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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입문法華經 入門 - 무비스님

수선님 2023. 6. 4. 14:17

법화경입문法華經 入門          
                           
梵魚寺   法華行者  無比
 
        
次   例                                    
  
      Ⅰ.머릿말
      Ⅱ.『法華經』의 解題
        1.『法華經』의 經名
        2.『法華經』의 八萬大藏經에서의 位置
        3.『法華經』의 內容과 思想
        4.『法華經』의 構成
        5.『法華經』內의 일곱가지 譬喩
      Ⅲ.『法華經』各 品의 槪要
        1.『妙法蓮華經』卷 第一
        2.『妙法蓮華經』卷 第二
        3.『妙法蓮華經』卷 第三
        4.『妙法蓮華經』卷 第四
        5.『妙法蓮華經』卷 第五
        6.『妙法蓮華經』卷 第六
        7.『妙法蓮華經』卷 第七
      Ⅳ.맺는 말


Ⅰ.머리말
  
   한국 중국 일본의 대승불교권에서 '經中王'이라 불리는

『法華經』의 사상이 불교전반에 기여한 바가 상당하다.

사상적으로는 '우리 모두는 成佛한다'는 일불승(一佛乘)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들이 익숙하게 행해온 여러 가지 일상적인 불교행사나 의식도

『法華經』 경전내용에 근거한 것이 적지 않다. 
 

불교사상의 흐름을 볼 때

『華嚴經』을 소의경전으로 하는 화엄학파<華嚴學派>와

『法華經』을 소의경전으로 하는 천태학파<天台學派>로 크게 나눌수 있는데,

 이 『法華經』의 중요성을 최초로 인식하고 해석하여 『法華經』의 요지를 널리 폈던 이는

중국의 천태 지의대사이다. 그는 『法華經』에 대하여 깊은 연구를 하여 법화현의<法華玄義>라는

귀중한 연구서를 남겼고, 또한 이 『法華經』을 소의경전으로 하는 천태종을 개창하기까지 하였다.

그렇게 하여 교종은 敎宗대로, 선종은 禪宗대로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종파간에 생긴 이념의

대립과 갈등을 종식시키려고 하였다.


 왜냐하면 『法華經』에 있어서는 성문 연각 보살의 삼승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는

어떠한 미미한 행위라도 그것을 다 모아 결합시켜 하나의불승( 佛乘)으로 돌아간다는

대지를 통해 보듯이 眞理의 종합성을 잘 나타내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는 전통적으로 화엄학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진리의 순수성을 나타내는『華嚴經』에 대한 연구가 매우 활발하지마는,

고려초기 명승 대각국사 의천(義天)에 의해 천태종이 도입된 이래로

『法華經』이 우리 나라에서도 매우 중요시되었다.

 

물론 대각국사 의천보다 훨씬 이전에 원효스님이 <法華經宗要>를 저술하여

법화사상을 펴기도 하였다. 요즈음은 49재를 지낼 때 『金剛經』을 독송하지만 한때는

『法華經』 서품(序品)을 읽었던 적도 있었다.

그래서 오래된 절에 가보면 『法華經』서품이 가득 쌓여있는 것을 자주 볼 수가 있었다.

또한 최근에 와서 『法華經』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활발해지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시점에 『法華經』에 대한 바른 안목 바른 견해가 더욱 강조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전체 28品이나 되는 긴 경전을 한 구절 한 구절을 다 열거할 지면이 허락되지는 않으니

전통적으로 많은 연구가 되어 빠뜨릴 수 없는 내용에다,

그 동안 내 나름대로 經을 보고 깨달은 안목을 보태어 『法華經』을 분석하고

 해설해 보고자 한다. 지금부터 최고로 아름답고, 가장 우위에 있는 '法華의 世界'로 들어가 보기로 하자.
 
Ⅱ.『法華經』의 해제

  1.『法華經』의 경명
   
    불교는 다른 종교의 경전과는 달리 그 經의 핵심되는 뜻을 경이름에 다 담고 있다.

그래서 經 이름이 뜻하는 바를 제대로 파악하면 그 經의 주된 사상을 거의 한숨에 이해할 수 있다.
 『法華經』을 梵語로 나타내면 <Saddharma-Pundarika-Sutram> 이다.

 

Sad는

'正' 또는

 '妙'로 해석되고,

 

Dharma 는

 '法'으로, Pundarika 는 ' 흰 연꽃'을 나타낸다.

 

Sutram은 聖人의 말씀을 적어놓은 '經'이다.

그래서 286년 서진(西晋)의 축법난(竺法護)는 『正法華經』이라 번역하였고,

*406년 요진(姚秦)의 삼장 구마라집(三藏 鳩摩羅什)은『妙法蓮華經』이라고 하였으며,

*601년 도나굴다는『添品妙法蓮華經』으로 번역하였다.

*현재는 구마라즙의 번역본『妙法蓮華經』을 널리 쓰는데

*직역하면 '무엇보다도 바른 흰 연꽃과도 같은 가르침'이라는 뜻이 된다.
 모든 經의 이름에 씌여진 단어 하나하나가 다 의미가 있겠지만 여기에서

우리가 특히 주의해 보아야 하는 낱말은 '흰 연꽃'이다.

불교의 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연꽃인데 그 까닭은

연꽃 한 송이로써 불교 전반을, 부처님의 사상을,

또 우리들 자신의 진실을 다 나타내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연꽃은 '處染常淨'이라고 하여 꽃 자체는 의례히 더러운 곳에 머물지마는
  그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항상 淸淨함을 유지한다.
  이와 같이 우리들 肉身은 비록 악조건을 가지고 온갖 慾心과 煩惱와 妄想에 흔들리고 있지만    

그러한 無明을 뚫고 연꽃처럼 깨끗한 眞如가 피어난다는 것을 나타내 준다.
 
*연꽃의 또 다른 한 가지의 중요한 특색은 연꽃은 여느 꽃들과는 달리

꽃 봉오리를 맺을 ?? 그 속에 이미 연(蓮)의 열매,

즉 연실(蓮實)을 가지고서 꽃과 열매가 출발을 같이 한다는 점이다.

