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Ⅰ. [금강경 오가해]에 대하여
[금강경 오가해(金剛經五家解)]란, [금경경]에 관한한 다섯 명(五)의 전문가(家)가 각 자의 견해(解)를 풀이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함허득통 스님이 보충설명(설의說誼)까지 합하면, 六家解라고 말할 수 있다.
또, 규봉스님의 소(疏)에는 미륵보살의 80송(頌)과 무착論, 천친論 까지 합하면, 九家解라고도 말 할 수 있다.
● 五家解, 다섯 분의 행적 약술
1. 쌍림 부대사 (497~570) ; 梁나라 사람. 16세에 결혼하였고, 24세에 인도의 승려 숭두타를 만나 불교에 귀의함. 낮에는 품팔이하고 밤에는 아내와 함께 정진하였다.
2. 육조 대감(638~713) ; 육조 혜능대사이다. 唐나라 남해 신흥 사람. 오조 홍인대사로부터 法을 이어받음 (*육조단경 참조)
3. 규봉 종밀(780~841) ; 唐나라 사람. 27세에 수주도원에서 禪을 닦음. 징관 국사의 제자. 시호는 정혜(定慧)선사 이다.
4. 예장 종경 ; 전기미상. 明나라(1551) 堂連序에 의하면, 종경 선사는 나한의 한 분으로 자비와 지혜가 깊고넓었다고 함.
5. 야부 도천(1127~1130 ? ) ; 宋나라 사람. 생몰연대 확실치 않음. 임제 선사의 6세손. 도겸 선사에게 도천이라는 호를 받음.
그리고,
* 함허 득통(1376~1433) ; 조선시대. 충북 충주사람. 21세에 관악산 의상암에서 출가. 22세에 경기도 양주 회암寺에서 무학대사로부터 法을 들음. 1420년 강원도 월정사에서 세종대왕의 청법에 의해 설법한 적이 있음.
* 구마라즙(Kumarajiva;343~413) ; 인도人 부친과 구자국 왕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7세에 출가하였다. 전쟁으로 인해, 후진(後秦)의 장안으로 초빙되었다. 장안의 서명閣과 소요閣에서 13년 동안 [경. 율. 론] 등 380 여권을 한문으로 번역하였다.
이 금강경은 홍시 4년(402) 장안 초당사에서 가장 먼저 번역되었다.
스님은 후진 홍시15년(413) 세수 70세로 입적하다.
● [금강경]에 대한 간단한 소개.
[금강경]은 우리나라에 있어서 [화엄경]과 더불어 쌍벽을 이루며, 가정 폭넓게 읽히고 읽는 애독經이다. 이 경전은 부처님과 수보리의 대화로 시작되는 空사상을 문답형식으로 엮어진 한 권의 경전이다.
[금강경]의 구체적인 이름은 [금강반야바라밀경(구마라즙 譯)]이다. 혹은 [能斷금강반야바라밀경(현장 譯)]이라 한다.
이 [금강경]은 大반야경 600部 중에서 577권에 해당되며, 그 내용이 약300頌 정도의 분량이다. 해서, “300송 반야경”이라고도 하며, 성립시기는 대략 서기150~200년으로 추정되는 초기 대승경전 이다.
Ⅱ. [금강경 오가해]의 내용정리 -
* 무비스님.[금강경 오가해].불광출판부.1995./ 한정섭. [금강경오가해]. 법륜사. 1980. 참조함
序 (머릿말) | 내용요약(부대사序는 없음) |
함허득통序 | 여기에 한 물건이 있으니, 이름과 모양이 끊어졌으되 고금에 관통하고 하나의 티끌에 있으면서도 육합(四方.상.하)에 두루한다 … “육조혜능, 규봉종밀, 야부도천, 쌍림 부대사, 예장종경” 이 다섯 큰스님들은 人天의 스승이고 法海의 돌아갈 곳이다 … 영락 을미 6월에(1415년) 삼가 서문을 쓰노라. |
육조혜능序 | 대저 금강경은 無相(모양없음)으로 宗을 삼고 無住(머무름없음)로써 體를 삼고 묘유(妙有;진공묘유)로써 用을 삼는다 … |
예장종경序 | 무릇 공여래장(空如來藏)을 觀하고 조사관(祖師關)을 부수어 참되고(眞) 항상한 것(常)이 홀로 드러나면 반야(般若)아닌 것이 없도다 … |
규봉종밀序 | 마음의 거울은 본래 청정하고 형상인 모습은 원래 空함이라 … |
야부도천序 | ○ (圓相) 法은 홀로 일어난 것이 아니다. 누가 이름을 지었는가 … 古今사람이 알지못하여 방편으로 이름을 금강(金剛)이라 하였네. |
[금강경] 순서 | 내용요약 | |
第 1. 법회인연분 (법회가 이루어진 동기) |
[금강경]의 서분(序分)에 해당됨. “이와같이 내가 들었다.(如是 我聞) 어느때(一時) 부처님께서(佛)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큰 비구 1250인과 함께 계셨다. 그때에 세존께서 때가되어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사위성에 들어가서 차례로 걸식을 마치시고, 다시 본래의 처소로 돌아오시어 공양을 마치시고 가사와 발우를 거두시어 발을 씻으신 뒤 자리를 펴고 앉으셨다. * 序分이 이뤄져야 할 여섯가지 원칙(六成就) ①무엇을(信성취)- 여시(如是)/들은 사람이 들은 법을 믿음 ②누가들었는가?(聞성취)- 아문(我聞 ; 다문제일 아난존자) ③언제(時성취) - 일시(一時) ④누가 설했는가?(主성취) - 불(佛) ⑤어디서(處성취) - 장소 ⑥누구와 함께(衆성취) - 대중무리 ; 1250인 등과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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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봉 | 과표로 나누어서 해석함 - *규봉스님의 과표분류는 생략하였음. - 과표는, 무비스님의 [금강경오가해]. 불광출판부. p 573 참조 要 ꠆ꠏ 증신서(證信序)-이와같이 내가 들었다~1250인과 함께 계셨다. ꠆ꠏ 서분 ꠏꠏꠍꠏ 발기서(發起序)-그때에 세존께서~자리를 펴고 앉으셨다. ꠉꠏ 정종분(본론부분) ꠌꠏ 유통분(종결; 第32分 끝부분 - “부처님께서 이 經을 설해 마치시니, 장로수보리와 모든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와 일체 세간의 천상과 인간과 아수라 등이 부처님의 설하심을 듣고, 모두 다 크게 환희하며 신수봉행(信受奉行)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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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조 | (如是我聞) ; 如란 가리키는(指) 뜻이고, 是는 결정(定)된 말이라. 아난이 “이와같은(如是) 법을 부처님으로부터 나는 들었다(我聞)” … | |
야부 | (如是我聞) ; 如是란, 지금 야부는 대개 有와 無 가 둘이아님(不二)을 如라 했고, 有와 無가 아닌 것을 是로 삼은 것이다. 我여! 하늘을 가리키고 땅을 가리키며 홀로 서 있는 사람이로다. 聞이여! 본래 한 정명(精明)이 나뉘어져서 여섯 개로 화합(六和合; 육근+육경=육식)이 되었으니, 화합된 곳에서 깨달으면 보는 처소가 참으로 듣는 것이라. … | |
부대사 | (공양을 마치시고 가사와 발우를 거두시어 발을 씻으신 뒤 자리를 펴고 앉으셨다.) ; 法身은 본래 먹지 않음이오, 응신. 화신도 그러하거늘, 人天의 이익을 위해서 자비로서 복밭을 지으셨도다. 가사를 거두심은 수고로움과 번거로움을 쉼이오, 발을 씻으심은 번뇌의 인연을 떠남이라. 三空(我空,法空,我․法 俱空)의 이치를 설하고자 가부좌하시고 선정에 들어가심을 보이셨도다 | |
육조 | (차례로 걸식을 마치시고) 걸식이란, 여래께서 능히 일체중생에게 下心을 보이신 것이오, ‘차례로’ 하였음은 빈부를 가리지않고 평등하게 교화하심이라… | |
야부 | 공양하시고 발을 씻으신 다음에 자리펴고 앉은 것은 누구와 함께 한 것인가? 아래의 긴 글을 아는가, 모르는가! 보고 보아라. 평지에 파도가 일어나도다. | |
함허 보충설명(說誼) | (유마거사가 비얄리성에서 가만히 앉아 묵언으로써 不二법문을 설하심과 같이, 부처님이 자리를 펴고 앉은 그곳에 不二법문이 없겠는가.) 여기에서 상상근기를 제외하고는 부끄러움을 면치못할 것이니, … 부처님께서 중하근기를 위해서, 言說의 바다에 몸을 비껴들어가시니 동설서설하시고 횡설수설하시니라… 온천지가 본래 淸平세계(평지, 불국토)거늘 부처님이 괜히 청평세계를 향하여 창과 갑옷을 만들어놨으니, 가히 일없는 가운데 일을 만들었도다. 故로, “보고 보아라. 평지에 파도가 일어나도다”(야부 言) | |
종경 | 조어사(佛)께서 걸식하고 돌아와서 가사를 거두시고 자리펴고 편안히 앉으시니, 참다운 자비와 큰 모범이, 三界를 초월하여 人天을 조어(調御)하여 스스로 如如함을 얻으셨도다. |
第 2. 선현기청분 (선현이 법을 청하 다) |
금강경 [정종분(正宗分)-반야의 종취를 나타냄]이 시작 ~ 第32分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 까지 임. 그때에 장로수보리가 대중가운데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에 가사를 걷어메고 오른 무릎을 땅에 꿇고 합장하고 공경히 사루어 말씀하였다. “희유하십니다, 세존이시여 !. 여래께서는 모든 보살들을 잘 보살펴주시며 모든 보살들께 잘 부촉하십니다.” |
규봉 | 장로(長老)라 함은 德이 높고 나이가 많음이라.(德長年老) … 수보리는, 세가지로 번역하니 ‘선길(善吉). 선현(善現). 공생(空生)’ |
육조 | 장로라 함은, 덕이 높고 나이가 높음(德尊年高). 수보리는 해공(解空 ; 空의 이치를 잘 이해함)이오, “희유(希有)” 세가지 뜻이니, ①능히 금륜의 왕위를 버림 ②신장(身長)이 장육(丈六), 얼굴이 금색광명과 32相 80種好가 삼계에 비교할 데 없음 ③부처님의 성품이 능히 8만 4천 법을 머금기도 하고 토하기도 하시어, 삼신(三身; 법신.응신.화신)이 원만히 갖추어져 있음 |
야부 | 여래가 한마디도 하지않으셨거늘, 수보리가 “희유하십니다”라고 문득 찬탄하였으니, 눈을 갖춘 훌륭한 무리들은 시험삼아 잘 착안해 보라. “담너머 뿔을 보면 문득 소인줄 알고, 산너머 연기를 보면 문득 불인줄 알도다. 홀로 앉아 높고 높음이여! 천상천하이거늘, 남북동서에서 거북과 기와로 점을 치도다. 악! ” |
함허 설의(說誼) | 서로 만나서 말을 꺼내지않더라도 뜻을 들면 문득 아는 자가 있으니, 이 무슨 경계인가. 道가 같아야 바야흐로 알 수 있도다. “불을 알고 소를 아는 일은 희귀하니, 지음자(知音者, ‘열자(列子)’에 나옴. 백아는 거문고를 잘 타고 그의 벗 종자기는 그 거문고 타는소리를 들으면, 백아의 心中을 잘 알았다. 어느때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거문고 줄을 끊고 더이상 거문고를 타지않았다.)가 서로 보는 것이 정히 이와같도다… |
“세존이시여, 선남자 선여인이 최상의 올바른 깨달음(아뇩다라삼먁삼보리)을 얻고자 보리심을 낼진대, 마땅히 어디에 자기 마음을 머무르게 해야하며, 어떻게 자기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까 ? ” | |
육조 | 선남자란 평탄한 마음(평탄心)이며 바르고 결정된 마음(正定心)이니 능히 일체의 공덕을 성취해서 가 곳마다 장애가 없음. 선여인이란, 바르고 지혜있는 마음(正慧心)이니 일체의 유위와 무위의 공덕이 나옴이라(出). 수보리의 질문은, 수보리가 일체 중생을 보니 중생들의 마음은 조급하고 흔들리고 머물지 못하는 것이 마치 문틈으로 비치는 먼지와 같으며, 흔들리는 마음은 회오리 바람같아서…, 수행하고자 하면 그런 마음을 어디에 머물게 하며 어떻게 항복받아야 합니까? |
야부 | (수보리) 이 한 질문은 어느 곳으로부터 나왔는가? “너는 기뻐도 나는 기쁘지 않고, 그대는 슬퍼도 나는 슬프지 않다. 기러기는 북쪽으로 날아갈 것을 생각하고 제비는 옛집으로 돌아올 것을 생각하는구나. 가을달과 봄의 꽃에 담긴 무한한 뜻은(본래의 참모습), 그속에서 다만 스스로 알 뿐이로다? |
함허 설의 | 法과 法이 모두 텅비고 융통해서, 法은 가히 머물 곳이 없으며, 마음과 마음은 적멸해서, 마음을 가히 항복받을 것이 없으니, 지금의 ‘머무르고 항복받고자 하는 두 가지 물음’은 도대체 어느 곳으로부터 나왔는가? “너는 마음이 住하고 항복받으면 기뻐하고 그렇지않으면 슬퍼하고 근심하지만, 나의 이 세계는 본래 스스로 맑고 고요해서 ‘정리되고 정리되지않음’이 모두 없으니, 무엇에 슬퍼하고 무엇에 기뻐하랴. 마치 기러기가 저 북쪽을 생각하는 것과 제비가 옛집을 생각하는 것과 같으니, 어찌 슬퍼하고 기뻐하는 것으로써 마음을 삼겠는가? 다만, 일단의 空이 오고감에 자유로울 뿐이로다 … ” |
佛言하사대, “선재 선재라, 수보리여! 그대가 말한 바와 같이 여래는 모든 보살을 빠짐없이 보살피고 모든 보살에게 잘 부촉해준다. 그대를 위해 말할테니 나의 말을 잘 들오보라. 선남자와 선여인이 최상의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보리심(아뇩다라삼먁삼보리心)을 낼진대, 마땅히 마음을 이렇게 머루르게 해야하고 이렇게 다스려야 하느니라.” -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唯然 世尊) ! 가르침을 기쁜 마음으로 듣고자 합니다.(願樂欲聞)”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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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봉 | (唯然 세존) ; 唯은 순종하는 말. 십지經에 “목마른 자가 냉수를, 주린 자가 음식을, 병자가 약을 찾듯이 벌떼가 꿀에 매달리 듯이 하여, 佛法을 듣고자 함이라. | |
육조 | (선재 선재) ; 수보리를 찬탄하는 말이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 ; [아]는 無이고 [뇩다라]는 上이요, [삼]은 正이고 [먁]은 편(두루미침) [보리]는 知. … 唯然은 응락하는 말. 원요(願樂)의 願은 부처님이 중.하근기를 위하여 널리 설하여 모두 깨닫기를 원함이오, 樂은 깊은 법을 즐거이 들음임. 欲聞이란 자비스러운 가르침을 간절히 바램. | |
부대사 | “희유하고 희유하신 부처님이시여, 묘한 이치가 지극히 고요하여라. 아떻게 항복하고 머무른다 함인가, 항복하고 머문다는 것은 어려웁도다. 두 가지 위의(항복, 머무름)는 法가운데에 묘한 것이나, 三乘(성문.연각.보살)에게 가르쳐줌은 지극히 너그러웁도다. 선재라, 이제 자세히 들으라 함이여, 여섯도적(육근;안.이.비.설.신.의)의 막힘이 툭 트였도다” | |
야부 | “손이 일곱에 다리가 여덟이오, 神의 머리에 귀신의 얼굴이라. 방망이로 쳐도 열지못하고, 칼로 베어도 끊지 못하도다.…” | |
함허 설의 | 신비한 쓰임은 자유스럽고 묘체는 보기 어려움이라. 흔들고 튕겨봐야 얻지못하고, 견고해서 무너뜨리기 어렵도다. 생사의 길에서 몇 번이나 왕복했던가. 발자취는 원래 청정하여 허공과 같도다. | |
종경 | “묻는 곳도 높고 답한 곳도 깊으니, 미묘하고 원만학고 참되고 청정하여 찾을 수 없어라. 언뜻 이 실마리를 알면, 묵묵히 보리의 大道心에 계합하리라.” | |
함허 설의 | 一問과 一答에 묘한 이치가 그 안에 있으니, 미묘하고 원만하고 참되고 청정함을 다른 데서 찾지말라.… | |
