. 임진년(1592)에 왜적(倭賊)의 침략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팔도십육종선교도총섭(八道十六宗禪敎都捴攝)의 직위를 받고 순안 법흥사에 이르러 승도(僧徒)를 모은 다음 명나라 군사와 합세하여 왜적을 물리친다. 그러나 80세의 노구로 장수의 지위를 맡을 수 없다고 여기고 문도인 사명당 유정(惟政)과 처영(處英) 등에게 후사를 당부하고 묘향산으로 들어가 은거했다. 난이 평정된 뒤에 공을 인정받아 ‘국일도대선사선교도총섭 부종수교 보제 등계(國一都大禪師禪敎都摠攝扶宗樹敎普濟登階)’라는 직호(職號)를 받았다.

「행장」은 서산휴정이 임제종(臨濟宗)의 가풍에 충실한 선법을 계승했다고 적고 있다. 그 근거는 대대로 이어져 온 적통의 법계를 이었다는 점에서 찾는다. 석옥청공(石屋淸珙)→태고보우(太古普愚)→환암혼수(幻庵混修)→구곡각운(龜谷覺雲)→등계정심(登階正心)→벽송지엄(碧松智嚴)→부용영관(芙蓉靈觀)→서산휴정 등 8대가 그 계보이다. 이 법계의 뿌리가 되는 석옥청공이 임제종의 적통이라고 보기 때문에 휴정도 법계상 이 종파의 후손으로 간주된다고 한다.

이「행장」의 전반부는 휴정 스스로 자신의 성장 과정과 출가 전후의 행적을 술회하며 노수신(盧守愼 1515~1590)에게 부친 한 장의 편지를 참조한 것이다. 부모님과 선조들의 행적 및 소년기의 이력 그리고 출가한 인연과 운수행각 등에 관하여 상세하게 기술한 「상완산노부윤서(上完山盧府尹書)」가 그것인데,「행장」의 앞부분은 이 내용에 따른다.

2.『선가귀감』

1) 『선가귀감』의 구성과 대의

이 책은 서산휴정이 선가의 본보기가 될 만한 글귀들을 모으고 그 각각에 대하여 평을 가하거나 송(頌)을 붙여 이루어졌다. 경전이나 역대 선사들의 어록 등에서 주제별로 선별한 말들을 구절마다 좀 더 자세히 해설하고 마지막에는 선사로서의 안목에 따라 한두 구절의 시구(詩句) 또는 착어(著語)를 붙이는 형식으로 마무리한다.

사명유정(四溟惟政)의「발문(跋文)」이 실려 있는 1579년(宣祖12) 간행본(고려대학교 및 일본 駒澤大學 소장)을 저본으로 한『한국불교전서』권7을 토대로 번역했다. 이 밖에 1590년(宣祖23) 금강산(金剛山) 유점사(楡岾寺) 간행본(국립중앙도서관 소장), 1605년(宣祖38) 경상도 화산(華山) 원적사(圓寂寺) 개간본, 1607년(宣祖40) 전라도 순천(順天) 조계산(曺溪山) 송광사(松廣寺) 개간본(동국대학교 소장), 1612년(光海君4) 묘향산(妙香山) 내원암(內院庵)에서 개판(開板)하여 보현사(普賢寺)로 옮긴 판본(동국대학교소장), 1618년(光海君10) 송광사(松廣寺) 개간본(동국대학교 소장), 서문과 발문 없이『선교석(禪敎釋)』이 부록으로 실려 있는 1633년(仁祖11) 용복사(龍腹寺) 유판본(국립중앙도서관 소장), 1649년(仁祖27) 취서산(鷲栖山:梁山) 통도사(通度寺) 중간본(전라남도 담양군 龍華寺 소장), 1731년(英祖7)묘향산 보현사(普賢寺) 유간본(동국대학교 소장), 보원(普願)의 발문(跋文)이 실려 있는 1583년(선조16) 간행본(고려대학교 소장) 등 수차례 간행되었다.

『선가귀감』은 보기 좋은 문구를 단순히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편자 휴정이 하나로 꿸 수 있는 안목을 가지고 여과시킨 결과물로서 그 제목대로 우리나라 선맥(禪脈)에서 대대로 귀감이 되어 왔다. 사명유정과 보원·성정(性正) 등의 발문(跋文)에도 보이듯이, 이 책은 선(禪)과 교(敎)의 무리들이 제각각 지니고 있는 편견과 결함들이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자 이를 극복하고 바른 길을 제기하려는 목적에서 출간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선교일치(禪敎一致)의 관점은 아니며, 선가의 관점에서 교가의 여러 설들을 화해시키려는 시도에 속한다.

여기서 선가란 선종으로 분류되는 종파 전체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내용적으로는 무엇보다 조사선과 간화선이라는 특수한 수행법을 종지로 삼는 일단의 그룹을 말한다. 휴정은 이 선법이 다른 어떤 수행법보다 학인들이 따라야 할 본보기가 된다고 보았다. 이에 따라 선가의 주옥같은 구절들을 간화선에서 제기하는 화두 참구의 관점에서 간명하게 나타내고, 무수한 수행의 과제를 돌파하는 망치와 집게가 되도록 후세에 남겼던 것이다. 성정의 「발문」에서 “귀감이라고 한 이유는 선과 교에서 날마다 활용하는 요체가 되는 문이기 때문”이라고 했듯이 일상생활에서 실천하기에 귀감이 되는 글들을 휴정의 관점에 따라 정리한 책이 『선가귀감』이다. 휴정이 항상 지니고 있었던 선수행과 사상에 관한 평소의 생각은 여러 단편에 들어 있지만 이 책의 편집을 통하여 그것들이 하나로 종합되어 꽃을 피웠던 것이다.