*'꽃이라는 因'과 '열매라는 果'가 동시에 있는 것처럼

우리들 內部에는 육신의 限界가 지니고 있는 貪 瞋 痴三毒의 가지가지 煩惱덩어리와

우리들이 드러내야 할 아름다운 眞如佛性을 함께 지니고 있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므로 우리들 내부에 이러한 眞如가 있다는  확신을 연꽃의 因果를 통해서

다시 한 번 다질 수 있어서 修行과 깨달음을 통해 우리들의 佛性을 환히 드러낼 근거가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현상적이고 형식적이며 역사적인 적문(迹門)의 진흙을 뚫고,

그 너머에 있는 영원하고 不生不滅하며 근본인 본문(本門)의 진실 생명을

한껏 꽃피우는 바른 이치를 밝혀내기에 연꽃중에서도 가장 고귀한 '흰 연꽃'의 이름을 써서

불교의 경전 중에서 가장 우위를 나타내느라고『妙法蓮華經』이라고 하는 것이다.

또한  세친은 성문 연각 보살이라는 소승의 진흙 속에서 일불승(一佛乘)의

대승(大乘)의 출현(出現)을 의미하기 때문에 연꽃을 들었다고 하였다.

 

 2.『法華經』의 팔만대장경에서의 위치 
 
   방대한 팔만대장경을 經을 설한 시기나 내용에 따라 분류하는 것을 교상판석(敎相判釋)이라 한다.

전통적으로 천태 지의 대사가 정리한 오시교(五時敎)의 관점에서 『法華經』의 위치를 살펴 보면

다음과 같다. 이 방법은 모든 팔만대장경을 부처님 일대시교에 맞추어 부처님 49년 교화 설법에

배정하여 살펴보는 것이다.

 

첫째, 부처님이 성도하신 직후 그 깨달음을 남김없이 드러내 보였다는
      『華嚴經』을 三七 21일간 설한 시기
 

둘째, 광대무변한 화엄경『華嚴經』을 아무도 알아듣는 사람이 없어서,
      중생들의 근기에 맞추어 수준을 낮추어 『阿含經』을 설한 12년의 시기
 

셋째, 그 뒤 수준을 조금 높혀서 8년간 설하신 것이 『方等部』의 경전
 

넷째, 그 다음 고도의 지혜를 필요로 하는공도리(空道理)를 21년간
      설하신 것이 반야부『般若部』 육백권의 경전


 

다섯째,그 동안 설하신 것을 총정리하고
      부촉하는 입장인 법화,열반경『法華 涅槃經』을 8년간 설한 시기

 

이렇게 전통적으로 분류하는데 이 방법은

바로 이 『法華經』의 신해품 <信解品>에 나오는 '궁자 비유'에 따른 것이다.
 장자의 아들이었지만 어렸을 때 집을 나가 고난을 겪고 고향으로 돌아와서는 아버지를 몰라보고

아버지의 권세와 부유함을 보고 놀라는 장면을 '궁자경악' (화엄시)
아버지가 데려와 궁자의 수준에 맞는 일을 시키는 '제분정가' (아함시)
궁자가 몸은 비록 천한 상태에 있지마는 그래도 집 안팎을 자유롭게
드나들게 되었다는 '출입자재' (방등시)
그 뒤 장자가 병이 들어 궁자에게 이르기를

"이 집안의 일을 네가 다 알아서 처리하라."고 하는 '영지보물.(반야시)
세월이 흘러 아버지가 임종을 맞으면서 "이는 나의 아들이다.
나의 재산을 전부 너에게 물려준다."고 하는 '전부가업'(法華時)

 

이렇게 配對를 한다. 장자는 물론 부처님이 되고 궁자는 우리들 중생이다.

그러므로 『法華經』은 부처님의 모든 지혜(智慧)와 자비(慈悲)와 복덕(福德)을

고스란히 우리들에게 물려주는 입장이 되므로 다른 그 어떤 경전보다도수기(授記)와

유통(流通)에 역점을 둔다고 하겠다.

 

경전분류의 또 다른 한가지 방법은 교리 발달사적인 관점에서 살펴보는 것이다.

*부처님이 生存한 당시의 불교를 根本 佛敎라 하고,

*부처님 寂滅 後 약 삼백년까지를 원시 불교라 한다.

*그 뒤 部派佛敎라 하여 많은 문제점이 뒤따랐다.

그래서 '본래 부처님의 사상으로 되돌아가자'는

일종의 새로운 불교운동이 일어났는데 이것으로 대승불교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대승불교운동도 초기, 중기, 후기로 나누는데 『華嚴經』, 『法華經』계통의 경전은

대승 초기에 결집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니까 불멸 후 약 500여 년이 지난 후 대개 기원전후에 성립된 경으로보는 것이다.
  구마라집이 번역한 28品의 순서를 梵語로 된 經을 가지고 단어를 분석해 보면

그 성립 시기가 같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학자마다 의견이 다르지만 대체로

*방편품<方便品>, 비유품<譬喩品>,견보탑품 <見寶塔品>이 초기에 형성되고 이어

*여래수량품<如來壽量品>,여래신력품 <如來神力品>이 첨가되고 비교적 후대에 결집된 것은

*상불경보살품<常不輕菩薩品>과 제바달다품<提婆達多品>이 아닌가 추측한다.

 

또 산문과 게송에서 게송이 먼저 결집되었으므로 게송이 먼저 나오는 品이 초기에 결집되었다고도 한다.

밀교의 요소가 나오는 21品이후를 후기에 결집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오시교의 관점에서 보나 교리발달사적인 보든 이 『法華經』은 부처님이 그 동안 남김없이

자신의 깨달음을 다 털어 보이시고는 마지막으로 부처님의 法이 영원토록 흘러갈 수 있도록

모든 불교적인 행위를 다 수용하는 진리의 종합성을 잘 나타낸다라고 하겠다.

 

 

 3.『法華經』의 내용과 사상

 

『法華經』은 부처님께서 성도하시고 49년 동안 설해주신 것을 최종적으로 정리하여


*'모든 중생들은 다 성불한다'는 부처님의 온전한 사상을 펴는 經이다.
*그래서 특별히 이 經은 부처님이 이 世上에 오신 目的을 밝히고 있다.
*그것은 '開示悟入'의 一大事因緣으로 諸佛이 이 세상에 왔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부처님의 知見을 열어주고(開), 부처님의 知見을 보여주고(示),
*부처님의 知見을 깨닫게 해주고(悟), 부처님의 知見으로 들어가게(入) 해준다는 것이다.
 
이것이 『法華經』의 주된 內容으로 『法華經』의 <方便品> 第二에 소상하게 나와 있다.
 또한 가끔은 실상묘법연화경『實相妙法蓮華經』이라는 말로도 쓰는데

이것은 『法華經』이 제법실상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역시 <方便品>에서

부처님과 근기높은 지혜 제일 사리불이 굉장히 수준높은 대화로써 실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여시상 '如是相'

여시성'如是性'

여시체'如是體'

, 여시력'如是力'

,여시작'如是作'

, 여시인'如是因'

, 여시연'如是緣'

, 여시과'如是果'

, 여시보'如是報'

, 여시본말구경

'如是本末究竟'의 십여시'十如是'를
제법의 실상(實相)이라고 풀어 설명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착안을 가장 많이 하여

『法華經』을 연구하는데 *'如是'를 풀어 보면 '있는 그대로'이다.

