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화경(法華經) 『방편품(方便品)』에
"제법실상(諸法實相) 소위제법 (所謂諸法) 여시상(如是相), 여시성(如是性), 여시체(如是體), 여시력(如是力), 여시작(如是作), 여시인(如是因), 여시연(如是緣), 여시과(如是果), 여시보(如是報), 여시본말구경등(如是本末究竟等)"이 나온다.
천태대사(天台大師)의 일념삼천(一念三千)은 정말 묘(妙)한 법문(法門이다. 제법(諸法)은 실상(實相)이다. 실상은 10여시(十如是)다. 10여시는 10계(十界)다. 10계는 신토불이(身土不二)다. 신토불이는 일념삼천(一念三千)이며 원융삼제(圓融三諦)며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이다.
『비유품(譬喩品)』에
1) 금차삼계(今此三界) 개시아유(皆是我有) … 【국토세간】
2) 기중중생(其中衆生) 실시오자(悉是吾子) … 【중생세간】
3) 이금차처(而今此處) 다제환난(多諸患難) … 【오음세간】
유아일인(唯我一人) 능위구호(能爲救護)
1)은 우주(宇宙)의 주인(主人)이요, 2)는 우주(宇宙)의 친부(親父)요, 3)은 우주(宇宙)의 사(師)다. 즉 주(主)·사(師)·친(親) 3덕(德)을 구족(具足)하고 있다. 부처님은 영원한 수명(壽命)과 영원한 행복과 자유와 전지전능(全知全能)한 신통(神通)으로 중생을 교화(敎化)하면서 영원히 우리와 같이 존재한다. 우주마음이 卽 우주생명(宇宙生命)이요, 법신불(法身佛)이요, 우리들의 마음과 같다.
『법화경(法華經) 여래수량품(如來壽量品)』은 우리들의 수명(壽命)이 영원하다는 것을 알려서 일체 중생이 불법(佛法)에 귀의(歸依)해서 성불경(成佛經)인 법화경에서 일불승(一佛乘)으로 통일시켜서 '일념삼천'(一念三千)으로 성불(成佛)시킨다. 이것을 '파지옥진언'(옴 가라지야 사바하)과 같이 읽는다.
1)은 국토세간(國土世間) 즉 무정(無情)류들이며
2)는 중생세간(衆生世間) 즉 유정(有情)류들이며
3)은 오음세간(五陰世間) 즉 유정·무정을 합한 것이다.
이것이 "십계호구백계(十界互具百界) 천여(千如) 일념삼천(一念三千"이란 천태지대사(天台智大師)의 법화경(法華經) 핵심법문(核心法問)이다. 10계(十界)에 각각 10계(十界)가 있어 100계(百界)가 되고, 100계에 10여시(如是)가 있어 1000여시(千如是)가 되어(100계×10여시=1000여시), 3세간(世間)을 곱하니 1000여시×3세간=3000세간(三千世間)이다.
쉽게 말해 우리 마음의 한 생각이 삼천세계(三千世界) 즉 시방법계(十方法界) 유정·무정에 전부 서로서로 '인드라망'처럼 연결(連結)되어 있다는 것이다. 소립자 하나라도 독립적(獨立的)으로 존재(存在)하는 것이 없이 전부 연결(제망찰해 帝網刹海)되어 있다는 것이다.
☞ 삼세간(三世間)에서 '세간'이란?