2) 일물(一物)

말도 생각도 붙을 수 없고 불조(佛祖)의 기량도 그 앞에서는 힘을 잃을 수밖에 없는 ‘하나의 그 무엇[一物]’이 이 책의 첫머리를 장식한다.『선가귀감』 전체를 꿰뚫는 화두는 바로 이 ‘하나의 그 무엇’이다. 선(禪)이나 교(敎)나 모두 이것을 밝히는 방식에 따라 갈라지고, 화두 공부의 목적도 언

어와 분별에 물들기 이전의 이 일물(一物)을 고스란히 드러내어 그 경계에 안착하는 데 있다. 불성이니 진여니 하는 교학의 개념과 ‘하나의 그 무엇’을 등치관계에 놓고 이해하려는 시도는 조사선의 뜻에 배반된다. 하나의 그 무엇 앞에서는 부처나 조사도 할 일이 없고 하늘과 땅도 빛을 잃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양한 뜻을 가진 법과 그것을 이해하는 수많은 근기들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일물을 고수하며 본분(本分)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차별된 근기를 이끌어갈 방법이 없다. 따라서 마음·부처·중생 등의 말에 일물을 실어 전할 수밖에 없다. 어떤 방편도 허용하지 않고 일물의 영역을 고수하는 방식과 대상에 따라 다양하게 펼치는 방편을 허용하는 입장을 자유롭게 운용해야 본분에서 어긋나지 않으면서 중생 제도의 뜻을 펼칠 수 있다.

마음이라 하거나 부처라 하거나 그 밖에 무슨 말로 표현하더라도 그 이름을 고수해서는 안 되고 그 속에서 일물을 포착하여 언어 이전의 몰자미(沒滋味)로 돌아가야 본래 지시한 것과 하나가 될 수 있다. 표현된 말은 교법(敎法)이고 근원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선법(禪法)이다. 일물을 보여주기 위한 언어와 명칭이 도리어 그것을 가리는 장애가 되어버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것을 타파해 나가는 방법이 필요하다. 휴정은 이 장애를 제거하고 하나의 그 무엇과 마주치기 위한 수행법으로 ‘화두 참구’를 제시한다. 경전의 말씀이나 조사의 말이나 모두 의심으로 몰아가서 그 말에 지배당하지 않고 말의 허구가 산산조각 날 때까지 궁구하는 방법이 화두 참구이다. 그러한 의심 속에 들어오면 모든 말은 활구(活句)가 된다.

3) 선교(禪敎)의 동이점(同異點)

휴정은 “선은 부처님의 마음이요, 교는 부처님의 말씀이다”라는 말에 따라 이 두 가지 모두 부처님이 근원이지만 전승한 사람의 차이에 따라 갈라지게 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말이 없는 경지로부터 말이 없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 선이요, 말이 있는 것으로부터 말이 없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 교이니, 마음은 선법(禪法)이요 말은 교법(敎法)이다”라고 한다. 교는 만대의 의지처가 되므로 자세한 언어로 풀어줄 수밖에 없고, 선은 곧바로 근원을 가리키는 방법에 따르므로 마음이 근본에 통하도록 언어의 자취를 없애는 것이다. 그래서 교는 활등이 굽은 것과 같이 우회하며 자세히 설하고, 선은 활시위가 곧은 것과 같이 직접 근원을 가리킨다. 이러한 차별성이 있지만 선과 교는 근본적으로 동일한 뿌리라고 보는 것이 휴정의 견지이다.

하지만 선과 교 사이에는 깊이와 활용의 차이가 있다. 염화미소(拈花微笑)와 같은 교외별전(敎外別傳)의 소식도 교학의 자취에 따라 이해하면 죽은 말[死句]에 불과하며, 마음에서 선(禪)의 경계를 성취하면 거리에 하찮게 떠도는 말이나 자연의 모든 소리도 진리를 전하는 법음(法音)이 된다. 그래서 언어에 매몰되지 말라는 뜻을 반복하여 강조하는 것이다.

선과 교의 모든 소재를 타파하여 수행자로서 할 일을 마치고 나면 특별히 추구할 것이 남아 있지 않다. 이 경계에 이르고 나서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잔다”는 무사인(無事人)의 경지를 일상에서 전개하게 된다고 한다.

4) 화두 참구와 그 요소

휴정은 참구(參句)와 참의(參意)의 구별을 기점으로 수행의 바른 방향을 찾는다. 구절의 뜻을 낱낱이 추구하는 참의는 원돈문(圓頓門)의 사구(死句)이다. 이 방법에 따르면 모든 구절은 활력을 잃고 사구(死句)가 된다. 반면에 참구(參句)는 구절에 어떤 맛도 없는 경절문(徑截門)의 활구(活句)이다. 이 활구는 모색할 도리가 전혀 없다. 화두 참구는 하나의 공안을 원돈문과 같은 교학의 최고 이론에 따라 조명하려는 시도가 아니며, 그밖의 인식체계로 의미를 추구하는 방식의 공부가 아니다. 의미와 언어의 길로 통할 방도가 없는 구절[句]을 대상으로 삼아 그렇게 통하지 않는 장벽에 이르기 위한 방법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화두를 참구하는 요소는 무엇일까? 일정한 화두를 끊어짐 없이 잠시도 생각에서 놓치지 말고 제기하는 것이다. 화두를 들고 공부할 때 화두 이외의 생각이 비집고 들어오는 이유는 마음의 틈이 있기 때문이다. 그 틈은 화두를 놓치고 아무 생각이 없거나 다른 생각이 화두를 대신하는 순간 발생한다. 이렇게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휴정은 마군(魔軍)의 침입으로 보고 빈틈없이 화두를 들어야 한다는 뜻을 전한다. 휴정은 대신근(大信根)·대분지(大憤志)·대의정(大疑情) 등 고봉원묘(高峰原妙)가 제시한 화두 참구의 세 가지 요소 중에서 특히 의심의 본질에 대한 전통적인 간화선사들의 생각을 정리하여 소개한다. 여기서 무자(無字)화두를 공부하면서 발생하는 열 가지 병통 곧 간화십종병(看話十種病)에 대한 설명도 보인다. 이들 하나하나에서 어떤 분별 수단으로도 파고들어 갈 수 없는 화두의 본질적 속성이 나타난다. 이렇게 아무것도 통하지 않는 화두본래의 경계를 ‘활구’라 한다. 그 밖에 화두 공부를 할 때 지나치게 덤벼들면 산란하게 되거나 혈기가 오르고, 느슨하게 하면 혼침에 빠지게 된다고 경계한다.