*佛敎는 다름아닌 사실을 사실대로 파악하고 또 파악한 그대로를 가르치는 宗敎이다.
그러나 사실대로 파악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들은 어떠한 사물을 볼 때 정말 '있는 그대로' 사실대로 보지를 않는다.

자기 인연대로,
자기 업대로,
자기가 경험한 대로 채색하여 사물이나 사건을 바라보게 되고
정말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에서 바라보아지지가 않는다.
그 사물 사건과 내가 혼연히 하나가 될 때  여시'如是'의 실상'實相'을 바로 보게되는 것이다.
 

또한 한 권의 經典을 요약하여 간단하게 드러내는 것을 대지(大旨)라고 하는데 

*『法華經』의 大旨는 회삼귀일'會三歸一'이다.

그동안 소승의 수행으로 삼았던 성문승 연각승 보살승의 삼승을

전부 다 모아 성불이라는 일불승'一佛乘'으로 귀결시키는 것이다. 


 『法華經』은 全 28品 중 前 14品을 적문이라 하고,
後 14品을 本門이라 한다. 가장 중요한 품을 들라고 하면

*迹門에서는 <方便品>이 되고

*本門에서는 <如來數量品>을 든다.

*迹門에서는 대체적으로 성문승 연각승 보살승의 三乘을 전부 모아 가지고 우리의 최종
 목적인 하나의 불승(佛乘)으로 나아간다는 회삼귀일'會三歸一' 사상을 이야기하고,

*本門에서는 부처님의 수명이 장구하게 이어간다는 구원불성'久遠佛性'을 다루고 있어서

  法의 영원성을 논하고 있다.    

 

 

 3. 『法華經』의 구성

 

   『法華經』全 7권 28품을 전후로 나누어
*<서품> 제일에서부터 <안락행품> 제십사까지의 전반 14품을 迹門이라 하고,
*<종지용출품> 제십오에서 <보현보살권발품> 제이십팔까지의 후반 14품을 本門이라고 한다.
*迹門이라는 것은 흔적을 남겼다는 뜻으로 衆生을 제도하기 위하여 우리들 세상에서 형상을

나타내 보이고 역사적인 자취를 드리운 석가모니부처님이 출현하여 교화하심을 말한다.
*本門은 석가모니부처님이 응신불로서 이 세상에 출현하게한 근원과 본체를 밝히는 것으로

장구하고도 不生不滅인 根本佛을 설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 『法華經』의 眼目이라고 할 수 있는 <如來數量品>에서 잘 다루고 있다.
 
또한 經典은 대개  서분, 정종분, 유통분의 세부분으로 나눈다.
*序分은 역시 <서품> 제일이 되고
*正宗分은 <방편품> 제이에서 <분별공덕품> 제십칠의 앞부분까지가 된다.
*流通分은 <분별공덕품> 제십칠 뒷부분에서부터 마지막품 <보현보살권발품> 제이십팔까지이다.
 迹門에도 序分, 正宗分, 流通分이 있고 本門도 역시 세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迹門에서 보면 <서품>이 그대로 서분이 되고

*正宗分은 <방편품> 제이에서 <수학무학인기품> 제구까지이다.

*流通分은 <견보탑품> 제십일에서 <안락행품> 제십사이다.

이와 같이『法華經』은 다른 經典과는 달리 流通分이 상당한 量이 되는데

迹門에도 5品이나 되고 本門에도 공덕유통이 있고, 付囑流通으로 되어 있다.

 

왜냐하면 이『法華經』은 부처님의 가장 완숙기에 자신의 모든 智慧와 慈悲를 통합하여

마지막 교화 시기에 설했기 ??문에 당연히 후사를 부탁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流通에 역점을 둔다. 또한 부처님의 法이 면면히 이어가려면 현실적으로는 훌륭한 弟子가

많이 있어야 하므로 부처님 弟子들에게 수기를 내리는 기록이 어느 經典보다도 많다.  
 모든 衆生들을 남김없이 모두 다 成佛의 길로 이끌겠다는 願力의 발로로 가지가지 비유와

인연으로 교화하기 때문에 따라서 內容도 방대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간단하게 숫자를 사용하여

'一乘 二門 三周 四行 五師 六功 七喩 八菩 九譬 十如是'로 정리하여

『法華經』全體의 윤곽을 그리고저 한다.


*一乘'은 모두 다 성불한다는 일불성'一佛乘'이고


*二門'은 迹門과 本門을,


*三周'는 상근기가 수기를 받는 법설주(法說周)와
        중근기가 수기를 받는 비설주(譬說周)와
        하근기가 수기를 받는 인연주(因緣周)이다.


*四行'은 <안락행품>에서 설해지는 것으로 설법자가 갖추어야할
        身 口 意 서원,의 네가지 구체적인 행동지침이다.


*五師'는 『法華經』의 유명한 오종법사를 말하는 것으로
       經을 受持, 讀, 誦, 解說, 書寫하는 것이고,


*六功'은 육근공덕을 가리킨다. 즉 이 『法華經』을 통해서 얻게 되는
      眼 耳 鼻 舌 身 意의 功德이 <법사공덕품>에서 소상하게 밝혀지고 있다.


*七喩'는 문학적으로도 매우 뛰어난 이 『法華經』에서 그려지는

       유명한 일곱 가지 비유인데 따로 살펴보기로 한다.


*八菩'는 <종지용출품>에서 『法華經』을 널리 이 세상에 펴겠다는데도 불구하고

       부처님에 의해  부정당해지는 팔천항하사보살들로서 매우 깊은 상징성을 갖고 있다고 하겠다.


*九譬'는 앞서의 칠유에다 두가지 비유를 더 첨가한 것이고


*十如是'는 제법실상을 가르쳐주는 十如是로써 앞에서 살펴본 바다.
 그리고『法華經』의 문장은 장문과 게송으로 되어 있는데 특히 이 『法華經』은 다른 經典보다 도

  게송부분은 量이 많을 뿐만 아니라 내용이나 표현에 있어서도 훨씬 우위인 경우도 많다.
그리고 대체로 이 게송이 먼저 결집되었다고 보고 있다.  