십계에 국토(國土)와 중생(衆生)과 오음(五陰)이 각각 다르게 되어 있는것을 세간(世間)이라 하며
또한 유정(有情), 무정(無情)을 의미(意味)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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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如是는,
① 여시상(如是相) : 이와 같은 모습, 형상(內相, 外相), 고체, 액체, 기체로 된 상
(相). 지수화풍(地水火風)의 근원적 에너지
② 여시성(如是性) : 이와 같은 상대적 마음인 '분별식'(6·7식;망식妄識)과 절대적 마
음인 '무분별식'(5·8식;진식眞識). 현재의식과 잠재의식은 분리된
게 아닌 일심(一心)의 양 측면인 진망혼합식(眞妄和合識)
③ 여시체(如是體) : 이와 같은 근원적인 본성(本性) 또는 상(相)과 성(性)이 결합된것
④ 여시력(如是力) : 이와 같은 힘, 에너지, 기(氣)
⑤ 여시작(如是作) : 이와 같은 작용하는 것(능소能所의 작作과 용사用事하는 것)
⑥ 여시인(如是因) : 이와 같은 근본 원인. 종자(種子). 생명(生命). 진여(眞如;불성)와
모든 원인
⑦ 여시연(如是緣) : 이와 같은 조건들(서로 의존적인 관계)
⑧ 여시과(如是果) : 이와 같은 결과(結果). 결실(結實). 마무리
⑨ 여시보(如是報) : 이와 같은 결과(結果)에 대한 갚음
⑩ 여시본말구경등(如是本末究竟等) : 이와 같이 시작(本)과 끝(末)이 궁극에는 구경
등(究竟等: 궁극에는 같다)
천태대사(天台大師)의 『마하지관』10장과 『법화현의』가 이 10여시로부터 나왔다.
☞ 여시상(如是相)에서,
♣ 여(如) : 여여하다, 같다 등 공(空)을 의미(意味)
♣ 시(是) : 반드시, 틀림없이, 모자라거나 넘치지 않는 알맞은 중도(中道)를 말함
그러므로 '如는 空', '相은 假', '是는 中'에 해당되어 '공(空)·가(假)·중
(中)' 삼제(三諦)다. 그래서 법화경(法華經)의 "여시아문"(如是 我聞)
은 '중생기심(衆生己心) 소구(所具)의 법문(法門)'이며 '아난'이며 '일체
중생'이다. 부처(佛)와 중생(衆生)과 심(心) 이 셋이 같으며 이것이 삼법
묘(三法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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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고】
상여시(相如是):석명(釋名), 성여시(性如是):대의(大意), 체여시(體如是):체상(體相)
역여시(力如是):섭법(攝法), 작여시(作如是):편원(偏圓)
인여시(因如是):정관(正觀), 연여시(緣如是):방편(方便)
과여시(果如是)·보여시(報如是):과보(果報)
본말구경등(本末究竟等): 지귀(旨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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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10여시(如是)가 유정(有情)·무정(無情) 일체중생부터 소립자 하나까지도 빠짐없이 모두가 구족(具足)되어 있으니 얼마나 신비(神秘)하고 심오(深奧)하고 묘(妙)한 법(法)인가!
이렇게 십여시(十如是)로 구성(構成)된 생명(生命: 씨와 껍데기)이 자연법칙(自然法則: 다르마)에 의해 유지(維持)되고 있다. 『열반경(涅槃經)』에 석존의 마지막 설법(說法) “자등명(自燈明) 법등명(法燈明 )"
앞의 3여시(如是相, 如是性, 如是體)가 본(本)이 되고,
뒤의 6여시(如是力, 如是作, 如是因, 如是緣, 如是果, 如是報)가 말(末)이 되어
본말(本末)이 궁극(窮極)에 가서는 같다(等).
왜냐하면 如是相, 如是報와 같고(色에 있고), 如是性은 如是因, 如是果와 같고(心에 있고),
如是體는 如是力, 如是作, 如是緣과 같기(色心에 있음) 때문이다.
성(性)·인(因)·과(果)는………………심(心)에 있고
상(相)·보(報)는………………………색(色)에 있고
체(體)·력(力)·작(作)·연(緣)은………색심(色心)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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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本) 3여시(三如是)인 여시상(如是相), 여시성(如是性), 여시체(如是體)는 유정(有情)·무정(無情) 일체중생에게 본래부터 갖추어져 있는 무작삼신여래(無作三身如來) 즉 본래부터 '본각여래'(本覺如來)이다. 그러므로 앞의 3여시가 '본각(本覺)의 여래(如來)'이며 '성덕(性德)의 삼신'(三身: 무작無作의 법신, 무작無作의 보신, 무작無作의 응신)이며 체(體)가 되고, 뒤의 7여시가 작용(作用)이 되어 구체구용(俱體俱用)으로 '묘각'(妙覺)이며 '수덕(修德)의 삼신(三身: 법신法身, 반야般若, 해탈解脫)'으로 구경등(究竟等)이니 시각(始覺)과 묘각(妙覺)은 같다. 그러므로 본각(本覺), 시각(始覺), 묘각(妙覺)이 구경등(究竟等)이다.