화두 공부가 바르게 되고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휴정은 수행자로서 일상에서 언제나 자신을 반성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조목을 제시하는데, 여기에 화두 공부를 점검하는 사항도 들어가 있다. 이러한 자기 점검과 더불어 공부하는 자들은 화두를 타파했다고 생각한 다음에 반드시 그 경계가 올바른 것인지 밝은 눈을 가진 선지식을 찾아가 점검받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렇게 스스로 돌아보는 방법과 선지식에 의지하는 방법 등 두 가지 점검법은 태고보우(太古普愚)의설에 따랐다.

5) 마음의 근원

먼저 깨닫고 나중에 닦는다는 취지의 글들을 모아 해설한 부분(27~36)에서는 자기 마음의 근원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부각시키고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아무리 수행해도 무명만 증가할 뿐이라 한다. 범부와 성인은 본래 두 가지로 갈라서 분별할 수 없는 동일한 근원이라는 점이 바로 여기서 말하는 마음의 근원이며, 이 도리를 확고하게 믿고 이해하는 것이 신해(信解)이다. 따라서 범부와 중생의 마음을 버릴 필요도 없고 진실을 구하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버리거나 구하거나 두 가지 모두 그 자체로 번뇌에 물든 것이기 때문이다.

6) 실천의 조목

이러한 신해(信解)의 내용을 구현하기 위한 수행(37~44)이 이어진다. 수행의 요체는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을 평등하게 닦는 데 있기 때문에 이들의 밀접한 관계를 알아야 한다. 특히 계는 교가와 선가 양자 모두의 근원이며, 삼학은 각각 독립적인 수행 조목이 아니며 필연적으로 상호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다음으로(46~51) 보시·지계·인욕 등 6바라밀로부터 주문과 예배에 이르기까지 세부적인 수행 조목을 제기하여 하나씩 언급한다. 6바라밀을 실천하는 지침을 하나씩 제기하여 경전과 논서 등에서 예를 들어 지시한다. 또한 신주(神呪)를 들고 외우는 공덕, 진실한 성품을 공경하고 무명을 굴복시키는 뜻을 지닌 예배 등을 들어 준다.

이것은 수행으로 성취한 진실한 경계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며, 그것을 구현하기 위한 조목들을 추려 그에 대한 각각의 근거와 수행법을 간결하게 해설한 것이다.

7) 염불(念佛)

52 전체는 염불과 극락왕생에 대한 상세한 해설이다. 입으로 소리 내어 부처님 명호를 부르는 송(誦)과 마음으로 외우고 관(觀)하는 염(念)이 함께 운용되어 마음과 입이 합치되어야[心口相應] 바른 염불이라 한다. 초기 선종부터 제기되는 염불관의 자료를 싣고서 이들은 모두 본래의 마음을 가리켜 보이기 위한 목적에서 시설되었다는 결론에 이른다. 휴정은 염불이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방편 이외에 다른 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미타불의 48대원을 비롯하여 전통적인 염불의 교설을 부정하지 않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구체적인 맥락을 소개한다. 자력(自力)으로 왕생하는 길은 느리고 타력(他力) 또는 불력(佛力)으로 그것을 추구하면 빠르다는 뜻을 전하고, 자신의 성품 자체가 아미타불이라는 생각에 기초하여 더 이상 아미타불을 추구할 필요가 없다는 말의 잘못을 지적하기도 한다. 본성 자체가 그렇다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힘이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타력에 의한 왕생을 낮추어 보고 자력만 믿어서도 안 된다는 뜻을 나타낸다. 이러한 뜻을 전제로 휴정은 적어도 염불에 관한 한 돈오점수(頓悟漸修)의 취지를 지지하고, 돈오했더라도 반드시 점차적으로 수행해야 한다는 종밀(宗密)의 주장을 활용한다.

대체로 염불과 정토왕생에 관해서는 모든 조목에 대하여 본래의 진심을 지키는 선법으로 통일시키는 관점에 근거하여 처리한다. ‘본심을 곧바로 가리키는 하나의 법으로써 모든 근기에 맞아떨어지게 한다’라는 근본이치에 따라 그 방편으로 왕생과 염불을 펼쳐 보인 것이다.

8) 경전의 인연

선가는 경전을 무시한다는 잘못된 편견이 있으나, 경전의 뜻을 몰라도

읽는 소리가 귀에 스치는 것만으로도 불도를 성취하는 인연이 된다고 한

다. 다만 그것을 자기 본분상에 귀착시켜 읽지 않으면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다. 이러한 맥락에서 말세에 남들에게 보이기 위하여 지식을 자랑하

고 말재주로 돋보이려는 허망한 공부를 비판하는 것이다.

9) 수행자에 대한 경책

무상(無常)의 불은 항상 모든 것을 불태워버린다. 이렇게 무상이 우리의 육신을 비롯하여 주변의 모든 것을 덧없이 사라지게 만든다는 사실을 가장 긴급한 일로 인식하고 번뇌가 침범하지 못하도록 수행에 힘쓰며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고 경책한다. 다급한 이 현실을 무시하고 명예와 이익을 좇아다니며 헛되게 살아가는 수행자를 휴정은 호되게 비판한다. 명예와 이익의 덧없음을 보여주고 그것들이 탐욕의 불길만 조장한다는 뜻을 경전과 시구 등을 인용하여 드러내었다. 또한 수행자가 일상에서 항상 지니고 있어야 할 마음의 상태를 지시하면서 성냄과 교만을 가장 큰 번뇌의 조목으로 경계하였다.