第 3. 대승정종분 -대승의 바른종지(마음 머무는 법) | 부처님이 수보리에게 말씀했다. “모든 보살 마하살은 마땅히 이렇게 자기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이른바 (보살들이)일체 중생의 종류인 난생.태생.습생.화생.유색.무색.유상.무상.비유상.비무상을 무여열반에 들어가게 해서 그들을 모두 제도(滅度)하였다고 하자, 이와같이 한량없고 셀 수 없고 가없는 중생들을 제도하더라도 실로는 제도된 중생이 없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아相.인相.중생相.수자相’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으면 ‘보살’이라고 할 수 없기때문이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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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조 | 보살이란, 앞생각이 청정하고 뒷생각이 청정함이오, 자비희사 갖가지 방편으로 중생들을 교화함이다. 마하살이란, 생각생각이 물러서지 않으며 비록 세상가운데 있으나, 마음이 항상 청정함이오, 교화하는 사람이나 교화받는 사람이나 일체 집착하는 마음이 없다. 난생은 어리석은 성품(迷性)이고, 태생은 익힌 습성(習性)이고, 습생은 삿됨을 따르는 성품이고, 화생은 보고 나아가는 성품(見趣性). 망령되이 시비를 보아 無相의 이치에 어긋난 것은 有色, 복과 지혜를 닦지않음은 無色, 입으로는 부처님의 行을 말하면서도 실천하지 않는 것은 有想, 목석처럼 좌선만 하면서 자비희사를 배우지 않는 것은 無想, 유․무에 집착하지 않는 것은 非有想, 이치를 구하는 마음이 있는 것은 非無想 … 멸도(滅度)는 대해탈이라. 사상(四相)이 있으면 무여열반에 들지못하니 곧 중생이오, 四相이 없으면 곧 부처니라. |
부대사 | “수보리가 처음 물음을 청함에, 부처님이 근기에 맞게 답하시니, 먼저 ‘어떻게 머무르는가’를 답하시고 다음엔 ‘이와같이 닦음”을 가르치셨도다. 태생,난생,습생,화생을 다 대자비의 지혜로써 거두시게 하시니, 만약 중생의 견해를 일으킨다면 도리어 相에 집착하여 구하는 것이라.” | |
야부 | 이마는 하늘을 향하여 땅위에 서 있고, 코는 수직으로 있으며, 눈을 가로놓여 있네. “당당한 大道여, 발고밝아 분명하도다. 사람마다 본래 갖추어져있고 낱낱이 원만하게 이루어졌도다. 단지 한 생각 미끄러져서 만 가지 형상이 나타나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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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허 설의 | 한 법계로부터 형상이 아홉가지로 나뉘어 갖가지 모양이 한 법계를 갖추었네. 故로, 낱낱이 머리는 하늘을 가리키고 다리는 땅을 밟고, 코는 아래로, 눈은 옆으로 있음이로다. “당당한 대도여, … 사람마다 본래 갖추어져 있어서 옷입고 밥먹는 것은 다른사람에게 要함이 아님이요, 모두 다 원만하게 이룸이여… 봄바람이 불면 꽃들이 땅을 수놓고, 구름이 걷히면 달빛이 하늘에 가득하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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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경 | 열반청정이여!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다 귀의하게 하고, 四相을 모두 잊음이여! 실로 중생을 제도함이 없으니 … 알겠는가. 생사열반이 본래 평등하니 妄心 다한 곳이 곧 보리이로다. “깨친 눈으로 살펴보니, 실로 열반에 든 중생이 없고, 生死가 둘이 아님을 알겠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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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허 설의 | 자비로써 중생을 교화함은 없지않으나, 나다 남이다하는 생각이 역연함을 어찌할까. … “중생을 다 제도하되 제도함이 없으니, 중생과 부처가 모두 눈 속의 꽃이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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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4. 묘행무주분 - 미묘한 行은 머뭄이 없음 | 또 수보리야, 보살은 마땅히 그 어디에도 집착함이 없이 보시를 해야한다. 가령 어떤 모양에도 집착함이 없이 보시해야 하며, 어떤 소리. 냄새. 맛. 감촉. 의식의 대상에도 집착하지 말고 보시해야 한다. 수보리야, 보살은 마땅히 이와같이 보시하여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보살이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보시를 하면 그 福은 헤아릴 수 없을만큼 크기 때문이다. 수보리여, 그대는 어떻게 보느냐? 동쪽 허공의 크기를 상상할 수 있겠느냐? -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여, 남쪽. 서쪽. 북쪽 그리고 4가지 간방, 위, 아래의 허공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겠느냐? - “도무지 짐작할 수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여, 보살이 어디에도 집착함이 없이 보시를 할진대, 그 福 또한 허공과 마찬가지로 상상할 수가 없느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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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봉 | 論에 이르되, 주는 물건, 주는자, 받는 자를 보지않는다 | |
육조 | 능히 보시한다는 마음도 없고, 베푸는 물건도 보지않으며, 받는 사람도 부별하지 않는 것을 “무주상보시(相에 머물지않는 보시)”라 한다. 이러한 보시를 행하여 널리 일체 모든 생명을 공경하면, 그 공덕이 끝이없어 가히 헤아릴 수 없다. |
부대사 | 단바라밀 보시송에 이르되, 보시는 육도만행에 통하고 육도만행은 세가지 보시로 묶는다. 물질보시(財), 두려움 없게하는 보시(無畏), 法보시를 길러 聲色이 서로 가섭하지 않도다…/시라바라밀 지계송에 이르되, 시라가 청정함을 얻음이여…세속에 있으되 세속에 물들지않으며, 방편으로 이구지(離垢地)를 의지하여 마땅히 법왕신을 증득해야 하리라./찬제바라밀 인욕송에 이르되, 참는마음은 허깨비.꿈.거북이 털(본래없는 것=空)으로 觀하면, 어려움을 만날수록 더욱 견고해지나니, …탐진치 도적을 물리치고자 하면 모름지기 지혜의 칼을 써야하리다./비리야바라밀 정진송에 이르되, 염지(焰地). 二智(근본지.후득지). 三空마저도 제거해야 함이로다. 마음을 觀함에 끊일사이가 없으면, 어찌 무여열반에만 이르리요/禪바라밀 선정송에 이르되, 禪의 물은 물결따라 고요해지고 定의 물은 파도를 쫓아서 맑아지도다…의타기성(依他起性,他에 의해 일어남)을 안다면, 달리 圓成(覺性)이 있지 않느니라./반야바라밀 지혜송에 이르되, 지혜의 등불은 밝은 해와 같으며…묘한 지혜의 원만한 빛이 비치면 一空(我空)의 이름을 얻음이라/만행齊修頌에 이르되, 我․人이 없음을 깨달아 二空을 바야흐로 점점 증득하고 삼매에서 마음대로 노닐도다 |
야부 | 만약 天下에서 행하고자 하면, 한 가지 재주를 뛰어나게 할지니라. “중국의 좋은 비단에 꽃을 수놓으니 색이 더욱 곱구나. 분명한 뜻을 알고자 할진대 남쪽을 향하여 북두칠성을 볼지어다…” |
함허 설의 | 재주있는 자가 천하를 행하면 가는 데마다 스스로 얻으니 그 즐거움은 가히 말하지 못하리라… “반야지혜로 바탕을 삼고 만행의 꽃으로 무늬를 놓으니, 비단위에 꽃을 더한 듯 색이 몹시 곱도다. 또한 무주상보시의 베품은 더욱더 크도다. 북두와 남쪽 별이 그 위치가 다르지않거늘, 남쪽이라 말하고 북쪽이라 말함은 또한 집착하는 것이라, 무주상보시를 행하면 한 순간에 有無의 경계를 벗어나고 佛의 이름이 여기에 드러나서 한량없는 복덩이가 이뤄지도다” |
수보리여, 보살은 단지 내가 이와같이 가르친 바대로 그 무엇에도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但應如所敎住) | |
규봉 | 결권부주(結勸不住) ; 相에 머물지않기를 결론적으로 권함 |
육조 | 應이란, 따른다는 뜻이다. |
부대사 | 만약 無相보시를 논한다면, 그 공덕이 지극해서 헤아리기 어려우니, 자비를 행하가난을 구제하되 그 과보는 바라지말라.…보시의 모양을 알고자하면, 허공이 시방에 두루한 것과 같음이라. |
야부 | 가히 예(禮)를 아는 사람이로다. “허공경계를 어찌 사량하랴. 大道가 맑고깊어 그 이치 더욱 길도다…” |
함허 설의 | 無住란 만행의 근본이요, 만행이란 無住의 큰 작용이라. 禮란 인간세상의 큰 작용이어서 … 禮를 알면, 진퇴가 아름다우며 들고놓음에 마땅함을 얻어서 그 베푸는 것마다 옳지않음이 없거니와… “無住로 住를 삼으니 확연히 허공과 같도다. 비록 그러하나 大道는 有住와 無住에 속하지 않으니, 저 해인(海印)에 견줄 수 있고, 저 태허(太虛)를 넘었도다…” |
종경 | 相에 머물러 보시하는 것은 해와 달이 끝이있음과 같고, 육진에 집착하지 않는 것은 허공이 한계가 없는 것과 같도다. 自他가 함께 이롭게 하는 복덕은 헤아리기 어려우니,…한번 일러보라. 묘체는 원래 처소가 없으니, 온 몸이 어찌 다시 자취가 있으리오. “보시에 힘써서 眞常에 계합하니 福이 허공과 같아서 헤아리기 어렵네. 그림자없는 나무에 꽃이 많이 피었으니, 마음대로 꺾어서 法中王께 바치리라.” |
함허 설의 | 相에 머물러 보시하는 것은 한낱 부질없이 남의 이목을 현혹시키는 것이며, 無住大道를 어기는 것이라.…묘체는 원래 처소가 없으니, 온 몸의 자취가 없음이로다! “무주상보시를 행하는 것은 성품이 空한 것에 계합한 것이니, 성품이 공함은 무변함이며 복 또한 끝이없도다.…나무가 있으나 원래 그림자가 없으니, 劫밖의 봄(시간을 초월)에 생장함이라.…찬 가지에 그림자가 없어서 새도 깃들지않도다. 이상향에 재배한다고 하지말라. 겁밖의 봄바람에 꽃이 만발하였네, 꽃이 만발함이여, 꽃을 꺾어 법중왕께 바치리라.” |
第 5 . 여리실견분 -바른도리를 實답게 봄 |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형상으로 여래를 볼 수 있겠느냐? - “볼 수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형상으로는 도저히 여래를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래께서 말씀하신 몸은 형상이 있지않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부처님은 다음의 게송을 읊으셨다. “형상이 있는 모든 것은 허망하니, 모든 형상이 원래 형상이아님을 알면 곧 여래를 보리라. (凡所有相이 皆是虛妄이니 若見諸相非相이면 卽見如來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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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봉 | 혹 의심하는 자가 형상(相)으로써 부처를 구하는 것을 막고자, (수보리는) “볼 수 없습니다. 세존이시여~”하고 답하였다. 相은 유위(有爲)이고 생.주.이.멸 이거니와 부처님몸은 이와달라서 몸 모양이 아닌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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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조 | 色身은 곧 相이 있음이오, 法身은 相이 없음이니… (수보리가)범부는 다만 색신여래만 보고 법신여래는 보지못함을 알고서 “볼 수 없습니다. 세존이시여~”고 하시니라. | |
야부 | 어서 일러라. 지금의 행주좌와(行住坐臥)는 이 무슨 相인가. 졸지 말지어다 ! “몸이 바다속에 있으면서 물을 찾지말고, 매일 山을 다니면서 산을 찾지말지어다. 꾀꼬리 울음과 제비 지저귐이 서로 비슷하니, 前三과 後三을 따로 묻지말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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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허 설의 | 나의 이 色身이 상신(常身)인 法身이니, 색신을 떠나서 따로 常身인 法身을 구하지 말라. 문득 귀신굴속에서 살 궁리를 하는 것이니 “졸지 말지어다”하시니라. “맑은 물속에서 노니는 물고기는 스스로 미혹하고, 밝고밝은 대낮에도 눈 먼 자는 볼 수 없음이라… 꾀꼬리와 꾀꼬리 소리가 둘이 아니고, 제비와 제비 지저귐이 한가지로다. 다만, 物物이(형상형상마다) 다른형상이 아님(非他物)을 알면, 천가지 만가지 차별을 묻지않으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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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봉 | 비단 法身이 無相일 뿐만아니라 범성(凡聖), 의보(依報;국토.가옥.의복.식물.산하.대지 등 우리의 환경적 조건), 정보(正報;과거의 업보에 따라 받는 과보)인 일체 有爲의 相이 허망한 것이니, 이는 망념으로부터 변하여 생겨난 연고이다… | |
육조 | 일체 모든 相이 허망한 것이니, 만약 일체 모든 相이 허망하여 實이 아님을깨달으면, 곧 여래의 無相한 이치를 보리라. | |
부대사 | “…거짓으로 32相이라 하였고, 80種好 또한 헛된 소리로다. 몸이 있는 것은 覺의 體가 아니요, 모양(相)이 없어야 참다운 형상이로다. | |
야부 |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부처님은 어느 곳에 계신가? “相이 있거나 求함이 있음은 다 허망한 것이요, 형체가 없다거나 본다는 것이 없다라고 하는 것은 치우친 소견에 떨어짐이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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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허 설의 | “有에 집착하고 無에 집착하는 것은 함께 삿된견해를 이루는 것이니, 有無 둘 다 없어야 한가지 맛(一味)으로 항상 나타나리라.” | |