 

또한『法華經』이 설해진 장소와 횟수는

'二處 三回 說法'이라 하여
*왕사성 기사굴산( 耆舍窟山)에서 설하다가 
*多寶塔 속으로 들어가 虛空中으로 올랐다가 다시 지상으로 내려와 설법한 것으로 되어 있다. 

 

 

4.『法華經』내의 일곱가지 비유

  

그동안 小乘의 가르침에서는 聲聞乘과 緣覺乘 菩薩乘을 증득하여 번뇌를 여의고 열반에만

 머무르는 데에만 만족하였으나, 대승의 진리를 펴는『法華經』에서는 여기서 더 나아가

自己 自身마다에 있는 佛性을 인식하고, 그 인식을 통해서 확신하여 느끼고 그것을 환히 보고

깨닫는 '成佛'의 가르침을 펴기 위하여, 衆生들이 잘 알아차릴 수 있도록 매우 실감나고 격조높은

비유를 많이 담고 있다.
*즉 法을 이야기 하고는
*비유를 들어 經典을 뒷받침하도록 되어 있는데 대체로 '일곱 가지 비유' 또는 '아홉 가지 비유'로 든다.
 

첫째, <譬喩品> 第二에 나오는 유명한 '화댁 비유'이다. 집에 불이 났건만 그것을 모르고 철없이 노는

아이들을 보고, 아버지가 羊車, 鹿車, 牛車가 門밖에 있다고 方便을 써서 달래어 화택에서 아이들을

구해내는 이야기인데, 그 소리를 듣고 아이들이 문 밖으로 나와보니 세 수레는 간 곳 없고 그 대신에

大白牛車가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아이들은 물론 우리들 衆生이고 아버지는 부처님이다.

그러므로 부처님은 그동안 方便으로 한 聲聞 緣覺 菩薩의 三乘을 전부 다 모아 成佛이라는

 一佛乘으로 나아가게 한다는 譬喩이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 三界는 부처님 당시나 지금이나 할 것 없이 貪 瞋 痴 三毒에 물들어

苦痛과 葛藤의 삶을 살아가지만 결국은 다 그것을 끊고 成佛의 길로 나아간다는 크나 큰 宣言이 되는 것이다.
 

둘째, <信解品> 第三에 나오는 '窮子 譬喩'이다. 窮子가 집을 나와 헤매다가 차츰차츰

아버지의 財産 狀況을 알게 되고 마침내 아버지의 全財産을 물려받는다는 譬喩로,

낮은 水準에서부터  修行을 쌓아가면서 知見이 열려 마침내 부처님의 온전한 智慧와 德을

모두 이어받아 마침내 成佛한다는『法華經』의 生命을 가르치는 비유가 된다.
 이 譬喩는 부처님이 열어보이는 것이 아니고,

弟子들이 그동안 부처님이 法을 펴오신 過程과 자신들의 넓게 열리는 根機를 부처님꼐 사뢰는 것이다.


 
 셋째, <藥草喩品> 第五에 나오는 '藥草譬喩'이다. 한구름에서 내리는 비는 고루 넓게 사방의

어디에나 내리지만 비를 맞는 숲 속의 풀과 나무들은 같지 않아서 크고 작게 자라난다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부처님의 한량없는 法은 一味平等인데, 衆生들의 性品에 따라 각각 받아 들이는 것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나 크고 작건 간에 풀과 나무들이 당연히 자라고 있는 것처럼 世間 衆生들이 점차로

 修行하여 菩薩道를 행하여 成佛한다는 것이다. 이 藥草喩는 文學的으로도 대단히 뛰어나다.

 

 넷째, <化城喩品> 第七에 나오는 '化城譬喩'이다. 智慧가 뚫린 한 道師가 먼길을 가느라고

극도로 피곤해 있는 대중들에게 길 도중에 하나의 城을 變化시켜 그 속에 들어가게 하여 피로를

풀게한 후에 다시 城을 없애고 진실을 설해준다는 비유이다. 이것은 중생을 敎化할 때에 각자의

근기에 맞는 方便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알려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다섯째, <五百弟子授記品> 第八에 있는 '繫珠譬喩'이다. 어떤 사람이 친구를 찾아갔을 때 친구가

매우 값나가는 구슬을 술에 떨어져 자고 있는 그 사람에게 넣어 주었지만 그 사람은

구슬이 있는 줄을 모르고 다른 나라에 가서까지 고생고생을 하였다. 그러다가 조금 所得이 생기면

滿足하고 사는 정도였는데, 하루는 구슬을 넣어준 친구를 만나게 되어 無價寶珠가 자기 속에 있음을

알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우리들이 끝내 얻어야할 것이 부처님의 智慧인데 그동안은 煩惱가 사라진

涅槃에만 만족하고 살았다는 것을 ?틸貳컨獵? 譬喩이다.

 

 여섯째, <安樂行品> 第十四에 있는 '王繫譬喩'이다. 戰爭에 나가 功을 세웠을 때 그 部下에게 땅이나

寶物은 줄지언정 轉輪王의 상투속에 있는 구슬은 주지 않는 법이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구슬은 하나뿐이기 때문에 眷屬들이 크게 놀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부처님이 중생들로 하여금 滅度케 하여 涅槃에는 이르게 하였지만

이 『法華經』을 설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如來의 으뜸가는 法인

『法華經』을 이제서야 설해주는 것은 왕이 자신의 상투속에 있는 구슬을 내어주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일곱째,『法華經』의 眼目이자 바로 佛敎의 眼目이기까지 되는 <如來壽量品> 第十六에서 밝히는

 '醫師譬喩'이다. 醫師인 아버지가 집에 없을 때 아이들이 毒藥을 잘못 마셔가지고 괴로워 하였다.

아버지가 집에 와서는 그 모습을 보고 良藥을 주었으나 本心을 잃은 아이들은 그 藥을 먹지 않아

아버지는 다시 길을 떠나며 "아버지가 죽었다"하라고 일러 本心을 되찾은 아이들이 良藥을 먹어

病을 낫게 한다는 이야기이다. 아버지인 醫師는 물론 부처님이고 아이들은 중생들이다.

本心을 잃은 아이들은 아버지의 처방을 한번에 듣지 않으므로 아버지는 方便을 써서 本心을 되찾게

하였다는 것으로 여기서도 根機가 낮은 중생들에게 내리는 方便으로 濟度하였다는 단순한 이야기도 되고,

나아가서는 태어나고 修行하고 涅槃의 모습까지도 방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부처님은 방편으로 涅槃을

보이었기 ??문에 부처님의 眞實은 끝간데 모를 過去로부터 未來에 까지 닿아 있다는 부처님 生命의

 永遠함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 일곱 가지 譬喩에는 包含되지 않지만 <法師品> 第十에 '鑿井譬喩'가 나온다.