59~67에서, 이러한 수행자는 가사를 입고 있지만 호랑이 가죽을 뒤집어쓴 양과 같을 뿐이며, 신도의 시주물만 허비한 죄를 반드시 받게 되리라고 한다. 부처님께서 출가하신 뜻을 되돌아보고 항상 본분에 힘쓰며, 두려운 마음으로 시주물을 받아서 소박한 생활을 영위하는 수단으로 써야 한다는 것이다.

68에서는 신체의 부정(不淨)하고 무상(無常)한 본질을 제기한 다음 그에 집착하지 말고 일상에서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69에서는 죄를 참회하고 잘못을 뉘우치는 방법을 보이고 이어서 오로지 도를 추구하는 마음으로 소박하고 곧은 태도를 견지하는 올바른 삶의 방향에 대하여 언급한다.

10) 병통과 화두의 본질

소승의 성문은 고요한 경계에 집착하여 머물지만, 대승의 보살은 시끄러운 저잣거리에서도 걸림 없이 노닐고 어떤 자취도 남기지 않는다(72). 더 나아가 오늘날 선을 말하는 자들이 모든 것이 소멸하여 단절된 경계에 집착하여 본래의 공(空)을 오인하는 착각을 비판한다(75). 또한 심문담분(心聞曇賁)의 설을 인용하여 귀와 눈에 병통이 있는 종사로부터 심장과 배에 병통이 있는 종사에 이르기까지 진실을 모르고 학인을 가르치는 종사들의 잘못을 비판한다(76).

77부터는 다시 ‘이 구절’ 곧 어떤 분별 수단도 통하지 않는 화두의 본질에 대한 언급이 시작된다. 말도 꺼내기 전에 방(棒)을 휘두르거나 할(喝)을 내지르는 방식은 화두의 그러한 속성과 긴밀하게 맞닿아 있다. 몸을 아프게 자극하는 방과 고막을 찢을 듯한 할은 분별을 부수는 화두와 다르지 않다. 이 측면을 마조의 할에 귀가 멀었던 백장과 그 말을 듣고 혀를 내둘렀던 황벽의 인연을 통하여 드러내고 그것이 곧 임제종의 연원이라 해설한다.

11) 각 종파의 법계와 법문의 특징

임제종(臨濟宗)·조동종(曹洞宗)·운문종(雲門宗)·위앙종(潙仰宗)·법안종(法眼宗) 등 5가를 대표하는 선사들의 법명을 나열하고, 각 종파의 종지를 간명하게 제시한다. 특히 임제종의 종지를 별도로 독립시킨 별명임 제종지(別明臨濟宗旨)라는 제목의 글에서 삼구·삼요·삼현·사료간·사빈주·사조용·사대식·사할·팔방 등 9항으로 나누어 자세히 보여 준다. 휴정은 이것이 단지 임제의 종지에 한정되지 않고 누구나 갖추어야 할 본분상의 요소이기 때문에 이것과 떨어진 설법은 모두 망령된 말이라고 하여 임제종의 종지가 지니는 보편성을 드러내었다.

결론 부분(79이하)은 임제와 덕산까지도 한계로 설정하고, 부처나 조사 보기를 원수를 보듯 하여 어떤 것에도 얽매임이 없어야 한다는 무사(無事)의 뜻을 제기한 다음, 가장 앞에서 제기한 구절들과 이 말을 연관시켜 마무리한 것이다.

부록으로 사명유정을 비롯한 제자 세 분의 발문을 수록했다.

3.『심법요초』

1664년(顯宗5) 음력 9월 대둔산(大芚山) 안심사(安心寺) 간행본(국립중앙도서관 소장)을 저본으로 한 『한국불교전서』 권7 pp.647c~653b를 토대로 번역했다. 그 밖에 간행연대 미상의 서울대학교 소장본, 간행연대 미상의 묘향장판(妙香藏版) 『청허집』 권4에 수록된 본문(동국대학교 소장) 등이 있는데, 이 두 판본에는 모두 「서문」이 없다.

본분사(本分事)는 교학적 방법은 물론 선의 도리로도 알 수 없기 때문에 학인들을 이끌기 위해서는 교(敎)와 선(禪)을 모두 넘어서 어떤 맛도 없고 모색할 수단도 없는 화두를 주어 스스로 깨닫도록 해야 된다. 이것이 본서의 대의이다. 범부와 성인 또는 부처와 마군과 같이 정해진 틀이나 본보기에 의존하지 말고 그러한 화두를 참구하는 것이 가장 탁월한 공부법이라 한다.

이러한 목적에 따라, 활구(活句)를 참구하지 않고 경론에 속박되어 헛되게 공부하는 ‘교학자의 병’, 모든 대상과 인연을 끊고 자신 안에 갇혀 궁리하는 ‘선학자의 병’, 모든 것을 차별하는 정식(情識)에 스스로 얽매여 벗어나지 못하는 ‘삼승학인의 병’ 등을 모조리 비판한다. 세부적으로는 화두라는 활구를 모르고 사어(死語)를 지키는 자, 마음을 텅 비우고 고요한 경계에 머무르며 방편을 고수하는 자 등의 병폐를 가려내어 비판하면서, 달마대사가 2조 혜가와 나눈 안심법문(安心法門)에서 제기된 방편의 말들이 활발한 작용을 잃고 실법(實法)으로 전락하는 양상을 그 예로써 들려준다.

모든 것이 활구가 될 수 있지만, 심의식(心意識)으로 헤아리면 그것들은 남김없이 사구(死句)가 된다. 활구는 심의식으로 하나하나 밟아서 점차로 이해를 높여가는 구절이 아니며 오로지 단계와 절차와 선후 등이 사라진 구절이어서 어떠한 인지 수단으로 헤아려도 포착되지 않기 때문이다.

휴정은 이러한 선법을 달마대사에 귀착시켜 종지의 선종사적 근거를 확고히 내세우고, 이하에서 18조목으로 주제를 나누어 요지를 밝히고 있다.