종경 | “…하나의 달이 모든 물에 널리 나타나니, 모든 물에 비친 달은 하나의 달에 포섭됨이로다” “보신, 화신은 참됨이 아니라 허망된 인연이니, 법신은 청정하고 넓어서 끝이 없어라. 천 개의 강물이 있음에, 천 개의 강물에 달이 비치고, 萬里에 구름이 없으니, 만리가 하늘뿐이로다” | |
함허 설의 | “…물속에 달이 비추든 말든 내버려두거니와, 하늘에 뜬 하나의 달은 항상 밝고밝도다. 一身이 應하여 천백억이 됨이여, 천백억화신은 一身에 포섭됨이로다” |
第 6. 정신희유분 - 바른믿음은 희유하다 | 수보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중생이 부처님의 이러한 가르침을 듣고 참된 믿음을 낼 수 있겠습니까?” “수보리여, 그렇게 말하지 말라. 여래가 열반한 뒤 말법시대에 이르러, 계율을 지키고 복을 짓는 사람이라면, [금강경]가르침을 듣고 능히 믿음을 내어 금강반야가 참되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런 사람은 첫번째 부처님, 두번째 부처님, 세번째 부처님, 네번째 부처님, 다섯번째 부처님이 세상에 계실 때에만 善根을 닦은 것이 아니라, 이미 무한히 많은 부처님이 세상에 계실 때 온갖 선근을 쌓았기에, [금강경]법문을 듣자마자 단숨에 청정한 믿음을 내는 것임을 알아야 하느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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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봉 | 의심됨을 꾸짖어 믿음을 나타냄 | |
육조 | 부처님 멸도後 후오백세에, 만약 어떤 사람이 능히 대승의 無相戒를 지녀서 모든 相을 짓지않으며, 生死의 업을 짓지않아서 일체時에 마음이 공적하여 모든 모양에 속박되지 않으면, 이것이 곧 無住心이라. 저 여래의 깊은 법에 마음으로 능히 믿고 들어가리니 … 이미 무량천만억겁에도 온각 선근을 심은 것이니… | |
부대사 | 원인도 깊고 결과도 깊음이여, 이치가 밀밀하고 깊어서 찾기 어렵도다. 오는 말법시대에 다만 法이 침체할까 두려워하도다. 수보리는 마음이 통달하지 못하여 이 뜻을 듣고서도 감당하기 어려울까 두려워하니, 만약 이런 법을 능히 믿으면, 결정코 이것은 바르게 깨달은 사람의 마음이라. | |
야부 | 금으로 만든 부처(金佛)는 화로를 지나지 못하고, 나무로 만든 부처(木佛)은 불을 건니지 못하고, 진흙으로 만든 부처(泥佛)은 물을 건너리 못하도다. “…만약 능히 집에있는 보배를 믿는다면, 새가 울고 꽃피는 것이 한결같은 봄이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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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허 설의 | 三佛(금불.목불.니불)이 종래로 부서짐을 면치 못하고, 三身(법신.화신.응신)도 역시 그러해서 필경 眞이 아님이라 … 三身이 다만 그 사람의 그림자이고, 깨닫고 보면 그림자와 그림자가 다른 것이 아니로다.…보신, 화신은 眞이 아니고 온전히 그림자이지만, 만약 眞을 깨달으면 그림자가 다른 것이 아니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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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보리여, 여래는 모든 것을 다 알고 모든 것을 다 보나니, 이 경전의 가르침을 믿는 중생들은 한량없는 福을 얻게 될 것이다. | ||
함허 설의 | 모든 부처님이 증득한 것이 다 이 법을 증득한 것이며, 이 사람이 믿는 것도 또한 이 법을 믿는 것이니, … 마땅히 양족존(福과 智慧)를 이루리라. | |
규봉 | …복덕을 얻는 것(得)이란, 위역(魏譯)에 이르되 “이와같은 복덕을 내고(生) 이와같은 복덕을 취(取)한다”고 하며, 무착이 이르되 “…得 한 글자에 生과 取가 다 포함됐다”고 하다. | |
부대사 | “믿음의 뿌리를 한 생각에 일으킴을, 모두 부처님이 능히 다 알도다. 因은 오늘에 닦음이오, 果를 증득함은 미래의 때로다…” | |
야부 | 오이를 심으면 오이를 얻고, 과일를 심으면 과일을 얻도다. “한 부처, 두 부처, 천만 부처가 모두 다 눈은 가로놓여있고 코는 세로놓여있네. 옛날에 몸소 선근을 심었더니, 오늘은 옛날에 의지하여 큰 힘을 얻었도다. 수보리여 수보리여, 옷입고 밥먹음이 일상의 일이거늘, 어찌하여 의심을 내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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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허 설의 | …처음 발심했을 때(因地) 익힌 것이 果를 증득함이라. “모든 부처님이 다 똑같은 도리를 증득하셨으니, … 수보리 수보리여, 옷입고 밥먹는 日用이 문득 이것이어늘, 무슨 알기 어려움이 있으리오.” |
왜냐하면, 이러한 중생은 아相. 인相. 중생相. 수자相이 남아있지 않으며, 法이라는 相도 없으며(無法相), 法아니라는 相도 없기때문(無非法相)이니, 무슨 까닭인가? 마음으로 무언가에 집착하면,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에 걸리기 때문이니라. 法이라는 상을 취하더라도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에 집착하는 것이며, 法이아니라는 상을 취하더라도 곧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에 집착함이 되느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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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조 | 만약 어떤 사람이 여래 멸도후에 반야바라밀의 마음을 내어서 行하여 닦고 익히고 알고 깨달아 부처님을 깊은 뜻을 얻는다면, 모든 부처님이 그를 알지못함이 없느니라.… 法이라는 相도 없음(無法相)이란, 이름을 떠나고 모양을 떠나서 文字에 얽매이지 않음이고, 또한 법이 아니라는 相도 없음(無非法相)이라고 해서 반야바라밀법이 없다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니, 만약 반야바라밀법이 없다라고 한다면 곧 이 법을 비방하는 것이니라. 이 三相(相.法相.非法相)을 취하면 아울러 邪見에 집착함이니, 다 미혹한 사람이라… |
야부 | 원만함이 큰 허공과 같아서 모자람도 없고 남음도 없도다. “法相과 非法相이여, 주먹을 펴니 다시 손바닥이로다. 뜬구름이 푸른하늘에서 흩어지니, 萬 里의 하늘이 온통 푸른하늘뿐이로다” |
함허 설의 | 사람에게 몸이 있음이여! 원만하고 공적한 것이 이것이요, 사람에게 마음이 있음이여! 광대하고 영통한 것이 이것이로다.… “法과 非法이여, 하나는 常見이고 하나는 斷見이니…주먹을 펴니 손바닥이 됨이여!…斷․常이 함께 없어져야 바야흐로 한 맛(一味)이 나타나리라.” |
부대사 | “사람도 空하고, 法도 또한 空함이여! 두 가지 相이 본래 같은 것이라.… 生이없는 성품을 알고자 할진대, 마음밖의 행적을 끊어야 하리.” |
이러한 까닭으로 마땅히 法(진리)를 취하지 말 것이며, 法(진리)아닌 것도 취하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여래는 항상 다음과 같이 말하길 “너희들 비구는 내 설법을 뗏목으로 비유함과 같이 하라.”하노니, 法(진리)도 마땅히 버려야 하거늘 하물며 非法(진리 아닌 것)이야 말하여 무엇하랴. | |
함허 설의 | 法을 취하는 것은 法이 곧 非法임을 알지 못한 때문이고, 非法을 취함도 또한 非法이 곧 法임을 알지 못한 때문이니, 일체 法界는 옳음도 없고 그름도 없고, 이 없다는 것도 또한 없다.… 부처님 法은 다만 道에 들어가는 방편이니,… 방편도 오히려 버려야 하거늘 어찌 보존하리오. |
육조 | 法은 반야바라밀법이요, 非法은 하늘같은 데에 태어나는 法이라. 반야바라밀법은 능히 일체중생의 生死의 큰 바다를 건너게 하는데, 이미 건너서는 응당 머무르지도 않거늘, 어찌 천상 같은데 태어나는 法에 즐거이 집착하랴. |
부대사 | “…有無가 自性이 없거늘 헛되이 有無의 생각을 일으키나니, 有無가 마치 골짜기의 메아리와 같은 것이니 有無의 소리에 집착하지 말지어다.” “강을 건너기 위해서 뗏목을 쓸 것이요, 언덕에 이르러서는 뗏목을 사용하지 않음이라… 中道에도 오히려 빠질 수 있거든, 누가 이변(二邊)을 論하는가. 有無에서 하나라도 취하는 순간 마음밭이 더러워지리라.” |
야부 | 金으로 금을 살 수 없으며, 물로써 물을 씻지 못하도다. “벼랑끝에서 나뭇가지를 잡는 것은 기이한 것이 아니요, 나뭇가지에서 손을 놓아야 비로소 장부로다. 물도 차갑고 밤도 싸늘하여 고기잡기 어려우니, 빈 배에 달빛만 가득 실고 오도 다.” 물이 고이면 개울이 이루어지도다 “종일토록 바쁘고 바쁘나 그 어떤 일에도 꺼림낌이 없네. 해탈고 구하지 않고 천당도 즐기 지 않는다. 다만, 한 생각 無念으로 돌아가면 높이 비로자나부처님 머리위로 걸어가리” |
함허 설의 | 똑같은 금인데 능히 바꿀 것과 바뀔 것으로 나뉘며, 똑같은 물인데 어찌 씻을 물과 씻겨지는 물로 나누랴. “한 마음을 얻어두는 것이 기이한 것이 아니요, 한 곳마저도 없어야 장부니라. 이 경지에 이 르러 범부의 뜻이 다 떨어지고 성인의 앎도 또한 없어야 하리니, 다만 私心없이 비추어야 하거늘 도리어 옳고그름의 장소에 왔도다.” … 부처님께서 49년을 설법하시고도 “일찌기 한 마디도 법을 설한 적이 없다”라고 하셨으니, 만약 文字를 집착하면 근원에 미혹할 것이오, 文字를 버리면 줄기에 미혹하게 되니, 근원과 줄기를 함께 미혹하지 않아야 法性의 바다에 들어가리라… “…속박과 해탈이 둘이 아니요, 떠오름과 잠김이 한 때로다. 이미 정인(正因)을 얻고서, 다만 그릇되이 집착하지 않는다면 비로자나부처님 머리위를 높이 걸어서 스스로 참다운 쾌할을 이루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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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경 | 因도 수승하고 果도 수승함이여! 믿는 마음이 명료해서 의심이 없고, 人도 空하고 法도 空함이여! 참된 성품(眞性)은 본래 평등하도다.… | |
第 7. 무득무설분 - 얻을 것도 없고 설할 것도 없음 |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일이 있느냐? 여래는 설법한 일이 있느냐? -“제가 부처님의 설하신 뜻을 알기에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고 이름붙일 고정된 法이 없으며, 또 여래가 설하셨다고 할 고정된 法도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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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봉 | 무착이 揭에 이르되, “응신, 화신은 眞佛이 아니며, 또한 설법하는 이도 아니다.”라 하다. | |
육조 | 아뇩다라는 밖으로부터 얻은 것이 아니오, 다만 마음에 我所(내 것)가 없으면, 곧 이것이니라. 병에 따라 약을 베풀 듯 설하셨으니, 어찌 고정된 法이 있으랴.… | |
야부 | 추우면 춥다고 말하고, 더우면 덥다고 말하도다. “구름은 남산에서 일고 비는 북산에서 내리니, 나귀를 이름하여 馬라고 얼마나 많았는가. 청하건대, 넓고 아득한 무정수(無情水)를 보아라. 몇 군데가 모나있고 몇 군데가 둥글었더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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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허 설의 | 二乘이 있으므로 二乘을 설하고, 大乘이 있으므로 대승을 설하시니, 중생에 따라 방편을 행하시니 고정된 法은 없음이로다.… “그럴듯하게 4제(四諦), 12인연(十二因緣)을 설하시고 다시 6바라밀을 말씀하시니, 근기가 같지않으므로 법 또한 일정함이 없도다. 이를쫓아 만 가지 이름으로 나뉘어졌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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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보리의 계속되는 답변) 왜냐하면, 여래께서 설하신 법은 다 취할 수 없으며(皆不可取), 말할 수도 없으며(不可說), 법도 아니고(非法) 법 아님도 아니기(非非法) 때문입니다. | ||
함허 설의 |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은 有相이라 하든 無相이라 하든, 원만한 말로써(圓說) 자재하여서 끝내는 하나의 가장자리(一邊)에 머물지 않음이라… | |
규봉 | 무착이 이르되, “不可取란 바로 듣는 때(正聞時)를 말함이고, 不可說이란 바로 설할 때(正說時)를 말함이라. 非法이란 분별하는 성품이고, 非非法이란 法에 我가 없는 까닭이니라.…”라고 하다. | |
육조 | 不可取란, 사람들이 여래가 설하신 文字 글귀에 집착하여 헛되이 알음알이를 낼까 두려워하였으모 불가취라 하다. / 不可說이란, 근기에 따라 설하신 여래의 언설이 어찌 定해짐이 있겠는가, 배우는 이들이 여래의 깊은 뜻은 알지못한 채 교법만 외우고 여래의 本心을 요달치 못하여 성불하지 못함일새, 불가설이라 하시니라. / 非法이란, 입으로만 외우고 마음으로 행하지 않으면 비법이라. / 非非法이란, 입으로 외우고 마음으로 행하여 마침내 얻을 바가 없으면(無所得)을 요달하면 비비법이라. | |
부대사 | “보리가 언설을 떠남이여, 종래로 얻은 사람이 없도다…” | |
야부 | 이 뭣 고 ? “이래도 되지않고 저래도 되지않고, 텅 빈 허공에 새가 날아가되 그 자취가 없도다. 악 ! 근기의 수레바퀴를 움직여 도리어 거꾸로 돌아가니, 남북동서에 마음대로 왕래하도다.” |
함허 설의 | 定有와 定無가 모두 옳지않으니, 四句(定有定無)를 쫓아 부처를 찾지말라. 부처는 四句 가운데에 앉아있지 않으니, 四句 가운데에 앉아있지 않음이여 ! 새가 공중을 날아가되 그림자 자취가 없도다. 악 ! 다시 새가 날아간 그 길을 향해 몸을 굴려야 비로소 옳음이니, 남북동서 한 천지에 경계없이 자유롭게 왕래하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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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보리의 답변 계속) 모든 성인과 현인은 다 무위법(無爲法)으로써 차별을 두기 때문입니다. | ||
