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심명 (대승찬 풀이글)

신심명18/좋은 것은 나쁜 것의 원인이 되고, 옳은 것은 그른 것의 원인이 되니

수선님 2023. 5. 7. 13:08

18. 수유반조(須臾返照) 승각전공(勝脚前空) : 잠깐 사이에 돌이켜 비춰 봐도 눈 앞의 공함보다 수승하리라.

수유반조는 모름지기 잠깐 사이라도 마음의 자성을 돌이켜 비추어 보면 이 되고 승각전공의 승각은 보다 수승하다는 뜻이고, 전공은 앞의 공이니 눈앞의 공이고, 눈앞의 공은 경계를 공으로 관하는 수행법이다.

경계를 관하는 수행법에는 화관, 수관, 백골관, 수식관, 공관 등과 같이 수행하는 대상을 불이라고 바라보거나, 물 혹은 백골이라고 바라보는 것이 익숙하게 되면, 생각하고 바라보는 대로 그 대상이 바뀌어 나타나게 된다.

공관이란 앞에 있는 경계, 즉 수행의 대상을 바라보면서 생각으로 공하다고 보는 것이다. 계속해보다 보면 그 경계가 공하게 보이는데 공해진 경계를 앞에 나타난 공이라 해서 이 게송에서 전공이라 했다.

왜 반조가 전공보다 수승한가?

전공은 눈앞에 있는 대상이 공한 것을 보았지만 그 법이 공한 이치를 보지는 못하였다. 법이 공한 이치란 몸과 마음 등 일체 경계가 제행무상, 즉 제법은 인연 따라 이루어진 것이고, 인과 연은 시간과 장소가 변함에 따라 변하는 것이니 공한 것인데 이 이치를 알지 못하고 공한 것만 보았으니 반조보다 못하고, 또 제법무아의 이치도 모르니 불생불멸하는 적정열반에도 들 수 없으니 반조가 전공보다 수승하다고 했다.

그러나 혹 어떤 수행자가 전공을 이루었다고 하면 적어도 거친 번뇌는 소멸하였다고 볼 수 있으나 미세한 번뇌까지 소멸하여 일체 번뇌가 일어나지 않는 불생불멸의 적정 열반에 까지는 이를 수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즉 비록 전공 수행법으로 전공을 얻었다고 하여도 마음속 번뇌를 완전히 제거하지는 못하였기 때문에 무념에 들 수는 없기 때문에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반조하는 수행이 더 수승하다고 할 수 있다.

반조는 수행의 포인트를 자기의 마음자리로 잡고 한순간도 끊어짐이 없이 그 마음자리를 되돌려 보는 것을 관조, 즉 비추어 보는 것이므로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번뇌의 생멸을 바라봄으로써 이들이 일어나는 이치를 찾아 그 원인을 소멸하는 작업을 계속 반복함으로서 구경에 일체 번뇌를 제거하고 적정에 들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수유반조

승각전공

짧은 시간에 돌이켜서 비추면

앞 경계가 공한 것보다 수승하리라.

앞에 있는 경계에 대히 매 순간 모든 존재의 중도성을

돌이켜 비춘다면 현상이 완전히 공한 것으로 이해하고

수용하는 것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말입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응무소주 이생기심 ’이라 했습니다.

있는 것을 없게 한다든지 없는 것을 있게 한다든지 하면 그것은 잘못된 공부입니다.

“마음을 가장 편안하게 하려면.”

좋은 것은 나쁜 것의 원인이 되고, 옳은 것은 그른 것의 원인이 되니, 이 두 가지 분별의 마음을 없애는 것이 나를 스스로 편안하게 만들 것이다.

수유반조 승각전공, 모름지기 잠깐이라도 돌이켜 비춰보는 것이, 세상의 공함을 아는 것 보다 수승이 앞선다. 상당히 어려운 뜻을 지니고 있는 대목이다. 반조라 함은 돌이켜 비추어 본다는 뜻으로써, 무엇을 돌이켜 비춘다는 말일까?

안‧이‧비‧설‧신‧의(눈‧귀‧코‧혀‧몸‧생각)의 육근으로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부딪치고 생각하는 것 모두, 분별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눈으로 보고, 좋고 싫고, 이렇게 생겼고 저렇게 생겼다 분별하고, 귀로 듣고, 좋은 소리 나쁜 소리, 별별 소리를 다 분별하고, 냄새, 맛, 부딪침, 생각 역시 분별을 일으켜서 좋다 싫다, 옳다 그르다의 인과를 만들어 계속적으로 반복하여 윤회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분별한 것조차, 좋고 싫고 옳고 그름이 그대로 있느냐 하면 이 또한, 생로병사하여 변하고 결국 사라짐을 반복하니, 허깨비와 같고 이슬과 같으며, 번개와 같고 물거품과 같아서, 무엇 하나 남는 것도 없고, 영원한 것이 없으므로 결국 공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눈‧귀‧코‧혀‧몸‧생각의 육근으로 분별하기 이전으로 돌아가서 본래의 마음을 비추기만 하면, 굳이 수고롭게 공을 찾을 필요도 없고, 분별의 유를 없애려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니, 공함을 알 필요도 없다는 뜻이다.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이나 마음이 움직이는 모양이 이러하니, 좋은 것을 찾아 선택하면, 그 인과의 과보로 말미암아 나쁜 것이 생겨나고, 다시 나쁜 것을 피하려 좋은 것을 찾으니, 다시 나쁜 것의 과보가 나타나고.. 이런 모습 자체가 해와 달이 뜨고 지듯, 밀물과 썰물이오고 가듯, 제자리에서 돌고 돌 뿐이니, 이를 업이 꼬리를 물고 육도(지옥‧아귀‧축생‧인간‧수라‧천상) 윤회한다고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모든 중생은 눈에 보이는 즐겁고 괴로움의 고락에만 집착하다 보니, 고(괴로움)의 늪에서 빠져 나올 수 없게 됨은 물론, 고락 시비 분별하는 매일의 일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고통과 괴로운 일들이 계속적으로 생겨날 수밖에는 없다.

그러니 아무리 좋은 것도 그만큼의 나쁜 것을 만들어내는 원인이 되고, 아무리 옳은 것도 그만큼의 그른 것을 만들어내는 원인이 되므로, 좋은 것을 선택 하지도 말고, 옳은 것을 분별 하지도 말며, 그저 그러려니 하고 좋다 싫다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

좋은 것도 싫은 것도 분별하지 않는 마음을 가져야 본래의 마음인 자성, 불성, 성불의 자리로 돌아가서 편안하게 될 지니, 어떤 상황에서도 희비(기쁘고 슬프고)의 감정을 드러내지 말고, 순간순간의 감정을 놓고 또 놓아 방하착해야 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인 불교는, 좋은 것을 선택하거나, 옳은 것을 선택하라는 것이 절대 아니고,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반대의 하나가 자동으로 생겨서, 인과의 과보로 인해 괴로운 마음을 일으키고 마는 것이니, 좋다, 싫다의 분별심을 없애는 것이 불교의 최종 목적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하여, 내 앞에 나타나는 일들은 내 업의 그림자라는 것을 항상 잊지 말고, 육근에 의해 끄달리지 말며, 무심한 마음으로, 분별하지 않는 일상이 되어야 한다. 그래도 업의 마음에 끄달려서 탐하고 성내고 어리석은 생각이 끊이지 않는다면, 기도와 참선, 보시와 정진으로 극복해야 한다.

 

 

 

 

 

 

 

 

신심명18/좋은 것은 나쁜 것의 원인이 되고, 옳은 것은 그른 것의 원인이 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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