♣ 말(末)에 해당하는 7여시(七如是)는 각각,
력(力)→ 10신(十信), 작(作)→ 10행(十行), 인(因)→ 10주(十住), 연(緣)→ 10회향(十回向),
과(果)→ 10지(十地), 보(報)→ 등각(等覺), 본말구경등(本末究竟等)→ 묘각(妙覺)에 해당한다.
♣ 또한 처음 여시상(如是相)이 본(本)이 되고 뒤에 여시보(如是報)가 말(末)이 되어 본말구경등(本末究竟等)이다. 이 때 여시상(如是相)은 중생(衆生)이고 여시보(如是報)는 부처로서 궁극에는 중생과 부처가 하나다.
소립자(素粒子) 하나라도 10여시(如是)가 다 들어있으니 유정(有情)·무정(無情) 일체중생(一切衆生)은 일인과(一因果), 성(性), 상(相) 일체(一切)가 구족(具足)되지 않은 것이 없다. 여기서 인(因)은 불성(佛性)을 말하는데 삼인불성(三因佛性)으로 나뉜다.
삼인불성(三因佛性)은 ①정인불성(正因佛性) ②요인불성(了因佛性) ③연인불성(緣因佛性)이 있는데 이것을 취류종(聚類種)이라 한다. 먼지만큼이라도 마음이 있다면 '정인불성'(正因佛性)이요, 한번이라도 듣는다면 '요인불성'(了因佛性)이요, 머리를 한번 숙이거나 손을 한번이라도 들었다면 '연인불성'(緣因佛性)이다. 『약초유품(藥草喩品)』의 “종상성체(種相性體)”에서 종(種)에는 취류종(聚類種)과 상대종(相對種) 두 종류가 있다. 생사(生死) 즉 열반(涅槃), 번뇌(煩惱)즉 보리(菩提), 결업(結業)즉 해탈(解脫)이 상대종(相對種)에 해당한다. 취류종인 '삼인불성'과 상대종인 '삼도(三道) 즉 삼덕(三德)'을 알면
일념삼천(一念三千) 삼신즉일(三身卽一) 본각여래(本覺如來)로 즉신성불(卽身成佛)한다.
☞ 육법(六法): 오온(五蘊: 색色·수受·상相·행行·식識) + 아(我)
♣ 색(色)은 → 정인불성(正因佛性)과 즉(卽)하지도 여의지도 않는다.
♣ 식(識)은 → 요인불성(了因佛性)과 즉(卽)하지도 여의지도 않는다.
♣ 수(受), 상(相), 행(行), 아(我)는 → 연인불성(緣因佛性)과 즉(卽)하지도 여의지도
않는다.
십계호구(十界互具)
1) 10界 × 10界 = 100界 → 제행무상(諸行無常), 가제(假諦), 가관(假觀)
2) 100界 × 10如是 = 1000如是 → 제법무아(諸法無我), 공제(空諦), 공관(空觀)
3) 1000如是 × 3世間 = 3000世間 → 열반적정(涅槃寂靜), 중도제(中道諦), 중도관
(中道觀)
일심삼관(一心三觀) 즉 일심(一心)에 가제(假諦), 공제(空諦), 중도제(中道諦)가 모두 구족되어야 성불(成佛)할 수 있다. 이것을 '위빠사나'라 하며 일심(一心)에 삼관(三觀)을 보는 것이며 '관심법'(觀心法)이라 한다. 그래서 10여시를 읽을 때 다음과 같이 세 번을 돌려가며 읽는다.