함허 설의 | 無爲, 중간과 두 개의 가장자리(二邊)을 벗어났도다. | |
규봉 | 무착이 이르되, “무위란 차별이 없음(無差別)의 뜻”이라 하다. | |
육조 | 無爲法은 無住이니, 無住가 無相이며, 無相이 無起이며, 無起가 無滅이라. | |
부대사 | “人과 法이 모두 집착이라고 이름하지만, 요달하면 곧 둘 다 무위라…” | |
야부 | 터럭만치 차이가 있으면 天地처럼 벌어지도다. “올바른 사람이 삿된 법을 설하면 삿된 법이 다 正에 돌아오고, 삿된 사람이 올바른 법을 설하면 正法이 다 邪에 돌아가도다. 강북에서는 탱자가 되고 강남에선 귤이 됨이여, 봄이오면 모두 똑같이 꽃이 피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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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허 설의 | 법이 비록 한 맛이나 견해에 천지차별이 있음. “한 맛의 무위법이 능히 바르기도 하고, 능히 삿되기도 함이라. 한 종자가 남북으로 갈라지지만 남북의 꽃은 한가리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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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경 | 수보리의 혀뿌리가 물결침이로다. 일러라 ! 무위법이 왜 차별이 있는가? 만고의 푸른 못에 뜬 허공의 달을 재삼 건져봐야 알겠는가? “구름걷힌 가을하늘의 달이 연못에 비치니, 차가운 빛의 끝없음을 누구와 더불어 얘기할꺼나. 천지를 꿰뚫는 안목을 활짝 여니, 大道가 분명하여 참구함을 쓸 게 없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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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허 설의 | 얻되 얻음이 없으며, 설하되 설함이 없으니 신묘한 근기여 !… 다만, 허공의 달이 못 가운데 떨어짐을 알면, 어찌 어리석은 원숭이처럼 헛되이 달을 건질려는 수고로움과 같을 수 있으랴. “만약 허공의 달이 연못에 비치지 않으면, 어찌 찬 달빛이 넓고 끝이없다고 말하겠는가. 하늘도 비추고 땅도 비추어 만상을 머금고 있으니, 무궁한 이 맛을 누구와 얘기할까. 다만, 이마에 능히 慧眼을 갖추면 다시 어느 곳을 향하여 현묘한 도리를 구하리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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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 .의법출생분 - 법에 의지하여 출생함 |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만일 어떤 사람이 삼천대천세계에 가득찬 7가지 보배로써 보시를 한다면, 그 사람이 얻는 복은 얼마나 많겠느냐? -“매우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이 복덕은 곧 복덕의 성품이 아니므로 복덕이 많다고 여래께서는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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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조 | 7가지 보배로 보시한 그것은 비록 복얻음이 많으나, 성품자리에서는 하나도 이익됨이 없음. 복덕性은 有에 떨어지지 않음이며, 能所心이 끊어진 것이며, 부처님 行과 같은 것이다. | |
함허 설의 | 복덕性이란 能所. 是非. 存亡. 得失이 없어진 무루(無漏) | |
만약 또 어떤 사람이 이 금강경 가운데서 사구게(四句揭)만이라도 받아지녀서 다른 사람을 위해 설한다면, 그 복은 저 앞의 삼천대천세계에 가득찬 7가지 보배로 보시한 것보다 수승하느니라. | ||
규봉 | 四句揭란 다만 네 구절의 뜻을 전해마친 것. 經에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가 가장 묘함이라. | |
부대사 | “삼천대천세계를 가득 채울 보물로써 복밭을 짓더라도, 단지 유루(有漏)의 業을 이루는 것이어서 끝내 人天을 여의지는 않음이어니와, 經을 지녀 四句를 취하면 성인과 더불어 좋은 인연을 지으니, 무루(無漏)의 바다에 들어가고자 할진대 모름지기 반야용선을 탈 지니라.” | |
육조 | 12部 가르침(부처님이 설한 팔만사천經을 12개의 장르로 분류한 것)의 큰 뜻이 다 四句揭안에 있음. | |
야부 | 일은 無心에서 이루어지느니라. “…복덕이 원래 성품이 없는 줄 알면, 본지풍광(우리의 본래모습)을 사는데 돈을 쓰지 않으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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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허 설의 | 복덕性이 空한 줄 알면, 베푸는 공덕을 짓지않더라도 본지풍광이 자연히 드러남 |
수보리여, 왜냐하면 일체 모든 부처님과 부처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法이 모두 이 經에서부터 나오기 때문이니라. 수보리여, 이른바 부처님 법(佛法)이라고 하는 것은 곧 부처님 법이 아니니라(非佛法) | ||
함허 설의 | 이 한권의 經은 허공을 에워싸고 그 體가 일체에 두루하였기에, 부처님과 아뇩다라삼먁삼보리法의 현묘한 뿌리가 바로 여기에 있음. 참된 성품은 緣起에 걸리지 않으니, 經이 능히 佛法을 출생함이요. 緣起가 참된성품에 걸리지않으니, 佛法이 곧 불법이 아니로다(非佛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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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봉 | 論에 이르되, 일체제불은 보신. 화신(덜성숙된 인;生因), 제불의 보리법은 법신(성숙된 인;了因) 第一義 가운데엔 佛法이 經으로부터 나온 것이 없느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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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조 | 일체제불과 아뇩다라삼먁삼보리법이 다 깨달아비추는 곳(覺照心)으로부터 나오는 까닭에 “이 經에서부터 나온다”고 하시니라. 여기의 일체 文字 글귀는 표식. 손가락과 같아서 그림자나 메아리임. 표식을 통하여 사물을 알고 손가락을 의지해서 달을 보는 것이니, 달은 손가락이 아니오 표식은 사룸이 아니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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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부 | 어서 말하라. 이 經은 어디에서부터 나왔는가? “수미정상이요, 大海의 파도중심이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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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허 설의 | 사람들은 다만 자식(子)있음만 알고 부모(父)있음은 알 지 못하며, 비록 부모있음은 알지만 할아버지가 계심은 알 지 못하나니, 수미산의 정상과 큰 바다의 파도중심이 어찌 할아버지의 면목이 아니리요…여기에 이르러서는 부처와 부처, 조사와 조사가 헤아리지 못하며 일체의 사물로도 비교할 수 없음이로다. | |
야부 | “부처님과 조사께서 자비롭고 實다운 방편을 드리웠으니, 말씀말씀마다 모두 이 經을 여의지않은 채 베푸셨도다. 이 經의 출처를 자세히 알겠는가? 문득 하늘을 향해 쇠로만든 배를 타고갈지라. 간절히 바라노니, 잘못 알지 말지어다.” | |
함허 설의 | “간절히 잘못 안다함이여, 무슨 잘못 알 것이 있겠는가. 구름걷히면 산봉우리가 드러나고, 달이 있으면 파도중심에 떨어지도다. 달이 있으면 파도의 마음에 떨어짐이여, 하늘에는 그 빛이 쉬지않음이요. 구름이 없으면 산봉우리가 드러남이여, 그 펴고거둠은 늘 있는 일이로다.” | |
야부 | 능히 맛있는 과자를 가지고, 너의 맛이쓴 호리병박과 맞바꾸도다. “佛法이 非佛法이여, 능히 내보내기도 하고 능히 빼앗기도 하며, 놓아두기도 하고 거두기도 하며,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도다. 미간에서 항상 백호광명을 놓거늘 어리석은 이는 오히려 보살에게 묻는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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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허 설의 | 좌로 가고 우로 가고, 능히 모나기도 하고 둥글기도 하도다.…사람마다 한쌍의 눈썹사이 미간에서 백호광명을 놓음이로다. 백호광명을 놓음이여, 본래 다 이루었는데 어찌 밖을 향해 부질없이 헤매이리오. | |
종경 | 한낱 칠보로써 삼천세계에 보시하기보다는 四句揭를 직접 들으면 상근기를 요달하도다. 무량겁래의 모든 부처님과 조사께서도 이로부터 열반의 문을 뛰어넘으셨네. | |
함허 설의 | 재물보시는 인간.천상의 유루인(有漏因)이 되고, 사구게를 들어서 상근기를 요달하면 무여열반에 듦. | |
第 9. 일상무상분 - 하나의 相도 相이 아님 |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수다원(Srotapanna)을 증득한 사람이 자기는 수다원의 경지를 얻었다고 생각하겠느냐? -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수다원이란 ‘흐름(流)’에 들어갔다는 뜻이기는 하지만, 어디에도 들어간 바 없으니(而無所入) 색.성.향.미.촉.법에 들어가지 않았기때문에, 수다원이라고 일컫는 것입니다.” |
육조 | 수다원이란 범어이고, 唐나라 말로는 역류(逆流)이니 “거슬러 흘러감”이라. 생사의 흐름을 거슬러서 육진에 물들지않고, 한결같이 무루업(無漏業)만 닦아서, 결국 지옥.아귀.축생의 과보를 받지않음. 流는 聖人의 무리이니, 수다원의 사람이 이미 거친번뇌를 여읜까닭에, 성류(聖流)에 들어간 것이요, 而無所入은 果를 얻었다는 마음이 없는 것이니, 수다원이란 수행의 첫 결과니라. |
규봉 | 수다원은 여기에서 入流이니, 聖流에 들어감. 입류는 예류(預流)라고도 하니, 성류에 첨예한 연고임. |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사다함(Sakrdagamin)을 얻은 사람이 자기가 사다함의 果를 얻었다고 생각하겠느냐? -“그렇지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사다함은 ‘한 번 오고간다(一往來)’는 의미이긴 하지만, 실은 오고감이 없기때문에(而實無往來) 사다함이라 이름한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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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봉 | 죽으면 천상에 갔다가 한 번 인간으로 와서, 곧 사다함과를 얻으므로 一來라 함. 而實無來란, 이미 無我를 깨달았거니와 누가 능히 往來하리오. |
육조 | 사다함은 범어이고, 唐言으로는 ‘一往來’이니, 삼계의 결박을 버려서 삼계의 결박이 없으므로 사다함이라 함. 인간이 죽어 천상에 태어나고 천상에서 곧이어 인간으로 태어나서, 마침내는 생사를 벗어나 삼계의 업이 다하는 것. |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아나함(Anagamin)얻은 사람이 자기가 아나함과를 얻었다고 생각하겠느냐? - “그렇지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나함이란 ‘오는 것이 없다(不來)’는 뜻이긴 해도 실은 오지않음도 없기 때문에(而實無不來) 이를 아나함이라 이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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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허 설의 | 佛法이 佛法이 이미 아닐진대, 차별의 聖果인들 무슨 實이 있으리오. |
규봉 | 아나함은 不來(오지않음), 不還(돌아오지 않음). 죽어서 천상에 가서는 下界에 돌아오지않음 |
육조 | 아나함은 범어. 唐言으로는 불환(不還), 欲界에서 벗어남(욕심낼만한 경계가 없음) |
부대사 | “범부를 버리고 聖位에 처음 듦이여, 번뇌가 점점 경미해지도다. 人․我의 집착을 끊어버리고 비로소 무위에 이르렀도다.… |
야부 | 諸行無常하여 一切皆苦로다. “三位의 聲聞이 이미 塵에서 벗어났으나, 왕래하며 靜을 구하니 친하고성금(親疎)가 있음이로다. 확연한 四果(수다원.사다함.아나함.아라한)는 원래 果라는 것이 없으니, 허망한 몸뚱이가 곧 法身이로다.” |
함허 설의 | 皆苦는 다른 책에 皆空이라하니, 空자가 더 가깝도다. 四果는 果가 없어서 하나의 묘한 空에 돌아가도다. “육진 경계에서 벗어나긴 했으나, 열반의 城속에는 친소(親疎)가 있음이라…허망한 몸뚱이가 곧 법신이라 함이여, 혼융하고 평등하여 친소가 없네. |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아라한(Arahan)의 경지를 증득한 사람이 자기가 아라한과를 얻었다고 생각하겠느냐? -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실로 아라한이라고 할 법이 없기때문입니다.(實無有法名아라한). 세존이시여, 만약 아라한이 ‘내가 아라한의 道를 얻었다’는 생각을 지으면,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에 집착하는 셈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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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조 | 모든 번뇌가 이미 다하여 다시 번뇌가 없으므로, 아라한이라 함. 범어이니, 唐言에는 무쟁(無諍) |