우물을 팔 때 깊이에 따라 마른 흙에서 차츰 젖은 흙으로, 다시 물기가 많은 흙이 나오는 것을 보면

물이 가깝다는 것을 알게된다는 이야기로 이『法華經』을 듣고 이해하여 닦고 익히면 菩提心에

가까이 온 줄을 알 수 있다는 비유이고, 나머지 한 가지는 <從地涌出品> 第十五에 있는 '父少譬喩'이다.

부처님이 成道하고 敎化한 지 40여년 밖에 되지 않는데, 땅으로부터 수많은 菩薩들이 솟아오르는 것을 보고

 "언제 이렇게나 많은 菩薩들을 敎化하였느냐"는 감탄으로 스물 다섯의 젊은이가 백 살된 老人을 보고 아들이라

하고, 백 살된 老人 또한 그 젊은이를 보고 아버지라 한다면 누가 믿겠느냐는 譬喩이다.
  

Ⅲ.『法華經』 各 品의 槪要

 

'一文一字是眞佛'이라 하여 經典上에 놓여지는 말은 한마디도 그냥 놓인 법이 없다.

 經典의 中心思想은 말할 것도 없고 부처님 名號나 菩薩들 이름, 또한 나라 이름도

각각 深奧한 의미를 다 갖고 있다. 뿐만 아니라 品의 配列이라든지 人物들의 登場 順序도

매우 絶妙하게 配置되어 있다. 이러한 心理의 基調는 오늘날 우리들의 眼目으로 보아도

하나 손색이 없어 보인다. 이러한 것들을 낱낱이 分析하고 의미를 짚어갈 수는 없겠지만

『法華經』 全般의 흐름을 간략하게 알아보도록 한다.
 

 

 1.妙法蓮華經 卷 第一
 
   序品 第一

   『法華經』의 무대는 王舍城 耆舍窟山이다. 흔히 靈鷲山이라고 하는데 거기에 부처님을 中心으로

큰 스님과 大衆 萬 二千人이 둥글게 자리잡고 있는 가운데 부처님은 『無量義經』을 설하고 난 뒤

無量義處三昧에 든다. 그 뒤 부처님의 眉間의 白毫로부터 光明을 놓아 동방 만팔천 國土를 빠짐없이

다 비추이는 祥瑞를 보이는데 그 모습을 보고 크게 놀라는 大衆들에게 文殊師利菩薩이 이제 위대한

 最上의 法이 설해질 것이라 일러주면서 이 『法華經』이 시작되는 것이다. 文殊師利菩薩은 過去

千佛의 스승이라 하여 智慧를 나타낸다. 


 이 경 또한 大乘佛敎의 經典답게 곳곳에서 밝은 智慧를 강조하고 있는데 二萬이나 반복하여 태어났다는

日月燈明부처님의 名號를 보면 그대로 밝음뿐임을 알 수 있다. 佛敎의 모든 것은 始終一貫 智慧뿐이다.

智慧를 상징하는 文殊師利菩薩이 이 經典에 제일 먼저 登場하고 弟子들 중에서도 역시 智慧第一이라는

舍利弗과 부처님이 먼저 對話를 나눈다.


 그리고 登場人物의 배치를 살펴보는 것도 경전을 보는 재미가 있다. 序品에서는 文殊師利菩薩이

등장하고 맨 마지막으로는 普賢菩薩勸發品을 배치시켜 普賢菩薩이 나온다. 그리하여 經典

 처음과 끝에서 文殊師利菩薩과 普賢菩薩이 化身 釋迦牟尼 부처님을 左右에서 받쳐주는 格이 된다. 

 또한 부처님의 光明속에 나타난 國土에서 갖가지의 修行 모습이 보이는데 그것은 그대로

이 經典이 結集되던 當時, 印度에서 佛敎가 가장 흥할 때의 社會와 修行 모습을 미루어 짐작하게

해 주는 것이 되고, 그것이 그대로 면면히 이어져 오늘날 우리들이 수행하는 것과 하나나도

다르지 않음도 알 수 있다.

  

 

      方便品 第二

 

  이 方便品은 迹門의 가장 중요한 품이다. 三昧에서 일어난 부처님과 智慧가 뛰어난 舍利弗이 對話를

시작하고 있다. 부처님은 未曾有한 법을 부처님이 成就하여 오직 부처님만이 '十如是'의 諸法實相을

안다고 하여 舍利弗에게조차 그만 두자고 하는 유명한 場面이 있다. 그래서 舍利弗이 부처님께 請하고

그래도 부처님은 그만 두자고 하기를 세번 반복하는데 이를 '三止'와 '三請'이라 한다. 이 때 五千人의

增上慢들이 자리를 나가는 佛敎史에 있어서 前代未聞한 사건인 '五千退席'이 있고서야 부처님의 법이

설해진다. 부처님은 一大事因緣으로 이 世上에 오시어 衆生들로 하여금,

부처님의 知見을 열어주고(開),

보여주고(示),

 깨닫게 해주고(悟),

부처님의 知見으로 들어가게(入) 해준다는 것이다.

 

 '五佛章'이라 하여

諸佛, 過去佛, 現在佛, 未來佛, 釋迦佛 모두가 다 三乘이 아닌 '成佛'이라는

一佛乘만을 말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가지가지 因緣과 譬喩로써 한 것은 衆生들의 根性
이 부족하여 사용한 方便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重頌에 나오는 '諸法從本來 常自寂滅相 佛子行道已 來世得作佛'는『法華經』의 四句偈이다.
 
 2.妙法蓮華經 卷 第二  

  

               譬喩品 第三

 

  앞의 <方便品>에서 부처님이 法에 대하여 정說하였고 그래서 法說註라 한다.