먼저「참선문(參禪門)」에서는 무자(無字)화두를 제일의 공안으로 제시한 뒤 그것이 바로 조사선이라 단언하고, 대혜종고(大慧宗杲)의 설 등을인용하여 활구(活句)를 참구하는 법을 보여 준다.「염불문(念佛門)」은『선가귀감』52의 내용을 그대로 수록하고 있다.「삼종정관(三種淨觀)」에서는『관무량수불경』의 교설을 기반으로 삼아 아미타불·관세음보살·대세지보살 등 3불에 대한 관상법(觀想法)과 사종염불(四種念佛)을 제시한 다음, 염불에 화두 참구의 의심을 적용하는 염불선(念佛禪) 또는 선정일치(禪淨一致)의 사상을 드러낸다. 이는 간화선의 입장에서 염불 수행을 포용하는 관점에 따른다.「선송(禪頌)」은 화두를 드는 방법과 궁극의 경계 그리고 잘못된 공부법 등 참선의 요지를 간명하게 온축하여 읊은 9수의 주옥같은 게송으로 이루어져 있다.「염송(念頌)」은 염불에 관하여 읊은 6수의 게송으로 앞서 나온 염불선의 취지와 같다. 그것은 염불이 참선이라는 안목에 따라 염불하는 자를 돌이켜 살피는 것이 화두에 대한 ‘의심’과 다르지 않다고 보는 선정쌍수(禪淨雙修)를 가리킨다.

「교가오십오위(敎家五十五位)」에는 교학의 수행 단계가 허망함을 밝혀 은근히 돈오(頓悟)의 입장을 드러내었다. 이는『선가귀감』에서 염불과 왕생을 돈오점수의 관점에서 방편으로 이끌어가는 것과는 달리 철저하게 본분사를 견지하는 입장을 나타낸다.「교외별전곡(敎外別傳曲)」에서는 부처님과 조사의 모든 언설은 심인(心印)을 전하려는 방편이라 설하고, ‘마음이 부처’라는 구절을 비롯한 모든 불조의 말들을 본분의 칼로써 모조리 부정하고 남김없이 내려놓으라[放下]고 지시함으로써 수행 단계에 대한 해설과 동일한 맥락을 취한다.

선과 악 등 모든 범주가 사라져 속박이 없는 경계를 나타낸「초발심보살의 수행」, 모든 법을 받아들이지도 버리지도 않는「대승인의 수행」, 지해라는 병통을 벗어나 무자화두를 참구하라고 권하는 「선가에서는 지해(知解)라는 두 글자가 가장 큰 병」, 부처님의 길도 따라가지 않는 장부의 기개를 보인「상근대지가 스스로 깨달은 경계」, 꾸밈없는 면목에 주목하도록 한「사람은 모두 본래부터 태평하다」, 생각과 언어로 접근할 수 없는 경계에서 참구하여 깨닫도록 유도한 「당사자 스스로 수긍하여 깨닫는 경계」, 자성(自性)의 아미타불을 제시한 「부처님이 설한 삼구」, 나옹(懶翁)의 말을 인용하여 수행자의 병 자체를 화두로 제시한「법에는 본래부터 병이라는 귀신이 없다」, 그 자리에서 무심하게 되어 본체와 작용을 모두 갖추는 대승의 견해를 보여준 「본래의 법에는 본디 견해가 없다」, 하나의 법에 모두 갖추어져 있어 주고받을 법이 없다는 취지의「스승과 제자 간에 전수할 것이 없다」, 한적한 경계를 고수하기만 해서는 활발한 작용을 상실하여 살활(殺活)을 자유롭게 운용하지 못한다는 뜻을 밝힌「지혜가 없는 치우친 견해」등이 있다.

부록으로 사명(四溟)이 지은 4대사 상당 서문과 서산이 완허당(玩虛堂)에게 준 전법게 그리고 완허당의 임종게 등이 수록되어 있다.

4.『선교석』

1586년(宣祖19)의 발문(跋文)이 실려 있는 전라남도 담양(潭陽) 용화사(龍華寺) 소장본을 저본으로 한『한국불교전서』권7 pp.654b~657a를 바탕으로 번역했다. 그 밖의 판본으로는『선가귀감』과 합철되어 있는 1633년(仁祖11) 용복사(龍腹寺) 유판본(동국대학교 소장), 1670년(顯宗11) 양산(梁山) 취서산(鷲栖山) 통도사(通度寺) 개간본(동국대학교 소장), 권말에『선교결』이 붙어 있는 1642년(仁祖20) 전라남도 해남(海南) 곤륜산(崑崙山) 대흥사(大興寺) 개간본(국립중앙도서관 소장), 『기암집(奇巖集)』과 합철되어 있는 간행연도 미상의 서울대학교 소장본, 간행연대 미상의 동국대학교 소장본, 간행연대 미상의 묘향장판(妙香藏版) 『청허당집』 권4에 수록된 판본(동국대학교 소장) 등이 있다.

제목에 나타나듯이 선(禪)과 교(敎)의 차이를 해석한 글이다. 사명유정(四溟惟政)을 비롯한 세 제자가『금강경오가해』를 가지고 와서『금강경』을 종지로 삼아도 되는지 묻는 질문에 대답하는 형식으로 시작하여,『화엄경』·『능가경』·『반야경』 등에 대해서도 동일한 질문과 그 각각에 대한 대답이 주어진다. 휴정은 문자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경전을 읽어도 상관이 없다고 전제한 뒤 선과 교를 비교하여 그 특징을 설명하며, 전체가 옛 문헌을 근거 자료로 제시하는 방식을 취한다. 그러나 각 질문마다 경전은 어떤 것이 되었건 모두 특수한 방편에 불과하여 선문의 종지로 삼을 수 없다고 결론짓는다. 여기서 선문이란 모든 방편의 통로를 막는 간화선의 수단이라는 점이 곳곳에 보인다.

1) 선·교의 차이

부처님의 탄생담을 인용하고 그것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를 비판적으로 제시한다. 그 자료는 『선문염송(禪門拈頌)』에서 인용하고 있는데, 이는 분별에 치우친 「설화(說話)」의 해설이 잘못되었다는 점을 들추어내기 위한 것이다. 부처님에게 교외별전의 조사선을 전했다고 하는 진귀조사(眞歸祖師)의 전설도 소개되고 있다. 교외별전의 종지는 교학자들이나 선종의 하근기는 알 수 없다고 결론짓는다.