(수보리의 계속되는 답변)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수보리는 무쟁삼매(無諍三昧;다툼이없는 삼매)를 얻은 사람 가운데서 제일이다. 욕심을 떠난 제일의 아라한이다” 세존이시여, 그러나 저는 자신이 욕심을 떠난 아라한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제가 아라한의 경계를 얻었다고 분별한다면, 세존께서는 저에게 아란나행(Aranya무쟁처,적정처)을 얻었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는 실로 아무것도 행하는 바 없기에(實無所行) 아란나행을 즐긴다고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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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허 설의 | 무쟁(無諍)=이욕(離欲) ; 안으로 보고들음의 끄달림을 입지않고, 밖으로 소리와 모양에 물들지않아서, 안팎으로 청정하고 확연함 | |
규봉 | 무쟁이란, 중생을 번거롭게 하지않음이니 능히 중생으로 하여금 번뇌를 일으키지 않게 하는 연고임. | |
육조 | 무쟁삼매란, 아란한의 마음에 생멸거래가 없고 오직 本覺이 항상 비춤. 삼매(Samadhi)는 범어. 唐言으로는 正受, 正見. | |
야부 | 把定하면 구름이 골짜기에 걸쳐있고, 放下하면 달이 연못에 떨어지도다. “말(馬)이라고 부른들 어찌 말이 되며, 소라고 부른들 반드시 소가 아니로다. 두 가지를 모두 놓아버리고 中道에서 일시에 쉴지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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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허 설의 | 잡아정함(把定)이 옳은가, 놓아버림(放行)이 옳은가. 파정, 방행이 모두 옳지않으니, 한번에 삼천세계 밖으로 쓸어버리도다. “말이라 부르고 소라고 부르는 것이 모두 그렇지않아서 방행(放行)과 파정(把定)이 옳지않으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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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봉 | 무소행(無所行)이란, 論에 이르되 두 가지 장애를 여의는 것 - 번뇌장. 삼매장 아란나는 적정을 뜻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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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조 | 아란나는 범어. 唐言에는 무쟁행(無諍行). 청정행(淸淨行) | |
부대사 | 生도 없고 滅도 없으며 我도 없으니 人도 없음이라. 번뇌장을 영원히 없애니 길이 후유신(後有身;뒤에 몸을 받음)을 받지않도다. 경계가 없어지니 마음도 또한 멸하여 다시는 탐진치를 일으키지 않음이라. 자비가 없어 공연히 지혜만 있어서 홀로 유연히 眞에 맡기도다. | |
야부 | 알았다고 말하면, 공부하기 이전처럼 도리어 옳지못하도다. “조개속에 밝은 구슬 숨어있고, 돌속에 푸른 옥 감추어있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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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허 설의 | 名과 實을 모름지기 망각해야 비로소 옳은 것 “밝은 구슬과 푸른 옥은 숨어있어 드러나지 않으니, 큰 지혜자는 어리석은 듯하여 우치한 것 같으나, 道가 자기에게 있으면 저절로 밖으로 드러나게 되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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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경 | 인간과 천상에 오고가는 동안 모든 번뇌를 없애지못하였다가 道와 果를 함께 잊으니, 無諍이 제일이라 “果位의 聲聞이 홀로 一身만 다스리며, 적연하게 항상 定에 있음은 본래 眞이 아니로다. 마음을 돌이켜 몰록 여래의 바다에 들어가서, 자비의 배를 거꾸로 돌려 건너는 사람을 맞이해야 함이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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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허 설의 | 범부를 초월하여 성인에 들어감이여, 처음부터 증득을 감당하여 왔는데, 어찌 死水에 잠기리요 “聲聞처럼 홀로 善함은 어진 사람이 할 바가 아니며, 만약 어진 사람이라면 아울러 천하를 다 善하게 해야 함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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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10. 장엄정토분 - 정토를 장엄함 |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가 지난날 연등부처님회상에서 깨달음을 얻으리라는 수기를 받았다고 하는데, 과연 法을 얻은 일이 있느냐? -“그렇지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연등부처님 회상에서 실로 아무것도 얻은 바가 없습니다.(實無所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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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허 설의 | 왜 實無所得인가? 이는 다만 인연을 빌려 見道한 것으로써 얻음을 삼은 것일뿐. 사실로써 말하자면, 석가는 본래 천상천하에 홀로 높고 홀로 귀한 사람이라. |
규봉 | 法에 실무소득이란, 연등불이 설하신 說은 말이요, 석가가 들은 바도 오직 말만 들은 것이니, 말이란 실다운 지혜로써 증득한 법이 아닌 연고임 - 不可說, 不可取 |
육조 | 왜 실무소득인가? 自性은 본래 청정하며 본래 번뇌가 없어서, 고요하되 항상 비추고 있음을 깨달으면 곧 ‘스스로 성불’하는 것 - 如來法이란, 비유컨대 햇빛이 밝게 비쳐서 끝이없으나, 가히 취할 수 없음(不可取)과 같느니라. |
부대사 | “옛날에는 선혜행자라고 일컫더니, 금일엔 부처라고 부르도다. 인연을 보면 인연은 妄이요, 體를 알면 體는 眞이 아니로다(非眞) 法性은 因果가 아니요, 여실한 이치는 因은 쫓지않으니, 연등불의 수기를 얻었다고 말한다면 어찌 이와같은 옛 몸임을 알리오” |
야부 | 옛날은 옛날이고 지금은 지금이로다. “한 손은 하늘을 가리키고 한 손은 땅을 가리키시니, 남북동서에 추호도 볼 수 없도다. 태어나면서부터 심장과 간이 하늘처럼 크니, 무한한 마군들의 붉은깃발이 넘어지도다” |
함허 설의 | 비단 옛날에만 無所得일 뿐만 아니라, 지금도 또한 마찬가지임. “하늘을 가리키고 땅을 가리킴을 아는가. 남북동서에 오직 한명의 석가로다. 한명의 석가여, 누가 뒤덮고 있는가? 심장과 간이 하늘처럼 크니, 한 입으로 모든 부처와 조사를 다 삼켰도다. 부처와 조사도 오히려 삼킴을 당했거늘, 마군과 외도가 어찌 항복하지 않으랴.” |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보살이 불국토를 장엄한 일이 있느냐?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불국토를 장엄한다는 것은 곧 장엄이 아니고, 그 이름이 장엄입니다.” 그러므로 수보리여, 모든 보살마하살은 마땅히 이와같이 청정한 마음을 낼지니, 모양에 집착하는 마음을 일으켜서도 안되며, 소리. 향기. 맛. 촉감. 의식의 대상에 머무르는 마음을 내서도 안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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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봉 | 부처님의 뜻(佛意)이 법성의 참된 국토(眞土)임을 밝히고자 할새, 형상을 취하여 불국토를 장엄하느냐고 물음. 장엄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형상(形相)과 제일의상(一義相)임. 비장엄(非莊嚴)은 형상이 없는 연고(無形相)이고, 장엄의 뜻은 제일장엄(第一莊嚴)이니 일체공덕으로써 장엄을 성취하는 까닭임. 청정심(淸淨心)을 내어 모양 등에 머물지말라 - 바른지혜, 참다운 마음. |
함허 설의 | 안으로 육근의 몸(根身)과 밖의 세계(器界)가 다 청정한 지혜의 경계이며 낱낱이 무위불토(無爲佛土)임. 비장엄(非莊嚴)이란, 情과 見이 잊혀진 곳에서 자취가 머물지않으면, 부처와 조사를 보는 것이 마치 원수와 같느니라. 청정심(淸淨心)이란, 취함도 없고 집착함도 없는 것(無取無着) |
육조 | 佛土는 청정해서 無相無形임. 장엄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1. 世間불토; 절을 짓고 경전을 베껴쓰고 보시공양하는 것. 2, 身불토; 모든 사람을 널리 공경하는 것. 3, 心불토; 마음이 청정하면 곧 불토가 청정함(心청정 卽 불토청정) 수행인의 청정심이란, 평등한 자비를 행하고 下心하여 일체 중생을 공경하는 마음 |
야부 | 어머니의 속옷이요, 청주에서 만든 장삼이로다. “온 몸을 털어버리니 하얗기가 서리보다 하얗고, 갈대꽃과 눈에 비추는 달(雪月)은 더욱 빛을 다투도다. 다행히 깊은 못에 한 마리 학이 빼어났으니, 다시 붉은이마를 더한들 무엇이 방해로우랴.” |
함허설의 | 어머니의 속옷은 순수하여 잡됨이 없음. 청주의 장삼은 검소하여 화려하지않지만, 단지 바탕에 무늬가 없음. “功가운데서 位에 나아감에 자질구레한 것을 다 벗어버리고, 位속에서 몸을 굴림에 다시 광채를 더함이로다” |
부대사 | “마음과 뜻을 쓸어서 제거하는 것은 淨土의 因이 된다고 이름하니, 복과 지혜를 논하지 말고 우선 탐진치를 여읠지라…” | ||
야부 | 비록 그러하나, 눈앞에서 이찌하랴. “모양을 보면 모양에 간섭받지 아니하고, 소리를 들어도 이 소리가 아니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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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허설의 | 비록 모양과 소리에 머무르지 않으나, 모양과 소리가 눈앞에 있음을 어이하랴. “눈앞의 모든 법이 거울속에서 형사을 보는 듯 하여서 …, 보고들음에 않음이어니 어느 곳인들 길이 통하지 않으리오 하시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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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을을 내야한다.(應無所住 而生其心) | |||
함허 설의 | 이 “응무소주 이생기심” 구절을 듣고, 마음의 열린 혜능은 五祖 홍인대사로부터 가사와 발우를 전해받고 六祖 조사가 됨. | ||
야부 | 뒤로 물러서고 물러설지어다. 보고 보아라. 굳은 돌이 움직이도다 “고요한 밤 山堂에 말없이 앉았으니, 적적하고 고요함이 본래 그대로이어라. 무슨 일로 서쪽바람이 林野를 움직여서, 찬 기러기(寒雁)가 한 소리(一聲)로 하늘을 울게 하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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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허 설의 | 動할 수 없는 것이 지금 動하니, 動하는 것이 도리어 動함이 없어야 비로소 옳음. “본래 스스로 動함이 없거늘 어찌 모름지기 動하리오 …九天에 구름개이면 학이 높이 날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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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보리여, 비유하건대 어떤 사람의 몸이 수미산처럼 광대하다고 한다면, 그의 몸은 크다고 할 수 있느냐? - “매우 큽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부처님께서는 몸 아닌 것(非身)을 큰 몸(大身)이라고 말씀하신 바 있기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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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허 설의 | 저 몸아님(非身)의 도리를 어떻게 말할 것인가. “일찌기 잠시도 형상은 있지않으나 완연하니, 형상이 비록 완연하나 토끼뿔과 같음이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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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봉 | 非身을 身이 아니라고 한는 것은, 유루(有漏)와 유위(有爲)의 身이 아니고, 무루(無漏)와 무위(無爲)의 身인 것이다. | ||
육조 | 몸뚱이는 비록 수미산처럼 크다고 하더라도, 내심(內心)이 작으면 크다고 할 수 없음. | ||
부대사 | “형상이 있다고 하는 것은 큰 것이 아니요, 형상이 없어야 참다움이 됨” | ||
야부 | 설사 있다(有)한 들 어느 곳을 향하여 붙일 것인가 | ||
함허 설의 | ‘토끼뿔, 거북이 털’과 같음 | ||
종경 | “五法眼 가운데은 얻을 바가 없거늘, 열반心 밖에서 부질없이 장엄함이라. 六塵이 공적함을 아는 이 없으니, 수미산을 넘어뜨려 달빛에 잠기게하니라” | ||
함허 설의 | 사람들이 無心과 無所得의 열반心을 모르고 相을 취하여, 身과 불국土에 부질없이 장엄함. | ||
第 11 무위복승분 - 무위복이 수승함 | 수보리여, 갠지즈江의 모래알(恒河沙)처럼 수많은 갠지즈 江이 또 있다면 어떻게 생각하는냐? 이 모든 갠지즈 강의 모래가 많다고 하지않겠느냐? - “매우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단지 저 여러 갠지즈 江만 하여도 엄청나거늘, 하물여 갠지즈 강들의 모래수이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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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허 설의 | 한 성품 가운데는 저 여러 갠지즈 강의 모래수와 같은 묘용이 있음 | ||