譬喩品에서는 領解, 述成, 授記가 있다. 부처님 弟子 중에서 上根機인 舍利弗이

授記를 맨 처음으로 받는다. 여기에 授記의 定型이 보이는데 佛名, 國號, 劫名,

法의 壽命이 차례로 나온다. 舍利弗이 授記 받을 때 가장 자세하게 그려지고 있는 것도 살펴볼 수 있다.
 그리고 이 『法華經』에서 가장 實感나게 그려지고 있는 '火宅譬喩'가 있다. 이 三界라고 하는 것은

마치 불타는 집과 같다는 것이다. 偈頌을 보면 貪 瞋 痴 三毒에 시달리는 온갖 衆生들의 모습이 정말

實感나게 그려지고 있다. 그 속에서 정신없이 보내는 아이들을 위해 밖에 羊車, 鹿車, 牛車가 있다고 하여

일단 불타고 있는 집에서 나오게 한 후 大白牛車를 보인다는 이 譬喩는 그동안 方便으로 보인

聲聞 緣覺 菩薩로 滅度에는 이르지만 成佛에는 도다리 못하는 고로 오직 이 大乘法을 설하는

『法華經』을 갖고서 一佛乘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信解品 第四

 

   上根機인 舍利弗이 授記받는 것을 보고 聲聞 四人인 慧命須菩提와 摩訶가전연, 摩訶迦葉,
목건련이 부처님께서 說法해온 內容들과 또한 自身들이 그동안 修行하여온 過程을,

길을 잃고 헤매었던 窮子가 차츰 長者의 財産을 물려받는 이야기에 譬喩하여 부처님께

말씀을 올리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 譬喩는 앞에서 詳細하게 살펴 보았듯이 經典의 位置를 살펴볼 때 의례히 引用되는 비유이다.

그래서 이 『法華經』은 八萬大藏經을 총정리하는 입장이기 ??문에 이 譬喩가 여기서 설명되어 진다고 하겠다.

 

3.妙法蓮華經 卷 第三 

  

          藥草喩品 第五
  
   『法華經』은 品이 달라진다고 하여도 앞의 品을 받아서 內容이 展開된다.

앞에서 네 聲聞이 '窮子譬喩'를 들어 부처님 法과 자신들의 修行을 설명하고 부처님이

그것을 認定해 주고 부처님도 비와 藥草를 譬喩하여 小乘과 大乘의 根機를 설명하는

 대목인데 이 藥草喩는 대단히 文學的으로 향기롭고, 또 印度의 自然 현상을 실감나게

짐작할만한 描寫도 많이 나온다.
 비는 한 구름에서 平等하게 내리지만 풀과 나무들은 받아들이는 것이 各各 달라서

그 자람이 같지 않다는 것이다. '三草二木'이라 하여 根機가 모두 다 다른 衆生들을 비유하는데

下品藥草는 人天因果敎를 나타내고, 中品藥草는 二乘을 말하며 上品藥草는 藏敎菩薩을 가리킨다.

또한 작은 나무는 通敎보살을 뜻하고 큰 나무는 別敎보살을 말한다. 한 구름에서 고루 내리는 비는

 물론 부처님의 平等한 法을 뜻한다.

 

  授記品 第六

  

中根機인 迦葉과 須菩提와 가전연과 목건련이 授記를 받는데 여기까지가 譬說註이다.

부처님 當時에는 出家를 하였다고 해서 오늘날처럼 佛名을 받은 것이 아니고, 『法華經』에서

授記를 받음으로해서 비로소 佛名이 생겼다. 앞으로 부처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므로 이 授記는

 대단히 意義있는 일이 된다.
 또 이 品을 보면 塔廟에 관한 言及이 대단히 많이 나오는데 이것은 그 당시

 佛滅 後 五百歲 前後에 塔事가 대단히 盛行하였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化成喩品 第七

  

지금까지 제자들에게 授記를 내리다가 말을 바꾸어 長久한 時間을 이야기한다. 大通智勝如來가 十劫동안이나 道場에 앉았어도 佛法이 안 나타났다든가, 涅槃에 들은지가 아주 오래전이라는 것을 三千 大千 世界를 갈아 먹물로 만들어 떨어뜨리는 길고 긴 시간을 예로 들어 說明을 한다. 이제 중근기 弟子에게까지 授記를 내리는 도중이면 계속하여 授記를 하면 될 터인데 왜 여기서 말을 바꾸어 長久한 시간을 이야기하는지 속뜻을 헤아려 볼 필요가 있다.   우리들이 헤아려볼 수 있는 範圍에서 가름해 볼 것 같으면 이 長久한 時間은 다름아닌 바로 끝모를 우리들의 마음의 깊이라고 본다. 이 끝이 없는 마음의 깊이를 완전히 꽃피웠을 때, 바로 부처의 智慧가 되는 것인데 이 巨大한 깨달음의 世界를 表現하자니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으리라 본다.
『法華經』의 흐름은 부처님의 깨달음이 굉장히 들추어지고 칭송되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렇게나 거대한 부처님의 智慧가 부처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 우리들 각자가 모두 다 가지고 있고, 또 지니고 있기 때문에 成佛할 수 있음을 授記를 통해 證明해 보이고 있다. 그래서 授記를 하다가 長久한 시간을 언급하여 우리들의 成佛을 다시한번 확신시켜 주는 것이다.
 大通智勝如來가 成佛하고는 十方으로 '光明'을 보이는데 이 역시 참다운 智慧를 말하는 것이다. 또 하나 眼目을 열어 보아야 할 것은 大通智勝如來가 成道 後 처음으로 法을 설하는데 苦, 苦集, 苦滅, 苦滅道의 四諦와 十二因緣法을 설했던 점이다. 이는 釋迦牟尼부처님의 初期 說法과 同一함을 알 수 있다. 經典上에 나타난 모든 부처님의 行蹟은 한결같이 釋迦牟尼부처님을 모델로 하여 그려진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經을 보면 理解가 빠르리라 본다.
 앞서 살펴본 대로 '化城譬喩'를 들어 實際로 衆生을 敎化함에 있어서 方便의 重要性도 强調하고 있다.
 

 4.妙法蓮華經 卷 第四
 
   五百弟子授記品 第八 
 
   지금부터는 下根機 弟子들이 授記를 받기 때문에 因緣註라고 한다. 부처님께서는 특별히 부루나에게 授記를 내리면서 특별히 많은 칭찬을 하는데 이는 부루나가 부처님 법을 많이 알고 說法도 잘 하여 부처님 법을 잘 전하기도 하였지만, 부루나는 수루나 나라에 敎化하러 가서 殉敎한 제자였다. 이런 사실때문에 부루나를 說法第一이라할 만하고 부처님께서도 특별히 配慮를 많이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부루나의 授記, 二千人의 授記, 교진여의 授記, 五百人의 授記가 계속 이어지는 品이다. 수기를 받은 많은 제자들은 '繫珠譬喩'를 들어 수기 받은 所感을 나타내 보인다.

  

 授學無學人記品 第九

 

  阿難존자와 라후라가 授記를 받고 學無學 二千人도 授記를 청하고 받는다. 부처님의 十代 弟子에도 根機에 있어서 差異가 있음을 授記받는 順序를 보면 짐작할 수 있다. 또한 과거에 있어서도 阿難은 많이 듣기를 좋아했다는 過去行이 소개되는데 이 역시 阿難의 行蹟과 일치되는 점이다. 또 하나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은 라후라가 수기받은 부처님의 佛名이 蹈七寶華如來이다. 釋迦牟尼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시어 일곱 걸음을 걸었다는 행적과 연관이 있는 佛名임을 알 수가 있다.