① 如是相·如是性·如是體·如是力·如是作·如是因·如是緣·如是果·如是報·如是本末究竟等
⇒ 법계일체(法界一切)는 가제(假諦)다 【제행무상(諸行無常)】
② 是相如·是性如·是體如·是力如·是作如·是因如·是緣如·是果如·是報如·如是本末究竟等
⇒ 법계일체(法界一切)는 공제(空諦)다 【제법무아(諸法無我)】
③ 相如是·性如是·體如是·力如是·作如是·因如是·緣如是·果如是·報如是·如是本末究竟等
⇒ 법계일체(法界一切)는 중도제(中道諦)다 【열반적정(涅槃寂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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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삼관일심(三觀一心)은 '사마타'와 같다. 삼관(三觀)을 일심(一心)으로 모아서 공삼매(空三昧)에 들어 가는 것이다.
일심삼관(一心三觀; 위빠사나)은 성성(惺惺)해야 하고 삼관일심(三觀一心; 사마타)은 적적(寂寂)해야 한다. 적적(寂寂)만 하면 잠이 오고, 성성(惺惺)만 하면 온갖 만상(萬象)이 나타나기에 항상 '성성적적(惺惺寂寂)'으로 같이 수행한다. 그러면 일심(一心)에 삼관(三觀)이 구족되는데, 여시상(如是相)은 ‘무작(無作)의 응신(應身)’, 시상여(是相如)는 ‘무작(無作)의 보신(報身)’, 상여시(相如是)는 ‘무작(無作)의 법신(法身)’에 해당된다.
10여시에서 일념삼천(一念三千), 삼관(三觀), 삼제(三諦), 삼인불성(三因佛性), 삼법인(三法印) 일체가 나왔다. 이것은 다른 경(經)에는 없는 것으로 법화경(法華經)이 성불경(成佛經)이 되는 이유다. 10여시가 근본인 것이다.
♣ 십계호구(十界互具)가 안 되면 → 사(事) 일념삼천(一念三千)이 결여(缺如)되고
♣ 삼제(三諦)가 아니면 → 이(理) 일념삼천(一念三千)이 부족(不足)하고
♣ 삼세간(三世間)이 아니면 → 의정(依正)이 결여되고
♣ 십여시(十如是)를 말하지 않으면 → 십계(十界) 인과(因果)가 결여되고
♣ 원심(圓心)이 아니면 → 삼천(三千)이 미흡하고
♣ 삼천(三千)을 모르면 → 원심(圓心)이 안 된다.
위의 것들이 복잡하게 서로 의존(依存)하여 '삼법인'(三法印)을 이루며 '본각'(本覺)과 '시각'(始覺)을 알아서 삼신즉일(三身卽一) 본각여래(本覺如來) 진불(眞佛)이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인 것이다.
일체중생(一切衆生)의 당체(當體)가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이다.
법화경(法華經)을 좀 더 상세히 알려면 천태(天台)의 삼대부(三大部) 30권과 묘락(妙樂)의 문구기(文句記) 10권, 현의석첨(玄義釋籤) 10권, 지관보행전홍결(止觀輔行傳弘決) 10권해서 총 60권과 천태사석(天台四釋)과 오시팔교(五時八敎), 사실단(四悉檀)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천태대사는 석존(釋尊)의 50년 설법을 총망라(總網羅)하여 오시팔교(五時八敎)로 정리하였으니 '제2의 소석가(小釋迦)'라 부른다 해도 손색이 없다.
중도(中道)란?
언어도단(言語道斷)이지만 부처님께서 제자 수용나(樹龍那)에게 중도(中道)를 설한 일화가 있다.
「수용나는 밤낮으로 참선(參禪)을 했지만 조금도 진전이 없어 공부를 포기하고 속가로 돌아가려 했다. 부처님께서 그것을 아시고 수용나가 속가에 있을 때 거문고를 잘 탔다는 사실을 들어 “줄을 꽉 조이면 소리가 어떠하냐? 또 느슨하게 하면 소리가 어떠하냐?”라고 물으셨다. 수용나가 답하기를 “꽉 조여도 안 되고 느슨해도 안 됩니다. 적당한 선(線)이 있습니다. 오직 하나뿐인 이 적당한 선에 맞추면 소리가 잘 납니다.”라고 답했다. 이에 부처님께서 “너의 공부도 그와 같이 하면 된다.”고 하셨다. 수용나는 3개월 후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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