야부 | 전삼삼 후삼삼(前三三 後三三) 이로다. “항하사의 모래의 수를 다 셈하여 一法도 없어야 비로소 적정처를 사바하(성취)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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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허 설의 | 모든 법이 가없이 많아 헤아리기 어려우나, 법과 법이 서로 다른 법이 아님을 요달해야 적정처에서 사바하하리다. |
수보리여, 내가 이제 진실한 말로 너에게 이르노니, “만약 어떤 선남자 선여인이 칠보로써 저 항하의 모래수와 같은 삼천대천세계를 가득 채워서 보시한다면, 그 사람이 얻는 복이 많겠느냐” - “매우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이 수보리에게 이르시되,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이 경 가운데서 사구게만이라도 받아지니고 다른 사람을 위하여 설한다면 그 복덕은 앞에서 칠보로 보시한 복덕보다 수승하느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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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봉 | 전에 이미 비유를 설했거늘 어떤 연고로 다시 설하는가. 점차로 중생을 교화하여 보다 더 깊은 이치로 이끌어가려는 때문임. | |
함허 설의 | 칠보로 보시하는 것은 마침내 생사를 감득하므로 하열한 이유가 되고, 경을 수지하는 것은 마땅히 보리에 나아가므로 수승함 | |
육조 | 칠보의 보시는 三界의 부귀한 과보를 받고, 경을 강설함은 無上道를 이루게 함이니, 경을 수지하는 복덕이 앞의 칠보의 보시복덕보다도 수승함 | |
부대사 | “모래수와 같은 칠보로 보시하더라도 相이 있으면 다 허깨비와 같음” | |
야부 | 진짜 놋쇠라도 금과는 바꾸지않도다. “바다에 모래를 헤아리는 것은 한낱 힘만 허비함이라…내 집의 진귀한 보배를 꺼내어 고목에 꽃피우는 특별한 봄과 비교하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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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허 설의 | 보시의 복덕도 수승하지만, 經 가지는 복덕에 비유할 바가 못됨. 유루의 因보다는 무루의 因을 이루어야 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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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경 | 칠보의 보시공덕이 분명하여 果와 因이 어둡지 않지만, 사구게를 설하는 복덕보다 못함. “코끼리가 항하강을 건널 적에 철저히 밑바닥까지 밟으니, 유루.무루의 세계가 다 깨지도다” “칠보를 거듭 더하여 항사계에 가득함이여, 맛이단 오이를 버리고 쓴 오이를 찾음과 같도다. 眞空이 원래 무너지지 않음을 활연히 깨달음이여, 백천 삼매가 모두 헛된 꽃이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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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허 설의 | 經을 수지하는 것은 진공을 활연히 깨달음이요, 보시는 공연히 相에 住하는 것이니, 그것은 천상에 태어나는 복이라서 마치 허공을 향해 화살을 쏘는 것과 같도다. 진공을 활연히 깨닫는 것은 원래 무너짐이 없음이라. 백천 삼매가 다 헛된 꽃이로다. | |
第 12 존중정교분 - 바른 가르침을 존중함 | 그리고 또 수보리야, 어디서나 이 경을 설하되 사구게만이라도 설한다면, 마땅히 알라. 그가 있는 곳은 모든 세계의 하늘.인간.아수라들이 마치 부처님의 탑과 사찰처럼 봉양할 것이다. 하물며 어떤 사람이 능히 경을 곁에지니고 독송함이겠는가. 수보리여,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최상이며 제일인 희유한 법을 성취하리라. 또 이 경전이 갖춰진 곳이 바로 부처님과 그의 존경받는 제자가 있는 곳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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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조 | 분별심으로 설하지 말고, 무념심과 무소득심으로 행해야 한다. 그리하면 그 몸 가운데 여래의 진신사리가 있음일새, 故로 부처님의 탑묘와 같다고 함. 생각생각 쉬지않고 자기 마음으로 경을 외우고 이해하여 無相, 無着의 이치를 체득하며, 항상 부처님의 행을 닦으면 ‘자기 마음이 곧 부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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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허 설의 | 경을 설하면 탑묘와 같이 존중할 뿐만아니라, 최상.無上.제일.비교할 수없는 희유한 법을 성취함 | |
규봉 | 經은 無爲를 나타내기 때문에 반드시 賢聖과 존중하는 제자가 있음. | |
부대사 | “칠보의 보시는 사구게를 취함보다 못하며, 이 경의 존귀함은 부처님과 같음” | |
야부 | 합당히 이와같도다. “…굴에서 나온 금빛 사자새끼가 온전한 위세로 포효하니 여우들이 의심하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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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허 설의 | 합당히 이와감음. 일월이 밝으나, 그 밝음이 금강경에 미치지 못함. |
종경 | 세가지 근기에 따라 설하심. 1, 人天이 우러러 공경함 2, 사구게를 수지함에 다 응당히 부처님의 탑묘와 같이 존중함. 3, 無念의 마음오로 행하면 희유한 법이 됨 | |
第 13 여법수지분 - 법답게 받아지님 | 그때 수보리가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경전을 무엇이라 이름하며 저희들이 어떻게 받들어 지녀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르시되 “이 경전은 [금강반야바라밀경]이다. 이 이름으로써 너희들은 마땅히 받들어지닐지니라. 왜냐하면 수보리야, 부처가 설한 반야바라밀은 곧 반야바라밀이 아니므로(非般若波羅)蜜) 이를 반야바라밀이라 일컫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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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허 설의 | 처음 ‘자리를 펴고 앉으심’으로부터 여기에까지 一經의 體가 갖추어졌고 설하신 뜻은 이미 두루함. | |
야부 | 금일, 조금 내놓고 크게 얻었도다. “불도 능히 태우지 못하고, 물도 능히 젖히지 못하고, 바람도 능히 날리지 못하고, 칼도 능히 자르지 못하네. 부드럽기는 솜과 같고 단단하기는 철벽과 같음이라. 천상과 인간이 고금에 알지 못하도다. 악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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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허 설의 | 반야바라밀은 우리의 생각(情識)으로 도달하지 못하며 용납치 못함. 반야바라밀은 곧 非반야바라밀이라 설함은, 문자의 성품이 본래 空함을 알게 하시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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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봉 | 무착이 이르시되, 卽 非반야바라밀은 저 말(반야바라밀)에 집착함을 다스린 것. | |
육조 | 부처님이 반야바라밀을 설하신 것은, 배우는 이로 하여금 지혜를 써서 어리석은 마음이 생멸하는 것을 없애게 하기 위함. | |
야부 | 오히려 조금 비슷하도다. “…줄없이도 無生의 가락을 튕겨야 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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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허 설의 | 반야를 반야가 아니라고 말함이여, 그 말이 옳기는 진실로 옳으나 오히려 한 줄기 길이 막혔도다. “…줄없는 거문고에서 無生曲을 튕겨야 함. 이 곡은 예로부터 화답하는 이가 드무나 종자기(種子期)의 들음도 오히여 망연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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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가 법을 설한 적이 있느냐? - “세존이시여, 여래께서는 법을 설하신 적이 없습니다.”(無所說)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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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허 설의 | 수보리가 空을 잘 이해함 | |
규봉 | 無所說이란, 증감이 없다는 말. 무착이 이르되 “第一義는 가히 설할 수 없음” | |
육조 | 반야바라밀법을 듣는 이로 하여금 無生의 이치를 깨달아서 위없는 도를 이루게 하고자 함 | |
부대사 | “…지혜있는 사람은 마음을 스스로 깨달음이요, 어리석은 사람은 밖으로 소리를 구함이로다” | |
야부 | 조용히 해라. “…날카로운 칼로 베고나서야 손으로 어루만지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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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허 설의 | 無所說이라 말함도 또한 시끄러워니 조용히 해라. “…말하되, 비록 언어의 길을 의지하지도 않으나 또한 다시 무언설을 집착하지도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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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삼천대천세계에 가득찬 티끌들이 많다고 할 수 있느냐? - “매우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여, 모든 티끌들을(微塵) 여래는 티끌이 아니라 말하므로(非微塵) 이를 티끌(微塵)이라 일컫는다. 여래가 설한 세계(世界)도 세계가 아니므로(非世界) 이를 세계(世界)라 부르는 것이다. |
함허 설의 | 이치는 본래 말이 없어서 법은 보일 수 없는 것이며, 부처는 본래 마음이 없는지라, 말로써 가히 베풀 것이 없음. |
규봉 | 大雲이 이르되, 여래가 삼천세계를 설한 것은, 界는 塵因이 되는지라 진은 번뇌를 나지않게 하고, 보시는 福因이 되니 복은 번뇌를 낸다고 한다. |
육조 | 眞과 妄이 함께 없어져서 달리 법이 없는 까닭에, 微塵이라 이름하고, 모든 망념이 공적함을 깨달으면 非世界라고 함이요, 여래법신을 증득하여 널리 온갖 세계에 나타나서 응용함에 막힘이 없으므로, 이를 世界라 이름한다. |
부대사 | “티끌을 쌓아 세계를 이루고 세계를 쪼개면 티끌이 됨이라…티끌은 실답지 못한 因이오, 界는 실답지 못한 果이니, 果와 因이 다 幻인 줄 알면 소요자재한 사람이라.” |
야부 | 남섬부주요 북울단월이로다. “머리는 하늘을 가리키고 다리는 땅을 밟으며 주리면 먹고 피곤하면 잠을 자도다. 이곳이 극락이요, 극락이 이곳이로다. 곳곳의 설날은 똑같은 새해이니 남북동서에 다만 이것일 뿐이로다.“ |
함허 설의 | 塵界를 取하여 平常不動을 밝힘. |
수보리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32相으로 여래를 볼 수 있겠느냐? - “아닙니다. 세존이시여.32相으로 여래를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래께서 설하신 32相은 곧 32상이 아니므로(卽 非相) 이를 32相이라 일컫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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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허 설의 | 相과 非相이 모두 부처가 아님이요, 相은 곧 相이 아님(相卽非相)이라야 참다운 것. |
규봉 | 經을 지니는 福은 칠보로써 보시한 福을 낮추어서(降), 32相이라는 色相의 佛身을 겨우 얻게함을 밝힘. |
육조 | 32相이란, 32청정행. 五根 중에서 육바라밀을 닦고, 意根 중에서 無相과 無爲를 닦으면 이것이 32청정행 (五根×6바라밀+무상.무위 = 32相) |
부대사 | “…人空의 이치만 요달하면, 法空의 이치를 알지못하니, 일체가 온전히 相이 없어야 바야흐로 佛이라 부르느니라.” |
야부 | 할머니의 옷을 빌려입고서 할머니에게 절하도다. “너가 있으니 나 또한 있고, 그대가 없으면 나 또한 없음이라. 有와 無를 함께 세우지 않으니 서로 마주 대하여 침묵하도다.” |
함허 설의 | 無相을 밝히고자 하심. “有와 無를 세우지 않고 無言으로써 대항함. 外道가 부처님께 묻자 침묵하시니, 그 위세가 당연히 그러하도다.” |
수보리여, 만일 어떤 선남자 선여인이 갠지즈 강의 모래알처럼 많이 자기의 생명을 보시하더라도, 그 어떤 사람이 금강경의 4구게를 지니고서 다른 사람에게 말해준다면, 이 사람의 복이 저 사람보다 휠씬 많을 것이다. | |
부대사 | “목숨으로 보시하기를 모래숫자와 같음이여, 人天의 업이 더욱 깊어짐이라.…애욕의 물결에 떴다가 잠김이요, 고해에서 나왔다가 도리어 잠기도다.” |