 

   法師品 第十

  

『法華經』을 공부하는 사람, 즉 '法華行者'가 모두 授記를 받는 품이다.『法華經』을 '受持', '讀', '誦', '解說', '書寫'하는 '五種法師'와 열가지의 供養을 올리면 모두 成佛한다는 것과 法華行者를 비난했을 때 따르는 業報에 대해 과감하게 列擧하고 있기도 하고 함부로 經을 설해주지 말라는 표현도 보이는데 이러한 것은 그 당시 小乘과 大乘의 尖銳한 對立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開方便品 示眞實相'하는『法華經』의 진실한 뜻을 '鑿井譬喩'로써 설명하고 있고, 또 『法華經』을 펴는데에 있어서 가져야 할 規範으로 大慈悲心, 柔和忍辱心, 一切空法을 들고 있다.


  見寶塔品 第十一

 

 虛空으로 솟아오른 多寶塔안에서 釋迦牟尼부처님을 讚嘆하는 多寶如來소리가 들리고 大衆들은 多寶如來를 보길 원하자 十方 世界에 가득찬 釋迦牟尼부처님의 分身이 모두 모일 때 多寶如來가 나타난다고 한다. 이는 온 國土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부처로 보게되는 경지에 이르러면 바로 이 세상이 佛國土가 된다는 이야기이다. 慶州 佛國寺는 그대로 이 法華思想을 형상화시킨 것을 알 수 있다.
 多寶如來가 모습을 드러내고, 또 釋迦牟尼부처님이 虛空에 머물고 있는 탑 속으로 들어가 多寶如來와 分半座하였기에 大衆들도 청하여 모두 다 虛空으로 올라가 說法이 이루어졌다는 품으로써 說法 場所가 地上에서 虛空으로 바뀌었다. 二處 二回 說法이 설해지는 것이다.
 經에서 虛空이라는 의미는 空과 같은 의미이다. 대중들이 모두 다 虛空에 올랐다는 것은 一切 萬法이 空한 줄을 깨쳤다, 다시 말하면 相에서 벗어나 空한 도리로 볼 줄 아는 智慧가 갖추어졌다는 의미가 되겠다.『金剛經』의 가르침인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提婆達多品 第十二

  

 대중들도 相에서 벗어나 空도리를 깨친 경지가 되었으니 이제는 提婆達多같은 惡人의 問題도 짚어보자는 의도로써 이 品이 적절한 시점에 配置되어 있다. 提婆達多가 마지막으로 授記를 받는데 이쯤되면 佛敎의 慈悲는 단순한 慈悲가 아니라 智慧의 慈悲인 것이다.
 또한 자주 引用되는 '龍女 成佛'도 다루어지기 때문에 이 品은 '惡人成佛'과 '畜生成佛'章이라 한다. 畜生이 頓悟頓修하는 場面이 劇的으로 전개된다.

 

  勸持品 第十三

 

   이 品에서는 比丘尼들이 授記를 받는다. 최초의 比丘尼인 마하파사파제와 라후라의

어머니인 야수다라比丘尼가 청하여 수기를 받는데 여기도 인간적인 시각을 더하여

經을 대하면 더욱 妙味를 느낄 수 있다. 惡人과 畜生까지도 授記를 받는 이 시점에 있는

간절한 比丘尼들의 心情을 읽을 수 있으리라 본다.

 

 5.妙法蓮華經 卷 第五      
 
  安樂行品 第十四

  

'『法華經』은 布敎學 槪論이다'할 정도로 傳法에 힘을 쓰고 있다. 이 品에서는 法師가 갖추어야 할 '身', '口', '意', '誓願'의 네가지에 대한 具體的인 行動 指針을 말하고 있다. 親近할 곳과 하지말아야할 곳에 대해 일러준다. 즉 法師로서, 또 지도자로서 갖추어야할 品位를 말하고 있다. 이것이 잘 成就되었을 때의 功德도 잘 그려지고 있다.
 이 安樂行品으로 형상으로 보이고 있는 歷史的인 부처님과 모든 부처님, 弟子들의 자취가 그려진 迹門이 끝난다고 이해하고 있다.  

  從地涌出品 第十五

 

   이 品은 매우 力動的이고 또 象徵性도 매우 높다. 부처님으로부터 不定당해지는 他方으로부터 온 八恒河沙菩薩이나 땅이 찢어지고 거기서 六萬恒河沙菩薩과 그에 따르는 六萬恒河沙菩薩眷屬등은 우리들 진실 그대로이다. 八이란 다름아닌 사량분별로 헤아리는 八識이다. 육근육진의 경계로는 『法華經』의 진실에 들어가기 어렵다는 것이다. 땅이 찢어지듯 우리의 온갖 妄想分別이 깨뜨려져야 다시 새롭게 참생명의 육근육진이 활발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형상을 깨뜨리고 因을 깨뜨리고 方便을 깨뜨려야, 참마음자리가 나타나고 果가 나타나고 眞如가 드러난다는 『法華經』의 대긍정의 세계를 참으로 환희심나게 그리고 있다. 

 

   如來壽量品 第十六

 

 이제 八識分別로 잡히는 迹門의 경계는 다 무너지고, 우리들의 不生不滅의 참생명자리 본래로

다 갖추고 있는 淸淨한 眞如의 永遠性을 이 如來壽量品에서 드러나고 있다. 그래서 이 品을

『法華經』의 眼目이고 佛敎의 眼目이라고 하는 것이다. 無始無終의 부처님의 壽命은 바로 우리들

생명이어서 끝없이 펼쳐질 것이므로 바로 우리들의 미래의 꿈이 되고 이상이 되는 彌勒菩薩이

여기서 등장을 하고 있다.


 '自我得不來'로 시작되는 마지막 偈頌을 『法華經』의 '自我偈'라 하는데 分別도 差別도 끊어진

본래로 구족되고 또한 不生不滅인 우리들의 진실생명에 대한 뜻을 잘 담고 있다.

 

   分別功德品 第十七
  
   끝간 데 모르게 닿아있는 부처님의 생명에 대한 理解를 깊게 하면 그에 따르는 功德은

참으로 클 것이다. 또한 그 功德은 바로 우리들 공덕이고『法華經』의 공덕이 된다.

그래서 功德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게 된다. 功德이 이처럼 많으니 『法華經』을

널리 전해야겠기에 중간 부분부터 전체 經典의 流通分이 된다. 功德流通이라 한다.