2) 선종의 교외별전

가섭과 아난은 중생구제를 위해 성문의 몸으로 나타난 응화성문(應化聲聞)의 보살이다. 교외별전을 전수받은 최초의 불제자로 이들이 거론된 이유는 선종의 법맥을 확고히 하기 위한 것이다. 더불어 세존께서 일생 동안 한마디도 설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게송으로 교외별전의 핵심을 드러내고 있다.

3) 원교(圓敎)·돈교(頓敎)와의 차이

원교와 돈교는 교학의 극치를 대표한다. 교학의 궁극적 도리마저 사라진 그 자리에 비로소 선가의 일심(一心)이 드러난다. 원교에서 모든 것을 포용하는 성해(性海)의 교설은 이치로 통하는 길의 함정에 빠져 있을 뿐만 아니라 십종병의 근원에서도 벗어나지 못하여 증득한 경지가 선가의 심인(心印)과 유사한 듯하지만 교외별전의 종지에는 미치지 못한다. 명상(名相)을 완전히 끊은 돈교도 마찬가지로 비교 대상이 되지 못한다. 원교나 돈교는 본질적으로 수행이라는 원인과 그것을 성취하는 결과라는 단계적 자취를 떠날 수 없지만, 선가의 궁극은 원인과 결과가 처음부터 없어 생각으로도 알 수 없고 말로도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처음부터 어떤 시도도 할 수 없도록 주어지는 것이 바로 화두이기 때문에 이 두 교설을 화두의 활구와 반대편에 놓고 엄격하게 구분한 것이다.

4)『능가경』·『반야경』과의 차이

『능가경』의 전수를 선문의 증거로 삼는 선종사가들의 설을 비판한다. 마찬가지로『반야경』도 선문의 종지에서 보면 모두 방편설에 불과한 것이라 한다. 성주화상(聖住和尙) 등이『능가경』 공부를 버리고 당나라에 들어가 선법을 전수받았던 일화를 제기한 의도도 동일한 뜻이다. 덕산(德山)이『금강경소초』를 불태운 인연 등과 더불어 문답을 주고받다가 깨우친 선사들의 사례를 들고 그 모든 것의 근거는 경전이 아니라 바로 심인(心印)이라고 결론짓는다.

5) 고덕들의 문답

신라 문성대왕(文聖大王)과 무염(無染)의 문답 그리고 강설자와 나계(螺磎)국사의 문답이 수록되어 있는데, 여기에서 선과 교의 차별에 따라 교외별전의 종지를 드러내고 있다.

6) 교학자들과의 문답

바로 앞의 문답에 이어서 선과 교를 대칭적으로 드러낸다. 교법(敎法)만 중시하고 마음을 가볍게 여기는 교학자들의 태도를 비판하는 동시에 선가는 진실을 보는 안목과 그것을 구현하기 위한 실천을 동시에 갖추었다고 주장한다.

발문(跋文)에는 교학자와 선학자의 문답이 수록되어 있다. 교학자가 경전의 근거를 가지고 묻고 선학자가 선사의 입장에서 조명하여 대답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지만, 대부분 선가에서 전해져 내려온 문답에 근거를 둔 선문답의 일종이다. 모든 교학적 개념과 인식 틀에 들어 있는 가치를 무너뜨려 더 이상 의지처가 되지 못하도록 만드는 선가의 안목을 보여 준다. 이 문답은 당시 실제로 있었던 것인데 휴정이 『선교석』의 발문으로 쓸 만하다고 판단하여 붙인 것으로 되어 있다.

5.『선교결』

1642년(仁祖20) 전라남도 해남(海南) 곤륜산(崑崙山) 대흥사(大興寺) 개간본을 저본으로 한『한국불교전서』 권7 pp.657b~658a를 토대로 번역했다. 이것은『선교석』과 합철된 판본이다. 그 밖에 1630년(仁祖8) 경기도 삭녕(朔寧) 용복사(龍腹寺)에서 간행한 7권본『청허집』권4에 수록된 본문(동국대학교 소장), 1666년(顯宗7) 동리산(桐裡山) 태안사(泰安寺)에서 개판한 2권본『청허집』 권하에 수록된 본문(동국대학교 소장), 간행연대 미상의 묘향장판(妙香藏板) 4권본『청허집』에 수록된 본문(동국대학교 소장)등의 판본이 있다.

첫머리에 나타난 것처럼 이 글은 선과 교의 쓸모없는 쟁론을 해결하기 위한 목적에서 지어졌다. 휴정은 이 쟁론을 화해시키는 길은 선과 교의 차이점을 분명하게 인식하는 데서 출발한다고 본다.

교에서는 근기의 차별에 따라 서로 다른 방편을 시설하지만, 선은 그 모든 방편의 그물을 벗어난 일종의 용(龍)과 같은 존재를 이상적 인물로 내세운다. 그것이 바로 교외별전의 근기이다. 하지만 선가에도 겉모습만 흉내 내고 그러한 종지와 부합하지 못하는 근기가 많기 때문에 휴정은 이를 집어내어 하나씩 비판한다.

휴정이 비판의 근거로 수용한 교외별전이란 사실상 조사선과 간화선을 말한다. ‘마음의 길이 끊어진 경계[心路絶]’를 궁구해야 교외별전의 종지를 알 수 있다고 한 말에 그 숨은 뜻이 드러난다. 이 경계는 간화선에서 말하는 화두의 본질 또는 그것이 실현된 경계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어서 예로 드는 염화미소부터 후대 조사들의 기연들은 조사선에서 제기된 본보기이며 이들은 모두 마음의 길을 끊어 놓는 화두 바로 그것이다. ‘모기가 무쇠소 등에 올라탔다’라고 비유한 말도 이들 기연이 분별로 접근할 수 없는 철벽과 같다는 뜻을 나타낸다. 그것은 이로(理路)·의로(義路)·심로(心路)·어로(語路) 등 모든 방법이 차단된 궁지에서 궁구하여 칠통(漆桶)을 타파하는 교외별전의 소식이며, 어떤 절차와 단계도 없이 처음부터 소식이 없는 은산철벽이라는 목적지에 곧바로 세워진다. 이 때문에 이를 가리켜 경절문(徑截門)이라 한다.