함허 설의 | 지혜의 안목이 없이 공연히 베풀기만 하면, 이는 보리의 바른 길이 아니어서 도리어 생사의 고통스런 윤회를 초래할 뿐임. 4구게를 수지하여 혜안을 뜨면, 이는 참다운 보리의 바른 길이어서 마땅히 열반 眞常을 증득함. |
육조 | 經을 지녀서 한순간이라도 我와 人이 다 없어지면 망상도 또한 없어짐이어서, 言下에 성불임. |
부대사 | “…法性은 앞뒤가 없고 중간도 없어서 옛이나 새것도 아니로다. 五蘊이 공하여 실체가 없으니, 무엇을 의지하여 사람이 있음을 보리오” |
야부 | 두가지 색을 띈 주사위로다. “…랄랄라라라라 산에서는 꽃이 피고 들에서는 새가 지저귀도다. 이때! 만약 뜻을ㄹ 얻으면 어느 곳에서든지 사바하 하리라.” |
함허 설의 | 動하고 靜함이 다 보시를 행하거니와 어찌 수고로이 목숨을 버리랴. 말과 침묵이 다 經을 전하는 것이거늘 어찌 번거롭게 문자를 익히리오. “…꽃은 산 앞에서 웃으며 천기를 누설하고, 새는 숲 밖에서 지저귀며 無生을 말하도다. 낱낱이 다 스스로 무궁한 뜻이 있으며, 얻고나면 그 근원을 만나지 못할 곳이 없으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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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경 | 부처님께서 본래 한 글자도 세우지않고 바로 사람의 마음을 가리키셨거늘, 수보리가 괜스리 이름을 특별히 청하였도다. “악 ! 금강보검이 하늘 높이 치솟았으니, 外道와 마구니의 머리가 쪼개지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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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허 설의 | “ 악 ! 밖을 향해 치닫지 말라.” | |
第 14. 리상적멸분 - 상을 떠나서 적멸함 | 그때 수보리가 [금강경] 법문을 듣고, 그 의미를 깊이 깨달아 눈물을 흘리면서(涕漏悲泣) 부처님께 사뢰었다. “희유하십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이렇게 깊고 깊은 경전을 설하심은, 제가 얻은 바 혜안으로도 일찌기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어떤 사람이 이 경전을 듣고 청정한 믿음을 내면, 그는 실상을 깨닫게 되어서 가장 희유한 공덕을 성취하게됨을 알겠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실상(實相)이란, 곧 상이 아니므로(卽是非相) 여래께서는 실상(實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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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허 설의 | 經 처음에 “희유하십니다”는 상근기로써 깨달아들게 하므로, 기쁨과 슬픔이 동하지 않음. 여기서는 중근기와 같이해서 방편으로 깨달아들게 하므로, 기쁨과 슬픔이 뒤섞인 “희유하십니다.” | |
규봉 | 法을 존중히 여기는 고로 슬피 움 | |
부대사 | “經을 듣고서 깊은 뜻을 이해하여 마음으로 기뻐하기도 하고 슬퍼함이라…” | |
야부 | 기분좋게 웃어야 하거늘, 얼굴을 마주하여 숨겼도다. “젊어서부터 돌아다녀 먼 길에 익숙하니 몇 번이나 형악산을 돌고 소상강을 건넜던가. 어느날 아침에 고향길을 밟으니, 비로서 여행중에 세월이 긴 것을 깨달았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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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허 설의 | 부처님의 뜻을 깊이 깨달으메 안으로는 기뻐하고 밖으로는 슬퍼함 “…몇번이나 我人의 산밑을 돌았던가…, 비로서 옛날 생사의 길에서 부질없이 긴 세월을 보냈음을 알겠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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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봉 | 論에 이르되, 이 가운데 실상(實相)이 있으며, 다른데는 실상이 없음. | |
육조 | 옛날에 미처 깨닫지못했던 것을 슬퍼한 고로 체루비읍(涕漏悲泣)했는가. 경을 듣고서 깊이 이해하는 것을 淸淨하다고 한다. 이 청정한 가운데서 반야바라밀다의 깊은 법이 유출됨. | |
함허 설의 | 신심이 청정하면 바로 그 자리에서 실상(實相)을 냄 - 이 실상이란, 有相도 아니고 無相도 아니고, 非有相도 아니고 非無相도 아님 | |
규봉 | 무착이 이르되, (여래께서 實相은 卽是非相일새 實相이라고 한 것은) 실상(實相)의 분별을 여의기 위한 까닭임. | |
육조 | 더러움과 깨끗함의 두가지 相이 있으면, 이것은 아울러 때묻은 마음이어서 청정심이 아님. 마음에 얻은 바가 있으면 곧 실상이 아님(非實相) | |
부대사 | “마음없는 경계(無心境)도 있지않고, 일찌기 경계없는 마음(無境心)도 없음이라. 경계가 없으면 마음도 저절로 멸하고, 마음이 멸하면 경계도 그 마음을 침범하지 않음이로다. 경 가운데서 실상이라 일컬음이여, 묘한 이치를 말한 것이 능히 깊으니…” |
야부 | 산하대지를 어디에서 얻으리오 “…頭頭가 다 드러내니 物物의 體가 원래 평등하도다. 어떻게 모른다고 말하겠는가. 다만, 너무나도 분명한 것을.” |
함허 설의 | 만약 한결같이 相이 아니라 한다면, 지금의 산하대지는 분명 이 相인데, 어느 곳에서 얻어왔는가. “…여래의 진실상은 낱낱의 가운데 다 나타나 있고, 사물사물 위에 분명해서 때마다 곳마다 밝게 나타나지 않음이 없음…” |
세존이시여, 제가 지금 경전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믿어 받들기는 그다지 어렵지않거니와, 오는 세상 후 오백세에 그 어떤 중생이 이 경을 얻어듣고서 믿어 알아 지닌다면, 그 사람은 곧 제일 희유함이 되겠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까닭은, 我相이 곧 상이 아니며(非相) 인상.중생상.수자상도 곧 상이 아니기(非相) 때문입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일체 모든 相을 떠난 것을 이름하여 모든 부처님이라고 이름하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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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부 | 만약 뒷말을 얻지못하면 앞의 말도 원만하기 어렵도다. “어렵고 어렵고 어려움이여, 마치 평지에서 푸른하늘로 오름과 같고, 쉽고 쉽고 쉬움이여, 옷입은 채 한숨자고 깸과 같도다. 배가 가는 것은 삿대잡은 이에 있으니, 누가 파도는 땅으로부터 일어난다 말하리오” 가고 머물고 앉고 눕고 옷입고 밥먹고하니 다시 무슨 일이 있으리오. “얼음은 뜨겁지않고 불은 차지않으며, 흙은 습하지 않으며 물은 건조하지 않도다.…만약 누구라도 이 도리를 얻으면, 북두를 남쪽을 향하여 보리라.” |
함허 설의 | 만약 쉬운 것만 말하고 어려움을 말하지 않으면, 그 말이 원만함을 얻지 못했을 것임. 지금의 어려운 것과 쉬운 것을 함께 설하니, 말씀이 원만하게 됨 “어려운 즉, 아무리 보아도 보이지않으며 아무리 들어도 들리지 않음. 어렵고 쉬운 것은 다만 이 한사람의 근기의 변화에 있음” 평상의 도리를 어떻게 말할 것인가 “비오는 가운데 좋은 달을 보고, 불속에서 맑은 샘물을 길러내며…” |
규봉 | 무착이 이르되,“… 아.인.중생.수자상 등의 取가 없거늘 어찌하여 너희들은 정법시대에 수행을 멀리하여 부끄러움을 내지않는가” 하다. |
함허 설의 | 경을 듣고서 信受하는 것을 왜 제일 희휴하다 하는가. 四相을 떠나서 초연히 홀로 걷기 때문임. |
규봉 | 무착이 이르되, 모든 부처님과 세존이 일체상을 떠났으므로, 우리도 이와같이 배운다고 하다. |
육조 | 부처님 멸도후 점점 말법에 이르러, 이때에 깊은 經을 얻어듣고 맑은 마음으로 공경하고 믿어서 無生의 이치를 깨닫는 자가 심히 희유하므로, 제일 희유라고 하시니라. |
부대사 | “…범부의 무리가 이 법을 믿으면, 불 속에서 연꽃이 피는 것과 같도다.…만약 능히 모든 상을 여의면 결정코 正法의 집에 들어가리라.” |
야부 | 마음으로 사람을 저버리지 않으면 얼굴에 부끄러운 색이 없을 것이로다. “묵은 대에서 새순이 돋고, 새꽃은 옛가지에서 자라도다. 비는 나그네 길을 재촉하고, 바람은 조각배를 돌아가게 하도다. 대나무 빽빽해도 물 흘러감을 방해치 않고, 산이 높다한들 흰구름 흘러감을 어찌 막으리오.” |
함허 설의 | 비로자나불을 저버린즉, 마음에 겸연함이 있어서 얼굴에 부끄러운 빛이 있거니와, 지금은 그렇지않아서 ‘한산’은 올 때의 길을 잊어버리고 ‘습득’은 서로 손을 잡고서 돌아오는지라, 그러므로 마음에 겸연함이 없어서 얼굴에 부끄러운 빛이 없음. “本覺과 始覺이 싸으로 이루어서 동업이라…” |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르시되, “그렇다. 그렇다. 만일 또 어떤 사람이 [금강경]의 가르침을 듣고도 조금도 놀라지않고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조금도 겁내지않는다면, 그는 참으로 희유한 사람이니라. 왜냐하면(何以故)), 여래가 말씀한 제일 바라밀은 곧 제일 바라밀이 아니므로(卽非 第一 波羅蜜) 이를 제일바라밀이라 일컫기 때문이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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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조 | 부처님이 수보리의 아는 것이 자신의 마음에 계합할새, “그렇다 그렇다”하다. |
함허 설의 | 수보리의 희유한 말씀이 묘하게 이치에 계합할새, “그렇다 그렇다”하다. 경을 듣고서 두려워하지 않음을 심히 희유하다 한 것은, 이 法은 어떤 사물과 더불어 같지않으며, 또한 능히 사물과 더불어 평등함이라. |
규봉 | 경(驚)이란, 非處(곳답지 못한 곳)에서 두려움을 내는 것. 포(怖)란 능히 의심을 끊지못한 것. 외(畏)란 한결같이 두려워하는 것 ‘왜냐하면(何以故)’에 두 가지 뜻 - 1. 앞에서 ‘조금도 놀라지않고~’등을 섭하여 물은 것이요, 2. 앞의 수승한 것을 모두 섭하여 물은 것. |
육조 | 하근기의 성문. 연각은 이 이치를 듣고서 놀래고 겁내며, 상근기의 보살은 기쁘게 수지하여 마음에 두려움이없어 퇴전하지 않음. 마음에 能所가 있으면 곧 그름이고, 마음에 능소가 없으면 곧 옳은 것임. |
부대사 | “…人과 法을 둘 다 함께 버려야 하니, 진여의 이치를 요달하고자 하면 응당 本源을 알지니라.” “…높고낮음은 妄識을 인연함이고 차례는 미혹한 情때문이로다…” |
야부 | 단지 자기 집(自家) 이니라. “한 터럭이 큰 바다를 다 삼키고, 겨자 속에 수미산을 드리우도다…” 양팔로 열어보여 두 손으로 드러내었도다. “제일바라밀이라 이름함이여, 천차만별이 이로부터 나왔도다. 귀신의 얼굴과 머리가 대면하여 오니, 이때에 서로 모른다고 말하지 말라.” |
함허 설의 | 父子는 본래 같은 氣이며, 또한 스스로 같은 집이니, 어찌 일찌기 경포할 것이며, 비록 두렵고 놀래지않음이 또한 어찌 희휴한 것이랴. “지혜로 비춰본다면, 먼지.털.겨자가 곧 작은 것이 아니며, 큰 바다와 수미산이 큰 것이 아님” 向上(제일바라밀) 向下(非제일바라밀)를 모두 설해보여서 두 손으로 다 들어 바쳤도다. “항상 드러나 있음이여. 별도로 참다운 것이 없으니, 이때에 서로 모른다고 말하지 말라.” |
수보리여, 인욕바라밀은 인욕바라밀이 아니므로(非인욕바라밀) 이를 인욕바라밀이라 여래는 이름한다. 왜냐하면 내가 옛적에 가리王에 의해 신체가 갈기갈기 찢어질때에도 아相.인相.중생相.수자相이 없었느니라. 왜 그런가? 사지가 찢길 때에 만약에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었었다면, 마땅히 성내고 원망함을 내었으리라. 수보리여, 또 내가 과거 오백세 동안에 인욕선인이었던 그 당시 일을 생각하니, 그때에도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도 없었느니라. 그러므로 수보리여, 보살은 마땅히 일체相을 떠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心을 낼지니, 色에 머물지 말며 聲. 香. 味. 觸. 法에도 머물지 말며, 응당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낼지니라.(應生 無所住心) 만약, 마음에 머뭄이 있으면(心 有住) 곧 머뭄이 아님이 되느니라(非住) 그러므로 부처님이 말하기를 “보살은 마땅히 마음을 色에 머물지 말고 보시하라”하느니라. 수보리여, 보살은 일체중생을 이익되게 하기위하여 마땅히 이와같이 보시해야 하느니라. |
규봉 | 忍辱이 피안에 이르름에 이미 苦의 相을 떠남 가리왕은 극악(極惡)임. “옛날, 부처님이 仙人으로 산속에서 수도할 때이다. 가리왕이 사냥하다 피로하여 잠이 들었는데, 그 사이에 왕비들이 모두 仙人에게 예배하거늘, 가리왕이 선인에게 ‘四果’를 얻었느냐고 묻자, 못얻었다고 답하니, 가리왕이 노하여 선인의 몸을 베었는데, 하늘이 노하여 돌비를 내리니, 가리왕이 놀라서 참회하였다. 仙人은 성냄없음을 증득하였으므로, 이에 가리왕이 해를 면하다” 누적된 苦인 까닭에 忍이요, 忍이 익으면 즐거우니 다만 正定과 자비로써 상응하는 까닭임. |
함허 설의 | 앞에서는 信解를 찬탄하사 수보리로 하여금 발심해 마치게 하였고, 장차 보살의 相을 떠난 發心을 권하려하사, 먼저 과거세에 忍辱닦던 때를 설하다. 비단 한 생애뿐만 아니라 오백생 중에서 자주 이런 고통을 당하더라도 항상 四相이 없었음. |
육조 | 가리왕은 범어인데, 극악무도한 임금이라 이르니, 일설엔 여래가 과거세에 일찌기 국왕이 되어서, 항상 十善을 행하여 백성을 이익케 하시니 , 국민이 이 왕을 노래로써 칭하기를 歌利라 불렀느니라. 王이 무상보리를 구하여 인욕행을 닦으니 이때에 제석천이 백정으로 변하여 왕의 身肉을 구걸하므로, 왕이 곧 자기 살을 베어서 베풀되 조금도 성내거나 괴로워하지 않았다 하니, 지금의 두 가지 설이 있음. 인욕행을 하고자 하면, 먼저 모름지기 일체인의 과오를 보지않고 원수나 친한 이나 평등히 하며, 옳고 그름도 없이 하여 다른 사람이 때리거나 꾸짖거나 해칠지라도 환희로써 그것을 받아들여서 더욱 더 그를 공경할지니… |
야부 | 지혜는 어리석음을 책망하지 않는다. “칼로써 물을 베는 것과 같고 불로써 빛을 후 - 부는 것과 같도다. 밝음이 오면 어둠이 가시니, 무슨 일이라도 방해롭지 않도다…” |