 

   6.妙法蓮華經 第 六卷

 

      隨喜功德品 第十八

  

재미있는 표현을 써서『法華經』의 功德을 이야기하고 있다.『法華經』의 가르침을 받아듣고

기뻐하여 또 다른 사람에게 전하여 제 오십번 째의 사람이 기뻐한 공덕을 말하고 있다.

그러니 첫번 째 사람의 공덕은 얼마나 크겠는가 하는 논리이다.

 

   法師功德品 第十九

  

계속 功德流通이 이어지고 있다. 『法華經』을 受持, 讀, 誦, 解說, 書寫하는

'五種法師'가 얻게 되는 六根 功德을 말하고 있다.

八百眼功德, 千二百耳功德, 八百鼻功德, 千二百舌功德, 八百身功德, 千二百意功德 을

낱낱이 밝히고 있다. 이는 『능嚴經』에서 말하는 六根功德과 같다.

 

常不輕菩薩品 第二十

  

우리들이 禮拜을 하는 窮極的인 목적은 '모든 人間을 부처님으로 모신다'는 것이다.

이것을 부처님의 本生談을 통해 '常不輕菩薩'을 등장시켜 實證的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최초의 부처님 威音王如來라는 名號를 한번 살펴보자. '威'는 형상이고, '音'은 소리이다.

역시 육근이 발동하는 보통의 우리들 사량분별이다는 것이다. 그 때 常不輕菩薩이라는

한 菩薩은 오로지 '항상 나는 당신을 가벼이 여기지 않습니다'하면서 남을 禮拜하는 것으로

修行을 하였는데, 이는 우리들 의식 너머에 있는 부처를 바로 알고 사람사람마다에 있는

佛性을 찬탄한 것이다. 몸으로 직접 『法華經』을 설하고 보여주는 것이다.

 

  如來神力品 第二十一  

  

이 品부터는 付囑流通이다. 부처의 功德이 이만큼 있으니 널리 傳法하라는 부탁을 하는데 있어서

먼저 열가지 威信力을 보인다.

廣長舌, 無量光, 警해, 彈指, 地動, 皆見, 虛空中聲, 遙散寶物,

十方世界通達無碍의 威信力을 나타낸다. 자신의 능력을 보이고서 난 뒤 이 經은

'如來一切所有之法'과 '如來一切自在信力'과 '如來一切秘要之藏'과

'如來一切甚深之事'를 다 顯說한다고 하며 付囑을 내리는 세밀함을 볼 수가 있기도 하다.

 

 囑累品 第二十二 
  

앞에서 如來는 神力을 보이고난 뒤 菩薩들의 머리를 세 번이나 쓰다듬으며 付囑을 한다.

우리들 人間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如來가 바로 우리들 施主임을 한번 더 認識시키며

『法華經』의 流通에 대해 당부한다. 여기서 多寶如來가 本國으로 돌아가고 虛空中의 說法이 끝난다.

二處二回의 說法이 끝나는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부분이 마치 經典의 끝처럼 敍述되어 있다.
 
  藥王菩薩本事品 第二十三

  

出家하여 僧侶가 되어 戒받을 때 燃臂의 由來가 되기도 하는 一切衆生喜見菩薩의 燒身供養이 나온다.

팔을 태우는 것이 燒身供養이 아니고 팔을 태우고 난 뒤 다시 그 팔이 원래대로 復舊되는 것이 진정한

燒身供養이라 하겠다. 바로 이 一切衆生喜見菩薩이 藥王菩薩의 本生이다.
 그리고 이 品에서 『法華經』 功德의 秀勝함을 아름다우면서도 도도하게 열가지에 譬喩하여 노래하고 있다.
 
 7.妙法蓮華經 第 七卷 

 

   妙音菩薩品 第二十四

  

이 妙音菩薩品은 바로 이어 나오는 觀世音菩薩普門品과 매우 類似한 형식을 보이고 있다.

序頭에서 부처님께 菩薩의 내력을 묻는다든지 34應身을 나타내어 衆生을 敎化하는 모습 등

여러 가지로 비슷한 형식을 보이고 있다. 이렇게 經을 볼 때 前後를 比較해 가거나 連結되는

이야기를 찾아서 읽으면 더욱 진실을 넓게 가질 수가 있다.  여기서 우리들이 생각하고

넘어가야할 점은 34應身에 대해서다.

이것은 우리들이 法師의 役割을 할 때 對象의 根機와 必要에 맞추어 法을 설해야 된다는 이야기이다.

가장 목말라 있을 때 그 갈증을 해결해줄 수 있는 적절한 方便을 適時에 活用할 때 法師의 役割이,

나아가 佛敎의 意味가 한층 더 소중해진다고 본다.
 
     觀世音菩薩普門品 第 二十五

  

僧侶들도 마찬가지이지만 一般人들이 佛敎修行의 방법으로 觀世音菩薩을 念하는 것은 대단히 좋다.

一念으로 하게 되면 그대로 禪이 되고 無念無想의 경지에 이르러게 된다. 단순히 日常을 살아가는데도

참으로 보탬이 되는 수행이다. 아름답고 智慧롭고 慈悲로운 마음 씀씀이를 배울 수 있다.
 우리 나라의 觀音信仰은 歷史도 깊고 熱情도 대단하다.

靈驗 또한 셀 수 없이 많다. 어쩌면 佛敎信仰의 太半을 차지한다고 해도 過言이 아닐 것이다.
觀世音菩薩의 慈悲와 威信力에 대해 잘 밝혀져 있는 經典은

바로 『法華經』의 이 普門品과 『능엄경』과 『천수경』이다.

『능엄경』에서는 觀世音菩薩이 지니고 있는 能力의 根據를 소상하게 밝혀 놓았다.

특히 觀世音菩薩이 修行하여 얻은 耳根通에 대해 잘 설명해 놓았다.

그래서 『능엄경』은 觀世音菩薩의 修行法을 소개하고 觀世音菩薩의 수행을 따르기를

권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천수경』은 觀世音菩薩의 來歷과 드러나지 않은 行蹟들,

威信力이 대다라니 안에 담겨 있다.
 

이 普門品은 따로 독립되어 流通되기도 하고 특히 重頌部分은 외우다시피 널리 讀誦되고 있다.

이 品에서 나오는 온갖 불이니 물이니 수미산이니 하는 것은 모두 다 우리들의 어리석은 마음자리에서

일어나는 찰나적인 妄想일 따름이다.

觀世音菩薩을 念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바로 우리들이 觀世音菩薩로 化하는 靈驗을 얻으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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