경절문의 화두는 달리 말하면 활구(活句)라 한다. 시종일관 어떤 맛도 없는 활구를 제대로 전달하려면 이 말 저 말 끌어 들여 친절하게 설명을 늘어놓아서는 안 된다. 그것은 오히려 화두의 본질을 엄폐하는 역효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활구는 하나의 구체적 내용이 아니라 ‘말이 없는 경계’를 말이 없는 것으로 고스란히 유지하는 방식의 언어를 구사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마지막에 마조의 할(喝)에 백장이 삼일 동안 귀가 먹은 일화를 들고 이것을 임제종의 연원이라 일러준다. 할은 활구를 활구로 살아 있게 하는 소리라는 점에서 화두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6. 『청허집』

여기서 발췌한 원문은『한국불교전서』권7에 수록된 것을 토대로 한다. 그 저본은 숭정(崇禎) 3년(1630) 경기도 삭녕지(朔寧地) 용복사(龍腹寺)에서 간행한 7권본으로, 권1~3은 서울대학교에, 권4~7은 동국대학교에, 권5~7은 이병주(李丙疇)가 각각 소장하고 있다. 그 밖의 판본으로는 간행연대 미상의 2권본(李丙疇 소장), 간행연대 미상의 2권본(고려대학교 소장), 간행연대 미상의 2권본(동국대학교 소장), 1666년(顯宗7) 동리산(桐裡山) 태안사(泰安寺)에서 개판한 2권본(동국대학교 소장) 등이 있고, 간행연대 미상의 묘향장판(妙香藏板) 4권본은 국립중앙도서관·한국학중앙연구원도서관·동국대학교 등에 소장되어 있다.

1) 조사심요(祖師心要)

조사가 대대로 전한 심요를 깨우치는 방법에 대하여 제자 완허원준(玩虛圓俊 1530~1619)에게 문답 형식으로 준 글이다. 지눌의『수심결』을 비롯하여『최상승론』·『완릉록』·『임제어록』등에서 자기 본래의 부처를 부각하는 문장을 인용하고 있다. 자신의 눈으로 자신의 눈을 볼 수 없듯이 자기 자신의 마음이 부처라는 진실을 분별로 알 수 없다. 다만 눈을 잃어버린 적이 없다고 아는 그 자체로 눈을 본 것과 같을 뿐이다. 이 비유로써 불도를 성취하고자 마음 밖에서 구하려는 시도가 허망한 결과를 초래할 수 밖에 없다는 근본적인 수행의 방향을 제시한다.

선과 악 또는 부처와 중생 등을 갈라서 분별하지 않는다면 본래의 부처 그대로가 된다. 이것을 자성불(自性佛)이라 한다. 눈앞에서 법문을 듣는 모든 당사자가 바로 불보살이라는 『임제어록』의 말을 통하여 자성불을 밖에서 찾는 망상을 부정하고 수행의 바른 방향을 강조하는 것으로 맺는다.

2) 선문귀감서(禪門龜鑑序)

1564년에 휴정 자신이 쓴『선가귀감』「서문」이다. 당시 불도를 배우는 자들이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경전의 소중함을 모르고 여타의 책들에 매몰되어 있는 현실을 개탄하는 심정을 담아 적은 글이다. 보배와 같은 대장경의 말씀은 대단히 넓고 깊어 그 요지가 되는 글을 선별하여 간략한 글에 핵심이 되는 뜻을 골고루 실었다고 말한다.

3) 염불문(念佛門)

입으로 부처님의 명호를 소리 내어 읊고 동시에 마음에서 놓치지 않고 한결같이 생각하는 방법이 염불의 요령이다. 염불은 오랜 겁 동안 쌓은 업의 굴레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간명한 수행법이다. 염불 수행에는 근기의 차별에 따라 두 가지 설정이 있다. “마음이 부처”라는 선가의 모토에 따라 본성에 아미타불이 계시다는 자성미타(自性彌陀)사상이 그 하나이고, 10만 8천 리 거리에 있는 서방정토에 왕생하려면 십악(十惡)과 팔사(八邪)를 제거해야 한다는 생각이 다른 하나이다. 앞의 것은 상근기에 적합한 설정이고 뒤의 것은 하근기를 유도하기 위한 방편이다. 휴정은 자성미타 또는 자심정토(自心淨土)로써 돈오돈수(頓悟頓修)를 부각하면서 동시에 한순간에 이루어질 수 없고 수많은 세월의 수행을 거쳐야 한다는 점수의 측면도 강조한다.

4) 참선문(參禪門)

『태고어록(太古語錄)』의「답방산거사(答方山居士)」와「시중(示衆)」에서 따온 글이며, 빈틈과 끊어짐이 없이 화두를 참구하는 요령에 대하여 제시하고 있다.

5) 자락가(自樂歌)

모든 직분을 버리고 은거하며 사는 수행자의 소탈한 풍모를 그리고 있다. “머무는 그대로 진실하고 행하는 그대로 평온한” 서산 자신의 흥겨운 경계를 묘사한 글이다.

6) 완산 노부윤에게 올리는 편지

7) 완산 노부윤에게 다시 올리는 편지

자신의 성장배경과 출가 인연 그리고 그 뒤의 수행 과정이 자세히 나타나 있는 편지이다.「행장」의 전반부를 구성하는 주요한 소재가 되었다.

8) 부모님께 올리는 제문

57세 때 병중에 사람을 시켜 제수(祭需)를 보내고 어머님의 자애로움과 아버님의 엄격한 성품을 추억하면서 쓴 제문이다.