함허 설의 | 어려움을 만나도 動하지않는 것이 어리석음을 책망하지 않는 것이로다. “신령스런 근원이 밝고 고요해서 흔들어도 가히 동하지 않으며 신령스런 불꽃이 밝게 빛나서 불어도 가히 꺼지지 않음이라.…” |
부대사 | “…그때 사람들이 가리왕이라 칭했도다.… 仙人의 인욕력을 받아서 지금 이에 眞常을 증득했도다.” |
야부 | 눈앞에 법이 없으니 버들이 푸르고 꽃이 붉은 데에 맡겨둠이요, 귓가에 들림이 없으니 꾀꼬리가 읊조리고 제비가 지저귐에 일임하도다. “四大가 원래 我가 없음이요 五蘊은 다 空하도다…” |
함허 설의 | 無心을 얻으니, 육근과 육진. 치료함과 해침에 방해롭지 않음 “사대오온이 거울 속의 모습과 같으니 空하고 空해서 我도 없고 또한 人도 없도다…” |
규봉 | 相 떠남을 권해서 忍에 안주케 함.- 相을 떠나서 발심하면 비록 고통을 만나더라도 곧 능히 보리심을 버리지 않음 |
함허 설의 | 相을 떠난다는 것은, 다만 相이 허망한 줄을 요달하여서, 能과 所라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는 것. |
야부 | 이것은 이 用에 卽한 것인가, 이 用을 떠난 것인가 “얻는 것은 마음에 있고 쓰는 것은 손에 있네. 눈[雪] 위를 비추는 달빛과 바람에 나부끼는 꽃이라. 하늘은 높고 땅은 넓도다. 닭은 아침마다 五更에 울고 봄이오면 산마다 꽃이 빼어나도다.” |
함허 설의 | 만약 이 마음이 用에 卽했다면 어찌 相을 끊고 이름을 떠날 수 있으며, 만약 이 用을 떠났다면 어찌 모든 相에 걸리지 않으리오. 필경에 어떻게 말할 것인가.… “…일상생활을 떠나서 따로 구할 것이 없음. 일체의 모든 소리는 다 부처님의 음성이요 일체의 모든 물질이 다 부처님 모습이니…” |
육조 | 순간순간에 항상 반야바라밀을 행하면 모든 法이 空함을 미루어 알아서 계교집착을 내지 않으며, 생각생각에 항상 스스로 정진하고 일심으로 수호하여 이로 하여금 방일함이 없게 할 것이니라. ‘마땅히 머문 바 없이 그 마음을 낸다’는 것은, 열반에도 머무르지 않고 모든 법에도 머무르지 않으며 일체처에도 머무르지 않음. 보살은, 안으로 인색한 마음을 깨뜨리며 밖으로는 일체 중생을 이익케 하기 위하여 보시를 행한다. |
규봉 | 무착이 이르되, “만약 색.성.향.미.촉.법 등에 집착하면 즉시 流轉의 苦에서 피로하고 궁핍한 까닭에 보리심이 나지 않는다”하다. |
함허 설의 | 참다운 머무름이란, 有住. 無住. 中道에도 의지해서 住하지 않아야 함 |
육조 | 無住가 곧 佛心 |
부대사 | 보살이, 어느 땐인들 자비를 띠지않겠는가. |
야부 | 부처님 있는 곳에 머물지 말며, 부처님 없는 곳에서는 급히 지나갈지니, 삼십년 후에 너에게 말한 적이 없다고 하지 말라. “…홀로 행하고 홀로 앉아 걸림이 없으니, 너그러운 생각이 있음에 또한 너그러워짐이로다.” |
함허 설의 | 가름침이 있거나(有敎) 없거나(無敎) 中道를 뚫고지나서도 다시 자취에도 머물지 말라. “…소연히 홀로 벗어나서 구속과 얽매임이 없으니, 구름의 자취와 학의 자태로 비유하여도 똑같이 표현하기 어렵도다.…” |
여래가 설한 일체의 모든 相은 곧 相이 아니며(卽是非相) 또한 일체의 중생이라고 설함도 곧 중생이 아니니라.(卽非衆生) | |
함허 설의 | 모든 相이 본래 공하여 相에 가히 머물 것이 없음이요, 중생이 본래 고요하여 중생을 가히 제도할 것이 없음이니, 이 까닭에 相을 떠난 발심을 권함. |
육조 | 如란, 不生. 來란 不滅. - 不生이란, 아상.인상을 내지않음. 不滅이란, 꺠달아 비추어서 멸하지 않음. 如來란, 비롯하여 온 바도 없으며 또한 가는 바도 없으므로 여래라고 함. 일체 중생의 이름은 다 거짓이름이어서, 만약 망심만 떠나면 곧 중생은 가히 얻을 것이 없으므로 곧 중생이 아니(卽非衆生)라고 말씀하시다. |
야부 | 따로 좋은 곳이 있으니, 잡아내는데 방해롭지 않도다. “…산에 구름과 바다의 달이 情을 다 설했거늘, 예전처럼 알지못하고 공연히 쓸쓸해 하도다. 서글퍼하지 말라. 만리에 구름 한 점 없으니, 하늘이 한 모양뿐이더라.” |
함허 설의 | 서글퍼하지 말라. 한 줄기 차가운 광명이 눈앞에 가득한 것을 ! |
규봉 | 무착이 이르되, 이미 중생을 위해서 보시를 행했으면, 어찌 저 사람에게 성냄을 내랴. |
수보리여, 여래는 참다운 말(眞語)을 하는 자며, 실다운 말(實語)을 하는 자며, 사실과같이(如實) 말하는 자며, 거짓이 아닌 말(不言狂 語)을 하는 자며, 다르게 말을 하지 않는자(不異語)이니라. 수보리여, 여래가 얻은 바 法인 이 法은 실다움도 없고 헛됨도 없느니라.(無實無虛)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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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허 설의 | 여래가 설한 법은 위로는 여여한 이치에 어긋나지 않고, 아래로는 중생을 속이지 않는다. 무실무허(無實無虛)는, 둘이아닌 도리. |
규봉 | 眞語란, 부처님의 大보리법-참다운 지혜인 까닭임. 實語란, 소승사제(小乘四諦) -진리(諦)는 실다운 까닭임. 如語란, 대승법 -眞如가 있거니와 소승은 없는 까닭임. 不異語란, 삼세의 授記 등을 설한 것은 다시 어긋남이 없음. 이 진어.실어.여어.불이어 네가지를 부처님이 중생을 속이지 않은 고로, 不言狂 語 무실(無實)은, 그 말이 자성이 있지않음과 같은 까닭. 무허(無虛)는, 그 언설이 자성이 있는 것과 같지않은 연고. |
육조 | 진어(眞語)란, 일체 有情 無情이 모두 불성이 있음을 설한 것. 실어(實語)란, 중생이 악업을 지으면 결정코 苦의 報를 받는 것. 여어(如語)란, 중생이 선법을 닦으면 결정코 樂의 報를 받음. 불광어(不言狂 語)란, 반야바라밀법이 삼세제불을 출생하되 결정코 헛되지 않음. 불이어(不異語)란, 여래가 하신 말씀이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결론도 좋음 무실(無實)이란, 法의 體가 공적해서 相을 가히 얻을 수 없음. 무허(無虛)는 무실한 가운데는 항하사 같은 性德을 갖추고 있어서, 그것은 써도 다하지 않는 까닭. |
부대사 | “중생과 오온계가 이름은 다르되 體는 다르지 않으니…性相이 본래 여여함이로다.” “空을 증득하면 문득 實이 되고, 我에 집착하면 虛를 이루느니라. 空도 아니고 또한 有도 아니니 무엇이 있고 다시 무엇이 없으리오…” |
야부 | 은혜를 아는 자는 적고 은혜를 저버리는 자는 많도다. “진어. 실어… 하하하하 그렇고 그렇도다” 물속의 짠맛이요, 색깔속에 있는 아교의 깨끗함이로다. “굳기는 철과 같고 부드럽기는 연유와 같으며, 보면 있는 듯하나 찾으면 도리어 없도다. 비록 그렇게 걸음걸음에 항상 서로 뒤따르나 또한 그를 아는 이 아무도 없도다. 악 ! ” |
함허 설의 | 말을 따라 알음알이를 내는 자는 많고, 말을 받아듣고 뜻을 아는 자는 드믊 “부처와 야부는 知音者를 만났음”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실다운 것인가 헛된 것인가 “강하기도 하고 부드럽기도 하고…十聖三賢도 그 있는 곳을 알지못하나 어느땐 한가롭게 절문 앞에 걸려있도다.”. |
수보리여, 만약 어떤 보살이 마음을 법에 머물러서 보시한다면, 마치 사람이 어두운 곳에 들어감에 아무것도 보이는 바가 없는 것과 같고, 만약 보살이 마음을 법에 머물지않고 보시하면 마치 사람이 눈도 있고 햇빛도 밝게 비쳐서 여러가지 사물을 보는 것과 같느니라. 수보리여, 오는 세상(當來之世)에서 만약 어떤 선남자 선여인이 능히 이 경을 받아지니고 읽고 외우면(受持讀誦), 여래가 부처의 지혜로써 이 사람을 다 알며 이 사람을 다 보아서 모두가 한량없고 끝없는 공덕을 성취하게 되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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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봉 | 지혜없이 법에 머무르면 마음이 청정하지 못한 고로 얻음이 없고, 지혜가 있고서도 법에 머무르지않으면 마음이 청정하여 얻는 것. |
육조 | 일체법에 마음이 머물러 집착하면, 三輪의 體(주는자.받는자.물건)가 空함을 요달하지 못한 것이 마치 눈먼 자가 어두운 곳에 처함과 같아서 밝게 아는 바가 없음. |
부대사 | “…法을 떠나서 지혜를 행하면, 맑은 빛이 한 거울 가운데 있어서, 신령스런 근원이 항상 홀로 비춤이라. 평탄하고 탕탕해서 모두 포용하리라.” |
함허 설의 | 앞에서는 無住한 까닭을 밝히시고, 여기서는 비유로 無住를 밝힘. |
규봉 | 무착이 이르되, 독송(讀誦)이란 수지(受持)하는 因을 말하는 것. 받고자 함은 讀(읽음), 가지고자 함은 誦(외움)이라 한다. |
육조 | 오는 세상이란, 삿된 법이 일어나서 正法을 행하기 어려운 때. |
야부 | 땅으로 인해 넘어진 사람은 땅을 인하여 일어나니, 땅이 너를 향해 무엇이라고 말하던가. “…한결같음이여, 흡사 가을바람과 같아서 사람을 서늘케 할 뜻이 없으나, 사람들이 저절로 서늘해하도다” |
함허 설의 | 땅은 사람으로 하여금 넘어지게도 하지않으며, 또한 사람을 일어나게도 하지 않는다. 일어나고 넘어지는 것은 사람으로 말미암는 것이오, 땅은 관계하지 않는다. 法은 사람으로 하여금 깨닫게 하지않으며 또한 사람을 미혹하게도 하지않으니, 미혹함과 깨달음은 사람에게 있고 法은 관계하지 않는다. |
종경 | 부처님이 인가 하심은, 수보리가 일체 相을 떠난 것. |
함허 설의 | 부처님이 “그렇다 그렇다”고 인가함 |
第 15. 지경공덕분 - 경을 가지는 공덕 | 수보리여, 만약 어떤 선남자 선여인이 아침에, 갠지즈 강 모래알(恒河沙)마큼의 몸으로 보시하고, 낮에 다시 갲지즈 강 모래알만큼의 몸으로 보시하며, 저녁에도 또다시 갠지즈 강 모래알만큼의 몸으로써 보시하여 이와같이 무량백천만억 겁 동안을 몸으로서 보시하더라도, 만일 또 어떤 사람이 이 경전을 듣고 믿는 마음이 조금도 어긋남이 없을진대 그 복이 저 몸을 보시한 복보다 수승하리니, 어찌 하물며 경을 받아지니며 읽고 외워서 남을 위해 설해주는 것이야 말하여 무엇하랴. 수보리야, 요약해서 말할진대 이 경은, 가히 생각할 수 없고(不可思議) 가히 말할 수도 없고(不可稱量) 끝없는 공덕(無邊功德)이 있느니라. 여래는 大乘에 발심한 자를 위하여 이 경을 설하며 最上乘에 발심한 자를 위하여 이 경을 설하느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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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봉 | 칠보로써 보시하는 복덕보다는 무량백천만억겁 동안 항하사 등의 몸으로 보시하는 복덕이 더 수승하고, 이보다는 經을 믿는 복덕이 더 수승하고, 이 보다는 經을 지니고 설하는 복덕이 더 수승함 무착이 이르되, 불가사의란 오직 자각(自覺)하는 연고요, 불가칭량이란 이것(금강경)보다 같거나(等) 수승함이 없는 까닭. 最上이란, 일불승(一佛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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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허 설의 | 보시를 행하되 마음에 머무르는 바가 없다면 이것이 곧 보살의 행. 이 經은 그 덕이 한량없어서, 유독 최상의 지혜자를 위하여 설하였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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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조 | 말법시대에 이 經을 얻어듣고 믿는 마음이 조금도 어긋남이 없다면 四相이 생기지않으리니, 이는 곧 부처님의 지견. 아소(我所;내 것이란 것)가 없는 마음이 곧 부천의 마음. 佛心공덕이 끝이없는(無有邊際) 故로 불가칭량(不可稱量)이라 하느니라. 大乘이란, 지혜가 광대해서 능히 일체법을 잘 건립하는 것. 最上乘이란, 더러운 법이나 깨끗한 법을 구함을 보지않으며, 제도할 중생도 보지않으며, 증득할 만한 열반도 보지않으며, 중생을 제도한다는 마음도 짓지않으며, 또한 중생을 제도하지 않는다는 마음도 짓지 않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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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사 | “아.인.중생 그리고 수자여, 오온 위에 부질없는 이름을 세움이라. 마치 거북이 털처럼 실답지 못하고, 토끼뿔처럼 형상이 없도다.…福과 지혜를 비교하여 자세히 논한다면, 經을 수지하는 것엔 미칠 수 없느니라.” | |
야부 | 人天에 태어나는 복의 果報는 없지않으나, 佛法은 꿈에도 보지 못함이로다. “처음,중간,나중에 베푸는 마음의 공덕은 그지없어 헤아릴 수 없도다. 어찌 信心의 마음을 세우지않고서 한 주먹으로 저 허공을 쳐서 꿰뚫는 것만 같으랴.” 한 줌의 실을 끊음과 같아서 한 번 끊으면 모두가 끊어짐이로다. “…남북동서에 마음대로 行하니, 대자대비 관자재보살을 찾지말지어다. 대승이라 말하고 최상승이라 말함이여, 몸둥이로 한 번 치니 한가닥의 흔적이요, 손바닥으로 한 번 치니 한 줌의 피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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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허 설의 | 유위의 복(보시공덕)은 아무리 쌓아도 무위의 복(經을 수지독송)에 미치지 못함 “인천에 태어나는 복은, 經을 한순간 듣고 믿는 복덕에 비교가 안됨” 하나가 곧 일체. “…어찌 다시 언어문자로 말하리오. 한가닥의 흔적과 한줌의 피여, 건곤이 빛을 잃고 일월이 빛이 없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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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어떤 사람이 이 經을 받아지니고(受持) 읽고외우며(讀誦) 널리 사람들을 위하여 설한다면, 여래는 이 사람들을 모두 보나니, 이 사람은 헤아릴 수 없고(不可量) 말할 수 없으며(不可稱) 끝이없고(無有邊) 생각할 수 없는 공덕(不可思議功德)을 모두 성취하게 되리라. 이와같은 사람은 곧 여래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짊어짐이 되느니라. |
무슨 까닭인가. 수보리야, 만약 작은 법(小法)을 좋아하는 자는 아見.인見.중생見.수자見에 집착하게 되기때문에, 이 경을 능히 받아듣고(聽受) 읽고외우며(讀誦) 남을 위해서 해설하지 못하느니라.
< 다음장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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