9) 교가(敎家)의 스님에게 답하는 편지

이전에 선(禪)과 교(敎)의 관계에 대하여 상세히 설명해 주었으나 편지를 받고 보니 그 뜻이 아직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답답한 심정으로 쓴 답장이다.

10) 벽천(碧泉)도인에게 부치는 편지

학인을 단련시키는 방법과 수행자로서 갖추어야 할 자세 등을 담아서 전해 준 격려의 편지이다.

11) 동호선자에게 부치는 편지

허망한 무리들과 몰려다니는 동호선자를 질책하며 훈계한 편지이다. 남의 장단점을 들먹이거나 정치에 관심을 갖지 말고 수행자의 본분으로 돌아가 부지런히 공부하라는 뜻을 담았다.

12) 오대산 일학장로에게 부치다

어떤 견해에도 좌우되지 말고 하루 어느 시각에나 본래 참구하고 있던 화두를 공부하라고 전하면서 화두 이외의 다른 모든 생각이 끊어진 경계에서 헛된 것에 미혹되지 말라는 뜻을 강조하고 있다.

13) 박학관에게 답하는 편지

『장자』의 은둔적 삶에 경도된 박학관에게 시끄러운 도시와 한적한 촌락을 구별하며 살지 말라는 취지의 답장이다.

14) 박수재에게 답하는 편지

고시(古詩) 두 수에 대하여 구절마다 본분의 안목에서 짤막하게 착어(著語)를 붙이고, 선정(禪定)의 적(寂)과 지(知) 그리고 유가의 격치(格致)와 충서(忠恕)를 가리키는 뜻이 들어 있다고 밝혔다. 유교와 불교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취지가 은근히 들어 있는 편지이다.

세부 목차

1. 淸虛堂行狀 청허당행장

금강산퇴은 국일도대선사 선교도총섭 사자 부종수교 겸등계 보제대사 청허당행장

金剛山退隱國一都大禪師禪敎都摠攝賜紫扶宗樹敎兼登階普濟大師淸虛堂行狀…055

2. 禪家龜鑑 선가귀감

일물(一物) 1 ~ 4 …069

교외별전(敎外別傳) 5 ~ 7 …081

선교(禪敎)의 동이점(同異點) 8 ~ 11 …091

화두 참구와 그 요소 12 ~ 26…101

마음의 근원 27 ~ 36…129

실천의 조목 37 ~ 51…141

염불(念佛) 52…159

경전의 인연 53 ~ 54…171

수행에 대한 경책과 바른 길 55 ~ 74…175

병통과 화두의 본질 75 ~ 77…211

각 종파의 법계와 법문의 특징 78 …217

임제종臨濟宗…218 조동종曹洞宗…220 운문종雲門宗…221 위앙종潙仰宗…222 법안종法眼宗…

223 임제가풍臨濟家風…224 조동가풍曹洞家風…225 운문가풍雲門家風…237 위앙가풍潙仰家風…237 법안가풍法眼家風…230 별명임제종지(別明臨濟宗旨)…233 삼구三句…233 삼요三要…234 삼현三玄…235 사료간四料揀…236 사빈주四賓主…236 사조용四照用…238 사대식四大式…239 사할四喝…241 팔방八棒…242 방(棒)과 할(喝)의 본질 79…245 맺음 80 ~ 81…247

발跋 1…253

발跋 2…258

발跋 3…259

3. 心法要抄 심법요초

심법요초서心法要抄序…263

심법요초心法要抄…265

교학자의 병敎學者病…268

선학자의 병禪學者病…269

삼승학인의 병三乘人病…270

참선문參禪門…281

염불문念佛門…284

삼종정관三種淨觀…287

선송禪頌…290

염송念頌…296

교가오십오위敎家五十五位…300

교외별전곡敎外別傳曲…301

초발심보살의 수행初發心菩薩修行…310

대승인의 수행大乘人修行…310

선가에서는 지해라는 두 글자가 가장 큰 병禪家知解二字最爲病…311

상근대지가 스스로 깨달은 경계上根大智自悟處…312

사람은 모두 본래부터 태평하다人人本太平…313

당사자 스스로 수긍하여 깨닫는 경계當人自肯悟處…313

부처님이 설한 삼구佛說三句…314

법에는 본래부터 병이라는 귀신이 없다法中本無病鬼…315

본래의 법에는 본디 견해가 없다本法本無見…316

스승과 제자 간에 전수할 것이 없다師資無傳授…318

지혜가 없는 치우친 견해無慧偏見…319

간기刊記…321

부록附錄…323

강서·백장·황벽·임제 4대사 상당서江西百丈黃蘗臨濟四大師上堂序…323 서산이 완허당에게 준 전

법게西山贈玩虛堂傳法偈…326 완허당임종게玩虛堂臨終偈…327 간기刊記…328

4. 禪敎釋 선교석

서序…331

선교석禪敎釋…333

선·교의 차이…333

선종의 교외별전(敎外別傳)…338

원교(圓敎)·돈교(頓敎)와의 차이…340

『능가경』·『반야경』과의 차이…347

고덕들의 문답…353

교학자들과의 문답…356

발문跋文…359

5. 禪敎訣 선교결

선교결禪敎訣…367

6. 淸虛集 청허집

조사심요祖師心要…379

선문귀감서禪門龜鑑序…387

염불문念佛門…389

참선문參禪門…393

자락가自樂歌…395

완산 노부윤에게 올리는 편지上完山盧府尹書…399

완산 노부윤에게 다시 올리는 편지再答完山盧府尹書…413

부모님께 올리는 제문祭父母文…417

교가(敎家)의 스님에게 답하는 편지答敎師書…423

벽천도인에게 부치는 편지寄碧泉道人書…425

동호선자에게 부치는 편지寄東湖禪子書…427

오대산 일학장로에게 부치다寄五臺山一學長老…431

박학관에게 답하는 편지答朴學官書…437

박수재에게 답하는 편지答朴秀才書…443

● 찾아보기 .................................................451

● 역주자 .....................................................483

● 한국전통사상서 간행위원회 ................485

● 한국전통사상총서 .................................4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